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리드리히 빌헬름2

쿨름 전투 (3) - 국왕이 보낸 편지 방담의 프랑스군이 테플리츠로 쳐들어오고 있으니 급히 피난하시라는 프란츠 1세의 편지를 받은 사람은 바로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이었습니다. 8월 27일, 다들 드레스덴에서 후퇴하자는데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28일에도 한번 더 싸우자고 주장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정작 후퇴가 결정되자 누구보다도 재빨리 말을 달려 안전한 후방인 테플리츠에 먼저 당도했었던 것입니다. 27일 밤까지도 드레스덴에 있던 양반이 28일 밤에는 남쪽으로 55km 떨어진 테플리츠에 와있었으니, 아마 엄청난 속도로 말을 달렸던 것 같습니다. (1837년 경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모습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개혁 군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결국 그건 똑똑한 왕비 루이자 덕분이었다는 것이 드러났고, 사랑했던 왕비 루이자가 .. 2024. 5. 20.
결정을 못하는 리더 - 못난이 프리드리히 1812년 12월 14일, 원정군을 버려두고 파리로 달리던 나폴레옹의 썰매는 프로이센이 그토록 반환을 간청하던 글로가우 요새를 통과했습니다. 나폴레옹이 홀로 파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나폴레옹의 원정군이 몰살을 당했다는 소식이 프로이센 일대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프로이센의 열혈 애국자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나폴레옹을 끝장내고 프로이센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프로이센의 운명에 대해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에게는 모든 것이 너무나 불확실하고 불안했습니다. 200년이 지난 지금에야 1812년 러시아 원정 실패가 결국 나폴레옹의 패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집니다만, 당시로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단 나폴레옹의 그랑다르메가 .. 2022.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