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4 06:30


이제 우리는 1812년, 그 고통스러운 행군을 향해 출발합니다.  모든 사건은 뭔가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터집니다.  왜 나폴레옹은 자신의 파멸을 향해서 그 춥고 머나먼 땅으로 행군을 해야만 했었을까요 ?  이유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주된 이유는 두가지, 폴란드와 영국이었지요.  그 두가지 때문에, 지난 편에서 우리는 1810년 12월 31일, 알렉산드르가 프랑스산 비단과 와인에 관세를 부과하고 반대로 영국산 제품의 입항을 실질적으로 허락하는 칙령을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이라는 바보짓을 피할 수 없었을까요 ?  제 블로그를 출입하시는 분들께서는 느끼셨겠습니다만, 나폴레옹은 원래부터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전쟁광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일으킨 전쟁은 대부분 방어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예나-아우어슈테트에서 프로이센과 싸웠던 것도, 바그람에서 오스트리아와 싸웠던 것도 알고보면 모두 상대측이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이었지요.  1811년 당시의 나폴레옹은 특히나 전쟁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그는 뇌하수체 이상 때문이라는 설이 있듯이 뭔가 건강이 좋지 않아 눈에 띄게 몸이 비대해졌고, 그 때문인지 부하들은 모두 나폴레옹이 전에 비해 결단력이 떨어지고 사람이 유순해진 것을 눈치채고 놀라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들 '로마왕'을 낳고 나서는 이렇게 말할 정도로 기뻐하며 이제 자신이 이룬 제국의 보존을 우선 순위에 두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제국은 칼로 건설되고 상속에 의해 유지된다."

게다가 나폴레옹은 자신의 권력 기반이 무력보다는 민중의 지지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독수리 깃발을 앞세운 승리의 영광은 단지 그런 민중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을 격파한 뒤 거기서 빼앗은 영토 등으로 만든 베스트팔렌 왕국의 왕좌에 막내 동생 제롬을 앉히면서 아래와 같은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독일인들이 초조하게 기대하는 것은 귀족 태생이 아니더라도 재능만 있다면 너에게 발탁될 공평한 기회를 갖는 것과, 왕국 내의 가장 비천한 자들과 국왕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신분 장벽과 예속 상태가 철폐되는 거야... 나폴레옹 법전의 혜택, 통치 절차의 투명성, 그리고 배심원 제도가 네 왕정과 기존 왕정을 구별하는 특성이 되어야 해.  너에게 완전히 터놓고 이야기한다면 말이다, 네 왕정의 확장과 통합에는 나의 더 위대한 승리보다는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난 기대하고 있단다.  너의 백성들은 다른 왕정 하의 독일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와 평등, 복지를 누려야 한다."

귀족들, 심지어 당시 부르조아 계급으로 불리던 시민 계급, 즉 요즘말로 중산층도 가끔은 돈 때문에 전쟁을 환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사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중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적의 총탄과 대포알을 몸으로 받아내며 산산조각 나야하는 것들이 바로 자신들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나폴레옹도 그걸 잘 알고 있었고, 그는 민중이 싫어하는 전쟁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보자면,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은 민중의 국가라기보다는 부르조아 계급, 즉 시민 계급이 이끌고 나가던 나라였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즉 구체제를 뒤엎은 시민 계급은 이제 신분이 아니라 재산과 실력에 의해 대우받고 기회가 주어지는 체제를 지지했습니다.  따라서 투표권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을 가진 국민에게만 주어졌지요.  나폴레옹도 집권 기간 내내 사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중 세력보다는 교육을 제대로 받고 재산을 갖춘 중산층 소수 엘리트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시민 계급이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경제적 번영과 그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안정이었습니다.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에 가장 해로운 것이 전쟁입니다.  그런데도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을 떠났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러시아 원정이 시민 계급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요 ?

 

 

(네덜란드의 오렌지공 빌렘 Willem이 명예 혁명에 의해 영국왕 윌리엄 3세가 되면서, 그 전에도 좋지 않았던 프랑스와의 관계가 급격히 나빠집니다.  쫓겨난 영국왕 제임스 2세는 카톨릭으로서, 전통적 카톨릭 군주인 프랑스 루이 14세와의 관계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영국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제2의 100년 전쟁이라고 지칭되는 시대 속에 있었습니다.  1688년 명예 혁명에 의해 개신교였던 네덜란드의 윌리엄 공이 영국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된 영국과 프랑스의 본격적인 갈등 관계는 처음에는 개신교와 카톨릭의 종교적인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곧 아메리카 및 인도를 둘러싼 식민지 확보 경쟁, 즉 경제적인 갈등으로 전개되었습니다.  1756년부터 시작된 7년 전쟁과 1775년부터 시작된 미국 독립 전쟁에서 서유럽을 주도하던 이 두 나라의 경제적 이해 충돌은 매우 뜨거워졌습니다.  특히 과거의 전쟁처럼 어느 나라가 유럽 내 어느 특정 지역의 영토를 더 많이 차지하느냐 하는 것보다 누가 더 많은 생산 기지와 소비 시장을 확보하느냐로 관점이 옮겨가면서 이 두 나라의 갈등은 거의 공존 불가 수준으로 달아올랐습니다.  

중세 시절이라면 이런 두 나라의 경쟁은 당연히 더 크고 비옥한 영토를 가진 프랑스가 우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백년전쟁에서 영국이 초반에 우세했던 것도 알고 보면 당시엔 영국이 프랑스 내에 꽤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그 영토에서 나온 병력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프랑스에게 밀려 유럽 내의 영토를 다 잃을 수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대포로 무장한 전열함이 큰 역할을 했던 해외 식민지 경쟁에서는 섬나라 영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습니다.  결국 프랑스는 인도와 북아메리카의 식민지를 대부분 잃어야 했지요.

 

(7년 전쟁의 여러 전장의 모습입니다.   7년 전쟁은 가히 세계 전쟁이라 할 수 있어서, 그 전장은 유럽 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 인도, 북부 아프리카, 심지어 필리핀까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었던 미국 독립전쟁이 끝난 뒤 이 두 나라 사이에는 잠깐 공존의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했습니다.  미국 독립 전쟁에서 영국을 물먹이느라 재정을 탕진한 프랑스가 당장 농산물을 수출해야 하는 필요성과, 북미 식민지를 상실하는 바람에 자국산 공산품을 위한 새 수출 시장을 급히 찾아야 하는 영국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1786년 이 두 국가 사이에 관세를 대폭 낮추자는 에덴 조약 (Eden Treaty)이 맺어졌던 것입니다.  이때 프랑스 측의 책임자는 중농주의자였던 베르겐 백작(Charles Gravier, comte de Vergennes)이었고, 영국측 책임자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 1776년 출간)에 잔뜩 영향을 받은 오클랜드 남작 에덴(William Eden, 1st Baron Auckland)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국산 공산품의 프랑스 시장에 대한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측에서 보면 이 조약은 프랑스 토지 귀족들의 이익만 대변할 뿐, 주로 부르조아 시민 계급으로 구성된 프랑스의 대형 제조업자 및 상인들에게는 매우 불리한 것이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에덴 조약으로 손해를 본 프랑스 부르조아 계급의 불만이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분출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신분제 철폐와 천부적 인권이라는 숭고한 이상 뒤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돈 싸움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베르겐 백작 샤를 그라비에입니다.  이 분은 자신이 뭔 짓을 저지른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1787년에 fat & happy 상태로 편히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경제 전쟁에서 프랑스가 내놓은 회심의 일격이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도 인간인 이상 날아서 도버 해협을 건널 수는 없었고 트라팔가에서 쓴 맛을 볼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나폴레옹이 내놓은 해법이 바로 진짜 무역 전쟁, 즉 대륙 봉쇄령이었습니다.  대륙 봉쇄령이 성공하려면 유럽 전역이 나폴레옹의 직접적인 영향력 하에 있어야 했었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나폴레옹도 서부 유럽의 황제였을 뿐이었지요.  동부 유럽의 황제는 바로 로마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는 러시아의 짜르 알렉산드르 1세였습니다.  대륙 봉쇄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럽 대륙 서부 뿐만 아니라 동부까지 전체가 영국 상품에 대해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나폴레옹도 그런 사정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처음부터 러시아와는 싸우기 보다는 협력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807년의 틸지트(Tilsit) 조약이었습니다.  이 조약에서 젋은 알렉산드르를 구워삶은 나폴레옹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던 러시아로 하여금 영국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영국 상품에 대해 문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입은 패배를 통쾌하게 뒤집는 나폴레옹의 멋진 승리였습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와는 협력을, 영국과는 전쟁을 원했던 것은 위에서 보셨다시피 궁극적으로는 나폴레옹 개인의 야망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상공업과 무역을 발전시키려는 프랑스 시민 계급의 입장에 있어서 제해권을 장악한데다 산업 혁명을 막 시작한 영국에게는 말살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고, 농업 대국 러시아와는 협력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프랑스 시민 계급의 욕망을 그대로 유럽 권력 세계에 투영해준 것이 바로 나폴레옹이었고요.  따지고 보면 나폴레옹 자신이 토지에 기반을 둔 귀족이 아니라 본인의 실력으로 부를 쌓아가는 시민 계급 출신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귀족 출신이라고는 해도 프랑스에서는 집도 절도 없는 한낱 외국 출신 하급 장교에 불과했으니까요.  실제로 나폴레옹은 패전 국가에게 전쟁 배상금을 뜯어낼 때 항상 토지보다는 정금(specie), 즉 금화와 은화를 요구했고, 비엔나를 점령하고서는 왜 기회에 오스트리아에 프랑스산 비단과 도자기 같은 상품을 무관세로 판매하지 않느냐고 관료들을 닥달했습니다.  나폴레옹은 황제에 등극할 때 공식 칭호를 과거 부르봉 왕가가 Roi de France (프랑스의 국왕)이라고 했던 것처럼 Empereur de France (프랑스의 황제)라고 하지 않고 Empereur des Français (프랑스인들의 황제)라고 했지요.  이는 프랑스라는 국가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왕이라는 개념보다는,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통치자라는 뜻으로 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속성을 보면 Empereur des Bourgeois Français (프랑스 시민 계급의 황제)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황제라고는 해도 절대 권력자가 아니었듯이, 알렉산드르로 전제군주이긴 했으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는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뒤에 시민 계급이 있었듯이, 짜르 알렉산드르의 뒤에도 서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농노제에 기반을 둔 러시아의 토지 귀족들이었습니다.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illigan Sloane
https://en.wikipedia.org/wiki/Second_Hundred_Years%27_War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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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리츠 작전 2019.06.24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은 여러모로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과는 대비되네요.히틀러는 극단적일 정도의 반공주의와 인종주의에 입각한 생존공간(레반스라움) 이론에 사로잡혀있었지 않았습니까.히틀러가 반드시 러시아를 침공하려고 했다면 나폴레옹은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간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 ㅇㅇ 2019.06.24 1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1941년 당시 소련 또한 국경선에 병력을 증강시키고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히틀러가 전전긍긍하다 선제공격을 가한게 아닌가 싶은데요? 물론 진실은 본인들만 알겠지만요!

    • 프리츠 작전 2019.06.24 1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ㅇㅇ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지만,존 키건의 2차 세계대전사에 따르면 1941년 소련 적군의 서진은 독일 침공보다는 그동안 확보한 영토를 굳히려는데 더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고 하더군요.기존의 국경지대에서 서쪽의 새 국경지대로 방어시설들을 급하게 옮기느냐 바르바로사 작전 직전에는 이도저도 아닌 상태였다고 합니다.제가 히틀러가 처음부터 러시아에 야심을 품고 있었다고 보는 다른 이유는 그의 자서전 '나의 투쟁' 때문입니다.히틀러는 '나의 투쟁'에 독일민족이 동진해서 러시아와 다른 슬라브 민족 국가들을 제압하고 생존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적어두었더군요.읽은지 워낙 오래되었고,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다 읽어보지도 못했지만 히틀러가 러시아 침공 전부터 반유대/반공산주의,배타적 인종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이러한 이유들로 저는 바르바로사 작전이 소련의 팽창에 전전긍긍하던 히틀러가 붉은군대의 위협에 대항해 벌인 선제공격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이 즈음 히틀러 본인이 남긴 말들을 보면 소련 적군의 역량을 형편없다고 평가하고,사용하는 장비는 열악하며 전차의 장갑은 약하다고 악평하더군요.히틀러가 진심으로 위협을 느낀 거 같지는 않아요.단순히 독재자의 허세일수도 있지만요.

  2. keiway 2019.06.24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나폴레옹 시대사가 끝을 향해 출발하는군요.
    건필을 기원합니다. (건강과 삶도 잘 챙기시면서요)

  3. zolzi 2019.06.24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틀러도 소련을 침공하기 전에 분명히 나폴레옹 전기를 읽었을텐데, 왜 무모하게 소련을 침공하는 선택을 했는지 의문입니다,

    나폴레옹 전기를 읽은게 백퍼라고 느끼는건 41년 모스크바 점령에 실패한후에 굳이 무리해서 모스크바를 재점령하려고 노력하지 않은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까지 점령했지만 별다른 이익없이 무의미하게 퇴각할 수 밖에 없던걸 알았던게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퇴각하면거 개망하죠.

    어찌되었든, 나폴레옹이는 못한걸 난 할 수 있다 생각을 한건지 의문이네요. 딱히 떠밀려 공격한것도 아니고 실제로 소련은 나찌가 침공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던데다, 전비도 충분하지 않아서 선제공격할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고 하는데... 뭘까요? 히틀러의 근자감은?

    그리고 궁금한건 나찌마냥 '히틀러'란 성도 독일이나 오스트리아같은 독일계 국가에서는 금기'성'인가 하네요.

  4. nashorn 2019.06.25 0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언하자면 히틀러는소비에트 연방 공격할 당시..
    레닌그라드와 경제중심지인 우크라이나(돈바스) 정복을 원했습니다..
    모스크바를 원하진 안았죠

  5. keiway 2019.06.25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일-소련과의 우호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전략적으로 보면 나치 독일의 우크라이나 유전지대 점령은 전쟁 지속 가능성 면에서 타당한 선택이기는 했습니다.
    독소전 개전 시점에서 군대의 준비 상태 역시 독일에 비해 소련이 대단히 약화된 상태였고요.
    소련과 언젠가는 전쟁을 해야만 한다고 판단했다면 (이 판단이 맞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시점과 목표 모두 전략적으로는 일정부분 타당했다고 생각합니다.
    히틀러의 큰 실책은 전략이 아니라 전술까지 자기가 간여해서 뛰어난 지휘관들을 보유하고도 전술을 망쳐버렸다는 데 있죠.
    히틀러의 근자감은 난 나폴레옹과 달라. 그의 실책을 되풀이 안할거거든! 이런건 아니었을까요? 결과는 모두가 알지만요.

