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빛 (Splendor in the grass)

잡상 2019. 4. 3. 23:40 Posted by nasica

Splendor in the grass  
by William Wordsworth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한때 그토록 찬란했던 광채도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으리
그 어떤 것으로도 돌이킬 수 없으리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래도 슬퍼하지 않으리
차라리 그 자리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
언제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태초의 연민에서,
인간의 고통에서 피어나는 
위로의 사색에서,
죽음 너머를 바라보는 믿음에서,
마음에 달관을 가져오는 세월에서.

 

 

https://youtu.be/YOmqJn2I8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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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05 2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죽는게 사는거보다 나으면 죽는것도 좋죠 ^^

  2. 꼬구마 2019.04.07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싸 2등
    대략 순위권
    가문의 영광

  3. ian 2019.04.07 2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어떻게 제가 3위에? 아마 별다른 설명이 없으셔서 (저를 포함한) 구독자들이 잘 이해를 못하신듯...설명좀 해주세요.



고대 그리스의 고전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는 당시 병사들이 어떤 것을 먹고 마셨는지에 대한 묘사가 매우 상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서사시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BC 3~4세기의 페르시아 전쟁이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까마득한 옛날인 BC 11세기 정도의 청동기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즉 도리아인들의 침공 이후 형성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로 양분되는 그리스 시대보다 훨씬 이전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등장 인물들의 갑옷과 투구, 창 등이 모두 청동으로 되어 있지요.  다만 철기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까지는 아니고, 철이 등장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직 철기시대 초창기라서 당시의 철(iron)에는 탄소 함량이 너무 많아 단단하기는 하지만 깨지기 쉬운 무쇠(cast iron)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철은 무기가 아니라 주로 농기구나 도끼, 사슬 등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무기로도 쓰이기는 했는데, 정교한 검이나 창날이 아니라 큼지막한 철퇴 같은 것으로 썼나 봅니다.  가령 파트로클루스의 장례식에서 여흥으로 벌어진 스포츠 경기에서, 아킬레스가 각 경기의 우승자를 위해 내놓은 상품 중에는 다음과 같이 무쇠덩어리가 나옵니다.  


다음으로 아킬레스는 에에티온(Eetion)이 던지던 커다란 쇳덩어리를 상품으로 내걸었다.  아킬레스는 에에티온을 죽인 뒤 그의 다른 소지품들과 함께 그 쇳덩어리를 빼앗아 배에 실어놓았었다.  이제 그는 다음 경기를 발표하며 참가를 유도했다.  "이 경기의 승자는 5년 간 충분히 쓸 만한 양의 무쇠를 갖게 될 것이오.  이 무쇠 덩어리만 있으면 그의 농장이 아주 외딴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쇠를 구하기 위해 쟁기꾼이나 목동을 마을로 보낼 필요가 없을 것이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 나오는 병사들의 식사는 주로 육류입니다.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나 굴을 따는 것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생선 등의 해산물을 전혀 먹지 않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확실히 일리아드 시대의 그리스 사람들은 생선을 즐겨먹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건들의 배경 무대가 모두 바닷가인데도 불구하고, 장군들과 병사들의 식사 장면에 생선이 나오는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거의 언제나 돼지나 소를 잡아 그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직화구이로 구워먹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그들은 넓적다리 뼈를 잘라내어 두 겹의 비계로 감싸고는 그 위에 날고기를 몇조각 얹었다.  크리세스가 그것들을 장작불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포도주를 부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근처에는 손에 끝이 5개의 가지로 갈라진 꼬챙이를 든 젊은이들이 서있었다.  넓적다리 뼈가 다 타자 그들은 먼저 안쪽 고기를 맛보고는 나머지를 작게 잘라 꼬챙이에 꿰어 불에 잘 익힌 후 꼬챙이에서 빼냈다.  일을 마치고 잔치가 준비되자, 그들은 그 고기를 먹었고 모두가 배불리 먹도록 충분한 양을 받았다."






원래 적은 고기를 여럿이 나눠먹기 위해서는 주로 고기를 삶아 그 국물까지 먹어야 합니다.  일리아드 내에서 상품으로 주어지는 것들 중에는 큰 솥도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를 삶아먹는 요리도 분명히 했을 것 같기는 한데, 실제로 이렇게 병사들이 식사할 때 솥을 이용하는 국물 요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오지 않는다고 당시 사람들이 그런 국물 요리를 전혀 먹지 않았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빵이나 죽 등 곡물로 만든 음식에 대해서도 그다지 많은 묘사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장에서 아킬레스에게 살해될 위험에 놓인 트로이 측의 리카온이 아킬레스의 무릎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에서, '내가 포로로 잡힌 뒤 처음 빵을 쪼갠 곳이 바로 당신의 장막 안에서였다' 라고 호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식사를 하는 것을 '빵을 쪼갠다'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당연히 당시 병사들의 주식은 곡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이한 것은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에서 고기를 구운 뒤 그 위에 보릿가루를 뿌려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입맛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지만 별다른 양념이나 향신료가 없던 시절에는 그런 곡식가루도 고기 맛을 내는 조미료 같은 것으로 썼던 모양입니다.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딧세이만을 읽은 분들께서는 고전적인 그리스 시대의 생활상이나 전쟁의 양상에 대해 매우 그릇된 인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앞부분에서도 자세히 언급이 되어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헤로도투스 시대에서조차도, 일리아드를 읽으면서 '우리 조상들은 우리와는 정말 다르게 살았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사실 알고보면 헤로도투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호머에 나오는 아킬레스 등의 인물들의 직계 후손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지요.   아무튼 여기서는 음식 부분에 대해서만 말하도록 하지요.


먼저, 그리스는 먹을 것 부분에 있어서는 그다지 풍요로운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애초부터 지형이 대규모의 밀 농사에 적합하지도 않았고, 바다에서 엄청난 어획량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흔히 그리스는 해안선이 길기 때문에 수산물이 적지는 않았지만, 사실 어획량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바다의 밀"로 알려졌던 중세의 북해산 청어에 비하면 무척 보잘 것 없는 양의 생선만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래서, 그나마 좀 넓은 평야지대이던 펠로폰네소스 반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애초부터 식량을 자급자족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주로 흑해연안의 비옥한 농업지대로부터의 수입 곡물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먹는 것이 신통치 않았는데, 주로 보리로 만든 마자(maza)라는 이름의, 부풀리지 않은 빵같은 것을 먹었습니다. 이는 빵만드는 방법이 아직 그리스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빵을 만들기에 적합한 밀가루가 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밀가루로 만든 이스트로 부풀린 흰빵은 축제 때나 특식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마자는 대개 보리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정확하게 마자는 빵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빵은 가루를 반죽하여 굽는 것인데, 마자는 반대로 보리가루를 불에 볶은 뒤 물로 반죽하여 뭉친 덩어리였거든요.  이건 조금 오래 놓아두면 딱딱하게 굳어 버렸기 때문에, 식사를 할 때는 이걸 포도주나 물 같은 것에 적셔서 거의 죽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우유를 부어 먹는 일종의 시리얼 같은 거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지요 ?   그러나 이 맛없는 보리빵 마자도 그리스인들은 고맙게 먹어야 했습니다.  맛은 없어도 배를 채울 수 있었거든요.  오죽했으면 페르시아 전쟁 때 플라타에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군 진영에서 그들의 산해진미를 보고 이렇게 한탄했겠습니까 ?


'이런 욕심장이들을 봤나 ?  이런 산해진미를 먹는 놈들이 우리의 보리빵을 빼앗겠다고 쳐들어 오다니 !'




(보기만 해도 식욕이 뚝 떨어지는 보리빵 마자(maza)입니다.)




육류는 정말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육류라는 것은 정말 귀한 것으로, 일반 서민부터 부유층까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었고, 축제 때에나 한번 먹어볼까 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전에 인기를 끌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갈리아 인들은 멧돼지 다리를 뜯는 동안 로마인들은 밀가루로 만든 빵과 죽을 선호했다고 씌여있었는데, 정확하게는 로마인들이 고기를 싫어했다기 보다는 없어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대신 생선 종류는 그래도 좀 나은 편으로, 일상적으로 소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맛있는 것, 고기'라고 하면 생선을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 전통은 로마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져서, 로마인들도 육류는 별로 맛보지 못했고, 생선류를 대신 즐겨 먹었습니다. 케사르가 갈리아 원정의 성공을 축하하며 로마 시민들에게 베푼 연회에서 제공된 음식도 주로 빵과 뱀장어 구이였다고 합니다.




(사진 속의 설명대로 입니다.  식사 때마다 소와 양을 호쾌하게 잡아먹던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의 식사 장면과는 달리, 실제 그리스인들에게 고기라는 것은 정말 맛보기 어려운 진미였고, 대개는 물고기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어떤 사회이든 주어진 자연 환경에 적응하며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스의 경우가 딱 그랬습니다.  그리스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좋든 싫든 무역을 해서 부족한 곡물을 해외에서 사들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곡물 값을 치를 만한 것이 뭔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민들이 쫄쫄 굶기에 딱 좋은 지형이었지만 그래도 잘 되는 농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올리브와 포도였습니다.  잘 말리면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한 보리와는 달리 올리브와 포도는 보리보다 맛은 있을지 몰라도 즙이 많고 물러서 장기 보존이 곤란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것들로 배를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그리스인들은 올리브에서 기름을 짜내고 포도즙을 발효시켜 포도주를 만들어 수출 상품으로 가공했습니다.  이런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 항아리를 실은 무역선이 부지런히 흑해 연안 지대와 시케리아(지금의 시칠리아), 이집트 등을 오가며 소중한 곡물을 수입해왔습니다.  특히 이미 꽤 많은 그리스 식민지가 형성되어 있던 흑해 북쪽 해안지대는 (지금도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농토는 유명합니다만) 지중해 세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서, 이곳과 교역하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헬레스폰트 해협(지금의 다다넬스 해협)은 전체 그리스 도시국가들, 특히 아테네의 밥줄을 쥔 지역으로서 이 지역의 패권을 둘러싸고 많은 전쟁이 벌어질 운명이었습니다.  현대의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못지 않은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곳이었지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주요 경제 활동인 올리브 착유와 포도주 만드는 작업입니다.  'How to survive' 시리즈 그림책을 찍은 거에요.)



(오늘날 우크라이나 땅인... 아, 우크라이나 땅이라고 하면 안되겠구나...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도시들입니다.  일찍부터 그리스인들은 먹고 살기 어려운 그리스 본토를 벗어나 지중해 곳곳에 식민도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주변 원주민들을 정복했다든가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대개 주변 원주민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습니다.)




