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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텔2

엇갈린 평가 - 나폴레옹과 프랑스 공군 이야기 (제2편) 주르당의 어설픈 라임으로 조롱 받으며 파리로 돌아온 쿠텔을 맞이한 것은 서슬퍼런 국민공회 공안위원회(le Comite de salut public)였습니다. 그렇다고 공안위원회가 쿠텔을 단두대로 보낸 것은 아니었고, 정반대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공안위원회는 당시 국내외 반혁명세력과의 투쟁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으므로, 과학을 통해 구시대의 적을 무찌른다고 하면 뭐든 해줄 기세였습니다. 샤또 드 뫼동(Chateau de Meudon)에서 몇 차례의 기구 기술에 대한 테스트가 이루어진 뒤, 공안위원회는 아예 세계 최초의 공군 무기창인 항공 개발 센터(le centre de developpement aerostatique)를 창설했습니다. 여기서는 나중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도 참여하고.. 2018. 4. 15.
혁명의 날개 - 나폴레옹과 프랑스 공군 이야기 (1편) 탈라베라 전투에서 빅토르의 복장을 터뜨린 주르당 원수에 대해 설명하면서, 주르당 원수의 몇 안되는 빛나는 승리 중 하나인 1794년 플뢰뤼스(Fleurus) 전투에 대해서도 언급했지요. 플뢰뤼스 전투 그 자체는 별 의미도 재미도 없는 전투입니다만, 이 전투는 군사학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세계 최초로 공군이 활약한 전투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왜 다른 나라들보다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공군이 탄생했을까요 ? 그 효과는 어땠을까요 ? 무엇보다, 왜 불세출의 군사 천재 나폴레옹은 이런 과학 병기를 활용하지 않았을까요 ? 계몽사상이 싹튼 나라 프랑스에서는 과학자들도 많았고 일찍부터 이런저런 과학 실험들이 많이 수행되었습니다. 열기구 및 수소 기구도 그런 활동 중 하나였습니다. 혁명 전인 1783.. 2018.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