  6. 유애경 2019.06.26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날으는 새도 얼어붙어 떨어진다는 러시아의 추위-영하 30도 이하였다죠?-속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생하다가 죽어간 또는 전사한 병사들만 불쌍한것 같아요.

  7. 이웅희 2019.07.04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쉽고 알찬 설명 감사드립니다

2019.06.20 06:30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60~70년대 포크송 가수인 존 바에즈(Joan Baez)는 주로 자신의 오리지널 송보다는 다른 가수의 노래를 재해석해서 부른 것이 많습니다.  요즘은 그런 노래를 커버(cover) 송이라고 한다고 들었고, 요즘은 유튜브 등에서 그런 커버 송을 부르는 유튜브 스타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60~70년대에는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나 밴드들이 많았습니다.  존 바에즈는 워낙 타고난 목소리를 바탕으로 인기 가수가 되었지만, 작사작곡 실력은 그렇게까지 정상급은 아니었지요.  전에 소개드린 Diamonds and Rust라는 존 바에즈가 작사작곡한 노래의 가사 속에서도 존 바에즈는 '밥 딜런이 내 작사가 형편없다고 했다'라고 말하고 있지요.  하지만 물론 Diamonds and Rust는 매우 뛰어난 곡이고 가사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겸손한 것인지 아니면 밥 딜런과 필연적으로 비교를 당할 수 밖에 없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존 바에즈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songwriting에 대해 "그저 그렇다(mediocre)"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전에 1969년 여름 우드스탁(Woodstock) 페스티벌에서의 존 바에즈가 부른 Joe Hill이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제가 들은 그 녹음에서는 노래가 끝난 다음에도 바에즈가 다음 곡을 설명하는 말이 잠깐 동안 계속 이어졌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요.  

"저도 제 작사작곡 실력이 그저 그런 편이라는 거 알아요.  그래서 목욕통 속에서가 아니면 제가 지은 노래는 부르지 않는데, 예외가 이 Sweet Sir Galahad라는 노래에요.  이 곡은 머리가 아주 긴 제 제부에 대한 노래인데, 제 여동생 미미의 첫 남편이 죽은 후 몇 년 뒤에 미미와 결혼한 이 제부는 밤마다 미미의 침실 창문으로 들어오곤 했거든요.  들어올 때는 발부터 들어왔지요." 

저는 이게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가, 그리고 가족의 저런 사적이고 어떻게 보면 민망한 이야기를 저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막 저렇게 이야기해도 되나 싶었습니다.  정작 그 녹음은 거기서 끝나버렸기 때문에 그때는 그 Sweet Sir Galahad라는 제목의 노래를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유튜브에서 그 노래를 들었고, 또 그것이 존 바에즈가 작사작곡한 최초의 곡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미미와 그녀의 첫번째 남편 리처드입니다.)

(언니도 미인이지만 보시다시피 미미도 굉장한 미인이네요.  미미는 불행히도 51세의 나이로 암으로 인해 사망했고, 그 장례식에는 언니를 비롯해 16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정말 바에즈의 여동생 미미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미는 바에즈보다 4살 어린 동생으로, 언니처럼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난 가수이자 사회 운동가였습니다.  언제나 사회성 넘치는 음악을 했던 바에즈와 함께 집회를 벌이다 언니와 함께 투옥되기도 했지요.  다들 아시다시피 존 바에즈는 한동안 밥 딜런과 연인 관계였는데, 사실 밥 딜런은 처음에는 언니인 존보다는 동생 미미에게 더 끌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미는 17살 때 파리에서 당시 유부남이자 8살 연상이었던 리처드 파리냐(Richard Fariña)를 만나, 결국 다음해 리처드와 결혼을 합니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였지요.  리처드는 혹자에 의하면 밥 딜런을 뺨치는 재능이 넘치는 음악가이자 작가였는데, 이 둘은 꽤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고 둘이서 음반을 내기도 하는 등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리처드는 미미의 21세 생일날 오토바이 사고로 그만 목숨을 잃습니다.  생일날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미미의 심정이야 말할 것도 없고, 사랑하는 동생의 그런 비극을 옆에서 봐야 했던 바에즈의 마음도 찢어졌겠지요.  그러다 약 3년 뒤, 미미는 음악 제작자였던 밀란 멜빈(Milan Melvin)과 결혼합니다.  노래 가사처럼 정말 밀란이 야밤에 미미의 침실에 몰래 창문으로 기어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들은 열애 끝에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Big Sur 포크송 축제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때 화관을 쓴 미미의 행복한 모습을 본 바에즈가 여동생의 행복을 기원하며 쓴 곡이 바로 이 Sweet Sir Galahad입니다.  


(미미와 밀란의 결혼식 사진입니다.)



이 곡은 전에 소개드린 'Diamonds and Rust' ( https://nasica1.tistory.com/91 )와 함께 대표적인 바에즈의 자작곡으로 유명합니다.  바에즈의 노래들은 모두 약간 서글픈 느낌이 듭니다만, 이 노래는 그녀의 노래들 중에서 따뜻한 느낌이 드는 몇 안 되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특히 저는 'here's to the dawn of their days'라는 후렴구의 가사와 멜로디가 정말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런데 왜 뜬금없이 원탁의 기사 갤러해드가 나오냐고요 ?  글쎄요, 밀란은 키가 크고 긴 머리를 기른 남자였는데, 외모는 마치 링컨 대통령을 연상시켰다고 합니다.  그런 외모가 원탁의 기사들 중 가장 품행이 방정하고 정의감이 넘쳤던 갤러해드를 연상시켰을까요 ?  아마 제 생각에는 바에즈가 동생 미미의 남편이 갤러해드처럼 따뜻하고 올바른 품성으로 미미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원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사람 일이라는 것이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지요.  이유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미의 결혼 생활은 3년 만에 이혼으로 끝났고, 이후 미미는 계속 싱글로 살았습니다.  첫 남편인 리처드의 성 파리냐를 다시 쓰면서요.  그리고 바에즈는 이후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를 때마다 'the dawn of their days'를 'the dawn of her days'로 살짝 바꿔불렀다고 합니다.

이 곡이 처음 공개 콘서트에서 불려진 것은 1969년 우드스탁 공연이었는데, 제가 위에서 언급한 그 설명을 바에즈가 직접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아래 유튜브 비디오에 나옵니다.  정말 인터넷 세상이 좋긴 좋네요 !  그리고 저 목소리와 연주가 라이브 공연이라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멋집니다.  레코딩과 라이브가 전혀 차이가 없네요 !


https://www.youtube.com/watch?v=R9cpBML9SoE



Sweet Sir Galahad (다정한 기사 갤러해드)


Sweet Sir Galahad 
Came in through the window 
In the night when 
The moon was in the yard. 

다정한 기사 갤러해드는
창문으로 들어왔어요
때는 밤이었지요
마당에는 달빛이 가득했어요

He took her hand in his 
And shook the long hair 
From his neck and he told her 
She'd been working much too hard. 

그는 그녀의 손을 맞잡고
자신의 긴 머리를 휙 젖혔어요
그리고 말했지요
그녀가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고요

It was true that ever since the day 
Her crazy man had passed away 
To the land of poet's pride, 

그게 사실이긴 했어요
그녀의 그 멋진 남자가  
시인의 긍지라는 나라로 날아간 이후 

She laughed and talked a lot 
With new people on the block 
But always at evening time she cried. 

그녀도 웃고 떠들긴 했지요
동네의 새로운 사람들과요
하지만 밤이면 그녀는 항상 울었답니다

And here's to the dawn of their days. 

이제 먼동이 트는 그들의 인생에 축배를 !

She moved her head 
A little down on the bed 
Until it rested softly on his knee. 

그녀는 침대 위에서 
머리를 좀더 내려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웠어요

And there she dropped her smile 
And there she sighed awhile, 
And told him all the sadness 
Of those years that numbered three. 

거기서 그녀는 웃음을 떨구고
잠깐 한숨을 내쉬고는
그에게 모든 슬픔을 털어놓았지요
3년이라는 세월의 슬픔이었지요

Well you know I think my fate's belated 
Because of all the hours I waited 
For the day when I'd no longer cry. 

내 운명은 늦었다고 생각해요
정말 오래 기다렸었거든요
이제 울지 않아도 될 날을요

I get myself to work by eight 
But oh, was I born too late, 
And do you think I'll fail 
At every single thing I try? 

난 8시까지 일을 하지만
아, 내가 너무 늦게 태어난 걸까요 ?
당신 생각엔 내가 제대로 못해낼 것 같나요
제가 시도하는 모든 일에서요 ?

And here's to the dawn of their days. 

이제 먼동이 트는 그들의 인생에 축배를 !

He just put his arm around her 
And that's the way I found her 
Eight months later to the day. 

기사는 그저 그녀를 꼭 끌어안았고
제가 그녀를 본 건 그 모습 그대로였어요
8개월이 지난 결혼식 날에서요 

The lines of a smile erased 
The tear tracks upon her face, 
A smile could linger, even stay. 

웃음 덕분에 사라졌어요
그녀 얼굴의 눈물자국이요
미소가 잠깐 보이더니 계속 웃더라고요

Sweet Sir Galahad went down 
With his gay bride of flowers, 
The prince of the hours 
Of her lifetime. 

다정한 기사 갤러해드는 꽃길을 행진했어요
즐거운 꽃의 신부와 함께요
그녀와 평생 함께 할  
그날의 왕자님이었지요 

And here's to the dawn Of their days, Of their days.

이제 먼동이 트는 그들의 인생에 축배를 !

작사 : Joan Baez




Source : http://www.richardandmimi.com/mimi-bio.html
https://en.wikipedia.org/wiki/Mimi_Fari%C3%B1a
https://en.wikipedia.org/wiki/Sweet_Sir_Galahad
https://en.wikipedia.org/wiki/Joan_Baez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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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애경 2019.06.20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악에 대해선 전 잘 모르지만 가창력 하난 정말 끝내주는것 같습니다.

  2. 1324 2019.06.23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부분은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익과 거의 같네요.

  3. 1234 2019.07.22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연배가 느껴지는 포스팅이네요. 조심스럽게 환갑 즈음이 아니실까 추측해봅니다.

    조안 바에즈는 요즘은 노래보다는 사회운동가로 기억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2019.06.17 06:30

 


"폴란드는 아침거리일 뿐이다... 러시아가 저녁을 먹을 곳은 어디일까 ?"
- 1772년 제1차 폴란드 분할 이후 당시 영국 의회 의원이었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점점 서쪽을 밀고 나오는 러시아에 대해 한 말

"이 꼬마는 자기 모순의 매듭덩어리 같구먼."
- 전제 군주 집안에 태어난 왕자로서, 스위스 출신 가정교사에게서 계몽사상으로 교육을 받은 어린 손자 알렉산드르를 보고 예카테리나 대제가 평한 말

"난 무책임한 게으름뱅이이고 진실된 생각과 말, 행동을 할 능력이 없다.  난 이기적 사람인데 그 주된 이유는 허영심 때문이다."
- 1789년, 당시 12살이던 알렉산드르가 적은 일기 중에서   

"내 계획은 와이프와 함께 라인 강변에 정착하여, 평범한 사람으로서 친구들과 함께 자연 철학을 공부하며 행복을 찾는 것이다."
- 1796년 당시 19세이던 왕자 알렉산드르가 친구에게 한 말

"이 황태자가 성당에 들어갈 때보니 자기 할아버지를 살해한 자들이 앞장서서 들어가고, 황태자를 둘러싼 자들은 자기 아버지를 시해한 자들이고, 황태자를 시해할 준비가 된 자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가더군요."
- 알렉산드르의 비자발적 묵인 하에 아버지 파벨 1세가 암살된 이후 알렉산드르의 대관식에 참석했던 어느 프랑스 망명 귀족의 편지 중에서

"제 아버지를 암살한 귀족들을 처벌하지 않고 여전히 고위직에 두고 있는 러시아 짜르가 이런 비난을 하다니 매우 희한한 일이다."  
 - 1804년 앙기엥(Enghien) 공작을 납치하여 사법살인한 나폴레옹의 행위를 알렉산드르가 맹비난하자 그에 대해 대외적으로 발표한 프랑스 외무부의 반응.  알렉산드르는 괜히 나섰다며 크게 후회했다고 전해짐.

"이 전투에서 러시아군보다 짜르 알렉산드르 개인이 훨씬 더 철저히 패배했다."   
-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이후 프랑스 외교관 Joseph de Maistre의 편지에서    


"완전히 새로운 체제가 현재까지의 체제를 교체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나폴레옹 황제와 직접 만나 담판 짓는다면 그런 체제에 대해 매우 쉽게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 1807년 틸지트(Tilsit) 회담 직전 프랑스 측에 보낸 알렉산드르의 편지 중에서

 



"내가 보나파르트와 단 둘이서 마주 앉아 하루에 몇 시간씩 대화를 하며 며칠을 보냈다는 것을 상상해보거라.  정말 꿈 같은 일이 아니냐 ?"
- 1807년 틸지트 회담 이후 여동생 예카테리나에게 보낸 알렉산드르의 편지 중에서

"폐하, 조심하소서 !  선황 폐하의 전철을 밟을까 두렵사옵니다."  
- 틸지트 회담 이후 어느 알렉산드르의 심복 중 하나가

"폐하와의 동맹, 특히 영국과의 전쟁은 이 나라에서의 자연스러운 사고 방식 자체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이건 마치 완전한 개종과 같은 수준의 일입니다."
- 틸지트 회담의 결과로 러시아의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가 이루어진 뒤 상트 페체르부르그 주재 프랑스 대사가 나폴레옹에게 보낸 편지에서 

"러시아군과 프랑스군, 그리고 일부 오스트리아군으로 이루어진 5만의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출발하여 아시아로 출정한다면, 단지 유프라테스 강까지만 진격해도 영국은 벌벌 떨며 대륙의 발 밑에 무릎 꿇을 것입니다."
- 1808년 2월 알렉산드르에게 보낸 나폴레옹의 편지 중에서

"이게 바로 틸지트에서 사용되는 언어야 !"
- 위의 나폴레옹의 편지를 읽으며 흥분한 알렉산드르가 내뱉은 찬탄

"알렉산드르, 너의 몰락을 스스로 자초해서는 안 된다 !  백성들의 존경은 잃기는 쉽지만 되찾기는 어렵단다.  그 회의에 참석한다면 넌 그걸 잃을 것이고 결국 제국을 잃고 가족들도 파멸시킬 거란다."
- 1808년 9월 나폴레옹이 소집한 에르푸르트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출발하려는 알렉산드르에게 보낸 모후의 편지 

"우리가 공공연하게 군비를 확충하고 무장 병력을 과시하거나, 요란하게 나폴레옹를 비난하는 것은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목표를 위해서는 오로지 심오한 침묵 속에서만 준비를 해야 합니다."
- 위의 모후의 편지에 대한 알렉산드르의 답장

"나폴레옹은 내가 그저 바보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웃는 자가 가장 오래 웃는 법이지. (중략) 유럽은 우리 둘이 공존할 수 있을 정도로 넓지 않단다.  둘 중 하나는 조만간 무릎을 꿇어야 할 거야."
- 위의 편지와 함께 따로 여동생 예카테리나에게 보낸 알렉산드르의 답장

 

"두 황제는 서로의 조치에 대해 비교적 만족한 상태로 헤어졌다.  그러나 기저에는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었다."