지금처럼 비료나 농기계가 없던 시절, 당연히 곡물 생산량은 적었고 가격은 비쌌습니다.  더군다나 증기기관은 커녕 갈레온선도 없던 시절 먼 흑해에서 실어오는 곡물은 더욱 비쌌습니다.  그로 인해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는 곡물 가격의 안정을 위해 많은 규제를 두었습니다.  아테네와 그 주변 지역에서는 곡물 수출이 절대 금지되었습니다.  또 절대 다량의 곡물이 수입품이니만큼 일부 곡물만 사재기를 하거나 입항을 지연시키기만 해도 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상인들에게는 그게 자유시장경제에 따라 아테네에 부를 가져올 '투자'일 수 있었지만 아테네 민회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곡물은 국가가 사들여 공공 곡물 창고에 보관했으며, 또 한번에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곡물은 '50명이 나를 수 있는 분량'으로 엄격하게 제한되었고, 이를 어기는 사람은 사형에 처했습니다.  또 이렇게 사들인 곡물을 사적으로 거래하는 것도 엄격하게 제한하여, 어느 누구라도 곡물을 매입한 가격보다 1오볼 이상의 차익을 남기고 되팔수 없도록 했습니다.  당시 가난하고 재주없는 사람들이나 하던 3단 노선의 노젓는 사람이 받는 하루 일당이 2오볼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어느 누구도 곡물 거래로 큰 돈을 벌 수 없게 만들겠다는 '곡물 공개념' 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마 이런 규제가 없었다면 아테네의 많은 시민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을 것이고, 아테네는 지중해의 패권은 커녕 생존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주요 교역로입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흑토는 그때도 유명했는지, 흑해 북부 해안에서 나는 곡물이 그리스를 먹여 살렸습니다.)




특이할 만한 점으로, 그리스인들은 포도주에 항상 물을 타서 마셨습니다.  이렇게 포도주에 물을 타마시는 풍습은 특이한 것은 아니고, 중세에도 이렇게 물을 탄 포도주를 많이 마셨습니다.  심지어 나폴레옹도 샹베르텡 와인에 물을 타서 마셨거든요.  물과 포도주의 비율은 사람마다 틀렸지만 그리스 당시엔 대략 50:50의 비율이었습니다.  어떤 프랑스 학자는 그리스의 포도주는 진득진득할 정도로 진했기 때문에 물로 희석시켜 마셨다고 하지만, 그건 프랑스인들의 포도주에 대한 집착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야기같고, 실제로는 아껴 마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손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제공할 때, 포도주에 물을 얼마나 탈 것인가는 손님 취향에 따라 각자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정했습니다.  그때 포도주에 물을 너무 많이 타면, 손님들은 주인이 너무 인색하다고 비웃곤 했습니다.  또 그리스인들이 물로 희석한 포도주를 마시는 이유 중 하나는 취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흔히 술을 취하려고 마신다고 하지만, 원래 술에 취하는 것은 매우 볼썽 사나운 일이고 절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추태입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홍차나 커피, 코카콜라 등 다른 음료가 없었으니 포도주를 자주 마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포도주 원액 100%를 그대로 마시면 취하는 것도 피할 수 없고 또 건강에도 해로왔습니다.  실제로 스파르타의 어떤 왕은 스키티아인들과 교류하다가 포도주를 물로 희석하지 않고 그대로 마시는 풍습을 배워 그렇게 포도주 원액을 그대로 마시곤 했는데, 결국 미쳐버렸다고 합니다. 




(그리스인들의 향연은 저렇게 모두 비스듬히 누워서 노예들이 따라주는 와인을 마시며 주로 수다를 떠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리스식 향연을 συμπόσιον라고 하는데, 이는 '함께 마신다'라는 뜻으로서 현대 영어에서는 심포지움(symposium)이라고 합니다.)





(저 손가락에 걸고 돌리고 있는 듯한 접시는 kylix라고 하는데, 납작하고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포도주를 마신 뒤, 저 손잡이에 손가락을 넣고 빙빙 돌리다가 그 원심력을 이용하여 잔에 약간 남은 포도주 방울을 뿌려 목표물을 맞추는 것이 향연에서의 흔한 게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항아리에 그려진 그리스인들의 향연 모습입니다.  손님들이 손가락에 납작한 술잔 kylix의 손잡이를 걸고 빙빙 돌리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병사들은 무엇을 먹고 마셨을까요 ?  가장 구체적인 묘사는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Anabasis)에 나옵니다. 아나바시스는 1만 명에 달하는 그리스 용병들이 페르시아 키루스 왕자에게 고용되어 키루스의 형이자 페르시아의 왕인 아르타크세륵세스에 대한 반란에 참전했다 쿠낙사(Cunaxa) 전투에서 패배한 뒤 오늘날 이라크 중심부에서 흑해 연안으로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어렵게 어렵게 그리스 접경 지역까지 왔을 때, 당장 먹을 식량이 부족해졌습니다.  여태까지는 어차피 적대 지역이랍시고 약탈로 먹을 것을 구하며 뚫고 왔는데, 이제 페르시아 제국을 빠져 나오니 예전처럼 마구 약탈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용병 중의 한 명이 스스로를 뛰어난 전술가로서 장군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하며, 전체 용병단에 대한 지휘권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병사들은 당장 먹을 것을 마련해준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이 '지휘관 취준생'은 정말 먹을 것을 구해오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식량을 어깨에 짊어진 짐꾼들을 데리고 돌아옵니다.  그때 이 '지휘관 취준생'이 마련해온 식량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무명이 보리가루를, 스무명이 포도주를, 세명이 올리브를, 한명은 마늘, 나머지 한명은 양파를 각기 들 수 있는 만큼씩 들고 왔다'




(흔히 키루스의 1만명이라고 불리던 그리스인 용병단의 진격 및 후퇴로입니다.  이들이 도착한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도시 트라페주스(Trepezus)는 오늘날의 터키 트라브존(Trabzon)으로서,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 가끔 등장하는 터키 축구 클럽 트라브존스(Trabzonspor)의 홈 도시입니다.)




뭔가 상당히 빈약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  이 '지휘관 취준생'이 가지고 온 식량은 약 8~9천에 달했던 이 용병단 병사들에게는 1일치 식량도 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지휘관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그 양이 아니고, 목록입니다. 이 병사들은 행군 중에 빵을 구울 화덕을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므로, 이 보리가루로 마자(maza)라는 부풀리지 않은 빵을 만들어 먹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양념으로 올리브와 마늘과 양파를 넣었겠지요.  현대적인 식단에서 보자면 채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금방 느낄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 사람들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19세기까지도 채소는 별로 먹지 않았답니다.  채소는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하는 가난한 사람들만 먹었으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채소를 싫어했고 건강에도 나쁘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별로 많이 재배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로 지방과 전분 위주의 식사를 했던 것입니다.  로마군의 식량 목록을 보더라도, 주로 밀과 콩, 포도주, 그리고 양념으로 양파와 식초 이야기만 나오고, 채소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나폴레옹 시대는 물론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그대로 이어져 병사들은 신선한 채소를 거의 보급받지 못했습니다.  신선한 채소는 병사들이 알아서 '구해서' 먹는 것이지 군대에서 보급하는 것이 아니었지요.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는 당시 병사들의 특별한 식단이 나옵니다.  일종의 해군용 전투 식량이지요.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아테네가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에서 이탈하려는 미틸레네(Mytilene) 시를 아테네 함대가 무력으로 점령한 뒤, 그 함대 지휘관은 아테네에 미틸레네 시민들에 대해 어떤 처분을 내릴 것인지 묻기 위해 전령선으로 삼단노선(trireme) 한척을 보냅니다.  이 전문을 받은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 국가답게 민회에서 미틸레네 주민들의 우명을 결정했는데, 비정한 아테네 시민들은 미틸레네의 남자 시민들을 모조리 처형해버리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아버리라는 명령을 가결한 뒤 현장으로 전령선을 돌려 보냅니다.  그러나 바로 직후, 그건 너무 심한 결정이었다는 후회가 뒤늦게나마 몰려온 시민들은, 다시 민회를 열어 앞서 내린 명령을 취소한다는 전령선을 새로 보내기로 합니다.  이 두번째 전령선이 도착이 늦으면 미틸레네 시민들은 모조리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아테네 민회에서는 이 뒤쫓아가는 두번째 전령선에게 특별 보너스까지 걸고 쾌속으로 항해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레스보스 섬에 위치한 미틸레네 시와 아테네와의 거리는 345km로서,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도 최소 48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당시 그리스의 삼단노선은 좁고 가벼운 선체에 노수까지 포함하여 너무 많은 사람이 타는 구조라서 24시간 항해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두어번씩 반드시 근처 해안가에 배를 끌어올려놓고 모닥불을 피워 밥도 지어 먹고 잠도 잤지요.  그래서 항상 해안가에 붙어서 항해했으며 먼 바다로는 어지간해서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텔레네로 향한 두번째 삼단노선은 비상 상황에 따라 식사 시간은 물론 밤에도 배를 해안에 대지 않고 교대로 노를 저었습니다.  또 첫번째 삼단노선의 선원들도 자신들이 들고 가는 잔인한 명령서가 꺼림직하여 별로 열성적인 항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히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기 전에 두번째 삼단노선이 미틸레네에 도착했고, 미틸레네는 몰살의 참극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잠은 그렇다치고, 두번째 삼단노선의 선원들은 어떤 식사를 했을까요 ?  이때 선원들은 배 위에서 보리가루와 올리브유, 포도주를 반죽한 것을 먹으며 노를 저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미숫가루 또는 생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  수천 명의 사람 목숨을 구한 매우 거룩한 식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ource :

Iliad by Homeros (Penguin books)

Anabasis by Xenophon (Penguin books)

How would you survive as an ancient Greek ?

빵의 역사 (하인리히 야콥, 우물이 있는 집)

먹거리의 역사 (마귈론 투생-사마, 까치글방)

https://passtheflamingo.com/2017/05/24/ancient-recipe-maza-ancient-greek-ca-2nd-millennium-bce/

https://en.wikipedia.org/wiki/Olbia_(archaeological_site)

http://gluedideas.com/content-collection/cyclopedia-of-knowledge/Ancient-Corn-Trade.html

https://en.wikipedia.org/wiki/Kylix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full/10.1111/1095-9270.1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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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안의댕댕이 2019.01.21 0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흑해 연안이 저 시절부터 비옥한 농토로 기능하고 있었다니 놀랍네요. 그런데 저 식민도시들은 정복지라기보다는 토착민족과의 거래중개소 같은 개념인가요?

