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8 23:57

나폴레옹 3세가 된 루이 나폴레옹의 최후는 1871년 보불전쟁, 즉 프로이센과 프랑스 간의 전쟁으로 시작됩니다. 






(보불전쟁의 여러 광경입니다.  전쟁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열정이나 애국심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 바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들들의 목숨, 그리고 여러분 가족들의 눈물로 하는 것입니다.  전쟁에 찬성할 자격이 있는 분들은 그런 것들을 기꺼이 바칠 용자들 뿐입니다.)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전쟁의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프랑스군의 사기는 높았으나, 바로 4년 전인 1866년 보오전쟁, 즉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통해 경험을 쌓은 프로이센군과는 병력 동원 자체가 달랐습니다.  프랑스군은 독일과의 국경 지역 약 250km에 걸쳐 약 20만명을 동원하는데에도 난리법석을 떨어야 했습니다.  프랑스 참모부의 엉성한 계획 때문에 국경 지대의 모든 도로와 철도가 교통 체증으로 마비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에 비해 프로이센군은 좀더 밀집한 120km 전선에 52만명의 병력을 매우 효율적으로 집결시킬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독일에게는 신무기였던 크룹(Krupp)사의 8cm 야전포가 있었습니다.  강철제 후장식 야포였던 Krupp C64 포는 프랑스 포병대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빠른 포격으로 프랑스군의 밀집 보병 대오를 장난감 병정처럼 쓰러뜨렸습니다.    






(1870년, 소집에 응하는 프랑스 예비군들의 모습입니다.)







(Krupp사의 후장식(breech-loading) 8cm 포입니다.  이건 루마니아군에서 사용하던 것인데, 당시 프랑스군은 아직 전장식(muzzle-loading) 포를 썼습니다.)




거기에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나폴레옹 3세가 총지휘관으로 있었으니, 뭐든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보불 전쟁 중 가장 큰 전투였던 8월 17일의 그라블로트(Gravelotte) 전투에서, 11만 병력의 프랑스군은 19만의 프로이센군을 상대로 분전하여 1만2천의 사상자를 내면서도 프로이센군에게 1만9천의 피해를 입혔으나, 결국 메츠(Metz)에 포위되면서 사실상 전쟁의 향방을 패배로 굳히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폴레옹 3세는 그야말로 아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당시 프랑스군의 총사령관은 본인이었으나, 실제로는 메츠에 포위된 바젠(François Achille Bazaine) 원수, 자신과 함께 있던 막마옹 (Patrice de MacMahon) 원수, 총리였던 팔리카오(Cousin-Montauban, Comte de Palikao) 백작, 그리고 파리에서 섭정으로 있던 황후 외제니(Eugénie)의 4인이 제각각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결정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스스로의 의견은 아무 것도 없이, 그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던 이 네 사람의 의견에 이리저리 휘둘릴 뿐이었습니다.






(그라블로트(Gravelotte) 전투에서 돌격하는 프로이센 제9 라이플 대대의 돌격 장면입니다.  이 전투에서는 프로이센군의 피해가 더 컸습니다.)



이런 그의 무능력이 절정에 달했던 것은 그와 막마옹 원수가 9월 1일 세당(Sedan)에서 대책없이 포위되어 프로이센군이 고지에 설치해놓은 포대로부터 맹렬하고 무자비한 포격을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상황은 막마옹 원수조차 프로이센 포탄 파편에 부상을 당할 정도로 급박했는데, 나폴레옹 3세는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포탄이 쏟아지는 프랑스군 진지 내를 정처없이 걸어다닐 뿐이었습니다.  그의 의미없는 산책을 따라다니던 수행 장교 중 하나는 포격에 전사하고, 둘은 부상을 입을 정도였습니다.  그 날 그를 따라다니던 군의관 하나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인간이 여기에 자살하러 온 것이 아니라면 대체 뭘 하러 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오전 내내 어떤 명령도 내린 것이 없다."


결국 나폴레옹 3세도 결정을 내리긴 내렸습니다.  오후 1시가 되어, 프로이센군에게 백기를 들고 항복한 것입니다.  2일 뒤인 9월 3일, 이 항복 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파리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했습니다.  황후 외제니가 남아 있는 튈르리(Tuileries) 궁 앞으로 성난 군중이 밀려든 것입니다.  궁 직원들이 성난 군중을 피해 하나둘씩 도주하는 사이, 황후 외제니도 이런 말을 남기고 몰래 뒷문을 통해 영국으로 달아나야 했습니다.  황제가 잡혀 가고 황후가 달아난 파리에서는 시민들이 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항복이라고 ?  그럴리가 없어 !  황제는 항복같은 거 하는 거 아니야 !  황제는 죽었어 !  사람들이 내게 그 사실을 숨기려 드는 거겠지.  왜 그 양반은 자살을 하지 않은 거지 ?  이게 무슨 망신인지 그 양반은 모르는 건가 ?"






(외제니 황후입니다.  스페인 그라나다 출신이었던 이 귀부인이 상당히 미인이라고 느껴지시나요 ?)



 


(화가의 붓끝은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사진기는 눈치가 없어 그렇지 못합니다. 예, 저 그림 속 외제니가 이 사진 속 외제니와 동일 인물입니다.)




나폴레옹 3세는 굴욕적인 항복 후, 다음 해인 1871년 3월 19일까지 독일 빌헬름쇠허(Wilhelmshöhe) 궁에서 편안한 포로 생활을 하며 어떻게든 전쟁 이후 권좌에 복귀하려는 계략을 획책했습니다.  그가 프로이센 재상인 비스마르크(Bismarck)와 비밀 회담을 해가며 꾸민 계획을 한줄로 요약하면, 프로이센군이 파리의 혁명 공화국 정부를 무찔러 주면 나폴레옹 3세의 부하들이 나폴레옹 3세의 아들을 새 군주로 하여, 프로이센에게 고분고분한 보수 정권을 세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파리의 완강한 저항과 독일이 프랑스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에 대한 영국 및 러시아의 반감으로 인해 그 계획은 실천되지 못했습니다.  






(나폴레옹 3세가 범털 포로 생활을 했던 독일 카셀의 빌헬름쇠허(Wilhelmshöhe)입니다.)



파리 공화국 정부가 프로이센과 휴전 협약을 맺은 이후에도 나폴레옹 3세는 어떻게든 권력을 되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3 공화국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나파르트파는 불과 5석을 얻는 참패를 겪으면서 그의 모든 꿈은 사라졌습니다.  종전이 되면서 비스마르크는 나폴레옹 3세를 그의 호화로운 감옥 아닌 감옥으로부터 석방했고, 갈 곳이 없던 그는 젊은 시절 망명 생활을 했던 영국으로의 망명길을 택했습니다.  파리에 남겨둔 그의 자산 대부분은 몰수된 이후였으므로, 그는 금전적으로 궁색했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휴대하고 있던 보석류를 팔아 망명 자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그는 런던에서 기차로 약 30분 정도 떨어진 치즐허스트(Chislehurs)라는 마을의 3층짜리 저택에 정착했는데, 빅토리아 여왕의 방문을 받는 등 나름 예우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는 여기서 별로 가치없는 글을 쓰거나 에너지 효율이 좋은 난로를 개발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바로 다음해인 1872년부터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1873년 1월 병사했는데. 그의 마지막 말은 "우리가 세당에서 겁장이는 아니었다는 거 사실이쟎아 ?"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도 자신이 저지른 죄악과 프랑스 국민에게 끼친 피해보다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그의 개인적 명예가 더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담석 제거 수술 후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사망한 희대의 코미디언 루이 나폴레옹의 죽음입니다.)




이것이 1848년 2월 혁명으로 피를 흘려가며 기껏 루이 필립 왕을 내쫓은 뒤 가진 대통령 선거에서, '위대하신 나폴레옹의 조카라는데 뭘 묻고 따지고 그러냐'라며 멍청한 루이 나폴레옹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프랑스인들이 받아들여야 했던 결과였습니다.  역사는 자꾸 반복됩니다.  2번이면 이미 충분히 당한 것 같습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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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혼불 2016.12.19 0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그 틈에; ㅁㄴㅇㄹ;;;;;;;;;;;;

  3. smeb 2016.12.19 0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사람 피에 나폴레옹1세 dna가 눈꼽만큼도 없다는것도 코미디죠.

  4. ㅇㅇ 2016.12.19 0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번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 반복될 것 같은데요
    201X 년에도 어느 나라에서

  5. 프로이센군 2016.12.19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손이 조상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나폴레옹 3세는 나폴레옹 1세의 피가 안 섞였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6. 흐음.. 2016.12.19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제니 황후의 사진과 그림은 눈 처진 거 말고는 닮은 부분이 없네요....
    슈퍼 미인 공주, 왕비들 초상화들도 현실은 저랬을 거 같다는...

  7. starlight 2016.12.19 1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번이면 정말 차고 넘치도록 충분합니다.

  8. 최홍락 2016.12.19 1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나폴레옹1세 시절인 1800년대초 프랑스의 인구는 29백만으로 18백만의 독일에 비해 배 이상 많았습니다. 그후 프랑스의 순 인구 증가율(출생자-사망자)은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정체된 반면 독일의 경우 (+)를 유지하여 1870년 보불 전쟁 당시 독일의 인구가 39백만으로 프랑스의 38백만을 역전하였습니다. 전체 동원가능한 병력 수준은 프랑스가 106만명 정도이고, 독일은 120만 정도였지요. 여기에 언급된 바와 같이 프랑스는 당시 크림전쟁, 멕시코 내전 등 갖가지 해외 원정에 병력이 분산된 반면 독일은 이미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이전부터 프랑스를 미래의 적으로 간주하고 계획을 세워둔 상황이라 병력 동원에서 이미 프랑스는 독일에 한 수 지고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정예도 측면에서 볼 때 프로이센 군이 오스트리아 전쟁을 통해 경험을 쌓은 정예병들이었지만, 프랑스군도 크림전쟁, 알제리 전쟁, 멕시코 내전, 이탈리아 전쟁 등 경험 측면에서는 만만치 않다고 할 수 있고요.

    독일군이 프랑스군을 압도했던 것은 크루프사의 대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였으며, 철도를 이용한 기동력 및 병력 운용으로 단순간에 프랑스군을 압도한 점, 그리고 이들을 이끈 리더의 수준으로 압축될 수 있겠네요. 결국 셋 중 둘은 후방 병참 또는 전쟁에 대비된 국가의 경제적 역량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고요.

    2. 알려진 바에 따르면 나폴레옹 3세는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엠스 전보 사건을 접하고 나서도 전혀 선전포고할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수십년간 유럽 정치판에서 굴러먹은 감각이 있어서 독일과의 전면전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1860년대 후반부터 혹시 모를 실전에 대비해 보고 받은 결과 프랑스군의 실상을 알고는 더더욱 그랬지요. 물론 현실은 이렇게 알고 있다 한들 격렬하게 들끓는 국민 감정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선전포고를 하긴 했지만, 적어도 한 국가의 리더라면 이런 식으로 전쟁을 하면 안되는거였습니다.

    3. 나폴레옹 3세가 비스마르크와 비밀 회담을 통해, 프로이센군이 파리의 혁명 공화국 정부를 공격해줄 것을 요청한 것과는 별도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인 파리 코뮌을 분쇄하기 위해 당시 대통령 아돌프 티에르는 독일에 프랑스군 포로를 석방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독일이 이를 수락하여, 공화국 정부가 파리코뮌을 100일도 안되 진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비스마르크의 생각과는 또 별도로 주 프랑스 독일 대사인 해리 폰 아르님 백작. 빌헬름 황제를 중심으로 보나파르트 제정 복고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지만 비스마르크는 프랑스가 공화국이어야 군주국들의 대불 동맹이 유지될 수 있다고 프랑스 공화국의 유지를 강행했다고 합니다.

    • 수비니우스 2016.12.20 0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비스마르크라면 할만한 주장이네요. 추가로 프랑스 내의 왕정복고세력은 보나파르트파의 기세가 팍 꺽였음에도 공화세력보다 셌지만 부르봉정통파와 오를레앙공파가 싸우느라 결국 공화세력이 승리하게 되었다죠. 30년전 우리나라 6월혁명 직후하고 비슷한 현상인것 같아요.

    • 최홍락 2016.12.20 0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딱히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은 국민들의 투표로 선택한 결과이고, 프랑스의 공화제 유지는 국회의 결정이었으니까요. 정통복고주의자들과 온건 오를레앙파 간에는 넘을 수 없는 의견차이가 많았고, 정통주의자들의 대안이라 여겨졌던 앙리5세의 태도 역시 왕위에 오르는 것에 부정적이라...공화정으로 국가체제를 규정한 헌법의 승인을 위한 투표에서 공화파와 온건 오를레앙파의 연합이 정통복고주의자와 오를레앙파의 연합을 1표차로 앞선 것이 공화제로 가게된 원인이었다고 보네요.

      물론 헌법 제정 및 제3공화정 탄생 이후로도 왕당파의 우세가 계속된 것이 사실이었고, 이에 따라 초대 대통령인 아돌프 티에르(파리 코뮌을 해산한 그 대통령)를 축출하고, 새 대통령으로 파트리스 마크마옹 전 원수(스당에서 중상을 입고 포로로 잡힌 그 마크마옹입니다. 파리 코뮌 진압 시 사령관이기도 하였습니다.)를 새 대통령으로 선출하기도 하였습니다. 마크마옹은 왕당파로 1875년 선거의 결과로 공화주의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한 하원과 충돌을 빚은 끝에 77년 의회를 해산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역시 공화파의 승리. 결국 마크마옹은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고, 점차 왕당파는 쇠퇴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게 되고요.

  9. 유애경 2016.12.20 0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대하신 x대통령의 따님이신데 뭘묻고 따지고 그러냐...웃음만 나오는 작금의 현실입니다^_^.
    부디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쳐 하루빨리 진정한 민주국가로 거듭났으면 싶습니다.
    그나저나 외제니황후님 엄청 미인인줄 알았는데 사진으로는 좀 아닌것 같네요.
    붓빨덕좀 보셨네...

    • 최홍락 2016.12.20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게 딱히 나폴레옹의 조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표를 준것으로 보기엔 어려운 것이 당시 대선에 나왔던 인물들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당시 임시정부 수반), 루이 외젠 카베르냑(2공화국 국방장관)이 1848년 6월 폭동 당시 노동자들의 항쟁을 가차없이 진압한 책임자들이었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차악을 선택하는 심정으로 루이 나폴레옹에 몰표를 던진 감이 없지 않습니다. 여기에 덤으로 농민들의 몰표까지 더해진 결과가 루이 나폴레옹의 집권이지요. 유권자들의 선택을 졸로 보기엔 그 기저에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는데, 본문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그 점이 간과된 듯 합니다.

    • 나삼 2016.12.24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님 글에 동의 합니다. 또 나시카님은 역사에 빗대어 현 정치시국을 바라보신것 같은데 국민은 멍청하지 않습니다. 나시카님이 비꼬실려고 하는 박근혜 당선도 들여다 보면 지난 10년간 좌파정권의 대북정책과 여러 가지 실정에 피로가 누적된 국민들이 차악으로 선택한 경우가 그분 따님이니깐 하면서 뽑아준 케이스보다 많았을 겁니다. 각종 앙케이트에서 중도층으로 표현 되는 계층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다고 보는데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 bru 2016.12.24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민 멍청한 거 맞는데요. 김대중 노무현정권이 아무리 실정이 있었어도 그 뒤의 9년에 비하면 훨씬 나았고. 그럼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거 맞지요. 차악이랍시고 최악을 골랐는데 무슨 변명의 여지가 있을까요.
      애초에 군주정이든 민주정이든 인간의 선택은 당연히 어리석을 수 있고, 민주정은 다수의 선택으로 그 리스크를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할 뿐이지 어리석은 선택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지난 9년간의 한국은 중우정치의 수많은 예 중 하나를 역사에 추가했을 뿐이지요.

    • 최홍락 2016.12.25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러려고 답글을 달았던 것이 아니었는데 논지가 산으로 가버렸네요. 정치적 선택은 선택 주체의 인센티브와 시스템적 제약이라는 배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이러한 모든 주체들의 합리적 선택의 합이 선거 결과로 표출된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했는데 말이죠.

      최근에 좌우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국민의 의식수준을 개탄하고 중우정치를 논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인 특징이 1) 자신들의 주장과 배치되는 다수의 선택을 어리석음으로 치부한다는 점, 2) 재미있게도 자신들이 지지를 얻을 때는 위대한 국민의 힘을 들먹이며 상대방을 상종못할 인간들로 매도한다는 점이지요.

      국민의 정치적 지향점은 한가지가 아니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의의 대변은 각각의 민의를 대신하는 여러 정당과 시민단체 등은 각각의 민의를 대변하는 도구입니다, 그런 다양한 여론을 대표하는 각각의 단체들이 그 다양성 간의 간극을 줄이고 토론과 토의를 통해 합일점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 그 것이 바로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고요. 국민 개개인의 정치 지향점의 다양성과 그 다양성 간의 차이를 줄이는 과정은 생략한 채 모든 민의를 다 하나의 실체로 규정하여 이것이 국민의 뜻이네, 국민의 수준이네 얘기하는 것 자체가 중우정치와 포퓰리즘의 시작이지요.

    • bru 2016.12.25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 예리하고 수준높은 말씀 감사합니다만, 한국의 노인들에게는 의미없는 고매한 댓글이었다는 아쉬움이 있군요.
      저를 포함한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한국의 노인들은 계속 최악의 선택을 하겠지요. 이나라의 문제의 원인을 헛다리짚지 마시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시면 좀 읽을 가치가 생길것같습니다.
      한마디로, 조실부모해서 불쌍하니 대통령시켜줘야 한다느니, 내 고향이 대구라서 나라를 팔아먹어도 새누리당 찍는다는 유권자들이 득실거리는 나라에 맞는 수준의 논의를 부탁드립니다. 합리적 선택의 합이 선거 결과 어쩌고 하는 현실과 비춰보면 실소가 나오는 이상론 말고 말이죠.

    • 최홍락 2016.12.25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신기 김대중도서관 연구원의 저서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는 진보에서 보수성향으로 변화한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다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진보 진영은 가난한 사람들이 반공주의와 같은 보수 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포섭되어 계급의식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여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추진하는 보수 세력을 지지하게 된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심층 인터뷰 결과 이들은 진보 세력보다 보수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계급 이익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빈곤층은 진보 세력의 선의도 알고, 보수 세력이 특권층에 속한다는 것도 알고 있으나 정치적 리더십이 약한 진보 세력의 한계로 인해 (매번 야권 연대를 역설했던 것이 바로 그러한 사례중 하나이지요.) 실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작은 것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반면 서민들의 표를 의식하는 보수 정치 세력은 일정 정도 친서민적 정책을 취하게 된다고 인식하게 된다고합니다. 지금은 갈라지고 있지만 보수 정치 세력은 강한 조직적 기반과 리더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보 세력보다는 선의가 부족하다고 해도 실제 자신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결과물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흔히 ‘뭘 해도 박근혜를 지지하는 35% 콘크리트층’이라는 말이 진보진영에서 상식처럼 회자되는데, 그것은 역으로 악마를 만드는 논리입니다. 다시 말해 35%는 말이 안 통하는 비합리적·비이성적인 집단으로 규정해놓고 그들을 배제한 채 전략을 세우는 것이 그동안의 야권의 지지층 및 당직자들이 가졌던 고질적인 문제였고요.

      무엇보다도 그렇게 형편없다는 50대 이상의 노장층의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더 권위주의적인 국가 체계 내에서 4.19와 87년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요.

    • bru 2016.12.25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https://www.youtube.com/watch?v=d0QmtoBGLZY
      악마가 이미 많이 있는데 그 존재를 부정해서 뭐하겠습니까. 이정희가 박근혜 당선의 1등공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보면 참 어이가 없더군요. 왜 원인과 결과의 연결도 안되는걸까 하고요. 저와 님이 뭐라고 하든 말든 콘크리트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서 1번 찍습니다. 나이많아서 젊은 사람들처럼 바쁘지도 않으니 투표율도 끝내주죠. 존재하는 걸 없다고 해서 서로 에너지 낭비를 하지 말고, 투표권을 뇌없이 행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정도는 서로 인정해야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참고로 저는 아파트 한채 정도는 있으면서 새누리당 찍는 사람들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폐지 줍는 노인들이 새누리당 찍는 게 중우정치가 아니면 뭘까요?
      그리고 419야 워낙 옛날 일이고, 87민주화항쟁을 한 건 세대 전체가 아니었죠. 결국 그렇게 전두환을 물러나게 했더니 노태우를 뽑은 걸 보면 아시겠죠. 아, 이것도 결국 야권의 분열로 원인을 돌리시려고요? 왜 그렇게 한쪽에게만 엄격해야 하는지 저는 전혀 이해가 안되지만, 하여간 50대 이상은 남이야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죽건말건 자기보신하면서 독재정권을 살아남은 부류가 더 다수이고 그 부류들이 본색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더 논리적이지요.

    • 최홍락 2016.12.25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이 사람들의 정치관을 가지고 악마라고 말하는 것은 님의 자유지만, 그것은 반대편에서도 반대 성향의 유권자들을 상대로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중도층의 반감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요. 서구 선진국인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계급과 상관 없이 하나의 정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인데요. 오히려 이번 총선에서 여당 야당 우세 지역에서 선전을 펼친 상대당 후보들이 많아서 어느 당 어느 후보든 진정성과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워진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 조차 민도가 낮네 뇌가 없네 외치는 것은 요새 자유경제원 강사들이 주장하는 천민민주주의 주장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봅니다.

      계급과 반대되는 투표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욕하고 싶으시면 똑같은 비판의 잣대를 소위 말하는 강남좌파에도 똑같이 적용시켜야 맞을 것 같고요. 그리고 서민들이 왜 보수 정당에 표를 주는가에 대해서는 앞서 제가 언급한 장신기 연구원의 글에도 잘 나타나 있으니 책을 한번 보시는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너선 화이트는 그의 저서인 "바른 마음"에서 진보주의자는 피해와 공평성에만 반응하는데 반해, 보수주의자는 다섯 가지 피해, 공평성, 충성심, 권위, 고귀함에 모두 관심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도덕성 기반을 놓고 볼 때 진보 대 보수의 스코어는 2:5니까 보수가 유리한 위치에 설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바, 다시 말해 '순진한' 노동자 농민들이 우파에게 속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미국이나 한국이나 유권자의 보수적 성향을 깨고 승리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거죠. 일개 국가의 정치, 경제 정책, 문화의 경로 의존성이라는 것이 이렇게 복잡하고 강력한것이고요. 특히 한국과 같이 빠르게 성장한 국가에서는 세대의 경험이 그만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의 간극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요. 이정도 상황에서 일본과 같이 야당이 거의 전멸한 수준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다당 체제의 구축에 기여한 한국 유권자들이 변화를 이끌어낸 결과는 나름 선방한것으로 평가받아야 할텐데 말이죠.

      그래도 앞날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이 드신다면 다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m.blog.daum.net/nasica/6862529?categoryId=560794

      "패배주의에 젖은 시민들만큼 다루기 쉬운 물건이 없거든요." 이 구절이 참 멋있더라고요.

    • 최홍락 2016.12.25 1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건 몰라도 좋게 얘기드린것에 대해 욕설로 응답하셨으니 그에 대해선 삭제하시는게 좋을듯 싶습니다.

      정치관이 다른 사람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해야한다는 사람들이 과연 님이 말씀하신 뇌없는 늙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다를게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중도층이 이탈하든 말든 비웃으며 살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만 정치는 자신의 지적우위를 자랑하기 위한 경연장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야겠죠. 자신의 정치관을 확산시키지 못하는 것은 그냥 무능한 것이고 무능한 자들에게 표를 주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겠지요.

      난 그분들의 정치관을 미화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그런 현실이 있다는 점을 그 나름대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결정과 의식이 형성된 배경도 감안해야 하고요. 그 현실을 더럽다고 갈아 엎으려면 혁명 및 인민재판인데 이런걸 바라십니까?

      불리한 정치 지형에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도전한 수많은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님처럼 유권자만 탓했다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진 못했겠지요.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교조주의자라고 한다면 현실을 극복해낸 야권의 지도자였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 교조주의자의 아류일 수 밖에요.

    • nasica 2016.12.25 1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bru님 댓글 중에는 욕설이 일부 들어있는 관계로, 최홍락님 말씀대로 삭제했습니다.

    • bru 2016.12.25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흠.. 뭐 최홍락님과는 더 이야기할 건 없고, 욕설이 어느 부분인지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저능아 또는 무뇌아 부분이라면 어쩔 수 없죠. 저능아에게 저능아라고 하는 건 실례긴 하니까요. 하지만 '좆같은게 좆같은거지'는 서울대 총학 선본의 슬로건이었고 그 슬로건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런 인용한 말로 삭제되었다면 억울해서요.
      그리고 저능아든 좆같은 거든 최홍락님을 겨냥한 건 당연히 아닙니다. 저능아를 저능아라고 부르지 못하고 좆같은 걸 좆같은 거라고 하면 안된다는 교조성을 한심하게 본 건 맞습니다만.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얼마 전에 한 말이 있었죠.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가르고 온 것 같다고요. 한번 교조주의를 사전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현실을 직시했다면 그렇게 안타깝게 떠나진 않았을거고, 그래서 전 더더욱 교조주의를 혐오합니다.

    • 복잡한 세상 2016.12.25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만, 님이 말씀하신데로 유권자가 진보와 보수를 선택하는 이론을 적용하기에는 한국정치가 너무 비정상적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국개론 등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가 극단적으로 흘러 독재와 권위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말은 확실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새겨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솔직히 그 이전에 독재와 매카시즘의 광기의 시대를 살아왔던 이전의 유권자들이 딱히 어떤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권력자를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거의 분명한 정황아닌가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무려 5%나 지지를 받고 있는 현정부인데, 만약 그게 박근혜가 아니었다면 그 수치가 나오지도 않았을겁니다. 어찌보면 시간의 흐름으로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고도 볼수 있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은 사람이 대한민국의 1/20이란 밀이
      되겠죠. 그리고 대개 이들이 고령층일 확률이 높은거도 사실이며, 지지의 이유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애국과 반공 신앙심과 같은 것이었죠

      그리고 그나마도 최순실 사건 전에는 흔히 콘크리트롣 알려진 30% 이상을 유지한건데, 중요한건 그때도 국정교과서로 시끌시끌헸엇죠. 무려 독재자가 아버지란 이유로 이를 정당화시키려고 한 행동인데 말이죠. 솔직히 진짜 합리적인 민주시민이면 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동에 반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죠? 하지만 이상과 다르게 이 사안이 사람들을 움직이진 못했죠. 순실이 아니었음 여전히 사회는 mb때처럼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었을겁니다.

    • 최홍락 2016.12.26 0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몇번이고 말씀드립니다만 합리적인 기준의 선택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른 법입니다. 금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현 여당을 지지해온 많은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위에 나삼님과 같이 야권에 대한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으며 그들이 비합리적이다라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야권이 두차례의 집권 경험을 제외하고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그리고 국가주의와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가치와 그를 이용해 성공했던 경험은 그렇게 쉽게 바뀌기는 어렵고요. (물론 저는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진 않지만...)

      예를 들어 만약 일부 야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 모두를 일종의 부역자들이다라는 식으로 적대적으로 대했다면 탄핵에 협조했던 비박계 국회의원들의 협조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부 야권에서 제기했던 현실론에 근거한 협상안도 이걸 감안했던 것이고요.) 또다른 예로 야권의 집권이 가능했던 시기에 두 지도자들 역시 김종필과 정몽준 같은 보수 세력과 손을 잡아야 간신히 집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정의만으로 정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증한 것이지요. 디바이드 앤 룰(Device & Rule)의 교과서 같은 사례이고요.

      한국 정치가 비정상적으로 흘러간다는 언급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정치 혐오를 부추긴 결과가 무엇을 낳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엔 그러한 인식이 "모든 정치 세력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라는 인식을 낳게 되고 입법부를 불신하고 그 결과 상대적으로 행정부에 대한 견제를 발목잡기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 이런걸 원하신 건 아니겠지요?

      아직도 지지율이 5퍼센트나 된다고 불만을 가지신 모양인데 여론이 원사이드로 형성되는 민주주의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실 5퍼센트는 통계적인 오차 범위 내에 있는 수치라서 사실상 제로라고 봐도 무방한 수치이고요.

      국정교과서와 같은 정책적 사안이나 정치적 이슈를 두고 이것이 민주주의냐 아니냐를 논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책적 사안에 있어 적합과 부적합을 따질 문제이지 이것을 비민주주의적이다라고 논하기엔 좀 부적합한 것은 아닌지...

