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9 06:30

 


혼블로워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도 서둘러 끼워입은 티가 나는 모습으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재빨리 선실에 나타났다.  들어서면서 그는 초조한 듯이 선실을 둘러 보았는데, 왜 상관들이 있는 이 선실로 소환이 되었는지에 대해 불안해하며 마음 고생을 한 것이 분명했고, 그 불안함은 사실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들은 이 작전 계획이란 게 대체 뭔가 ?" 버클랜드가 물었다.  "듣자하니 요새를 습격하는 것에 대해 뭔가 제안할 것이 있다더군, 미스터 혼블로워."

혼블로워는 즉각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의 논점에 대해 정리하고 이 새로운 상황에 비추어 그의 최초 작전 계획을 재점검하고 있었다.  부시는 리나운 호의 공격 시도가 실패하는 바람에 기습이라는 초기 이점을 잃은 상황에서 그의 작전 계획에 대해서 말하라고 요청받는 것은 혼블로워에게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시가 보아하니 혼블로워는 그의 생각을 재정리하고 있었다. 

"저는 상륙 작전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함장님."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스페인놈들(Dons : 스페인 사람들을 비하하는 명칭)이 인근에 전열함이 와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이젠 가능성이 없다라는 이야기인가 ?"

버클랜드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실망이 뒤섞인 듯 했다.  안도는 그가 더 이상 뭔가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한 것이었고, 실망은 성공을 거둘 뭔가 쉬운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것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혼블로워는 이제 충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시간과 거리에 대해서도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에 그게 보였다.

"한번 시도해볼 만한 것이 있긴 합니다, 함장님.  즉각 실행하기만 한다면요."

"당장 ?"  지금은 한밤중이었고 수병들은 지친 싱태였다.  버클랜드의 목소리에는 당장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제안에 대한 놀람이 드러났다.  "오늘밤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

"오늘밤이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스페인놈들이 우리가 꼬리를 말아쥐고 후퇴하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  표현 죄송합니다, 함장님.  하지만 최소한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그들이 본 우리의 마지막 모습은 석양 무렵에 사마나 만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지요.  걔들은 아주 기분이 좋았을 겁니다.  얼마나 그럴지 잘 아실 겁니다, 함장님.  그러니 육지쪽 다른 방면으로부터 새벽에 공격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겁니다."

부시에게는 그럴 듯 하게 들렸다.  그는 그에 동조하는 작은 소리를 냈는데, 그게 이 토의에서 그가 기여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모험이었다.

"이 공격을 자네라면 어떻게 조직하겠나, 미스터 혼블로워 ?"  버클랜드가 물었다.  

혼블로워는 이제 그의 생각을 완전히 정리해놓고 있었다.  얼굴에 지친 표정이 사라지더니 이젠 열정이 빛나고 있었다.

"스캇츠맨 만을 향하기에 바람이 좋습니다.  아마 2시간 안에, 그러니까 자정 이전에 그리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도착할 때 즈음이면 상륙조를 짜서 준비시켜 놓을 시간이 충분합니다.  수병 100명과 해병들을 동원하면 됩니다.  거기에 상륙하기 좋은 해변이 있더군요.  어제 보았지요.  거기 내륙은 습지투성이일 겁니다.  반도의 언덕이 다시 시작되는 곳 이전까지는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습지의 반도쪽 측면에 상륙할 수 있습니다.  어제 그 지점을 봐놨습니다, 함장님."

"그래서 ?"

혼블로워는 거기까지 이야기해줘도 상상력을 동원해서 더 나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흠칫 깨달았다.

"상륙조는 능선까지 별 어려움 없이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함장님.  길을 잃거나 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한 쪽은 바다고 다른 쪽은 사마나 만이니까요.  그들은 능선을 따라서 전진하면 됩니다.  그러면 새벽에 요새를 습격할 수 있습니다.  습지와 절벽이 있으니 스페인놈들은 그 쪽으로는 경계를 소홀히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함장님."

"자네 말에 따르면 굉장히 쉽게 들리는군, 미스터 혼블로워.  하지만 180명이라고 ? (PS2 참조 : 역주)"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함장님."

"뭐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나 ?"

"그 요새에서 우리에게 발포한 대포는 모두 6문이었습니다.  최대로 따져 봐도 그 요새의 인원수는 아마 90명, 아마 60명이 더 맞을 겁니다.  탄약조와 가열로에서 일하는 인원을 다 합해도 150명 정도일 겁니다.  어쩌면 100명 정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들 병력 전부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

"스페인놈들은 섬의 그 쪽으로부터는 우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흑인 반란노예들과 어쩌면 프랑스군, 그리고 자메이카의 영국군에 대해 방비하고 있지요.  흑인들이 습지를 지나 그들을 공격할 이유가 없습니다.  위험이 도사라는 쪽은 사마나 만의 남쪽입니다.  스페인놈들은 머스켓 소총을 쥘 수 있는 인원은 모조리 그 쪽에 배치했을 겁니다.  그 쪽이 도시가 있는 쪽이고 그 쪽이 이 투쌩(Toussaint : 아이티의 노예 반란 지도자.  PS1 참조)인지 뭔지 하는 친구가 으르렁 대고 있는 쪽입니다, 함장님."

이 긴 말의 마지막 단어는 뒤늦게나마 운 좋게 생각해낸 덕분에 나온 것이었다.  분명히 혼블로워는 뻔한 내용을 상관에게 너무 설교하듯 지적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부시는 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나온 흑인들과 프랑스군 이야기에 버클랜드가 불편해서 몸을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시는 볼 자격이 없었던 그 비밀 명령서에는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아이티 동부입니다)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관련된 무언가 과감한 지시 사항들이 담겨있음이 틀림없었다.  산토 도밍고에서는 반란 노예들과 프랑스군과 스페인군이 서로 패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프랑스와 스페인은 형식적으로나마 동맹 관계인데도 그 지경이었다.

"우리는 이 일에서 흑인들과 프랑스군은 일단 빼지."  버클랜드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부시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놓았다.

"예, 함장님.  하지만 스페인놈들은 안 그럴 겁니다."  혼블로워는 별로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그들은 우리보다는 흑인들을 더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넨 이 공격이 성공할 것 같다는 거지 ?"  버클랜드는 화제를 바꾸려 애를 쓰며 말했다.

"그럴 것 같습니다, 함장님.  하지만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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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투쌩과 아이티(생 도밍그 = 산토 도밍고) 노예 반란 사건에 대해서는 아래 link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nasica1.tistory.com/84

(전형적인 74문짜리 3등급 전열함인 HMS Bellerophon 입니다.  2열의 포갑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PS.2  혼블로워가 '수병 100명과 해병들'이라고 말하니까 버클랜드가 '180명?'이라고 묻는 것으로 보아, 74문짜리 3등급 전열함인 리나운 호의 해병 숫자는 총 80명 정도로 보입니다.  실제로 당시 74문짜리 전열함의 총 승조원 숫자는 대략 500~650명 정도인데, 전열함에 탑승하는 해병의 숫자는 대략 포 1문당 1명 플러스 장교 숫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략 74문짜리 전열함에는 80여명이 탑승하는 것이 맞습니다.

Source : http://www.britishmedals.us/collections/GA/brad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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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4.29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편부터 다 봤는데 전투부터 분위기 까지 묘사력이 장난 아니네요 ㄷㄷ 번역 감사드립니다. 너무 재밌어요
    혼블로워의 작전이 성공할지 기대됩니다

  2. 2/28일 입대 2019.04.29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감사합니다! 여전히 흥미진진합니다! 그런데, 해병의 임무가 수병들의 통제에 있는데 인원수 기준이 수병 몇 명 당 해병 몇 명이 아니라 포 한 문당 한 명이라는게 신기하네요.

    • eithel 2019.04.29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저 시대에서는 포 수=함의 전투력=함의 크기=승조원 수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를 칭할 때 몇톤급, 몇명급이라고 하지 않고 74문짜리 전열함 같은 식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2019.04.25 06:30

 


'500일의 섬머'라는 2009년도 영화가 있습니다.  공짜를 좋아하는 저는 또 케이블 TV로 봤지요.  원래 독립 영화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Fox Searchlight Pictures가 배포를 맡아 선댄스 영화 페스티벌에서 최초 상영되었고, 의외로 좋은 평가와 인기를 끌어내어 제작비 750만불의 8배인 6천만불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사람들은 변해.  감정도 변하고.  그게 한때 나눴던 사랑이 진실되지 않았다던가 진짜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다만 그건 사람들이 성장할 때, 때로는 서로 멀어지는 방향으로 성장한다는 뜻이지.)