    • reinhardt100 2019.01.22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식민지역에 따라 비중이 달랐습니다. 흑해 연안의 남부, 시칠리아 같은 지역은 원주민들의 세력이 약했기 때문에 원주민을 예속화시킨 후 자신들이 포리스의 상층부가 되어 모 폴리스 및 다른 폴리스와유대 관계를 가집니다. 반대로 스키타이가 버티고 있는 흑해 연안 북부, 남부 이탈리아, 남프랑스, 피레네 이북의 이베리아, 이집트 같은 지역에서는 함부로 정복질하려다가 도시가 골로 갈 뻔한 적도 있죠. 대표적으로 타란토인데 B.C 5세기 중엽 남부 이탈리아 원주민들과 대규모 전면전을 벌였다가 성인 남성만 1만명 이상이 포로가 된 후 참수되는 사태까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델로스 동맹이 성장할 수 있게 된 배경 중 하나가 모 폴리스와 식민 폴리스간의 종속관계를 끊어주는 역할도 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흑해 연안의 폴리스들이 아테네라는 거대한 군사적 우산을 바탕으로 하는 아테네 경제권에 편입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자립을 하게 되었고 이 덕분에 모폴리스와의 관계도 상당히 대등해지다보니 델로스 동맹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2. 뱀장수 2019.01.21 0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포스팅 감사히 읽었습니다^^

  3. ㅇㅇ 2019.01.21 0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마인들도 누워서 먹었다는데 그리스문화에서 배웠나보군요 저래 마시고 먹다간 사레걸리고 체할것 같은데 말이죠

  4. 다니엘의 생활 2019.01.21 1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롭네요 ㅎㅎ 전문적이고 재미있는 포스팅 감사합니다!

  5. 유애경 2019.01.21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보리빵 마자는 정말 보기만 해도 식욕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네요!

  6. Spitfire 2019.01.21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해에서 수입되는 밀이 그리스의 생명줄이다보니 다르다넬스 해협 입구에서 그리스 선박에 깽판을 치던 트로이가 침공을 받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호메로스가 그냥 사실을 기술하는 역사가였다면 그리스가 굶어죽을까봐 목숨 걸고 트로이로 쳐들어갔다고 했을텐데, 다행이 시인이라서 히어로물의 플롯을 아는지라 원정의 명분을 근사하게 각색을 해서 해서 일리아드가 명작으로 남게 되었지요. ㅎㅎ


    • reinhardt100 2019.01.22 2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트로이 전쟁이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특히, 인구 과잉에 시달리던 미케네 문명권 국가들에게 트로이등의 소아시아로의 세력 확장은 매력적 아니 필수일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7. 까까님 2019.01.21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마 시대에는 이집트가 곡창 역할을 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고대 그리스는 흑해 북안이 곡창이었군요
    지중해 종단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보면 시리아 쪽으로 돌아서 이집트 가는 것 보다 흑해가 더 가까웠던 때문일까요?
    위에 언급하신 구운 고기에 보릿가루를 뿌려 먹었다는 얘기는 요즘도 비슷한 방법으로 먹는 것 같습니다
    삼겹살집 중에 보면 콩가루를 찍어먹게 해주는 집이 있잖습니까?
    잘잘 흐르는 기름에 콩가루 찍어서 침귀름장에 찍어 먹음 캬캬~
    고대 그리스에서는 보릿가루 찍어서 올리브유+소금장에 찍어먹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

    • reinhardt100 2019.01.22 2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집트에도 그리스 폴리스가 있긴 했습니다. 아시리아를 대상으로 독립전쟁을 하던 제26왕조가 그리스인의 도움을 받은 대가로 나일강 삼각주 일부에 조차할 수 있는 토지를 줍니다. 이 때문에 페르시아 전쟁 후반부에 아테네가 대규모 원정군을 이집트에 증파하여 전쟁을 속행하기도 합니다.

      그리스가 이집트에서 밀을 적게 수입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집트의 밀 공급분 상당수는 이미 레반트 지역으로 가는 상황이라 공급받을 물량 자체가 적었다는 것, 흑해뿐만 아니라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라는 또다른 곡물수입지역이 있었다는 것도 있습니다.

  8. 파사데나 2019.01.21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리 말하자면 호메로스도 일리아드의 고기뜯는 장면을 쓰면서 '흐... 나두 먹고싶다... 고기맛이 어땠더라... 마눌님께 반근만 사달라구 할까... 꿀꺽...' 이래가면서 썼을 가능성도 있군요!

  9. 2019.01.21 1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벨닷 2019.01.21 1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면 일리아드 시대랑 그리스의 전성기랑은 700년이나 차이가 나는군요. 그러니 헤로도토스에게도 그 시절은 정말 까마득한 고대 시대란 인식이 있을수밖에 없었겠습니다. 물론 이집트 형님들이 보시기엔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차이겠지만ㅎㅎ

    • franken 2019.01.24 0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재의 한국인 시각에서 본다면 700여년은 조선 전체를 관통하여 고려 후기, 몽고의 지배를 막 받기 시작한 때를 포함하는 기간이니 긴 세월이긴 하죠.

  11. 소화낭자 2019.01.21 2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니까. 지금 우리가 먹는 빵이나 밥은, 그니까 현대 우리의 주식은. 진짜 오랫동안 사람들의 워너비였지. 진짜 주식은 아니었던 거죠....ㅎㅎㅎ

  12. 소프 맥태비쉬 병장 2019.01.22 0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글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글이군요.
    늘 흥미로운 먹방글(^^;;) 잘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되네요.

  13. 갸아아앍 2019.01.23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휘관 취준생이라니 앜ㅋㅋㅋ 이렇게 업뎃되는 맛이 있군요 근데 어디서 식량을 구해온걸까요? 주변에서 약탈한건지? 아니면 평소에 꼬불쳐둔 걸로 사온건지?

  14. 아즈라엘 2019.01.24 0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제가 이 블로그에 오는건 먹방글때문입니다...
    데헷

  15. ㅇㅇ 2019.01.25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찌보면 그리스 사람들이 장수했던 이유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Bertrand Cornwell의 Sharpe 시리즈 중, Sharpe's Honour 중 제 1장입니다.  맛보기로 한장만 번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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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바위투성이 골짜기를 휩쓸던 습기찬 어느 봄날, 샤프 소령은 오래된 돌 다리 위에 서서 남쪽의 바위투성이 능선 낮은 쪽으로 향하는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인해 언덕들은 어두워보였다.


그의 뒤쪽으로는, 머스켓 소총의 발화장치를 헝겊으로 가리고, 총구에는 빗물이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코크마개를 막아둔 채로, 5개 중대의 보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샤프가 알기로는, 능선까지의 거리는 500야드였다.  (머스켓 소총의 사정거리는 약 60야드입니다.:역주)  곧 그 능선 위로 적군이 나타날 예정이었고, 그들이 다리를 건너는 것을 막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아주 간단한, 군인의 일거리였다.  이 1813년의 봄은 늦게 찾아왔고, 이 국경의 구릉지대에는 비만 줄곧 내렸으므로, 다리 아래의 강물은 깊고 빨라서, 걸어서 건널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그 임무는 훨씬 더 쉬워진 상태였다.  적군은 샤프가 기다리고 있는 다리를 통과하던가, 아니면 강물을 아예 건널 수 없었다.


"소령님 ?" 경보병 중대의 지휘관인 달렘보드 대위는 샤프 소령의 우중충한 기분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무슨 일인가, 대위 ?"


"참모 장교가 오고 있습니다."


샤프는 나직히 궁시렁거렸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등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다가와 속도를 줄이는 것을 들었다. 다음 순간 말이 그의 앞에 나타나 섰고, 흥분한 기병 중위 하나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샤프 소령님 ?"


단호하고 화가 난 듯한 검은 눈동자가 중위의 금도금이 된 박차와 장화를 거쳐, 진흙이 군데군데 묻었지만 비싸보이는 파란색 울 망토를 지나, 흥분한 참모 장교의 눈과 마주쳤다.  "자네가 내 시야를 가리고 있는데, 중위." 


"죄송합니다, 소령님."


중위는 서둘러 말을 한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험난한 산길을 돌아, 아주 열심히 말을 달려왔고, 그의 승마 솜씨에 스스로 우쭐해있었다. 그의 암말은 안절부절 못하고 움직이면서, 그 중위의 흥분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프레스톤 장군께서 보내신 전갈입니다, 소령님. 적군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나도 능선에 초병을 세워놓았었네." 샤프는 무례한 말투로 말했다. "적병을 30분 전부터 보고 있었어."


"예, 소령님."


샤프는 능선을 쳐다보았다. 중위는 자기가 그저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라이플맨(샤프)이 중위를 다시 쳐다보았다. "자네 프랑스말 할 줄 아나 ?"


리처드 샤프 소령을 처음 만난다는 사실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령님."


"얼마나 잘하지 ?"


기병 중위는 미소를 지었다. "Tres bien, Monsieur, Je parle..  (Very well, Mister, I speak...:역주) "


"내가 언제 빌어먹을 시범을 들려달라고 했나 ? 질문에 대답이나 하게 !"


중위는 이 무자비한 힐책에 겁이 났다. "아주 잘 합니다, 소령님."


샤프는 그를 쳐다보았다. 중위는 그 눈길이 마치 포동포동 살이 찌고 한때 잘나갔던 사형수를 대하는 집행인의 눈길 같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뭔가, 중위 ?"


"트럼퍼-존스입니다, 소령님."

"흰 손수건 있나 ?"


이 대화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군 하고 중위는 생각했다. "예, 소령님."


"좋아." 샤프는 다시 다리 쪽과, 능선을 넘어 길이 뻗어오는 움푹한 안장모양의 고개길 쪽을 쳐다보았다.


일이 아주 꼬일대로 꼬여 버리고 말았어 라고 샤프는 생각하고 있었다. 영국군은 포르투갈 국경의 동쪽으로부터 진격로를 확보해나가고 있었다. 프랑스군의 거점을 몰아내고 프랑스 수비군을 쫓아내면서 다가오는 여름의 작전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치적치적 비가 내리면서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에, 5개대대의 영국군이 토르메스 강가의 프랑스 수비대를 공격했다. 프랑스군 후방 5마일 떨어진 곳에, 프랑스군이 퇴각해올 이 길 도중에, 이 다리가 있었다.  샤프는 대대의 절반 정도되는 병력(5개 중대)과 라이플 중대 하나를 거느리고, 그 퇴각을 막기 위해, 밤을 새워 길을 빙 돌아 행군하여 여기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의 임무는 간단했다. 추격해온 다른 대대가 퇴각하는 프랑스군을 따라잡아 끝장을 볼 수 있도록, 프랑스군의 퇴각을 막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날 오후가 되면서, 샤프의 기분은 매우 저기압이었다.


"소령님 ?" 샤프는 위를 쳐다보았다. 중위는 접은 린넨 손수건을 내밀고 있었다. 트럼퍼-존스는 불안한 듯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손수건이 필요하시다고요, 소령님 ?"


