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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3

드레스덴 전투 (9) - 대포알에는 감정이 없다 바이서리츠강 서쪽에서 프랑스군의 기병대에 오스트리아군이 학살당할 때, 오스트리아군 기병대가 뛰어나오지 못한 것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단, 오스트리아군은 아직 1809년 바그람 전투의 패배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여 기병대 숫자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이 얼마 안되는 오스트리아 기병대의 주축인 리히텐슈타인(Moritz Joseph Johann Baptist von Liechtenstein)의 기병사단과 노스티츠(Johann Nepomuk von Nostitz-Rieneck)의 기병사단은 무슨 사정에서인지 상식적인 기병대의 위치인 좌익이나 우익에 있지 않고, 중앙에 배치된 오스트리아군의 뒤쪽, 그러니까 바이서리츠강의 우안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모리츠 폰 리히텐슈타인의 초상화입니다. 아우스테를리츠 .. 2024. 4. 15.
드레스덴 전투 (4) - 학부모까지 참석하는 조별 과제 애초에 보헤미아 방면군 사령관 자리는 결코 쉬운 직장이 아니었습니다. 연합군의 자타공인 주력부대인 이 강력한 20만 대군의 지휘권은 상식적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대는 러시아군 수장이 맡는 것이 맞겠으나, 중립으로 있어도 되지만 유럽의 대의를 위해 이 한 몸 던진다는 생색을 내며 참전한 오스트리아에 대한 보상조로 오스트리아 장성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보헤미아 방면군의 지휘권에는 시작부터 러시아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갈 수 밖에 없없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전쟁이란 많은 사람이 죽고 사는 심각한 사업인데, 이익이 상충되는 여러 나라가 서로 힘을 합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연합군의 작전이란 마치 학교에서 하는 조별 과제 같은 프로젝트였습니다. 약한 프로이센과 대국 러시아 둘이서 연합군을.. 2024. 3. 11.
드레스덴을 향하여 (3) - 프라하의 좌청룡 우백호 조미니와 한 자리에 함께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날 프라하에 있던 알렉산드르의 사령부에 나타난 거물은 바로 모로(Jean Victor Marie Moreau)였습니다. 모로는 제2차 대불동맹전쟁을 호헨린덴(Hohenlinden) 전투로 한 방에 끝내버린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자 열혈 공화주의자로서, 동시에 나폴레옹이 황위에 오르기 전 그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이었습니다. (전에 읽어보시지 않으셨다면 모로와 호헨린덴 전투에 대해서는 https://nasica-old.tistory.com/6862505 를 참조하세요.) (모로입니다. 언제 그림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프랑스 군복을 입고 있습니다. 머리가 마치 실버 블론드처럼 하얗게 그려졌습니다만, 이는 당시 이미 약간 구시대적 스타일로 취급되던 분을 칠.. 2023.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