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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개발 이야기 (53) - 레이더, Betty, 알 카포네 그렇게 격추된 2대의 일본군 정찰기 중 최소 1대가 라바울에 미해군 기동부대 목격을 보고한 것이 확실. 왜냐하면 오후 4시 10분 경에 렉싱턴의 레이더 스코프에 렉싱턴 방향으로 날아드는 거대한 편대의 모습이 약 100km 밖 남쪽에 나타났기 때문. 길 대위는 즉각 CAP을 치고 있던 6대의 Wildcat 전투기들을 그 쪽으로 보내 요격하게 했는데, 이들은 약 20분 뒤인 4시 30분에 일본군 폭격기들을 목격하고 Tallyho를 외침. 다행인지 혹은 필연인지 이 9대의 쌍발 폭격기들은 아무런 전투기 호위를 데리고 있지 않았음. 렉싱턴이 라바울 발진 전투기들의 전투 반경에서 훨씬 더 멀리 있었기 때문. (미해군의 WW2 초기 함재 전투기인 F4F Wildcat. 이후 배치된 F6F Hellcat에 밀려났지만.. 2023. 11. 2.
새로운 전쟁의 준비 (3) - 국민방위군(Landwehr)의 실상 여기서 잠깐, 국민방위군이란 정규군에 징집될 청년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지만 중산층의 시민들이 자비로 무기와 군복을 마련하여 자발적으로 편성된 부대라고 하지 않았나요? 원래는 그랬습니다만 그건 평화시에 향토 방위 임무나 주어질 때의 이야기였습니다. 애초에 프로이센에 자비로 무기와 군복을 마련할 정도의 중산층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지만, 이제 머나먼 타향으로 떠나 무시무시한 나폴레옹군의 총검 앞에 총알받이로 뛰어들어야 할 판국인데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자원하는 중산층의 중년 남자가 많을 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편성된 국민방위군은 자원병도 아니었고 중산층도 아니었으며, 자비로 마련한 군복과 무기도 없었습니다. 현실의 이들은 그냥 누더기 같은 작업복을 입고 손에는 보병용 창을 든 .. 2023. 10. 30.
레이더 개발 이야기 (52) - USS Lexington의 실전 사례 혼란스럽고 긴박한 전투 상황에서도 명확한 메시지 전달이 되기 위해서는 메시지 자체가 짧아야 했고, 그러자면 용어가 통일되어야 했음. 그렇다고 yes 또는 no처럼 너무 짧은 단어는 통화감이 좋지 않고 자주 지직거리는 무전기에서는 오히려 제대로 안 들릴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좀더 명확한 단어가 되어야 했음. 그래서 yes나 no 대신 affirmative와 negative를 쓰기로 했음. 이 모든 무선 용어집은 미해군에서 독자 개발한 것이 아니고, 레이더 실전에서의 선배인 로열 네이비에서 작성한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 이는 향후 로열 네이비와 합동 작전을 벌일 때에도 유용하게 작용. (미군들이 무전기로 대화할 때 yes나 no 대신 affirmative, negative로 이야기하는 장면을 영화에서 많이.. 2023. 10. 26.
새로운 전쟁의 준비 (2) - 프로이센의 고민 원래 7월 20일까지였던 휴전 기간은 양측의 합의 하에 8월 10일로 연장되었고, 그때까지 평화 협정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전투가 재개되려면 6일 간의 유예기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투가 재개되는 것은 8월 17일 새벽 0시부터였습니다. 사실상 건성이었던 평화 협상에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양측은 8월 17일의 전투 재개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양측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프로이센군은 전반적으로 사기가 높은 편이라고 다들 말했습니다. 비록 뤼첸-바우첸에서 2연패를 당했으므로 4월달에 처음 출정할 때처럼 희망만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러시아군이 후퇴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무엇보다 그 무시.. 2023. 10. 23.
레이더 개발 이야기 (51) - 관제사가 항상 차분한 이유 미국이 레이더 자체는 영국과는 별도로 독자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이 레이더라는 물건을 함대 방공에 있어서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라는 점에서는 미해군은 철저하게 로열 네이비의 규범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임. 로열 네이비가 노르웨이 등지에서 피를 흘려가며 레이더 활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그보다 더 나은 전술은 더 없다고 보았기 떄문. 어떤 규범은 상식적인 것이었지만 어떤 것들은 실전 경험이 아니면 획득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음. 문답식으로 몇 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음. Q1) 각각 20대씩으로 편성된 3개 적편대가 각각 다른 방향에서 아군 함대를 노리고 날아들고 있다. 아군 전투기는 30대 뿐이다. 다음 중 어떤 요격 방식이 가장 유리할까? Option 1)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므로 아군 전투기 3.. 2023. 10. 19.
새로운 전쟁의 준비 (1) - 불만 가득한 연합군 기본적인 작전안이 합의되자, 러시아군은 약속대로 비트겐슈타인의 군단과 콘스탄틴 대공 휘하의 러시아 근위대와 예비대를 보헤미아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이센군도 클라이스트(Friedrich Graf Kleist von Nollendorf)의 제2 군단과 프로이센 근위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베르나도트가 지휘할 북방군을 편성하기 위해 러시아는 빈칭게로더의 군단을 북으로 보냈습니다. 프로이센군은 이미 북방에 주둔하고 있던 빌로의 제3 군단과 타우엔치엔의 제4 군단의 지휘권을 베르나도트에게 넘기기로 했습니다. (블뤼허도 프로이센 출신이 아니고 그나이제나우도 원래는 작센 출신이었지만, 나폴레옹보다 7살 연상이었던 클라이스트는 베를린 출신 전형적인 프로이센의 융커 귀족이었습니다. 다만 그 역시 명문가 출신은 아니.. 2023. 10. 16.