"내가 코를 풀자는 건 줄 아나, 이 바보야 !  항복을 위한 거야 !" 샤프는 으르렁거리고는 두 발자국을 옮겨갔다.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비록 1500명의 프랑스군이 겨우 400명도 안되는 이 작은 부대 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트럼퍼-존스가 리처드 샤프라는 남자에 대해 들은 바로는, 샤프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항복을 하겠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샤프의 명성은 잉글랜드에까지 퍼져 있었고, 극히 최근에야 영국에서 떠나온 트럼퍼-존스가 최전선으로 다가올 수록 그는 그 이름을 점점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샤프는 군인 중의 군인으로서, 그의 칭찬을 듣는 것은 진정한 명예로 간주되었고, 그의 이름은 프로페셔널로서의 뛰어남에 대한 표석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지금 싸우지도 않고 항복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이클 트럼퍼-존스 중위는 그 생각에 어이가 없어, 햇빛과 바람에 검게 그을린 샤프의 얼굴을 몰래 쳐다보았다. 잘 생긴 얼굴이었으나, 샤프의 왼쪽 눈 아래의 긴 흉터(1803년, 인도에서 도드 대령의 칼에 입은 상처입니다.:역주)로 인해, 마치 사람을 비웃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트럼퍼-존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샤프가 웃을 때면 그 흉터로 인한 비웃는 듯한 표정은 사라지곤 했다.  트럼퍼-존스가 가장 놀란 부분은, 샤프는 계급장을 전혀 달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장교의 허리띠나 견장도 없어서, 그가 장교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옆에 차고 있는 낡아빠진 기병용 군도 뿐이었다.  트럼퍼-존스 생각에, 그는 정말 영국군이 빼앗은 첫번째 프랑스의 독수리 군기를 탈취한, 그리고 바다호스 요새의 무너진 틈새로 처음 돌격해 들어간, 그리고 가르시아 에르난데스에서 독일 병사들과 함께 그 유명한 기병 돌격을 감행했던, 바로 그 군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자신만만함은, 그가 군 생활을 졸병 계급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총 한방 쏴보기도 전에 숫적으로 불리하다고 항복하려 한다는 것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지금 뭘 보는 거야, 중위 ?"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령님." 트럼퍼-존스는 샤프가 남쪽 구릉지대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샤프는 그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중위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는 그것이 싫었다. 그는 주목을 받는 것이 싫었고,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싫었다. 요즘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만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이 젊은 기병 중위에게 필요 이상으로 심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중위를 올려다 보았다. "적에게 3문의 대포가 있는 것 같던데, 맞나 ?"


"예, 소령님."


"4파운드 포였지 ?"


"그런 것 같습니다, 소령님."


샤프는 툴툴거렸다. 그는 능선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 두마디 질문이 중위에게 좀 친근한 느낌을 주기를 바랬지만, 사실 그는 요즘 낯선 사람들에게서는 친근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부터 우울해 있었다. (Sharpe's Enemy 편에서 샤프는 크리스마스날 스페인인 아내인 테레사를 잃습니다. : 역주) 그는 격렬한 죄책감과 무자비한 절망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신의 대문'이라 불리는 산길의 눈속에서 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목에서 흘러내리던 피의 이미지가 그의 마음 속에 떠올랐다. 그는 그 장면을 몰아내기라도 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그녀 몰래 바람을 피웠었고, 그녀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 그런 종말을 맞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어린 딸이 이제 엄마없는 아이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그의 죄책감 때문에 무일푼 상태였다. 아직 두살이 채 안된 그의 딸은 그녀의 스페인 삼촌과 숙모 밑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그가 스페인 정부로부터 훔쳤던 (Sharpe's Gold 편에서 그는 스페인 금화를 빼앗아 오는 임무를 맡았는데, 당연히 그중 일부를 슬쩍합니다.:역주) 그의 저축금 전체를 그의 딸 안토니아에게 보냈었다.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그의 군도와 라이플 소총, 그의 망원경, 그리고 몸에 걸친 낡은 군복 한벌이 전부였다.  그는 값비싼 말을 탄, 금도금이 된 장식 칼집을 차고 새 가죽장화를 신은 이 젊은 중위를 속으로 저주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의 대오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병사들이 남쪽 능선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샤프는 뒤돌아섰다.


"대대~!" 곧 침묵이 뒤따랐다. "대대~! 차렷 !  (Talion ! 'Shun !)"  (Battalion, Attention ! 을 이렇게 발음하는군요.: 역주)


병사들의 장화가 비에 젖은 바위 위에 철썩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그들은 프랑스군의 퇴각로가 될 북쪽길이 놓인 작은 계곡의 입구를 가로막은 채 2줄로 늘어서 있었다.


샤프는 그들의 불안함을 이해했다. 그들은 샤프의 대대에 속한 샤프의 병사들이었다.  또한 그는 이 병사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비록 적군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라고 해도, 그 신뢰에는 변함이 없었다. "헉필드 중사 !"


"소령님 !"


"군기를 올려라 !"


마이클 트럼퍼-존스가 보니, 이런 엄숙한 순간에 어울리지 않게도 병사들은 씨익 웃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군기라는 것은 대대의 정상적인 깃발이 아니라, 껍질을 벗긴 자작나무 줄기에 헝겊조각을 매달아 놓은 것에 불과했다. 깃발은 비에 젖어 축축하게 늘어져 있었으므로, 먼거리에서는 그것이 병사들 자켓에서 뜯어낸 노란색 헝겊으로 장식한 망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다. 막대기의 끝에는 노란 헝겊을 묶어놓아, 멀리서 보았을 때는 잉글랜드의 왕관처럼 보이게 꾸며 놓았다.


샤프는 이 참모장교가 놀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반편(half) 대대는 군기를 소지할 수 없다네, 미스터 트럼퍼-존스."


"예, 그렇지요, 소령님."


"그리고 프랑스군도 그걸 알지."


"그렇습니다, 소령님."


"그러니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


"여기에 정규 1개 대대가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


"그렇지."  샤프가 다시 남쪽을 쳐다보는 동안, 트럼퍼-존스는 왜 항복에 앞서 이런 속임수가 필요한지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트럼퍼-존스는 샤프에게 묻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샤프 소령의 얼굴을 보면 쓸데없는 질문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 리처드 샤프 소령은 남쪽 능선을 쳐다보면서, 여기는 정말 죽을 장소치고는 비참하고, 어울리지도 않고, 또 바보같은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그는 죽고 나면 다시 테레사를 만나서, 항상 그를 반겨주던 그녀의 갸름하고 해맑은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그녀의 얼굴의 자세한 모습은 그의 기억에서 점점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초상화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스페인 친척의 집안에서 자라고 있는 그의 딸은 엄마의 초상화도, 아빠의 초상화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영국군은 언젠가는 스페인 땅을 벗어나 진격해나갈 것이고, 그는 군대와 함께 움직여야 했다. 그러면 그의 딸은 샤프가 어릴 때 고아로 남겨졌듯이, 부모없이 살아가도록 남겨질 것이었다.  불행이 불행을 낳는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안토니아의 삼촌과 숙모는, 샤프 자신보다는 훨씬 좋은 부모가 되어줄 것이라는 위안감을 느꼈다.


계곡 위로 거센 바람이 비를 몰고와서, 시야를 흐리게 하면서 다리의 돌에 부딪히 휘잉 소리를 냈다. 샤프는 말을 탄 참모 장교를 올려다 보았다. "뭐가 보이나, 중위 ?"


"말탄 사람 6명입니다, 소령님."


"적군에게 기병대는 없지 ?"


"우리가 본 바로는 없었습니다, 소령님."


"그럼 저건 적군의 보병 장교들이겠군. 저자식들은 지금 우리를 어떻게 요리할까 작전을 짜고 있을거야."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날씨가 개여서, 햇빛이 따뜻하게 비추어 지난 겨울의 아픈 기억들을 날려버릴 수 있기를 바랬다.


그때 길이 걸쳐있는 능선 위가, 갑자기 프랑스군의 파란색 군복으로 가득 메워졌다. 샤프는 적군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동안, 몇개 중대나 되는지 세어보았다. 6개 중대였다. 그들은 전위대였고, 다리를 향해 돌격하여 점령하되, 대포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기다리라고 명령을 받았을 것이었다.


그날 아침, 샤프는 피터 달렘보드 대위의 말을 빌려서 프랑스군의 퇴각로를 10번도 넘게 돌아보았었다. 그는 프랑스군 지휘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고 적군이 어떻게 나올지 확신이 들때까지 혼자서 자기 자신과 토론을 해보았었다. 이제 적군은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고, 그는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영국군 대부대가 뒤를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감히 길에서 벗어나 구릉지대로 피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면 대포를 버리고 가야했고, 그럴 경우 스페인 빨치산의 밥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훼방꾼들을 재빨리 날려버리려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한 도구는 그들의 대포일 것이었다.


능선 아래 150야드 지점에, 길이 계곡 바닥으로 내려오면서 마지막으로 굽이치는 지점에, 대포가 자리잡기에 딱 좋은 바위로 된 넓은 평지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프랑스군 포병은 샤프가 거느린 2열 횡대의 보병들에게 캐니스터(커다란 산탄총같은 포탄의 일종: 역주)를 퍼부어 피떡을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영국군 대오가 산산조각이 나면, 프랑스 보병들이 총검을 들고 다리를 향해 돌격을 해올 것이었다. 그 바위 평지에서라면 프랑스 포병은 자신들의 보병 머리 너머로 대포를 쏘아댈 수 있었다. 사실 그 바위 평지는 바로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샤프는 그날 아침 작업조를 보내 바위 바닥에서 포병들에게 걸리적거릴 만한 것들을 다 치워놓았었다.


그는 프랑스 포병이 바로 그 위치에 있기를 바랬다. 그는 프랑스군이 대포를 거기에 갖다놓으라고 초대장을 보낸 셈이었다.


그는 3대의 대포가 언덕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보병들이 달라붙어 바퀴에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있었다. 그들은 점점 더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포병들이 다리 건너의 평지까지 내려와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몇안되는 라이플 사수들을 강둑에 배치시켜 놓았었다. 프랑스군은, 녹색 자켓을 입은 그 라이플 사수들을 보았을 것이고, 라이플 강선에 의해 회전하는 탄환의 정확성을 두려워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군이 라이플 소총의 사정거리 밖에 대포를 위치시키기를 바랬다.


프랑스군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프랑스군 포병이 그 바위 평지로 와서 대포를 말에서 떼어내고, 탄약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서 샤프는 속으로 안심했다.


샤프는 뒤돌아섰다. "총구 마개를 뽑아 !" 두줄로 늘어선 붉은자켓의 병사들이 머스켓 소총 총구에서 코르크 마개를 뽀아내고 격발장치를 감쌌던 헝겊을 풀어냈다. "거총 !"


머스켓 소총이 병사들의 어깨로 올라왔다. 프랑스군도 그 움직임을 볼 것이엇다. 프랑스군은 영국군 머스켓 사격의 속도를 두려워했다. 영국군의 잘 훈련된 머스켓 사격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스페인 전장에서 그 위력을 여러번 입증했었다.


샤프는 다시 병사들에게 등을 돌렸다.  "중위 ?"