 

 


배트맨 시리즈 The Dark Knight Rises에서 로빈 역으로 나와서 잘 알려진 조셉 고든-레빗(Joseph Gordon-Levitt)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한줄 요약하면 잘 풀리지 않은 사랑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럴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요즘 여성 호르몬이 뿜뿜하고 있는 제게 이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고 또 작은 감동도 주었어요.  (원래 제 꿈은 회사 때려치우고 무협지를 쓰는 것이었는데, 호르몬 뿜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은 30~40대 여성들을 위한 로맨스 소설을 써볼까 생각 중입니다.  10대~20대에게는 하이틴 로맨스 시리즈가 있어서 전 안될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이 영화 시작 부분에 아래의 자막이 나오는 것을 보고 완전히 꽂혀 버렸습니다.

Any resemblance to people living or dead is purely coincidental… Especially you, Jenny Beckman… Bitch.
살았건 죽었건 어떤 사람들과 닮은 듯 하다면 그건 순전히 우연일 뿐이다.  특히 너 말이야, 제니 벡맨... ㅆ뇬.

 

 



검색을 해보니 이건 정말 이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100% 사심을 담은 문구더군요.  이 영화에서처럼 어떤 여자와 사랑 비슷한 썸을 탔다가 결국 잘 풀리지 않아서 상심이 컸던 시나리오 작가 뉴스타터(Scott Neustadter, 독일식으로는 노이슈타터겠지만 미국인이니까 아마 뉴스타터라고 읽을 듯...)는 이 여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이 시나리오를 썼다고 뉴스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출처 : https://www.dailymail.co.uk/tvshowbiz/article-1209556/500-Days-Summer-Revenge-writing-film-girl-dumped-you.html )  아마 저렇게 여자 실명을 밝혀도 되는가 라고 놀라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제니 벡맨이라는 이름이 그 여자의 실명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작가가 언급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비평가들에게서도 호평을 받았고 특히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어서 뉴스타터를 출세시켜주었고, 여친에게 차인 상심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이 인터뷰 당시 뉴스타터는 이미 다른 여친과 사귄지 2년이 되었는데, 너무나 행복하다고 자랑스럽게 (또는 누구 보라는 듯이) 밝혔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니 벡맨, 즉 예전 여친과 어떻게 또 연락이 되었나 봐요.  뉴스타터에게는 매우 실망스럽게도, 정작 제니 벡맨은 그 영화 속 여주인공인 섬머가 사실 자기 자신을 그린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마 남자 마음 속에 남아있는 예전 여친의 모습과 기억들은 실제 예전 여친과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에요.

아마 이건 상심한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든 남자든 모든 사람에게 다 동일할 것 같습니다.  사람은 원래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기억도 자기 멋대로 왜곡해서 마음 속에 저장해둡니다.  실제로 저도 와이프와 한 20년 전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의 기억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에 굉장히 놀라곤 합니다.

 

 



이 영화 속에는 주인공이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도 일부 나오기 때문에 이 영화는 제 6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남자 주인공인 고든-레빗도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고요.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제 심금을 울렸던 음악은 제가 중고등학교 때 들었던 사이먼&가펑클의 Bookends 라는 삽입곡이었습니다.  이 노래는 남녀 주인공이 이별 비슷한 것을 하는 쓸쓸한 장면에 백그라운드 음악으로 낮게 나왔는데, 그 쓸쓸한 기타 연주와 쓸쓸한 가사가 정말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중고등학교 때도 몰랐지만 (그떄는 사실 이 노래 제목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왜 이 노래 제목이 Bookends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bookends라는 것은 책상이나 선반 위에 책들을 세워놓을 때, 맨 가장자리의 책이 넘어지지 않도록 책 옆에 끼워놓는 받침대 같은 것을 뜻합니다. 


영화 장면과 함께 나오는 사이먼&가펑클의 Bookends는 아래에서 감상하세요.

https://youtu.be/ddvCWyEFqyM


Bookends (책받침 한쌍)

Time it was
And what a time it was
It was a time of innocence
A time of confidences

좋은 시절이었어요
정말 굉장한 시절이었지요
순진함의 시절이었고
자신감의 시절이었지요

Long ago, it must be
I have a photograph
Preserve your memories
They're all that's left you

아주 오래전이었을 거에요
제겐 사진이 한 장 있어요
추억을 간직하세요
당신에게 남은 건 그것 뿐이니까요

By Paul Simon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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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eiway 2019.04.25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asica 님 요즘 굉장히 감상적이신데요?
    덕분에 나폴레옹 시대사는 진도가 안나가서 아쉽기도 하고 그러네요.
    뭐든 잘 풀려서 다시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시길 바래봅니다.

    • 푸른 2019.04.27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고보니 주로 나폴레옹 시대사 보던 블로그였는데ㅋㅋ 종합블로그도 아무렴 어떱니까ㅎㅎ

  2. 이슬람극단주의 2019.04.25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는 하찮은데 저런데 감정을 소모하다니 시나리오 작가도 참...

  3. 2019.04.25 1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유애경 2019.04.26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말이 있더군요. '남녀가 이별하고 나면 남자에겐 여자의 좋았던 것들만 기억에남고 여자에겐 남자의 안좋았던 기억들만 남기 때문에 이별후에 여자는 금방 다른 사람을 사랑할수 있지만 남자는 반대로 헤어진 여자에게 언제까지고 미련을 둔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닙니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것 같은데, 그래서 남자는 로맨틱하고 여자는 현실적이다라는 말을 듣는지도요...

    뉴스타터의 복수극(?)은 뭔가 귀여운데가 있네요^_^.

  5. 2/28일 입대 2019.04.29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요! 피 냄새와 화약 연기가 두꺼운 나폴레옹 전쟁사도 좋습니다만(물론, 제가 전열에 서 있는 건 아니니까요ㅎㅎ), 감성미 뿜뿜하는 나시카님 글도 너무 좋아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작이 있는 것과 같이 끝도 있다는 내용이 요즘 더 간절하게 다가오네요. 상심한 마음을 빛바랜 추억으로 간직하고, 또 다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메세지가 참 좋아요. 저런 갬성(감성이 표준어지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별이 칼부림으로 끝나는 끔찍한 일들은 없어지지 않으려나요...

    인간 사회라는 정밀시계에 갬성이라는 윤활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딱히 갬성파 인간은 못 되지만, 여기 와서 갬성충전을 하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6. TheK2017 2019.05.04 0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게 북엔즈인 까닭은.
    전적으로 제 생각에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이 그러한 사랑으로 인한 추억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북엔즈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디.
    평소에도 그런 생각 많이 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더 하는 것 같답니다. ^ㅇ^*

2019.04.22 06:30



제7장

만신창이가 된 리나운 호에 열대의 밤이 잦아들었을 때, 리나운 호는 바닷바람에 더해 무역풍이 보내온 대서양의 파도를 간신히 이물로 가를 정도로 느슨하게 돛을 펼친 채 육지로부터 떨어진 곳을 항진하고 있었다.  버클랜드는 그의 새 선임부관, 즉 부시와 함께 앉아 현 상황을 초조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미풍이 불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선실은 마치 오븐처럼 무더웠다.  탁자 위의 해도를 비추기 위해 갑판 대들보에 매달아 놓은 2개의 등불이 방 전체를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달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시는 제복 밑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목칼라(stock)가 그의 두꺼운 목을 옥죄었기 때문에 가끔씩 손가락 두개를 칼라에 넣어 잡아당기곤 했지만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냥 그의 무거운 제복을 벗어던지고 목칼라의 후크를 풀어버리면 아주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지만, 그래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몸이 좀 불편한 것 정도는 이 험한 세상에서 불평없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  습관과 긍지가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 자넨 우리가 자메이카 방향으로 항진해야 한다고 보나 ?" 버클랜드가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부시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결정의 책임은 버클랜드의 것이었다.  해군 규정상 전적으로 버클랜드의 것이었다.  부시는 버클랜드가 그 책임을 나누려고 하는 것에 약간 짜증이 났다.  

"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있나 ?"  버클랜드가 말했다.  "자네 의견은 무엇인가 ?"

부시는 혼블로워가 그에게 묘사해주었던 작전 계획이 기억났지만 그걸 즉각 내놓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 속에서 그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현실성 있는 계획인지도 확신이 없었다.   대신 그는 확답을 미루었다.

"자메이카로 향한다면 꼬리를 말아쥐고 후퇴하는 모양새가 될 겁니다, 함장님."