레이더 개발 이야기 (50) - 계산 연습하는 소위들 그리핀 소령의 Fighter Director Control 학교에 입교 명령을 받은 20여명의 신임 소위들은 매우 당혹스러워했음. 일단 Fighter Director Control이라는 것이 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 이들의 궁금증은 첫날 그리핀 소령이 이들에게 보안 선서를 받고 나서 설명해준 레이더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차츰 해소. 그때까지도 미군 전체에서 레이더라는 개념 자체가 군사 기밀이었던 것. 레이더 발명 이전에는 항공모함의 함재 전투기를 이용한 함대 방공의 개념이 없었나? 있긴 했는데 최소한 Fighter Director Control이라는 개념 자체는 없었음. 어차피 어느 방향에서 몇 대의 적기가 날아올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CAP (Combat Air Patrol)의 지휘는 .. 2023. 10. 12.
휴전 (15) - 두 개의 작전안 베르나도트가 연합군의 제장들을 모아놓고 밝힌 기본 작전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연합군은 보헤미아군, 슐레지엔군, 북방군의 3개군으로 구성하며, 이들은 나폴레옹이 전군을 이끌고 어느 한 방면군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협동작전을 펼친다. 2) 이를 위해 3개군은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거리 내에서 작전을 펼치도록 근접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3) 만약 나폴레옹이 어느 한 방면군을 공격한다면, 그 목표가 된 방면군은 반드시 후퇴하고 다른 두 방면군은 나폴레옹의 후방과 측면을 공격한다. 4) 3개군은 모두 결전을 피하고 적 부대의 소모를 노린다. 단, 만약 적이 분산되어 있을 경우 과감하게 공격해야 한다. 아마 나폴레옹이 이 작전안을 보았다면 식은 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결전을 추구.. 2023. 10. 9.
레이더 개발 이야기 (49) - 미해군의 준비 미해군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레이더 시스템 CXAM을 장착하고 장시간 운용해본 항모 USS Yorktown은 레이더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전투기 관제를 위해서는 이를 운용하기 위한 전문적인 인원과 함께 레이더 운용을 위한 전용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리포트를 1941년 3월에 올림. 그때까지만 해도 미해군에서는 레이더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새로운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심지어 그 운용 담당자를 장교가 아닌 부사관(chief petty officer)으로 배정했을 정도. 근데 그렇게 해놓으니 도저히 운용이 안 됨. 그 부사관들이 자기가 레이더 스코프에서 본 정보, 즉 무의미한 거리와 방위각을 아무 기준을 두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마구 전화로 보내오니 함교에 있는 고위 사관들이 .. 2023. 10. 5.
휴전 (14) - 베르나도트의 운수 좋은 날 원래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나폴레옹과의 싸움에 있어서 스웨덴의 도움이 절실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스웨덴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전장에서 승리는 결국 누가 더 많은 총검과 대포를 동원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는데,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구가 많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각각 3천만에 육박했던 프랑스와 러시아에 비하면 인구가 240만 정도에 불과했던 스웨덴은 초라한 수준의 병력만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이후 영토를 절반 이상 빼앗긴 프로이센은 인구가 975만에서 450만으로 줄어드는 봉변을 당했지만, 그래도 스웨덴의 2배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장 자신의 영토와 바로 인접한 작센에서 전투가 벌어지다 보니 일종의 .. 2023. 10. 2.
대잠전 전문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격침하라! 최근 SNS에 이상한 무늬의 의상을 테일러 스위프트의 사진에 밀덕임이 분명한 어떤 사람의 comment가 올라옴. (번역 : 테일러 스위프트의 의상 완전 좋아! 저 의상은 배경에 비친 그녀의 몸매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서 독일군 U-boat들이 그녀의 거리, 속도, 진행 방향을 계산하는데 애를 먹게 만들거든!) WW2 당시, 그리고 상당 부분은 현대전에서도, 잠수함에서 수상함으로 어뢰를 쏘는 것은 매우 살 떨리는 순간. 자동화기 쏘는 것도 아니고 딱 한 번에 2~4발을 한꺼번에 쏘는 것이니 무조건 one shot one kill을 해야 함. 잠수함이 노릴 만한 대형 군함은 홀로 다니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 내가 쏜 것이 명중하든 명중하지 않든 곧 그 호위함들이 달려들어 나에게 폭뢰를 마구 투하할 것이 .. 2023. 9. 28.
휴전 (13) - 작전이 정치에 휘둘리다 로마노프 왕가는 원래는 러시아 가문이었지만, 점차 독일계 귀족 가문과 결혼을 통해 점점 서구화되었고, 특히 독일 공작 가문 출신으로 짜르에 등극한 표트르 3세 이후로는 사실상 독일계 귀족 가문 출신 인사들이 짜르에 등극했습니다. 남편안 표트르 3세를 쫓아내고 여황이 된 예카테리나 대제도 독일에서 태어난 독일인이었지요. 나폴레옹과 자웅을 겨루던 알렉산드르 1세가 바로 그 부부의 손자였는데, 그의 어머니도 그의 아내도 모두 독일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알렉산드르는 19세 때 친구에게 자신은 아내와 함께 독일 라인 강변에 정차가여 자연 철학을 공부하며 행복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알렉산드르는 독일계 인사들을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샤른호스트의 말이라면 뭐든 다 믿고 따른 것.. 2023.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