      얘기가 길어졌는데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결론은 이거에요.
      1. 모든 정치적 지향점은 인센티브, 제약조건, 과거의 경향 등이 복잡하게 얽혀서 발생한 결과이며 이를 비합리적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바꾸기란 대단히 어려우며 더욱이 인간이 가진 보수주의적 성향 때문에 이를 바꾸려면 매우 속터지는 상황을 감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억울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주장하는 정치적인 올바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이익이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2. 그래도 이것이 정의다. 이것이 민주주의다라는 것을 관철시키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결국 선거에서 이기는 것 외에 방법은 없습니다.
      3. 그런데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구제불능의 악으로 규정해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이는 지지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어도 이를 바라보는 부동층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만들뿐입니다. 그러면 선거에서 지고 또 국민 수준을 탓하다 또 지고 악순환을 반복하겠지요.

    • 야채 2016.12.26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bru/ 만약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요?

      > 참 예리하고 수준높은 말씀 감사합니다만,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의미없는 고매한 댓글이었다는 아쉬움이 있군요.

      특정 정당 지지자들이 이런 소리를 하고 다닌다면 전라도 사람들은 눈에 핏발이 오를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라도 사람들은 절대 그들에게 표를 주려고 하지 않겠지요. 아니, 그 반대 세력을 집권시키기 위한 열성을 보일 겁니다.

      그러면 그게 전라도 사람들이 우매한 것일까요,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우매한 것일까요?

      자칭 진보 지지들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진보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지지하기보다는 반대 세력을 모욕하는 것에서 정체성을 찾습니다. 단순히 지지자들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노무현은 등록금 문제의 대책을 주문하는 박근혜에게 서울대 학생의 60%가 강남 학생인데 왜 그들을 도와야 하느냐고 반문했고 (물론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정동영은 노인들은 투표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대놓고 말했었지요.

      모욕에 분노하는 것은 전혀 비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진보측 지지자라는 사람들 중 많은 숫자가 국민이 개돼지라거나 하는 종류의 발언에는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정작 본인들 스스로도 국개론을 설파하고 다니면서 그런다는 게 괴상하기는 합니다만.) 상대방이 자기들의 발언에 분노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발상조차 떠올리지 못합니다. '강남'에서 몰표가 나오면 "자기들의 계급적 이익으로 똘똘 뭉쳤다"고 말하고, 노인들이 새누리당에 표를 주면 "아무 생각이 없이 무조건 1번만 찍는다" 라고 말합니다. '보수'는 신기하게도 자기 이익에 기가 막히게 민감한 사람들과 자기 이익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만 모이기라도 한 것일까요?

      자칭 '진보'라면서 '민주주의'를 떠드는 사람들 입에서 국개론이 나오고 반대파는 '투표를 하기에 너무 어리석다'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는 건 한심한 일입니다. 박근혜가 한심합니까? 친박이 한심합니까? 물론 한심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상대측 지지자들을 친북이라고 비난은 했을지언정 투표권을 박탈하자고 제안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박근혜를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 야채 2016.12.26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복잡한 세상/ 그게 '사실'이라면 김대중과 노무현은 대체 어떻게 당선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당선될 때는 똑똑하게 그들을 선택한 사람들이 그 이후에는 바보가 되기라도 한 것일까요?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노무현이 수돗물에 독이라도 탄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아니면 지금은 '독재와 매카시즘의 광기의 시대를 살아왔던 이전의 유권자'들이 숫자가 더 많고 그 때는 적었을까요? 상식적으로 말해서 그 반대겠지요.

      복잡한 세상님의 결론도 딱히 어떤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내린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었던 건 불과 9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고작 10년 전의 일을 존재조차 잊었다는 듯이 말씀하시는 것은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전 모르겠습니다.

    • 복잡한 세상 2016.12.26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채/ 김대중씨는 당시 보수쪽 내에서 후보를 둘 냈던거 컸던건 누구나 아실테고 노무현씨는 현재 박근혜 대통령 때랑 마찬가지로 위기감 느낀 386세대의 결집이 큰 영향을 줬습니다. 그리고 이후 진보의 분열과 지도자의 부재 등등과 혁신을 표어로 내건 보수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었기에 진보 지지자들 중 정치무관심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믾이 등장했음도 감안함이 맞는게 아닌가 싶군요

      물론 여전히 보스 중심의 정치와 지역감정도 큰 영향을 주었겠죠. 근데 김대중때나 노무현때나 지역감정과 반공주의에 기초했던 보수 해바라기층의 투표는 늘 계속되었다는건 분명한 사실이죠. 그리고 그 둘이 뽑힌건 그 당시에도 아주 이변으로 받아들인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시나보군요. 똑똑한 국민들이 그 둘을 선택한게 아닙니다. 그 말이야 말로 국민이라는 다양한 개인의 모임을 하나의 존재로 일체화시키는 오류를 범하는거죠.

      저도 현재의 대한민국 유권자들에 실망하는 점도 있지만, 지난 10년간의 진보의 집권과 현재와 같은 대대적인 결집을 등등처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모습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대를 막론하고 민중의 선택이 언제나 정당하고 옳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거에는 동의하긴 좀 힘드네요. 그렇게 본다면 민중의 선거로 집권한 나치도 정당화되고 박정희도 정당화되겠죠.

      마찬가지로 민주화 운동이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일일수도 그저 아무의미 없는 평온한 일상이었을수도 있고, 누군가는 일베의 누군가들처럼 적성세력의 사주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여전히 한장ㅇ 투표로서 나타나게 되겠죠. 똑같이 한표를 행사하는거지만 안에 든 생각은 합리적 민주일편이 아니라 천차만별로 다르죠. 이는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 담론이 여전히 분분한 것과 같습니다.

      단지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지난 2번의 진보의 집권은 보수의 분열이라는 기적과 진보의 결집이 만들어 낸거죠. 하지만 그 사실이 존대하는 콘크리트를 부정할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이인제를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괜히 있는게 아니죠. 마찬가지로 내년에 진보측에서 우려하는게 이런거고여

      여전히 제 의견이 비이성적인 계몽주의에 속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어쩔수야 없겠죠. 물론 그 콘트리트 설이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허상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역사와 기록으로 남아있는 여러 인터뷰 등등으로 미루어봤을때 그것이 우물의 독을 푼 xx같이 근거 없는 소리라고 보진 않습니다

    • 최홍락 2016.12.27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 14대 대선에서 880만여표의 득표를 하여 990만표의 김영삼에 패한 후 다음 대선인 15대 선거에서 1000만표 대 990만표로 승리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단순히 이인제가 보수 표를 분산하였기 때문에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당시 여당의 지지층의 숫자나 퍼센티지는 그 전 선거 대비 줄어들지 않았고 김대중 대통령이 보수층인 김종필과 손을 잡고 지지세 확장을 펼친 것이 주효하였지요.) 노대통령의 경우도 보수층인 정몽준과의 통합을 통해 지지세를 확장한 것이 주효하였고요. 그것을 야권이 온전히 자칭 깨어있는 유권자만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다고 믿었다가 깨진 것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이었지요.

      그리고 제가 감히 넘겨집는 것 같지만 야권을 지지한 유권자들을 똑똑한 사람들로 여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반공주의와 군사독재의 향수에 젖은 사람들로 도식을 해놓으시고 유권자가 모두 똑똑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신 것이 이 기나긴 토론이 끝나지 않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몇번이고 말씀드리는데 정의가 독점될 수 있다는 그 착각이 존재하는 한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유경제원에서 요새 밀고 있는 천민민주주의론 같은 담론처럼 말이지요. 어느 유권자건 콘크리트같이 단단한 유권자들이 이유없이 생긴 것이라 포기하면 2012년의 야권의 실패를 반복하겠다는 얘기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지금 야권은 자신들이 집권하면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지요.) 콘크리트 지지율 조차 나름의 합리적 결정일수도 있고 그것을 풀어내려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것이 정치 앨리트의 의무인 것이지요. 수요자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겸손하지 못한 정치 생산자가 어떻게 선택받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야채 2016.12.2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복잡한 세상/ 우선 근본적인 전제 자체의 문제가 있습니다. 진영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만약 진보진영 쪽의 정당에서 부정부패나 개인의 전횡 같은 문제가 나온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중도파 내지 부동층들은 진보진영 자체에 등을 돌리고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경우도 많겠지요. 하지만 진보측 지지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상당수, 아니 대부분은 새누리당으로 달려가기보다는 다른 진보정당들 중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할 겁니다. 놀라운 일은 아니죠. 부정이 있었다는 것은 정치인들 개개인의 문제이지 진보라는 노선이 잘못되었다는 증거는 아니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님 같은 많은 진보측 인사들은 보수 쪽도 마찬가지로 보수라는 노선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인정은 고사하고 과연 인식은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복잡한 세상님같은 많은 '진보'측 사람들의 태도는 "내가 진보에 대한 지지를 계속하는 것은 '굳은 신념'이지만 반대쪽 사람들이 '보수'에 대한 지지를 계속하는 것은 '콘크리트'다" 라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수 쪽에 보수라는 노선 자체에 대한 강한 지지세력이 있는 건 당연히 사실입니다. 그리고 김대중과 노무현이 당선된 점은 '진보' 쪽만이 아니라 '보수' 쪽도 그런 굳건한 지지자들 만으로는 당선될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복잡한 세상님은 그런 지지자들의 존재와 그런 지지자들만으로 당선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뒤섞고 있습니다. 그런 굳건한 지지자들에 대해서라면, 진보측은 어떻습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새누리당은 찍지 않고 진보진영의 정당들 가운데서만 대안을 찾는 굳건한 지지자들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보다 중요한 점은, 과연 복잡한 세상님은 그렇게 진보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까? 둘 다 아니잖습니까.

      노무현이 막판에 지지율이 얼마나 바닥을 쳤고 당시 한나라당이 "개가 나와도 당선된다"고 할 정도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이 대부분 이른바 '콘크리트'였다면 김대중도 노무현도 대통령 당선은 절대 불가능했습니다. 이명박의 압승은 상당수의 부동층이 노무현과 진보진영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뭔가 크게 잘못 기억하시는 것 같은데, 김대중은 대선 당시 당선 가능성이 제일 높은 후보였고, 이회창은 이에 맞서기 위해서 조순을 끌어들이는 등 동분서주했습니다. 노무현도 많은 여론조사에서 앞섰을 뿐 아니라 뒤쳐질 때도 이회창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CIA에서 "R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기도 했고요. 대체 '당시'라는 말씀이 언제를 기준으로 잡으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물론 그것을 이변으로 받아들였건 말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김대중과 노무현이 실제로 당선되었다는 점이고, 그 결과와 그 이후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당선되었다는 결과 자체가 양쪽 진영의 굳건한 지지자들만으로는 당선이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과를 잘 예상했는지 잘못 예상했는지는 중요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민중의 선택이 무조건 옳다고는 물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전 노무현이 당선된 것부터 좋은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노무현이 당선된 건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덮어놓고 친북 노선만 지지하는 빨갱이들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건 아주 다른 이야기입니다. 선거의 기본은 누군가는 선택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박근혜를 선택한 사람들은 다들 박근혜에 충성을 바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문재인과 이정희가 당선되는 게 더 나쁘기 때문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남 이야기 할 것도 없이, 이명박이 당선될 때는 어땠습니까? 많은 진보측 사람들이 정동영을 찍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다녔습니다. 이명박은 나쁜 놈이고, 한나라당은 악당들이고, 우리의 '노짱'은 소중하니까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동영 본인이 대통령감이라면서 지지하는 사람들은 거의, 아니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게 선거인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 이명박이 당선된 대선에서 '보수'쪽 사람들이 "정동영이 대통령으로 얼마나 부적합한지"를 '계몽'하려고 들면 그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보 쪽에서 정동영을 숭배해서 지지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진보 쪽에서 새누리당이 얼마나 안 좋은 집단인지를 '계몽'하려 드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 **를 하면 네가 책임질 거냐?" 라는 식의 힐문 또한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결과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동영이나 문재인 등이 대통령이 되어 쳤을지도 모르는 사고'와의 비교를 통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국민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도 합니다. 정치 세력은 "왜 국민들은 우리를 지지하지 않고 저 놈들을 지지할까? 바보라서?" 라고 묻는 게 아니라 "왜 우리는 저 놈들보다도 국민의 지지를 못 받을까?" 를 물어야 하는 겁니다.

      "왜 국민들은 우리를 지지하지 않고 저 놈들을 지지할까? 바보라서?" 라고 말하는 정치세력은 "왜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사지 않고 품질이 나쁜 저 회사 제품을 살까?" 라면서 자기 회사의 제품이나 마케팅에서 문제를 찾는 대신 "소비자들이 멍청해서 그렇다" 라는 결론을 내리는 기업과 같습니다. 실제로 제품이 좋건 나쁘건 그런 기업은 망해도 싼 것 아니겠습니까?

    • 복잡한 세상 2016.12.27 2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 /

      '수요자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겸손하지 못한 정치 생산자가 어떻게 선택받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씀은 정치에 대해서 유권자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요?

      또한 말씀하신거처럼 김대중씨의 당선은 10만표 정도의 차이로 당선되었다고 하셨는데, 이는 이인제와 이회창의 나눠먹기 및 말씀하신 김종필과의 연합 등의 노력을 하는 운과 노력이 전부 뒷받침 되었음에도 그 정도 차이에 그쳤다고 보는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인제가 무려 약 20%의 득표를 했으니까 말이죠. 따라서 15대 대선에서 보수의 분열을 떨어뜨려놓고 결과를 논하자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이 드네요.

      또한 말씀드린것처럼 당과 정책에 관한 의견은 크게 두가지이지만, 양자를 선택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다양하다고 말씀드린 점에서, 제 정치관을 이미 말씀드린거 같습니다만... 저는 보수나 진보 양쪽에 모두 유권자마다 각양각색의 지지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콘크리트에 집중되어서 좀 희석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보수 지지층은 모두 콘크리트이기에 멍청하다'라고 주장한 적은 없었다는거죠.

      이미 제 가족중에 심각한 양비론자이신 아버지도 계시고, 빨갱이 싫어하고 박근혜를 불쌍하게 여기시는 할머님도 계시는등 이미 다양한 유형을 유권자를 봐왔죠. 당연히 정치에 밝은 사람이 보수를 지지하는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무작정 진보를 지지하는것도 보았겠죠?

      저는 정의가 독점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근데 그렇다고 상대적 정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그 누구도 정의롭거나 정의롭지 않다고 어떻게 비판하겠습니까? 물론 어디에나 비리는 있겠죠. 그래서 양비론자나 무관심자처럼 시크하게 '정치하는 놈들 다 똑같다!'라고 손가락질도 할 수 있겠죠. 근데 그게 옳은 유권자가 할 일은 아니잖습니까? 다르게 생각하실수 있지만,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의를 기준으로 봤을떄 지난 10년은 그 지난 진보의 10년보다 더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꼈습니다.

      의견이 분분할수는 있겠지만, 저는 특별히 그 민주적 정의에 다른 가치를 주입한 적은 없습니다. 만약 이게 근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극단적 계몽주의로 비판받는다면, 님 역시도 그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결국 님도 극단적인 상대적 가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님의 생각을 주장하는것이니까요. 마치 이전의 지식의 권위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한 포스트모던주의가 그 내용에 권위를 부여하는 오류를 저지른 것처럼요.

    • 복잡한 세상 2016.12.28 0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채 / 어째서인지 저를 극단주의자라고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현실적인 정치의 대안은 거의 2종류 뿐이고 때문에 같은 안건을 선택하지만 그 유권자들의 생각은 천차만별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저는 보수 지지자들 모두가 콘크리트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진보지지자가 모두 깨시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3그룹의 비중중에 '왠만하면 진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많이 낮아서 상대적으로 보수가 이득을 보는 추세가 요즘 많이 변화중이라는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과거같이 여전히 진보에 올인하는 전라도와 다르게 부산, 울산, 경남쪽은 더 이상 보수의 무한한 표밭이라고 하기도 묘한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요즘은 부산과 대구에서 민주당의 자리를 주기도 했죠. 아직 지역감정과 반공의 영향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 부분은 오늘날의 유권자들이 더 성숙해졌음을 긍정해야 할 부분이겠군요. 그렇다고 콘크리트의 존재까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요. 말씀하신것처럼 만약 진보가 보수만큼 강한 고정세력이 있었다면, 이회창도 무소속으로 난입해준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20% 이상의 참패를 하진 않았겠죠.

      저는 합리적이던 비합리적이던 어떠한 이유로던지 '철새'들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치란 그들을 공략하는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님은 이것이 각 부동층이 이동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해석하기 나름이겠군요. 뭐 결국은 서울, 경기권 싸움이란 말이 되지만요. 어쨌든 정치적 철새 비중의 증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의 기준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님이 말씀하신것과 다르게 저는 역사와 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조차없이 정치적 신념을 갖는 것을 매우 혐오합니다. 그것은 솔직히 맹목적 신앙같은거라서 언제든 이유없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단지 결과적으로 같은 배를 탔다는 이유로 같다고 하는 것은 오산이죠. 보수든 진보든 그를 지탱하는 신념은 어느정도 합당한 지지대가 필요하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원숭이가 찍은 종목이 올랐다고, 그것이 위대한건 아닌것처럼요. 결론은 신념의 뼈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유사종교와 같은 것이 아니라요.

      소비자와 기업의 논리가 유권자와 정당의 논리에 100% 대입은 안된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최홍락님을 향한 답변에서 말씀드린것처럼, 이는 극단적으로는 유권자들은 정치의 책임이 없다는 위험한 논리로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유권자는 민주정을 이루는 일부로서 그들의 한표를 올바르게 행사할 책임이 있는데 말이죠. 이는 권리만 행사하고 책임은 나몰라라 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괜히 플라톤이 중우정치 드립쳤으며, 일각에서 그나라의 정치인은 국민에 수준에 맞는 사람이 당선된다고 하겠습니까?

      왜 국민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민주정을 할 이유도 없으며, 독일과 일본등 2차대전의 전범국들에게 책임을 요구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 최홍락 2016.12.28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민에게 정치적 결정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자칫 위험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작금의 사태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다른 정부에서 있었던 수많은 정책적 오류를 문제삼아 그를 선택한 유권자의 잘못이니 책임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어느 정치세력처럼 똑같은 부역자일뿐이다라는 식의 논리를 적용시키면 민주주의나 절대적인 가치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끝없는 만인과 만인 사이의 투쟁을 낳을 뿐입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지금 촛불을 들고 나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만든 대통령이니 당신도 공범이라며 침묵을 강요하거나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민주주의의 집회의 자유나 저항권은 애초에 물건너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쁜 정책 내지는 정부의 부작위로 인한 피해를 감내한 것은 유권자인데 이를 넘어 책임까지 져야 하는가라면 저는 그런 계몽주의에 동의 못하겠습니다.

      애초에 정치적 평등이라는 것의 전제 자체가 모든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나온 것이며 다수의 여론을 견제하는 삼권분립과 대의제 등 여러가지 시스템이 합쳐져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 복잡한 세상 2016.12.28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 /

      현재 말씀하시는건 유권자들의 정치적 책임을 변호하기 위해서 유권자를 아무런 주체성도 없는 개돼지로 만드는 행위라고 보여지는군요. 이건 주체성을 가진 개체의 존엄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보여지네요. 정말로 가축마냥 이를끌면 이리가고 저리끌리면 저리가는 존재가 국민이자 유권자라면, 민주주의를 할 이유도 없죠. 오히려 그게 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모순에 빠진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나향욱 마냥 그런 생각을 하신건 아니실거라 생각합니다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미 유권자는 선택을 할 권리가 있죠. 결정을 만드는데 많은 부분 지분이 있다는 말인데, 이는 권리는 좋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지긴 싫다는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의 현세대가 '전쟁은 우리 세대의 책임이 아냐!' 혹은 '일본국민은 군국주의의 피해자일뿐이다!'라고 주장하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도 비판할 수 없습니다.

      국민이 정치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게 명목적인 처벌을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 적도 없습니다. 또한 그 책임의 소재가 유권자들에게 전부 주어진다고 말한적도 없습니다. 다만 분명히 유권자도 결정에 기여한 만큼 책임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국민의 저항권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잘못을 뒤돌리기 위해 움직일 필요가 있으면 움직여야죠. 오히려 손을 놓고 있는것이 더 무책임한것 아닙니까? 왜 일본의 정치를 비판합니까? 움직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니, 이들이 순응하는지 불만이 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렇게 피드백이 없으니, 일본정치에 변화가 없는거겠죠.

      민주주의와 독재는 동전의 양면같다고 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가 그랬고 프랑스의 역사가 이를 말하고 있죠. 그렇기에 저는 같은 이름의 민주주의라도 상대적으로 올바르게 작동하는 정도는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름만으로 정치체제를 구분한다면 극단적으로는 북한도 민주주의죠. 하지만 그들이 정치적 매카니즘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와는 다르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을 민주공화국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가 크지만 민주주의에는 비합리, 비민주적 요소가 섞인 경우가 현실에는 꽤 많이 존재하는 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겁니다.

      저는 이것은 유권자들의 의식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이 해결해줄것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인위적 개입이 민주정신을 깨고 절대자나 신격화되는 인물을 낳는다고 보기에, 누군가를 별로 계몽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시다시피 정치적 신념은 계몽한다고 해서 계몽도 안됩니다. 이는 프랑스 혁명시기에 왕권을 긍정했던 이를 거부했던 구세대 사람들에게도 보여졌던 부분이고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건 결정을 하는 유권자들의 의식수준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이미 많이 말씀드렸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결정에는 절대적 정의가 없죠. 유권자들이 이를 합리적으로 구분하고 결정할 능력을 다수가 갖췄을때 민주주의는 의미가 있는 셈이죠. 그렇지 않다면 민주주의도 다른 소수정과 마찬가지로 권력자의 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제 민주정에 대한 견해가 다소 계몽주의로 비쳐서 계몽주의를 말하시는것 같은데, 저는 언제까지나 유권자의 성숙을 말했을 뿐입니다. 이건 민주정의 이론에 대한 상식이고 기본이죠. 근데 그것도 계몽을 말하는게 아니냐고 반문하신다면, 그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교육이라는게 왜 필요하겠습니까?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한 견해는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아직 대한민국의 민주정이 완벽한 성숙단계라고 보진 않습니다. 다만 성숙을 향해 전진의 관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은 민주정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견해에 대한 오해는 풀렸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님과 저의 현재의 시국에 대한 견해는 다른 것은 분명하네요. 이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좁혀지기 힘들겠지만요.

    • 최홍락 2016.12.28 1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민들을 계몽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민주주의 역시 유권자의 성숙도에 따라 좌우된다는 의견에 따로 이견 없습니다. 각론에 대해서는 다만 다음과 같은 말씀만 드립니다.

      우선 시민들의 성숙도 문제입니다. 성숙도가 높으냐 낮으냐의 판단기준은 무엇입니까? 문자해독률, 경제적인 수준, 평균 학력, 부패인식 지수, 언론이나 정책 피드백에 대한 접근도 등이 상위에 있다면 그 사회의 유권자 수준도 그만큼 높아질 것으로 기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북한이나 고대 국가를 비교 케이스로 넣고 한국의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논하는 것은 좀 핀트가 안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의 비교도 그렇습니다. 일본도 꽤나 무능한 시점은 있고, 현대국가 이후 민중에 의한 '저항'도 임팩트는 떨어지거니와, 화족 출신의 정치인들의 성분 때문에 세습 정치라는 오명도 받는 것도 있지요. 그런데 확실한 것은 일본의 복지 제도나 사회 시스템 구성을 보면 적어도 민중의 먹고 사니즘은 충실히 해결해왔지요. 그 우익의 총리인 아베가 철저히 국익 중심 외교전을 펼치고, 여자 신입사원의 자살 문제에 대해서도 '과로사'라고 명명하는 등 사회 여론에 충실히 응답은 하고 있는데 이런 민주주의가 수준 낮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상기 기준을 충족하는 것을 넘어 군정 및 독재 정부 종식과 정권 교체의 역사 등 한국 국민들의 수준 및 성숙도는 어느 정도 기반이 갖처져 있으며 이제는 앞으로 어떤 국가의 모습을 갖춰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한 단계에서 의견을 조정해 나가는 단계라고 봅니다.

      상대적으로 올바르게 작동하는 민주주의 역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문제입니다. 누군가는 공동체안전과 질서가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평등과 박애가 또 누군가에게는 자유와 부가 소중한 가치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겐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인 서구 선진 사회도 누군가에게는 복잡하고 더딘 관료주의 사회일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대의제 민주주의 기본 질서 체계가 통으로 잘못된 대형 스캔들 문제가 아니고서야 정치적 이슈나 사안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으며 이를 조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해야할 일입니다. 그를 위해 당연히 인정되어야 할 전제가 모든 유권자의 정치적 결정은 그의 배경하에서 그가 내릴 수 있는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점을 깔고 접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대통령도 미국의 트럼프도 요새 인기를 얻고 있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깨닫지 못한 그 생각말이지요.

    • 야채 2016.12.28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복잡한 세상/ 극단주의자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어떤 의미로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문장이 옳지 않다고 지적하는 겁니다.

      > 솔직히 그 이전에 독재와 매카시즘의 광기의 시대를 살아왔던 이전의 유권자들이 딱히 어떤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권력자를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거의 분명한 정황아닌가요?

      만약 '이전의 유권자들'을 "인터넷에 쉽게 영향을 받는 어린 유권자들" 이라고 바꿔놓는다면 동의하시겠느냐는 겁니다. 당연하게도 모든 청년층 진보 지지자들이 논리와 근거로 무장하고 진보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 지지자들을 '인터넷에 쉽게 휘둘린 생각 없는 콘크리트'로 묘사한다면 동의할 수 없을 겁니다.

      두 가지 고려하셔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민주주의는 논리와 근거로 무장한 사람들만으로 정치를 굴리는 체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지지자들이 논리와 근거로 무장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그렇게 모든 순간에 이유를 찾아가면서 정치세력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치노선의 큰 줄기를 선택했을 때도 이유가 없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복잡한 세상님은 그들의 '이유'를 자기 스스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단지 그 이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 대개 이들이 고령층일 확률이 높은거도 사실이며, 지지의 이유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애국과 반공 신앙심과 같은 것이었죠.

      복잡한 세상님은 '반공'을 '신앙'이라고 간단히 치부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복잡한 세상님은 '진보'와 '북한'을 연결시키는 것이 전적으로 불합리한, 순전한 신앙의 영역으로 보이실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진보'를 북한의 위협과 실제로 연결시킬 이유는 충분합니다.

      우선 '진보' 내부에 정말로 친북적인 사람들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건 진보 내에서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올 때 공인된 바이기도 하며, nasica님의 Daum 블로그에도 김일성 정권이야말로 한반도의 정통성 있는 정부였다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극히 일부' 사람들의 문제가 진보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것은 상당히 많은 숫자의 진보진영 사람들이 그런 친북적인 사람들을 감싸기 때문입니다. 명백히 친북적인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진보에는 친북은 없고 전부 보수 세력이 뒤집어씌운 이미지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 저 정도는 친북이 아니다" 이외의 의미로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는 정말 친북적이라기보다 단순히 같은 '진보'라는 이유로 어거지로 감싸는 사람이 더 많은 듯 합니다만, 친북으로 여겨지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한다면 본인들에게 있다고 할 수밖에요. 목수정 사건 때 수많은 진보진영 지지자들이 목수정을 옹호하는 동시에 "진보는 목수정처럼 행동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라는 건 누명이라고 억울해한 일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 생각이 없어 보이냐고 한다면 그것도 진보 쪽입니다.

