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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ck3

새로운 전쟁의 준비 (2) - 프로이센의 고민 원래 7월 20일까지였던 휴전 기간은 양측의 합의 하에 8월 10일로 연장되었고, 그때까지 평화 협정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전투가 재개되려면 6일 간의 유예기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투가 재개되는 것은 8월 17일 새벽 0시부터였습니다. 사실상 건성이었던 평화 협상에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양측은 8월 17일의 전투 재개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양측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프로이센군은 전반적으로 사기가 높은 편이라고 다들 말했습니다. 비록 뤼첸-바우첸에서 2연패를 당했으므로 4월달에 처음 출정할 때처럼 희망만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러시아군이 후퇴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무엇보다 그 무시.. 2023. 10. 23.
바우첸을 향하여 (16) - 헛도는 톱니바퀴들 압도적인 병력을 가진 프랑스군의 공격에 대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요크는 바클레이의 어처구니 없는 지원군 요청에 아무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정말로 자신의 부대 중 제2 여단을 떼내어 숲길을 통해 바클레이가 있는 쾨니히스바르타로 보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요크가 정말 제대로 된 군인 정신의 지휘관인지 정반대로 관료주의에 빠져 현실 파악을 못하는 인간인지 헷갈립니다만, 직후의 행동을 보면 요크가 닳을 대로 닳은 늙은 여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크는 2시간 정도 싸운 끝에 어차피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상황 파악을 못한 바클레이가 병력 지원을 요청하자 요크는 후퇴할 명분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바클레이의 명령대로 지원군을 보내면서 '지원군을 보내고 .. 2023. 3. 27.
연쇄 반응 - 타우로겐 조약 개전 초기부터 막도날은 약 3만 규모의 제10 군단을 이끌고 오늘날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Riga) 방면을 포위 공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2월 초, 그랑다르메 본진이 빌나를 넘어 네만 강 너머로 철수하고 있다면 이제 리가 함락이 문제가 아니라 퇴로가 끊길 것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후퇴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의 제10 군단 중 절반은 요크(Ludwig Yorck von Wartenburg) 장군의 프로이센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들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 것입니다. 막도날의 참모들은 프로이센놈들이 배신하려 한다며 불안해 했습니다. 막도날도 처음부터 높지 않았던 프로이센군의 열의가 요즘 확연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긍지 높은 프로.. 2022.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