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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0.11 과연 장발장이 훔친 빵의 정체는 무엇인가 ? (17)
2018.10.11 06:30

전에 인터넷 게시판에 유머 글이 하나 올라온 걸 봤습니다.  '장발장이 훔친 빵' 또는 '장발장이 잘못했네' 라는 것이었지요.





(저도 이 게시물 보고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웃기쟎아요.)



(하지만 레미제라블에 원래 실렸던 삽화에 실린 그림은 위와 같습니다.  원작 소설에도 쇠창살이 쳐진 빵집 진열장의 유리를 깨고 빵을 훔쳤다고 되어 있으니 빵이 저 인터넷 그림처럼 클 리가 없지요.)




사실 장발장이 어떤 빵을 훔쳤는지는 레미제라블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혹시나 싶어 원문을 찾아봐도, 그냥 pain(빵)을 훔쳤다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저 영화 속 한장면의 사진 속에 나와 있는 빵은 설명 그대로, 깡파뉴 빵, 즉 pain de campagne가 맞아 보입니다.  불어로 pain이 빵이고 campagne는 country니까, 영어로 하면 그냥 country bread, 즉 시골 빵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 빵의 특징은 크다는 것입니다.  대략 무게가 작은 것은 4 파운드 (1.8kg), 큰 것은 12 파운드 (5.4kg)까지 나가니까 엄청나게 큰 빵입니다.  보통 식빵 1봉지가 500g 정도되니까, 왠만한 가족 하나가 며칠을 먹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로만 밀 브레드....  설명을 읽어보니 '고대 로마군 병사들이 하루에 1파운드의 밀빵을 먹고 건강을 유지했다'는 이야기에 따라, 통밀과 잡곡을 섞어 만든 1파운드짜리 빵이라고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맛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식구들은 저 빼고는 그냥 흰 식빵을 더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당시 사람들은 왜 이렇게 큰 빵을 구웠을까요 ?  바로 오븐 때문이었습니다.




전에 연재하던 야매요리라는 네이버 만화 저도 즐겨보던 편인데, 거기 주인공인 야매토끼는 집에 오븐이 없어서 항상 '야매'로 전기밥솥이나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을 이용하지요.  제대로 된 가스 오븐은 부자집에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저 빵이 커진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유럽 사람들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븐이라는 물건은 만드는데도 돈이 많이 들었고, 또 뭔가 구울라치면 연료가 우라지게 많이 들어가는 물건이었거든요.  옛날에는 휘발유나 가스, 전기를 쓴 것이 아니라 숲에서 나는 나무를 장작으로 썼으니까 공짜 아니냐고요 ?  유럽은 중세부터, 숲을 엄격하게 관리했습니다.  그래서, 영주의 허락없이 숲에서 잔나무가지라도 하나 꺾었다가 숲지기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아주 엄벌에 처해졌습니다.  그건 사실 이해가 가는 일인 것이, 그러지 않았다가는 순식간에 숲이 벌거숭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중세 영주들이 숲에서 허락없이 장작을 해가는 백성들을 처형하고 고문했던 것은, 숲보다는 그 숲에 사는 사냥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주들은 숲에서 사냥을 하는 것이 낙이었는데, 숲이 망가지면 짐승들도 사라지거든요.   아무튼 그러다보니 연료를 아껴써야 하는 것은 당시가 요즘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습니다.




(중세가 아닌 1868년의 어느 영국 숲 입구에 걸린 검비 공작님의 경고문입니다.  밀렵꾼은 즉결 처분으로 총살에 처한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집에서 빵을 구울 수 있는 집은 상당한 부자집이었습니다.  대개의 가정에서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발효까지 시킨 뒤, 그걸 마을에 있는 빵집에 가서 구워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중세 시대에 마을에 있는 빵집(bakery)은 빵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빵을 구울 오븐만 제공하는 마을 공동 오븐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다가 점차 도시가 형성되면서, 아예 빵집에서 완제품 빵을 팔기 시작하면서 빵집이 진짜 빵가게가 된 것입니다. 




(이런 마을에 빵집은 몇군데 ?)




근대 유럽 시대까지도, 도시가 아닌 다음에야 마을에 빵집은 1개 혹은 2개 정도 있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과거 중세 시대부터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인가 봅니다.  경쟁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폭리를 취하는 것도 아니었던 좋은 시절이었나 봐요.  그러다보니, 만약 동네 빵집에 뭔가 문제라도 생기면 마을 전체에 난리가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쌩떽쥐베리가 2차 세계대전 초반에 정찰기 조종사를 할 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필 '전시 조종사' (Flight to Arras, Pilote de guerre)에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나옵니다.  독일군이 침공해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순박한 시골 마을 사람들이 피난을 가야 할지 마을에 남아야 할지 의논을 하는데, 의외로 쉽게 결판이 나게 됩니다.  어떤 농부 아저씨가 토론장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외친 것이지요.