      더구나 이석기 등의 국가전복 모의가 적발되었을 때 한겨레신문이나 많은 진보측 인사들은 "우리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니! 그런 사람들이 드러나서 다행이다" 라는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라 격렬한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한겨레신문 같은 경우는 제보자의 정보를 이름만 빼놓고 이력을 통째로 공개하다시피 했지요. 이런 모습을 보면 친북적인 집단이 진보진영 내에서 정말 소수에 불과한지 의심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진보진영 전체를 놓고 보면 정말 소수일 가능성이 높아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진보를 친북과 연결시키는 것이 전적으로 불합리한, '신앙'의 영역이라고 매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박이 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그걸 단지 지지자 일부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없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단지 북한과 화해하는 정책을 추구했지 안보를 위험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노무현은 균형자론을 설파하며 한미동맹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미국 정부에 북한의 핵을 인정하라고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다녔습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간첩과 접선하다 체포된 이석기를 사면 복권시킨 것도 노무현입니다. 참고로 체포한 것은 김대중 정부였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간단히 나열해도 이 정도의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에 비해서 경제에 대해서는 대체 뭘 했단 말입니까? 경기가 침체되는 와중에 돈을 풀어서 집값만 올린 것 말고 대체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임기 이후의 경제에 대한 영향까지 고려하면 한미 FTA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게 '진보' 쪽에 흔히 기대할 만한 경제정책은 아닙니다. 진보측 정치세력들을 '복지'나 '서민'과 연결시키는 것보다 '친북' 및 '안보불안'과 연결시키는 쪽이 더 논리가 탄탄하면 탄탄했지 아무 이유없는 맹목적 신념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유권자의 책임 문제에 대해서라면

      > 이는 극단적으로는 유권자들은 정치의 책임이 없다는 위험한 논리로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유권자는 민주정을 이루는 일부로서 그들의 한표를 올바르게 행사할 책임이 있는데 말이죠.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인 및 정치세력은 국민 앞에 책임을 지지만, 국민은 정치세력 앞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국민이 바로 주권자이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일부'일지는 몰라도 결코 다른 '일부'들과 대등하거나 비슷한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유권자는 물론 스스로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자연인으로서 유권자들의 책임을 묻고 비난할 자유는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 세력이나 그 지지자로서 국민을 비난하는 것은 한심한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별로 어려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자연인으로서 소비자들의 행태를 비난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견일 뿐이지만 기업의 임원으로서 우리 제품을 사 주지 않는 소비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복잡한 세상님이나 bru님, 그리고 국개론을 들고 나오는 수많은 진보 지지자들이 국민들을 비난하는 모습이 '자연인으로서 유권자로서의 일반적인 행태를 비난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정치세력의 지지자로서 우리 쪽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인지를 본다면 명백하게 후자 쪽입니다. 양자를 구별하지 않고 '유권자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뭉뚱그려서 '우리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 복잡한 세상 2016.12.28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야채 /

      님이 보수주의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안보에 대해서는 저도 기무사였던 친구에게서 친북단체에 대한 이야기 질리도록 들었고, 80년대 북한이 대학생 사회에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등을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진보 진영에 그때 학생운동 했던 사람들도 많이있고, 그 중에서 과거 진짜 북한에 충성했던 이석기로 대표되는 인간들이 남아있음도 알고 있죠. 흔히 386세대라고 불리는 세대에 북한은 많이 스며든 셈이죠. 현재 진보 진영에 운동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축이기 때문에 내부에 스파이가 많은 진보는 위험세력으로 인지해야 한다는 말도 그런 부분에서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보에 대해서는 보수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진보를 커버치는게 아닙니다. 안보라는 측면은 보수던 진보든 어디든 자랑스럽게 떠벌리기 힘든 영역이라는 겁니다. 당장 군부시절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대표적으로 북한에 총 쏴달라고 했던게 걸렸던건 누굽니까? 그리고 mb때는 그 안보란 이름의 권위 아래 얼마나 많은 불통으로 악명을 떨쳤습니까? 그건 군중 아래 숨어든 북한추종세력이 나쁘니까, mb정권이 했던 행동이 정당화 됩니까? 그리고 국방개혁 2020 예산도 결정적으로는 mb정권아래서 정확히 4대강 예산인 22조만큼 삭감되었죠. 결국은 보수에서 말한 안보로 제대로 믿음을 주었던 적이 한번이나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왜 저는 그 안보를 정치적 무기로 밖에 삼지 않았다고밖에 안 느껴질까요? 그 안보 운운한 박근혜 정부의 안보상태는 대체 어떤지요. ‘진보 = 안보불안’의 안티테제로 보수를 지지한다는건 감정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설득력 있다고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님 말대로 진보측 집권시기에 안보문제로 말 많았던거 인정합니다. 그런데 왠지 님은 그 삽질을 강조하고 그 반대쪽의 실정을 덮을려는 느낌이네요. 오히려 저는 님의 시각이 님이 말하신 '특정 정치세력의 지지자로서 우리 쪽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으로 생각됩니다만.. 저더러 계몽주의에 빠져있는 편향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거 같으신데, 사실 제 입장에서도 님도 크게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지는건 아닙니다. 뭐 결국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돌아가는 이야기지만, 결국 님도 중립이 아니라 보수를 지지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둘러대는건 똑같지 않습니까?

      또한 [우선 민주주의는 논리와 근거로 무장한 사람들만으로 정치를 굴리는 체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지지자들이 논리와 근거로 무장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셨는데, 유권자들이 논리와 근거로 무장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면 안된다고 말하시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라고 보기엔 '나는 해도 되고, 너는 안 됨'이라고 밖에 안 느껴지네요. 그런 논리라면 제가 무슨 생각을 하던 님과 제가 여기서 이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시장논리를 정치논리로 가져오시는데, 몇 년에 한번 치러지는 선거랑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시장경쟁을 동일화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소비자가 제품이 어떤지 아는 방법은 매우 많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지만, 유권자가 정권이 어떤지 아는 방법은 그들을 당선시켜주는 방법 뿐입니다. 상대적으로 실체화된 가치가 아닌 예상과 느낌에 의존하고 표를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장에서는 공격적인 블러핑에 가까운 마케팅만 있고 실체는 부실했던 스베누 같은 기업도 잠깐 세를 얻고 사라지지만, 정치는 그런 정권이 인기를 얻고 세를 얻는다면 어지간하면 임기를 통째로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그 결과가 최악으로 나온 독일이 세계를 전쟁으로 몰고 갔었죠. 시장은 실시간으로 지배자가 바뀌지만 정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소비자였을때와는 다르게 유권자로서의 국민은 그 결정을 신중히 해야할 책임이 작게나마 있기는 있는거죠. 작은 일부면 그만큼의 지분만큼 작은 책임 말입니다.

      [국개론을 들고 나오는 수많은 진보 지지자들이 국민들을 비난하는 모습이 '자연인으로서 유권자로서의 일반적인 행태를 비난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정치세력의 지지자로서 우리 쪽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인지를 본다면 명백하게 후자 쪽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니 저러니해도 솔직히 위와같이 말씀하시는거 보면 결론은 저를 '진영논리'로 모든것을 구분하려는 사람으로 매도하려는것이라고 약간 생각이 드는군요. 솔직히 제가 뭐라하던 이미 님이 생각하는 저는 ‘진보 아니면 다 바보들로 보는 사람’으로 정해져 있는거 같군요. 이미 색안경을 끼고 보는데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합니까? 적어도 저는 콘크리트에 대한 제 의견을 조금이나마 정정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쓴 댓글로 말꼬리를 잡으면서 계속 저를 매도하는 논조를 이어나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를 계속 매도하는듯한 답변을 하신다면, 저도 더 논쟁을 계속할 생각은 없습니다.

    • 야채 2016.12.29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복잡한 세상/ 오해하시기 쉽게 글을 쓴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제 논점을 다시 정리하자면

      우선 저는 진보는 안보 면에서 위험하다는 곳을 인정하고 안보가 중요하다면 보수를 선택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안보를 이유로 보수를 선택하는 것이 충분히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쪽에서 '이유'로 삼는 부분만을 골라서 이야기한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안보가 보수를 선택할 이유가 못 된다는 주장도 충분히 가능하고 그 근거도 여러 가지가 가능합니다. 그게 틀렸으니까 고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더구나 '지나간 세대'의 입장에서는 6.25라는 대사건이 있었습니다. 많은 진보쪽 사람들이 전쟁을 신경쓸 필요조차 없는 과거 문제로 치부하지만, 그보다 더 옛날 일인 일제시대 문제는 지금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 않습니까? 위안부 문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6.25와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크고 중요한 일이었냐고 한다면 6.25 쪽이고, 현재 시점에서 북한과 일본 중에 어느 쪽이 더 큰 위협이냐고 한다면 그것도 북한 쪽입니다. 따라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이유로 삼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일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런 입장에 꼭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유권자의 책임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유권자 전체 내지는 큰 집단의 책임을 묻는 것과 개개인의 언행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다르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정치적 주장을 하는 것은 개인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지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국개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단지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 뿐이지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게 아니고 말입니다.

      또한 사회 현상의 책임과 개개인의 책임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미군이 자신의 변태적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단으로 장갑차를 끌고 나가서 여자아이들을 깔아죽였다는 괴이한 주장이 쉽게 퍼진 것은 사회적 현상이고, 단순히 그걸 믿는 사람들이 우매하다고 비웃는 건 단견이며 왜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쉽게 믿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걸 믿고 퍼뜨린 개개인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건 자기가 책임질 일이지, 사회 현상 탓을 하며 책임회피를 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전 그게 모순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10. 블랑 2016.12.20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뻐꾸기가 이름하나는 기똥차게 잘 팔았으니

  11. 박종필 2016.12.23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고로 저 외제니 황후는 오래 장수하셔서 1920년 7월까지 살아 끝내 독일 제2제국이 1차대전에서 망하는 꼴은 보고 돌아가셨습니다. ㅎㅎㅎ 역시 죽으면 모든게 끝이지만 삶은 언제나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 살고 볼일입니다. ㅎㅎㅎ

  12. 석공 2016.12.24 0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13. ㅁㄴㅇㄹ 2016.12.26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국내의 민주화 세력이 아닌 외세라.....이거 혹시 설마??

  14. 방랑자 2016.12.27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쥔장님께서 티스토리 주소 올려주신데로 갈아탔더니( www월드와이드웹)
    글은 보이는데 사진이 안보여서 엄청 고생했는데
    구글 크롬에 해당주소 ctrl+c, v로 붙여넣기하니까 문제없이 잘 보이네요.
    혹시 저처럼 컴맹이어서 사진안보이시는 분들은
    구글 크롬에 붙여넣기하세용!(나만 모르는 건지 모르겠넹^.^)
    글구 나폴레옹 3세가 포로생활했다던 빌헬름쇠허(Wilhelmshöhe)성 인터넷에서 자세히 좀 찾아보려는데
    "빌헬름쇠허(Wilhelmshöhe)"로는 찾기가 어렵네요.
    "빌헬름스회헤(Wilhelmshöhe)"로 검색해 보시면 더 많은 사진검색가능하구요
    얼마전 해당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네요 요기 들어가 보시면 www.germany.travel/unesco (독일관광청)
    독일의 보존 가치가 높은 교회, 수도원, 고성과 정원, 산업유산, 자연 등을 이미지, 비디오 및 360˚ 파노라마 등으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하네요.

  15. Ark 2016.12.27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사족이지만, 최순실 사태로 인해 더이상 '차악 논쟁'은 무의미 해졌다고 봅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놈을 뽑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원칙을 어긴 놈을 처벌하려고 할때 수사를 방해하고,
    비호하고, 위증을 모의하고, 증거인멸시간을 벌어주는 '놈들을 뽑아주면 안되는' 겁니다. 차악선택 유무에서
    '원칙수호 유무'로 한단계 더 발전한 셈이죠.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배신투표 현상'도 최순실사태로 설명이 되는데, '최순실 사태 이전까진' 정치의 승리공식은
    "잘 나눠먹는것" 이였습니다. 국개론을 피던 유권자가 가장 국개스러운 이를 뽑아주는 이유는, 그사람이 어떻게
    되던 결국 이길꺼란걸 알기 때문입니다. 나눠먹기를 못하는 정치인은 시간이 갈수록 세력이 정체/축소되지만,
    잘하는 정치인은 갈수록 세력이 커지기 때문이죠.

    우습게도, 이때문에 세력이 커져가는 정치인은 어떻게든 '책임감있게?' 사정라인과 언론을 장악해야만 하는거고
    (안그러면 나눠먹기 과정에서 저지른 온갖 비리/청탁/강요/압력 등이 드러나 세력전체가 풍비박산 날테니),
    권력/세력이 약한 나머지에겐 "진실에 가까워지려 하면, 엄중한 책임(=보복)이 따른다." 는 원칙을 강제해야만 하죠.

    결국 최순실사태는 위에서 말한 '차악과 나눠먹기, 진실과 떨어진 중립 강요' 에 의해 발생했고, '인사권'을 누구에게
    쥐여주느냐에 따라 나라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도 알려줬습니다. 실제로 정당지지율이나 대선후보지지율도,
    차악선택/나눠먹기를 부르짖던 쪽은 큰폭으로 하락하고, 원칙수호/불의와 타협않는 의로움을 외친 쪽이 상승한걸
    볼수있었죠.

    한가지 걱정되는 점은, 종편에 오래노출된 사람은 '진실에 가까워지려는 놈들이 전부 뒷감당을 해야한다'는 원칙을
    갖게된다는 겁니다. 최순실사태와 박근혜 탄핵소추이후, 2년넘게 묻혀있던 세월호 진상조사에도 이제나마 힘이
    실리고 있는데, 이전까지 나왔던 다양한 조사방해 정황(해경 검찰수사 외압정황, 고의적 선체훼손 정황, 고질적인
    자료제공 거부 등) 에 대해 침묵하는 주제에, '수천억원짜리 교통사고'가 왜 정부 잘못이냐며, 뒷감당 운운하는게
    정말 한심해 보이더군요...

    p.s. 정부의 초동대처가 개판이였던건 다들 아는 내용이고, 무엇보다 교통사고로 한명만 죽어도 '가해자가
    누구고 피해자가 누구인지, 사건정황은 어떻게 되는지' 빠짐없이 조사하는게 검찰의 의무이자 원칙인데,
    300명 넘게죽은 세월호의 인양조사를 못마땅해하고 관련자 처벌을 방해한 정부가 아무책임 없다는게 우습네요.

    • 나삼 2017.01.03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월호 인양을 방해한것은 유족측 이었습니다. 그리고 관련자 처벌은 제일 큰 책임이 있던 선장과 항해사들...그리고 선주 및 회사에 대해서 처벌을 내렸는데요..처벌을 방해했다?? 어떤 처벌을 방해했는지 알고 싶네요.

    • 수비니우스 2017.01.04 0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삼님 같은 분들은 체육관에서 공개투표를 해도 일단 어쨌든 투표를 했으니 민주주의 아니냐고 하실것 같네요. 처벌은 이미 했다, 어쨌든 인양하려는거 반대했다... 일본이 "우린 이미 사과를 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네요.

  16. Due 2017.01.03 1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칭 '진보'라면서 '민주주의'를 떠드는 사람들 입에서 국개론이 나오고 반대파는 '투표를 하기에 너무 어리석다'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는 건 한심한 일입니다. 박근혜가 한심합니까? 친박이 한심합니까? 물론 한심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상대측 지지자들을 친북이라고 비난은 했을지언정 투표권을 박탈하자고 제안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박근혜를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라는 말씀은 맞지 않습니다. "상대측 지지자들을 친북이라고 비난 했을지언정 투표권 박탈하고자 제안하지 않은" 이유는, 친북이라고 비난만 하면 너무도 쉽게 더 많은 표를 얻을수 있는, "언제나 이기는 게임" 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힘도 없는 놈들, 그냥 종북 놀이나 하면서 박근혜와 사진이나 찍어대면 당선되고 자기 마음대로 할수 있고, 언론은 탄압하여 박살내고, 실제로 그렇게 했고요, 또 블랙리스트라든가 통진당 해체, 국정원 개입등등등 '투표권 박탈'보다 더한 악랄한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데도 "투표권 박탈은 안한다"라면서 무슨 민주주의의 구성원으로 상대방을 인정하는 "대인배"인양 보수를 옹호하는거 정말로 말이 안됩니다.

    박근혜와 친박 + 새누리가 한심하냐고요? 아니요, 전혀 한심하지 않습니다.
    저는요 . 정말 정말 정말 무섭습니다.
    한심하다 뭐하다 하면서 무슨 구름위의 신선처럼 떠있느냥 평가해봤자, 힘없는 버러지 백성들 아닌가요?
    그럼에도 좋다고 네네 하면서
    무슨 "그래도 투표권은 안빼았다" 라는 방패막을 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은 살아날겁니다. 뭐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냥 카운트 다운이나 하고 있는거에요. 언제쯤 다시 해먹을수 있을까.....

    그리고 그다음 어떻게 짖밟아 버리면 될까???

    잠시만 참자~~~ 라구요.

    참여정부 실정에 대한 선택??? 그래서 요즘 경제와 국방이 그모양이요?

    참여정부의 실책으로 박근혜를 뽑았나?

    "이명박 이 엉망이나 박근혜로 정권교체 해야한다"라는

    아주 절망적인 국민들의 "선거권을 박탈하지 않는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정~~~~~말 똑똑하고

    현명하기 그지없는 선택이 었었던게 아니라???




  17. Due 2017.01.03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채님, 그래서 주장하시는 바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 정도 문제가 있으니 보수가 최고다!!! 인가요?

    지금 보수가 해놓은 꼴을 보고도 그런말씀을 하십니까? 이명박 각하 이후로 안보, 경제, 외교등 뭐가 잘된게 있지요?

    뭐 강대국이 아니니 나라밖 사정에 따라서 경제든 뭐든 바뀔수 있다는거 인정합니다.

    하지만, 뭘 잘한게 있다는거에요? 보수정부가 지금? 거기에 부패에 대하여 한번

    답변을 해보세요

    그러니깐 야채님의 글은

    진보가 "1만큼"의 잘못을 한 무능력 자들에 불가하니

    "100 만큼"의 잘못을 하는 보수가 더 옳고 훌륭하다 라고 방패막이를 하는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 최홍락 2017.01.04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대측 지지자들을 친북이라고 비난 했을지언정 투표권 박탈하고자 제안하지 않은" 이유는, 친북이라고 비난만 하면 너무도 쉽게 더 많은 표를 얻을수 있는, "언제나 이기는 게임"에서 두 차례의 대선을 이기고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이긴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요. 그리고 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굳건했던 것인지 의문이 드네요.

      상대방이 끝까지 없어져야할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고 없어지지 않는한 제대로된 민주주의는 없다고 믿는건 자유지만 그렇게 하면 앞서 말씀하신 악랄한 정치세력들의 사고 방식이 딱 그런거였죠. 반대파에 대한 탄압, 자기 세력 외의 다른 세력과 그 가치관은 악이며 방해물일 뿐이라는 사고방식. 바로 21세기에 아직도 정치권에 남아있는 박정희식 사고 방식이지요. 그리고 그 가치관의 기초위에 선 국정운영방식의 결과가 지금 이모양이고요.

      그럼 이걸 앞으로도 계속할거냐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죠. 이는 어느 세력이 더 선하냐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체제를 정상적으로 끌고갈 수 있는가의 문제에요.



    • 최홍락 2017.01.04 1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드릴 말보다 더 잘 정리된 칼럼이 있어 소개합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지 않는다.

      1. 권력 쟁탈전의 패자에게 승복은 아주 값비싸고 위험한 선택이다. 어떤 권력 쟁탈전, 예를 들어 전쟁이 방금 막 끝났고, 전멸하지는 않을 정도로 우리가 졌다고 하자. 이제 우리는 승복과 불복 중에 선택해야 한다. 권력을 저자식이 지금부터 독점할 것이고 그 힘으로 우리를 몰아세울 것이므로, 우리와 승자의 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벌어진다. 아예 죽일 수도 있고.

      고로 패배자인 우리는 즉시 불복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패배한 직후가 다음 전쟁을 일으키기 가장 좋은 시점이다. 물론 방금 박살난 우리가 다음 전쟁을 이길 확률은 높지 않다. 하지만 권력이 넘어갔으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승률은 더 떨어진다. 승자에게 온전히 운명을 내맡기느니 이판사판 재도전이 그나마 낫다. 이렇게 하여 권력 쟁탈전은 끝없는 투쟁의 연쇄로 빠져든다.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 쟁탈전이 ‘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이어서 ‘승리 배당’도 ‘패배의 비용’도 너무 크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지도에서 사하라 이남 국가 몇곳을 골라서 구글링을 해 보면, 높은 확률로 내전 소식을 볼 수 있다. 내전을 겨우 진정시키고 선거를 치르면, 진 쪽이 대단히 합리적이게도 즉시 불복하고 다시 내전으로 간다. 이걸 끝도 없이 반복한다.

      이 투쟁의 연쇄는 승자에게도 썩 반갑지 않다. 이겨 봐야 통치는 불가능하고, 내전으로 황폐해진 영토에서 권력의 수익률도 나빠진다. 만일 투쟁의 연쇄를 끊어낼 수 있다면 승자도 어느 정도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다른 말로, 승리 배당을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게 오히려 남는장사가 된다.

      2. 민주주의란 이 승리 배당을 낮추는 시스템이다. 선거의 승자는 헌정 체제와 법치주의에 구속을 받고, 잡은 권력을 언제고 내려놓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승리 배당이 크게 떨어진다. 반면 패자는 안전과 재도전 기회를 보장받으므로 패배의 비용이 제한된다. 이제 승복이 불복보다 합리적인 선택으로 바뀐다.

      민주주의는 승리 배당과 패배 비용을 둘 다 낮춤으로써 승패 마진을 좁힌다. 그렇게 해서 승자는 헌정 체제에 구속되고 패자는 결과에 승복하도록 유인한다. 민주주의는 승자와 패자가 모두 만족할 배당 제한을 제도로 보장해 주므로, 일정 소득 이상인 국가에서는 안정성이 대단히 높다.

      그러므로, 승패 마진을 지나치게 키우는 시도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지 않는다. 사람의 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비용이다(저 문장을 전경과 으쌰으쌰 하다가 피부 좀 찢어지자 정도로 쓰신다면야 논외이다마는, 그런 의미로는 안 쓰는 게 좋다). 한 번 쟁탈전에 거는 비용이 커질수록 승패 마진이, 따라서 배당이 커진다. 배당을 낮춰서 쟁탈전이 끝나도 피 흘릴 일이 없도록 하는 게 민주주의다.

      배당이 임계점을 지나 높아지면 게임의 법칙은 다시 ‘전부 아니면 전무’에 가까워진다. 이러면 승자도 헌정 체제와 법치의 구속을 벗어버리고픈 유혹에 더 강하게 노출된다. 그러므로 배당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게임의 법칙에 따라 연쇄 반응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지 않지만, 피는 민주주의를 먹고 자란다.

      3. 물론 현 시국이 ‘배당 증가의 연쇄 반응’을 걱정해야 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이를테면 계엄령에서 이어지는 친위 쿠데타 시나리오는 터무니없이 극단적인 배당 증가 시도인데, 이런 게 지금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주장도 진지한 실천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답답함의 표현에 가까워 보인다. 정색할 필요 없이 웃어넘길 얘기기는 하다.

      다만, 지금은 피를 흘릴 상황이 아니지만, 저 말 자체는 맞는 말이라는 분들은 제법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한 판 싸움이 아니다. 이 말은 민주주의가 지루하고 오래 걸리는 과정이라는 의미로도 사실이지만, 민주주의는 한 번 쟁탈전에 거는 배당을 낮추는 시스템이라는 의미로도 진실이다.

      좀 벗어나는 얘기지만, 정권을 잡으면 종북좌파를 다 쓸어버리자거나 친일파 잔재를 싹 청산하자는 식의 주장도 같은 이유로 민주주의에 이롭지는 않다. 둘 다 게임의 배당을 좀 과하게 높이는 것 같다.

      4.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출처가 약간 애매하다. 아마도 토마스 제퍼슨의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로 매순간 새로워진다”에서 따온 말이지 싶은데, 1960년 5월 <사상계>에 “민주주의의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한다. 4.19 때다.

      전제정에서 민주정으로의 이행기에는 이 말이 성립할 수도 있다. 체제변동은 큰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피를 흘리며 달성되는 경우가 적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 수준의 국가가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거나 헌정 체제를 복원하는 작업에서라면, 피는 좋은 징후가 전혀 아니다. 상황에 걸맞지 않게 고비용이다.

      그래도 무언가 민주주의에 대해 멋있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저 말과는 정반대이면서 몇배는 훌륭한 대안을 정치학자 애덤 셰보르스키가 내놓았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서로 죽이지 않도록 하는 체제다.” 나는 이 말이 배당 제한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을 절묘하게 포착할뿐더러 멋으로만 따져도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 수비니우스 2017.01.04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님 인용하신 칼럼 출처가 어디인가요?? 궁금해요. 칼럼 내용 꽤 괜찮은것 같아요.
      인용하신 칼럼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합리적이게 하는 것은 저항인데, 우리나라는 저항이 부정적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쌓이고 쌓이다가 결국 한번에 터져서, 결국 평소의 저항이 모인 값보다 더 큰 희생을 치루게 되는 것 같아요.

    • 최홍락 2017.01.05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146076662136128&id=100002014156359

      링크주소입니다.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페이스북입니다. 이 내용을 시사인에서 볼 수 있을까 검색해봤는데, 기사로는 안나왔습니다. 그래도 천관율 기자의 좋은 글이 많이 있으니 시사인에서 천관율을 검색하셔서 좋은 글 많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저항이 부정적으로 취급된다기보다는 윗선의 명령에 '왜'라는 질문과 피드백이라는 다소 힘든 과정을 싫어하는 문화라고 해야 더 정확할 듯 하네요. 윗사람의 말이니 따라야 한다는 문화(또는 그 사람의 체면을 지켜줘야 하니 들어주자는 온정주의)가 기저에 깔려있는데, 이게 좋은 점도 있고 나쁜점도 있지요. 다만 이 문화의 좋은 점은 윗 대가리가 취하고 나쁜 점은 밑의 사람이 덮어쓰는 문화가 누적이 되면 결국 님이 말씀하신 저항권의 상황까지 가는 것 같네요.

    • 야채 2017.01.11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Due/
      "보수에 속하는 정치세력은 언제나 더 옳고 훌륭하다"

      "보수라는 노선을 지지하는데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제가 Due님 같은 많은 진보 지지자들을 비판하는 부분은 바로 이 점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점은 진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라는 노선을 지지한다"

      "진보에 속하는 정치세력은 무조건 옳다"
      는 당연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저는 진보라는 노선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폭력혁명을 일으키려고 하며 북한의 간첩과 접선하는 세력도 '진보'라는 이유로 무조건 감싸안는 것은 반대합니다. 보수층에 투표하는 사람들의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 운운하는 주장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Due님이 무섭건 한심하건 분노하건 그런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진보가 선거에서 이기는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구름 위로 올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눈을 뜨면 됩니다. 진보측 인사가 대통령으로 연달아 재임한 것은 채 1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고, 그래서 국회에서 여소야대가 실현된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물론 이런 여소야대가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ue님은 선거가 "무조건 그들이 이기는 게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더민주와 국민의당도 모두 '그들'이고, 김대중과 노무현도 모두 '그들'이었을까요?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새누리당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지금 새누리당이 정말로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를 확신하고 웃으며 기다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십니까? 어떻게든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가려고 우왕좌왕하는 악다구니가 아니고 말입니까? 그건 사실 지난 대선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는 당내에 박근혜라는 '이명박과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워 온' 명백한 대안이 있었기 때문에 이명박이라는 배에서의 탈출 과정이 조용했던 것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 때의 한나라당도 과거 열린우리당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진보 내에는 과거 선거에서 '진보'가 승리한 것은 진보 지지계층이 많아서가 아니라 보수가 삽질을 했기 때문이라는 회의론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삽질을 박근혜가 아주 거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총선의 시점에서도 그 삽질은 이미 야당의 승리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는데, 이후 드러난 삽질은 그보다도 훨씬 거대합니다. 다음 선거에서 진보가 (스스로 맹렬하게 삽질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불리할 이유도 없고, 대통령 탄핵안도 가결되었고, 특검의 조사나 헌재의 판결이나 박근혜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정황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체 이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정의가 실현된다고 축제라도 벌일 만한 상황 아닙니까?

    • 수비니우스 2017.01.11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 님이 말씀해주신 맞는 말 같아요. 제가 우리나라에서 저항이 부정적으로 취급된다고 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개인의 권리를 추구하고 보장받으려고 하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쉽게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개인주의로서 개인의 권리를 추구하고 보장받으면 다른 사람이 그에게서 받을 이익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죠. 사실 그건 처음부터 부당한 이익이었는데 말이에요.

      야채/ 문제는 많은 나이든 사람들이 박근혜는 비판해도 박정희는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해할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노력으로 이어지는 다리 자체를 끊어버리고 어거지만 부립니다. 박근혜가 탄핵가결로 불명예퇴진해도 '박정희 보수의 진정한 후계자'를 내세운 사람은 또 나올 것이고 거기에 많은 나이든 사람이 생각없이 투표할겁니다.
      또 진보 중 일부만 타락한 종자들임에도 진보 전체가 쓰레기라고 매도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여기서 섣불리 일부의 타락을 인정하면 전체의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부의 타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인정하고 자정해야 하겠고 그건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무적이지만, 그게 쉽지가 않아요. 잘했다고 정당화해도 된다는게 아니라 정말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 야채 2017.01.12 0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비니우스/ 글세요. 수비니우스님은 진보 쪽에서 '타락한 종자들'을 감싸안는 것은 진보 전체의 몰락을 염려한, 명백한 계산과 의도에 따른 행동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그대로 긍정하고 계시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수비니우스님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하신 보수 쪽 사람들도 바로 그런 종류의 계산과 의도가 있습니다. "여기서 박근혜가 밀리면 빨갱이들이 집권한다" 라면서 박근혜의 문제에 대해 무조건 눈을 감으려는 태도는 진영만 바꾸면 수비니우스님이 진보진영에 대해서 묘사하신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이건 '계산과 의도'라기보다 감정적인 '두려움' 쪽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진보 쪽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 진보의 몰락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외부에서 봐서는 선뜻 이해는 가지 않습니다. 진보는 이미 6공화국에서 두 차례나 대통령을 배출했고, 현재 총선에서 압승한 세력이 아닙니까? 총선에서 패했을 때조차도 존폐를 걱정할 상황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북한과 연계된 부분만 끊어버리면 그 밥에 그 나물인 보수 정치세력에 신물이 난 중도층 내지 보수층 일부까지도 충분히 끌어안을 수 있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척 보기에도 지금 보수 쪽에는 인물이 없지 않습니까.