"그건 확실히 그렇지." 버클랜드는 어쩔 수 없다는 손짓을 하며 동의했다.  "함장님 문제도 있쟎나."

"예, 함장님 문제가 있지요" 부시가 말했다.   (역주 : 버클랜드는 임시 함장이고, 진짜 함장인 소여(Sawyer)는 정신착란을 일으켜 현재 연금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만약 리나운 호가 킹스턴(Kingston, 자메이카의 수도)의 제독에게 굉장한 승전 보고서를 가지고 간다면 과거 일에 대해서 아주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두들겨 맞은 몰골로 패배의 멍에를 쓴 채 절뚝이며 기어들어간다면, 왜 함장이 구속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왜 버클랜드가 함장 대신 비밀 명령을 개봉했으며, 왜 버클랜드 본인이 사마나에 대한 공격 감행을 결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취조가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젊은 혼블로워도 같은 이야기를 내게 하더군." 버클랜드는 심통을 부리며 불평했다.  "그 친구 이야기를 안 듣는 건데 그랬어."

"그 친구에게 무엇을 물어보셨습니까, 함장님 ?" 부시가 물었다.

"음, 그 친구에게 뭘 딱히 물었다고 할 수는 없네." 버클랜드는 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냥 어느날 저녁에 선미갑판에서 함께 긴 이야기를 했을 뿐이야.  그 친구가 그때 당직이었거든."

"저도 기억납니다, 함장님."  부시가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우린 이야기를 했지.  그 지긋지긋한 건방진 애송이가 자네가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하더군.  그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  하지만 그러다가 안티구아(Antigua)로 가는 것에 대한 질문이 나왔지.  혼블로워는 우리가 함장에 대한 조사를 받기 전에 뭔가 전과를 쟁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더군.  그 친구 말로는 그게 내게는 기회가 된다는 거였어.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어.  굉장한 기회였지.  하지만 자네도 혼블로워가 떠들어대는 것을 듣다보면 내가 당장 내일 정식 함장으로 승진할 거라고 생각하게 될 걸세.  하지만 지금 이 꼴은 ?"

버클랜드의 몸짓을 보니 이제 그가 함장으로 승진할 기회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시는 버클랜드가 써야 할 보고서에 대해 생각했다.  9명 사망에 20명 부상.  리나운 호의 공격은 처참하게 좌절.  사마나 만은 스페인 사략선들에게 어느 때보다 안전한 피난처 역할을 계속.  그는 자신이 버클랜드의 자리에 있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도 똑같은 오명을 뒤집어 쓸 중대한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가 이젠 선임부관인데다, 다른 건 몰라도 소여(Sawyer) 함장에게서 지휘권을 박탈하는데 동의한 장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나중에 상관들의 눈에 어떤 쓸만한 점이라도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승리가 필요했다.

"젠장." 버클랜드가 한심한 자기 방어조로 이야기했다.  "우린 최선을 다했다구.  그 수로에서는 누구라도 좌초될 수 있었어.  하필 키잡이가 전사한 것이 우리 잘못은 아니었쟎아.  그 십자포화 속에서는 누구도 그 만에 접근할 수가 없었어."

"혼블로워는 바다쪽으로의 상륙을 제안했었습니다.  스캇츠맨 만에서요, 함장님."  부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또 혼블로워의 제안인가 ?" 버클랜드가 말했다.

"제 생각에는 그게 그 친구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계획인 것 같습니다.  상륙해서 기습하는 것 말입니다."

어쩌면 공격 시도가 실패했기 때문인지도 몰랐지만, 이제서야 부시의 머리 속에 시뻘겋게 달궈진 가열탄이 날아들 수 있는 상황으로 목조 전함을 몰고 들어간 것이 얼마나 바보짓이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

"글쎄요, 함장님 ?"

부시는 자기가 생각한 것에 대해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번 실패했다면 두번 실패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양을 훔치고 교수형을 당하나 새끼양을 훔치고 교수형을 당하나 마찬가지였다.  부시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난관에 부딪혔다고 꽁무니를 빼는 것은 그의 성격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번 밀려났다고 얌전히 후퇴하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어려운 문제는 작전을 새로 짜는 일이었다.  그는 이런 모든 것에 대해 버클랜드에게 이야기하려 했는데, 내친 김에 조심성을 걷어내버리고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버렸다.

"알겠네."  버클렌드가 말했다.  그네처럼 흔들리는 등불빛 때문에 그의 얼굴에 펼쳐지는 그늘이, 그의 내면의 고민을 얼굴에 더 잘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마음을 다잡고 결정을 내렸다.

"그 친구 뭐라고 할지 이야기를 들어보세."

"예, 함장님.  스미스가 현재 당직입니다.  혼블로워가 중간 당직이니, 아마 지금 막 잠자리에 들었을 겁니다."

버클랜드는 전함의 모든 사람들처럼 똑같이 지친 상태였다.  아니, 그 누구보다 더 지친 상태였을 것이다.  그의 상관들이 이렇게 초조하게 번민하며 밤을 새고 있는데 혼블로워가 그의 침상에 편히 몸을 뻗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버클랜드로 하여금 평소와는 달리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각 행동하도록 한 것 같았다.  

"그에게 전갈해서 오라고 하게."  그가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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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암 2019.04.29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장 생활의 고뇌를 엿보는거 같아 흥미롭습니다.
    실무자때는 윗자리가 편해보였는데 중간 관리자가 되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과 문화, 가치관이 변한 것도 한 이유지만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긴또깡 2019.05.30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 잘하시는듯 ㅎㅎ 재미있네요

2019.04.18 06:30



제가 즐겨읽던 Aubrey-Maturin 시리즈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해군을 배경으로 한 무용담 소설로서, 그 주인공 이름이 Jack Aubrey입니다.  여러분은 Aubrey라는 이름이 남자 이름 같습니까, 여자 이름 같습니까 ?  생각해보면 유럽 계통의 모든 family name은 다 남자 이름입니다.  한번도 여성스러운, 가령 Elizabeth나 Jessica 같은 이름이 family name으로 쓰이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 것을 보면 분명히 Aubrey는 남자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건 현대 영미권 사람들에게도 좀 헷갈리는 문제인가 봐요.  구글에 'Is aubrey male' 까지만 써도 "is aubrey a male or female name"라는 문장이 자동 제시됩니다.  그리고 그 검색 결과를 보면 '남자 이름이다 여자 이름이다' 라고 영미권 사람들끼리도 싸우더라고요.

그런데 분명히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Aubrey는 부동의 남자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래 한곡이 그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1972년 소프트 락 그룹인 'Bread'가 발표한 'Aubrey'라는 노래였지요.  이건 대단한 히트곡은 아니라서, 빌보드 차트 100위 안에 11주 동안 머물렀고 최고 순위가 15위 정도에 불과했어요.  그러나 무척 감미로운 가사와 멜로디 때문에 지금도 사랑받는 노래이지요.  이 노래에서도 '그녀 이름은 오브리였어 평범한 이름도 평범한 여자도 아니었지' 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노래 덕분에, 이후로 여자 이름을 Aubrey라고 짓는 것이 대유행했고, 결국 이후로는 Aubrey가 남자 이름으로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원래 이 곡은 Bread의 리더인 David Gates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의 오드리 햅번을 보고 지은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Audrey를 그대로 쓰기 좀 그러니 가사 속 여자의 이름을 Aubrey로 바꾼 것이지요.  

 

 



사실 이 노래는 남녀 이름 구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즘 말로 한줄 요약하면 '썸만 타고 이루어지지는 못했던 상대'에 대한 노래에요.  그러나 그렇게 요약하니 정말 몰상식해보이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회한을 노래로 만든 것입니다.  정말 감미로운 노래에요.

노래 감상은 아래에서 하세요.

https://youtu.be/kqXek853SDE



And Aubrey was her name
A not so very ordinary girl or name.
But who's to blame?

그리고 그녀 이름은 오브리였어
이름도 여자도 평범하지는 않았지
하지만 그게 누구 잘못이람 ?

For a love that wouldn't bloom
For the hearts that never played in tune.
Like a lovely melody that everyone can sing
Take away the words that rhyme it doesn't mean a thing.

꽃피우지 못한 사랑에게
서로 박자가 맞지 않은 마음들에게
그건 마치 누구나 아는 아름다운 멜로디같지만
운율이 되는 단어를 빼면 아무 뜻도 없는 가사가 되는 것 같은 거야

And Aubrey was her name.
We tripped the light and danced together to the moon
But where was June.