"소령님 ?"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흠칫 놀라,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좀더 깊은 목소리로 다시 대답했다. "소령님 ?"


"그 손수건을 자네 군도에 묶어라."


"하지만 소령님...."


"명령에 복종하게, 중위." 이 말은 나직이 말해졌으므로 트럼퍼-존스를 제외한 다른 병사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은 무자비하게 오싹한 느낌을 주었다.


"예, 소령님."


프랑스군의 6개 공격중대는 250야드 거리에 있었다. 그들은 총검을 착검한 채, 종대로 이루어 있었고, 포병대가 일을 마치고 나면 진격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샤프는 식량주머니(haversack : haver는 네덜란드어로 귀리라는 뜻입니다. 역주)에서 망원경을 꺼내어 망원경 튜브를 잡아늘이고 대포를 관찰했다. 거대한 산탄총처럼, 깡통 속에 든 자잘한 소총탄을 죽음의 부채살 모양으로 쏘아대도록 만들어진 캐니스터 포탄이 세문의 대포 포구로 운반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가 그가 소령으로 진급한 것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소령으로서, 그는 지휘권을 이양하고,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프랑스 포병들이 대포의 마지막 조준을 마치고 있는 이 순간, 그는 그 날의 진짜 일을 수행하도록 임무를 받은 라이플 중대와 자기가 함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첫번째 캐니스터 포탄이 포구에 밀어넣어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빌 !" 샤프는 큰 소리로 말했다.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자기가 대답을 해야하는 건가 하고 어리둥절해하다가 그냥 잠자코 있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했다.


길의 왼쪽에, 길을 내려다보는 높은 바위 위에서, 하얀 화약연기들이 픽픽 나타났다. 1~2초 뒤에 라이플 소총 특유의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이미 3명의 포병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것은 간단한 매복이었다. 1개 중대의 라이플 소총병들이 대포가 자리를 잡을 지점 근처에 매복하고 있었다. 그 수법은 샤프가 전에 사용했던 것이었고, 또 같은 방법을 썼는데, 언제나 통하는 방법 같았다.


프랑스군은 라이플 소총부대에 도통 익숙해지질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사격의 속도를 더 중요시하여 활강총신을 가진 머스켓 소총만을 사용했고, 장전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라이플 소총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녹색 자켓을 입고, 은폐물을 아주 잘 활용하고, 3백~4백보 거리의 유효사거리를 가진 라이플 소총병에 대해서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전체 포병대의 절반 정도가 쓰러졌고, 바위는 라이플 소총의 화약연기로 자욱해졌다. 하지만 총성은 계속되었고 총알은 이제 대포를 끄는 말들에게 퍼부어지고 있었다. 라이플 소총병들은 자신들의 화약연기에서 벗어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자꾸 위치를 바꿔가면서 말들을 조준하여 쏘았다.  이는 대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포병들을 쓰러뜨려 대포를 발사하지 못하게 막았다.


대포 뒤의 길 위에 있던 적군의 후위부대가 구보로 달려왔다. 그들은 바위 밑에서 진열을 짜고 바위 위로 올라가려 햇지만, 경사는 급했고, 라이플 소총병들은 중무장한 프랑스 보병들보다 훨씬 잽쌌다. 하지만 프랑스 보병들의 공격으로 인해, 최소한 라이플 소총병들이 포병들에 대한 사격을 중단하게 되었고, 이제 살아남은 포병들이 포가 밑에서 다시 포탄 장전을 마무리하기 위해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샤프는 씨익 웃었다.


저 구릉 지대 속 어딘가에 반은 독일인이고 반은 영국인인 윌리엄 프레데릭슨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샤프가 아는 그 어떤 병사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의 부하들이 붙여준 그의 별명은 '달콤한 윌리엄'이었는데, 아마 그건 그의 애꾸눈 안대와 심한 흉터가 진 얼굴이 너무나 무시무시해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달콤한 윌리엄은 살아남은 포병들이 엄폐물로부터 완전히 기어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길의 오른쪽에 숨어있던 라이플 소총병들에게 사격을 개시하도록 했다.


마지막 포병들까지 쓰러졌다. 프레데릭슨의 명령에 따라, 라이플 소총병들은 말을 탄 적의 보병 장교들로 표적을 바꾸었다. 적군은 몇발 되지도 않는, 그러나 정확히 조준된 라이플 총탄에 의해 포병대 전체를 잃고 갑자기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제 샤프가 그의 다른 무기를 뽑아들 차례였다.


"중위 ?"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그의 군도 끝에 묶어놓은 축축한 흰 손수건을 숨기려고 하다가 샤프를 쳐다보았다. "소령님 ?"


"적군에게 가서 내 인사를 전하고, 무기를 내려놓도록 제안해보게."


트럼퍼-존스는 이 키가 크고 검은 얼굴을 한 라이플맨을 쳐다보았다. "저들보고 항복하라고요,  소령님 ?"


샤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우리가 항복하자고 제안을 하는건가 ?  응 ?"


"아닙니다, 소령님." 트럼퍼-존스는 조금 지나치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1500 명의 프랑스군이 불과 400 명의 비에 젖고 고립된 영국군에게 항복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지 황당해했다. "물론 아닙니다, 소령님."


"저들에게 우리가 1개 대대를 예비병력으로 가지고 있다고 해. 그리고 그 뒤에는 6개 대대가 있다고 하고. 또 구릉지대에는 기병대가 있고, 곧 대포가 도착한다고 하게. 아무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라고 ! 하지만 반드시 내 인사를 먼저 전하고, 이미 쓸데없이 많은 병사들이 죽지 않았냐고 말하도록 하게. 그리고 그들의 군기를 폐기할 시간을 주겠다고 말하게."  그는 다리 건너를 쳐다보았다. 프랑스군이 바위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아직도 충분한 숫자의 라이플 총성이 울리고 있었고, 그 뜻은 아직도 이날 오후에 쓸데없이 인명이 살상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어서 가게, 중위 ! 15분 줄 것이고 그때까지 항복하지 않으면 내가 공격하겠다고 하게.  나팔수 ?"


"소령님 ?"


"기상 나팔을 불어라. 중위가 적군에게 도달할 때까지 계속 불어."


"예, 소령님."


나팔 소리로 경고를 받은 프랑스군은 한명의 기병이 그들을 항해 손수건을 묶은 칼을 높이 들고 달려내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예의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군은 바위 사이를 잽싸게 뛰어다니는 라이플 소총병들에게 사격을 하던 것을 중단했다.


전투의 화약 연기는 바람에 흩날리는 비 속에서 흩어져갔다. 트럼퍼-존스는 프랑스 장교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샤프는 뒤로 돌아섰다. "편히 쉬어 !"


5개 중대는 긴장을 풀었다. 샤프는 강둑을 쳐다보았다. "하퍼 상사 !"


"소령님 !"  6피트의 키를 가진 샤프보다도 4인치는 더 큰 커다란 사나이가 강둑에서 올라왔다.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샤프와 함께 이 붉은 코트 연대로 흘러들어오게된, 몇안되는 라이플맨 중의 하나였다. 사우스 에섹스 대대는 붉은 코트를 입고 유효사거리가 짧은 머스켓 소총을 사용했지만, 샤프의 예전 중대의 다른 라이플맨들처럼 그도 아직 녹색 자켓을 입고 라이플 소총을 들고 다녔다. 하퍼는 샤프 옆에 섰다. "저 자식들이 굴복할까요 ?"


"저들에겐 다른 도리가 없어. 자기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거야. 저들이 1시간 안에 우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저들은 끝장이야."


하퍼는 웃었다. 샤프에게 친구가 있다면 바로 이 상사가 그 친구였다. 그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모든 전투를 함께 했었다. 하퍼가 샤프와 나눌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샤프의 죄책감 뿐이었다.


샤프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추위에 손을 비볐다. "차가 마시고 싶군, 패트릭. 차를 끓여도 좋다는 허가를 내리겠네."


하퍼는 미소를 지었다. "예, 소령님." 그는 얼스터(아일랜드의 지방명:역주)의 거센 억양으로 말했다.


샤프가 손으로 감싸고 있던 차가 식기도 전에, 마이클 트럼퍼-존스 중위가 프랑스군 대령과 함께 돌아왔다. 샤프는 이미 엉터리로 만든 가짜 군기를 치우도록 명령해 놓았었다. 그는 절망적인 적군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그는 대령이 항복의 표시로 내미는 군도를 받아들이기를 사양했다. (이는 상대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뜻하는 당시의 예절입니다: 역주) 대포 없이는 다리를 점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프랑스군 대령은 샤프가 내놓은 항복 조건에 동의했다. 대령은, 샤프 소령같은 명성높은 군인에게 항복한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샤프 소령은 감사를 표시하고, 차를 권했다.


 


두시간 후, 프레스턴 장군이 그의 5개 대대와 함께 도착했다. 그는 그의 앞에 머스켓 총성이 들리지 않는 것에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도착해보니 1500 명의 프랑스군이 포로가 되었고, 3문의 대포와 함께 마차 4대 분량의 보급품이 노획되어 있었다. 프랑스군의 머스켓 소총은 길가에 쌓여있었다. 그들이 수비하던 마을에서 약탈했던 약탈품들은 이미 샤프의 부하 병사들의 배낭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병사 전체는 물론, 프레데릭슨 대위의 라이플맨들 모두가 부상조차 당하지 않았다. 프랑스군은 7명이 전사하고 21명이 부상을 입었다.


"축하하네, 샤프 !"


"고맙습니다, 장군님."


장교들이 끊이지 않고 다가와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는 그들을 떨쳐냈다. 그는 대포가 없이는 샤프의 부대를 깨뜨릴 수 없었으므로 프랑스군은 사실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축하가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이런 칭찬이 쑥스러워 샤프는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거센 강물을 건너, 사우스 에섹스의 보급관인, 통통하게 살이 찐 콜립이라는 이름의 장교를 찾았다. 그 보급관은 지난 밤에 샤프의 절반의 대대와 함께 야간 행군을 했었다.


샤프는 바위가 갈라진 틈 사이로 콜립을 몰아 붙였다. 샤프의 얼굴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넨 정말 운이 좋아, 미스터 콜립."


"예, 소령님." 콜립은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그는 불과 2달 전에 사우스 에섹스에 합류했었다.


"왜 자네가 운이 좋은지 말해보게, 미스터 콜립 ?"


콜립은 불안한 듯 침을 삼켰다. "아마 처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령님 ?"


"처벌은 절대 없을걸세, 미스터 콜립."


"없다고요, 소령님 ?"


"왜냐하면 그건 내 잘못이었으니까. 자네가 짐을 다 도맡겠다고 했을 때 난 자네를 믿었네.  내가 틀렸지. 자넨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


"정말 죄송합니다, 소령님."