- 에르푸르트 조약 직후 러시아 주재 프랑스 대사 콜랭쿠르의 관측

"유럽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폐하 뿐입니다.  폐하께서 그러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폴레옹에게 반기를 드시는 것입니다."
- 에르푸르트 조약 기간 중 알렉산드르와 몰래 접촉한 프랑스 전직 외무장관 탈레랑이 알렉산드르에게 한 말

 

 

Source :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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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nhardt100 2019.06.17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 제국 입장에서는 파벨 1세가 장기집권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습니다. 파벨 1세가 흔히 암군이라고 생각되지만 그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엘리자베타 여제 이후 모순에 가득차던 농노제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인식하고 급진적으로라도 개혁하려고 했던 군주였죠. 주 7일 중 4~7일을 귀족의 토지에서 일하는 수준의 막장 농노제를 건드려버린 것만으로도 이미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 사람이 죽고 난 후 아들인 알렉산드르 1세는 외치에 집중하여 나폴레옹 전쟁의 승리자로써 죽을 때까지 확실한 권위를 가질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내정은 바뀐거 없었고 제정 러시아와 로마노프 왕조 또한 긴 몰락의 세월을 걷게 됩니다.

  2. 00 2019.06.1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족들이 천상외교를 하던 당대론 애매하되 현대 기준에서 탈레랑은 매국노가 확실하군요.

  3. 유애경 2019.06.17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세때 친구에게 한 말과 대관식에 참가한 프랑스 망명귀족의 편지에서 어찌보면 알렉산드르도 시대의 피해자(?) 였을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황가의 후계자로 태어났지만, 후계자로 태어났을뿐 진정으로 그길을 원했을까...

  4. 수비니우스 2019.06.17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공공연하게 군비를 확충하고 무장 병력을 과시하거나, 요란하게 나폴레옹를 비난하는 것은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목표를 위해서는 오로지 심오한 침묵 속에서만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말이 인상깊네요.

  5. 까까님 2019.07.05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에 웃는 놈이 젤 오래 웃는다
    남들은 내가 찐따인 줄 알지만 어디 두고봐라
    불곰 같이 생긴 여우라고 해야 하려나요

  6. 샤르빌 2019.07.23 1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의 탈레랑이 한 말이 의미심장하네요.. 원래 나폴레옹 라인이 아니었나..

2019.06.13 06:30


Hornblower and the Atropos by C.S.Forester (배경: 1805년 영국 근해 HMS Atropos 함상) ----------------

(아트로포스 호의 함장인 혼블로워는 밤늦도록 그날 있었던 프랑스 사략선 나포건에 대한 보고서 작성을 막 끝내고 보고서 내용에 나름 흡족해하며 다시 읽어보고 있는 중입니다.)

함장실 문에 노크가 있었다.  대체 방해받지 않을 순간이 전혀 없단 말인가 ?

"들어와."  그가 말했다.

들어온 사람은 선임사관인 존스였다.  그는 혼블로워의 손에 들려져 있는 깃털펜과 테이블에 놓인 잉크병과 종이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실례합니다, 함장님."  존스가 말했다.  "제가 너무 늦게 온 게 아니었으면 합니다."

"무슨 일인가 ?" 혼블로워가 물었다.  그는 존스 중위에 대한 동정심이 별로 없었고, 그의 어정쩡한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군성에 보고서를 보내실 생각이셨다면 말입니다, 그러실 생각이셨던 것 같습니다만, 함장님..."

"그래, 물론 그럴 생각이네."

"혹시 제 이름을 언급하실 생각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함장님... 그러실 것인지 여쭈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함장님... 감히 제멋대로 생각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만약 존스가 해군성에 보낼 보고서에다 자신에 대해 특별히 잘 언급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라면 그런 부탁은 절대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대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가, 미스터 존스 ?"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그저 제 이름이 너무 흔한 것이라서 말입니다, 함장님, 존 존스라는 이름 말입니다.  현재 중위 명부에 오른 것만도 12명의 존 존스가 있습니다, 함장님.  알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9번 존 존스 (John Jones the Ninth)입니다.  해군성에서는 저를 그렇게 지칭합니다, 함장님.  만약 함장님 보고서에 그렇게 씌여있지 않다면, 아마도..."

"잘 알겠네, 미스터 존스.  무슨 말인지 이해하네.  제대로 처리가 될 거라고 믿어도 되네."

"감사합니다, 함장님."

존스가 나간 뒤, 혼블로워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보고서를 들여다 보고는, 새 종이를 한장 꺼냈다.  존스의 이름 뒤에다 '9번 (the Ninth)'이라는 글자를 읽을 만하게 삽입할 방법은 도저히 없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새 종이 위에다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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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인용한 소설 한 구절에서 무엇을 느끼시나요 ?  저는 아, 워드 프로세서는 신의 축복 (또는 빌 게이츠의 축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워드 프로세서가 없었던 나폴레옹 시대의 문서 작업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지요.

군인이라는 직업에서 성공하려면, 꼭 적군을 많이 죽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자기가 이러이러한 지휘력을 발휘하여 이러이러한 전과를 올렸다는 것을 상부에 제대로 알리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사실 이건  꼭 군인이라는 직종에서 뿐만 아니라, 조직화 되어 있어서 상관이라는 작자들이 존재하는 모든 직장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지요.  제대로 된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보고서 내용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단 그 보고 내용이 패전보다는 승전 쪽에 가까운 것이 좋을 것이고, 또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자연스러워, 읽는 사람이 요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조리있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우리 교육에서 영어 교육보다는 국어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문장력 때문입니다.  대학도 나오고 직장생활도 할 만큼 한 사람들이 쓴 보고서나 메일을 읽어보면, 대체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경우도 많거든요.  어떤 사람은 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한다고 하던데, 거기에도 동의합니다.  결국 언어라는 것은 의사 소통 수단이고, 의사 소통이 원활하려면 생각과 사실을 언어로 조리있게 정리해서 조합해야 하는 것이쟎습니까 ?  결국 한국말로 또이또이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영어로도 (발음은 둘째치고) 또이또이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Band of Brothers의 한 장면이지요.  딕 윈터스 대위, 승진을 위해서는 M1 소총보다 타자기를 더 잘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 !)



보고 내용도 승전보이고, 문장도 조리있게 잘 작성되었다고 하면, 그 다음엔 글씨가 문제가 됩니다.  요즘이야 타자기를 거쳐 워드 프로세서에서 대부분의 보고서가 작성되니까, 작성자는 어떤 폰트를 고를지만 생각하면 됩니다.  (대개의 경우 아예 폰트도 미리 지정해두지요.)  그러나 나폴레옹 시대처럼 아직도 이게 보고서인지 문학 작품인지 헷갈려하는 시대에는, 그 내용 못지 않게 우아한 글씨체도 중요했습니다.  우아한 글씨체가 정말 중요한 이유는,  알파벳 문화권에는 인쇄체와 필기체라는 것의 차이가 꽤 컸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아동 문학인 '보물섬'의 한 장면을 보시지요.



보물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  (배경 : 18세기 후반 영국) ---------------------------------------

그래서 몇 주가 지난 뒤, 마침내 어느날 닥터 리브지께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그 편지에는 '닥터의 부재시에는 톰 레드루쓰 또는 젊은 호킨스가 개봉할 것' 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 조건에 따라 우리는, 사실 우리라기 보다는 나는 -- 왜냐하면 산지기 레드루쓰는 인쇄된 것 외에는 잘 읽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다음과 같은 중요한 소식을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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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산지기 톰 레드루쓰처럼 필기체의 알파벳은 잘 읽지 못합니다.  제가 국민학교 때 저 위 문장을 읽고는, '나는 저런 무식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에, 중학교에 진학하여 영어를 배울 때 필기체 쓰는 연습도 나름 열심히 했었습니다만 (요즘도 학교에서 필기체 읽고쓰는 것을 따로 배우나요 ?) 여전히 필기체 문장은 읽기가 힘들더군요.  그래서 가끔씩 볼 수 있는 나폴레옹 시대의 그림이나 편지에 씌인 글을 읽는데 애를 많이 먹습니다.  글쎄요,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 당시 사람들 중에도 (저 레드루쓰처럼) 남이 필기체로 쓴 편지를 읽기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특히 원래 쓴 글씨가 개발새발이라면 더더욱 그랬겠지요.  그래서 글씨를 예쁘고 신속하게 써줄 수 있는 서기(clerk)이라는 직업이 있었지요.  나폴레옹도 자기가 직접 펜대를 굴리며 글을 쓴 경우가 (특히 나중에 황제가 된 이후에는)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대개 몇명의 서기들에게 둘러 싸여 속사포처럼 빠르게 구술을 하면, 서기들이 진땀을 흘리며 받아 적었지요.  

이 시대의 서기들은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 외에도 독특한 할 일이 더 있었습니다.  모래질이었습니다.  


'아르마다', 개럿 매팅리 작, 박상이 옮김, 가지않은 길 출판 (배경 : 1589년 스페인의 무적함대 사건 당시) --------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침착성에 대한 일화입니다.)

그 비서는 익숙하지 않은 일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왕에게 금방 쓴 문서를 받아들자 그것을 모래로 문지르는 대신 그만 잉크병을 쏟아버렸다.  왕이 진노하리라는 생각에 몸을 움찔하던 비서는 이런 말을 들었을 뿐이다.

"그것은 잉크라네.  이것이 모래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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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방금 쓴 문서를 모래로 문질렀을까요 ?  짐작하시다시피, 잉크를 말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잉크는 매염제(gall, 일종의 진딧물 벌레집), 검댕, 황산철, 고무질 등을 섞어만든 것으로서, 요즘의 잉크처럼 종이에 잘 흡수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깃털펜에 이런 잉크를 묻혀서 정성껏 쓴 다음에, 곧장 종이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가는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가 종이에 그대로 찍혀 일종의 데칼코마니가 되기 쉽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잉크를 말리는 작업을 해야 했는데, 불에 종이를 쬐다가는 자칫 불이 붙어버릴 위험도 있었고, 또 종이가 누렇게 말라비틀어질 수도 있었으므로 불로 말리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바로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 위에 고운 모래를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고운 모래는 잉크를 순식간에 흡수해버릴 수 있는데다가, 고운 모래로 문지른 종이면은, 당시 품질이 그리 좋지 못한 종이면을 곱게 갈아주어 표면의 느낌을 맨질맨질하게 해주는 효과까지 내주었습니다.



(사진 속 편지 위의 작은 후추병 같은 것이 sand shaker 입니다.  저것으로 고운 모래를 편지 위에 뿌렸습니다.)



이렇게 금방 쓴 잉크 위에 모래를 뿌리던 관습과 나폴레옹에게 연관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휘하 장군들 중 가장 일찍부터 나폴레옹을 섬기기 시작했던 사람은 바로 '폭풍우'라는 별명을 가진 쥐노(Jean-Andoche Junot)였습니다.  그는 1795년 툴롱 포위전 때 나폴레옹을 만났는데, 당시 나이가 겨우 2살 많았던 나폴레옹이 이미 대위 계급이었던 것에 비해 일개 하사관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그래도 혁명 전에는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미지수...) 법학도였던지라, 나폴레옹의 서기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툴롱 포위전이 한창일 때, 나폴레옹이 전선에서 뭔가를 구술하여 쥐노에게 받아쓰게한 직후였습니다.  바로 옆에 영국군의 포탄이 떨어져 흙먼지가 나폴레옹과 쥐노에게 우수수 떨어졌는데, 쥐노는 전혀 놀라지 않고 나폴레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덕택에 편지에 모래를 뿌리지 않아도 되겠네요."

이 용기와 재치가 넘치는 애드립에 깊은 인상을 받은 나폴레옹은 이때부터 쥐노를 진정한 부관으로 생각했고, 그 결과 쥐노의 인생이 확 변하게 되었지요.  

 


(실제 전공에서나 사람들의 비망록에서나, 쥐노는 그다지 능력있는 사람으로 부각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의 젊은 와이프를 나폴레옹이 무척 좋아했다고...)



나폴레옹 시대에 서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하는 주요 업무는 구술 받은 편지나 문서를 쓰고, 거기에 모래 뿌리는 것 외에도 또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 복사기 !  당시에는 타자기는 커녕, 아직 먹지(carbon paper)가 발명되지 않았던 때라서, 편지든 뭐든 문서라는 것을 하나 만든 다음에는 그 복사본을 손으로 일일이 베껴써야 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가 인류 문명을 바꾸어 놓기는 했습니다만, 아직 서기의 일상 업무를 바꾸지는 못했거든요.  따라서 나폴레옹의 참모 본부에 있던 서기들은 정말 눈알이 빠져라 열심히 서류들을 써대고, 베껴대야 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처럼 말이 많고 편지도 많이 썼던 사령관 밑에 있던 서기들은 정말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나폴레옹 시대에 이미 복사기가 이미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발발 전이던 1785년 조지 워싱턴과 벤자민 프랭클린 등이 독립선언문을 (손으로) 작성할 때, 이미 복사기를 이용하여 여러 본의 독립선언문을 동시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복사기는 과연 어떤 물건이고,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을까요 ?