  "다들 피난을 가는 수 밖에 없게 되었어 !  빵집 주인이 피난을 가버렸거든 !"




(이 정찰기가 생떽쥐베리가 프랑스의 항복 전까지 몰았던 정찰기 Bloch 174 입니다.)




아무튼, 오븐을 빌려서 빵을 굽던 시절, 비싼 연료비 때문에 빵은 매일 구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또, 보통 한번 구울 때 여러집의 빵을 한꺼번에 구워야 했기 때문에, 작은 빵을 여러개 굽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오븐에 집어넣은 다른 집들의 빵과 뒤섞이기 쉽쟎아요.   그러다보니, 되도록이면 크고 알흠다운 빵을 한번에 구워 며칠씩 두고 먹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 빵 3개는 순이네 꺼고, 저 빵 2개는 철수네 꺼고... 아니 저 빵이 철수네 꺼고 이 빵이 호섭이네 꺼든가 ?)




이렇게 구운 커다란 깡파뉴 빵, 즉 시골 빵은 대개 단단하고 수분도 적은 편이었습니다.  특히 며칠씩 두고 먹다보니 빵이 말라서 더욱 딱딱해졌지요.  가끔 옛날 영화보면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을 오븐에서 꺼내면 식구들이 좋아라하는 모습이 나오지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런 시골 빵에는 버터나 쇼트닝 같은 것을 안 썼고, 또 비닐 봉지도 없고 냉장고도 없었기 때문에, 하루만 지나도 빵이 마르고 딱딱해지기 쉽상이었기 때문에, 부드러운 빵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오븐에서 막 꺼냈을 때 뿐이었습니다.




(맛있어 보이나요 ?  강남 김영모 빵집의 비싼 빵과는 좀 맛이 다를 것 같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저렇게 빵을 무식하게 크게 구울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빵집에서 제일 큰 빵이라고 해봐야 바게뜨 정도인데, 사실 바게뜨도 저런 시골 빵에 비하면 엄청나게 작은 것입니다.  실은, 바게뜨 빵이 나온 이유에 대해서 재미있는 전설(?)도 있습니다. 



(중국집 솜씨를 보려면 짜장면을, 빵집 솜씨를 보려면 바게뜨를 먹어보면 됩니다.)




전설치고는 너무 최근의 일인데, 1920년 전후로 프랑스의 노동법이 바뀌어 밤 10시부터 새벽 4시 사이에는 제빵사가 일을 해서는 안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저 깡파뉴 빵처럼 크고 둥근 빵을 새벽 4시부터 굽기 시작해서는 도저히 도시인들의 아침 식사 시간 때까지 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길쭉하지만 굵기는 얇은 바게뜨라는 것입니다.  저런 법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바게뜨처럼 길쭉한 빵은 19세기 후반에 이미 널리 먹고 있었다고 하니까 이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합니다.  그나저나 프랑스의 저 노동법이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같은 임금 노동자 입장에서는 정말 부러운 법이네요.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  





** 목요일엔 예전 다음 블로그에 썼던 글을 티스토리로 옮기고 있습니다.  이건 2013년에 썼던 글인데, 맨 마지막의 국내 도급이 시급하다는 말이 당시엔 절실했는데, 어느덧 주 52시간 근무제가 현실화되었네요.  세상은 발전합니다.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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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nhardt100 2018.10.11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럽에서 제빵업자나 제분업자들이 중세 내내 경쟁에 시달리지 않은 대신 골치 아픈게 좀 많았습니다. 우선, 장원의 영주나 성당의 직접 통제가 꽤나 심했습니다. 심하면 이들이 직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다음으로는 이들이 실제로도 꽤 그랬지만 '밀가루를 빼돌려 자기 뱃속을 채운다'는 인상이 강해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분풀이 대상이 되곤 했고, 심지어는 이들 때문에 반란이 터질 정도였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독일인들의 동방식민운동 당시, 프로이센이나 리블란트 지역의 발트 제민족들이 들고 일어난 이유 중 하나가 독일인 제분업자들이나 제빵업자들의 사리사욕 추구가 있었을 정도였고 지배자이던 독일기사단이나 덴마크계 영주들도 민족주의 성격이 비교적 옅은 이런 민란(?)에 대해서는 처벌을 비교적 관대하게 해주려고 했습니다. 물론 민족주의 성격이 강한 반란이나 독일인 학살이 벌어지면 그건 엄벌로 일관했습니다만.