지난 밤에, 샤프와 그의 대위들은 프레데릭슨 대위의 라이플맨들과 함께 먼저 길을 떠났었다. 그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 먼저 떠났었고, 중위들과 함께 콜립이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오도록 했었다. 그가 되돌아 왔을 때, 콜립은 그가 힘들게 건넜던 깊은 계곡 입구에서 있었다. 샤프는 라이플맨들을 이끌고 계곡을 건너, 가파른 강둑을 내려가 허리까지 차오르는 얼음처럼 차가운 강물을 건너, 얼음이 얼 것같은 옷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건너편 강둑을 기어올랐었다.


그가 5개 중대를 데리러 되돌아왔을때, 엄청난 재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급관인 콜립은, 붉은코트의 병사들이 좀더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묘안을 짜냈었다. 머스켓 소총의 어깨끈을 모아 묶어서 밧줄을 만들어, 매우 긴 고리를 만들었다. 이것을 강둑 사이에 걸쳐놓고 거기에 모든 병사들의 무기와 배낭과 수통과 식량주머니를 차례로 매달아서 순환식으로 잡아당겼던 것이다. 마지막 짐을 그런 식으로 건네고 있을 때, 어깨끈의 매듭이 풀리면서 짐이 물 속에 빠졌는데, 그 짐은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탄약 전체였던 것이었다.


프랑스 군이 샤프가 지키는 다리에 도달했을 때, 탄약이 있었던 것은 샤프의 라이플 중대 뿐이었다. 샤프는 사실상 무기가 없었으므로 프랑스군은 그저 한번의 일제 사격으로 다리를 점령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절대, 미스터 콜립, 절대 병사에게서 무기와 탄약을 떼어놓지말게. 약속할 수 있나 ?"


콜립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령님."


"자네가 내게 뭔가 한병 사야 한다고 생각하네, 미스터 콜립."


"예, 소령님, 물론입니다, 소령님."


"그럼 이만, 미스터 콜립."


샤프는 걸어나왔다. 그는 갑자기 웃었는데, 그건 아마 서쪽 하늘의 구름이 갈라지면서 붉은 석양 빛이 그의 승리의 장면을 비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패트릭 하퍼를 찾아나서, 그의 옛 라이플맨 부하들과 서서 차를 함께 마셨다. "오늘 아주 수고 많았어들."


하퍼는 웃었다. "그 자식들에게 우리에게 탄약이 없었다는 거 말했어요 ?"


"항상 상대방에게 자존심만큼은 남겨둬야지, 패트릭." 샤프는 웃었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로 거의 웃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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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28일 입대 2019.01.10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봐도 너무 재미있는 글이에요! 드라마에서 샤프의 그 냉소적인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도 하네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 파파펭귄 2019.01.10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으면서 상황이 이미지로 그려지네요. 심장이 두근두근거렸어요.

  3. ㅇㅇ 2019.01.10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인들의 가장 훌륭한점이라 할 수 있는 침착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네요

  4. 루나 2019.01.1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세네요 ㅋㅋ

  5. MADRUSH 2019.01.13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쓰신 글 늘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샤프 시리즈를 구글 북스에서라도 사볼까 하는데 혹시 샤프 시리즈의 시간 순서를 한번 이야기 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영어이고 군용어도 많아서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워낙 재미있는 글을 읽다보니 시도해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늘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6. 박씨 2019.01.13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 바꾸신 스킨이 깔끔하고 가독성도 좋아서 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

  7. 501st CSG 2019.01.17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입니다
    다시 읽어도 좋네요

스파르타는 왜 망했을까 ?

잡상 2019. 1. 3. 06:30 Posted by nasica



몇년 전 영화화되어 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던 영화 300의 줄거리는 한마디로 '스파르타 인들의 전설적인 용맹'입니다.  물론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오락용으로 만들어진 영화에 불과하며, 많은 허구와 왜곡이 들어가 있습니다만, 기본적인 줄거리 자체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BC 480년 가을, 바닷가의 협로인 테르모필라에(Thermopylae)에서, 그리스 본토를 침공하기 위해 이 곳을 통과하려는 크세륵세스의 수십만 대군을, 수도 훨씬 적고 가난한 스파르타의 용사들이 상당 기간 저지하다가 결국 옥쇄했던 사건이 이 영화의 배경이지요. 




(테르모필라에를 스파르타가 꽉 틀어막는다고 해도, 바다길이 뚫려 있으니까 페르시아 군은 그리스 본토를 유린할 수 있다고요 ?  사실 그렇긴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원시적인 항해술 수준에서는, 바다로 대규모 원정군을 실어나른다는 것은 백만대군과 싸우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었으니, 테르모필라에를 돌파하는 것이 꼭 필요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려진 스파르타 인들의 교육 방식이나 거친 생활상은 거의 대부분 다 사실입니다.  실은 그것보다 더 험악했습니다.  스파르타는 북한을 낙원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엄격한 군국주의 국가로서, 가난하고, 문화적으로 피폐했으며, 인권이나 개인의 행복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낸지 오래된 도시 국가였지요.  영화 속에서는, 곱추로 태어난 어느 스파르타 인이, 자신을 버린 조국에 배신감을 느끼고 페르시아 군에게 우회로를 알려주는 바람에 스파르타 군이 전멸을 하게 된 것으로 그려졌습니다.  (실은 그 지방 농민이 상금을 노리고 알려주었지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곱추로 태어난 스파르타 인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그런 배신을 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스파르타는 나치 독일 못지 않은 인권 유린 국가로서, 갓 태어난 모든 아기는 국가에서 검사하여, 만약 불구가 있거나 허약해 보일 경우, 산 속 깊은 구덩이에 내다 버려 죽이는 것이 법제화 되어 있었습니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천인공로한 야만 국가였지요.




(배신자라고요 ?  아닙니다.  피해자였을 뿐입니다.)




그리스는 원래 남성 우월주의 마초 국가라서 어차피 여자들에게는 투표권이나 발언권, 재산 소유권 등은 물론 올림픽 관람권조차 모두 거부되었는데, 그나마 스파르타의 여성들에게는 재산권도 있고 또 각종 경기에도 참여할 수 있는 등, 다른 그리스 국가보다는 나은 지위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스파르타에서도, 여성들에게 연애 같은 것은 절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결혼은 약탈혼이라서,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납치한 뒤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고 감금한 뒤, 밤에만 (이제는 와이프가 된) 그 납치 여성을 찾아가는 식의 결혼 생활을 상당 기간 유지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와이프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와이프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스파르타에 있어서 여자란 튼튼한 아기를 낳기 위한 그릇에 불과했거든요.  따라서 훌륭한 다른 남성 시민의 씨를 받기 위해 와이프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주고, 거기서 태어난 아기를 자신의 아기로서 키우는 것이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아기는 일정 나이가 되면 부모의 곁을 떠나 가혹한 공동 생활을 하며 거의 폭행과 학대에 가까운 공동 교육(agoge)을 받았으니, 아기가 꼭 자기 핏줄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레오니다스 왕의 아내, 즉 여왕 고르고(Gorgo)가 원로원을 설득하여 남편에게 증원군을 보내기 위해 부패한 원로원 의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레오니다스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 뻔한 원정 길을 떠날 때, 그 아내인 고르고가 '내가 당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라고 묻자, 레오니다스는 쿨하게 '훌륭한 남자와 결혼하여 튼튼한 아기를 낳으시오'라고 한마디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고 합니다.  최소한 조선 시대처럼 여자들이 정절을 지키거나 청상과부로 늙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지요.




(부도덕한 일이라고요 ?  동성애가 고상한 취미로 인정되던 시절입니다.  뭐 꼭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적인 가치관과는 많이 다르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남녀가 함께 식사를 하며 데이트를 한다는 것은, 젊은 미혼 남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젊은 부부 사이에서 조차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단 남자들은 15명이 한 조를 이루어 모두 공동 식사(syssitia)를 해야 했으니까요.  어느 스파르타의 왕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귀환한 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집에서 와이프와 함께 먹겠다'며 공동 식당에 사람을 보내 자기 몫의 식사를 자기 집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가 '개소리 하지 말라'며 면박을 당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먹는 것도 맛없기로 유명한 '검은 국'에 부풀지 않은 보리 빵을 먹는 정도라서, 한마디로 정말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테르모필라에 전투 1년 뒤인 BC. 479년, 스파르타가 이끈 연합군이 플라타에아 (Plataea)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잔여 병력을 완전 격파합니다.  이때 스파르타의 왕인 파우사니아스 (Pausanias)는 페르시아 진영에서 페르시아 인들이 차려 놓은 산해진미의 식탁을 발견하고는 '이런 욕심쟁이들, 이런 것을 먹으면서도 우리의 보리 빵을 빼앗으려고 쳐들어왔단 말인가' 하고 한마디 할 정도였습니다.




(전형적인 그리스의 만찬 모습입니다.  술잔이 납작한 것이 특징인데, 굳이 스파르타가 아니더라도 그리스 사람들의 식탁은 그다지 풍성한 편이 못 되었습니다.)




스파르타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척 피폐한 나라였습니다.  일단 시민들은 절대 직업을 가져서는 안되었습니다.  즉, 스파르타 시민권을 가진 남자들은 100% 백수였습니다.  이들에게 직업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것은 이들이 항상 신체를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하여, 최강의 병사들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온나라의 살림살이는 투박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가령 스파르타의 어느 왕이 외국을 방문했다가 어느 집에 들어가 대들보를 올려다보고는 '이 나라에는 네모난 모양으로 자라는 나무가 있는가 ?'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스파르타의 집은, 왕궁조차도, 그냥 둥근 통나무를 그대로 대들보로 썼던 것이지요.  또 돈이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리스를 포함한 동부 지중해는 은화를 매개체로 한 상업 활동이 활발했는데, 스파르타는 예외였습니다.  스파르타의 전설적인 입법가인 리쿠르구스 (Lycurgus)의 법에 의해, 스파르타에서는 은화는 못 만들게 했고, 오로지 무쇠 동전을, 그것도 뜨거울 때 식초에 담가 '고철 가격도 안 나가도록 만든' 가치없는 동전만을 쓰도록 했으므로, 상업 활동이 전혀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랬으므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먼 훗날 사람들이 스파르타의 유적을 파본 다면 스파르타가 전체 그리스를 호령하는 강대국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라고 그 시대에 이미 썼을 정도였지요.




(투키디데스의 흉상 보다는 그 어록이 더 마음에 드네요.  "행복의 요건은 자유고, 자유의 요건은 용기이다.")




이렇게 지독하게 살았으니 스파르타가 군사 강국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를 하겠습니다만, 이런 군사 강국이 대체 왜 망했을까요 ?  신무기가 개발되어 용기와 체력으로 승부하던 스파르타 인들의 전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던 것일까요 ? 