그리고 그녀 이름은 오브리였어
우리는 불을 켜고 달빛에 맟춰 춤을 추었지
하지만 유월은 어디에 있었지 ?

No it never came around.
If it did it never made a sound
Maybe I was absent or was listening too fast
Catching all the words, but then the meaning going past

아니야 유월은 온 적이 없었어
왔었다면 기척도 내지 않았던 거지 
어쩌면 내가 정신이 팔려 있었거나 건성으로 들었나봐
단어들은 다 들었지만 그 문장의 뜻은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말이야

But God I miss the girl
And I'd go a thousand times around the world just to be
Closer to her than to me.

하지만 아 정말 그녀가 그리워
이 세상을 천바퀴 돌아서라도
나보다는 그녀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어

And Aubrey was her name
I never knew her, but I loved her just the same
I loved her name.

그리고 그녀 이름은 오브리였어
난 그녀를 알지 못했어 그래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지
난 그 이름이 좋았어

Wish that I had found the way
And the reasons that would make her stay.
I have learned to lead a life apart from all the rest.
If I can't have the one I want, I'll do without the best.

내가 그럴 방법을 어떻게든 찾았다면 좋았겠지
그녀가 떠나지 않도록 설득할 이유도 함께 말이야
난 혼자서 살 방법을 배웠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어

But how I miss the girl
And I'd go a million times around the world just to say
She had been mine for a day.

그래도 정말 그녀가 그리워
이 세상을 백만번 돌아서라도
그녀가 하루 동안만이라도 내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해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Aubrey
https://www.gpeters.com/names/baby-names.php?name=Aubrey
https://www.mumsnet.com/Talk/baby_names/3198664-is-aubrey-a-girls-or-boys-name
https://en.wikipedia.org/wiki/Aubrey_(song)

 

Aubrey (song) - Wikipedia

"Aubrey" is a song written and composed by David Gates, and originally recorded by the soft rock group Bread, of which Gates was the leader and primary music producer. It appeared on Bread's 1972 album Guitar Man. The single lasted 11 weeks on the Billboar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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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애경 2019.04.18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Bread의 곡은 IF밖에 아는게 없었네요.
    물론 같은 가수가 부르니까 그렇겠지만 곡의 분위기는 비슷한것 같애요.
    이루어지지 못한 지나간 사랑은 언제 떠올려도 아련하고 애절해지지요. 정말 목소리가 감미롭게 들립니다.

  2. Spitfire 2019.04.19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이름이 성으로 쓰이는 예는 희박하긴 하지만 전혀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Jane이나 Santana 같은 성이 있긴 합니다. 러시아쪽은 성을 아버지 이름을 따르긴 하지만 여성형으로 끝나게 되구요.

  3. terzeron 2019.04.23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in tune의 번역은 "박자가 맞지 않은"보다는 "음이 맞지 않은" 또는 "조율되지 않은" 정도의 의미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2019.04.15 12:45



최근 어떤 모임에서 디도서 2장을 읽었습니다.  기분이 확 상하는 부분이 있더군요.  

(딛 2: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딛 2: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
(딛 2: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건 예수님의 말씀은 아니고 바울이 크레테 섬의 기독교 지도자 티투스(Titus,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순혈주의를 지향했던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로마 제국 내의 비유대인들에 대한 전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이고, 그의 서신이 신약성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기독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베드로 등 예수님의 12사도들은 대부분 어부 등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서 학식이 깊지 않았으나, 바울은 어려서부터 수재 소리를 듣던 바리새인 엘리트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의 서신과 이론이 높게 평가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기독교를 예수님과 바울의 공저 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12사도 안에 들기는 커녕 한번도 예수님 생전 모습을 뵌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위 미켈란젤로 그림에서도 묘사된 그 유명한 다마스쿠스적 개종을 겪었으니 베드로급의 인물이라 할 수 있지요.)

 



바울은 세속 권력에 대해 매우 순응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세상 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는 엘리트답게, 당시 로마제국의 권력에 대항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기독교 사회는 물론 전세계에서 악용이 되풀이되는 아래 로마서 13장의 문구도 남겼습니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롬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마찬가지로, 디도서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말은 그 특정 구절만 딱 떼어 사용되면 악용되기 매우 쉽습니다.  바울이 저런 말을 편지에 쓴 이유는 사실 디도서 2장 5절 뒷부분에도 잘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딛 2:6)"

즉, 당시 막 태동하고 있던 기독교 커뮤니티는 신흥 종교가 대부분 그렇듯이 기존 사회에서 많은 의심과 질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고 가난한 자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논리는 당시 기존 사회 질서에 크게 위협이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장 교회의 안정과 교세의 확장이 최우선이었던 바울로서는 그런 주변의 의심과 질시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비기독교 사회로부터 '기독교인들은 위아래도 없다더라, 기독교인들은 제국의 권력에 도전한다더라, 기독교를 믿으면 여자들이 건방져지고 노예들이 달아난다더라' 라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저런 '당시 사회에 맞는 행동지침'을 내린 것에 불과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  노예제도는 하나님도 인정한 것이니 노예는 절대 해방을 꿈꾸지 말고 무조건 주인에게 복종하라 ?  다 말도 안되는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바울이 21세기 뉴욕에서 기독교의 터전을 닦고 있었다면, 저 구절은 틀림없이 아래와 같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평등함을 믿고 서로 도우며 사랑하고
노동자와 자본가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생을 위해 애쓰며"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힘으로 한글자한글자 그대로 받아적은 성경의 말씀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말이냐?' 라며 반발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선지국을 먹으면 자손까지 멸종시키겠다라던가, 혼외정사를 하면 돌로 쳐죽인다든가 하는 것이 현대 상황에서 맞는 이야기이겠습니까 ?  실제로 모세의 율법에는 이혼이 허락되었지만, 예수님은 '그건 그때 상황에 따른 율법이었고...'라면서 이젠 이혼 안된다 라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카톨릭에서 낙태는 물론 피임도구까지 금지하는 것은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낙태죄에 대해서는 개신교에서도 그 폐지에 대해 반발이 심한 모양이던데, 그렇게 도덕적이신 분들이 성경에는 일언반구도 안 나오는 낙태에 대해서는 강경하시고, 돌로 쳐죽이라고 명백하게 나온 목사님 간통에 대해서는 어흠어흠하며 어물쩍 넘어가시는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씌여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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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4.15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울이 서간에 쓴 "그리스도를 믿는다"의 '믿는다'라는 그리스어 Pistis는 단순히 성경의 글귀나 예수님의 말씀 중 하나 혹은 예수께서 구원자라는 명제를 사실이라고 믿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삶의 방식의 총체적인 변화,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것,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맡기고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있는 것처럼 사는 것, 이 모든 것을 의미했죠. 예수님의 가르침을 하나의 총체적인 삶의 방식에서 단순히 성경에 기록된 글귀 한 줄로 격하시키고 한정시키는 이들을 보면 그들이 스스로 공언하는 것처럼 말씀이신 예수님이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서 강생하셨다고 믿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성경이란 제목의 율법 문자 뭉치 하나를 내려보내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많죠.

  2. keiway 2019.04.15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경의 글자 한 자 한 자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것 처럼 바보스러운 일이 있을까요.
    예수님이 직접 쓰신 글이 아니고, 사람에 의해 구전되었으며, 사람에 의해 번역된 책이 말이죠.
    그런 글의 전체도 아니고 일부만 따서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자들이야 말로 신앙의 적입니다.

  3. 세이예 2019.04.15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멘

  4. reinhardt100 2019.04.15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퇴근하면서 간만에 새로운 글이 올라온걸 확인했습니다. 초과근무 100시간은 기본인 분야에서 지치고 피곤하지만 한 줄기 감로수같은 새 글이 올라온거 보고 피로가 풀리네요.

    낙태죄는 솔직히 합헌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왕 낙태를 합법화할거면 거액의 세금을 물려야한다는게 제 개인의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잠재적 경제성장률 및 병력자원 확보와도 직결되니까요.

    • 최홍락 2019.04.16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잠재경제성장률 및 병력자원확보가 문제는 결국 낙태와
      출산율이 유의미한 영향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한것같은데 전세계 데이타를 비교해봐도 합계출산율과 낙태율과 뚜렷한 차이가 있는것도 아니고 폴란드의 경우 세차례나 낙태 규정을 강화했지만 출산율은 계속 감소했다고 하죠. 뉴질랜드의 경우 낙태허용기준을 엄격히 제한함에도 불구하고
      낙태율은 18.2%를 기록해 그를 허용하는 다른 국가들보다 현저히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낙태 처벌과 낙태율간의 상관관계조차 낮다는 얘기가 되고요.

