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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 7세2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의 충돌 : 사울 vs. 사무엘, 나폴레옹 vs. 비오 7세 고대 국가와 근대적 국가의 뚜렷한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정교 분리입니다. 마치 무협지에서 관은 무림의 일에 관여치 않고 무림도 관의 일에 관여치 않는 것이 불문률인 것처럼, 종교는 정치에, 반대로 정치도 종교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정교 분리입니다. 하지만 무림과 관이 서로 상대의 일에 관여치 않기로 한 것은 서로의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무척 많기 때문입니다. 가령 좌랭선의 숭산파가 중원 제패의 야심을 품고 타 문파를 무력으로 공격하는 것이 관에서 볼 때는 산적떼들의 난동과 종이 한장 차이일 것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종교와 정치는 엄격히 구분된 것처럼 말은 하지만 사실은 겹치는 영역이 매우 많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도 반란죄로 십자가형에 처해지셨고, 마호멧은 스.. 2019. 1. 7.
교황과 무역 - 포르투갈의 전운 오스트리아 대사 슈바르첸베르크 대공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폴레옹의 아들에게 바친 '로마 왕'(Roi de Rome)이라는 칭호는 단지 신성로마제국의 정통성을 나폴레옹에게 공치사로서만 넘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이미 로마는 나폴레옹의 손아귀에 넘어온 상태였습니다. 로마 및 그 주변은 원래 세속 군주로서의 로마 교황이 가지는 교황국(the Papal States)에 속하는 영토였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지배자 나폴레옹 눈 앞에는 고양이는 커녕 생쥐만도 못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비오 7세(Pius VII)는 1804년 나폴레옹의 대관식에도 참석하는 등 나폴레옹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다 소용없었습니다. 이미 1809년 5월 17일, 나폴레옹은 빈에서 칙령을 내려 로마 교황의 세속 군주로.. 2018.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