      '박정희 보수의 진정한 후계자'를 말씀하시는 것도 좀 의아합니다. 그건 박근혜 개인만의 타이틀이지 보수 후보의 일반적인 타이틀이 아닙니다. 6공화국에서 보수쪽 대통령은 (김영삼까지 포함시키면) 4명인데, 노태우도 김영삼도 이명박도 '박정희 보수의 진정한 후계자'를 자처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취급되지도 않았습니다. 후보였던 이회창이나 이인제도 마찬가지였고요. 사실 박근혜를 제외하면 누군가의 후계자로 취급되지도 않았습니다. 박근혜의 몇 년 안 되는 임기가, 그것도 박근혜의 평가가 이 정도 땅에 떨어진 시기에 왜 이렇게 역사의 철칙이나 되는 듯이 취급받는지 모르겠습니다.

  18. 2017.01.27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 란 특집은 안 하나요?

  19. DUE 2017.02.06 1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채님/

    "삽질" 과 "악행"은 다릅니다

    정책을 하다가 잘 안맞아서 크게 나라가 손해를 보았다라든가 하면 그것은 "삽질"

    입니다. 정책이 잘못되어 피해자가 많으면 삽질이지요.

    하지만, "블랙리스트" 같은거 만들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최순실 농단 사건 같은, 나라 전체를 무슨 자기 사유 금고 처럼 여기는

    이정도의 사안이면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눈감고 같이 챙겨 먹은 행동들은

    "삽질"이 아닌 "악행"입니다

    그냥 정책이 실패해서, '삽질'을 해서 선거에서 패배하는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끝끝내 살아 남아 있다는게

    그리고 이렇게 옹호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신기하지는 않으신지요.......

    이정도 까지의 일을 저질렀음에도

    그냥

    간판만 바꾸면 살아 남을수 있다는것

    그냥 뭐 "개혁쇼" 한번 하면 살아 남을수

    있고 그 사람들 그대~~~~~로 권력을

    유지하며 지금이 아니더라도 차기에 다시 대선이고 총선이고 할수 있다는게.....

  20. DUE 2017.02.09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DUE

    야채님/

    축제라도 벌일만한 상황이라니요, 한국의 정치 상황을 너무나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러니깐, 어떤 정책이 (뭐 준비가 부족했건 어쨌건 잘해보려고 했던게)

    실패하여 경제 성장율 등이 안좋아 그런 영향으로 정권이 교체되는데

    진보쪽으로 교체될것 같다더라 라고 하면 축제가 되겠는데

    그게 아니라

    '국정원'을 동원한 선거 개입, 블랙리스트등에서 보여진 파시즘적인 문화, 언론 통제

    언론 장악을 통한 비판 기능 삭제 및 여론 조작

    정관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국정 농단, 부패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려고한 행위들에 대하여 그리

    '열린마음'으로 단순한 '삽질'정도로 이해되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절대 질수 없는 게임이라는것은

    이모양 이꼴의 상황, 그러니깐 정책 실패로 쪽빡 찼다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려고 한 위의 행위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옹호 받을수 있다는겁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한 이 조직이 그대로 생명을 연장하고

    민주주의의 방법, 선거를 통하여 후대에 다시 대권을 가져가

    다시 같은 '민주주의 파괴' 행위를 한다는것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총선에서 패배하는 수준으로 논평되는것이 아니라

    그런 세력은 없어져야 합니다. 진보/보수의 논의는

    정책의 방향성등으로 결정되어야 하는것이지

    "민주주의 파괴 행위" 역시 무슨 보수의 성향이니 존중 받아야한다는

    그런식의 논리는 위험하고 무책임 합니다

  21. 232 2017.04.08 1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얼간이가 집권하고 몰락하는 과정을 겪고 이 글을 보니 의미가 더욱 새롭네요. 외새가 아닌 국민의 손으로 이루었다는 점에서 오늘의 우리 민주주의가 저 당시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2016.12.18 03:50

IV


병사들의 사격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지키던 시민들도 약 15분간 응사하고 있었는데, 양측 모두 사상자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다 갑자기, 마치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먼저 보병대에서, 이어서 기병대에서도 비정상적으로 위협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다.  부대들이 갑자기 뒤돌아 선 것이다.


쿠데타를 기록한 역사편찬가들은 상티에 가(Rue du Sentier) 모퉁이의 열린 창문으로부터 병사들에게 총탄 한 발이 날아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노트르-담-드-르쿠브랭스 가(Rue Notre-Dame-de-Recouvrance)와 푸와소니에르 가(Rue Poissonnière)의 어떤 집 지붕으로부터 발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마자그랑 가(Rue Mazagran)의 모퉁이의 높은 집 지붕에서 발사된 권총 사격이었다고도 한다.  그렇게 총탄의 발사 장소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지만, 이론의 여지가 없는 부분은 이 문제의 탄환, 어쩌면 문을 꽝 닫는 정도의 소음을 냈던 이 탄환이 옆 집에 살던 치과의사에게 맞았다는 점이다.  질문은 결국 이것으로 귀결된다.  그 대로변 집들 중 하나에서 발사된 권총이나 머스켓 소총의 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는가 ?  이것이 사실인가 아닌가 ?  많은 증인들은 그 점을 부인한다.






(사건이 벌어진 현장의 주요 도로명입니다.)




만약 총탄이 정말 발사되었다면,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그것이 원인이었는가, 아니면 그저 신호였는가 ?


어쨌건 간에, 이미 언급한 대로, 갑자기 기병과 보병, 포병들이 길가 인도에 늘어선 구경꾼 인파들을 향해 갑자기 뒤돌아섰다.  그러더니,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고 또 예상하지 못 했지만, 아무런 동기 없이, 아침의 그 악명 높은 경고장에 쓰인 것처럼 아무런 경고도 없이, 살육이 시작되었다.  살육은 짐나즈 극장(Gymnase Theatre)으로부터 뱅 시누아(Bains Chinois, 중국 목욕탕이라는 뜻)까지, 그러니까 파리에서 가장 부유하고 인파도 많은, 가장 번화한 거리 전체에 걸쳐 일어났다.






(뱅 시누아(Bains Chinois)는 1787년 지어진 파리의 유명 공중 목욕탕입니다.  1852년에 매각된 뒤, 그 다음해에 다른 투자용 건물을 짓기 위해 철거되었습니다.)




군대는 시민들을 근접 거리에서 쏘아 쓰러뜨렸다.


그건 무시무시하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 비명소리, 하늘을 향해 치켜든 팔들, 그 경악과 공포, 사방으로 달아나는 군중, 보도에 부딪힌 뒤 집 지붕까지 튀어 오르는 수많은 총알들, 순식간에 거리에 가득 쓰러진 시체들, 입에 시가를 문 채로 쓰러지는 젊은이들과 벨벳 가운을 입은 채 총을 맞은 여자들...  서적 판매원 두명은 자신들의 서점 문간에서 자신들이 뭔 일을 저질렀길래 이런 일을 당하는지도 모르는 채 살해되었다.  그 속에 누가 있든 상관없이 죽어버리라고 지하실 환기창에 대고도 사격이 가해졌으며, 시장은 포탄과 총알로 난장판이 되었다.  살랑드루즈 호텔(Hôtel Sallandrouze)은 폭발탄 포격을 받았고, 메종 도르(Maison d'Or, 황금의 집이라는 뜻)는 포도탄 포격을 받았으며, 카페 토르토니(Tortoni)에는 병사들이 난입했다.  대로에는 수백 구의 시신이 널려 있었고, 리셜리외 가(Rue de Richelieu)에는 피가 냇물처럼 흘렀다.






(카페 Tortoni는 당시 파리 시내 문인들과 멋장이들이 모이던 명소였습니다.)




나레이터는 여기서 이야기를 잠깐 멈춰야겠다.


이 이름없는 행위들의 존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나 자신을 기록관이라고 선언한다.  나는 범죄를 기록하고, 사건의 당사자를 호명한다.  내 역할은 거기까지이다.  나는 루이 보나파르트를 소환한다.  나는 생-타르노(Saint-Arnaud), 모파(Maupas), 모레(Moray), 마냥(Magnan), 카를레(Carrelet), 캉로베르(Canrobert), 그리고 레벨(Reybell), 즉 보나파르트의 공모자들을 소환한다.  나는 그 처형자들, 그 살인자들, 그 증인들과 희생자들, 달아오른 대포와 김이 나는 군도, 술에 취한 병사들과 유족들, 죽어가던 사람들, 살해된 사람들, 그 공포, 그 유혈, 그리고 그 눈물들을 모두 문명 사회의 법정으로 나오라고 소환한다.


단지 나레이터일 뿐인 이 사람의 말을, 그 나레이터가 누구이든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생생한 사실들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 사실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을 하도록 하게 하자.  우리는 그 증언을 듣도록 하자.





(생-타르노는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습니다.  권력 장악을 위해 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한 이 반란 공모자는 불과 3년 뒤 크리미아 전쟁에서 프랑스군 사령관직을 수행하다 위암으로 병사했습니다.)




V


우리는 증인들의 이름을 인쇄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러는지는 이미 밝혔다.  하지만 독자들은 진실의 진지하고 신랄한 억양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증인은 이렇게 증언한다. 


"내가 인도 위를 세 발자욱 걷기도 전에, 그 옆으로 행군해가던 부대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남쪽을 향해 돌아섰고, 머스켓 소총을 들어올리고는 즉각 공포에 질린 군중들에게 발포했어요.


그 사격은 20분 정도 쉬지 않고 계속 되었습니다.  가끔씩 훨씬 더 우렁찬 대포 포성도 울렸어요.


첫번째 일제 사격 때, 저는 땅바닥에 몸을 던지고는 인도 위를 마치 뱀처럼 기어서 아무 문이나 열려 있는 첫번째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건 와인 가게였어요.  산업 시장(Bazaar de l'Industrie) 바로 옆의 180번지였지요.  저는 거기 들어간 마지막 사람이었습니다.  사격은 계속 되고 있었고요.


거기에는 약 50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여자 5~6명과 아이 2~3명도 있었고요.  세명의 불쌍한 친구들은 들어올 때 이미 부상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그 중 2명은 약 15분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 죽었고, 나머지 1명은 제가 4시에 가게를 나올 때도 살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결국 그 남자도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군 부대가 어떤 사람들에게 발포한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가게에 모인 사람들 중 몇몇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엔 여자도 몇몇 있었습니다.  그 중 2명은 그 구역에 저녁거리를 사려고 나온 것이었어요.  변호사의 어린 서기도 있었는데, 그는 고용인의 심부름을 나왔다가 거기 오게 된 것이었지요.  증권거래소(Bourse)의 주식 중개인 2~3명, 그리고 집 주인도 2~3명 있었습니다.  초라한 셔츠 차림이거나, 혹은 아무 셔츠도 입지 못한 일꾼 몇 명도 있었습니다.  그 가게로 대피한 불행한 사람들 중 하나가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약 30세 정도 되는, 회색의 짧은 외투를 입은 금발의 남자였습니다.  그는 포부르 몽마르트르(Faubourg Montmartre)에 있는 그의 가족과 식사를 하러 그의 아내와 함께 가던 중에 군 부대가 거리를 가로질러 행군하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게 된 것이었지요.  처음에 사격이 시작되었을 때, 그와 그의 아내 둘 다 쓰러졌습니다.  그는 일어나 그 와인 가게로 끌려 들어왔지만, 그의 아내는 옆에 없었습니다.  그의 절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뭐라고 달래봐도 그는 계속 아내를 찾으러 달려나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달라고 고집했지요.  밖의 거리는 포도탄 포격이 휩쓸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1시간 동안 그를 우리와 함께 있도록 붙잡아 두는 것 뿐이었어요.  다음 날, 저는 그 사람의 아내가 결국 살해되었고 그 시신은 시테 베르제르(Cité Bergère)에서 발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약 20일 뒤에, 저는 그 불쌍한 남편이 보나파르트에게 복수하겠다고 협박했다가 체포되어 브레스트(Brest) 항구로 보내진 뒤, 결국 카이엔(Cayenne)으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와인 가게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왕정주의에 찬성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 저는 공화주의자라고 밝힌 사람은 딱 2명을 보았는데, 하나는 전에 레폼(la Réforme, 개혁이라는 뜻)이라는 곡을 작곡한 므니에르(Meunier)라는 나이든 작곡가와 그의 친구 딱 둘이었습니다.  약 4시 쯤 되어, 저는 그 가게를 나왔습니다."






(카이엔은 적도 인근 남미 프랑스령 식민지인 기아나에 있는 일종의 감옥섬으로서, 흔히 악마의 섬(Île du Diable)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루이 나폴레옹이 집권한 1852년, 주로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해 개설되었고, 드레퓌스 사건의 그 드레퓌스 대위도 여기서 복역했습니다.  사진 속의 오두막이 드레퓌스가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영화 빠삐용의 배경도 바로 카이엔입니다.)




마자그랑 가(Rue de Mazagran)에서 권총 발사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증인 하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 권총 소리는 병사들에게 모든 가옥과 그 창문에 일제 사격을 퍼부으라는 신호였습니다.  그 무차별 사격은 최소한 30분간 계속 되었어요.  사격은 생-드니 대문(Porte Saint-Denis)부터 카페 그랑 발콩(Café du Grand Balcon)까지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곧 포격도 시작되었지요."


또 다른 증인도 말한다.


"3시 15분 경, 이상한 움직임이 일어났어요.  생-드니 대문을 향하고 서있던 병사들이 갑자기 뒤로 돌아서서 짐나즈 쪽 집들과 퐁-드-페르 관(Maison du Pont-de-Fer, 철교의 집이라는 뜻), 그리고 생-파르 호텔(Hôtel Saint-Phar)을 향하더니, 생-드니 가(rue Saint-Denis)부터 리셜리외 가(rue Richelieu)까지의 반대 편에 있는 군중들에게 즉각 연속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불과 몇 분만에 인도 위는 시체들로 가득했어요.  가옥들은 총알 구멍이 무수히 나 있었고, 군 부대는 약 45분간 미친 듯이 계속 총을 쏘아댔습니다."


또 다른 증인도 말한다.


"첫번째 포격은 본느-누벨(Bonne-Nouvelle)의 바리케이드에 가해졌는데, 이것이 다른 부대들에 대한 신호가 되었어요.  군 부대들은 머스켓 소총 사정거리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에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또 다른 증인도 말한다.


"어떤 말로도 그런 야만적 행동을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 말을 하고 그 말로 표현 못 할 행위의 진실에 대해 증언하려면 그 현장을 목격했어야만 해요.


병사들은 수천발을 -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였지만 - 아무 짓도 하고 있지 않던 군중들에게 쏘았어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도요.  아주 깊은 인상을 주려는 의도였지요.  그게 전부였어요."


또 다른 증인도 말한다.


"전반적인 흥분이 고조에 달했을 때, 전열 보병대에 이어 기병대와 포병대가 대로에 도착했어요.  부대 중 누군가가 머스켓 소총을 발사했는데, 화약 연기가 수직으로 솟은 것으로 보아 그것이 공중을 향해 발사된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무 경고없이 군중들에게 발포하고 총검으로 찌르라는 신호였습니다.  이것은 군부가 학살을 시작하는 계기를 원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또 다른 증인은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포도탄(mitraille, 산탄)이 장전된 대포가 르 프로페트(Le Prophète, 예언자라는 뜻)라는 상점부터 몽마르트르 가(Rue Montmartre)까지의 상가 전면을 찢어놓았습니다.  본느-누벨 대로로부터 메종 비으코크(Maison Billecoq)에도 포격을 가한 것이 틀림없었어요.  포탄이 오뷔송(Aubusson) 쪽의 벽 모퉁이를 때리고 벽을 관통한 뒤 집 내부까지 뚫었거든요."






(포도탄 또는 캐니스터탄이라고 불리는 이 대포알은 사진처럼 깡통 속에 작은 쇠구슬 수십개를 담은 것입니다.  대포에서 발사하면 마치 대형 산탄총을 쏜 것처럼 그 앞에 있는 적군 수십명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중략...  (이런 증언들이 끝도 없이 계속 됩니다...)


"계속 가세요." 보호를 요청한 선량한 시민들에게 장교들이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시민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가던 길을 재빨리 걸어갔지요.  하지만 그건 죽음을 뜻하는 암호일 뿐이었습니다.  불과 몇 발짝 걷기도 전에 총에 맞아 쓰러졌거든요."


다른 증인이 말한다.  "대로에서 사격이 시작되던 순간에, 카펫 창고 근처에 있던 한 서점 주인이 서둘러 서점 문을 닫고 있었어요.  그때 피할 곳을 찾던 몇 명의 군중들이 거기로 들어가려 했고, 전열 보병인지 헌병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군인들이 자신들에게 총을 쏜 사람이 그 중에 있지 않나 의심했어요.  군인들은 서점에 난입했고, 서점 주인은 상황 설명을 하려고 했지요.  하지만 그는 혼자 그의 서점 바로 앞으로 끌려 나왔고, 그의 아내와 딸은 그가 막 총에 맞아 쓰러질 때에야 그와 군인들 사이에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고, 그 딸은 코르셋의 살대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후 그의 아내는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들었어요."


이제 소름 없이는 묘사할 수 없는 세 건의 증언으로 마무리를 짓자.


"이 공포스러운 사건의 시작 부분의 15분간, 사격의 격렬함이 잠깐 다소 느슨해졌는데, 이때 부상당해 쓰러진 사람들 중 몇몇은 일어나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르 프로페트(Le Prophète) 앞에 쓰러진 사람들 중 2명이 일어났습니다.  한 명은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상티에 가(Rue du Sentier)를 통해 달아났어요.  그가 달아나는 중에도 총알이 빗발쳐서 그 중 하나는 그의 모자를 날려버렸지요.  다른 한 사람은 무릎을 꿇은 상태로 몸을 일으키는 것까지만 성공했습니다.  그는 손을 꼭 쥐고 병사들에게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요.  하지만 그는 즉각 총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다음날, 르 프로페트의 몇 미터 되지도 않는 베란다 옆면에 1백발 이상의 총알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지요."




(출처 : http://www.napoleontrois.fr/dotclear/index.php?post/2006/04/04/115-le-coup-d-etat )




"샘이 있는 몽마르트르 가의 끝 부분에서 약 60보 정도 떨어진 곳에, 남자와 여자, 엄마와 아이들, 어린 소녀들의 시체가 60구 정도 있었어요.  이 불행한 시신들은 대로 맞은 편에 배치된 군 부대와 헌병들이 발사한 첫번째 일제 사격의 희생자들이었지요.  그들은 첫번째 사격이 시작되자마자 모두 달아났지만, 불과 몇 발자욱 못 가서 쓰러졌지요.  젊은 남자 하나는 관문 안으로 피해서 대로 쪽으로 튀어나온 벽 뒤에 숨으려고 했어요.  그는 몸을 꼿꼿이 세워 몸이 벽 바깥으로 드러나는 부분을 최소화하려고 무지 애를 썼지만, 약 10분 정도 조준이 형편없는 사격을 받던 끝에, 그도 결국 총에 맞고 쓰러진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어요."


또 다른 증인이다.


"퐁-드-페르 관(Maison du Pont-de-Fer)의 판유리와 창문은 모두 깨졌습니다.  그 마당에는 공포에 질려 미쳐버린 남자 하나가 있었어요.  지하실에는 거기로 대피한 여자들이 가득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병사들은 가게와 지하실 환풍창에 대고 총을 쐈습니다.  토르토니(Tortoni)부터 짐나즈(Gymnase) 극장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일이 1시간 정도 계속 되었습니다."






(짐나즈 극장(Théâtre du Gymnase Marie-Bell)은 1820년 설립된 파리의 유서깊은 극장입니다.  지금도 공연을 하는 극장이라고 합니다.)



***

파리 같은 세계 문명의 중심 도시에서도 저런 흉악하고 야만적인 쿠데타와 학살이 자행되었고, 그 진상을 숨기려는 음모도 뻔뻔스럽게 실행되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도 저런 비극을 겪었고, 그 진상을 왜곡하려는 노력은 아직까지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저런 역사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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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형석 2016.12.18 0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나시카님 블로그의 영광스런 첫 댓글이 되다니... 감격스럽군요.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시국이라는 말이, 과연 언제 사용되는지를 알게 되었던 지난 3개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비록 어둡고 앞을 볼수 없는 절망감이 온 나라를 뒤엎고 있지만 곧 밝은 날이 다시 오리라 생각합니다. 같은 시민들이 있어 옆이 든든합니다.

  2. 칸몬드 2016.12.18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비극 여럿있었는데 프랑스에서의 교훈을 잘 알지 못했나 봅니다. 앞으로는 좋은나라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3. 프로이센군 2016.12.18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시대에 비하면 현재의 민주주의는 많이 발전한 것 같습니다. 쇠몽둥이에 최루탄이 겨눠지는것도 끔찍하게 야만적인데 머스킷 일제사격에 캐니스터라니.... 정말 상상이 안 갑니다. 저렇게 시민들이 쌓아올린 시체들을 밟고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요?

2016.12.04 23:17

요 몇 주 동안 주말 집회에 나갈 때마다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이 없었다면 아마 이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오며가며 만원 지하철에 거의 낑겨 가면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하철이 있으니까 저도 집회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 지하철 직원 여러분들, 그리고 매주 주말마다 청소 때문에 고생하시는 서울 청소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생각해보면 만약 서울시장이 여당 인물이라서 지하철 연장 운행도 안 해주고 청소 지원도 해주지 않는다면 집회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집회 참여가 다 영광스럽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와이프는 추위에 약해서 1번 밖에 못 나왔습니다.)




저는 이번 집회를 일종의 투표라고 생각해서, 항상 제 평소 소신대로 머릿수로 투표하는 셈 치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통신과 교통의 발전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필수적입니다.  가령 원래 투표일은 공휴일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중반의 차티스트 운동 때도 계속 요구되던 것이, 재산 유무에 상관없이 성인 남성에게 1인 1표의 투표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보통 선거권 외에도, 공장이나 농촌의 근로자들이 생업에 지장을 받지 않고도 투표소까지 걸어갔다 올 수 있도록 투표일을 유급 휴일로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넉넉치 않은 살림살이의 서민들이 말이나 마차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으니, 걸어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투표소까지 다녀오려면 일을 쉬어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휴일 요구는 (당연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서민들은 투표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행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교통의 발달이 그런 사회 문제를 조금이라도 더 해결해 주었지요.






(1848년 런던 케닝턴 공유지에 모인 차티스트 집회입니다.  재산 유무에 상관없이 성인 1인에게 1표씩이라는 보통 선거권이 지금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도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 얻어낸 것입니다.  소중히 지키고 현명하게 사용합시다.)



육상에서 대량으로 인원을 수송하는 교통 수단에는 정말 기차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역사에서, 병력의 신속한 이동은 항상 승패를 좌우했습니다.  가령 로마 제국의 번영은 병력을 무작정 키우는 것보다는, 제국 내부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튼튼한 군용 도로를 구축하여 제한된 병력을 효율적으로 재빨리 이동시킬 수 있었던 것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징기스칸의 몽골 제국은 작지만 지구력이 좋은 몽골마를 탄 기병들의 기동력이 만들어낸 것이고요.  (사실 징기스칸의 제국은 정복지의 여러 유목민족을 몽골 제국의 깃발 아래 통합할 수 있었던 정치적 역량에 힘입은 바가 더 큽니다만, 그건 나중에 다룰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나폴레옹 전쟁 때는 철도가 아직 태동기였기 때문에 대량으로 병력을 수송할 방법이 정말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병사들은 걸어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폴레옹이 연전연승했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병사들의 빠른 행군이었습니다.  영국-오스트리아 등의 동맹군 병사들이 하루 16~20km 정도였던 것에 비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병사들은 기본적으로 24km를 넘었습니다.  이 속도는 사실 놀라운 속도는 아니었고, 고대 로마군단의 이동 속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나폴레옹 때나 케사르 때나 1800년의 세월 차이가 있었을 뿐 이동은 사람의 다리로 하는 거였으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영국군이나 오스트리아 군은 왜 그리 느렸을까요 ?  문제는 보급 마차였습니다.  19세기 초반의 열악한 진흙투성이의 유럽 도로망 때문에, 보급 마차가 하루 16~20km 밖에 이동을 못했던 것입니다.  1812년 러시아 원정의 경우 심지어 기병대가 보병대보다 더 진격 속도가 느렸던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로마군은 그 유명한 로마군의 포장 도로를 따라 이동했으므로, 소달구지가 끄는 보급 마차도 병사들의 발걸음 속도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식량과 숙영을 위한 텐트 등 보급을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했지요.  






(1809년 바그람 전투를 앞두고 비박(bivouac, 영어 발음은 대략 비부액)하는 나폴레옹 산하 폴란드군입니다.  노숙을 뜻하는 이 bivouac이라는 단어는 스위스 및 알자스 지방에서 생긴 독일어 계통의 단어로서,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에서 영국 쪽으로 전해진 단어입니다.  산악인들 사이에서 비박, 비박하실 때의 그 비박이 바로 이 bivouac입니다.  친박 비박할 때의 그 비박이 아닙니다.) 



하지만, 로마 군단병이건 나폴레옹의 근위대이건, 하루 24km는 생각보다 다소 느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  저같은 대한민국 육군 훈련병도 논산에서 하루 32km를 걷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제가 깔깔이로 부피만 채운 군장을 매고 하루 32km 걸었다고 나폴레옹 근위대보다도 우수한 병사라고 우쭐할 수는 없습니다.  하루 32km는 우습게 걸었던 사례가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도 많았습니다.


엘바 섬에서 탈출한 나폴레옹이 프랑스 남해안의 골프-주앙(Golfe-Juan)에 상륙한 것이 1815년 3월 1일이었습니다. 이 첫날, 나폴레옹이 데리고 온 600명의 근위대 병사들은 무려 80km를 행군합니다.  (아마도 나폴레옹은 말에 탔겠지요.)  그리고 그레노블(Grenoble)시까지의 험준한 산길이 포함된 320km를 6일만에 주파합니다.  하루 50km가 넘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했던 것은 3월 19일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그의 병사들은 하루 평균 48km를 행군했습니다.  프랑스 근위대만 남자고 영국군에는 남자가 없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영국 남자도 한 행군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있습니다.  1809년 웰링턴 공작이 탈라베라 전투에서 악전고투할 때, 그를 돕기 위해 영국군 크로포드 장군이 3,000 명의 라이플 소총병을 이끌고 100km에 이르는 거리를 26시간 만에 주파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렇게 잘 걷는 병사들을 데리고, 왜 하루 24km 밖에 못 걸었을까요 ?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병사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24km를 걸은 뒤, 숙영할 곳에 도착하면 재주껏 짚단과 나무가지 등 재료를 모아 야영을 할 준비를 해야 했고, 또 주변 마을에서 어떻게든 식량을 긁어 모으고 땔나무를 모아 주린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그런 노동까지 하려면 하루 24km도 힘들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병사들에게 더 먼 거리를 행군하게 하려면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교통 수단인 우마차 정도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병사들의 이동 속도에 대한 이런 고민은 열차의 발달과 함께 오히려 더 깊어졌습니다.  우리 쪽이 빨라진 만큼 저 쪽도 빨라졌으니, 나폴레옹 시절처럼 그저 병사들의 사기 관리 및 부대 운용 요령 정도가 아니라 수학적으로 체계적인 수송 계획이 이루어져야 적군에게 뒤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열차를 이용해서 연대 단위의 병력이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었으므로, 계산 착오가 있다거나 열차의 기계적 장애가 발생하거나 해서 단지 반나절 정도의 오차만 발생해도, 전투 현장에서는 연대 단위의 병력이 상실된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가 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 기관총이나 잠수함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기였던 증기기관차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프랑스군이나 독일군이나 모두 열차에 의한 병력 수송 계획에 정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가장 머리 좋은 장교들이 모두 병참부에 배정되어 정밀 과학같은 열차 계획표를 짜는데 열중했습니다.  이런 성향은 특히 독일군 쪽에 더 강했습니다.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은 서쪽의 프랑스와 동쪽의 러시아를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프랑스와 러시아를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었던 독일의 전략은 역시 철도를 120%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의 작전은 이랬습니다.


1) 러시아는 철도망이 개판이니, 전쟁이 발발해도 병력 동원이 느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 러시아가 꾸물거리는 동안 독일은 전군을 서부 전선에 집중하여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거쳐 프랑스군 측면으로 침투, 파리를 점령한다.