    프랑스 노동법 변경은 사실 전시경제체제 해제의 성격이 강합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선으로 가는 빵 아니 식료품의 적어도 60%는 프랑스에서 공급했는데 특히 빵은 보관문제나 벨기에군 수요 때문에 상당량을 프랑스 군납업자들이 공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전시경제라 해도 노동법이 있는 이상 근무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걸 바꾸려면 결국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3공화국 이래로 쓰이던 독립명령제도를 동원, 노동법을 바꿉니다. 한 마디로 24시간 풀가동해도 좋다는 겁니다. 전쟁에서 이겼으니 다시 평시로 바꾸어야 하는데 전후 수요가 확 줄어버리면서 회사들이 조업 시간의 제한을 통한 수요 조절을 원했고 이걸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저 노동법 개정이 나온 겁니다. 임금 부담이 전후에 꽤나 심각했으니까요. 당장 금본위제 복귀도 못 하는데 인플레이션은 아직 잡히지 않으니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부도날 회사 꽤 있었으니까요.

    • ㅇㅇ 2018.10.11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글에 좋은 댓글이네요. 지식이 늘어갑니다

    • reinhardt100 2018.10.11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공부했던 것들을 복기하는 기분으로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분석이나 컨설팅 하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제 댓글이 길어질수밖에 없는게 아무래도 복기하는 기분으로 쓰면서 확실히 생각이 정리되고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붙어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 2/28일 입대 2018.10.12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빛 소금 nasica님 reinhardt100님....

  2. PAIN 2018.10.11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랑스 사람들은 하드코어해,그들은 고통(pain)을 먹거든.(French people were hardcore,They ate Pain for lunch.)라는 언어유희 짤방이 돌아다니더군요.

    • 신구석기시대 2018.10.11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앤트맨과 와스프' 라는 영화에서, 주인공과 딸이 노는 장면에서 딸이 하는 말 'I eat fear for breakfast' 를 '나는 겁이 없어' 로 번역된 것을 봤는데요,
      비슷한 맥락에서 'They ate Pain for lunch'는 '그들은 고통을 몰라' 라고 해석을 해도 되겠군요.

  3. ㅇㅇ 2018.10.12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깝게도 요즘은 빵집에서 바게트를 내지 않더군요..ㅡㅡ;

    빵집의 실력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죠;;;;

  4. 알타리무 2018.10.13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 52시간도입으로 연봉이줄어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계가 어려워졌는데 발전이라...


    또 이런이야기하면 또 그만큼 법으로 최저임금을 올리면 되지요라고 하겠지요
    그러면 기업들이 고용을축소하거나 기업숫자가 줄어든다이야기하면

    못믿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모른척하거나
    문재인처럼 고용은 민간이 창출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라고 말하겠지요.

    왜 이왕하는거 주 한시간으로 하지 왜요.
    법으로 노동시간줄이는것이 세상이 발전하는것이라면.

    그냥 마르크시즘이라는 종교에 빠진사람인가.?
    도데체 같은 이야기를 몇번해야되는지...

    암튼 내년에 노동자를 위한각종제도가 시행되면 더 많은 기업과 자영업이 사라질것입니다. 서민들의 삶을 더더욱 망가지겠지요


    자유시장에서 자본과 노동의관계를 착취와 피착취로보고 '부자들이 고생해서 돈 벌었으니 우리도 단결하여 고생해서 부자들의 돈을 빼앗자'는 마르크스신봉하는 운동권들이 얼마나 사람들 특히 서민들의 인생을 망치는지 ...

    이웃이 아니라 자기가 자신의 가족의 삶이 망가져야 정신을 차릴것인지...

  5. 알타리무 2018.10.13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속 그렇게 남 망가뜨리는 말만 하면

    결국 신도 긍휼을 거두고

    행한데로 갚을것입니다.

    • 0_- 2018.10.13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신이 써갈기는 내용에 대해, 누군가는 동의하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겠지요. 그거야 사람 생각나름일테니까요. 하지만, 당신 댓글 보면 누구라도 확실히 동의할 만한 점이 한가지 있습니다. 글 밀도가 참 낮다는 점이에요. 이 댓글창에서 그나마 당신편이라고 할 수 있는 reinhardt100 님의 글 밀도와 본인의 글을 비교해 보세요. 스스로 부끄럽고 한심하지도 않나요?

      도대체 문단개념은 어디 팔아먹었나요? 개행을 왜 그렇게 많이 합니까? 별 의미도 없는 댓글이 화면에 차지하는 비중도 크고 지리한데 내용이 없기까지 하니 보는 사람으로서는 그저 피곤합니다. 내용은 없는데 분량은 누구보다 많아보이고 싶은 유치한 감정의 발로입니까?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건만 무슨 정의감인지 뭔지에 홀로 사로잡혀 매번 댓글스팸을 이리도 써 대는 당신입니다만, 안타깝게도 당신정도 수준의 댓글로는 아무도 설득 못해요. 대다수는 이미 당신의 댓글스팸에 염증이 생겨서 이젠 작자가 누군가 보고 그냥 거르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입니다. 당신의 같잖은 글에라도 답글달고 길게 맞장구들 치는 분들은 키배를 즐기는 분들 정도 뿐이지요.