미국인들에게는 자존심 상하게도, 미국 독립선언문을 복사한 복사기는 영국제였습니다.  제조사는 James Watt & Co. 사였습니다.  예, 바로 증기 기관을 발명했던 바로 그 제임스 와트가 맞습니다.  이 복사기는 1780년에 제임스 와트가 특허를 받은 것으로서, 제임스 와트가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습니다.  와트는 사업상 하도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내용의 편지를 써서 보냈는지 일일이 정확히 기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쓸 때마다 최소한 한통씩 복사본을 만들어 두어야 했었는데, 와트는 나폴레옹이 아닌지라 서기들로 둘러 싸이지 않아서, 자기가 직접 베껴야 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습식 복사기였습니다.  



(이건 강릉 경포대 바로 옆에 있는 참소리 박물관이라는 곳에 전시된 진짜 James Watt 의 복사기입니다.  전 세계에 원본이 이거 딱 1대 남았는데, 그것이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이 박물관에 있다고 하네요.  이 박물관은 한마디로 말하면 에디슨 박물관인데, 처음에는 비싼 입장료 (대인 7천원)에 놀라고, 다음에는 전시품들의 알참과 진귀함에 놀라고, 박물관 직원들의 재미있는 해설에 또 놀랐습니다.  한마디로 강릉 관광가실 때 강추.  돈이 별로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 습식 복사기의 원리는 나름 간단했습니다.  잉크도 좀더 진하고 특수하게 만들고, 종이를 아주 얇은 종이를 골라서 문서를 쓴 뒤, 그 원본 문서와 복사지를 맑은 물에 적신 뒤 압착 롤러로 눌러서, 원본 문서의 잉크가 복사지에게도 묻어나도록 한 것입니다.  글쎄요, 이렇게 하면 원본 문서의 품질에도 악영향이 좀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이 습식 복사기는 나름 꽤 인기가 있어서, 제임스 와트에게 상업적 성공, 즉 돈다발을 안겨 주었습니다.  나중에는 작은 나무 상자에 쏙 들어가도록 설계된 휴대용 복사기까지 개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습식 복사기는 20세기 초까지도 일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초기의 이 습식 복사기를 이용하여 제대로 복사를 하려면, 종이를 무려 12시간이나 적셔야 했기 때문에, 성질 급한 나폴레옹의 참모부에서는 결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 형태의 복사기는 문학 작품에서도 나옵니다.  그리고 '원본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까지도 그대로 묘사됩니다.  바로 발자크의 '관료주의'라는 소설에서입니다.



(사실 저는 이 책 아직 못 읽어보았고, 이 복사기 이야기가 이 책에 나온다는 사실도 참소리 박물관에 전시된 저 Watt 복사기의 설명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Bureaucracy by Honore de Balzac  (배경 : 1830년대 파리) ------------------------------------

세바스티앙이 절실한 마음으로 그의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메모와 함께 그가 마저 베껴쓰지 못한 복사본이 순서대로 들어있었고, 그는 그것들을 라부르뎅이 지시한 대로 즉시 책상 서랍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12월말 즈음의 이 사무실들은 아침에도 꽤 어두웠고, 실제로 아침 10시까지도 램프를 켜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결과, 세비스티앙은 종이에 남겨진 복사기의 눌린 자국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9시 30분 경에 라부르뎅이 그의 메모를 보았을 때, 그는 즉각 이 문서에 복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그는 복사 담당 서기들의 일을 이런 수기(手記) 압착식 복사기로 대체할 수 없을까 하고 고려 중이었으므로 더욱 쉽게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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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반에도, 이미 과학 기술이 사람들, 주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일이 아주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보실 수 있지요 ?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요.  오늘날 프랑스나 영국은 선진국으로서 국민 대부분이 잘 살지 않습니까 ?  확실히 그런 나라들이 실업률이 높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서류를 베껴쓰는 복사 담당 서기라는 것이 그다지 매력적인 직업은 아닌 것은 확실하지요.

 

** 목요일 재탕글이이었습니다.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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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되니츠 2019.06.14 0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 많이 벌면 저런 거 쟁여다가 자산 보전하고 싶지요.

  2. Eugen 2019.06.14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리가 판화랑 비슷하네요. 초등학생때 비슷한거 해본 적이 있어요.

2019.06.10 06:30


구약성서 중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는, 즉 출애급하는 장면입니다.  몇가지 신기하게 생각했던 점이 있었는데,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왜 저렇게 유대인들이 자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배신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현대인들처럼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신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그런 기적들을 여러번 집단으로 목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온갖 기적을 베풀면서 유대민족을 탈출 시켜주었고, 또 사막에서 물이 없어 목이 마르자 샘물을 터뜨려 주셨으며, 먹을 것이 없자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셨고, 만나만 먹으니 질린다 고기를 먹게 해달라 라며 아우성을 치자 메추리들을 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잠깐 자리를 비우자마자 하나님을 잊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으니, 유대민족이 단체로 메멘토에 걸린 것도 아닐텐데 왜 저러나 싶었습니다. 

그런 심각한 와중에도 제 관심은 음식 종류에 대해 집중되었습니다.  보니까 이스라엘인들이 마늘과 파를 식생활에 도입한 것이 이집트에서라더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것도 공짜로 먹었다고 하니,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건설하던 노동자들이 학대받는 노예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상당한 복지 혜택을 받으며 일하던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진짜였나보다 싶었습니다.

(민 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민 11: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 11: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실제로 이집트 기록에도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에게 마늘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있고, 또 투탄카멘 파라오의 피라미드 안에서 마늘이 발견되기도 했다지요.  흔히 성경을 역사책으로 보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성경도 100% 모두는 아니라도, 꽤 중요한 역사적 사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노동자들에게 급료로 빵과 맥주를 지급할 정도로 고대 이집트는 맥주를 많이 마시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집트에서 300년 가량 머물렀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늘과 파 먹는 법은 배웠으면서 맥주 만들어 마시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면 매우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포도주 이야기는 자주 나오지만 맥주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가령 예수님께서도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지 맥주로 바꾸지는 않으셨지요.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

 

 



저는 처음에 이 의문이 들었을 때, 혹시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혹자는 215년 간, 혹자는 430년 간) 살았다는 이야기 자체가 허구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집트의 모든 문서나 비석, 벽화 등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규모 거주와 탈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뭐 기나긴 이집트 역사를 생각해보면 별 영향력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300년 살다가 나간 것이 기록할 만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집트에서 300년 살다 온 민족이 맥주를 모른다는 것은, 마치 미국에서 평생을 보낸 재미교포라는 사람이 햄버거를 모른다는 소리와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 포도주와 함께 등장하는 술이 있습니다.  바로 '독주'라고 표현되는 술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령 사무엘상 1장 도입부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나중에 사무엘을 낳게 되는 늙은 한나가 신전에 가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느라 한참을 입술로 중얼중얼거리니 제사장인 엘리가 보고 이렇게 타이릅니다.  "할마씨요, 와 그렇게 살아요 ?  고마 술 끊고 집에 가이소."  그러자 한나가 날카롭게 대꾸합니다.  "아니거든요 ?  저 와인도 양주도 안 마셨거든요 ?"

 



물론 이건 제가 이해한 장면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성서에 나오는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삼상 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삼상 1: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삼상 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저 '포도주나 독주'라고 표현한 것이 영문판에는 뭐라고 되어 있나 찾아보면 보통 'wine or strong drink'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로는 strong drink가 독한 술이라는 뜻의 '독주'라고 번역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보통 우리 말로 독주라고 할 때는 막걸리나 정종, 백세주 같은 것을 독주라고 부르지는 않고 소주나 빼갈, 위스키나 보드카, 브랜디나 진 같은 것을 독주라고 합니다.  즉, 단순 발효주가 아니라 발효주를 증류해서 알코올 함량을 잔뜩 높인 술을 독주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알코올 증류 기술은 일반적으로는 기원후 8세기 아랍 쪽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지요.  최후의 사사로 일컬어지는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아직 철기 문명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한 시기였습니다.  가령 사울이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된 이후 블레셋과 전투를 앞두고 있었을 때, 그의 군대 중에 제대로 된 칼이나 창을 든 자는 사울과 그의 아들 뿐이었습니다.

(삼상 13:19)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삼상 13: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삼상 13: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삼상 13: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이렇게 기술 문명이 뒤떨어진 시대의 이스라엘에서 증류주를 만들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한나는 '포도주나 독주'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

이건 영어 표현에서 일반적으로 strong drink라고 하는 것은 그냥 알코올성 음료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코올이 없는 음료를 soft drink라고 부르는 것과 대조적으로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알코올이 들어간 것을 hard drink라고 하지요.  반대로 알코올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약한 것은 thin drink라고도 합니다.  사자왕 리처드가 등장하는 영국 역사 소설 아이반호(Ivanhoe)의 한 장면에도 그런 부분이 나옵니다.  사자왕 리처드가 신분을 감추고 그저 '흑기사'라는 신분으로 영국에 잠입했을 때, 숲 속에서 터크 신부를 만나 그 신부의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로빈훗에 나오는 뚱뚱하고 힘센 터크 신부는 여기서 리처드에게 말린 완두콩과 맹물을 저녁으로 같이 먹자고 내주는데, 리처드는 이런 음식과 마실 것을 먹고는 터크 신부가 저런 얼굴을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한마디 합니다.

“It seems to me, reverend father,” said the knight, “that the small morsels which you eat, together with this 

holy, but somewhat thin beverage, have thriven with you marvellously."


기사는 말했다.  "내가 보기엔 말이오, 경외하는 신부님께서 드시는 이 보잘 것 없는 음식과 이 신성하지만 어째 좀 밍밍한 음료(thin beverage)에 비해 신부님의 풍채가 너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원래 구약 성서 곳곳에 나오는 포도주와 독주라는 표현에서, 독주라는 단어의 히브리 원어는 shekhar입니다.  이는 포도주와 같은 과일 발효주와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곡물 발효주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곡물로 만든 술을 뜻하는 것입니다.  원래 이집트 뿐만 아니라 바빌로니아 등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는 맥주를 많이 마셨습니다.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도 맥주에 대한 언급이 있을 정도였지요.  그러니까 이집트에서 300년, 바빌로니아에서 70년을 보내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맥주를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또 고대 중근동에서는 맥주가 일상적 음료일 뿐만 아니라 약으로도 처방되었는데, 바로 그런 부분이 성서 잠언에도 나옵니다.  

(잠 31:6)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잠 31:7)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설마 성서에서 알코올 도수 40도의 독한 술을 곧 죽을 정도로 허약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겠습니까 ?  저기서 말하는 독주란 맥주를 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영어 성서 영문판 중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에서는 저 shekhar라는 단어를 strong drink라고 번역하지 않고 그냥 beer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Proverbs 31:6  Let beer be for those who are perishing, wine for those who are in anguish!
Proverbs 31:7  Let them drink and forget their poverty and remember their misery no more.

이렇게 구약 시대에는 맥주를 많이 빚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왜 신약 시대에는 맥주를 마시지 않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호프도 없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의 맥주는 사실 맛이 별로 없었을텐데, 그런 점 때문에 포도주와의 오랜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 전통적으로 곡물이 부족하여 맥주는 마시지 않고 포도주만 마셨던 그리스 세력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을 통해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중근동 지방까지 뻗치면서 더욱 포도주의 득세가 퍼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약간 이야기가 옆으로 샙니다만, 제가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전도서 11장 1~2절입니다.  

(전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 11: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 구절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라는 취지의 이야기로 저는 인식했습니다.  그런데 저 1절 부분의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부분은 정말 이해가 안 갔습니다.  며칠 뒤에 도로 찾을 거라면 그냥 애초에 던지지를 말 것이지 왜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것일까요 ?  저게 당시 흔하게 사용되던 히브리어의 무슨 관용구 같은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저는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면 그건 번역의 문제라고 보고 - 저는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못하니까 - 영문판을 찾아보곤 합니다.  그런데 거기도 똑같이 번역되어 있더라고요.

Ecclesiastes 11 King James Version (KJV)
Cast thy bread upon the waters: for thou shalt find it after many days.
2 Give a portion to seven, and also to eight; for thou knowest not what evil shall be upon the earth.

그런데 shekhar를 beer라고 과감히 번역하는 New International Version 버전에서도, 이 구절의 번역을 두고 엄청나게 고민을 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Ecclesiastes 11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Ship your grain across the sea; after many days you may receive a return.
2 Invest in seven ventures, yes, in eight; you do not know what disaster may come upon the land.
바다 건너 곡물 무역을 해라.  시간이 지나면 수익을 얻을 것이니라.
7~8개의 사업을 벌여라.  어떤 재앙이 올지 모르는 일이니라.

결국 원래의 '주변에 베풀고 살라'는 취지에서 약간 벗어나서 '하나님을 믿고 투자는 과감하게 하라'는 식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이 버전이 오히려 좀 이상한 번역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서 고고학회(Biblical Archaeology Society)의 Michael M. Homan이라는 분은 '떡을 물에 던지라'는 표현을 맥주를 빚으라는 것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원래 고대 이집트의 맥주는 먼저 빵을 만든 뒤 그 빵을 잘게 부수어 물에 풀어넣어서 만들었다고 하지요.  그렇게 보면 정말 딱 맞아 떨어지긴 합니다.  맥주를 빚어서 혼자 마시지 말고 주변 사람 7~8명에게 베풀라는 이야기지요.  

원래 이렇게 성서 해석을 교회나 무슨 위원회 같은 것에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기 시작하면 그게 이단의 시작이라고 하지요.  그러니 제가 감히 '저 부분은 기존 성경의 해석이 틀렸고 저건 맥주 빚는 이야기가 맞다'라고 주장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메시지 성경'이라는 좀 특이한 버전의 성경이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이라는 목사님이 쓰신 이 성경은 이해하기 어려운 성서를 굉장히 파격적으로 쉽게 풀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에게 쉽게 이해를 시키려다보니 '커피'라든가 '베스트 드레서' 등등의 파격적인 단어가 막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교단에서는 이 성서를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하고 유진 피터슨 목사를 이단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장로교 통합파 교회에서는 참고용으로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메시지 성경의 일부입니다.  뭐 취지는 이해가 가는데, 예수님이 커피 운운하시는 것으로 번역하니까 좀 이질감이 들긴 하더군요.)