3) 이렇게 프랑스를 조기에 끝장 낸 뒤 다시 병력을 재빨리 철도로 동부 전선으로 이동시킨 뒤, 러시아를 요리한다.






(슐리펜 백작이십니다.  이 분 주장대로 서부 전선 독일군 우익에서 병력을 빼내어 동부 전선으로 돌리지 않았더라면 제1차 세계대전의 향방이 바뀔 수도 있었을까요 ?)




여기서 유명해진 것이 바로 슐리펜(Schlieffen) 작전 계획이었습니다.  그 계획의 핵심은 슐리펜(Alfred von Schlieffen) 백작이 사망하면서도 중얼거렸다는 유명한 전설처럼, '우익을 더 강하게'였습니다.  즉, 프랑스군의 방어선에 정면으로 부딪히지 말고, 중립국인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관통하여 프랑스의 취약한 좌익을 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 않게 중요했던 것이 바로 열차 계획표였지요.  그 열차 계획표야말로 당시 독일군 참모 본부의 온갖 역량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진 매우 정교한 결정체 같은 물건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전쟁 발발 이후 40일 간의 열차 계획표가 빼곡히 작성되어 있었으며, 조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르면 200만의 병력과 60만 마리의 말을 312시간 안에 수송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요.  






(병력은 걸어서라도 움직이지만, 저렇게 무거운 포탄과 대포, 탄약 등은 정말 철도가 아니면 답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철도에서 내린 다음부터인데... 이후는 정말 말이 죽어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전쟁에서는 전쟁이 벌어지면 언제나 사람보다 말의 사망률이 더 높았습니다.  슬픈 일이지요.  War Horse라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에 그런 전쟁마의 비극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정교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지금은 폴란드 땅이 된 동프로이센은 프로이센 공작령이 있던 곳으로서, 그야말로 프로이센 왕국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슐리펜 계획에 따르면 전쟁 초반에 이 동프로이센 일부를 러시아에게 유린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독일 제국 호헨촐레른 왕조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결국 왕가의 요청으로 동부 전선을 좀 더 강화하는 안을 강구하라는 명령이 독일군 참모본부에 내려졌는데, 그 명령을 받은 참모 본부에서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걸 반영해서 열차표를 다시 짜려면 1년은 걸릴 겁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되었던 독일군의 진격은 초기에는 맹렬했으나, 결국 초기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돈좌되고 맙니다.  물론 거기에는 프랑스군의 분전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알고 보면 벨기에가 점령당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벨기에 국내 철도망을 재빨리 파괴해버린 것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독일은 이렇게 파괴된 벨기에 철도망의 수리에 무려 2만6천의 인력을 동원하여 복구했으나, 점령 이후 1달이 지난 후에도 고작 15%의 철도망만 운영할 수 있었다고 하니까요.  벨기에 철도망의 자폭은 독일의 보급 능력을 크게 저하시켰고, 그것이 결국 독일군 진격의 돈좌로 이어진 것입니다.






(1914년 독일군의 벨기에 점령 작전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이미 가솔린 엔진 차량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1914년 독일군의 진격을 파리 코 앞에서 멈추게 한 마른(Marne) 전투에서는 4천대의 파리 택시들까지 동원하여 증원 병력을 실어날랐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그 택시들로 실어나른 병력은 고작 5천명으로서, 선전 효과 외에는 결정적인 도움은 안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은 어디까지나 기차와 군화발, 그리고 말의 힘으로 수행된 전쟁이었다고 합니다.






(1914년, 파리를 구한, 또는 그랬다고 전해지는 택시 군단입니다.  당시 파리에는 약 1만대의 택시가 있었으나, 마른 전투 직전에는 약 3천대만이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택시 운전사 7천명이 모두 징집되어 전선으로... T T)




별 생각없이 쓰다보니 투표에서 나폴레옹으로, 다시 제1차 세계대전까지 왔네요.  탄핵 가결 여부에 따라 다음 주에도 집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번에 또 집회에 나간다면, 지하철 직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갖고 나가도록 합시다.  새로운 민주주의가 가능하게 한 장본인들이십니다.



Source : http://www.iwm.org.uk/history/transport-and-supply-during-the-first-world-war

http://www.smithsonianmag.com/history/fleet-taxis-did-not-really-save-paris-germans-during-world-war-i-180952140/

존 키건의 '제1차 세계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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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아중공 2016.12.05 0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나 지금이나 기동력은 투사 능력과 비슷하거나 더 중요한 요소인데 무시 되는 경우가 많죠.
    뭐 더 근본적으로는 보급이 제일 중요하겠지만요.

    미군 뭐 별거 있습니까. 기동력과 보급이 좋고 해군력이 좋아서 제국과 같은 나라가 된거죠.

    한국군은 군 규모에 비해서 자체 보급력이 모자라고 기동을 보완해줄 공병 부대가 적은 편이라
    북한까지는 몰라도 타국과의 전쟁은 무리죠. 특히 한반도에서 벗어나면.... 아니 벗어나지 못하겠군요.

    복싱으로 치면 잠깐의 난타전은 가능해도 장시간 치고 받는건 무리죠.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지 않다는
    점도 있지만 보급 체계가 독자적이 못하니 미국이 빠져버리면 꽤 장기간 보급 체계 구축하는데
    고생이 많을 겁니다. 그외 여러 문제가 있지만 하여간 미군이 빠지면 그거 보완하는건 글쎄요....

    차후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어떤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한국군의 보급 체계는 손을 봐야 됩니다.
    근데 정치인에게 이런거 하라고 국민이 요구해야 되는데 대다수의 국민은 관심도 없고 한 줌도 안되는
    국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기동력이나 보급보다 투사 시스템에 관심이 집중이 되는 상황이라
    꿈도 희망도 없는 시절만 계속 될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초중고 교육 시스템에 세금, 재테크, 손자병법에 관한 커리큘럼은 꼭 교육해야 된다고
    봅니다. 정치자체를 교육하는건 솔직히 쉽지않고 너무 지난한 일이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을
    교육하기 시작하면 정치도 어느 정도는 바뀌지 않을까 합니다.

    • 프로이센군 2016.12.06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군은 한반도에서의 작전 수행에 올인했다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좁은 한반도에서는 보급까지 신경써서 장기전을 준비하기보다는 고화력으로 빠르게 밀어버리는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생각해요

  2. 최홍락 2016.12.05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왕가의 요청으로 동부 전선을 좀 더 강화하는 안을 강구하라는 명령을 받은 참모 본부에서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그걸 반영해서 열차표를 다시 짜려면 1년은 걸릴 겁니다." 답한 것은 참 안타깝지만 한국 대부분의 직장에서도 발생하는 내용이기도 하네요. 아래와 같은 칼럼에서 잘 드러나듯이....
    -----------------------------------------------------------------------------------------
    내가 일 관계로 만난 외국인들 중에서 '공통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던 한국의 조직문화란 이것이었다.

    "정해진 의사결정체계에 따라서 하나씩 일을 진행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저 위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최고결정권자가 툭 하고 튀어나와서 전부 뒤집어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안을 '무조건 오늘 (나 퇴근 전까지)' 들고 오라고 생떼를 부린다."

    어떤 분은 이 문제 때문에 1년도 되지 않아서 퇴사를 결정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버리기도 했다. 그가 특히 가장 화를 냈던 건, 베이비시터에게 아이를 맡겨놨는데 사장이 갑툭튀해서 "야근을 해서라도 오늘 중으로 새로운 기안을 내놓아라"고 요구하곤 했다는 것. 이것 때문에 아이 보는 일에 스트레스를 어마어마하게 받다 보니 이러다간 회사 이전에 가정부터 무너지겠다 싶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면서 이렇게 비웃었다.

    "이제는 잘 서지도 않는(...) 늙은 dragon들이 정작 애 하나 키울 시간도 던져주지 않으면서, 바깥에서는 출산율이 낮다느니 어떻다느니 걱정을 한다고 들었다. 여기보다 문화 여건이 훨씬 나은 다른 나라들도 출산율 저하로 골머리를 썩는데, 이 따위로 하면서 출산율 따지면 그건 정말 bitch지."

  3. mip 2016.12.05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ㅋㅋㅋㅋ 비박에서 빵터졌네요 ㅋㅋㅋㅋ

  4. 석공 2016.12.05 1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5. 정암 2016.12.06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크래프트를 통해서 기동과 보급의 중요성을 희미하게나마 깨달았더랬죠 ㅎ
    서플라이디팟을 제때 안지어놔서 자원은 넘치는데 병력을 제때 못뽑는다거나..
    같은팀과 이동속도가 잘 안맞아서 상대방 본진에 같이 못들어가고 병력을 축차투입했다가 거덜나거나
    아님 중앙에 제때 못모여서 각개격파 당하거나,,, ㅠㅠ

  6. 알타리무 2016.12.06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 칼 마르크스 프랑스혁명사 중에서.
    박정희 비극 박근혜 희극

  7. 알타리무 2016.12.06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가지 커다란 걱정은 미국과 유럽각국이 현재 법인세를 내리고

    미국과 스웨덴(복지국가로 유명한)등은 상속세 자체가 없고

    미국의 경우 구글처럼(a주식 1주 1표 b주식 1주 10표 b주식은 오너집단이 보유 상속해도 문제가 안되고 비상장해도됨)

    재벌집단에게 확실히 경영권지배를 할수있도록 도와주는데

    오늘 국회의원(박영선의원)이 이재용보고 기업경영에서 물러나라고 하는 대한민국이란곳에서 점점더 사회주의화 되어가는 대한민국에서 더이상 훌륭한 기업가가 나오지 못할까 심히 걱정이 됩니다.
    (기업은 사유재산인데 그것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다니요... 민주주의의 시작요건중에 하나는 사유재산과 인명에대해 국가권력의 개입을 배제한것부터 시작된것 아닙니까?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국회의원이 사유재산에대해 청문회상에서 침탈적 행위를 하다니요.. 참.)

    (저부터도 당장 대한민국에서 사업하기가 싫습니다.

    다른나라에 없는 상속세도 있어 법인세도 다른선진국이랑 비슷해. 임금도 비슷해 그렇다고 과학기술이 유별나게 있는것도 아니고, 전쟁위험도 있고, 인구도 5천만 밖에 안되,오너가 기업지배하기도 제도적으로 힘들어.

    시장도 좁다랗고.-이런말 하면 지부터 걱정하지 지보다 잘난사람 또걱정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업이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많이 확장해야 또한 기업자체가 많이 있어야 일자리도 올라가고 실질임금도 올라가지 않겠습니까?결국 저는 제걱정을 하는것입니다.)

    당장 다음대선에는 진보쪽 즉 사회주의세력이 대한민국을 차지하고 점점 대한민국을 좌경화시킬거고 경제는 더어려워지고

    경제가 더어려워진만큼 포퓰리즘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은

    점점 재벌 부자들은 표적으로 삼아 국민들을 선동해서 점점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를 해체버릴것인데....

    심히....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 됩니다.

    진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냐야한다고...

    나보다 잘난놈은 나라가 망하고 내가 망하고 심지어 내자식도 같이 망하는한이있더라도 끌어내리고 보고 말겠다는 것이

    정말로 조선사람의 천성이므로...(다른나라는 해외로 진출할때 조선은 국내에서 서로 헐뜯고 자기보다 잘난놈 밥그릇뺏기 바빳지요.

    다른나라는 새로운 밥그릇을 만들때!!!!!!)

    정말로 사회주의나 농촌식 사고방식은 조선사람의 천성이므로 (일단 nisica님부터도 부자들이 힘들게 재산을 모았으니 우리가 그것을 뺏을때도 힘들각오를

    하고 빼앗아야한다.라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사고방식이라면 부자들이 힘들게 재산을 모았으니 우리도 노력해서 큰사업을 일으켜서

    국가에 기여도 하고 우리도 큰부를 얻어보자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습니까?--가만히 있는 nasica님을 건드려서 미안한데.. 사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진보쪽의 일반적인 생각이기때문에 다시한번 언급해봤습니다. 정말로 사회주의적이고 완화된 공산주의에 불과하며

    과거 좁은 농촌에서 농촌밖의 큰세상을 모르고 자기보다 잘사는 이웃이나 친척을 못마땅해하고 그저 남을 주저앉히는것만 생각(남을

    주저 앉히는것이 자기도 결국 손해인것을 모르고...)하는 농촌식사고방식이지 않습니까)

    정말로 조선사람보고 천성이 바뀌어라 바뀌어라하는것은 무리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하듯이...

    그냥 제가 포기하고 자유로운 나라로 이민이라도 가야하는것일까요?...

    참고로 서두에 말한 사유재산을 보호해야할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의 책임을 망각하고 이재용에게 경영에서 물러나라는 말을 한 박영선의원은 미국에서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남편이 미국인이기는합니다)

    • 최홍락 2016.12.06 2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또 광분해서 정신 못차리고 넋두리하시네요. 안지우십니까?

      저부터도 당장 대한민국에서 사업하기가 싫습니다? 자기가 공부 못하는 것을 공부 안해서 그렇다라고 믿고 싶은 인간들이 널리긴 널렸네요.

    • 무는개 2016.12.07 2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국과 스웨덴은 분식회계나 탈세하다 걸려도 관대하게 봐 주나 봅니다?

      기업들 툭하면 한국에서 기업하기 뭐같다 하는데 나갈테면 다 나가라고 하죠

      외국나가서 한국에서 하는것처럼 할수 있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집니다

    • 알타리무 2016.12.07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안달려했는데 한번더 달께요

      제가 재벌이라도 탈세하겠습니다.

      탈세안하면 기업상속자체를 못하는데.

      주식이 반토막이 되버리는데..
      한세대만 지나면 기업에 대한 소유권이 없어져 버리지요

      대신 미국이나 스웨덴은 탈세할 필요가 매우적죠

      최소한 상속세라는 이중과세적이고 개인의 재산권을 침탈하는 사회주의정책은 실시하지 않으니깐요!!
      재벌들의 기업보유를 확실하게 보장해주니깐요.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비해 비자금을 챙길필요도 없지요!!

      그리고 나갈테면 나가라고 하시는데
      나가는 것도 문제지만 해외기업도 한국안들어옵니다. 해외기업이 안들어 오는것도 큰문제입니다.
      그러면서 청년일자리가 부족하다 칭얼칭얼.
      자기들이 사회주의정책한다고 기업들을 내쫓고 있으면서 외부로부터 오는기업도 막으면서 무슨...
      ---
      기업들 툭하면 한국에서 기업하기 뭐같다 하는데 나갈테면 다 나가라고 하죠
      외국나가서 한국에서 하는것처럼 할수 있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집니다
      -->그리고 이거 기업들에게 하는 말인것으로 알지만 제가 답변할께요

      저부터도 요근래 들어서 지금 미국이민 계획중입니다.
      사회주의가 판치는 나라에 희망은 없습니다. 개인의 생명과 재산이 보장되는 자유로운 나라로 갈거에요.!!

    • 최홍락 2016.12.08 0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인이 사회주의자라고 점찍은 이 홈피조차 못 떠나는 주제에 나라를 잘도 떠나겠습니다. 본인 입으로 답글 안달고 떠날 생각도 않는 말의 신뢰라고는 1도 없는 사람에게 기회를 줄 나라는....어휴 그나마 이 나라는 당신같은 사람에게 이런 취급이나 당하는 호구였나 자괴감이 듭니다.

    • 알타리무 2016.12.0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미국이민가겠다는 말을 허세라고 생각하지요? 영주권따면 인증샷 올리겠습니다

    • 최홍락 2016.12.08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에 당신이 한 말 그대로입니다.

      좋은말로는 안되니까 충격요법이 나오는거지.

      신뢰할 수 없는 언행을 해놓고 허세 아니라고 믿어달라는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 기준 사회주의자들이 득실득실한 이 홈피조차 못떠나서 이러고 있는게 당신이 이 나라를 떠나서 살 능력이 없음을 반증하는겁니다.

    • 알타리무 2016.12.08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자들이 고생하면서 돈을 벌었으니 우리도 고생해서 더 큰돈을 벌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고생할 각오를 하고 부자들의 돈을 뺏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이 사는 나라는 희망이 없습니다.

      난 보다 자유로운 나라로 갈겁니다.
      그리고 영주권 따면 인증샷올리도록하지요

    • 최홍락 2016.12.08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여기부터 떠나보시라니까 말을 못알아먹어요. 아니 이렇게 말을 이해도 못하고 약속도 못지키면서 무슨 영주권 심사를 통과해요.ㅋㅋㅋ

    • 알타리무 2016.12.08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주권 딸때까지 여기에 덧글전혀 안달겠습니다. 약속합니다

    • 최홍락 2016.12.08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약속하고 폐기하신게 지금까지 부지기수에요.

      어떻게 할아버지는 6.25참전용사고 친척중에는 베트남전 참전용사도 있고.군복무했다고 잔뜩 부심 부린 분이 일개 국회의원의 발언에 광분해서 나라 떠난다고 태세 전환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가요. 가족들도 희생시킬수 있다는 분이ㅋㅋㅋ그런 태세 전환 자세라면 나중에 진짜 죽창들고 설치는 빨갱이가 될 수도 있겠어요. 예전에 죽창 얘기도 꺼냈잖아요.ㅋㅋㅋ

      당신의 위의 얘기도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당신이 저 훌륭한 가족에서 나온 호부견자거나...

      아니면 당신이 가진 자부심이 한낱 홈페이지 상에서 남을 이겨보기 위해 갖다 붙일 정도 밖에 안되거나 셋중 하나에요.

      뭐가 됬든 당신은 신뢰성이 없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위와 같은 주장을 하면 그런 의견도 있을 수 있겠구나 했겠지만, 당신은 아니에요.

      여기 계신 분께 다른사람의 목숨을 희생한대가로 자유를 누리면서 남의 자유를 위해 희생하는것을 꺼려하는 비겁자라고 했죠. 당신도 도망치려는 자 주제에 누가 누굴 비겁자라고 합니까?



    • 알타리무 2016.12.08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덧글안달려 했는데 일개 국회의원 말하나때문이 아니고 나키카님. 한명때문이 아니고. 국민들.다수가.그런것을 어떻합니까? 요근래 그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니 포기하고 가겠다는거지요.
      아니면.나폴레옹 3세나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처럼 몇멸죽여볼까요?

    • 최홍락 2016.12.08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것보세요.

      또 제말이 맞았지요.

      남 탓하지 마세요. 님의 그릇이 그정도 밖에 안되는거에요. 그러니 설득을 못하는 못난 당신 탓인거죠. 사람들의 가치관은 자기 주변 사람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데 당신 태도가 그런데 누가 당신에 동조해요? 그냥 남들이 님을 포기한거에요. 어디서 생떼씁니까? 얼치기 운동권들의 국개론을 그대로 차용하는 걸 보니 당신이나 얼치기 좌파나 거기서 거기에요

      몇명 죽여볼까라고 협박하는 걸로 님의 정신상태는 그걸로 reveal. 이로써 영주권도 Game Over네요.

    • 알타리무 2016.12.08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 몇명죽이겠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냥 사회민주주의 좋아하면 사회민주주의 국가에 살면되고 자유민주주의국가좋아하면 자유민주주의국가 살면된다이이겁니다. 힘뺄필요없이요.
      설득이야 해봤지요 설득해서 안되니까 각자방법대로 해보고 결과보고이야기하자는거아닙니까.
      지금까지 잔소리그만하고 블로그 주인장마음에 안들면 오지말고 딴데 가라고 해놓고서는. 이것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대한민국이 사회민주주의국가가 되가니까 설득해도 안되니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일수는 없고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이 가겠다니깐요 자유민주국가로.

    • 최홍락 2016.12.08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것보세요.

      또 제말이 맞았지요. 그리고 이번에도 자기 반성같은것은 죽어도 없지요.

      전세계 Estate and Inheritance Taxes 통계에 따르니 세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55%)이고 그다음이 한국(50%)이네요. 미국은 (40%) 되니 두나라가 10% 차이밖에 안나는 도찐개찐 사회주의 국가 수준이네요.

      법인세 통계는 후덜덜한게 한국이 24% 수준인데 반해 미국은 40%죠. (2015년 OECD 통계)아...사민주의 국가 탈출한다고, 번것의 거의 절반을 빼앗아가는 사회주의 국가로 가시는군요.

      여기에 앨리자베스 워런 같은 이가 상원의장을 차지하고, 샌더스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이 엄청나고...급기야 샌더스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트럼프쪽으로 몰려가 트럼프 당선에 기여를 하게 되는....

      어서 총들고 사회주의자들 쓸어버리러 가셔야지요.ㅋㅋㅋ그럼 여기서 공부안하고 댓글 안달아도 되겠네요.

    • 알타리무 2016.12.08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님께서 법정최고세율과 실질세율의 차이를 모르시는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법인세최고세율이 25%이고요
      실질세율은 15%남짓입니다.
      (우리 근로자들이 연말정산을 통해 세금공제받아서 세금환급받아 세금줄어드는거 생각하시면 됩니다)

      미국은 법인세최고세율이 35%이고요(2016년기준)
      실질세율은 14%입니다.

      http://blog.naver.com/miltonpark?Redirect=Log&logNo=220795179298

      미국은 게다가 상속세도 없고
      A타입주식(1주 1표) B타입주식(1주식10표)가 있어 재벌의 기업지배가 안정적이지요.(b타입재벌독점가능)

      미국은 게다가 물가도 싸고 석유도 나서 원자재수급도 좋구요
      미국 자체가 거대한시장이라서 시장접근성도 매우 좋구요

      자 왜 대한민국에서 다들 기업안하려 하는지 왜 한국기업은 자꾸 해외로 빠지는지 알겠지요!!(노동자임금도 이제는 얼마차이안나요)
      (여담이지만 제가보기엔 한국재벌들 대한민국에 대한 희생정신이 강한사람들같습니다. 해외로 천천히 나가는거보면.나라면 최대한 빨리 나갈텐데.)

      아무튼 전 갈겁니다. 사회민주주의국가가 아닌 자유민주주의국가로

      "민주주의와 번영은 개인생명과 재산 그리고 개성을 타인과 국가로부터 보호하는것에서 시작된다!!!"

    • 무는개 2016.12.08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궤변도 좀 작작 늘어놓으시죠

      버는 만큼 세금내는건 자본주의의 근간인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건지? 많이 버는 사람이 버는만큼 사회 인프라를 더 많이 사용해서 번거니 그만큼 세금을 내야 하는건 당연한거 아닙니까? 사회 인프라를 사용한만큼 세금을 내라는게 무슨 사회주의드립이 나와요?

      당신같은 마인드의 사람들 미국가면
      탈세에 노동법 위반으로 잡혀가기 딱 좋아요. 이 얼마나 사업하기 좋은 시대고?? 비선실세한테 갖다바치면 안되는 합병도 되고 특혜도 받고 노동법따위 위반해도 크게 문제도 안되고

    • 알타리무 2016.12.08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탈세할이유가 없지요

      애초에 미국에서는 세금도 적고 자식한테 상속하는데 아무문제가 없는데

      뭐하러 욕들어먹을 각오하고 탈세를 합니까?

      우리나라재벌들이야 상속을 위해 불가피하게 불법을 저질러야하지만

      미국재벌은 합법적으로 상속도 가능하고 합법적으로 세금도 적게낸다니깐요.

      미국법인세 실효세율에 대한 자료를 다시 링크걸어드립니다.

      http://gomijunews.com/23/?idx=851006&page=21&search=YToxOntzOjk6Imxpc3RfdHlwZSI7czo0OiJsaXN0Ijt9

      세금도 적당히 거두어야 세금이지
      해외경쟁기업보다 대외환경이 불리한테 세금은 똑같이 겉자고 하면 기업 죽으라는 소리지(똑같이도 아닙니다. 상속세같은경우는 아예 더냅니다.)

      무는개님부터 그럼 님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한조건의 사람과 똑같이 세금 내보시죠.

    • 알타리무 2016.12.08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튼 저는 이민갈테니

      이제 야권이 사회주의 경제정책들이 실시되면

      스테크플레이션이 가속화될겁니다.

      잘 버텨보세요...

      스테크플레이션이 장기화되서 경제다죽어가면 그때야 신자유주의자들이 착한사람이었구나 하고 느끼겠지요.

      전 말로서 설득하는거 포기입니다. 항복입니다 하하하하. 여러분 이제 직접 경험해보고 판단해보세요. 직접 경험하면 알겠지요. 하하하하

      아무튼 전 조만간 이민갑니다.

    • 알타리무 2016.12.08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개인적으로 최홍락님께 한마디.

      저는 개인적으로 님이 많은 교양과 깊은 지혜를 가지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최홍락님 미국으로의 이민을 고려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이제 대한민국은 일본처럼 20년 불황입니다. 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님의 자녀분의 미래를 생각해보십시요.

      대한민국은 이제 내리막입니다.

      이 말은 선의로 님께 올리는 말입니다.

    • 최홍락 2016.12.08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역시 자기가 한 말은 죽어도 지키기 싫은 싸구려 인성의 끝판왕

      참고 블로그글의 미국 실효 법인세율이 14퍼센트라는 주인장 말만 있을뿐 백데이터는 하나도 없지요. 좀 퍼올려면 제대로 보고 퍼오던가, 명목 법인세율 35퍼센트가 연방정부 기준인지 아니면 ㅈ방세 포함인지 밝히지 않는 것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고...

      한국의 실효 법인세율이라는 것도 15퍼센트라고 주장했는데 2016년에 발표한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법인세 실효세율이 14.2퍼센트라고 하는데 어느 자료를 보고 온건지...

      실효세율이 14퍼센트면 자유민주주의 국가. 15퍼센트면 사회주의 국가라....캬....그 기준 멋집니다. 아까 내가 올려놓은 Estate and Inheritance Taxes 수치는 읽어 보지도 않았겠지요. 미국도 40퍼센트 정도 된다고...그래서 워렌 버핏같이 상속세 늘리자고 하는 사람도 조세의 Hole은 악착같이 찾아 먹는 사람은 실효세율이 얼마 안될거요. 윌버 로스같은 거물 투자자들이 그 구멍 찾아서 세금 아끼는 재주는 우리보다 몇수위고...당신같이 무식한 사람은 아마 저 세율대로 다 뜯기겠지만...솜씨좋은 변호사 구할 돈이나 실력이 없으면 그 낮은 실효세율은 뇌내 망상으로 끝나는거지요.

      그러면서 이 정부들어 준조세가 법인세 대비 28.6퍼센트에서 36퍼센트까지 급증한 것은 교묘히 숨기는 꼴은 참...같은 성향의 정부에 대한 쉴드치곤 참 저렴하네요. 야권이 정책펴면 스태그플레이션 온다는 선동은 애교에 가깝죠.

      12월 3일 처리된 예산안에서 빈사 상태의 행정부와 여소야대 국회의 조합으로 마련된 예산안이 복지 예산은 국회에서 10년만에 처음으로 감액되고 법인세율은 현행 유지되었다는 사실은 아예 보기도 싫은거에요. 알타리무씨는 머리속에 자유경제가 없어요. 진보 보수 편가르기만 있지 그것조차 엉터리고..

      이민이라...외국 파견 나갔다가 최근에 들어온 사람보고 다시 나가라는건 나보고 꺼지라는 얘기를 한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신 신뢰성이나 인성이면 그렇게 말한걸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요.

      3개월전만 하더라도 중국은 솨퇴할 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에게 통일의 기회가 온다고 잔뜩 떠들어대다가 이제는 한국은 망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는걸 보니 태세 전환이라는게 참 무섭습니다.

      대한민국이 일본처럼 20년불황이 온다라...ㅋㅋㅋ일본식의 부동산 폭락이 온다고 저주를 퍼부었던 얼치기 좌파 전문가랑 같은 주장을 여기서 다시 볼줄이야...그것때문에 집을 팔고 떠돌다가 이를 갈게된 서민들이 부지기수였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이 홈페이지에 오시는 분들은 이 얼치기 예언에 흔들리지 마세요. 알타리무는 좌파와 논리적으로 내통한 일종의 제5열입니다.

      언젠가 빨갱이로 변해 죽창과 총으로 위협한 전작 보수주의를 자청한 자라....

      으으으...사이비 보수주의자.

      으으으...사이비 자유주의자.

