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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타 왕비2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9편) - 알았다면 뽑지 않았을 왕세자 아우구스트 왕세자와 폰 페르센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사태는 험악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왕의 역할일텐데, 카알 13세는 정작 거의 아무 역할을 못 했습니다. 이미 1809년 11월 이미 한차례 심장마비를 일으킨 이후 건강 문제로 인해 국정에 거의 참여를 못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스웨덴의 조야는 모두 안정을 원했는데, 이 혼란이 끝나기 위해서는 강력한 후계자를 조속히 선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했습니다. 문제는 카알 13세의 왕비 샤를로타(Hedvig Elisabet Charlotta) 왕비였습니다. 살해된 폰 페르센과 함께 구스타프파의 수장 노릇을 해왔던 여걸이던 그녀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구스타프 왕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2018. 8. 20.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8편) - 왕세자와 백작의 죽음 이야기를 다시 1809년 초 스웨덴으로 돌리겠습니다. 구스타프 4세를 쿠데타로 축출하고 카알 13세를 새 국왕으로 새운 스웨덴은 이미 노쇠한 카알 13세의 뒤를 이을 후계자 문제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카알 13세의 아들들은 모두 유아기에 사망했기 때문에 카알 13세가 서거하고 나면 왕가 후손이 끊어질 판이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유럽 왕가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고, 보통 제일 가까운 외국 왕가나 외국 귀족의 자제를 데려와 왕으로 삼는 일이 많았습니다. 딱히 불화가 일어날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스웨덴은 새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이냐를 놓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대체 그 후보자들이 누구누구였길래 이런 갈등이 생겼을까요 ? 아마 베르나도트를 데려오는 것에 대해 반대가 심해서 갈등이 생겼나.. 2018.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