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을 우습게 여기는 세계 유일의 민족이기도 하지만, 미국 문화에 대해서도 적어도 관념적으로는 무척 낮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문화라는 것이 꼭 턱시도 입고 교향악 연주회에 가거나 찬란한 샹들리에 밑에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회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와인을 마시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입는 평상복, 평소에 먹는 음식, 평소에 흥얼거리는 노래 자체가 가장 중요한 문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현재 지구 최고의 문화 대국은 바로 미국이라고 봐요.  햄버거와 팝송, 영화,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 형성되는 전반적인 사회 가치관에 있어서 미국만큼 전세계에 강렬한 영향을 끼치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너무 그렇게 미국 문화의 파급력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보니 역으로 좀 더 흔하지 않은 문화를 접하는 것이 더 고급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가장 쳐주는 것이 바로 프랑스일 것입니다.  저도 그래서 고딩 때 배운 것이 전부인, 사실상 전혀 못하는 프랑스어를 어떻게든 원문 그대로 인용하려고 (구글 번역기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노력하는 편입니다.  전에 와이프가 회사에서 어떤 젊은 컨설턴트와 일을 할 때, 그 컨설턴트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프랑스어로 유창하게 대화를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다르게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이 모든 것이 싸구려 문화 사대주의에 빠진 저희 부부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긴 합니다.  


프랑스 문화가 마이너러티 문화라고 하면 말도 안된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분명히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문화는 마이너리티입니다.  가령 영미의 유명 팝송은 가사까지 완벽하게 외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샹송 아니 그냥 프랑스 유행가는 가사는 커녕 요즘 누가 인기인지 99%의 분들은 알지도 못하시고 관심도 없으시지요.  그러면 마이너러티 문화 맞습니다.


그런 마이너러티 유행가 중에서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잘 아는 샹송도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곡이긴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영화 중 2010년 디카프리오 주연의 '인셉션'에 주요 삽입곡으로 나와서 유명해진 곡이지요.  바로 에디뜨 삐아프(Édith Piaf)의 "농, 즈 느 르그레뜨 리앙(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 난 전혀 후회하지 않아)" 입니다.





저도 이 노래는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었어요.  너무 흘러간 노래이기도 하지만, 가사를 모르니 그 노래가 어떤 것에 대한 것인지 전혀 몰랐거든요.  제목으로 보아 대충 '어떤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버림을 받았지만 그걸 후회하진 않아'라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가사를 (물론 또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읽어보니, 정말 너무 훌륭한 곡이더라고요.  이 노래는 흘러간 옛사랑을 후회하지 않고 소중히 여긴다는 신파극스러운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계속 '후회하지 않는다, 다 잊었고, 치워버렸고, 과거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지난 추억 따위는 다 불태워버렸다' 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클라이맥스는 맨마지막 소절인데, 사랑에 대한 노래치고는 다소 파격적인 힘찬 트럼펫(?) 연주와 함께 힘차게 외치는 것으로 절정과 함께 끝납니다.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나의 인생이 오늘 너와 함께 시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과거의 사랑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새로운 사랑에 대한 찬가인 것입니다.  저는 그런 미래에 대한 희망의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여러분도 가사와 함께 이 노래를 들어보시면 저와 똑같이, 정말 마음에 드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유튜브를 틀어놓고 가사를 한번 따라 읽어보세요.


https://youtu.be/t6wjCcWC2aE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


아니, 전혀 아니야

아니, 난 전혀 후회안해

남들이 내게 잘 해준 것도 필요없고, 못되게 군 것도 상관없어

모두 내겐 다 똑같을 뿐이야 !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est payé, balayé, oublié

Je me fous du passé !


아니, 전혀 아니야

아니, 난 전혀 후회안해

그거 다 대가를 치뤘고, 쓸어버렸고, 잊어버렸어

과거 따위 알게 뭐야 !

 

Avec mes souvenirs

J'ai allumé le feu

Mes chagrins, mes plaisirs

Je n'ai plus besoin d'eux !


내 추억은

불살라 버렸어

내 괴로움과 즐거움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아

 

Balayées les amours

Et tous leurs trémolos

Balayés pour toujours

Je repars à zéro


그 사랑들은 다 지웠어

그 모든 격정은

영원히 치워버렸어

난 제로에서 새로 시작해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


아니, 전혀 아니야

아니, 난 전혀 후회안해

남들이 내게 잘 해준 것도 필요없고, 못되게 군 것도 상관없어

모두 내겐 다 똑같을 뿐이야 !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ar ma vie, car mes joies

Aujourd'hui, ça commence avec toi !


아니, 전혀 아니야

아니, 난 전혀 후회안해

왜냐하면 내 인생과 내 즐거움은

오늘, 너와 함께 시작되니까 !





PS.  프랑스어 능통자분들께 질문)  Je repars à zéro 부분에서 저는 연음법칙에 의해 '즈 르빠 사 제로'라고 발음이 날 것 같은데, 정작 이 노래를 들어보면 제 귀에는 '즈 르빠 라 제로'라고 들립니다.  이게 왜 이런 것일까요 ?  동사변형에 의한 s는 연음법칙에서 제외되는 것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