    • 알타리무 2016.12.09 0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1.저는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좌경화되었다고 보는근거가 법인세에 있지는 않습니다 법인세 이야기는 님이 먼저 이야기 꺼내셨고 저는 법인세가 비슷하다고 말한 것일 뿐입니다.
      거기에 대한 링크는 하나 더걸었습니다.
      (제가 우리나라가 좌경화가 되었다고 보는 근거를 이미 덧글에 달았습니다. 여기서 또쓴다면 잔소리같이 다른분이 느낄까봐 반복하지는 않겠씁니다)
      2.저는 중국이 쇠퇴하고 통일의 기회가 올거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통일에 대한 저의생각은 다른사람의 생각과는 틀린데... 애초에 분단이 세계정세에 의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겼듯이 통일도 세계정세에 의해 우리의 뜻과 별상관없이 이루어질것입니다. 보수나 진보나 통일을 마치 우리가 뭘 열심히 해야 오는것으로 아는데... 저는 우리가 뭘잘해서 통일이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고 그냥 세계정세에 의해 수동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3.그리고 저는 일본식의 불황이 오는 이유는 부동산과 상관이 (우리는 부동산거품이 과거 일본보다는 확실히 매우 덜끼었습니다) 있다고 말한적이 없는데...
      우리나라가 앞으로 장기불황을 겪게 될이유는 알파고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이외의 많은 나라-신흥공업국들이 미국을 상대로 돈을 많이 벌었던 이유는 미국에 비해서 인건비가 싸서 그랫습니다. 지금은 인건비가 비싸졌고 그리고 제품에 대한 노동력의 기여가 매우적어져가고있어. 인건비가 제품생산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즉 신흥공업국이 미국에 비해 비교우위 또는 경쟁우위를 가질 요건이 사라지고 있다 이것입니다.
      앞의 덧글에도 이야기했듯이 어느사업가가 미국을 상대로 사업을 한다고 하면 외국에 사업을 차려서 거기서 생산을 해서 미국에 파는 이런 종래의 방식을 쓸이유가 사라진다 이것입니다. 그냥 곧바로 미국에 사업체를 차려서 미국시장을 공략하는게 더 이익이 되는 상황이 되어간다 이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조업이 쇠퇴하는것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결국 무엇으로 경쟁우위를 가질수가 있는가? 오로지 과학기술력입니다.
      은 정말로 과학기술력을 확보한 소수의 기업만이(지금도 그렇지만) 이제 한국을 지탱해나갈것입니다.문제는 그기업의 숫자가 소수지요...
      과거에 님의 덧글로 미루어볼때 우리나라가 gdp대비 연구투자비율이 전세계에서 가장높다라고 말씀을 하실테지만...
      기술이란것이 "GDP대비 연구투자비율이 높아서 고마운걸 발견되어줄께"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쏟아부은 총액에 비례해서 나타나는것입니다.
      미국은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연간 3조 5천억원을 투자합니다. 일본은 연간 1조 5천억원 한국은 연간 2000억원을 투자합니다. 이게 이나라의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복지가 적다고 분노하는 사람은 많아도 왜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적냐고 분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의 삶이 어렵다고 분노하는사람은 있어도 장래에 대한 대비가 왜없냐고 분노하는 사람은 없는게 이나라의 수준입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죽인다고 정부가 농민들 안보살핀다고 하면서도 제도로 막아달라고 하면서도 내가 대기업이 할수없는 무엇인가 다른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겠다고 시도하는 사람조차 없는게(최소한 저는 보지 못했으니) 이나라의 수준입니다.
      저는 구글이 야후를 상대로 성장할때 구글이 야후가 대기업이고 우리는 중소기업이니 정부가나서서도와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다들 경제정책이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데 정치인인도 그렇도 일반인도 그렇고 경제학서적 한번 제대로 읽어보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인터넷에 본 짧은 단편적인 정보조각들만 익혀서 얕은말만 해댑니다.그러면서 경제학자들이 하는 말은 어용이나 뭐다 하면서 무시해댑니다. 국민들이 그러니까 정치인들도 따라서 그렇게 해댑니다.
      ------------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걍 절이 싫으니 중이떠날랍니디다.
      그냥 내가 미치고 이기적인 놈이고 사이비고 님말처럼 제가 그냥 犬子입니다.
      솔직히 제말을 볼 필요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앞으로일을 알고싶으면 그냥 경제학 전공서적보시는것이 정확합니다. 교양경제학서적말고요. 경제학도가 보는 전공서적이요. 블로그나 신문보지 마시고요. 정보의수준이 얕습니다(그럴수밖에요 정보의 양자체가 적으니 깊이가 얕아질수밖에요)
      다시 말하지만 제말 들을 필요도 읽을필요도 사실 없습니다. 경제학전공서적보시길 강권합니다.
      ===========
      그리고 선의로 한 제말을 곡해해서 많이 받아들이시는것 같은데 말솜씨 없는 저의 탓입니다.

      참 가슴이 아픕니다.
      말을 계속하면 끝도 없고
      결과보면 알겠지요.

      뭐 제가 틀릴수도 있으니
      아무튼 전 가요.

    • 최홍락 2016.12.09 0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하. 이것보세요 간다간다 지금 몇번째입니까. 새벽에 댓글 단거에 또 편집을 좀 했네요.

      ㅋㅋㅋ세상에 미시 경제학 원서(Varan 저), 거시경제학 원서 (Mankiew 및 Romer)읽은 사람 앞에서 전공서적읽으라는 얘기는 그냥 막나가겠다는 거죠? 경제학 교과서는 이러이러한 원리가 있다라는 걸 알려주는거지, 그걸 가지고 현실을 해석하려면 NBER 논문을 밤새도록 파야한다고요. 심지어 그 교수들이 발표한 것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한국은행 또는 미 연준 직원들이 발표하는 보고서들은 그보다 실력이 훨씬 나아요. 그리고 당신은 경제학 교과서를 읽지 않은 티를 여기서 내는거요. 실제 이런 경제학 책을 읽다보면 내가 수학책을 읽는 건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니까...

      당신 수준을 그럴듯하게 늘어놓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보여주는 이 태도는 당신이 보여준 댓글들을 그대로 복사하여 붙여넣고 그다음에 편집을 맞게해서 올려놓은 거라는 걸 당신은 기억조차 안하려고 하겠지요. 하긴 약속을 지금까지 몇번을 깼으니...이런 태도로 누가 누굴 설득하려고요? 좋게 말하면 받아들이지 않아서 충격요법을 쓴다? 내가 좋게 얘기했을 때 당신이 재벌이 되었냐며 막말로 얘기한게 누구였는지...(그때도 그놈의 알파고 얘기 지겹게 했었지요. 인공지능이 게임상에서 인간을 이긴게 체스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30여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게임상에 인공지능이 머물러 있는 건 얘기도 꺼내지 않은 교활함이라니....)

      신흥 공업국 세계은행 2012년 보고서에 '중진국 함정'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난 나라는 아래의 13개국 (적도기니, 그리스, 홍콩, 아일랜드, 이스라엘, 일본, 모리셔스, 포르투갈, 푸에르토리코, 대한민국, 싱가포르, 스페인, 대만)가운데 대표로 한국을 꼽은것은 보기도 싫죠? 보고서 봤어요?

      폴라 스테판의 저서에 따르면 미국의 연구 지원금에 대해 경쟁적인 자금지원 체제는 위험을 무릅쓰려는 의욕을 꺾고 '거의 확실한 연구'를 선정하는 연구비 지원 방식이 구조화,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경력 중에 새로운 주제로 연구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바람에 처음 연구비를 지원받는 과학자의 평균 연령이 1985년 37세에서 2008년 42세로 높아졌으며 전체 연구개발 투자금의 2/3 가량이 생명과학, 그 중에서도 생의학 분야로 집중되고 있어 '적어도 젊은 연구원들에 대한 미국의 현재 보조금 체계는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리지요. 당신이 언급하는 세계 과학의 최고봉 미국도 연구비 지원 제도는 실패에 가깝다고요. 이렇게 자기가 봐야하는 현실에 대한 공부는 전혀 안하는거죠.

      당신이 경제학 교과서랍시고 늘어놓았던 지난 내용들...정규재 TV에서 이렇다라고 나와있는 내용들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놓은 수준이라고....심지어 지난 글에서는 여기 오신 kyw0277님의 자기 홈페이지 소개를 그대로 붙여서 자기가 발견한 마냥 소개하지 않나 하는 수준이 언어도단입니다. 아니 무슨 그럴싸한 연구 결과를 보여준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OECD나 IMF 벡데이터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NBER 자료를 구해온것도 아니고 그냥 지식의 파편만 가지고 사람들한테 던지는 것을 즐겨놓고 무슨 노력을 했다고 이러는지 원....

      지식을 파편적으로 붙여놓고 가니 자기가 한 말들이 앞뒤가 안맞아요. 예전에 농민들의 반발로 기업들이 농업진출이 힘들다고 주장하더니, 얼마전에는 농업이라는게 생산성이 없다나...지식에 대한 F/U 없이 보고서 썼다가 윗사람한테 보고서 날라온 경험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나봅니다.ㅋㅋㅋ그래도 예전에 성준님은 '모든것은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삶의 방향이 뚜렷하게 보이는 분이었는데, 참 아쉽게도....

      말솜씨가 없다는 부분은 인정했네요. 자기가 말솜씨가 없다면 말솜씨를 가다듬기 위해 고민할 생각은 안하고 어디서 남 탓입니까? 이게 진정성 있는 태도이며 반성입니까? 간다간다 해놓고 이게 벌써 몇번째입니까? 이래서 미국 가겠습니까?ㅋㅋㅋ

      국가가 제시하는 조건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막상 자기 자신이 상상 이상의 노력을 퍼붓지 않으면 그 조건 다 허상이에요. 미국이 연구비 많이 투자한다니까 거기 가면 한국마냥 연구할 때 돈 많이 투자받을 것 같지요? 미국가면 기업들이 잘되서 취업 잘될 것 같지요?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Rust Belt에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당신 수준이에요. 걔들은 영어는 잘하거든.

      생각해보니 이제까지 당신이 논거로 든 자료들 중에서 외국 사이트나 문헌에서 구할 수 있었던 자료들은 단 1개도 없었네요. Nasica님은 적어도 Reference가 넘사벽인데, 당신은 그 수준이 안된 거지요. 앞으로 회사에서 보고서 쓰는 연습좀 해서 글을 쓰던가 하세요. 아니면 애널리스트들이 쓴 글을 보고 참고하시던가...

    • 수비니우스 2016.12.09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규재TV에서 인용했다니 ㅋㅋㅋㅋ 역시 알타리무님 ㅋㅋㅋㅋㅋ 그책 읽어보니까 "625전쟁은 재앙으로 위장한 축복"이러던데요 딱 알타리무님 취향저격이네요 ㅋㅋㅋ 그 소리를 625전쟁으로 가족 잃은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할수 있을까요 아 알타리무님은 가족을 다 날려먹어도 좋다고 했으니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 알타리무 2016.12.09 1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결과를 보면 누가 옳은지 알거아닙니까.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자면 끝도없는데. (왜 30년간 머물러있고 지금은 상황이 틀린지 이것도 설명할수있지만)
      님. 그냥 절 미친놈이라 생각해요.

      결과 보면 모든게 분명해질거 아닙니까.
      내가 틀리면 내가 망하겠지 뭔걱정이에요.
      왜 가겠다는 사람에게 자꾸말을 거시는지.

    • 최홍락 2016.12.09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겠다는 사람이 자꾸 댓글을 달면서 오히려 말을 건다고 화를 내는 경우를 가지고 적반하장이라고 하지요.ㅋㅋㅋ그냥 글 안달고 안찾으면 되는데...ㅋㅋㅋ회사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보고서로 요약할 자신도 없이 이야기 하면 끝도 없다고 보고 안하면 결재판 날라와요.ㅋㅋㅋ회사 다니는 것은 맞나요?

      이것보시라니까요. 또 돌아오지요. 참 약속의 가치를 물로 보는 행태입니다.

      한가지 더! 법인세 얘기 알타리무님이 먼저 꺼냈습니다. (한가지 커다란 걱정은 미국과 유럽각국이 현재 법인세를 내리고~)

    • 알타리무 2016.12.09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 과거 인공지능의 발전이 더디었던것은 하드웨어가 발전이 안되어서 인공지능을 구현해낼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슈퍼컴퓨터로 돌리면 인간과 비슷한 정도의 연산속도를 낼수는 있지요."
      "부연하자면 컴퓨터는 순차처리방식이고 인간은 병렬처리방식입니다. 컴퓨터가 속도가 느려도 특정문제= 단순수학연산같은것은 훨씬 인간보다 속도가 빨라보이지만. 컴퓨터 자체의 정보처리속도가 인간두뇌정보처리속도보다 빨라서 그런것이 아니고 인간보다 훨씬 단순한과정으로 연산을 하기 때문에 빨라보일뿐입니다. 문제는 인공지능에서는 인간처럼 정보를 병렬처리해야하지요.
      지난 30년간은 인간두뇌보다 컴퓨터 성능이 많이 딸려서 인공지능 구현자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

      "그리고 정규재 tv팬인것은 맞아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 최홍락 2016.12.09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약속같은 건 안지키는 구질구질함의 끝판왕. 저라면 글을 안달고 그냥 갈텐데.ㅋㅋㅋ저러다 또 오겠네요. 여기밖에는 받아줄 곳이 없을테니...

    • 야채 2016.12.11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1) 미국 이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것이라면, 일단 미국 이민 자체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절대 쉽지는 않지만, 또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 만큼 어렵지도 않습니다. 특히 자녀 중에 장애인이 있다거나 하는 경우 한국에서는 지옥같은 상황을 경험할 수 있으니 미국이 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여건을 따져 보고 미국에 장점이 많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한국 정치에 싫은 점이 있어서라면 그건 말리고 싶습니다. 미국 정치에서도 더러운 꼴은 얼마든지 봅니다. 하다못해 미국과 다른 나라들을 비교라도 해 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2) 미국이 우리나라에 비해 기업에 더 친화적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사실 삼성이 우리나라에서 했듯이 미국에서 독과점 조사하러 오는 정부 관계자들을 직원을 동원해서 막았다면 벌금 5억으로 곱게 끝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미국도 필요하면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의 소유관계를 조정한 경우가 있습니다. 1970년대 초에 AT&T를 해체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00년인가에는 MS도 두 회사로 분할될 뻔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지금의 삼성 지배구조가 미국에서도 합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소비자들이 소송을 걸어서 기업에 거액의 배상금을 물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일에 앞장서려고 눈에 불을 켜고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다니는 변호사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의 제도는 변호사들만 배를 불린다고 비웃지만, 그 결과로 똑같은 기업이 한국과 미국에서 얼마나 다르게 행동하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3) 미국에서는 기업을 자식에게 상속시키지 않습니다. 최홍락님도 말씀하셨듯이 미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40%로, 우리나라의 50%에 비해 낮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상속액에서 543만 달러(2015년 기준)는 제외하고 과세하기 때문에 제법 부자가 아니라면 상속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nasica 님도 쓰셨다시피, 예전에는 미국 최고세율도 90%까지 되었던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율이 지나치게 높다 보니 탈세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결과적으로 세율을 내린 이후보다 세입은 오히려 적었다는군요.

      (4) 개인적으로 '진보' 쪽에서 사회주의적 정책을 펼 것을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김대중 정부에서 국민연금을 도입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정부 주도의 경제에서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전환했고, 노무현 정부는 경제정책 면에서 부동산 가격 올린 것 말고는 대체 뭘 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그러니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정권을 잡는다고 딱히 대단한 사회주의가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외교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펴는 동시에 한미관계를 강조하는 현명한 정책을 취했지만(대북송금 같은 아름답지 못한 세부사항도 있습니다만), 노무현 정부는 미국을 비난하고 북한을 편드는 발언으로 한미관계에 심각한 균열만을 초래했을 뿐 북한이나 중국에서 대접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야심차게 발표한 '대북 중대제안'이 그대로 무시당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고요.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이 또다시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미국 대통령마저 트럼프인 상황에서 한미관계는 '균열'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알타리무 님이 미국 이민을 정말 추진하시겠면 지금 빨리 추진하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 알타리무 2016.12.1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야채님 고맙습니다.

    • 무는개 2016.12.15 0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욕먹으면 흥분하는 변태인가

  8. 프로이센군 2016.12.06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철도가 전쟁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네요... 철도가 없었다면 1차대전에서의 대규모 총동원은 어려웠겠죠?

  9. 잡상인 2016.12.07 2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전투병력이 화살촉과 창날이라면 기동력과 보급은 활과 창대로군요..

  10. 다시다 2016.12.08 1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옛날 남북전쟁 게임할 때도 철로를 확보해야 했죠. 현대전 총력전은 기차를 타고.

  11. 무는개 2016.12.08 2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지에서도 제갈양이 보급에 골머리를 앓다 목우유마 발명하는장면 나오죠
    허구헌날 보급로 유지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제갈양

    • 최홍락 2016.12.14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람들이 제갈량을 많이 흠모한다지만 간손미 브라더스가 없었다면 유비와 촉나라는 보급을 넘어 나라의 기반도 세우지 못했을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12. 수비니우스 2016.12.14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 새글 금단증상 오는것 같아요 빨리 새글을 읽어야 금단증상이 풀릴것 같아요 :D

  13. 오리앙 2016.12.15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회 현장에 생각보다 50대 이상인 분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역시 과거 민주화의 주역인 세대인가 싶었고
    부모와 어린 아이들이 함께 손잡고 가는 모습을 보며 역사적인 순간에 참여하게되어 기쁘기도 했습니다.
    저는 서울 경기에서 성장했지만 TK출신인지라 주위 어른들이 아직 과거의 망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적어도 이분들이 돌아가셔야 세상이 바뀌겠구나 싶었는데 여러 우연적 사건들이 겹쳐 탄핵을 목격하니 세상일은 모를일이다 싶습니다.
    한편으로 이번 사건은 다른 사건(한미FTA 반대)과 어떤 차이가 있어 성공하게 되었나 생각도 해봅니다.
    그동안 강요된 "애국" "법과 질서" "안보" 등의 단어에 너무 질려버렸습니다.
    이젠 비옥한 토양에서 나오는 단어들로 사람들의 황량해진 마음을 채워주가 바랍니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마지막 달 잘 보내시길 바라며 행복하시길~

  14. death hand 2016.12.17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차 세계대전사! 재미있는 책이지요,저도 가지고 있습니다.존 키건이 확실히 글을 잘 쓰죠

  15. 유애경 2016.12.23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정상 집회에는 참석 못하지만 마음으로나마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일본)서도 연일 보도되고 있는데요.
    솔직히...부끄럽습니다.

  16. 김아무개 2017.07.29 0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86운동권 꼰대가 과거 데모질 하던 추억 못잊어 시위 나간걸 자랑이랍시고 ㅋㅋ

    요즘 느그 이니 정치질 잘해서 참보기 좋으시겠네 ㅋㅋㅋ

2016.12.03 13:15

III


오후 1시 조금 지나서, 루이 보나파르트가 로게(Roguet) 장군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린 뒤 약 15분 뒤에, 마들렌(Madeleine)부터 뻗은 전체 길이를 따라 온 거리가 갑자기 기병대와 보병대로 뒤덮였다.  코트(Cotte), 부르공(Bourgon), 캉로베르(Canrobert), 뒬락(Dulac), 그리고 레벨(Reibell)의 5개 여단으로 이루어진 카를레(Carrelet)의 사단 거의 전부, 총 16,410명의 병력이 페 가(Rue de la Paix)에서 포부르 푸아소니에르(Faubourg Poissonniere)에 걸친 사다리꼴로 포진했다.  각 여단은 포병대도 갖추고 있었다.  푸아소니에르 대로에만도 11문의 대포가 목격되었다.  그것들 중 2문의 대포는 포구를 몽마르트르 가(Rue Montmartre)와 포부르 몽마르트르(Faubourg Montmartre)를 각각 조준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두 곳에는 바리케이드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길 가의 보도와 건물 창문을 가득 메우고 있던 구경꾼들은 이 대포들과 군도, 총검들을 놀란 표정으로 쳐다 보았다.






(19세기 후반 파리 포부르-푸아소니에르 거리입니다.  사진 출처는 http://www.de-nicher.com/2015/07/quartier-poissonniere-arrondissement )




"병사들은 웃고 떠들고 있었어요." 한 목격자의 증언이다.  다른 목격자는 이렇게 말한다.  "군인들의 행동이 이상했어요.  그들 대부분이 개머리판을 땅에 댄 머스켓 소총에 기대어 서있었고, 마치 피로나 뭐 그런 것 때문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것처럼 보였다니까요."  병사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던 나이든 퇴역 장교였던 L모 장군은 당시 카페 프라스카티(Cafe Frascati) 앞을 지나가며 말했다.  "저 친구들 술에 취했네."


곧 어떤 일이 생길 지에 대한 징후가 몇몇 있었다.


한번은 시민들이 군부대에게 "공화국 만세! (Vive la Republique!)" "루이 보나파르트를 타도하라! (à bas Louis Bonaparte!)"를 외치고 있을 때, 장교들 중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고 한다.  "이제 저것들 곧 돼지고기(charcuterie) 신세가 될 거야."


보병 대대 하나는 리셜리외 가(Rue Richelieu)로부터 행진해 나왔다.  이 부대가 카페 카디날(Cafe Cardinal) 앞을 지나갈 때 이들에게 시민들이 일제히 "공화국 만세!"를 외쳤다.  보수파 신문의 편집인이었던 한 작가가 마침 이 장소에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덧붙여 외쳤다.  "술루크를 타도하라!"  이 부대를 지휘하던 참모 장교는 그 언론인을 노리고 군도를 내리쳤는데, 이 언론인은 다행히 잽싸게 고개를 숙여 피했고, 장교의 검은 거리의 작은 가로수 가지를 두동강 내버렸다.






(파리의 위성 사진입니다.  노란색으로 표시된 거리가 Rue Taitbout 입니다.  그 왼쪽 아래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바로 유명한 오페라 가르니에(Opera Garnier)입니다.   1851년 당시에는 저 건물이 없었지요.  루이 나폴레옹이 이 피비린내 나는 유혈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된 뒤에 만든 건물이거든요.) 




로슈포르 대령이 지휘하는 창기병 제1 연대는 테부 가(Rue Taitbout)와 교차하는 지점까지 도달했는데, 이 거리에는 많은 시민들이 밀집해 있었다.  그들은 이 구역에 사는 주민들, 상인들, 예술인들과 언론인들이었고, 그들 중에는 어린 아이들의 손을 쥔 젊은 엄마들도 몇몇 있었다.  이 기병 연대가 지나갈 때,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쳤다.  "헌법 만세 ! (Vive la Constitution!)", "법치 만세 ! (Vive la Loi!)", "공화국 만세 !"  


로슈포르 대령은 약 1달 전인 1851년 10월 31일, 파리 사관학교(Ecole Militaire)에서 제1 기병 연대가 제7 기병 연대에게 베푼 만찬회를 주관했고, 또 그 자리에서 '이 국가의 수장이시자 우리가 수호하는 질서의 현신이신 루이 나폴레옹 왕자께'라며 건배사를 외쳤던 인물이었다.  이 로슈포르 대령은 시민들이 외치는 그 완벽하게 적법한 구호를 듣자마자, 보도의 벤치 사이로 말을 몰아 시민들의 무리에 뛰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휘하 창기병들도 돌격했다.  그들은 남자, 여자, 아이들까지도 아무 거리낌없이 찔러 쓰러뜨렸다. 쿠데타 옹호자 하나는 이렇게 증언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파리 시내의 Ecole Militaire입니다.  유명 졸업생으로는 나폴레옹 1세가 있습니다.  지금은 사관학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이런저런 국방 관련 기관들이 입주해있다고 합니다.)




약 2시 경에는, 2문의 곡사포가 본느 누벨(Bonne Nouvelle) 초소에 있는 작은 전초 바리케이드에서 약 45m 떨어진 푸아소니에르 대로(Boulevard Poissonniere)의 끝자락을 향해 조준되었다.  이 대포들을 방열시킬 때,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 포병 2명이 탄약차의 연결대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서민층 사람들 중 하나가 외쳤다.  "저것 봐, 쟤들 완전히 취했네 !"


이 끔찍한 드라마를 분 단위로 회상하자면, 2시 반 경에 그 바리케이드 앞에 마치 장난으로 하듯 별 위력없는 포격이 한 방 발사되었다.  장교들은 전투를 벌일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곧 알게 된다. 


조준이 형편 없었던 첫번째 대포알은 바리케이드 위로 스쳐 날아가 (더 멀리 떨어진) 샤토 도(Chateau d'Eau, 물의 성이라는 뜻)의 샘에서 물을 긷던 어린 아이를 죽였다.  






(서민들을 위한 샘이 있던 '물의 성'이라는 뜻의 Chateau d'Eau입니다.  사진 출처는 http://www.gettyimages.com/detail/news-photo/paris-the-chateau-deau-place-and-the-douane-street-about-news-photo/56209145#paris-the-chateau-deau-place-and-the-douane-street-about-1840-picture-id56209145 )




가게들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대부분의 창문들도 그러했다.  하지만 상티에 가(Rue du Sentier)의 모퉁이에 있는 가옥의 2층 창문 하나는 열려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구경꾼들은 주로 거리의 남쪽면에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군중들이었다.  바리케이드에 대한 대단치 않은 공격과 방어를 그저 일종의 작은 싸움 구경으로 생각한 남자, 여자, 어린애와 노인들이었다.  


이 바리케이드는 처음에는 구경거리였으나 나중에는 변명거리가 되었다.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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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로이센군 2016.12.03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저 시대엔 시민봉기 진압을 위해 시내에서도 포를 쐈군요...

    • 장웅진 2016.12.03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시카 님께서 전에 쓰신 글 중에 이 글 속 악당의 백부가 대포로 시민들을 잡은 이야기가 나오죠. 물론 그 양반은 딱 한 번인가 쐈지만...

      우째 아버지와 딸, 백부와 조카...

    • 야채 2016.12.04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웅진/ 그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포격을 했을 때는 말이 시민봉기지 사실상 왕당파 반란군과 혁명 정부 사이의 전쟁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nasica 님의 앞선 글에서도 묘사되었듯이, 왕당파측에 국민방위군 병력이 무려 3만명 정도나 가담했고, 이는 정부측 방어병력인 5천에 비해 압도적인 숫자였습니다. 게다가 나폴레옹이 사용한 그 대포는 왕당파 쪽에서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단지 나폴레옹이 그 대포를 기민하게 먼저 확보했을 뿐입니다.

    • spo 2016.12.07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야채님 분석이 더 타당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1795년과 1851년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요.

  2. 블랑 2016.12.04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루이가 저렇게 군부를 쥐게 된 배경은 뭔가요?

    아무래도 삼촌 잘 둔 덕인가요?

  3. apils 2016.12.09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인간이 보불전쟁으로 대국 프랑스의 명예를 말아먹고 백부 시절 용병국가나 다름없던 프로이센 손에 질질 끌려다녔으니.... 쿠데타과 자국민 학살을 일삼는 집단은 역시 저모양이군요.

2016.12.02 13:20

II


아침 이른 시간부터 - 여기서는 미리 획책된 것이 분명한데 - 모든 거리의 모퉁이마다 이상한 플래카드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런 플래카드의 내용을 우리가 옮겨적었으므로, 독자들은 그걸 기억할 것이다.  가끔씩 파리 시내에 혁명의 대포 소리가 울려퍼지고, 정부가 아주 절박한 조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지난 60년 동안에도, 이런 플래카드는 목격된 적이 없었다.  그 내용은 그 종류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모든 집회는 아무 사전 경고 조치 없이 무력으로 해산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문명의 대도시인 파리 시민들은 인간이라면 자신의 범죄를 그런 극단적인 선까지 밀어붙일 것이라고는 쉽사리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경고문은 그저 혐오스럽고 야만적인 협박용이라고 간주되었고, 거의 코미디 수준이라고들 얕보았다.


하지만 대중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 플래카드에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전체 계획이 다 들어있는 것이었다.  그 경고는 매우 진지한 것이었다.


12월의 인간에 의해 준비되고 저질러진, 이 전대미문의 드라마의 무대가 된 장소에 대해서 한마디 첨언하겠다.  






(포르트 생-마르텡입니다.  글자 그대로 성 마틴 대문이라는 뜻입니다.  아래 지도에서 보시듯이, 노트르담이 있는 시테 섬 북쪽에 있습니다.)



마들렌(Madeleine)에서 포부르 푸아소니에르(Faubourg Poissonniere)에 이르는 대로는 막혀 있지 않았다.  짐나즈(Gymnase) 극장에서 포르트 생-마르텡(Porte Saint-Martin)까지의 부분은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었고, 봉디 가(Rue de Bondy), 네슬레 가(Rue Neslay), 륀 가(Rue de la Lune)도 마찬가지였으며, 생-드니(Saint-Denis)와 포르트 생-마르틴(Porte Saint-Martin)에 접하거나 연결된 모든 거리가 다 막혀 있었다.  포르트 생-마르틴 너머의 대로는 샤또 도(Chateau d'Eau) 반대편에서 시작된 바리케이드 하나만 빼고는 다시 바스티유(Bastile)까지 그냥 뚫려 있었다.  포르트 생-드니(Porte Saint-Denis)와 포르트 생-마르틴(Porte Saint-Martin)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7~8개의 바리케이드가 있었다.