이 메시지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과연 저를 실망시키지 않고 정말 파격적이더군요.  떡이니 물이니 하는 지엽적이고 해석 곤란한 것들은 다 없애버리고 그냥 '너그럽게 베풀거라, 자선 활동에 투자하여라' 라고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저는 성경을 글귀 하나하나에 집착해서는 안되고 전체적인 말씀 이해에 집중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저 메시지 성경의 전도서 11장 1절 해석이 굉장히 뛰어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Source : https://preachersinstitute.com/2012/12/26/did-ancient-israelites-drink-beer/
https://academic.oup.com/jn/article/131/3/951S/4687053

 

Historical Perspective on the Use of Garlic

Abstract. The objective of this review is to examine briefly the medical uses of garlic throughout the ages and the role that it was considered to play in prev

academic.oup.com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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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애경 2019.06.10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성경의 독주=맥주, 뭔가 신선한 느낌입니다.
    오래전에 해외토픽류의 기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몇천년 전인가 이집트의 맥주가 발견되어 한잔에 몇백만원(?)인가에 판매됬었다는 내용...
    맥주가 참 오래된 술이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본문을 읽고보니 느낌이 새롭네요.
    저 메시지 성경 이라면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교회 다닐때, 성경 많이 읽는것이 기독교인의 신앙의 척도라는 듯한 가르침 때문에 이해하기도 힘든 성경을 끙끙대며 힘들게 읽곤 했는데 메시지 성경은 정말 이질감이 들 정도로 쉽게 풀이 해놓은것 같습니다.

    • ㅇㅇ 2019.06.10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양장본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반양장본으로 성경 전 권이 나온 버전이 5만원 정도 하더라구요. 다만 읽기는 정말 쉽게 되어 있으니, 교양으로 전체 내용을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추천드립니다. 다만 부분부분 읽는 것은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ㅎㅎ

  2. ㅇㅇ 2019.06.10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에 포함되지 않은 개신교, 가톨릭에서 만들어진 한국어 현대어역도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새번역 성경)
    NIV와 비슷합니다.

    돈이 있거든 눈 감고 사업에 투자해 두어라.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이윤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공동번역 성경)
    물에 던진다는 표현을 미련 없이 투자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표현했습니다.

    Cast your bread on the surface of the waters, for you will find it after many days.(새 미국 표준역NASB)
    직역표현을 다수 차용한 권위있는 역본인 NASB는 KJV와 비슷하게 번역했군요. 독자의 적용은 메세지 성경 쪽으로도, 공동번역 쪽으로도 둘 다 적용될 것 같습니다.

    다만 전도서가 교훈적이되 잠언처럼 실제적인 내용이 많음을 감안하면 새번역, 공동번역 쪽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 eithel 2019.06.11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역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미국적인 이념이 많이 섞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뒤의 구절들을 보면 아침에 심어서 저녁에 거둘지도 확실치 않다는데, 무역에 과감히 투자하라는 것은 앞뒤가 잘 맞지 않으니까요.

  3. 애독자 2019.06.10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글은 휼륭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번역이나 전달의 오류가 많다는 것이 조금은 모순된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렵지 않고 심지어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어야 하거늘

  4. 여강여호 2019.06.10 1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성경에서의 호기심을 역사적으로 파헤친 글,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5. 0_- 2019.06.10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본적으로 포도는 술이나 만들어 마시는 용도로 쓰이는게 정상인 척박한 땅에 자라나는 작물입니다.
    반면에 보리건 밀이건 제대로 된 땅에서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야 나는 곡물이지요.
    그렇게 귀하게 키운 곡물은 낭비없이 빵으로 만들어서 먹어야지, 술따위 만드는데 낭비해서야 쓰겠습니까?

    조선시대 금주법이나 같은 맥락이지요. 귀한 쌀로 밥을 못할 망정 술로 낭비나 하다니.

  6. 루나미아 2019.06.10 2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문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기존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7. 수비니우스 2019.06.11 0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것 " 묘하게 이 부분이 막 부럽네요 ㅋㅋㅋ 식비가 많이 나가진 않지만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는것 같은 느낌으로 부럽네요

2019.06.06 06:30

 

경쟁력 있는 해외 저가품에 밀려 한나라의 산업이 쇠퇴하는 일은 요즘 흔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제조업, 특히 철강업이나 조선업 같은 것입니다.  첨단을 달리는 IT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인텔을 누르고 잘 나가는 AMD 같은 프로세서 업체는 정작 반도체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 대만의 TSMC에서 위탁생산을 하지요.  우리나라 삼성전자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키우기 위해 AMD나 IBM과 협업을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아이폰도 대부분 중국에 공장을 둔 대만업체인 폭스콘에서 생산합니다.  그렇게 더 경쟁력있는 제품 생산을 위해 생산비가 더 싼 곳으로 공장을 옮겨버리는 것을 오프-쇼어링(offshoring)이라고 하지요.

 

(어린 왕자가 아니더라도 코끼리가 보여야 정상입니다.)

 



이런 오프쇼어링은 공장이 빠져나가는 나라의 노동계급에게는 큰 타격을 줍니다.  그러나 이익을 얻는 계급도 있습니다.  그런 결정을 내려서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린 경영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옮겨진 공장에 취직을 한 개발도상국의 노동계급은 큰 이익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소위 말하는 '코끼리 그래프'입니다.  전세계 인구의 소득을 가장 적은 1부터 가장 많은 100까지의 스케일로 늘어놓고, 각 소득 분위별로 1980년대와 2000년대 사이의 소득 증가율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상아를 높이 쳐들고 있는 코끼리 모양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그래프가 뜻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그 사이에 진행된 오프쇼어링 덕분에 소득분위 75~90% 정도의 사람들, 즉 소위 중상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못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프의 좌측 끝 즉 제일 못사는 사람들은 소득 증가율도 제일 저조하고 그래프의 오른쪽 끝 즉 제일 잘사는 사람들은 소득 증가율이 가장 높습니다.  그건 놀랍지 않습니다만 중상위 계급의 상대적 몰락은 꽤 인상적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 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미국 내에서야 중하위 계층일지 몰라도 전세계적 스케일에서 보면 중상위 계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공장들이 대만이나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등으로 옮겨갔으니 당연히 그쪽 소득이 줄어들고 동아시아쪽 소득이 평균적으로 높아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코끼리의 등뼈 부분에 해당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꼭 1980년대 이후에만 벌어진 것은 아닙니다.  

광부란 언제나 거칠고 위험한 직업이고, 그래서 많은 소설이나 노래, 영화 등에서 다뤄졌습니다.  1960년대 사회성 있는 노래 가사로 인기를 끌었던 밥 딜런이 그런 광산을 배경으로 한 노래를 만들지 않았다면 매우 이상한 일이겠지요.  당연히 만들었습니다.  1964년에 만들어진 이 노래의 가사는 역시나 우울합니다.  한줄 요약하면 어느 몰락한 폐광촌의 여인의 신세 한탄 이야기입니다.  경기가 나쁘지 않던 미국 광산촌이 철광석 고갈에다 남미 광산과의 경쟁에서 밀려 몰락해버린 것이 이 노래의 배경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노래가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애환과 비극을 그린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경기가 좋고 잘 나간다고 해도, 어떤 산업 또는 어떤 업종이라도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입니다.  가령 폴더폰 잘 만들던 세계적 기업 노키아는 스마트폰의 물결에 망해버렸고, 미국 내 비디오 배급망을 장악하고 있던 블록버스터사는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밀려서 망했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종사하고 계신 산업이나 업종, 혹은 기술 분야도 언제 누구에게 밀려서 망할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저 폐광촌 여인의 한탄이 꼭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셈이지요.  가령 이 노래 속의 '동부'로 지칭되는 철강 회사들은 '남미 광산에서는 노동자들이 사실상 공짜로 일한다'며 미국 광부들을 실업자로 만들었지만, 결국 30년도 지나지 않아 자신도 더 값싸고 우수한 한국제 일본제 철강에 밀려서 몰락해 버렸지요.

 

(한때 아주 잘 나가던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 체인...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와는 별도로, 저 노래 속 여인은 오빠가 죽었을 떄도 남편이 실직했을 때도 항상 창가에 앉아서 뭔가를 기다리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저는 그게 참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사실 몰락한 광산촌에서 여성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역시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에밀 졸라의 소설 '제르미날'에서도, 가난한 광부 가족의 여인들이 돈이 부족하여 상점 주인에게 성매매 등의 비열한 착취를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노래 속의 여인도, 광산촌이 몰락한 이후로는 사실상 구걸을 통해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저 노래 속에 나오는 '모여봐요 친구들, 이야기를 해줄게요' 라는 부분에서, '친구들'이란 진짜 친구라기 보다는 외지인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인지 필연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광산과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결혼한 여성들도 모두 뭔가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경제력을 갖추는 것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남성들이 요리와 청소 빨래 등등 집안일을 열심히 해야 하겠지요.  제가 볼 때 '남자가 부엌 들락거리면 안 된다'라는 식의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남성들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소위 오래된 유교적인 남녀관을 가진 남자들, 가령 며느리가 제삿상도 차리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자연도태에 의해 곧 멸종될 것 같아요.  그런 남자와 결혼하려는 여성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거든요.   

오늘의 영어 한마디는 lunch bucket 입니다.  이건 20세기 초중반까지 노동자 계급에서 주로 들고다니던 도시락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이런 양철 도시락통이 사라졌습니다만, lunch-bucket이란 단어가 이젠 '노동자 계급과 관련된' 이라는 뜻의 형용사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노래 속에서는 진짜 양철 도시락통을 뜻합니다.

 

 

(그 주인들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양철 도시락통은 살아남아 저렇게 앤티크로 비싼 값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원작자인 밥 딜런의 버전보다는 존 바에즈의 1968년 버전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존 바에즈 버전은 아래 URL에서 감상하세요.

https://youtu.be/m0XUfoLkG0o


North Country Blues  (북부의 블루스)

Come gather 'round friends and I'll tell you a tale
Of when the red iron pits ran a-plenty
But the cardboard-filled windows and old men on the benches
Tell you now that the whole town is empty

모여봐요 친구들 제가 이야기 하나 해줄게요 
노천광에 붉은 철광석이 넘쳐나던 시절 이야기에요 
하지만 저렇게 창문들은 골판지로 막혀있고 벤치에 노인네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면
이제 마을 전체가 텅 비었다는 걸 댁들도 알 거에요 

In the north end of town my own children are grown
But I was raised on the other
In the wee hours of youth my mother took sick
And I was brought up by my brother

제 아이들은 마을 북쪽 자락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저는 다른 쪽 끝에서 자랐지요 
제가 아주 어릴 때 엄마가 병에 걸렸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빠 손에 자랐어요 

The iron ore poured as the years passed the door
The drag lines an' the shovels they was a-humming
'Till one day my brother failed to come home
The same as my father before him

세월이 흐르면서 철광석도 넘쳐났어요 
견인줄과 삽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지요 
그러다 하루는 오빠가 집에 오지 못했어요 
그 전에 아빠처럼 말이에요

Well, a long winter's wait from the window I watched
My friends they couldn't have been kinder
And my schooling was cut as I quit in the spring
To marry John Thomas, a miner

그 긴 겨우내 저는 창가에서 마냥 기다릴 뿐이었지요  
친구들은 제게 정말 따뜻한 온정을 베풀었어요 
다음해 봄이 되자 저는 학교를 그만 뒀고
존 토마스라는 어느 광부에게 시집을 갔지요 

Oh, the years passed again, and the giving was good
With the lunch bucket filled every season
What with three babies born, the work was cut down
To a half a day's shift with no reason

아, 또 세월이 흘렀고 사는 것은 괜찮았어요  
철마다 도시락통엔 음식을 채울 수 있었으니까요 
세번째 아기가 태어날 때 즈음 일이 줄었어요 
아무 이유도 없이 하루의 절반으로요 

Then the shaft was soon shut, and more work was cut
And the fire in the air, it felt frozen
'Till a man come to speak, and he said in one week
That number eleven was closing

그러더니 갱도 하나가 폐쇄되고 일이 더 줄었어요 
동네 분위기도 얼어붙더군요
그러다 외지 사람이 하나 와서 이렇게 말했어요 
1주일 안에 제11번 광산은 폐쇄될거라고요 

They complained in the East, they are paying too high
They say that your ore ain't worth digging
That it's much cheaper down in the South American towns
Where the miners work almost for nothing

동부에서는 불평을 한다는 거에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요 
그들 말로는 우리 광석은 캐낼 가치가 없대요 
저 아래 남미에서는 훨씬 싸다더군요 
거기선 광부들이 거의 공짜로 일을 한대요 

So the mining gates locked, and the red iron rotted
And the room smelled heavy from drinking
Where the sad, silent song made the hour twice as long
As I waited for the sun to go sinking

그래서 갱도들은 폐쇄되고 붉은 철광산은 황폐해졌어요
그리고 방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지요 
낮고 슬픈 노래 때문에 시간은 훨씬 천천히 가더군요 
하루하루가 의미없이 흘렀어요 

I lived by the window as he talked to himself
This silence of tongues it was building
'Till one morning's wake, the bed it was bare
And I was left alone with three children

난 창가에 붙어 지냈고 남편은 혼잣말만 했어요 
침묵만 쌓여갔지요 
그러다 아침에 보니 침대가 썰렁하더군요 
전 아이 셋과 함께 버려진거였지요 

The summer is gone, the ground's turning cold
The stores one by one they're all folding
My children will go as soon as they grow
Well, there ain't nothing here now to hold them

여름이 가고 대지는 차가워졌어요 
가게들도 하나씩 문을 닫았지요 
제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면 가버릴거에요
여기엔 걔들을 붙잡아둘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작사: Bob Dylan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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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원 2019.06.06 1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은 아직도 마르크시즘의 영향에서 못벗어났네요.
    노동자계급이라.
    자본주의구성원을 계급구조로 이해하고 그것의 타파를 주장하는것은 마르크시즘입니다.
    몇가지 질문을 드리죠.
    노동자가 주식투자하면 그사람은 노동자입니까? 자본가입니까?
    치킨집사장은 노동계급입니까? 자본가계급입니까?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생산수단(치킨굽는기계)를 사적소유한 치킨집사장이 자본가계급이고 그 종업원이 노동자이고,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간단하게 사회를 이분하는데,
    그러면 sk생산직근로자(노동자)는 검침이나 돌면서 2억을 벌면서 치킨집사장(자본가)은 대부분이 망하고 월에 300버는 곳도 드문 이현상은 어떻게 설명할것인가요?