      낙태에 세금을 물린다면 세금은 여자가 부담해야 할지, 아님 남자를 찾아서 부담해야 할지, 아님 시술한 의사에게 부과해야 할지 문제가 있겠네요. 기존의 낙태죄대로라면 여성과 의사에 세금을 부과해야한다는 얘기인데 이런 세금의 신설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태아의 자기결정권이냐 산모의 자유권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잠재성장률의 문제로 이걸 보는게 맞는건지도 의문이고요. 자본주의의 발전과 잠재성장의 제고가 경제활동을 비롯한 인간 전체의 자유의 신장을 통한 성장에서 기반한 것이어야 하는데 이건 낙태 규제로 이걸 풀어보자는건 공산정권의 루마니아에서 봤던것과 비슷해보여서ᆢ

    • keiway 2019.04.16 1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거액의 세금이라면.. 피임을 잘 못한 죄인가요?
      그러고보니 피임도구에도 거액의 세금을 물려야 할 것 같네요.
      딩크세나 비혼세도 필요할 듯 하고..

      약간 비꼬는 것 처럼 되어서 죄송합니다만, 출산을 국가 자원 확보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고,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애 낳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쪽이 아니라 애 안 낳는 것을 금지하는 쪽으로 가는게 맞는지는 더욱 의문이네요.

    • 이슬람극단주의 2019.04.16 2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ㄴ말씀을 제대로 합시다, 원댓글 작성자의 말씀은 세금을 애 안낳는데 물리자는게 아니라 생긴 애를 떨구는데 물리자는 건데요. 같은게 아니죠

    • 최홍락 2019.04.16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초에 원 댓글에서 병력자원확보를 위해 낙태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건데 그럼 똑같이 병력자원 감소를
      가져올 비혼이나 딩크족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밀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는 말이 그렇거밖에 해석이 안되는지ㅉㅉ 암캐 운운하는 인간들은 국어 해석이 끝물이라는건 뭐 투말 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죠. ^^

    • reinhardt100 2019.04.16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 이거야 별 생각 없이 썼는데 예상 외로 댓글이 달려있어서 놀랐네요.

      최홍락)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이 한 거? 맞습니다. 다만, 제 생각은 지금 워낙 비상상황이니 이런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안전권적 기본권이 자유권적 기본권보다는 우선이니까요. 일단 자유의 신장을 하는거 저도 당연히 동의합니다. 다만, 신장된 자유를 바탕으로 경제활동을 할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건 어떤 논문에서 보고 제가 결론 내린건데 단독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 '이혼을 하지 않고 평생 해로한다'는 전제하 부부가 같이 부를 축적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논문 출처가 기억이 안나서 아쉽습니다.

      Keiway) 출산을 국가 자원 관리 차원에서 봐야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일종의 국민의 의무, 그 중에서도 여성의 의무라고 봐야 합니다. 관습헌법이란거 괜히 만든거 아닙니다. 언제든지 쓰라고 만든 겁니다. 국방의 의무를 엄밀히 말하면 남녀 모두 부담합니다. 다만 비용 문제로 여자는 직접 부담하지 않는거죠. 이런 논리도 도출 가능합니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출산과 양육을 통한 일정 수준 이상의 병력자원을 산출함으로써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 식으로요. 물론 좀 비약적인 논리지만요.

      이슬람극단주의) 네 맞습니다. 애 안 낳는데 세금 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불임부부들에게는 불리한 과세베이스를 형성하는 것이니까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재판 들어가면 당장 위헌결정 맞을 겁니다. 다만 낙태를 꼭 할 필요가 없는데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써 가장 효율적인 것은 조세부과라 생각한 겁니다. 거기에 내국인 노동력 자원 확보 및 병력자원 확보의 수단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 수비니우스 2019.04.16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출산을 국가 자원 관리 차원에서 봐야 하는게 맞다고 본다고 하시니 16년 말에 행자부에서 만든 출산지도가 생각나네요. 낙태에 거액의 세금을 물리는 정책이 만약 시행된다면 헌재에서 위헌 받을것 같습니다.

    • 최홍락 2019.04.17 0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reunhardt100>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이 비상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은 둘째치고,

      안전권적 기본권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해야 하는지 의문인데, 이 경우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긴급한 경우를 상정해야 하는 것 아닌지요? 안전권적 기본권을 그렇게 넓게 해석하실 거면 낙태 문제 해결을 위해 대통령이 계엄이나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해도 된다는 얘기인건지...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별 희한한 근거로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국회를 우회하는 걸 보면 말씀하신 것은 그냥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이 아닌 꼼수 정도로 비춰질 수 밖에 없을텐데요. 관습헌법이라는 개념을 끌어다쓴 것도 그렇고 국민의 의무 중에 출산의 의무를 임의로 만든것도 그렇고ᆢ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할 문제를 꼼수로 돌파하려는게 제대로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나요?

      경제활동을 할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러면 한국은 경제활동 가능한 사람들을 제대로 쓰고 있느냐고 반문할 수 밖에 없네요. 지금 현재까지 한국이 고용률을 70%를 넘어간 적이 있었는지요. 이런 고용률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여성 고용률의 경우는 50%를 넘어간 것이 최근에 와서야 가능해진 상황인데 말이죠. 인구 감소 걱정 이전에 있는 노동력 관리부터 제대로 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문제를 과도하게 생각해서 큰일났다, 뭐라도 해야한다 라고만 생각해서 자칫 엉뚱한 방법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문제 해결에 있어 획기적인 방법, 즉 왕도는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얘기죠.

      이 얘기가 하루 이틀 나왔던 얘기도 아니고, 미국과 유럽이 취해왔던 대안들에 대한 얘기도, 진지한 고민들도 많이 나왔는데 그런 대안들이 충분히 고민된 다음에 비상적인 방법이 나오는 것이지, 현재는 기존의 사례들을 바탕으로 문제에 대한 성숙한 논의조차 이뤄졌는지도 의문입니다.

    • Spitfire 2019.04.18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출산이 병역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인정하지만 낙태의 합법화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헌재결정 직전까지도 낙태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왔고, 사실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햐면 애를 키우냐 지우냐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양육의지이지, 법에 의한 처벌을 걱정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 의견은 낙태 합헌 결정은 오히려 여성의 인권에 크게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입장입니다. 우선 낙태가 합헌이 되면 공식적인 의료서비스를 받게 되고 그렇게되면 낙태여부가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게 됩니다. 보험이라도 적용받는다면 더더욱 그렇게 되겠지요. 사회여론이 바뀌어 낙태여성을 삐딱하게 보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야 상관없겠지만 현재의 민심 하에서는 여전히 몰래몰래 받는 것을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남성들이 성관계로 임신을 시키고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돈주고 낙태시키면 되니까요.. 이문제는 세번째 문제로 연결되는데, 여성들도 굳이 피임문제로 조심조심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남자도 정관수술 따위는 받을 필요가 없어지지요. 의사들의 돈벌이를 위해서라도 그런 분위기가 조장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10대들의 성관계도 이제는 놀라운 일이 되지 않을 거구요. 마지막으로, 낙태 합법화가 여성의 성해방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남자 입장에선 고마울 따름입니다. 남성이 짊어진 책임이라는 큰 굴레를 벗고 진정한 평등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요. 물론 저는 어렵겠지만 젊은 청년들은 그 혜택을 오롯이 누리겠지요.ㅎㅎ

      출산율 확보와 병력자원을 포괄하는 국가인적자원의 확보 문제는 어렵겠지만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저는 출산율 증가와 이민자 수용 두가지 방법이 기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방법으로는 혼외자녀 허용, 다둥이에 파격적 혜택(등록금 면제, 대학특별전형, 음서제도 등), 빈부격차 확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엉뚱하게도 빈부격차가 해결책이 될 수 있는게, 경제사정이 부유한 가정과 빈곤한 가정 양극단에서 많은 자녀를 가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병력자원을 주로 빈곤층에서 보충하고 있구요. 한국사회가 남과 비교하고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예 격차를 더욱 벌려서 그런생각 자체를 못하게 하는 방법을 써보는건 어떨까 합니다.
      그게 어려우면 이민자를 수용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민족이 있지, 인구가 없는데 국가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앞으로 출산율이 제고되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해결책은 이것 뿐이 되겠지요. 그게 싫다면 온갖 기상천외한 정책을 쓰는 수 밖에 없는거구요...