(포르트 생-마르텡의 위치를 보여주는 구글 지도입니다.  그 바로 서쪽으로 포르트 생-드니가 있습니다.) 






(구글 덕분에 앉아서도 파리 시내 구경이 가능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길 한복판의 두 대문 중, 왼쪽의 좀더 큰 것이 포르트 생-드니, 오른쪽 것이 포르트 생-마르텡입니다.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 때, 포르트 생-드니 주변 4개 도로가 모두 시민들이 쌓은 바리케이드로 막혔습니다.)




포르트 생-드니는 사면이 4개의 바리케이드로 봉쇄되어 있었다.  이 4개의 바리케이드 중 마들렌 쪽을 향한 것은 진압군의 첫번째 공격을 받을 운명이었는데, 그 거리 중 가장 높은 지점에 세워져 있었고, 그 왼쪽 끝은 륀 가, 오른쪽 끝은 마자그랑(Mazagran)에 접하고 있었다.  4대의 합승마차(omnibus), 그리고 5대의 가구 운반마차, 내던져진 전세 마차(hackney coach) 감독관 초소, 그리고 부서진 간이 공중화장실(Vespasian column), 대로변의 공공 벤치, 륀 가의 계단 판석, 군중들이 통째로 뜯어낸 쇠로 된 인도 가드레일 등이 이 요새의 재료였다.  이런 바리케이드로는 그 넓은 대로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도로는 매커덤(macadam) 방식으로 포장된 것이라서, 보도블럭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그 바리케이드는 대로 양쪽 끝까지 뻗어 있지도 않아서, 마자그랑 가로 향한 집 한 채를 짓고 있던 쪽으로는 큰 빈 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빈 틈을 본 어느 잘 차려 입은 젊은이가 공사용 비계에 올라가, 혼자 힘으로, 입에 담배도 그대로 문 채로 아주 여유있게, 그 비계의 밧줄을 모두 끊어버렸다.  인근의 창문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웃으며 이 청년에게 박수를 보냈다.  한 순간 뒤 이 비계는 큰 소리와 함께 우르르 무너져 내리며 틈을 막았고, 이로써 바리케이드가 완성했다.






(마카담(macadam)으로 포장된 도로입니다.  일정한 크기로 잘게 부순 돌을 깐 도로입니다.  그 이름이 혹시 마카다미아 견과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만, 그와는 전혀 무관하고, 이런 도로 포장법을 최초로 만든 스코틀랜드 출신 엔지니어 이름이 존 매커덤(John McAdam)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도 학생들이 보도 블럭을 뜯어다 경찰에게 던졌기 때문에, 대학 주변의 도로에서 보도 블럭을 모두 없애고 인도까지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원래 공중화장실이라는 것이 파리에 처음 들어선 것은 1770년 경 '신사들을 위한 소변기' 수준이었습니다.  형태도 정말 나무통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830년 경 파리 시 장관이었던 랑뷔토 백작(comte de Rambuteau)이 칸막이가 달린 소변기를 도입했습니다.  그의 정적들은 이를 비웃어 이 남성용 간이 화장실을 '랑뷔토 기둥'(la colonne Rambuteau)이라고 불렀는데, 랑뷔토 백작은 이를 맞받아쳐 로마 시내에 최초의 공중 소변 화장실을 만들었다는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딴 '베스파시아누스 기둥'(la colonne vespasienne)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름이 굳어져, 이런 남성용 간이 화장실을 베스파시아누스 기둥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이 보루가 완성되는 동안, 약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무대 문을 통해 짐나즈 극장으로 들어갔고, 얼마 뒤에 거기의 옷장에서 찾은 머스켓 소총 몇 자루와 북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것들은 극장 용어로 '소도구'라 불리던 것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북을 쥐고 전투 준비를 알리는 북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뒤집어 놓은 간이 화장실들과 옆으로 넘어뜨린 마차, 뜯어낸 블라인드와 셔터, 낡은 무대배경 등으로 본느-누벨 대로(Boulevard Bonne-Nouvelle)의 초소 반대편에 일종의 전초진지 같은 작은 바리케이드, 아니 작은 반달 모양의 진지를 지었다.  여기서는 푸아소니에르 대로와 몽마르트르 대로 뿐만 아니라 오뜨빌 가(Rue Hauteville)까지도 관측이 가능했다.  군 부대는 아침에 그 초소에서 철수한 상태였다.  그들은 그 초소의 깃발을 뽑아와 바리케이드에 꽂았다.  그 깃발이 나중에 쿠데타의 신문들이 '붉은 깃발'로 부른 그 깃발이었다.


약 15명의 사람들이 이 전초 진지에 위치를 잡았다.  그들에게 머스켓 소총은 있었으나 탄약이 없었고, 있더라도 매우 적은 양이었다.  그들 뒤에는 포르트 생-드니를 커버하는 큰 바리케이드를 약 100여 명의 전투원이 점거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2명의 여자와 한 명의 백발 노인도 목격되었다.  그 노인은 왼손에 든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오른손에는 머스켓 소총을 쥐고 있었다.  두 여자 중 하나는 어깨에 군도(sabre)를 맨 채로 길 옆 보도의 가드 레일을 뜯어내는 것을 돕다가 쇠막대의 날카로운 가장자리에 오른손의 손가락 3개를 베었다.  그 여자는 군중들에게 그 상처를 보여주며 외쳤다.  "공화국 만세 ! (Vive la Republique!)"  다른 여자는 바리케이드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그 위에 꽂힌 깃대에 몸을 기대고는, 머스켓으로 무장한 셔츠 차림의 두 남자가 받들어 총을 해주는 사이 좌익 대표단이 발행한 무장 봉기 호소문을 큰 소리로 읽었다.  군중들은 박수를 쳤다.  


이 모든 일들은 정오에서 오후 1시 사이에 일었났다.  바리케이드 이 쪽에서는 대로 양쪽의 보도를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떤 곳은 조용했고, 어떤 곳에서는 "술루크 타도 ! 배신자 타도! (à bas Soulouque! à bas le traître!)"를 외치고 있었다.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것은 수염난 남정네가 아니라 저렇게 서민들이 쓰는 붉은 고깔 모자를 쓴 마리안느라는 여성입니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명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입니다.) 




가끔씩 애도 행렬이 군중 속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그 행렬은 병원 직원들과 군인들이 나르는 밀폐형 가마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선두에는 긴 막대를 든 남자들이 행진했다.   그 막대 끝에는 큰 글씨로 '군 병원 활동'이라고 적힌 파란색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가마를 덮은 커튼에는 '부상자, 앰뷸런스'라고 적혀 있었다.  날씨는 흐리고 비가 내렸다. 


이때 파리 증권 거래소(la Bourse)에는 많은 군중이 있었다.  모든 벽에는 벽보 붙이는 사람들이 쿠데타에 대한 지지를 발표하는 공문을 붙이고 있었는데, 시장 상승세를 바라던 주식 중개인들조차도 이런 벽보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비웃을 정도였다.  갑자기, 지난 2일 간 쿠테타를 열정적으로 환영하던 잘 알려진 투기꾼이 마치 도망자처럼 하얗게 질리고 숨이 찬 모습으로 나타나 소리쳤다.  "저들이 대로에서 발포하고 있어요 !"


벌어진 일은 다음과 같았다.  






(파리의 증권 거래소인 부르즈(Bourse de Paris)입니다.  브롱냐르 궁(Palais Brongniart)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건물은, 원래 캥캉푸아(Quincampoix) 등 몇몇 곳에서 벌어지던 증권 거래를 통합하기 위해 나폴레옹 1세가 알렉상드르 브롱냐르에게 의뢰하여 지은 것입니다.  당시 나폴레옹은 이 건물 디자인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는데, 정작 건축가들의 비평은 고리타분하다는 등 별로 좋지 않다고 합니다.)




관련 source : http://carolineld.blogspot.kr/2016/08/last-relief.html 

https://en.wikipedia.org/wiki/Macadam

https://en.wikipedia.org/wiki/Paris_B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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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홍락 2016.12.03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학교에도 마카담으로 포장된 도로가 일부 있는데, 유지비 측면에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는 얘기가 있었지요.

  2. 장웅진 2016.12.03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샤프도 어릴 때 뱃밥을 만들던 구빈원에서 어른 빈민들은 돌을 쪼았다더니만, 도대체 뭘 하는데 쓴 건지 했는데...

  3. 블랑 2016.12.04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기동 촘촘하게 세우면 건물이 뭔가 답답한 느낌이던데

    • 장웅진 2016.12.04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풍백화점처럼 무너질 일은 없겠죠.

      영화 [타이타닉]에서 "미관을 위해 구명보트의 수를 줄였습니다"라는 화이트스타 사 관계자의 말이 생각나네요.

  4. 질문 있습니다 2016.12.05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인장님, 전에 다음 블로그에 나폴레옹 전쟁을 다룬 글에서 '당시 유럽의 도로 상태는 좋지 못했다'는 내용을 종종 보았습니다. 혹시 당시 유럽의 노면 상태와 관련된 자료를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2016.11.23 21:44


(지난 편에서 이어지는 제롬 보나파르트의 편지 내용입니다.)


"조카여, 프랑스 국민들의 피가 흘렀구나.  그 확산을 멈추기 위해 국민들에게 진지하게 호소하렴.  너의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단다.  국민투표에 대해 언급했던 너의 두번째 선언문을 국민들은 보통 선거권의 재확립이라고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공화국 헌법에 기여할 의회가 없다면 자유는 어떤 것도 보장할 수 없단다.  군대가 더 유리한 위치에 있어.  이제야말로 도덕적인 승리로서 실질적 승리를 완성할 순간이다.  패배한 경우엔 할 수 없는 것을 승리했을 때 해야 한다.  과거 정당들을 해체한 뒤에 국민 전체를 복권시키렴.  보통 선거권이 진지하고 자유롭게 행사되어, 공화국을 구할 대통령과 제헌 의회를 선출할 거라고 선포해야 한다.  


내가 이 편지를 너에게 쓰는 것은 내가 형 나폴레옹을 기억하고, 그가 내전을 얼마나 혐오했는지 공감하기 때문이란다.  내 오랜 경험을 믿으렴.  프랑스와 유럽, 그리고 후세가 너의 행동을 평가할 거라는 것을 기억하려무나.


너를 사랑하는 숙부, 제롬 보나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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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Nicolas Fabvier는 나폴레옹 밑에서 복무한 장교로서 페르시아와 오스만 투르크에 사절로 가기도 했습니다.  1851년 쿠데타 당시는 이미 퇴역한 상태였고,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반대하는 보수파 정당의 일원이었습니다.)

 



마들렌 광장(Place de la Madeleine)에서는 두 대표 파비에(Fabvier)와 크레스텡(Crestin)이 만나 대화했다.  파비에 장군은 크레스텡에게 4문의 대포가 원래와는 반대 방향으로 포구가 돌려져 있는 것을 지적하고는, 즉각 그 대로를 떠나 엘리제 궁으로 말을 달렸다.  "엘리제 궁이 이미 방어 태세에 들어간 것일까 ?" 장군이 말했다.  크레스텡은 레볼뤼시옹 광장(Place de la Revolution, 혁명 광장, 현재의 콩코르드 광장)의 다른 쪽에 있는 의회 의사당의 전면부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장군, 내일이면 우린 저기에 있을 겁니다."  엘리제 궁의 마굿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몇몇 다락방에서는 3대의 여행 마차가 이른 아침부터 짐을 싣고 말들을 정렬시킨 뒤, 좌마기수까지 이미 안장 위에 오른 채로 대기 중인 것이 목격되었다.  





(여기서 레볼뤼시옹 광장으로 불린 콩코르드 광장입니다.  광장 북서쪽에는 저 너머에는 대통령 궁인 엘리제 궁이, 그리고 남쪽의 센느 강 너머에는 프랑스 혁명 이후 의회 의사당이 된 부르봉 궁 Palais Bourbon이 있습니다.)




실제로 충격이 대단했고, 분노와 증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뭔가 하나만 더 터진다면 루이 보나파르트는 몰락할 판국이었다.  그저 그 날 하루가 그대로 끝난다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쿠데타는 절망 상태에 근접해 있었다.  최후의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왔다. 과연 그는 무얼 할 생각이었을까 ?  그는 뭔가 큼직한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것으로 반격을 해야 했다.  그는 이대로 망해버리거나, 공포의 수단을 써서 위기를 벗어나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린 상태였다.  


루이 보나파르트는 엘리제 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도 당시 현장에 있었던, 1815년 나폴레옹 1세의 두번째 퇴위가 있었던 웅장한 응접실 근처에 있는 1층 사무실에 있었다.  그는 혼자였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둔 상태였다.  가끔 문이 조금 열리고 그의 부관인 로게(Roguet) 장군이 흰머리칼이 무성한 머리를 들이밀곤 했다.  이 장군이 문을 열도록 허락된 유일한 인물이었다.  장군은 점점 더 경악스러워지는 소식을 들고 왔고, 하던 말을 자주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또는 '일이 꼬이고 있습니다' 등의 말로 끝맺었다.  그가 말을 마치자, 벽난로를 활활 피워놓고 책상 위에 팔꿈치를, 장착 받침대 위에 발을 올려 놓고 앉아 있던 루이 보나파르트는 의자에서 고개를 반쯤 돌리고는 아무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목소리로, 계속 다음과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내 명령대로 실행하라 전하게."  






(Faustin Soulouque는 당시 아이티의 황제였습니다.  1847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장군이었던 그는 이 시건 바로 2년 전인 1849년 스스로 황제로 즉위한 독재자였고, 프랑스에서는 비웃음을 사고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로게 장군이 나쁜 소식을 들고 마지막으로 방에 들어선 것은 거의 1시 경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로게 장군 자신이, 자기가 모시던 상관의 침착함과 함께 직접 세세히 묘사를 했다.  그는 왕자(Prince President를 공식 호칭으로 썼던 루이 나폴레옹을 가리킴)에게 파리 중심부의 바리케이드들은 여전히 버티고 있고 오히려 사람의 수가 늘고 있으며, 거리마다 '독재자 타도'를 외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감히 실제로 외쳐지던 '술루크(Soulouque) 타도'라는 구호를 보고하진 못했다.  그리고 군 부대가 이동하는 곳마다 힐난하는 고함소리가 그들을 맞았고, 주프롸 회랑(Galerie Jouffroy)에서는 어느 소령 하나가 군중들에게 쫓겨다녔으며, 카디날 카페(Cafe Cardinal)에서는 참모 대위 하나가 말에서 끌어내려졌다고도 보고했다.  루이 보나파르트는 의자에서 반쯤 일어나 장군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네 !  생-타르노(Saint-Arnaud) 장군에게 내 명령을 전하게."








(Galerie Jouffroy는 지금도 유명한 파리 시내의 지붕 덮힌 140m 정도 되는 통로입니다.   쿠데타 6년 전인 1845년에 만들어진 이 길은 최초로 유리와 강철로만 만들어진 지붕 회랑으로 유명합니다.) 




이 명령이란 무엇이었을까 ?  우린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다.  필자는 고통스럽고 주저하는 마음으로 펜을 내려둔다.  이제 우리는 그 서러운 날, 12월 4일의 혐오스러운 위기에 접근하고 있다.  우리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쿠데타의 성공을 낳은 그 괴물 같은 행위에 다가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루이 보나파르트가 미리 획책했던 음모 중 가장 무시무시한 것을 밝히려 한다.  12월 2일을 기록했던 모든 사료 편찬자들이 숨겨왔고, 마냥(Magnan) 장군이 보고서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것, 파리에서조차도 목격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몰래 속삭이는 것을 두려워하던 그것을 폭로하고, 서술하고, 묘사하려고 한다. 이제 우리는 무시무시한 것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12월 2일은 어둠으로 덮힌 범죄이고, 침묵 속에 뚜껑이 닫힌 관이며, 그 틈 사이로는 피가 솟구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관 뚜껑을 열려고 한다.





(5.18 광주 학살을 연상시키네요...  당시에도 그런 학살 사건을 은폐하고 그걸 밝히려는 노력을 탄압했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게른제 섬으로 망명가서 쓴 이 '꼬마 나폴레옹'은 몰래 프랑스로 반입되어 숨어서들 읽었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또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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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비니우스 2016.11.23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댓글의 영광을 누리는 행운을 얻었군요.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를 세계사에서 배울때 교과서든 일반서적이든 보통 쿠데타가 성공했다고 짧게 넘어가길래 순조롭게 성공했는줄 알았더니 상당히 어렵고 아슬아슬하게 성공했나보네요. 하긴 5.16과 12.12도 짚어보면 굉장히 아슬아슬하게 성공한 쿠데타였죠.

  2. 블랑 2016.11.24 0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러고도 성공한거 보면 군은 그래도 강하게 틀어쥐고 있었나보네요.

  3. SISO 2016.11.24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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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0_- 2016.11.24 1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반란군놈들 대갈통을 다 날려버릴 장 장군님이 시급합니다 ㅠㅠ

  5. apils 2016.11.26 0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대체 뭐를 하려고! 숨통이 막힙니다.

  6. 게일 2016.11.27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고갑니다!

  7. ㅇㅇ 2016.12.02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8. 정암 2016.12.06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마 블로그에 올리신 내용이 2016년 12월 대한민국에서도 재현되는건 아니겠죠?? ㄷㄷㄷ

2016.11.20 22:42

요즘 시국에 편승하여, 빅토르 위고의 'Napoleon Le Petit' 즉 '꼬마 나폴레옹' 중 일부를 발췌 번역해 몇 편에 걸쳐 올립니다.  이 책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건 보쥬 광장 거리에 있는 빅토르 위고 기념관에서 제가 찍은 당시 풍자화 사진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3세를 대통령으로서 지지했으나, 그가 1851년 12월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 영구 집권을 하자 그에 저항하다가 영국령 게른제 섬으로 망명했습니다.  이 신문 풍자 만화에서 빅토르 위고는 12월에 파리 길바닥에 흐른 피를 나폴레옹 3세가 자세히 보고 냄새 맡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저 만화 제목인 Le Nez Dedans 은 Nose in 으로서, '코를 들이대 !' 정도의 뜻입니다.)




1848년 7월 혁명으로 루이 필립의 오를레앙 왕조가 무너지자, 프랑스는 공화국에 대한 희망, 그리고 그동안 억눌린 각계 각층의 요구 폭발로 인한 대혼란에 빠져 듭니다.  이 와중에, 기존 정치인들의 예상과 달리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좀 덜 떨어진 인물로 보았던 루이 나폴레옹이 위대한 나폴레옹의 후광을 업고 제2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당시 프랑스 헌법은 대통령의 재임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1852년에 루이 나폴레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1851년 말 루이 나폴레옹은 개헌을 통해 자신의 집권 연장을 꾀하지만, 의회를 장악한 자신의 정적들이 그를 좌절시키자, 치밀한 준비 하에, 백부인 나폴레옹 1세가 황제에 등극한 날이자 아우스테를리츠 전투가 벌어졌던 날인 12월 2일, 친위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이에 대해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곳곳에서 쿠데타에 저항하는 봉기가 일어났고,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를 비롯한 지식인들도 이 저항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결국 군대의 무자비한 진압에 수백명의 사망자를 내며 봉기는 실패했고, 1년 후인 1852년 12월 2일, 루이 나폴레옹은 공화국을 폐지하고 황제 나폴레옹 3세로 즉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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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의 범죄


"12월 4일"


저항은 예상과는 다른 대규모가 되어 버렸다.  


전투는 매우 위협적으로 진행되었다.  더 이상 소규모 국지전이 아니라, 아예 대규모 전투가 되어 버렸고, 사방에서 교전이 벌어졌다.  엘리제(Élysée)와 다른 지역구에서, 사람들은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리케이드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것들을 쌓아 올렸다.


파리 중심부는 임시로 만든 보루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바리케이드를 길을 막은 구역들은 커다란 사다리꼴 모양을 형성했다.  알르(Halles)와 랑뷔토 가(Rue Rambuteau)를 한쪽으로 하고, 대로들을 다른 쪽으로 했으며, 동쪽으로는 탕플 가(Rue du Temple)를, 서쪽으로는 몽마르트르(Rue Montmartre)를 경계로 했다.  그물망처럼 엮인 이 거대한 거리들은 모든 방면에서 보루와 참호로 차단되어 있었고, 매시간이 흘러갈 때마다 점점 더 무시무시한 모습을 띠었고, 요새처럼 변해갔다.  바리케이드의 전투원들은 센느 강 부두까지 전초병들을 내보냈다.  


이 사다리꼴 구역 밖에서는 바리케이드가 포부르 생-마르텡(Faubourg Saint-Martin)과 운하 인근까지 뻗어 있었다.  저항 위원회에서 대표자로 드 플로트(Paul de Flotte)를 보내온 학교 구역은 그 전날 저녁 때보다도 더 보편적으로 봉기에 나선 상태였다.  교외 지역에도 불이 붙고 있었다.  바티뇰(Batignolles)에서는 '무기를 들라'는 북소리가 울려퍼졌고, 마디에 드 몽조(Madier de Montjau)가 벨빌(Belleville) 지역을 일깨우고 있었다.  샤펠-생-드니(Chapelle-Saint-Denis)에서는 엄청난 크기의 바리케이드를 세우는 중이었다.  상업 지구에서 남자들은 머스켓 소총을 날랐고, 여자들은 붕대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어 !  파리가 봉기했어 !"  B---가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로 저항 위원회에 들어서며 외쳤다.  





(사진 속의 인물은 마디에 드 몽조 Noël Madier de Montjau 입니다.  이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도 이 무장 봉기 이후 망명을 해야 했고,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군에게 항복하는 1870년 이전에는 프랑스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저항 위원회는 쿠데타가 발생한 12월 2일 밤에 조직된 것으로, Carnot, de Flotte, Jules Favre, Madier de Montjau, Michel de Bourges, Schœlcher, 그리고 Victor Hugo가 대표로 있었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각기 다른 지역구의 모든 위원회가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저항 위원회의 위원들은 심사숙고하며 사방의 전투에 대해 명령과 지시를 전달했다.   시민들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아직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있던 이 모든 사람들이 열정과 기쁨에 가득차 서로 포옹하기도 했다.  


쥴 파브르(Jules Favre)가 말했다.  "자, 이제 정규군 연대 하나만 우리 편으로 넘어오면 루이 보나파르트는 끝장이야."  미쉘 드 부르쥬(Michel de Bourges)도 말했다.  "내일이면 공화국이 시청(Hotel de Ville)을 접수할 걸세."  모든 것이 흥분의 도가니였다.  가장 조용한 지역구에서도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 포고문이 찢겨져 나갔고, 법령 발표문이 훼손되었다.  보부르 가(Rue Beaubourg)에서는 바리케이드를 세우는 남자들에게 여자들이 창문에서 "용기를 내세요 !"라고 소리쳤다.  소요 사태는 포부르 생 제르맹(Faubourg Saint-Germain)까지 퍼졌다.  파리 경찰 조직의 중심부였던 제뤼살렘 가(Rue de Jerusalem)의 경찰청 본부는 전체가 벌벌 떨고 있었다.  공화국이 승리할 것 같은 가능성이 보였으므로, 경찰의 고민은 엄청났다.  경찰청 안마당에서, 사무실에서, 그리고 복도에서, 서기들과 경관들(sergents-de-ville)은 코시디에르(Caussidiere)에 대해 애정어린 후회를 마음에 담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Marc Caussidière는 언론인으로서 1848년 7월 혁명 때 바리케이드에서 싸우다 경찰 본부를 점령한 뒤 임시 정부에 의해 경찰 총장으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런 소란 속에서, 경찰 총장인 모파(Charlemagne de Maupas)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쿠데타에 대해 호의적이었고, 봉기에 대해 험악한 태도를 취하고 있던 그가 뒷걸음질치며 꼬리를 내렸다.  아마도 그는 겁에 질려 거리의 소란과 차오르는 반란, 정의의 편이 일으킨 성스럽고 적법한 반란 소식에 귀를 기울였던 모양이었다.  그가 허둥거리며 주저하는 동안 그의 명령도 슬슬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의 전임자이던 카알리에(Carlier)는 그런 그를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저 불쌍한 젊은 친구가 배탈이 난 모양이군."





(Charlemagne de Maupas는 당시 루이 보나파르트 대통령 밑에서 경찰 총장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는 쿠데타의 주요 계획자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런 비상 사태 속에서 모파는 모르니(duc de Morny, 당시 내무부 장관)에게 달라 붙었다.  당시 경찰청과 내무부는 전신으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소식을 주고 받고 있었다.  모든 긴박한 소식과 공포와 혼란에 질린 신호들이 경찰청장으로부터 내무부 장관에게 날아들었는데, 모르니는 담대한 인물로서 좀더 침착한 편이었고, 그의 사무실에서 이런 모든 충격적인 소식들을 소화하고 있었다.  이렇게 겁에 질린 소식이 처음 날아들자, 모르니는 그저 '모파가 아픈 모양이군'이라고 말했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신으로 '잠이나 자시오'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  다시 어쩌면 좋으냐고 질문이 날아오자, 그는 다시 '잠이나 자시오'라고 답을 했고, 세번째로 같은 질문이 오자, 그도 평정심을 잃고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한다.  '빌어먹을 잠이나 자라니까' 






(Charles de Morny는 탈레랑의 아들과 나폴레옹의 의붓딸 오르탕스 사이에 태어난 혼외자로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동복 형제였습니다.  당시 내무부 장관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정부 요원들의 열의도 아주 빠른 속도로 식어 갔고 편을 바꾸기 시작했다.  포부르 생-마르소(Faubourg Saint-Marceau) 구역을 봉기시키라는 임무를 받고 저항 위원회에서 파견된 어느 용감한 남자가 주머니에 좌익의 선언문과 포고문을 잔뜩 담은 채로 포세-생-빅토르 가(Rue des Fossés-Saint-Victor)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즉각 경찰청 방향으로 끌려갔다.  그는 총살당할 것을 각오했다.  그를 끌고 가던 호송대가 케-생-미쉘(Quai-Saint-Michel)에 있는 시체 안치소를 지나치자, 시테(Cité) 섬 쪽에서 머스켓 소총 소리가 들려왔다.  이때 호송대를 이끌던 경관이 병사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초소로 돌아가게.  이 죄수는 내가 처리하겠네."  병사들이 가버리자, 그는 죄수를 묶은 포승을 끊더니 말했다.  "가게나.  내가 자네 목숨을 살려주지.  자네에게 자유를 준 것이 나라는 것을 잊지 말라구.  날 잘 봐 둬.  다시 날 봐도 알아 볼 수 있게 말일세."







(시테 Cité 섬은 파리 한 가운데 있는 센느 강 속의 섬으로서, 노트르담이 여기에 있고 각종 관공서도 있습니다.)




군의 주요 쿠데타 공모자들은 회합을 가졌다.  주요 의제는 루이 보나파르트가 포부르 생-오노레(Faubourg Saint-Honoré)를 즉각 떠나서 엘리제보다는 방어에 더 용이한 두 전략 요충지인 앵밸리드(Invalides) 또는 뤽상부르 궁(Palais du Luxembourg)으로 이동하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앵밸리드를 선호했고, 다른 이들은 뤽상부르 궁을 선호했다.  이 때문에 두 장군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베스트팔렌(Westphalia) 전(前) 국왕이던 제롬 보나파르트(Jérôme Bonaparte)가 쿠데타가 실패할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다음 날을 걱정하여 다음과 같은 중요한 편지를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에게 보내온 것은 바로 이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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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또 시간 날 때요...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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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ㄴㅇㄴㅇ 2016.11.20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실봇이 나폴레옹 3세만큼의 지능이 있길 바라는건 무리인가 봅니다...

  2. 응딩이 2016.11.21 0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모르니 공작은 루이 보나파르트와는 동복형제 정도가 아니라 그냥 형제였다죠... 유전자 검사 결과 루이 보나파르트의 친부가 나폴레옹의 동생 루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거든요

  3. 알타리무1 2016.11.21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의 경우는 민주주의체제가 들어선뒤 왕정으로 바뀌거나 역혁명이 일어난사례가 없었는데(남북전쟁은 남부연합은 왕정이 아니고 공화국이였지요)
    프랑스의 경우는 역혁명이 일어나는등 민주주의체제안착에 어려움을 겪는데...

    이유는 무엇일런지. 민주주의라는것이 국민의 힘이 세지고 나서야 오는것인데.
    당시 미국의 시민이 프랑스이 시민보다 경제력이 특별히 세지는 않았고.
    교육수준도 비슷하고..
    단 한가지 차이점이라면 시민들의 무장수준이 미국이 매우 높았다는것인데(총기보유와 민병대결성의 자유)
    이것이 영향을 미친것일까요???