    전통적 마르크시즘에 따르면 치킨집사장도 자본가계급이죠. 이런 마크르시즘에 영향을 받은것이 586 운동권사상이구요.
    그러니까 최저시급을 올려 서민인 치킨집사장에게서 돈을 뺏어서 종업원들에게 줘서 분배를 개선한다는 황당하고 어리석은
    소득주도성장이 나오는것이지요.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바보요. 늙어서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있는 사람은 더 바보다( 칼 포퍼)


    인생은 짧고 자녀분들에게 이세상에 대해 가르쳐야하는데, 언제까지 마르크시즘에 영향을 받은 낡고
    좁디 좁은 586 운동권사상에 갖혀 살것입니까?
    왜 보다 커다란 세상을 보러 하지 않는지요?

    • 유애경 2019.06.06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님 댓글이 우스워서 풉 했습니다.

    • 최홍락 2019.06.06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4년전에 정원이라는 필명으로 다시 안들어온다고 하고 알타리무로 바꿔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죠.ㅋ

    • 1324 2019.06.06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대로 알지 못하시는것 같아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설명을 올립니다.
      -----------
      사회계급을 나타내는 많은 용어 중, 노동계급은 정의되어 있으며 여러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와 사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노동력과 기술 외에는 판매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이 측면으로 보면, 그들의 소득을 회사 경영과 타인의 노동으로부터 없는 개인을 제외한 비즈니스맨, 육체적 노동자들을 모두 포함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미국에서 비학술적으로 사용할 때는, 시급을 받는 육체노동을 하는 사회계급만 의미한다. 이런 종류의 과학적이지 않고 저널리스트적인 정치 분석이 아닌 과학에서 노동계급은 대학교 학위를 받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노동 계급의 직업은 미숙련 노동자, 장인, 사외 근무자, 공장 노동자,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

    • 알타리무 2019.06.07 0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출처가 어디입니까?

  2. 정원 2019.06.06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부자들이 노력해서 부를 만들었으니 우리도 노력해서 부자들의 부를 빼앗자라고 주장하던 나시카님이 지지하던
    정치인과 사회주의정책탓에 많은 사람들이 실업난으로 고통받고 가족들과 같이 생명을 끊었습니다.

    지금이라도 편협한 586운동권사상에서 벗어나 커다란 세계로 오시길바랍니다.

  3. 연구자 2019.06.06 1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원님 참 대단하십니다. 실직한 사람들 노래 한번 글 쓰셨다고 나시카님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됩니까? 공안검사 빰치는 상상력이네요. 나시카님 글을 다 읽어본 저로서는 나시카님은 당신같이 편협한 사람이 논할 분이 아닙니다.

    • 정원 2019.06.06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직한 사람들에 대한 노래를 글로써서 문제가 아니고 "노동자계급"이라는 단어를 써서 그렇습니다. 제가 덧글에 자세히 "노동자계급"이라는 단어가 가진뜻에 대해 써놨는데요.

      제가 언제 노래를 문제삼았단 말입니까?

    • 최홍락 2019.06.06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타리무가 하는 소리가 원래 그렇지요.

    • 1323 2019.06.06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노동자계급이라는 단어는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실제로 노동자계급을 대신할 단어가 없죠.

    • 알타리무 2019.06.07 0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층이라는 말을 할수있는데 계급이라고 굳이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사회가 계급사회임을 암시 또는 주장하기위한것 아닌가요?

  4. ian 2019.06.07 0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이 올리신 밥 딜런의 노래에 어디 자본주의와 마르크스가 나오나요?
    배움과 시적 감각이 부족하여 보이지 않은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그저 힘없는 개인이 어쩔수 없는 구조적 변화속에서 죽어가며 "아얏"소리 내는 가사인데,
    영웅적으로 아뭇소리도 내지않고 세명의 자녀와 함께 함께굶어죽는가서있으면 사상적으로 만족하시겠습니까? 정원님?

    • 알타리무 2019.06.07 0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성과 함께 감성을 기반으로 사회주의 이념과 관념을 계속퍼트리려고 하기때문이죠. 문재인 대통령의 사회주의 정책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은 지금도 사회주의용어를 쓰는것ㅇㅣ 참으로 사악하게 보여 덧글을 단것입니다.

    • 알타리무 2019.06.07 0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저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밥딜런의 노래가사를 문제삼은게 아니라 노동자계급이라는 단어를 문제 삼은건데요

  5. 알타리무 2019.06.07 0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통령이라는 작자(문재인)가 애국에는 이념을 초월하자 공산주의자 김원봉이 그예라고 말하는 이상한 세상이니.

    아니 민주주의도 이념인데 그러면 민주주의가 아닌 방법으로도 애국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라는 뜻아닌가?

    그러니 노동자계급이라는 말을 문제 삼기보다는 예전에 안오겠다고 하고 아이디 바꾼거 그것을 더 중요시여기고 관심을 기울이다니

    아이디 바꾼들 사람이 죽어 나가요?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노동자 계급이라는 말은 자본주의사회가 계급사회라는 공산주의의 사상이 그대로 표현된 단어입니다.

    공산주의에 가깝게 우리사회가 이행될수록 사람이 죽어나갑니다.

    지금도 소득주도 성장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직과 경제불황으로 가족과 함께 목숨을 끊었습니까?

    사람으로써 그런사람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노동자계급"이라는 말자체가 공산주의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임을 모르는것입니까? 공산주의 자체가 위험한 사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것입니까? 노동자계급이라는 단어자체가 아무렇지 않다는 것입니까?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다가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기리는 현충일에 부끄럽지도 않단 말입니까?

    하필이면 현충일에!!!

    • 최홍락 2019.06.07 0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노동자 계급 얘기했다 현충일 얘기했다 자기 아이디ㅈ바꾼거 변명했다가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그렇게 정리가 안되는 의식을 가지며 실기 쉽지않을텐데ㅋㅋ

      정원으로 활동할때도 알타리무로 활동할 때도 안들어올거라고 했다가 다시 들어오는건 참 한결같긴 합니다.ㅋ

      노동자계급 대신 근로자라는 표현을 썼으면 안들어왔을까요?ㅋ 변명거리를 저렇게 길게도 적어놨네요ㅎ

    • 0_- 2019.06.11 0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정권은 맨날 지난정권 탓만한다" 소리가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보지만, 이런 거 보면 지난정권 사례를 안 끌어올 수 없지요.
      https://news.v.daum.net/v/20190610203815347?f=p

      남이 읊어준 이야기에 세뇌되서 그거 읊조리고 다니는 부끄러운 짓 그만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 하길 바랍니다.

  6. 행인1 2019.06.07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업의 흥망성쇠와 개인의 삶을 담백하게 그려져 있어서 무척 마음에 듭니다.
    밑에 정치충하나 날뛰는 거보고 한번 웃고갑니다.

  7. 최홍락 2019.06.07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코끼리 그래프는 몇년 전에 트럼프 현상과 러스트 벨트가 한참 이슈였을 때 세계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봤던 선진국의 공장 노동자 등 (하여간 이 노동자라는 단어 때문에 시비 걸 수 있다는 게 정봉준씨의 고질적인 문제겠죠.) 중산층들이 세계화와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에 반대를 했던 근거로 언급되었죠.

    그런데 말씀하신 광업이라는게 거칠고 위험한 직업이라고만 평가되는 것은 좀 아닌 것이 미국, 영국, 독일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그렇게 탄광에 위험하게 직접들어가서 곡괭이 들고 가서 광물을 캐는 것은 아니고 기계로 채굴을 하다보니 폭파나 엔지니어링 등 전문적인 엔지니어의 영역이 되어버린 지 오래 됬죠. 사실 땅파들어가서 캐야하는 광산과 그냥 산 자체를 포크레인으로 파내서 수출할 수 있는 호주나 브라질을 비교하면 호주나 브라질이 더 쉽게 생산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수입을 막을 수도 없는게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국내 공급만 처다볼 수만은 없으니 수입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국내 공급의 경쟁력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고, 그렇다고 냉전도 끝나고 2차대전 때처럼 블록 경제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없는데, 자원 무기화를 핑계로 국내 광산을 남겨두기도 애매하니…물론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가혹한 얘기이지만…

    2. 조선업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른 것이...선박의 비용 항목 중에서 노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자재비가 대부분이고, 노무비도 시수와 임금을 비교할 때 생산성에서 뒤쳐지면 아무리 임금이 저렴해도 노무비 절감이 쉽지가 않아요. 결국에는 생산성인데, 영국의 경우 기존의 리벳공법을 이용해 목선에서 철선으로 넘어오는 시기에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지만 60년대 일본의 용접•블록공법, 즉 선체를 여러 블록으로 나눠 각각 만든 뒤 이를 용접으로 조립하는 공법에서 생산성에서 완전히 뒤쳐져 몰락한 것이고요. 미국은 Jone’s Act의 영향으로 미국을 오가는 선박은 미국에서만 건조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지만, 그 결과 미국의 선박 건조 비용이 한국, 일본의 3배로 증가해버리게 되서 조선업 자체가 완전히 죽어버린 것이 있죠. 단순히 노무비 저렴한 걸로 조선업이 잘 나갈 것 같으면 왜 인도가 오랫동안 조선업 육성에 실패했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G7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는 세계 조선업 순위에서 한, 중, 일 제외하면 늘 상위권이고요.

    오히려 IT나 첨단 산업 운운하는 사람들이 이런 제조업을 사양 산업 운운하는게 더 기분이 안좋은게 90년대 후반에도 2000년대에도 그리고 3년전에도 사양 산업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대표적인 업종이 화학과 조선업. 그런데, 반도체 아니면 끝장난다는 경제학자들의 예측을 항상 무참히 박살내는 업종이 바로 이런 사양산업이라는 업종이라는 거…말뫼의 눈물 어쩌고 하면서 조선업종 포기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던 사람들이 당시 선박 계약 현황이라던가 오더북 수치라던가 최소한의 확인만 잘하면 이런 얘기를 하지는 않았겠지요. 그 때 포기하지 않고 견뎌온 업체들이 지금의 호황을 누리는 현대, 대우, 삼성이고요.

    3. 그런데 조선업의 업황과는 별도로 다른 문제가 있기는 해요.

    울산이나 거제와 같은 중공업 중심의 도시의 경우 가족들을 유지해오던 메커니즘이 “정규직-생산직 남편-전업 주부”의 업무 분장이었죠. 정규직-생산직 남성의 경우 높은 직업 안정성, 야근, 특근을 통해 높은 소득을 달성하고, 여성은 가정에서 내조를 하는 게 이 도시들의 가족 구조였던 것이 일단 이런 도시들의 경우 여성은 전업주부를 선택하지 않은 여성은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가 거의 없어서 다른 곳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회사는 이러한 역할 분담을 통해 야근 특근을 마음껏 이용해서 생산 물량을 확대해왔던 것이고…역할 분담이라는 것이 결국 산업 구조에 의해 불가피하게 진행되어 온 것이죠. 99년인가 현대자동차 파업 때 노사정 협의 끝에 구조조정을 최소화했다고, 윈윈이라고 자평을 했을 때 그 때 잘려나간 198명의 노동자 대부분이 여자였죠. (그 때 이 윈윈이라는 협상을 이끌어낸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었고요.) 여성은 생계부양자로 인정을 하지 않았던 때라서 그렇겠죠.

    그런데 99년부터 Subcontract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앞서 언급한 메커니즘이 흔들리게 되고 또 2008년 조선업 불황이 찾아올 때는 하청 노동자 중심으로 해고가 진행되어 왔죠. 문제는 앞서 언급된 저 메커니즘에서는 nasica님이 얘기하는 남녀의 역할 분담이라는 것이 연착륙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겁니다. 도시의 산업,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 기업 문화 자체가 변화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니까... 울산이나 거제, 통영 등 중공업 도시에서 여성이 갈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커리어를 마무리하는 상황, 남자의 경제적 능력을 믿고, 전업주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 도시들이 계속 남아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산업은 잘나가는데, 도시는 활력을 잃어가는 기 현상을 보게 될 수도요.

    • nasica 2019.06.09 1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항상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장구벌레 2019.06.10 0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별관 밀실에서 산은 수은행장들 집합시켜 놓고 대조양 살리자고 한 최경환 님의 혜안에 감탄하고 세번 절하면 되는거죠?

      빚내서 집사라에 이어 최경환님의 혜안에 다시한번 감탄하고 갑니다.

  8. 푸른 2019.06.07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블로그에 가장 큰 장점은 알타리무같은 사람의 댓글마저 포용한다는거고, 가장 큰 단점은 저런 댓글이 있다는 것이다

    • nasica 2019.06.09 1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 raa 2019.06.10 0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이라면 맞는 말이지만 이제는 알타리무 비웃을 블로그는 아닌듯하네요.. 이상한 착각과 비논리적 주장으로 알타리무가 비웃음당하는 것처럼, 나시카님도 페미로 비웃음당하고 있는 걸 인식은 하는건지.. 젊은 세대에게 일베와 페미는 동급이라고 조언을 드렸는데 이 글에서 도태 어쩌고 부분을 보면 아직도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은 거부하시는듯하네요.

      굳이 따지면 남자의 2억 부담은 당연히 여기면서 자기의 2백만원 월급가지고는 빼액거리는 뷔페미니스트야말로 도태될 대상 아닐까요? 실제로 이 문제로 파혼이 많이 일어나는 걸 보면 도태라는 말이 정확합니다만.. 그 예비신부 글은 만약 레딧같은 데로 번역해갔다면 객관적인 관점의 외국인들은 '애초에 반반씩 부담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저 여자는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이냐'고 어이없어했을 뻘글이었는데, 아직도 느끼시는 게 없다면 저도 여기 더 이상 오지 않아야 할듯하군요. 나시카님의 페미 이외의 영역에 대한 식견은 감탄스럽지만, 일베가 재미있다면서 일베에 가던 인간들이 일베를 키웠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글이 많아도 페미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가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좋은 글들 감사했고, 나시카님도 철없던 시절 알타리무같던 때가 있으셨을텐데 지금 나의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가 그 시절과 비슷하지 않은가 한번 돌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10년에 가까운 동안 오랜 팬으로서 마지막으로 드리는 조언입니다.

