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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탄2

베레지나의 동쪽 - 비극과 투지 빅토르의 제9군단은 비교적 최근에 편성되어 보로디노 전투 이후인 9월 초에야 네만 강을 건넜던 약 3만 규모의 군단으로서, 대부분 바덴(Baden), 헤센(Hessen), 작센(Sachsen) 등 독일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거기에 일부 폴란드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들도 물론 척박한 러시아 땅에 들어서자마자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베레지나 강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1만2천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의 추격을 뿌리치고 스투지엔카 외곽으로 달려온 빅토르 휘하엔 불과 8천명의 병력 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 4천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들은 파르투노(Louis Partouneaux) 장군 휘하의 1개 사단이었는데 이들은 나폴레옹의 명에 따라 일종의 미끼로서 며칠 전부터 보리소프의.. 2021. 10. 4.
보로디노 전투 (12) - 허무한 결말 나폴레옹이 근위대 투입을 주저하며 머뭇거리던 3시간은 러시아군에게는 정말 소중한 재정비 기회였습니다. 쿠투조프는 여전히 고르키 마을에서 참모들과 노닥거리고 있었지만 바클레이는 러시아 방어선 우익에 포진되어 있던 병력을 대거 중앙과 좌익 쪽으로 옮겨 허물어진 방어선을 재구성했습니다. 특히 러시아군의 맹렬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이 라에프스키 보루 앞에 정렬했으므로 그 쪽으로 강력한 공격이 가해질 것이 뻔했으므로, 라에프스키 보루의 양 옆에도 보병들을 포진시켰고, 보루 뒤 800m 후방에는 보병과 포병으로 제2 방어선도 든든히 구축해놓았습니다. 콜랭쿠르가 목숨을 버려가며 점령한 라에프스키 보루는 그 한 가운데에 있었던 것입니다. (상트 페체르부르그 카잔 성당 인근에 있는 바클레이의 동상입니다. 분명히 그.. 2020.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