    전에 덧글에 보면 어느분이 매우 유익한 동영상을 소개해주었는데. 요즘 그분 블로그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과도 연관이 많이 있어서 제가 다시 한번 링크를 걸께요.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한글자막이 안나올때는 우측하단의 톱니바퀴모양버튼설정버튼을 툴러서 한글자막을 선택하에요)

    http://blog.naver.com/kyw0277/220847067516
    저근데 곧바로 유튜브 주소를 링크를 걸려니까 안걸어지네요 부득히 다른분 블로그 주소를 겁니다 이글안에 제가 소개하고 싶은 유튜브동영상이 있습니다.

    • 수비니우스 2016.11.21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 님처럼 헛소리와 거짓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좋은글 읽기전에 설마해서 댓글란 봤더니 눈만 더럽혀졌네요.

    • 알타리무 2016.11.21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자가 겨우 이런거 가지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면 어떻합니까.
      배포를 크게 가지세요.
      제가 어떤사람이건 간에 설령 제가 나쁜사람이더라도 저의행동에 일희일비하면 님도 남에게 가벼운 사람으로 비추어집니다.
      자 남자답게 베포를 크게 크게 !!


      ---------
      뭐 제가 할말은 아니긴 하지만..

    • 수비니우스 2016.11.21 2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거 완전 미친 사람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 알타리무 2016.11.21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ㅎ

    • 신들의황혼 2016.11.21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프랑스는 왕정의 전통도 있고 왕족들도 살아있으니까 왕정복고가 가능했겠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왕정이란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갈 곳도 없었던게 차이 아닐까 합니다

    • 알타리무 2016.11.22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확실히 그것도 하나의 큰요인이겠군요.

  4. 블랑 2016.11.21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은 인성 논란은 있어도 능력이야 있었는데, 3세는 정말이지.

  5. 안다쏜 2016.11.22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나파르트 가계의 대표는 지금 제롬의 후손이 맡고 있지만..

    나팔륜 1세의 직계도 남아있긴 하죠.
    폴란드의 발레프스카 백작부인 사이에서 본 알렉산더 발레프스키의 후손들..

    유전조사에서 나폴레옹 3세는 보나파르트 가문이 아닌걸로 드러났으나, 발레프스키 백작의 후손은 보나파르트 가의 후손인게 증명되었죠. 정작 알렉산더 백작은 평생 자기 아버지가 나팔륜 1세가 아니라 했지만서도..

  6. 무는개 2016.11.22 0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기도 전에 알타리무가 개소리 싸질러놨을거라 예감햇는데 적중

  7. boribob 2016.11.22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예전 디씨에서 부터 관종을 상대할때는 무관심이 답입니다.
    관종은 관심을 먹고 삽니다.
    이 블로그에서 누군가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언급조차 하지 말아주세염ㅋㅋ

  8. 자유행성동맹 2016.11.22 1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뮤지컬 노스트람 드 파리에 나온 시티섬이 저기여군요 ^0^

  9. ㅇㅇ 2016.12.02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2016.10.28 23:47

현대적인 군함들의 수명은 대략 몇년일까요 ?


저도 고딩 시절에 한때 해군사관학교 진학이 꿈이라서 관심이 좀 있는 편이었습니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당시 우리나라의 주력함인 구축함들은 미군이 2차세계대전 이후 쓰던 것을 60년대에 한국에게 넘겨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중 인상적인 부분이, 그 통로나 선실의 쇠바닥에는 미끄럼 방지용으로 원래 격자 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구축함들은 그 격자 무늬가 다 닳아서 매끈매끈 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사관학교 안 갔거든요.

 

네이버 같은 곳을 찾아보니, 돈많은 미국같은 나라는 대개 군함의 수명을 30~40년으로 잡는 모양입니다.  아마 더 오래 쓸 수도 있지만, 유지 보수비도 많이 들고, 또 30~40년전의 무기체계로는 최신예 장비를 갖춘 적군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략 그 정도만 쓰고 퇴역시킨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예외는 매우 많습니다.  가령 미국 항공모함 USS Nimitz는 1972년에 진수되어 1975년에 취역한 뒤 지금까지 현역으로 잘 뛰고 있는데, 기대 수명은 50년으로서 2025년 경에 현역에서 물러날 예정입니다.






(니미츠 클래스 항모의 네임쉽인 USS Nimitz입니다.  할아버지가 타던 배에 손자가 복무합니다.)


 


강철로 만든 군함도 30~40년 정도만 쓰는데, 나무로 만든 목조 군함의 경우 몇년을 썼을까요 ?  신기하게도 역시 대략 30~40년 정도를 썼다고 합니다. 

 

1792년부터 1815년 사이,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영국 해군의 군함 명부를 보면, 각 군함이 언제 진수되어 언제 퇴역했는지가 나옵니다.  가령 1급함, 즉 포 100문짜리 전열함인 HMS Britania 호의 경우, 1762년에 진수되어 1812년에 St. George 호로 이름을 바꾼 기록이 있습니다.  최소한 50년 이상 현역에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2급함인 HMS Atlas 호의 경우 1782년 진수되어 1814년에 '항구 임무'로 전환됩니다.  32년간 현역에 있었다는 겁니다.  HMS Princess Royal 호의 경우는 1773년 진수되어 1807년에 폐기 처분됩니다.  34년입니다. 






(1670년에 진수된 HMS Prince입니다.  무려 120년간 현역으로 뛰었습니다.  정말 할아버지가 근무하던 군함에서 손자를 거쳐 증손자까지 탈 정도네요.)



 

영국 해군 역사상 최장 기간 동안 현역으로 있었던 군함은 HMS Royal William 호였습니다.  1670년 HMS Prince라는 이름으로 100문 짜리 전열함, 즉 1급함으로 화려하게 군생활을 시작한 이 군함은, 1719년 HMS Royal William이라는 이름의 84문 짜리 3급함으로 개조됩니다.  결국 1790년까지 무려 120년간을 현역에서 복무합니다.  '항구 임무'로 전환된 뒤에도 23년간 더 생존하다가, 1813년 마침내 폐기처분됩니다. 





(목재를 짜맞춰 만든 배에서 어떻게 물이 안 샐 수 있을까요 ?  비결은 간단합니다.  물이 그냥 샜습니다 !  그걸 막기 위해 사진 속에서처럼 그 틈을 저런 뱃밥 oakum을 끌과 망치로 때려 박아 메웠습니다.  그 위에 덧붙여 타르를 칠하기도 했지요.)



 

이렇게 오래된 배들은 당연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원래 나무로 만든 배들은 항상 물이 샜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컴퓨터도 없고 정밀 공작 기계도 없던 시절에 사람이 손으로 톱질을 해서 만든 목재를 이어붙여 만든 선체에서 목판 사이로 물이 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목판 사이의 틈을 매우기 위해서 무엇을 썼을까요 ?  우리 말로는 보통 뱃밥이라고 번역되는, oakum(오컴)이라는 것을 썼습니다.  이 뱃밥이라는 것은 당시 범선에서 많이 쓰이던 밧줄 중에서 낡고 굳어서 못쓰게 된 것을 풀어낸, 그러니까 삼나무 섬유 부스러기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뱃밥이라는 것을 만드는, 즉 오래된 굳은 밧줄을 풀어내는 일은 일일이 손으로 해야하는, 엄청나게 고되고 손끝이 다 부르트는 중노동이었습니다.  당시 이런 뱃밥 만드는 작업은 극빈층의 아동들이나 죄수들이 주로 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밤에 가난한 가족들이 모여 앉아 새끼를 꼬았는데, 영국에서는 새끼를 풀었군요 !)  제가 좋아하는 샤프 시리즈에서도, 주인공 샤프가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이런 밧줄을 매일 2미터 이상 풀어헤쳐야 했다고 회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교화소에 수용된 죄수들이 밧줄을 풀어 뱃밥, 즉 oakum을 만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뱃밥은, 조선소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배의 선체가 만들어지면, 이 뱃밥을 목판 사이사이에 단단히 그리고 촘촘히 박아넣고, 그 위에 뜨거운 타르를 칠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물이 샜지요.  그래서 당시 범선들에는 반드시 앞뒤 갑판에 펌프가 달려있었습니다.  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당시 배는 틈 사이로 새들어오는 물의 양이, 선원들이 펌프질해서 퍼내는 물의 양보다 많아지면 침몰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선원이 타고 있지 않은 배, 또는 선원들이 농땡이질하는 배는 결국 언젠가는 침몰하는 것이었지요.  또, 오래된 배일 수록, 뱃밥과 타르가 굳어서 배의 목판 사이에서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삐져나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래된 배일 수록 물이 더 많이 샜던 것입니다.  사정이 이랬기 때문에, 굳이 오래된 배가 아니더라도, 폭풍이 몰아치거나 전투가 한창인 중에도, 담당 사관은 함장에게 '현재 선창에 고인 물의 수위는 3 피트입니다' 라는 식으로 현재의 침수 정도를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했습니다.  상황이 나빠지면 전투 중에라도 대포에서 인원을 빼내어 펌프에 충원을 해야 했겠고, 더 손쓸 수 없는 상황까지 가버리면 '전원 권총과 검을 준비하라. 적함을 탈취한다' 라고 명령을 내려야 했을 겁니다.

 

 




(당시의 목재 범선은 어지간한 포격으로는 침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상 전투는 대개 근접 백병전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대포알이 낮게 날아오는 경우도 바다 위를 물수제비처럼 통통 튀어 홀수선 위를 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가끔 흘수선 아래를 강타한다고 해도 물 속에서는 대포알의 속도가 크게 줄었으므로 위력이 강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끔 흘수선 아래를 강하게 때린 대포알 때문에, 목판 사이의 틈이 더 벌어지거나 아예 구멍이 뚫리는 경우도 가끔 발생했습니다. 그런 경우 저런 백병전이 훨씬 더 치열하게 전개되었겠지요.  두 척이 엉겨 붙었는데, 싸움이 끝난 뒤에는 한 척만 떠있을 테니까요.) 




심한 경우, 이렇게 물이 새는 것이 심해져 배가 대양에서 침몰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습니다.  암초에 부딪히거나 해안가에 좌초한 것도 아닌데, 퍼내는 물보다 새어 들어오는 물이 더 많아서 결국 침몰하는 것을 침수 침몰(foundering)이라고 합니다.  대개 이런 침수 침몰은 폭풍을 만난 경우에 발생했습니다.  18세기 ~ 19세기 중반까지의 표준 전열함이라고 할 수 있는 74문짜리 3급 전함은 대개 배수량 약 1700~1800톤 정도의 크기였는데, 나무로 만들고 바람으로 움직이는 범선 구조상 이 정도의 크기가 속도나 항행성, 내구력, 그리고 경제성에서 가장 좋았기 떄문이었습니다.  당시의 함대전은 이런 3급 이상의 전열함들만 전열에 낄 수 있었고, 그 이하의 프리깃함 등은 함대전에서는 깃발 신호 중계기 정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귀한 전열함이 적의 대포가 아닌 바닥에서 샌 물 때문에 침몰한다면 정말 비극이겠지요.  그런 일을 막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로, 이 시대의 군함 바닥은 구리판으로 덮혀 있었습니다.  구리판은 지금도 비싼 물건입니다만, 당시엔 더욱 비싼 자재였습니다.  따라서 국왕의 군함 외에는, 돈 많은 무역 회사가 주문한 비싼 선박에만 이런 구리판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바닥에 구리판을 덮었다는 것은 바닥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고급 자재를 써서 튼튼하게 만들었으므로 믿을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지금도 copper-bottomed 라는 단어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이라는 뜻의 형용사로 쓰입니다.  이렇게 목조 군함의 홀수선 아래 부분을 구리로 덮는 것을, 흔히 따깨비나 해초가 달라붙어 군함 속력이 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보다는 그런 것들로 인해 뱃바닥의 치명적인 부식 손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어차피 구리판으로 덮건 안 덮건 따깨비와 해초는 달라 붙었거든요.  








(배 바닥에 달라 붙은 따깨비와 해초 등을 걷어내고 바닥재를 손보는 작업을 careening이라고 합니다.  당시엔 드라이독이 없었으므로, 저렇게 적절한 해변가에서 썰물 때 좌초할 위치에 배를 위치시켜 놓았다가 물이 빠져 배가 기울어지면 작업을 했습니다.  이렇게 careening을 할 만한 해변를 가리키는 단어까지 있는데, careenage라고 합니다.  닻을 내릴 만한 곳을 anchorage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도 아마 그런 뜻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3급 이상의 대형 전열함들도 침수 침몰(foundering)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해군 장교 잭 오브리와 군의관인 스티븐 머투어린의 모험을 그린 Patrick O'Brian의 명작 해양 소설 시리즈 중 하나인 Desolation Island 편에 그런 위기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 1811년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호주로 향하던 잭 오브리의 전함 HMS Leopard가 한밤중에 빙산에 부딪히는 바람에 물이 거세게 새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깜깜한 밤중에 난리가 났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모든 선원들이 교대로 펌프에 붙어 거세게 물을 퍼내야 했습니다.  보통 이런 육체 노동은 당연히 수병들의 몫이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장교고 뭐고, 심지어 작은 체구의 군의관인 머투어린까지도 순번을 정해 온 힘을 다해 펌프질 하는데 동원됩니다.  그 결론이 어떻게 나는지는 스포일러이므로 여기서는 생략...






(HMS Leopard는 실존하는 군함으로서, 50문의 대포를 갖춘 약 1천톤 정도 되는, 프리깃함보다는 크고 전함보다는 작은 제4급함이었습니다.  이 군함이 유명해진 것은 1807년 중립국인 미국 프리깃함 USS Chesapeake를 검문하기 위해 급습하여 항복을 받아낸 뒤, 영국 해군 탈영병 출신인 미해군 수병 4명을 체포한 뒤 교수형에 처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소설 속과는 약간 다르게, 이 배는 결국 1814년 캐나다 해변가에서 좌초되어 파선되었습니다.  위 그림에서 왼쪽이 체셔피크 호이고, 오른쪽에서 기습적인 일제 포격을 퍼붓는 것이 레오파드 호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침수 침몰은 폭풍 등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목조 범선이 거센 파도에 버티지 못 하고 침수되는 주된 이유는, 못으로 목판을 접합하고 그 틈을 뱃밥과 타르로 틀어막아 놓은 것이 거센 파도 속에서 버티지 못 하고 틈이 벌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워낙 거센 폭풍 속에서는 현대적인 항해 장비를갖춘 강철 화물선도 일년에 몇 척씩 침몰하고 있으므로 당시의 목조 범선으로서는 불가항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가 좀더 튼튼하게 만들어지고 잘 유지 정비되고 있었다면 무사히 견딜 수 있는 경우도 많았겠지요.  그러나 대서양이나 인도양 등, 망망대해에서 소식이 끊긴 전함들이 과연 어떤 상황 속에서 침수 침몰 되었는지, 그것이 배가 부실하게 건조되거나 유지 정비가 불량했던 것이 원인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가령 HMS Blenheim이라는 영국 전열함은 1755년 90문의 포를 갖춘 1800톤의 2급 전열함으로 건조되었다가, 1801~1802년 사이에 74문의 포를 갖춘 3급 전열함으로 개조된 배였습니다.  이 블렌하임 호는 1807년 프리깃함 HMS Java 및 슬룹함 HMS Harrier와 함께 인도 마드라스(Madras)에서 출항했다가 인도양에서 만난 폭풍 속에서 자바 호와 함께 침수 침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블렌하임 호에 승선했던 590명, 그리고 자바 호의 280명의 수병들은 모두 돌아오지 못 했지요.  추측하기로는 블렌하임 호가 무려 52년이나 된 낡은 배라서 폭풍을 견디지 못 하고 침몰하기 시작했는데, 자바 호가 폭풍 속에서 그 수병들을 구조하다가 함께 변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한답니다.






(이 그림은 또다른 영국 전함 HMS Centaur의 침몰 및 생존 선원의 탈출을 그린 것입니다.  이 배는 1782년 캐나다 연안 뉴 펀들랜드에서 허리케인을 만나 침수 침몰했습니다.  400명의 수병이 목숨을 잃었는데, 선장인 존 잉글필드는 11명의 생존 선원을 저런 쪽배에 태우고, 아무런 해도나 나침반 없이 무려 16일 동안 항해하여 대서양 한 가운데인 아조레스 제도에 도착했습니다.  항해를 시작할 때 저 배에 물이라고는 딱 2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는 굳이 낡은 군함이 아니더라도, 뇌물과 부정행위로 범벅이 된 해군 건조창 탓에, 불과 20~30년된 군함들도 이런 침수 침몰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Post Captain by Patrick O'Brian (배경: 1803년 영불 해협) ----------------

 

(함장 잭 오브리의 함장실에서 잭과 스티븐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기 자네가 관심있어할 만 한 것이 있네. 자네 '강도 볼트(robber-bolt)'라는 거 들어본 적 있나 ?"

 

"아니, 없네."

 

"이게 그거라네."  그는 한쪽 끝에 커다란 너트가 달린, 짧고 굵은 구리 봉을 내밀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볼트라는 것은 굵은 목재판을 관통해서 선체 접합에 사용되는 것이라네.  가장 좋은 재료는 구리지.  녹이 슬지 않으니까.  구리는 비싼 물건이라네.  아마 2 파운드의 구리, 즉 짧은 구리 볼트 한 개면 조선소 기술자의 하루 일당은 될 거야.  만약 자네가 아주 나쁜 악당이라면, 볼트의 중간은 잘라내고, 양쪽 끝만 선체에 박아넣어서 마치 멀쩡한 접합부인 것처럼 해놓고, 그 잘라낸 구리 볼트를 팔아서 돈을 챙길 수 있네.  실제로 선체가 벌어지기 전에는 아무도 발견할 수 없어.  그리고 선체가 벌어지는 것은 배가 세상 저 반대편 바다에 나가 있을 때겠지.  게다가 배가 그런 식으로 침수 침몰하면, 아무 흔적이나 형체도 남기지 않는다네."

 

"이 사실을 언제 알았나 ?"

 

"난 처음부터 의심했었네.  힉맨 조선소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는 이 배가 아주 형편없이 만들어졌을 거라는 것을 짐작했었어.  게다가 그 조선소의 역겨운 인간들은 자재를 아주 몰염치하게 다루지.  하지만 확신한 것은 바로 며칠 전이야.  이제 이 폴리크레스트 호가 바다에 나와서 좀 힘을 받으니까, 그 사실이 분명해지더군.  난 이걸 선체에서 내 손가락으로 뽑아낼 수 있었다네."

 

"적절한 기관에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나 ?"

 

"할 수 있었지.  조사를 요청한 뒤 한달이나 6주 정도 기다릴 수 있었어.  하지만 그러고난 뒤에 난 어디로 가겠나 ?  이건 조선소의 일이고, 군함 상태가 어떻건 간에 검수를 통과한다거나, 보잘 것 없는 서기들이 그런 일들을 꾸민다는 뭐 그런 음울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네.  아니. 난 그냥 이 배를 몰고 나오고 싶었어.  사실 여태까지는 이 배가 풍랑에도 잘 견뎌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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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의 자랑...이 아니라 수치였던 40척의 도적들, 뱅고어 급 전함 중 하나인 HMS Asia 입니다.)




원래, 당시 영국 해군 군함들 중 좋은 것들은 대개 프랑스 해군이나 스페인 해군에서 나포한 것들이었고, 영국 해군 조선창에서 만든 배들은 항행성이나 내구성 면에서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합니다.  특히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인 1806년부터 민간 조선소와 계약을 맺고 1809년부터 진수되기 시작한 뱅고어 급(Vengeur-class) 전열함 40척은, 단일 급으로는 가장 많은 척수가 건조된 최대 규모의 전열함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나 그 규모에 비례하여 방산 비리도 최대 규모급으로 심각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전열함들의 품질이나 성능이 그야말로 영국 해군의 수치로 여겨져서, '아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빗대어 '40척의 도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습니다.  당시 해군 인사들은 이 뱅고어급 전함들의 문제를 탐욕스러운 민간 조선소에 무분별하게 위탁 건조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40 척의 도적 전열함들 중 침수로 인해 침몰로 최후를 맞은 전함들은 단 1 척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전열함들이 알고 보니 우수한 전열함이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전열함들의 성능과 내구성에 대해 악명이 자자했으므로, 그만큼 해군이 더 조심조심 운용했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열함들 중 주요 해전에 참여하여 이름을 빛낸 것들은 몇 척 없고, 대부분 호위 등의 평이한 임무를 맡아 조용히 죽어 지내다가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가늘고 길게 산다는 말이 딱 맞아서, 이들 중 일부 전함은 증기 기관을 탑재한 부유 포대(floating battery, blockship)으로 개조되어 1850년대의 크림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목조 군함들 중, 놀랍게도 현재도 남아있는 군함이 있습니다.  바로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 때 기함으로 사용했던 HMS Victory 입니다. 1765년 당대 최고의 군함 설계자인 토마스 슬레이드 경에 의해 진수된 이 100문짜리 1급 전함은, 1805년 넬슨과 함께 트라팔가 해전을 치른 뒤, 1822년에 가서야 헐크선으로 전환됩니다.  무려 57년간의 현역 생활이었습니다. 이 상태로 소금물에 바닥을 담근 채 1922년까지 있다가, 그 해에 드라이 독으로 옮겨져서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위 그림은 1925년 드라이독에서 복원 작업이 한창인 HMS Victory의 모습입니다.  빅토리 호는 1812년 현역에서 물러난 뒤 아무 하는 일 없이 항구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는데, 1831년에는 해체 명령이 떨어지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빅토리 호의 해체 명령서에 서명을 하고 왔다는 해군성 장관의 말에 그 장관 부인이 눈물을 터뜨리며 당장 사무실로 돌아가 그 명령을 철회하라고 조른 덕분에 오늘날 빅토리 호는 영국의 주요 관광 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군함들은 모두 오크, 즉 떡갈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군함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떡갈나무의 평균 나이는 대략 80~100년이었습니다.  떡갈나무라고 아무거나 다 배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배에서 구조역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무릎(knee)'이라고 하는 ㄱ자 곡재는 워낙 힘을 크게 받는 부분이라서 그냥 직선의 나무를 깎아서 만들면 충분한 강도를 낼 수 없었고,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자연스럽게 원하는 각도로 자란 것을 골라 써야 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구하기도 어려웠고, 값도 비쌌겠지요.  영국이 밀림이라서 100년짜리 떡갈나무가 동네마다 빽빽히 들어서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영국은 농경지 확장 뿐만 아니라 제철업 때문에 목재가 연료로 많아 소모되어 숲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목재의 공급이 부족했다는 뜻이지요.  결국 군함의 자재 또는 각종 건축 및 가구용 목재는 대개 발트해 지역 국가들, 특히 스웨덴 등으로부터 수입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스웨덴과는 항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나폴레옹이 스웨덴 쪽에 손을 뻗칠 때 영국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저 지도 상에서 헬싱괴르와 헬싱보리 사이의 좁은 해협을 보십시요.  저 곳에 장거리 포만 배치하면 해협을 완전히 봉쇄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 시대의 대포로는 사정거리와 화력 문제로 완전 봉쇄는 어려웠지요.)




발트해의 지리적 특성은 목재 수입에 있어 더더욱 스웨덴과 영국의 관계를 특수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도를 보면 발트해에서 북해로 빠져 나오려면 덴마크 젤란트 섬과 스웨덴 사이의 외레순 해협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습니다.  영국으로 오는 스웨덴 목재 수송선 대부분도 이 해협을 통과했고요.  당시 외레순 해협은 적어도 영국에게는 오늘날 유조선들의 주요 통과 해협인 호르무즈 해협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당연히 저 좁은 해협 양안에는 튼튼한 요새가 들어섰습니다.  그 덴마크 쪽인 헬싱괴르에 있는 크론보르 Kronborg 성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배경이 된 성이지요.)



 

18세기 말, 1척의 3급함, 즉 74문의 대포를 탑재한 전열함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대략 5만 파운드의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액수를 현재 피부로 느껴지는 가치로 환산하기 위해, 금 1g의 현재가를 약 4만7천원으로 가정한다면, 5만 파운드는 대략 145억 정도에 해당합니다.  현재 우리 해군의 주력함인 KDX-3의 경우 약 5천억~1조원이 든다고 하지요.  대신 당시 영국 해군은 이런 군함을 100여 척 정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현재 해군은 KDX-2급 함정도 10척 미만일 겁니다.  (구체적인 숫자는 저도 잘 모릅니다 !)  하긴, 예전에 이런 군함 10척이 하던 일을 이런 현대적 군함 1척이 하고도 남겠지요.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ships_of_the_line_of_the_Royal_Navy

https://en.wikipedia.org/wiki/Oakum

https://en.wikipedia.org/wiki/Vengeur-class_ship_of_the_line

https://en.wikipedia.org/wiki/Copper_sheathing

http://dictionary.cambridge.org/dictionary/english/copper-bottomed

https://en.wikipedia.org/wiki/Royal_Charlotte_(1789_ship)

https://en.wikipedia.org/wiki/HMS_Centaur_(1759)

https://en.wikipedia.org/wiki/Chesapeake%E2%80%93Leopard_Affair

https://en.wikipedia.org/wiki/HMS_Leopard_(1790)

https://en.wikipedia.org/wiki/HMS_Blenheim_(1761)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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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게일 2016.10.29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고갑니다!

  2. 장웅진 2016.10.29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구 말마따라 혼이 비정상적인 자들이 생계형 방산비리를 저지르는 데 있어 어느 호빠 과장의 20살 연상 여친이 관꼐하고 있었을... 읍! 읍!

  3. ... 2016.10.29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8세기 ~ 19세기 중반까지의 표준 전함이라고 할 수 있는 74문짜리 3급 전함 을 막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로, 이 시대의 군함 바닥은 구리판으로 덮혀 있었습니다." <--- 뭔가 중간에 문장이 날아갔나 봅니다.

    Leopard는 "레퍼드"겠지요. "레오파드"가 아니고.

  4. 연구자 2016.10.29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도 수군이 엄청 고생했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네요.

  5. 정명실 2016.10.29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습니다^^

  6. 최홍락 2016.10.30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비교대상이 조금 다르긴한데 상선들의 경우 선령이 보통 30년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선박금융 상환, 용선, 연비, 감가상각 등 여러가지 요소를 감안할때 보통 30년 정도 지나면 해체시키게 됩니다. 요새는 배출가스 규제 및 연비 절감을 위한 선사들의 선대 조정 등으로 인해 20년밖에 안 지난 선박들도 해체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지요. 다만 LNG선 또는 크루즈선의 경우 40년 지난 배들이 돌아다니는 케이스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2. 전함의 경우 한국의 경우 기어링급 구축함을 50년이 지나도록 운용했다가 퇴역시킨 바 있고요. 영국해군의 경우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로부터 나포한 테메레르급 전열함 두가이 트루앵호를 테메레르급 전열함 임플라커블 호로 개칭하여 건조된 지 150년이 다 되어가는 제 2차 세계대전 석탄운반선으로 사용 후 되었는데, 1949년에 해체되었다고 합니다.

  7. javaxer 2016.10.30 1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부실시공 배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 최홍락 2016.10.30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3년 9000TEU급 (TEU는 20피트 크기 컨테이너를 뜻하는 단위로 컨테이너 9000개 정도 적재할수 있는크기입니다) 컨테이너선이 인도양 한가운데에서 침몰한 적이 있는데요. 이때 배가 한 가운데가 두 동강이 나서 며칠간 표류하다가 결국 침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선주는 일본선사인 MOL로 배는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만들어진 배였는데 건조한지 10년 정도 밖에 안된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갈라진 사건이라 업계에서는 충격이 조금 있었지요.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는데 당시 선급이었던 영국 로이드사의 추정으로는 피로파괴가 원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선사들의 용접에 대한 검사가 많이 까다로워졌는데 일부 그리스 선사들은 이미 발주하여 조선소에서 건조중인 선박들이 파이낸싱이나 용선이 안된 경우 배를 가져가는 것을 지연시키거나 계약 취소 및 선가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용접에 대한 검사를 까탈스럽게 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지요.

  8. starlight 2016.10.30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나 지금이나 방산비리는 도처에 넘쳐나군요. 나라 안보와 관련해 세금을 삥뜯는 것들은 정말 단죄를 받아야합니다.

  9. mip 2016.11.01 0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0. 애독자 2016.11.10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것과 다른 내용이 있어서 몇자 적습니다.
    먼저 동판의 주목적은 해양생물에 의한 배의 손상을 막기 위함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판이 있어도 해양 생물이 달라붙지만 동판이 없으면 해양생물들이 나무를 좀먹어서 선저에 구멍이 뚫려버립니다. 영국해군에서는 18세기 중반까지 배를 건조할 때 강도가 필요한 곳은 나무못을 사용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쇠못을 사용했었습니다. 하지만 선저에 동판을 도입하면서 이 나무못을 전부 구리못으로 바꿔버립니다. 그만큼 해양생물에 의한 배의 손상은 심각한 문제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루어졌고 동판과 구리못을 도입해서 어느정도 해결하게 됩니다. 참고로 HMS 빅토리를 건조할 때 2톤 가량의 구리못과 쇠못이 들어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