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ee3

레이더 개발 이야기 (38) - 바보야, 지구는 둥글쟎아! Gee를 이용한 폭격을 시작하고서도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 사령부(Bomber Command)는 그렇게까지 행복해하지 않았음. 이유는 일단 정확도. Gee의 개념 특성상, 기지국에서 멀면 멀수록 정확도가 점점 더 떨어짐. 그러니 격추된 영국 랭카스터 폭격기에서 수거한 Gee 수신기를 수리하여 자국 폭격기에 싣고 영국의 밤 하늘로 날아온 루프트바페에게는 Gee가 꽤 정밀한 폭격 유도를 해주었으나, 정작 정품 사용자인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들은 머나먼 독일에서는 꽤나 부정확했음. 독일 쾰른 상공에서는 오차가 1.6km까지도 벌어졌는데, 당시 폭탄의 살상 범위는 건물의 경우 10m 이내, 사람의 경우 100m 이내였기 때문에 이건 정밀 폭격과는 거리가 멀었음. 그래서 그런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로열 에어포스는 갖.. 2023. 7. 13.
레이더 개발 이야기 (37) - 피해갈 수 없는 jamming과의 싸움 1941년 8월, 로열 에어포스는 Gee의 효용성에 확신을 가지고 양산을 결정. 그러나 양산 결정을 한다고 당장 수신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니며, 생산라인 갖추고 충분한 개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다음해인 42년 5월 경에나 가능. 당장 전쟁이 급한 로열 에어포스는 먼저 손으로 한땀한땀 납땜을 해서라도 300개만 먼저 만들어달라고 독려. 그나마 그런 수제 Gee 수신기도 42년 1월에나 만들어짐. 그렇게 만들어진 수제 Gee 수신기를 이용한 첫 공습은 42년 3월 8일 밤에 200대의 폭격기를 동원한 서부 독일의 Essen 공습 작전. 몇몇 폭격기에 Gee 수신기를 장착하여 선두에 서게 한 것. 목표물은 이 도시에 있던 Krupp사의 공장이었으나 정작 이 공장에는 폭탄이 하나도 안 떨어지고 .. 2023. 7. 6.
레이더 개발 이야기 (36) - 이제 우리는 독일로 간다 1939년 말까지 로열 에어포스의 폭격기들은 발트 해 연안의 독일 해군 기지 등에 대해 과감한 주간 폭격을 실시하고도 큰 피해가 없었음. 이유는 프랑스도 아직 항복하지 않았고 루프트바페의 전투기는 한정적이었으므로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들에 대한 요격 활동이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1939년 12월 18일, 22대의 Vickers Wellington 폭격기들이 헬리골란트 만의 빌헬름스하벤(Wilhelmshaven) 항구를 공격할 때, 한 떼의 루프트바페 전투기들이 그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정확하게 달려들어 개박살을 내놓음. 결국 22대의 웰링턴 폭격기들 중 10대가 격추되었고 2대는 손상을 입고 바다에 불시착했으며 기지로 돌아온 10대 중 3대는 손상이 너무 커 폐기처분될 정도. 독일 전투기들.. 2023.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