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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4

달콤씁쓸한 결말 - 설탕과의 전쟁 (마지막편) 하지만 본격 산당국(産糖國)의 꿈이 현실화되기 전에 전쟁의 물결이 닥쳤습니다. 아카르트의 든든한 후원자이던 빌헬름 3세가 알고보니 멍청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입만 살았던 강경파의 주장대로 겁도 없이 나폴레옹에게 먼저 싸움을 걸었고, 나폴레옹은 '내가 바로 나폴레옹이다'라는 것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빌헬름 3세에게 혹독하게 교육시켜 주었습니다. 이 전쟁은 아카르트의 농장과 정제소까지 집어 삼켰습니다. 1806년 밀물처럼 쳐들어온 프랑스군은 아카르트의 농장과 공장을 불태워버렸던 것입니다. 아카르트는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잠겼습니다. 사탕무 정제소가 사실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프로이센은 온 나라가 탈탈 털렸고, 나폴레옹에게 알짜배기만 골라 영토를 절반이나 빼앗기고 덤으로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물어내.. 2018. 5. 21.
위기의 대륙봉쇄 - 설탕과의 전쟁 (1편) 1810년 이제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위가 된 나폴레옹의 권력은 무소불위에 가까운 절정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그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 도나우 강변에서 피를 쏟으며 싸운 병사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하고 엘베(Elbe) 강과 베저(Weser) 강 하구 북유럽 해안에 분산 배치되어야 했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영국과의 무역 전쟁인 대륙봉쇄령의 엄격한 집행을 위해 북부 독일의 항구 도시들을 감시하에 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북부 독일 해안에 이런 감시를 집중했을까요 ? 이는 북부 유럽과 남부 유럽의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농업에 의존해야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 삶과 문화는 농작물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북부 프랑스 사람들의 생활 문화는 .. 2018. 5. 7.
검은 나폴레옹 vs. 하얀 나폴레옹 - 백인들에게는 불편했던 영웅 (하편) 지난편에서 르클레르의 원정 함대가 1802년 1월말, 생 도밍그 인근 사마나 만에 집결하는 모습까지를 보셨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 원정대의 임무를 다시 살펴보도록 하시지요. 나폴레옹이 르클레르에게 준 임무는 생 도밍그를 다시 프랑스 중앙 정부의 권위 밑으로 복귀시키라는 다소 고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 투쌩을 죽이라는 말인가요 ? 왜요 ? 투쌩은 한번도 프랑스 중앙 정부로부터 독립을 하겠다거나, 반항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무슨 명분으로 투쌩을 잡아들이나요 ? 사실 이 원정대의 목적은 생 도밍그의 반란 노예들과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공식적인 임무는 새로운 주지사(Captain general)의 안전한 부임이었지요. 나폴레옹은 투쌩과 구태여 툭탁거리며 싸우고 싶지 않았습.. 2017. 10. 14.
검은 나폴레옹 vs. 하얀 나폴레옹 - 생 도밍그 (Saint Domingue) 원정 (상편) 1492년, 콜럼버스는 서쪽 바다의 끝에서 (사실은 카리브 해였는데) 큰 섬을 하나 발견합니다. 그는 이 섬에 스페인어로 La Isla Espanola (라 이슬라 에스파뇰라)라는, 즉 스페인 섬이라는 멋대가리 없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이 좀더 멋나게 Hispaniola 라고 고쳐불렀지요. 이 섬에는 원래 타이노 (Taino)라는 남미 인디오 계통의 부족이 살고 있었으나, 이들은 원래 수자가 적었는데다 스페인 사람들의 공격과 박해,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천연두 등의 전염병에 곧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집니다. 이 섬에는 자연스럽게 스페인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는데, 이들은 라틴 아메리카 지역 최초의 유럽식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산토 도밍고 (Santo Domingo.. 2017.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