한 나라가 쇠락하는데는 사실 한두 가지의 이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교과서에는 '그리스 도시 국가 간의 반목으로 인한 잦은 전쟁과 그에 따른 국력 고갈'을 이야기하지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면 그 전부터도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해왔던 것이 스파르타입니다.  또,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난다고, 스파르타와 전쟁을 하던 다른 도시 국가들, 즉 아테네나 테베, 아르고스 등도 전쟁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스파르타가 결정적인 패배를 맛 본 BC. 371년, 레욱트라 (Leuctra) 전투의 상대는 테베 (Thebes) 군이었는데, 물론 테베 군의 지휘관이 당대의 군사 천재인 에파미논다스(Epaminondas) 이긴 했습니다만, 스파르타 군은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스파르타 군이 그리스 최강을 자랑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항상 이기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스파르타 군의 숫자가 더 많거나 적과 대등할 경우에는 항상 승리했었습니다.  또한, 스파르타의 엄격한 법에 따라, 전투에서 등을 보이고 도주하는 자는 모두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스파르타 군이 보기 흉하게 패퇴하여 방패를 버리고 도주하는 경우는 절대 없었는데, 이 전투에서 스파르타 군은 전사한 자신들의 왕 클레옴브로투스(Cleombrotus)의 시신을 내버려두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치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스파르타는 워낙 시민의 수가 적었으므로, 이들을 다 처형할 경우 국가가 끝장 났으므로 이 도망자 처형에 대한 법률을 시행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레욱트라 전투에서, 테베의 제갈공명 에파미논다스는 당시 그리스 중장 보병 전술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 사선 방식의 전열을 이용하여 더 적은 병력으로도 무적이라는 스파르타 군을 격파해내는 기염을 토합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는 또다른 비밀이 있었지요.) 




영화 300을 찍었던 테르모필라에 전투와 이 레욱트라 전투 사이의 불과 100년 사이에, 스파르타에 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길래 이렇게 되었을까요 ?


일단 학자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파르타의 인구 감소입니다.  가령 BC. 479년, 플라타에아 (Plataea)로 진격했던 스파르타 인들의 수는 약 5천명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사'를 썼던 헤로도투스의 계산에 따르면, 당시 전체 스파르타의 성인 남자 인구는 8천 정도였지요.  그러나 100년 뒤 레욱트라 전투에서의 스파르타 인들의 숫자는 '영웅전'으로 유명한 플루타르코스 (Plutarchos)에 의하면 고작 700명에 불과했습니다.  동시대 역사가인 크세노폰(Xenophon)의 계산에 따르면 약 1천명 수준이었지요.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파르타는 인구 부족으로 망했다'라고 말할 정도였지요.




(제가 중고등학교 때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읽고 흠뻑 빠져서, 소년 보수가 되었더랬지요. 아마 당시에도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저는 아마 일베의 열성회원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스파르타 인구가 그렇게 급격히 줄어든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사이에 전쟁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불과 100년 사이에 인구가 거의 1/8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흑사병이 돌아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스파르타처럼 '건강한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일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적어도 스파르타에서는 사교육비가 많이 들지 않았으니까, 국민들이 아이 낳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었지요.  대체 스파르타에 뭐 운석이 떨어졌거나 조류 독감이라도 번진 것이었을까요 ?


실은 운석이나 조류 독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외부로부터 스파르타에 들어오긴 했습니다.  바로 돈이었습니다.





(특히 페르시아의 다릭 Daric 금화가 그리스 전체를 망하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300만 보면 최후의 승자가 그리스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체적인 그림을 놓고 보면 결국 페르시아가 전체 그리스를 쥐고 놀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마케도니아에게 둘다 망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래 스파르타 인들은 100% 백수에 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사실 이 점은 제가 존경하는 신필 김용 선생의 무협지와도 상통하는 내용입니다.  대체 무림의 고수들은 직업도 없는데 어디서 돈이 나서 먹고 마시고 하는 걸까요 ?  아무리 스파르타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았다고 해도, 매일 먹는 보리 빵이나 검은 국, 영화 300 찍을 때 입었던 빤스 같은 것들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누군가는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활동을 전담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헬로트 (helot)라고 불렀습니다.




(이놈의 세상은 동화나 무협지가 아닌지라, 누군가 영웅 놀이를 하자면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고된 노동을 해서 그들을 먹여살려야 합니다.)




원래 스파르타 인들은 마케도니아 쪽에서 내려온 도리아(Doria) 인이었고, 헬로트들은 라코니아 (Laconia) 지방에 살던 원주민이었습니다.  이 원주민들은 메세니아 (Messenia)라는 국가를 이루어 살고 있었는데, 결국 스파르타 인들에게 패배하고 그들의 노예...라기보다는 농노 같은 예속 신분이 되었습니다.  리쿠르구스의 개혁 때, 이들의 토지는 9천개의 일정한 크기로 분할되어 순수 스파르타 시민들, 즉 Spartiates들에게 주어졌고, 그 토지 (이런 영지를 kleros라고 불렀습니다)에서 헬로트들이 농사를 지어다 바치는 것이 스파르타 인들의 경제적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에는 이렇게 순수 시민권자들, 즉 Spartiates과 그 농노인 헬로트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스파르타 주변에는 100여개 마을이 있었고, 여기에는 자유민들, 즉 Perioekoi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도 순수 스파르타 시민들처럼 도리아 인이었는데, 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엄격한 스파르타 식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경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이 페리오이코이들은 비록 순수 시민권자는 아니더라도, 전장에 나갈 때는 스파르타 군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원래 페르시아 전쟁 때까지만 해도 스파르티아테스들과 페리오이코이는 각각 서로 다른 부대로 편성되어 싸웠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는 이미 하나의 부대 속에 서로 섞여 전우로서 싸웠지요.  전에 언급했던 스파르타 출신 용병 대장 클레아르쿠스(Clearchus)도 사실 스파르티아테스 출신이 아니라 페리오이코이 출신이었습니다. 




(클레아르쿠스에 대해서는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Ananbasis) 에 자세히 나옵니다.  저도 저 펭귄 클래식으로 읽었습니다.)




이들의 경제 생활의 기초 구조는 평등주의였습니다.  원래 스파르타의 성인 시민들을 부를 때 "homoioi"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같은 신분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즉, 모든 성인 스파르타 시민은 경제적으로 평등해야 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크기의 영지를 가지고 있었고,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었고, 또 특별히 부를 모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금씩 빈부의 차이가 있기는 했습니다.  가령 어떤 가난한 집안의 스파르타 소녀가 시집을 갈 때, '지참금으로 무엇을 가져가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제 아버지의 상식'이라는 대답을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스파르타 시민들 사이에서도 빈부의 차이가 있기는 했다는 것입니다.


스파르타 인들은 철학적으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물질적 부에 대해서 초연할 수 있었을까요 ?  글쎄요, 확실한 것은 다른 도시 국가의 화려한 생활로부터 격리되었다는 점이 스파르타 인들의 검소함의 큰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북한 사람들과 스파르타 인들이 닮은 점 중 하나가,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뭔가 임무를 부여받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면, 국경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용맹함과 고결함으로 칭송이 자자했던 스파르타 인들도, 소수 인원끼리 해외로 나오기만 하면 흥청망청 향락에 빠져서 나라 망신을 시키는 경우가 아주 흔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시적, 개인적인 일이라서 스파르타의 근간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조금씩 스파르타 인들을 오염시키던 외국의 돈이 스파르타로 물밀 듯이 몰려들게 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었습니다.




(당연히 이것도 읽었지요.  정말 재미있었는데, 다만 자주 나오는 연설 부분들이 너무 길더군요.  이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대중 선동정치가, 즉 데마고그(demagogue)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상태였고, 투키디데스도 그런 민회에서 투표 결과 추방당한 몸이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으로 씌여져 있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 보수파였던 것은 다 그리스 로마 고전을 탐독한 덕분이었어요.)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시다시피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그리스의 패권을 두고 벌인 전쟁인데, 전쟁의 양상은 다소 바보스럽게 보일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강력한 육군을 가진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동맹군들을 이끌고 아테네로 쳐들어가면, 아테네는 강력한 성벽 뒤에 숨어서 응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워낙 고대라서, 충차나 운제 같은 공성용 병기도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이렇게 농성하는 아테네 군을 공략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스파르타 및 그 동맹군이 이렇게 허송세월하는 동안, 아테네 군은 강력한 해군력을 이용하여, 바다를 통해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해안, 즉 스파르타의 앞마당에 상륙하여 여기저기를 불지르고 파괴했습니다.  스파르타 인들은 몰라도 그 동맹군들은 원래 직업이 대부분 농부였으므로, 농번기가 되면 결국 군대를 철수시켜야 했지요. 




(이 지도가 보여주는 양상이 초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아테네와 그 외항인 피라에우스 항구 사이의 긴 회랑은 긴 장벽으로 완전 요새화되어 있어서, 제해권이 없다면 아테네를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아테네의 곡물 수입로인 헬레스폰트 해협, 즉 현재의 이스탄불이 있는 터키 지방의 확보가 매우 중요했지요.  그래서 전쟁은 그쪽 지방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




이런 식으로 몇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자, 스파르타도 아테네를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결국 해군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산층 집안의 시민들이 각자의 갑옷과 방패 등 무장은 물론, 먹을 것까지 각자 부담했던 육군과는 달리, 해군은 돈이 무진장 많이 들어갔습니다.  아테네는 인근에서 개발된 은광을 이용하여 당시의 주력 군함인 3단 노선(trireme)들을 많이 건조했지만, 일부 부자들이 돈을 내어 개인 부담으로 건조된 군함들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이런 3단 노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많은 노젓는 노수들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노수들은 아테네의 경우 가진 것이 없어서 중장 보병 (hoplites)으로서의 무장을 갖출 수 없는 빈민들이 주로 맡다가, 나중에는 용병으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이들에게는 모두 적게나마 급료가 주어져야 했습니다.  또 거친 바다에 나가면 노나 밧줄 등의 소모품도 무척 많이 필요했습니다.  한마디로, 스파르타의 경제력으로는 도저히 해군 건설이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그리스의 주력 군함이던 3단 노선 trireme의 구조입니다.  선체 크기에 비해 승무원 수가 너무 많았으므로, 밤에 잘 때나 식사할 때는 바닷가에 정박해야 했고, 또 선체가 가벼워야 했으므로 그만큼 선체 강도가 약하여, 먼 바다를 항해할 때는 사용하기가 곤란했습니다.)




결국 스파르타는 동맹국들로부터 강제로 분담금을 거두어 해군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분담금을 거두고 필요한 자재를 구매하고, 노수들을 고용하고 급료를 지불하는 행위는 사실 스파르타 인들에게는 그다지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과정에서 많은 스파르타 인이 부패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특히 펠로폰네소스 전쟁 동안, 스파르타는 그리스 각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을 지휘 감독하기 위해 '장군' 1명씩을 여기저기로 파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현지에서 뇌물을 받아먹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스파르타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었지요.  특히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대전환점이었던,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군을 궤멸시킨 시라쿠사 공방전의 총지휘관이었던 스파르타 인 길리푸스 (Gylippus) 같은 거물급조차도, 동맹국에서 스파르타 본국으로 은화 궤짝을 호송하다가 일부를 착복한 것이 들통나서 외국으로 도주하는 신세가 되고 말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30년 묵은 전쟁을 끝낸 스파르타의 명장이자 정치가인 리산드로스의 두상입니다.)