  5. 유애경 2019.04.16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경 어디쯤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성서에있는 말씀을 한자라도 빼거나 더하면 그것도 아주 큰죄라고 하는 구절이 있죠.
    성경에 있는 말씀은 무조건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교회에서도 가르치고 있고 그렇게 믿었었는데 이번글을 통해서 모순점을 잘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교회를 떠난지 한참 됬는데 나시카님 한테서 오히려 명설교 (?)를 들은 기분입니다!

  6. 이슬람극단주의자 2019.04.16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암탉이 울면 뭐든 망하고 암캐가 들끓으면 그 사업이 끝물이란건 뭐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죠. ^^

  7. 취사병 토마토 2019.04.19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tena02&logNo=221283219115&referrerCode=0&searchKeyword=%EB%82%99%ED%83%9C

    링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낙태법은 남아선호사상이 강할때 많은 여아들이 자꾸 낙태되자 제정한 법이라고 하네요.

  8. 취사병 토마토 2019.04.19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낙태법이란 과거 남아 선호 사상이 만연하던 시기에 비정상적인 낙태를 막기 위하여 제정된 법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1990년대만 해도 여자가 시집 와서 그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죄인이 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고보면 대한민국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바뀐 것도 많다.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지금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종교계에서 자신들의 윤리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엄중히 가로막고 있다. ~

    링크에서 발췌했습니다.남아선호사상 자체가 엉향력을 상실하면서,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여아 낙태 문제가 거의 없어지다시피한 2010넌대 후반에는 확실히 계속 유지될 이유가 딱히 없다고 봅니다.

  9. ㅋㅋ 2019.04.20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교얘기는 뜬금없지만 숭산스님께 어떤 아내분이 물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죠’
    빙긋이 웃고 있는 아내 옆에서 남편이 뒤따라 물었답니다.
    ‘아내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남편의 말을 잘 들어야 하오.’
    남편도 빙긋이 웃으면서 또 물었답니다.
    ‘그럼 스님은 누구 말을 들어야하나요?’
    ‘부처님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이미 사천년전에 돌아가셨지. 그래서 난 자유라네.’
    다같이 웃으면서 대화가 끝났다고 합니다.

    글을 읽고 댓글을 보다보나 이 얘기가 생각이 나네요. 남편은 아내 말을 아내는 남편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10. 아하 2019.04.25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천년 전에 말씀이라고 생각해야죠.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을 버리는 게 좋습니다

  11. 낙타 2019.04.28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년만에 와봤는데 댓글들이 한결같네요 ㅎㅎ

  12. 1212 2019.05.08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황에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상황을 해석해야 겠지요
    글쓴님의 가장 큰 오류라 보입니다.

2019.04.15 06:30




더 이상 육풍이 불 때도 아니라고 부시는 생각했다.  버클랜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언덕 위의 요새에서 날아온 포탄 하나가 주돛대 삭구 고정판(the main chains)에 우지끈하고 박히면서 나무 파편이 비처럼 뿌려졌다.  화재 진압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소리를 들으며 버클랜드는 뼈아픈 결정을 내렸다.

"스프링 닻줄을 잡아당기게."  그는 명령을 내렸다. "바다를 향하도록 함수를 돌리게."

"예, 함장님."

후퇴 ?  패배.  그 명령이 뜻하는 바가 바로 그거였다.  하지만 패배라는 현실을 직면해야 했다.  그 명령을 내린 뒤에도 당장 전함이 처한 위험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았다.  부시는 돌아서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거기,  캡스턴 돌리는 거 중지 !"

톱니멈춤쇠의 철컹거리는 소리가 멎었고 리나운 호는 만 내의 물결치는 진흙투성이 바닷물 위에서 물결을 따라 자유롭게 떠다녔다.  후퇴를 위해서 리나운 호는 그 좁은 공간에서 180도 선회를 한 뒤 탁 트인 바다를 향해 좁은 수를 비집고 나와야 했다.  다행히도 그를 위한 준비는 이미 되어 있었다.  닻과 닻줄 구멍 사이에 느슨하게 놓여있던 이물 닻줄을 잡아당기면 전함을 회전시킬 수 있었다. 

"고물 닻줄의 메신저 밧줄을 벗겨내라 !"

명령들은 신속하고 능숙하게 처리되었다.  사실 늘상 하는 뱃사람 일이었에 불과했다.  다만 이 일들을 시뻘겋게 달궈진 가열탄을 뒤집어 써가며 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이긴 했다.  아직 보트들은 수병들을 잔뜩 태운 채 떠있었는데, 이건 만약 아슬아슬하게 부는 미풍이 그쳐버릴 경우 만신창이가 된 전함을 요새 포대의 사정거리 밖으로 끌고 나가기 위함이었다.  이물 닻줄에 캡스턴이 연결되어 당겨지기 시작하자 리나운 호의 이물이 선회하기 시작했다.    비록 바람은 더위먹어 지친 듯 죽어가고 있었지만 전함의 움직임은 분명히 느껴졌다.  하지만 패배의 충격과 저 빌어먹을 요새 포대에 대해 생각을 하자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캡스턴의 힘으로 전함을 닻 쪽으로 끌고 가는 중에도, 이 전함을 그냥 놀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부시에게 퍼뜩 들었다.  그는 다시 버클랜드에게 경례를 했다.

"만 아래 쪽으로 전함을 끌고 갈까요, 함장님 ?"  (Shall I warp her down the bay, sir?  PS1 참조 : 역주)

버클랜드는 나침함(binnacle) 옆에서 요새 쪽을 멍하니 쳐다보며 서있었다.  이건 신체적인 용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했다.  다만 패배의 충격과 그 이후에 대한 생각이 이 사내에게서 논리적인 생각을 할 능력을 잠시 동안 빼앗은 것이었다.  하지만 부시의 질문이 다시 그를 현상황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래."  버클랜드가 말했고, 부시는 뭔가 쓸모 있는 할 일이 생겼고 또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섰다.



(원래 cockbill 이라는 단어는 돛 가로활대를 저렇게 비스듬히 매달아두는 것을 말합니다.  저건 하역의 편의 또는 배 전체가 조문 중이라는 표시입니다.)


(닻에 대해서도 cockbill 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건 닻걸이(cathead)에 닻이 매달리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닻을 던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닻 하나를 이물 좌현에 던질 준비를 하고(be cockbilled) 닻줄도 하나 더 꺼내와야 했다.  로버츠가 전사한 이후 보트들의 지휘를 맡게 된 제임스에게 소리를 쳐서 새로운 진행 상황에 대해 말해주고 이물 아래 편으로 부른 뒤에 닻을 론치 보트에 내려 보내도록 했다.  이게 전체 작업 중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었다.  이 작업을 마치고는 론치 보트의 선원들이 앞으로 노를 저어갔다.  보트는 뒤에 매달린 거북스러운 닻의 무게 때문에 뒤집힐 듯 기울어 있었고 닻줄이 보트 고물 쪽에서 계속 풀려나가고 있었다.  캡스턴이 단조롭게 돌아가면서 리나운 호는 첫번째 닻에 의지해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고, 그 닻줄이 거의 수직이 될 정도로 접근하자, 이제는 저 앞 멀리에 나가 있는 론치 보트의 제임스에게 신호 깃발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신호를 보내 그의 보트가 가져간 닻을 던지도록 했다.  이어서 그의 보트는 스트림 닻(stream anchor)을 건져내기 위해 되돌아와야 했다.  이제는 아무 쓸모가 없어진 고물 닻줄은 묶었던 것을 풀어내고 배 안으로 다시 끌어들여야 했다.  캡스턴의 노동력은 결국 하나의 닻줄에서 또 다른 닻줄로 옮겨가야 했던 것이다.  두 척의 커터 보트들에게는 밧줄이 주어져서, 그것으로 저 거대한 전함을 끌어당겨 사정권 밖으로 벗어나도록 하는 일에 비록 미약하지만 이런 위급상황에서는 귀중한 힘을 보태도록 했다.

하갑판에서는 혼블로워가 고물 쪽으로 끌고갔던 함포들을 다시 이물 쪽으로 끌어오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목판 위로 포가가 우르르 구르며 삐걱거리는 소리는 단조롭게 철컹거리는 캡스턴 소리 위로 전함 전체에서 잘 들렸다.  머리 위에서는 무자비한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고, 함체의 목판 사이를 메웠던 역청(pitch)이 그 열기에 녹아 흐물흐물해졌다.  그러는 동안 잔잔히 번들거리는 바다를 가로질러, 가열탄 사정거리 밖으로 전함은 조금씩 조금씩 기다시피 하여 만을 빠져나갔다.  사마나(Samana) 만 아래 쪽에서 마침내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게 되자 수병들은 잠깐 일을 멈추고 미지근하고 냄새나는 물을 고작 반 파인트씩만 마신 뒤, 다시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전사자를 수장하고, 부서진 것을 수리하고, 패배의 실감을 소화하는 것 등을 말이다.  어쩌면, 비록 미치고 아무 힘도 없는 상태였으나 여전히 함장의 악의에 찬 영향력이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는 것인가 하고 의아해하기도 했을 것이다.

