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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귀르2

보로디노 에필로그 (1) - 우울한 승자 전투가 끝난 어두운 보로디노 벌판은 그야말로 한 폭의 지옥도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온 들판에 말과 사람의 시체와 부서진 장비들이 가득했는데, 대부분의 사상자는 포격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에 그 시체들의 모습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창자가 빠져나온 채로 비틀거리며 자꾸 일어서려는 말, 두동강이 난 병사들, 머리가 없는 시신들... 아직 숨이 붙어있는 부상자들이 내는 비명 소리와 신음소리는 살아남은 병사들의 신경을 긁었습니다. 먹을 것도 가져오지 못한 군대에게 붕대와 의약품, 들것 등을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심한 부상을 당한 병사들은 대부분 긴 고문에 의한 사형 선고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어떤 부상병들은 자기를 총으로 쏘아 죽여달라고 흐느끼기도 했지만 어떤 이들은 어떻게든 살겠다고 피를.. 2020. 10. 19.
멈추지 못한 발걸음 (1) - 1812, 시즌 오버? 바이에른군의 에라스무스 드로이(Erasmus Deroy) 장군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병사들의 군화는 물론 군복 코트, 바지, 각반 등이 모두 누더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군대가 요즘에 비해 지나치게 화려한 군복을 고집했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입는 옷에 따라 거동이 달라지는 동물이라서, 절도 있는 군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으면 그만큼 더 군기있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복장을 입고 있으면 반대로 군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문제가 있지요. 상황이 딱 그랬습니다. 드로이 장군도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일 뿐만 아니라 불만과 명령 불복종이 위험 수준에 달했다며 보고서에서 개탄했습니다. 게다가 뷔르템베르크 출신 칼 폰 수코프(Carl von Suckow)의 기록에 따르면 이.. 2020.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