      우리는 nasica1 님의 포스팅과 그에 관한 '건설적인' 토론을 즐기러 오는거지, 당신의 스팸댓글 쪼가리 보러 오는거 아닙니다. 자제 바랍니다. 뭐 이런다고 자제 할 사람이 아닌건 진작에 알고 있습니다만...

    • 최홍락 2018.10.13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reinhardt100님 글을 여기다 비교하면 그건 reinhardt100님에 대한 큰 모독이죠.

    • 아즈라엘 2018.10.13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아비판오지네

  6. reinhardt100 2018.10.13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숲의 문제. 이건 전 세계를 괴롭힌 문제입니다. 특히 중세 이후 이슬람권과 중앙아시아, 지나 문명을 괴롭힌 최대 이유 중 하나죠.

    17세기 이전에는 사실상 나무가 화력 에네르기의 원천이었는데 숲이 자꾸만 변경으로 후퇴하다보니 문명의 중심지에서는 연료부족이 심각해집니다. 게다가 각종 공업제품의 1차 원료 및 원자재가 나무다보니 이건 산업경쟁력에서도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서구에서 14세기 이후 내내 동방 정교권이나 이슬람권에 비해 서방 가톨릭권이 제조업 및 군사력에서 우위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목재 공급의 우위에 있었기 때문인데 결정타를 날린게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들은 시베리아 및 북아메리카에서 무한정으로 목재를 들여올 수 있게 되면서 석탄으로의 에네르기 전환을 뒷받침할 기반을 얻었다는 겁니다. 특히, 프랑스가 17세기 내내 서구권 최강국의 지위를 가진 이유가 캐나다라는 목재산지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 당시만 해도 잉글랜드는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목재보다 당장 먹고 사는게 급해서 플렌테이션에 치우쳐 있었고 주요 목재는 아일랜드를 박살내버리면서 얻고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청교도 혁명, 즉 잉글랜드 내전에서 의회파가 한 최악의 일이 아일랜드 공략전인데 이게 목재 공급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시 북아메리카 목재는 누벨 프랑스라 해서 프랑스 무역회사들이 상당부분 독점하고 있었고 발트 해의 동방 목재는 네덜란드 회사들이 자기네 영역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잉글랜드는? 장궁 만든답시고 전국의 주목을 비롯해서 목재가 거진 다 작살난 판이었죠. 이판국에 아일랜드가 왕당파가 되었으니 잘 되었다 싶어서 그대로 아일랜드 공략을 한 건데 이 때 아일랜드 주민 1/3이 죽고 일부는 서부 늪지대인 코노트나 신대륙에 계약하인형식으로 대거 쫒겨났죠. 덤으로 17세기 내내 잉글랜드의 목재 수요는 아일랜드의 숲으로 충당했고요.

    • 최홍락 2018.10.13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국의 경우 17세기 들어서 삼림의 비율이 16%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상당수의 목재 수입을 스웨덴과 러시아에서 충당을 했고, 1666년 런던 대화재 당시 시가지 재건을 위해 목재의 대부분을 노르웨이에서 수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외에도 폴란드나 덴마크로부터 막대한 목재를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북미지역을 확보한 상황일지라도 영국 정부 입장에서는 항상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덴마크 사이의 해협의 안전 확보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고 하고요.

      영국의 경우 13세기부터 석탄을 사용하였는데, 주로 난방용 연료로 이용을 했습니다. 17세기 전반에는 1세기 전 대비 석탄 소비량이 7배 이상 증가할 정도였고요.

      정작 영국의 목재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것은 난방이나 에너지 수요보다는 철의 생산에 기인하는 바가 컸습니다. 무적함대와의 전쟁 전부터 영국은 사정거리가 긴 주철을 이용한 대포를 주 무장으로 삼았는데, 이를 위해 목탄을 대량으로 소비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영국 내 목재로는 선박 건설과 주철 대포의 생산 두 개를 커버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한동안 철을 스웨덴으로부터 수입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산업 혁명 초기 코크스 제련법이 등장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하네요.

      사실 캐나다의 목재산지에서 들여오는 목재의 경우 발트해에서 수입해오는 것에 비해 수송비가 엄청나게 비싸다는 단점이 있어서 목재 구입 단가 측면으로 따진다면 프랑스보다는 영국이 더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나 합니다.

    • reinhardt100 2018.10.13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그랬군요. 제가 잘못 알았네요. ㅎㅎ

  7. 2018.10.16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2019.05.29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번역 문구 찾다가 넋놓고 다 읽었네요; 흥미로운 글입니다. 잘 봤습니다. 사족이지만 조금이라도 대단한 사람한테는 꼭 안티가 붙는 것 같네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