 

 

 

PS1.  Warp down 한다는 것은 윗 그림에서 닻줄을 당겨서, (바람이 없거나 역풍인 상황에서도) 닻에 의지하여 배를 이동시키는 방법입니다.   

 

PS2.  원래 여기까지가 7장의 끝입니다.  그런데 정작 여기까지는 8장을 위한 배경 설명이고, 가장 흥미진진하고 또 혼블로워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부분은 8장입니다.   8장 중간 정도까지는 번역하겠습니다.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Warping_(sailing)
http://www.pbenyon.plus.com/B_S_M/Fittings.html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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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1 06:30



Make you feel my love라는 노래는 아주 전형적인 사랑 노래입니다.  구애를 하는 사람이 아직 주저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달도 별도 다 따다 줄게' 라고 약속하는 내용의 가사에요.  어떻게 보면 뻔하고 유치한 가사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아델의 보컬 외에 그 가사 자체에도 꽤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좋은 노래들이 다 그렇듯이, 이 가사의 백미 역시 전체 곡이 80% 정도 진행된 후에 나옵니다.  바로 The storms are raging on the rolling sea and on the highway of regret 이라는 부분이지요.  사랑 노래에서 폭풍 치는 바다가 나오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다만, 저는 저 on the highway of regret, 그러니까 후회의 고속도로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남녀간의 사랑은 쌍방 모두에게, 선택의 순간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이어지지요.  그런 과정에서 후회가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  가보지 않은 길, 또는 이미 들어선 항로에 대해 사람은 누구나 회한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참 구애하는 노래에서 the highway of regret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인생을 살 만큼 살아보고 정말 많은 사랑을 겪어본 사람이나 해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부분 바로 다음에, The winds of change are blowing wild and free, 즉 변심의 바람이 거칠고 제멋대로 불어댄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정말 인생을 아는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사에요.

 


이 멋진 곡을 지은 사람은 다름아닌 밥 딜런(Bob Dylan)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관록이 철철 묻어나지요 ?  이 양반이 직접 부르는 버전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z_yb_skMzdM

그리고 상업적으로 이 노래를 맨 처음 부른 사람은 노장 빌리 조엘(Billy Joel)입니다.  그 버전은 아래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vEQGKY92KI4

하지만 역시 강호의 앞물결은 뒷물결에 떠내려가는 법이고 영웅은 젊은이 중에서 난다고, 두 양반 모두 아델의 기량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네요.  잘 아시는 아델의 버전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sIobMokJiho

참고로, 가사 중에 나오는 "the whole world is on your case"라는 말은, 온 세상이 너를 비난한다, 온 세상이 너를 반대한다 정도의 뜻입니다.  여기서 'on the case'라는 뜻은 경찰 등이 어떤 사건을 수사 중이라는 뜻이거든요.  온 세상이 너의 사건을 들볶고 있다는 뜻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Make you feel my love


When the rain is blowing in your face
And the whole world is on your case
I could offer you a warm embrace
To make you feel my love

당신 얼굴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온 세상이 당신을 욕할 때에도
난 당신을 따뜻하게 안아줄거에요
내 사랑을 당신이 느낄 수 있다면요

When the evening shadows and the stars appear
And there is no one there to dry your tears
Oh, I hold you for a million years
To make you feel my love

땅거미가 지고 별이 뜨는데
당신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아, 난 당신을 백만년이라도 안아줄 거에요
내 사랑을 당신이 느낄 수 있다면요

I know you haven't made your mind up yet
But I will never do you wrong
I've known it from the moment that we met
No doubt in my mind where you belong

당신이 아직 결정을 못 내린 거 알아요
하지만 난 당신에게 잘못하는 일 없을 거에요
난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알았거든요
당신이 내 마음에 속한다는 것, 한치의 의심도 없어요

I'd go hungry; I'd go black and blue
And I'd go crawling down the avenue
No, there's nothing that I wouldn't do
To make you feel my love

굶어도 좋고, 다치고 멍이 들어도 좋아요
길거리를 기어서 갈 수도 있어요
그래요, 저는 못할 일이 없어요
내 사랑을 당신이 느낄 수 있다면요

The storms are raging on the rolling sea
And on the highway of regret
The winds of change are blowing wild and free
You ain't seen nothing like me yet

거친 바다 위에 폭풍이 몰아쳐요
후회라는 고속도로에도요
변심의 바람이 거칠고 어지럽게 불어대지만
당신은 나 같은 사람 본 적 없쟎아요

I could make you happy, make your dreams come true
There's nothing that I wouldn't do
Go to the ends of this Earth for you
To make you feel my love, oh yes
To make you feel my love

난 당신을 행복하게도, 당신의 꿈을 이루어지게 해줄 수도 있어요
난 하지 못할 일이 없어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세상 끝까지라도 가겠어요
내 사랑을 당신이 느낄 수 있다면요, 그래요
내 사랑을 당신이 느낄 수 있다면요

작사: Bob Dylan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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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안의댕댕이 2019.04.11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델의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20대의 젊은 가수가 이런 멋진 곡을 불렀다는 것에 정말 감탄했었는데, 원곡이 있었군요! 사족이지만, 처음 목소리를 들었을 때 20대라는데 한 번 놀랐고, 실물 사진을 보았을 때 20대라는데 한 번 더 놀랐고, 007 주제가 skyfall 을 공개할 무렵에 어엿한 어머니가 되었다는데 또 한 번 놀랐습니다...

  2. 요새 2019.04.11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plendor in the grass도 그렇고 나이가 들면서 삶을 관조하시나 봅니다. 그 시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었죠. 지나가는 세월에 건배를~!

  3. keiway 2019.04.12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너무 좋아하는 곡입니다.
    제 영어 실력이 미천하여 확신은 없지만
    앞부분의 To make you feel my love 는 '내 사랑을 당신이 느낄수 있게' 가 더 나은 해석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2019.04.08 06:30

 

 

 

 

선미갑판에 있는 버클랜드에게도 설명이 필요했다.  선미갑판에 가보니 부시는 정말 그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인생 최초로 독립적인 지휘권을 가지고 수행하는 첫 모험이 실패로 끝나고 있데다 그의 전함이 이런 절대절명의 위기에 놓인 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 불운한 사내는 난간의 레일을 포도주병의 코르크처럼 뜯어내려는 듯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스미스가 그에게 전달해야 할 매우 중요한 소식이 하나 있었다.

"로버츠가 죽었습니다."  그는 입술 한쪽 구석을 통해서 나지막히 말했다.

"안돼 !"

"죽었습니다.  론치 보트를 타고 있던 그를 대포알이 두동강 냈습니다."

"세상에 저런 !"

부시가 로버츠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제 자신이 이 전함의 선임부관(first lieutenant : PS1 참조)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 보다는 안됐다는 느낌을 먼저 받았다는 것이 부시 자신에게는 그나마 떳떳한 일이었다.  하지만 리나운 호가 좌초된 채로 포격을 받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슬픔이든 기쁨이든 느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부시는 햇치 통로 아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거기 아래 !  미스터 혼블로워 !"

"예, 부관님 !"

"자네 함포들은 준비되었나 ?"

"1분만 더 주십시요, 부관님."

"부담을 갖는 것이 좋아."  부시는 스미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더 큰 목소리로 햇치 아래를 향해 외쳤다.  "내 명령을 기다리게, 미스터 혼블로워."

"예, 부관님."

수병들은 캡스턴 바에 다시 자리를 잡고 발디딤을 단단히 한 뒤, 밀기 시작했다.

"밀어라 !" 부스가 외쳤다.  "밀어 !"

차라리 교회 건물의 옆구리를 미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아까 1인치 움직인 뒤로는 캡스턴 바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밀어 !"

부시는 그들을 버려둔 채 하갑판으로 내려갔다.  그는 팽팽한 닻줄 위에 발을 올리고는 혼블로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2문이 고물 쪽으로 옮겨진 뒤에 남은 좌현 15문의 함포들은 모두 장전을 완료하고 발포 위치로 밀어내아졌고, 수병들은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장들은 모두 화승간을 들라 !"  혼블로워가 외쳤다.