  9. 0_- 2019.06.08 0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어~

    정원 a.k.a. 알타리무 씨의 심리상태에 가장 유사한 것은 옛날 동네구석에 술주정뱅이 영감쟁이라고 봅니다.
    쌍욕만 안한다 뿐이지 문맥에 뜬금없는 이야기 (e.g. 문재인 자빨 겅산듀의자) 끌어오는게 딱 그짝이라 생각 안드세요?

    사는게 괴로워서 스트레스는 받는데, 그
    스트레스 원인도 따지고 보면 본인이 본인 스스로 인생 망치는 것 뿐인데 그것을 모르고 그저 남의 탓이나 하고있죠.
    어디 신세한탄 할 호구잡은 사람 하나 딱히 없으니, 지나가는 애먼 사람 호구잡고 구시렁 대는 그런 행태를 인터넷에서 하고 있는거죠.

  10. 기리스 2019.06.09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행인지 필연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광산과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결혼한 여성들도 모두 뭔가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경제력을 갖추는 것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남성들이 요리와 청소 빨래 등등 집안일을 열심히 해야 하겠지요.  제가 볼 때 '남자가 부엌 들락거리면 안 된다'라는 식의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남성들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소위 오래된 유교적인 남녀관을 가진 남자들, 가령 며느리가 제삿상도 차리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자연도태에 의해 곧 멸종될 것 같아요.  그런 남자와 결혼하려는 여성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거든요.

    네, 그러니 더더욱 남편만큼 일해서 남편만큼 벌 생각을 한 다음에야 가사 부담을 공동으로 하잔 소릴 해야겠지요. 제가 볼 때 "힘든 건 남자가, 돈도 남자가"라는 식의 꼴펨 교육을 받고 자란 여성들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미 다 도태돼서 나시카 님 동년배들한테나 좀 남아있을, 결혼 시장에선 거의 보이지도 않아 멸종 단계에 이른 남존여비 젯상타령 남성들을 향해 쉐도 복싱하기 전에, 그 세대에 속해 그 꿀 실컷 빨아대고 부채의식+마초이즘+내 꿀단지는 포기하기 싫음의 최악의 콤보를 자랑하며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2030 남자들에게 성차별주의와 죄의식을 주입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이기적인 좌파 꼰대들의 대두를 걱정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변한 거 모르고 여전히 자기가 차세대 진보의 대표주자인 줄 아는 분들이야말로 꼴페 여자들과 더불어 결혼을 포함한 사회적 기피 대상이고 멸종되어야 할 범사회적 암덩어리들이니까요.

  11. 나삼 2019.06.09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코끼리 그래프를 극복하려는게 트럼프의 경제정책이죠. 세계에 나가 있는 공장을 미국으로 다시 모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문재인의 기업 올가매기식 정책으로 대기업은 웅크리려 하고 잇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전환하기를 꺼려 합니다. 기업뿐만 아닙니다. 힘든 경기와 인건비인상 같은 경제활동의 어려움으로 인해 중소상공인조차 해외로의 진출을 꿈꾸고 잇습니다.
    프랑스가 겪엇던 탈출현상이 문정권이래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코끼리 그래프의 실상을 알고 있엇으면 그걸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이민정책 . 국내 노동환경의 유연성 . 민간경제의 규제완화를 통해 극복해야합니다. 허나 문정권은 그 잘난 사회주의 이상을 위해 모든것을 반대로 하고 지금과같은 암울한 시대를 만들어 냇습니다.

    나시카님. 님이 주장하시느 것들은 이미 현실을 통해 결론이 났습니다. 구 시대적인 맑시즘이 통할 세상이 아닙니다. 몇달만에 와보았는데 문정권의 실수를 통해 아직 깨달은것이 없으셔서 아쉽기만 합니다.

  12. 통통따 2019.06.09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땅에 악마의 사회주의를 박멸시켜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니까 먼저 우리 대구 지역부터
    사회주의의 결실인 의료보험제도와
    노인연금 철폐 운동에 앞장서겠습니다.

    by 정원 a.k.a. 알타리무 a.k.a. 나삼

    • 통통따 2019.06.09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 사회주의따윈 없는 진정한 [자본주의]의 세계로 한국의 모든 기업이 떠나간다... 자본주의 정신으로 재벌에 우대해주는 해외 국가들이 반자본주의적인 한국을 대신할것이다....

      그결과

      마다가스카르->혁명나서 한국 재벌 쫓겨남
      중국->그냥 쫓겨남
      미국->조단위 벌금
      유럽->조단위 과징금

      이 지구상에 진정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는 곳이 없다니 슬프도다ㅠㅠ

    • Eugen 2019.06.14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르시나본데 국민연금,의료보험,상해보험같은 사회보장제도의 원조가 비스마르크입니다. 원래 보수의 것이에요

  13. 유동닉 2019.06.10 1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시장에서 도태되는 건 있지도 않은 유교충 남성이 아니라, 동일노동은 하지도 않으면서 동일임금 거리고 의무는 절대 똑같이 지지 않으면서 권리는 동등을 넘어 보다 많이 챙겨먹으려는 꼴펨 여성이겠죠. 결혼 정보 사이트나 중매 업체 가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가입해 있는 세상에 뭔 도태남 타령이신가요? 말씀하시는 도태남 끝물로 그 도태남들이 빤 꿀은 있는대로 빨아 드신 세대에 속한 분이 이러시니 더더욱 설득력 제로네요. 이런 소리 하시면서 배운 척 하실 시간에, 님과 동 세대 남자들에게 별 거 다 뺏기셨을 동년배 아내 분께나 잘 해주시고, 앞으로 회사에서 승진하실 일 있으시면 무조건 여성에게 자리 양보하시고 급여도 일정 부분 반납해 여성 동기들한테 기부나 하세요.

  14. Eugen 2019.06.14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쬐금 정치적인데 문재인 대통령한테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냐고 인터뷰를 했더니 대답이 예전부터 부인한테 집안일 다시키고 애 봐달라고 해도 무시해서 부인한테 미안헤서 그렇다고했거든요. 이거듣고 전 문재인 대통령이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미안하면 집안일이나 도울것이지 왜 페미정책이나 만들어서 20대 남성을 고통받게 만드냐는거죠. 20~30대 여성표때문에 그런건가요? 증오와 대립을 조장하면서? 정치인이 통합과 화합이 아니라 분쟁을 만드는게 참...586 운동권 늙어서 은퇴하면 두고봅시다.

2019.06.03 06:30



화이팅이 그의 앞에 나타났는데 그의 주홍색 코트가 더럽혀지고 손목에는 검을 대롱대롱 매단 채였다.  그의 눈빛은 충혈되고 흐릿했다.

"저들을 뒤로 물리게."  부시는 전투의 광기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이성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화이팅은 부시를 알아보고 이 명령을 이해하는데 1~2초 걸리는 모양이었다.

"예, 부관님."  그가 말했다.

빌딩 너머를 보니 또 다른 수병들 한무리가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혼블로워의 공격조가 반대쪽 성벽에서 출입구를 찾은 모양이었다.  부시는 주변을 돌아보고는 마침 근처에 나타난 그의 부하들 한무리를 불렀다.

"나를 따라와."  그는 말하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니 성곽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는 사람 하나가 죽어넘어져 있었지만 부시는 힐끗 쳐다보기만 했을 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성곽 위쪽에는 포안을 통해 밖을 겨누고 있는 6문의 거포로 이루어진 주 포대가 있었다.   그 너머는 하늘이었는데, 온통 피처럼 붉은 색의 새벽놀로 물들어 있었다.  하늘의 최고점을 향해 지상에서 약 1/3 정도 지점까지는 색상이 굉장했는데, 부시가 그걸 보느라 잠깐 멈춘 사이에 수평선 위에 낀 구름 사이로 태양의 황금빛 광채가 비쳤고, 붉은 놀은 눈에 띄게 희미해졌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과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게 공격에 걸린 시간을 재는 척도였다.  가장 이른 시간의 새벽에서 열대의 일출까지는 불과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부시는 멈춰서서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체감상으로는 이미 늦은 오후가 되었을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포좌로부터는 전체 만의 전경이 훤히 보였다.  저 반대편 해안이 보였고, 리나운 호가 좌초되었던 여울과(그게 고작 어제 일이었던가 ?), 저쪽의 언덕으로 급하게 이어지는 구릉지대가 보였다.  그 지점의 기슭 부분에는 주변 지형과 날카롭게 구분된 또다른 포대의 모습이 보였다.  왼쪽으로는 반도의 높이가 툭 낮아져 일련의 바위투성이 돌출부가 푸른 바다 속으로 펼친 손가락처럼 뻗어 있었다.  그 위치를 더 지나 돌면 스캇츠맨 만의 사파이어 색깔의 잔잔한 수면이 보였고, 거기에 선미 돛대의 중간 돛(mizen topsail)에 밝은 햇빛을 받고 있는 리나운 호가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전열함이 마치 예쁜 장난감처럼 보였다.  부시는 그 배를 보고는 잠깐 숨이 멎었다.  그건 그 광경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안도감 때문이었다.  전열함이 눈에 보이니 그에 연관된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전투로 흐려졌던 그의 이성이 밀물처럼 되돌아왔다.  이제 해야 할 일이 천가지는 되었던 것이다.  

 

 

 

(선수 돛대를 foremast, 중간 돛대를 mainmast, 선미 돛대를 mizen mast 라고 합니다.  각 돛대마다 돛을 위, 중간, 아래 해서 3폭을 달지요.  그러나 topsail이라는 것이 꼭대기 돛이 아니라 중간 돛입니다.  맨 꼭대기의 돛은 topgallant sail, 혹은 줄여서 t'gallant sail이라고 부릅니다.  복잡하더라고요.)

 



혼블로워가 다른 경사로를 통해 올라왔다.  헝클어진 군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마치 허수아비처럼 보였다.  그도 부시처럼 한 손에는 군도를, 다른 손에는 권총을 쥐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웰라드가 그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수병용 군도를 들고 있었는데, 그의 바로 뒤에는 한 20명 정도의 수병들이 아직 군기가 빠지지 않은 모습으로 총검까지 착검한 머스켓 소총을 쥐고 전투 태세로 따르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부관님." 혼블로워가 말했다.  비록 찌그러졌지만 군모가 아직 그의 머리에 붙어 있어서 혼블로워는 거기에 손을 대고 경례를 하려 했는데, 다음 순간 손에 아직 칼을 쥔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산신히 멈췄다.  

"좋은 아침일세." 부시는 자동적으로 대꾸했다.

"축하드립니다, 부관님."  혼블로워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그의 입에 걸린 미소는 마치 시체가 씩 웃는 모습 같았다.  그의 입술과 턱에는 수염이 삐죽삐죽 자라 있었다.

"고맙네."  부시가 말했다.

혼블로워는 권총을 그의 벨트에 쑤셔넣고 군도를 칼집에 넣었다.

"저쪽 전부는 제가 장악했습니다, 부관님."  그는 뒤쪽으로 손짓을 하며 계속 말했다.  "계속 진행할까요 ?"

"그래, 그러게, 미스터 혼블로워."

"예, 부관님."

이번에는 혼블로워가 모자에 손을 대고 경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부사관과 수병들을 포대에 배치하는 명령을 재빨리 내렸다.

"보시다시피, 부관님."  혼블로워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몇 놈은 도망쳤습니다."

부시는 만 아래로 이르는 가파른 언덕사면을 내려다보았는데, 몇 명의 사람들이 거기 보였다.

"우리를 귀찮게 할 정도는 아니군."  그는 말했다.  이제서야 그의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예, 부관님.  주 성문에 40명의 포로를 잡아 놓고 경비를 붙여 놓았습니다.  화이팅이 나머지를 잡아들이고 있더군요.  허락하시면 이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부관님."

"그러게, 미스터 혼블로워."

공격의 광기 속에서도 최소한 누군가는 맑은 머리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시는 저쪽 경사로로 내려갔다.  부사관 하나와 수병 두 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그들은 차렷 자세를 취했다.

"뭘 하고 있나 ?"  그가 물었다.

"이거 화약고임다, 부관님." (This yere's the magazine, zur,)  그 부사관, 즉 선수 돛대 망루의 조장인 암브로즈가 대답했다.  그는 벌써 몇 년째 해군에서 복무하면서도 어릴 때 익힌 데본(Devon) 지방의 거친 사투리를 여전히 쓰고 있었다.  "저흰 그걸 지키고 있슴다."

"미스터 혼블로워의 명령인가 ?"

"녜, 부관님." (Iss, zur.)

주 성문 근처에 한무리의 낙담한 포로들이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혼블로워는 이미 그들에 대해 보고했었다.  하지만 그가 보고하지 않은 경비들도 있었다.  우물에 보초 하나가 있었고, 성문에도 경비들이 서있었다.  공격조에서 가장 믿을 만한 부사관인 울튼이 성문 옆 긴 목조 건물에 6명의 수병들을 데리고 경비를 서고 있었다.

"자네 임무는 뭔가 ?" 부시가 물었다.

"식량 창고를 지키고 있습니다, 부관님.  술도 여기 있습니다."

"알겠네."

만약 공격에 참여했던 미친 놈들, 가령 부시에게 총검을 찔러댔던 그 해병 같은 놈들이 술을 손에 넣는다면 정말 통제불능의 상황이 될 것이었다.

부시의 공격조에서 그의 부하로 있는 사관생도인 애벗이 서둘러 뛰어왔다.

"자넨 대체 뭘하고 있었던 건가 ?"  부시가 신경질적으로 캐물었다.  "공격이 시작된 이후로 전혀 보이질 않더군."

"죄송합니다, 부관님."  애벗이 사과했다.  물론 그는 공격의 광기 속에 휩쓸렸겠지만 그건 변명이 될 수 없었다.  방금 어린 웰러드가 혼블로워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본 뒤에는 특히 그랬다.

"전열함에 신호를 보낼 준비를 하게."  부시가 명령했다.  "자넨 벌써 5분 전에 준비를 마쳤어야 했어.  대포 3문에서 대포알을 빼내게.  깃발을 가지고 있던게 누구였지 ?  찾아내서 스페인 깃발 위에 올리게.  빨리 서둘러, 빌어먹을."

