제가 다니는 외국계 회사는 나름 훌륭하지만 급여나 복지 혜택 등에서 정상급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전현직 직원들 남녀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저희 회사에 대해 평가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자가 다니기에 좋은 회사"라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 워-라-밸을 배려하는 회사 ? 해외 진출 기회가 주어지는 회사 ? 육아휴직을 잘 지켜주는 회사 ?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회사 ? 이런 것들은 꼭 여자에게만 좋은 회사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남녀 모두에게 좋은 회사"의 조건일 뿐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 채용과 승진, 특히 임원 승진에 있어 여성 비율을 일정선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라는 뜻 같습니다. 저희 회사에 채용되는 신입직원 여성 임원 비율이 몇%여야 한다라고 명문화된 규정이 있는 것은 못 봤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저희 회사는 양성평등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한다고 밝히고 있고, 특히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권익을 위해 노력한다고 명백히 밝히는 좋은 회사입니다.
그로 인해 남성 직원들이 '남성 역차별'이라면서 불평하거나 그러지는 않을까요 ? 일부 하는 사람들 봤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은 회사를 나가신 어떤 남성 중역께서 전에 술자리에서 이렇게 푸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비전이 없는 3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40대 넘은 사람, 둘째, 하드웨어 일 하는 사람, 셋째, 남자". 회사 정책상 노골적으로 여성을 우대하다보니,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겠지요.
과연 그럴까요 ?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역시 밝혀지지 않은 카더라 통신에 불과합니다만, 특히 신입사원 채용 때 여성이 부당한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들었습니다. 오히려, 남성을 멸종으로부터 보호하려고 애쓴다는 거에요. 스펙이나 자기 소개서, 특히 면접 때의 태도와 언변 등 점수로만 보면 신입사원 채용의 거의 80~90%가 여성으로 채워질 판국이라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왜 회사에서는 남성을 멸종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할까요 ? 반대로, 여성들이 이렇게 우수하다면 굳이 승진 등에 있어 인위적으로 여성 비율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텐데 왜 그렇게 여성 우대 정책을 취할까요 ? 역시 (일부 남성 직원들의 생각대로) 여성들은 서류와 면접만 번지르르하게 잘 꾸미고, 실제 업무 능력에서는 남성이 더 우수하기 때문일까요 ?
이건 제가 20년 넘게 저희 회사를 다니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입니다만, 이 모든 것은 기존 매니지먼트 대부분이 남성이기 때문입니다. 또 거래처, 고객사의 매니지먼트 대부분이 남성이기 때문이고요. 일부 분들은 '남자들은 아무래도 젊고 매력적인 여성과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회사 일을 할 때 대부분의 남성 매니지먼트와 남성 고객들은 남성과 일하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아무래도 회사 업무라는 것이 이익 다툼의 여지가 많은, 재미없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쟎아요. 언제나 하하호호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얼굴을 붉히고 거친 소리를 한다던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던가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남성들은 그럴 때 그 대상이 남성이면 좀 더 막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특히 영업사원인 경우 우리나라 기업 문화 특성상 밤 늦게까지 술집에서 고객을 접대하거나, 고객사 건물 뒤편에서 고객과 담배를 한대씩 하며 비공식적인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는 남성 직원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의 매니저들은, 신입사원 뽑을 때 점수 순서대로 여성으로 다 뽑지는 않고 조금 점수가 떨어지더라도 남성도 뽑으려는 것 같습니다. (이건 사내 카더라 통신에 불과하고 제가 확실히 알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저는 하이어링 매니저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전에 여성 직원들을 위한 사내 세션에 참석한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여성 직원들이 토로하는, '여성이기 때문에 사내에서 당하는 불이익'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몇 건을 들어보니, 대부분 '사내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기도 인정하는데, 그런 사내 정치는 대부분 밤 늦게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면서 이루어지더라, 그래서 여자들은 그런 측면에서 불리하다'라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때 패널로 앉아계시던 어느 남성 전무님께서 그런 불만들을 한마디로 잘 요약하셨는데, 저도 그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여성 직원들의 어려움은 술마시는 남성 매니저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군요!"
결국, 남성 위주로 구성된 사회에서 여성들은 시작부터 핸디캡을 안고 시작하는 셈입니다. 그런 핸디캡은 회사 신입사원, 대학원 박사과정이나 병원 인턴 채용, 승진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생활 그리고 가정 생활 곳곳에서 여성들에게 눈에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작용합니다. 자신이 차별의 대상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차별의 서러움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모든 면에서 남성인 제가 경쟁자인 여성보다 못한 점이 없는데도 승진 심사에서 여성 경쟁자가 여성 우대를 받아 승진했다면, 제가 무척 억울함을 느낄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제가 남성으로 태어난 덕분에, 부당한 핸디캡을 안고 있던 많은 여성 경쟁자들을 젖히고 그 승진 심사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는 여성들을 위한 최소한의 우대 정책이 있다고 해서 여성들이 불합리한 어드밴티지를 받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성들의 그런 불만은 정말 완전한 양성평등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 사족 : "어쨋든 갑질 문화, 살인적인 야근 문화와 폭탄주 돌리는 회식 문화가 있는 우리나라 회사에서는 남성이 더 쓸모가 많은 것 아닌가, 그런데도 인위적인 여성 우대 정책을 펼치는 것은 부당하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질과 살인적 야근, 그리고 직장인들이라면 다들 질색하는 폭탄주 회식은 여성들에게만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야만적인 문화, 아니 습성은 없어지는 것이 남성들에게도 유리합니다. 그러니 남자를 뽑아야 한다 라고 하지 말고, 그런 습성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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