"다른 모든 수병들은 뒤로 물러나 !  이제 내가 '하나, 둘, 셋'이라는 구령을 줄테니, '셋'에 화승간을 갖다댄다.  알겠나 ?"

알겠다는 목소리들이 웅성웅성 터져나왔다.

"모두 준비되었나 ?  모든 화승간에 불이 잘 타고 있나 ?" 함포 조장들은 화승간을 휘둘러 거기에 달린 도화선의 불씨가 최대한 밝게 빛나도록 했다.  "자, 그럼, 하나, 둘, 셋 !"

화승간들이 일제히 점화구로 내려갔고, 거의 동시에 함포들이 불을 뿜었다.  비록 점화구에 부어넣어진 화약의 양은 제각각 다를 수 밖에 없었지만 15발의 첫 포성과 마지막 포성 사이의 간격은 1초 미만이었다.  발을 닻줄에 대고 있던 부시는 포격의 반동으로 전함이 들썩이는 것을 느꼈다.  대포에 포탄을 2발씩 장전한 것이 효과를 더 크게 만들었다.  화약 연기가 열기 속으로 물결처럼 흘러들어왔지만 부시는 거기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배가 들썩이면서 닻줄이 움직이는 것이 그의 발 밑에서 느껴진 것이다.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였다 !  그는 발을 들어 다시 위치를 잡아야 했다.  양묘기(windlass)의 톱니가 새로 돌아가면서 톱니 멈춤쇠가 철컹 움직이는 소리가 모두에게 들렸다.  철컹-철컹.  화약 연기 속에서 누군가가 환호성을 올렸고 다른 수병들도 환호했다.

 

 

(Windlass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양묘기, 윈치 등으로 번역되는데, 한글로 봐도 뭔지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바퀴 같은 것을 돌려서 줄을 감아들이는 장치인데, 도르래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요 ?  도르래의 뜻을 보면 ‘바퀴에 홈을 파고 줄을 걸어서 돌려 물건을 움직이는 장치’라고 하니, 도르래가 더 맞는 번역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조용 !" 혼블로워가 호통을 쳤다.

철컹-철컹-철컹.  마지못해 움직이는 듯한 소리.  하지만 분명히 전함은 움직이고 있었다.  닻줄은 마치 치명상을 입은 괴물처럼 천천히 딸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움직이게 할 수만 있다면 !  철컹-철컹-철컹.  철컹거리는 소리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부시도 닻줄이 딸려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정해야 했다.

"이곳 지휘를 맡게, 미스터 혼블로워."  부시는 그렇게 말하고는 상갑판으로 뛰어올라갔다.  만약 배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면 당장 선임부관이 신경써야 할 긴급한 일들이 있을 것이었다.  캡스턴 톱니멈춤쇠는 이젠 거의 명랑한 곡조의 소리를 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확실히 상갑판에는 신경써야 할 일들이 잔뜩 있었다.  당장 내려야 할 결정사항이 많았다.  부시는 버클랜드에게 가서 모자에 손을 대고 경례를 했다.

"명령이 있으신지요, 함장님 ?"

버클랜드는 별로 행복하지 않은 눈길을 그에게 돌렸다.

"조수를 놓쳤군." 그는 말했다.

지금이 조수가 가장 만조인 때였다.  그러니 만약 그들이 다시 좌초된다면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었다.

"예, 함장님."  부시가 말했다.

이 결정은 버클랜드만이 내릴 수 있었다.  다른 어느 누구도 그 책임을 나눠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생애 최초로 지휘한 전투에서 패배를 인정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하게 어려운 일이었다.  버클랜드는 마치 뭔가 영감이라도 구하려는 듯 만 안쪽을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포대들로부터 나와 잔뜩 낀 화약 연기 위에 적색과 황색의 스페인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영감 따위를 찾을 수는 없었다.

"육풍이 불어야 빠져 나갈 수 있는데." 버클랜드가 말했다.  "예, 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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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영어가 원래 스펠링 따로 발음 따로 되는 단어들이 많은 단어이긴 합니다만, 군사 용어 중에 특히 그런 것이 많고, 그런 것들은 대부분 전통적 선진국 프랑스에서 수입된 단어입니다.  중위 내지는 부관이라는 뜻의 lieutenant 같은 단어도, 한눈에 딱 봐도 프랑스어 냄새가 폴폴 나는 단어입니다.  'in lieu of' (~ 대신에)라는 숙어에서 보듯이, lieu는 '장소' 라는 뜻이거든요.  Tenant은 불어로 쥐고 있다 (tener의 현재진행형) 라는 뜻이라서, "captain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자리를 대신 하는" 정도의 뜻으로서 부관/중위를 뜻하는 lieutenant (루테넌트, 불어로는 류뜨낭)이라는 계급 이름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방금 부시가 차지하게 된 계급인 1st lieutenant라는 것은, 사실 계급이 아니라 보직입니다.  미국 육군에서는 1st lieutenant가 중위의 계급이지만, 영국 해군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계급입니다.  영국 해군에서는 1st lieutenant나 2nd lieutenant 같은 것이 없고, 그냥 lieutenant라는 계급만 있는데, 우리 해군의 대위에 해당하는 계급입니다.  전통적으로 영국 해군에서는 함장이 captain이고, 함장 외의 장교들은 다 lieutenant였습니다.  이 lieutenant라는 계급을 나폴레옹 전쟁 소설에서는 뭐라고 번역할지 항상 애매한데, 여기서는 그냥 '부관'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 부관들 사이의 계급 차이는 따로 없으나, 누가 먼저 임관했느냐에 따라 서열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선임인 사람이 1st lieutenant, 그 다음이 2nd, 그 다음이 3rd... 이런 식이었지요.  

 

(현대 영국 해군에서 중위는 sub-lieutenant, 소위는 midshipman입니다.  소령은 lieutenant-commander고요.)

 



여기서는 기존의 1st lieutenant인 로버츠가 전사하면서 부시가 자동으로 1st lieutenant가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1st lieutenant라는 것은 꽤 특별한 위치였습니다.  3rd가 2nd가 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만, 2nd가 1st가 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commander 또는 captain으로의 승진의 기회였습니다.   어떤 군함이 큰 승전을 거둘 경우, 가장 기뻐하는 사람이 바로 1st lieutenant였습니다.  함장이야 더 승진할 계급이 없었으므로 (제독으로의 승진은 오로지 연공서열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해군성 본부(the Admiralty)에서 어떤 군함의 승전을 치하하는 가장 대표적인 포상이 그 1st lieutenant를 준함장(commander)으로 승진시켜 작은 sloop함(돛대 2개짜리 작은 군함)의 독립적인 지휘권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준함장은 곧 진짜 함장 즉 post-captain이 되었으므로, 함장으로의 승진을 꿈꾸는 모든 lieutenant는 먼저 1st lieutenant가 되는 것이 1차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원래 출항할 때 4th lieutenant였던 부시가 이런저런 상황이 생기면서 1st lieutenant가 된 것은 정말 감개무량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요.  


Source :  https://www.bbc.co.uk/academy/en/articles/art20130702112133708
https://en.wikipedia.org/wiki/Lieutenant_(navy)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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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극우지배세계 2019.04.08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함장이 함량미달인듯

  2. 최홍락 2019.04.08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Windlass는 양묘기 또는 닻사슬 감개틀이라고 해서 배가 묘박을 할 때 내리는 닻을 끌어올리거나 내릴때 쓰고요. 윈치는 mooring winch 또는 권취기, 계선장치라고 해서 배를 항구에 계류시키는 로프를 끌어올리거나 내릴때 씁니다. 그냥 번역하실 필요없이 윈드라스라고 쓰시면 되고요.

    in lieu of는 비즈니스 서신이나 POA (Power of Attorney: 위임장)에 쓰이는 표현이긴 하네요. 영어로 Tenant는 세입자라는 뜻이 있긴 하고요.

  3. spheroid 2019.04.10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계급표 밑의 설명에서
    (현대 영국 해군에서 중위는 sub-lieutenant, 소위는 midshipman입니다. 소령은 commander고요.)
    부분에서, 순서상으로는 소령->중령이 맞지 않는지요?

  4. reinhardt100 2019.04.10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동안 바빠서 못들어왔는데 요새는 해전사 중심이네요? 이쪽 관련해서는 마한제독의 책을 예전에 지정학 공부할 때 본 거 외에 없어서 어떤걸 중심으로 봐야할지 감이 솔직히 아직 안 오네요. 한번 다 나온 후에 제대로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