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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데텐 산맥2

드레스덴을 향하여 (5) - 드레스덴의 삼중 방어 이 무렵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가 이미 연합군 측에 붙었다는 것을 집요하게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보고 들으려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매우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오스트리아의 참전이 나폴레옹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습니다. 8월 16일에는 보헤미아에 심어둔 스파이로부터 러시아군이 보헤미아로 이미 들어왔다는 소식이 날아왔지만, 나폴레옹은 이런 소식조차 좀처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전이 허용되는 날짜인 8월 17일이 되자, 나폴레옹은 즉각 럼부르크(Rumburg, 체코어로 Rumburk)에 근위대 1개 기병사단과 1개 보병사단을, 그리고 폴란드 병사들로 구성된 제8군단과 제4기병군단을 지타우(Zittau)로 투입하여 남쪽의 보헤미아 국경 안.. 2024. 1. 8.
이제는 어디로? - 연합군의 고민 뒤록을 잃은 나폴레옹이 충격과 슬픔으로 잠시 주춤한 사이, 연합군 사령관 비트겐슈타인은 후퇴를 계속 했습니다. 1차 후퇴 집결지였던 라이쉔바흐(Reichenbach)는 방어에 적합한 지형이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거기 멈춰서서 나폴레옹과 다시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비트겐슈타인 본인도 나폴레옹만큼이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편이었습니다. 아무리 단 1문의 대포도 단 1기의 군기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해도, 후퇴하는 연합군의 사기가 좋을 리는 없었습니다. 당시 연합군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바우첸 전투에서 패배가 확정되고 알렉산드르가 후퇴를 명한 뒤, 함께 있던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알렉산드르와 함께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후퇴길에 나섰습니다. 그 두 군주.. 2023.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