승리는 달콤할지 몰라도 이제 반응이 가라앉자 부시의 성질머리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부시는 잠 한숨 못잤고 아침도 먹지 못했다.  비록 요새를 점령한지 고작 10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그 10분 동안 멍하니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양심을 찔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그가 해놓았어야 하는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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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기까지 해서 Lieutenant Hornblower 중에서 제가 번역하려고 했던 부분이 다 끝났습니다.  처음엔 뭔가 다른 일로 싱숭생숭하여 도저히 나폴레옹 연재를 할 심적 상태가 아니라서 일단 이걸로 때우자 라고 시작했는데, 번역하면서 저도 잘 이해 못했던 부분, 가령 nipper라든가 messenger라든가 하는 해양 용어를 알게 된 건 저로서도 즐거웠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다 이해들 하시겠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해군에서의 모험담과 전투 장면 등에 치중하지 않습니다.  혼블로워의 군대 생활을 보면 여러분들이 조직 생활, 더 나아가 사회 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하셔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정말 대조되는 것이 임시 함장 버클랜드의 우유부단함과 부시의 단순무식함, 그리고 혼블로워의 주도면밀함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다른 나폴레옹 전쟁 소설인 Sharpe 시리즈에서 명쾌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만, 지휘관이란 '어려운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버클랜드는 여러가지 면에서 고구마인데, 특히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결정을 못 내리고 우물쭈물하는 것은 정말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혼블로워는 평상시에 주의깊게 주변 상황을 관찰하며 끊임없이 계산을 하다가, 필요한 순간에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모든 경우에 대해 회사에서든 영업장에서든 혼블로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정말 승승장구할 것 같네요.  그러나 언제나 그렇지만 조직 생활이라는 것이 사람의 유능함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운도 따라야 하고, 인맥도 있어야 하지요.  빽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던 혼블로워도 그 때문에 쓴 맛을 보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으시면, 정말 흥미진진하게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주부터는 다시 나폴레옹 연재를 시작해야 하는데, 솔직히 그동안 읽은 것이 없어서 제대로 연재가 될지는 장담 못드리겟습니다.  일단은 오랜만에 먹을것과 마실것 이야기 한편 쓰려고 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고, 또 여전히 모자란 글이 되겠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읽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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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nhardt100 2019.06.03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초부터 지방 출장이 연달아 잡혀서 지금 고속버스 안에서 댓글 달고 있습니다. 혼블로워 시리즈는 처음 보다시피하는건데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좀 쉬시면서 급한(?) 일부터 먼저 처리하셔도 저같은 독자들은 언제든지 글을 볼 겁니다. 언제까지고 새로운 글 기다리겠습니다. 나시카님

  2. 메뚝 2019.06.03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로 읽었는데도 첨부된 사진과 해설을 읽고 있으니 재미가 2배(?)입니다.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3. 되니츠 2019.06.03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싸움 잘한다고 진급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게 여기서도 드러나네요.

  4. 푸른 2019.06.03 1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도 읽을 글은 주시면 제가 더 고맙지요ㅎㅎㅎ

  5. keiway 2019.06.03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이팅입니다.

  6. 유애경 2019.06.03 1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조직이든 윗사람이 혹은 책임자가 무능하면... 훌륭한 리더를 만나는것도 참 행운인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글 기대할께요.

  7. 이타카 2019.06.03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연재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8. minstorm 2019.06.03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 년동안 눈팅만 하다가 처음 댓글 달아봅니다. 항상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나시카님 화이팅!!!!

  9. 웃자웃어 2019.06.04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 원정이 드디어 시작되는 거군요.

  10. 까까님 2019.06.04 2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실에서는 어려운 결정은 부하가 방향을 잡아줄 때까지 뭉개고 책임도 부하에게 떠미는 것이 리더죠
    그래야 장수한다고 믿는가본데 별로 그렇지도 못하더군요
    그런 임원 팀장들을 보고 얻은 교훈은 어차피 때되면 가는 인생 창피하게 가지 말자, 그리고 갈 때 까지밖에 못하는 일 소신껏 해보자입니다
    발라 모르굴리스

2019.05.30 06:30


저는 FIRE 운동의 추종자입니다.  FIRE라는 것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한마디로 젊었을 때 열심히 벌고 모아서 생계에 급급한 삶에서 탈출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FIRE를 꿈꾸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주로 reddit을 통해서 가끔 읽습니다.  최근에 꽤 인상적인 글을 하나 찾아서, 아래에 간단히 주요 내용만 옮겨 보았습니다.

https://www.reddit.com/r/financialindependence/comments/bsxrat/am_couple_years_away_from_40_time_for_some/

 

 


제목 : 40세까지 2년 남았스.  뒤돌아보며 정리도 좀 하고 조언도 받고 싶네.

TLDR (Too Long, Didn't Read의 준말.  너무 길어서 못 읽는 분들을 위해):  내 20~30대를 돌아보며 든 생각.  얻은 교훈과 저지른 실수.  나보다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나보다 나이든 양반들에게 조언도 받고 싶어.


투자를 더 일찍 시작했었더라면.  난 2011년 이후에야 크게 투자하기 시작했어.  큰 실수였지.  저축은행에서 0.05% 이자 받으며 그냥 앉아있던 내 돈을 마지막 1달러까지 모조리 투자를 해야 했었어.  0.05%라는 낮은 이자가 놀랍다고 ?  그땐 온라인 저축계좌가 없었고 CD(예금증서) 같은 거 이해하지도 못했어.

. 식생활과 건강.  진짜 중요한거야.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야.  설탕, 탄수화물, 고기 같은 거에 탐닉하지마.  니 몸에 맞는 균형잡힌 식단을 먹으라구.  잠도 충분히 자.  난 보통 5~6시간 자지만, 요즘은 7시간은 자려고 노력 중이야.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 중에 니가 좋아하는 것을 습관적으로 하라구. 

20~30대엔 스킬 극대화, 그러니까 평생 써먹을 재주 배우는 데에 집중해야 해.  나도 밤늦게까지 진짜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어.  일하는 동안에도 내 경력과 스킬에 촛점을 맞춰서 일했어.  정당한 보상은 당장 다음달 월급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서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  대신 여행이라든가 사회 생활이라든가 하는 것이 전혀 없었어.  게다가 가족 관계도 나빠졌지.  그래, 이런 그늘 부분은 진짜 심각했고 난 그런 부분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어.  그런데 내 회사 주변에서 보는 신세대 젊은 애들은 그거 진짜진짜 관리 잘 하더라.  걔들은 여행/가족 등 워라밸 균형 맞추는 걸 기가 막히게 잘 해내는데다, 회사측과 연봉협상하는 것도 무자비할 정도로 멋지게 해내더라구.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난 젊은 세대에게 뭐라고 해줄 조언이 없는 것 같아.  

제대로 된 배우자를 고르는데 있어서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라구.  이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말 같아.  절대 "이보다 더 좋은 상대는 못 찾을 것 같아" 라는 웃기지도 않는 마음가짐은 갖지 말라구.  배우자를 고르는 것은 절대 '정착한다'라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 돼.  물론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  금전관리, 가족, 친절함, 속궁합(sexual chemistry - 이거 보이는 것과는 꽤 다른 거라구) 등에 있어서 가치관이 같아야 한다는 점이 훠얼씬 더 중요해.

저점 매수 타이밍을 맞추고 뜰 주식을 고르는 거... 불가능해.  만약 넌 할 줄 안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정식 계약 맺고 내 돈 가져가서 시장 평균치 이상의 수익만 내게 주고 나머지는 다 너 가져도 돼.   못 하겠다고 ?  그럼 닥쳐 (STFU).  내가 말이 좀 심하다고 ?  내 경험이 그래.  난 무지개를 쫓느라고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어.  난 지금은 그냥 인덱스펀드 같은 거에 투자하고 있어.  여전히 주식질을 하느라고 따로 투자금 계정을 가지고는 있는데, 전체 투자금의 5% 이하로 유지하고 있지.  나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라서, '뭔가 해야 한다'라는 충동을 억누르느라고 애쓰고 있어.

. 퇴직연금 수수료 확인해봐.  연 0.15% 이상 수수료를 떼먹히고 있다면 당장 바꿔.  복리로 계산하면 엄청난 손실이야.

. 행복/목적/의미.  이건 목표지점이 아니야.  어떤 성과를 이루더라도 니가 너 자신과 니 인생에 대해 느끼는 기본적인 기분은 바뀌지 않아.  넌 공허감과 의미 상실, 그리고 디지털 호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나쁜 뉴스로부터 받는 피곤함에 대해 너 스스로 헤치고 나아가 너 자신만의 의미와 행복을 창조해야 해.  이 세상이 개똥같고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건 너 뿐만이 아니야.  이 세상에는 지금도 아무 이유도 없이 온갖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구.  이 우주는 너의 야망과 꿈에 대해서는 쥐뿔도 신경 안써 (doesn't give two leptons about : 역주 : lepton이 뭔가 찾아보니 중성미자네요...  보통은 예전 영국 화폐 중 가장 작은 동전에 비유해서 doesn't give two pence about...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걸 더 과장한 표현입니다.  이 양반 배운 양반인 듯).  너만 신경쓴다구.  이 우주가 너에게 말이 되든 안되든 상관하지 말고, 너만의 의미와 목적을 만들어야 해.  (좋은 출발점은 니가 정말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는 거야.)

. 니가 해야할 유일한 '경쟁'은 너 자신과의 경쟁이야.  니가 도착하는 장소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너에게 주어진 자원과 기회로 니가 얼마나 멀리 가느냐야.  난 주변 사람들이 "쟤 성공했네"라며 나를 부러워할 때 반대로 패배감에 쩔어지낸 적도 있어.  난 내가 세상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어.  사람들은 각자 잠재력의 종류가 다르다고 난 생각해.  니 잠재력이 뭔지는 니가 제일 잘 알겠지.  최소한 인생 몇몇 순간에는 나타날거야.  니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그로부터 기쁨을 느끼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여정을 떠나건 잊어버리라구.  심지어 너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너보다 앞섰는지 뒤처졌는지도 중요한게 아니야.  니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거야.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정해준 인생을 살면 넌 기쁨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니가 니 인생을 살면 어떤 인생이 되었을지도 알 수가 없을테니까 말이야.

. 난 14살 이후로 계속 금전적으로 안정된 삶을 추구했어.  근데 그걸 이루고나서 느낀 감정에 대해 정말 깜짝 놀랐어.  처음엔 황홀감도 느꼈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도 느꼈는데, 그러고나서는 정기적으로 뭔가 안 좋은 느낌이 계속 들더라구.  난 내가 꿈꾸던 비싼 차도 가지고 있고, 멋진 와이프와 대출 안 낀 아름다운 주택과, 경제적 독립, 거기에 안정된 직업 등 모든 걸 다 가졌거든.  근데 느끼는 건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같은 거야.  사정이 좋지 않은 식구나 뭐 그런 사람들 보면 마음이 아파.  가끔은 내가 이런 행운을 누릴 자격이 되나 싶기도 하고.  물론 그런 감정은 일시적인 것이고 난 재빨리 내가 즐기는 것으로 관심을 돌리곤 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상황이 저 너머에 실존한다는 걸 항상 느껴.  모든 걸 가진다는 것이 행복은 아니더라구.  행복은 발전에서 오는 거더라.  행복해지려면 항상 뭔가를 향해서 발전을 해나가야 하더라구.  너 자신이 의미를 두는 무언가에 대해서 너 자신을 계속 발전시켜야 해.  그게 금전적인 것이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지적인 면에서든, 육체적인 것이든 말이야.  우울함에 대해 유일하게 효과가 있는 알약은 발전이야.  난 그걸 너어어무 늦게 깨달은 것 같아.

. 글이 너무 기네, 미안해.  주말 아침에 글을 쓰다보니 재미있더라구.  누군가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해.  내 현황은 이래.  외벌이에, 결혼 했고, 아직 아이는 없지만 1년 안에 하나 낳을 계획이야.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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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nob 2019.05.30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 성전에 가까운 현자의 글입니다 ㅎㅎㅎㅎ

  2. 2019.05.30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유애경 2019.05.31 0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강...정신적 으로나 육체적 으로나 정말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근데 설탕,탄수화물,고기등 되도록 양을 줄일려고는 하지만 힘드네요! 어쩜 그렇게 몸에 안좋은 것만 땡기는지...

    항상 잘보고 갑니다.

  4. 까까님 2019.05.31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밑에서 두번째 14살 부터~ 하는 친구 정말 멋지네요
    저친구가 말하는 행복의 근원은 발전이라는 부분...
    이게 꼭 지금 보다 뭔가 더 객관적으로 높은 스탯을 갖게돠는 것... 이라고 이해하는 분도 계실 듯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면 되는 거겠죠
    전 아직 생계를 위한 돈벌이를 벗어나진 못했습니다만 10여년 후 그때가 오면 농부가 되고싶습니다
    땀흘려 일하고 용돈벌이도 하고 베풀기도 하며 소박하게 밥만 먹고 살 자유를 살 수 있디면 직장 같은 건 별로 비싼 대가가 아닌 곳 같네요
    제 fire는 아주 작은 불꽃입니다
    더 큰 부자가 되면 경제젇으로는 더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그 부를 이루는 데 더 많은 인생을 바쳐야 하고 손에 쥔 걸 지키려고 더 피곤할 것 같아서요
    나시카님도 요즘 뭔가 울적한 일이 있으신가본데 얼른 fire 당해도 괜찮을 정도의 fire가 되시길 빕니다

  5. 카를대공 2019.05.31 2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이야기는 여타 성공한 많은 사람들도 하는 이야기이긴 한데 "행복/목적/의미. 이건 목표지점이 아니야. 어떤 성과를 이루더라도 니가 너 자신과 니 인생에 대해 느끼는 기본적인 기분은 바뀌지 않아" <- 요 부분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

  6. 카를대공 2019.05.31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득 든 생각이지만 레딧 많이 하시는거 같은데 종종 이번처럼 좋은 글 번역해서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미국이 우리랑 여러모로 연관이 많은 나라인데 생각해보니 중국/일본쪽 반응은 많이 번역돼도 미국쪽 여론은 쉽게 알 길이 없더군요.

  7. reinhardt100 2019.06.03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FIRE 운동. 저거 저도 관심 있는데 다만 연령은 최대한 늦게 잡는게 맞는것 같더라고요. 개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무엇보다도 향후 자산가치 변동성 혼자서 계산해보니 평균 18년~20년 단위로 화폐가치가 적어도 1/4 정도는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와서요. 개인적으로 FIRE하기 위한 최소 금액은 한화로 960억원 이상, 실질적으로는 미화로 1억불은 되야 정말 안심하겠더군요. 더 있으면 훨씬 좋고요.

    P.S. 위의 금액은 개인적인 주관적 요소가 가득 들어간 계산 결과니 그리 참고 안 하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