이런 부패는 그나마 작은 문제에 속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돈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눈을 뜨게 된 스파르타 인들이 부의 축적에 나선 것이 스파르타의 몰락을 부추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록 작은 빈부 차이는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스파르타 인들은 모두 평등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파르타에 돈 바람이 불면서 결국에는 리쿠르구스 시절부터 내려온 영지(kleros)를 팔아치우는 시민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원래 인간은 평등하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사람들마다 재주와 능력치가 달라서,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재주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소수인들에게 스파르타의 전통적인 영지가 집중되는 것은 한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영지를 팔아치운 사람들이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영지를 팔아치운 대부분의 시민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몰락한 시민들은 공동 식사 (syssitia)에 필요한 자기 몫의 비용조차 낼 수가 없었고, 또 자신의 아이를 공동 교육 (agoge) 시키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낼 수 없었습니다.  이는 곧바로 시민권을 가진 순수 스파르타 인, 즉 Spartiates의 지위를 잃는 것을 뜻했습니다.   즉, 스파르타에 전례없던 빈부 격차가 생기면서 스파르타의 전통적 시민 제도가 무너져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군의 기본 구성 요소는 이 중장보병 hoplites였습니다.  이런 중장보병의 무장은 모두 자비로 마련해야 했는데,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었으므로 오직 중산층만이 이런 무장을 감당할 수 있었고, 한 도시 국가의 국력은 도시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이렇게 스스로 중장보병의 무장을 갖출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산층이 몰락하여 빈민이 되었다면, 그만큼 도시가 약해졌다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몰락한 시민들이 어떤 지위를 가졌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도 자유인, 즉 페리오이코이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렇게 경제적으로 쇠락하여 시민권을 잃은 자들은 자신의 조국 스파르타에 대해 무척이나 분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원래 스파르타에는 웅장한 성벽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누군가 도시 방어에 대해 묻자, 스파르타의 전설적인 입법가인 리쿠르구스가 '벽돌로 쌓은 벽보다 사람으로 쌓은 벽이 더 튼튼하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어떤 아테네 인이 스파르타 인을 놀리며 '우리들은 에리다노스 (Eridanos, 아테네 인근의 강) 강가에서 너희들을 여러번 무찔렀다' 라고 말하자, 그 스파르타 인은 묵묵히 이렇게 대꾸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에우로타스 (Eurotas, 스파르타 인근의 강) 강가에서 너희들을 무찌른 적이 한번도 없군.'  


또, 리쿠르구스는 방어 전략을 묻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난하게 살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지 말라."


이는 스파르타의 안보에 있어, 경제적 평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가르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손들이 돈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요.



 


(리쿠르구스의 법제가 꼭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요.  어차피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거치면서 리쿠르구스 체제의 한계가 보였기 때문에 스파르타도 어쩔 수 없이 변화한 것입니다.  사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스파르타의 승리로 돌아간 것은 알고 보면 결국 페르시아가 스파르타를 금전적으로 후원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체제가 우수했기 때문이 아니지요.  그 한계는 결국 나중에 '안탈키다스의 평화'라는,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에게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 도시들을 팔아넘기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BC. 479년, 플라타에아 (Plataea)로 진격했던 Spartiates 5천명이 BC. 371년, 레욱트라 (Leuctra) 전투에서는 불과 7백명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스파르타의 병력은 훨씬 많았습니다.  레욱트라 전투에서, 동맹군을 합하면 스파르타 측은 무려 1만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대항하는 테베 군은 6천~7천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시민 공동체로서의 애국심이 사라진 군대는 백년 전 플라타에아 전투에 참전했던 그 스파르타 군과는 질적으로 너무나 달랐습니다.  이날의 패전 이후, 스파르타는 지속적인 쇠락을 거듭하며 평범한 시골 마을로 변모해버렸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스파르타의 패망은 레욱트라 전투의 결과 때문이 아닙니다.  레욱트라 전투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고, 그 원인은 스파르타에서 심각해진 빈부 격차였던 것입니다.


 


(당시 그리스 군 전법은 매우 단순하여, 중장보병의 밀집 대형, 즉 phalanx들끼리의 충돌에서 어느 쪽이 체력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더 우세한가를 겨루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식 축구의 스크럼 싸움과 비슷했지요.)




세상에 빈부 격차가 없을 수는 없고, 또 적절한 빈부 격차는 경제에 활력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원래 보수 쪽에서 중시하는 대로 경제적 자유를 그대로 풀어놓아 두면, 반드시 빈부 격차는 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사람들의 능력은 평등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약육강식의 경제 활동 속에서도 빈부 격차를 줄이려는 어느 정도의 조치는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PS. 


위에서 언급한 에리다노스 강과 에우로타스 강 이야기처럼, 스파르타 인들은 짧고도 강렬한 경구를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이런 촌철살인의 짧은 경구를 즐겨 사용하는 것을 라코닉 (laconic, 스파르타가 있던 지방의 이름이 라코니아) 하다고 표현하지요.  가령 30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끝장 낸 스파르타의 장군 리산드로스 (Lysandros)가 아테네를 정복한 뒤 본국의 장로들 (Ephor)에게 보낸 편지에는 딱 한줄, '아테네를 정복했음'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로원에서는 '말이 너무 길다, 그냥 "정복"이라고만 썼으면 충분했을 것을' 이라고 한탄했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제 생각에, 이런 라코닉한 표현 중에 최고의 것은 스파르타의 몰락 이후에 나왔습니다.  바로 다음의 경우였지요.




(영화 알렉산더에서 발 킬머가 열연했던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입니다.  실제로도 그는 애꾸눈에 광폭한 사내였다고 하지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가 스파르타에게 항복을 요구하면서 "만약 내가 라코니아에 들어간다면 스파르타를 평지로 갈아 없애 버리겠다" 라고 협박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에 대해 스파르타 인들이 보낸 답장에는 단 한 단어, "αἴκα (If, 만약에 말이지)" 이라는 단어만 씌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읽은 필립 2세는 스파르타 정복을 포기했고,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스파르타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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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01.03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부터 역사적 리뷰가 정치적 성향이 좀 있었다고 봤지만 테마를 잘잡으셔서 크게 개의치않고 봤는데... 이건 너무 뜻밖의 뜬금포라 다읽고 할 말을 잃어서 이렇게 써봅니다.

    P.S)펠로폰네소스 전쟁때 충차 같은 공성병기가 없었다고 하셨는데, 이미 기원전 8세기때부터 아시리아가 쓰고 있었다고 저는 알고있습니다.

    • nasica 2019.01.03 2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그리스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한국 남성 평균치보다는 관련 책을 더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공성병기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앗시리아에서 공성용 사다리차 같은 것을 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스에 그런 공성병기가 등장한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하들이 동방에서 돌아온 BC300년 경, 그러니까 펠론폰네소스 전쟁 이후 약 1백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아마 아시아에서 배워왔나보지요. 데메트리우스가 로도스 섬을 공략할 때 신기한 공성병기를 동원할 때 그 장관을 구경하려고 포위당한 주민들까지 나왔다고 읽은 것이 기억납니다.

    • reinhardt100 2019.01.03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성병기 문제. 이게 의외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향배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두분 말씀이 모두 옳은데 이 당시 방벽 수준에 비해 공성병기의 위력이 약했다는 것과 더불어 펠로폰네소스 전쟁 자체가 일종의 기동전적 성격이 굉장히 강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예로 초기 아테네 공성전 이후의 전선 전개 양상이 당시 전쟁의 수준을 한창 넘어 전방위적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당장, 펠로폰네소스 반도 습격전, 암피폴리스 공방전, 시라쿠사 포위전 같이 전장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보니 공성병기를 가지고 다닐 여력이 안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공성병기 소재인 목재를 현지에서 조달하는게 기본이었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그런 일 하다가 전투적기를 놓치는게 허다하다보니 차라리 기동전으로 하자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파르타의 몰락 원인이라 이거 할 말 많은데 프로젝트하다 여유 생기면 적겠습니다. 의외로 스파르타가 막장 군국주의국가 맞지만 개화된 면도 있거든요.

  3. 메뚝 2019.01.03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의 매일 방문하여 새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중고등학생때 그리스로마 고전을 탐독하셨다니
    은하영웅전설만 읽어대던 제가 떠올라 좀 부끄럽네요.

    새해에도 지치지 마시고 재미난글 많이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4. ㅇㅇ 2019.01.03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파르타가 망한 이유는 다른게 아니고 군국주의의 끝을 보여줘서인 것같습니다. 일본제국처럼말이죠.

    • 고로 2019.01.03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보다 북한을 더 닮았는뎅.. 아~~ 요즘은 이렇게 말하믄 적폐로 몰려 처단받는당..

    • nasica 2019.01.03 2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고로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스파르타는 독재가 아니라는 점만 빼고는 북한이지요. 군국주의 + 공산주의니까요. 북한도 어설프게 개혁개방했다가 다 망할 것이다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탈북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미 밑바닥은 다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있다고 하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듯 합니다. 북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독재지요.

    • 수비니우스 2019.01.03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북한이 일제를 따라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라는 책인데요 읽어보면 재밌습니다.

  5. 캐리비안베이의해적 2019.01.03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필하세요!

  6. 성북천 2019.01.03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항상 글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플라타에아 전투를 이끈 파우사니아스는

    스파르타의 왕이 아니라 섭정이었던 걸로 아는데

    다시 확인 부탁드립니다

    새해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nasica 2019.01.03 2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 저는 이날 이때까지 파우사니아스가 2명의 스파르타 왕 중 한명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섭정이었군요. 오늘도 댓글에서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 최홍락 2019.01.03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섭정인 파우사니아스의 손자가 스파르타 왕 파우사니아스인지라 그걸 혼동하신듯 합니다.

  7. 조르바 2019.01.03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부격차는 나쁨'

    • raa 2019.01.03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연히 좋은 게 아니죠. 빌게이츠와 워렌버핏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는게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래야 세상이 좋은 쪽으로 간다는 걸 알 정도의 머리는 있으니까 그러는 거죠. 한국에는 그 정도의 머리도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게 어이가 없습니다만.

  8. raa 2019.01.03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마도 똑같은 매커니즘으로 망할 뻔 했죠. 원로원은 그걸 막으려던 그라쿠스 형제를 죽이고 거의 백년은 죽일놈취급했고요. 역사를 아는 사람이면 납득이 잘 가는 글인데 댓글들은 원로원들 수준이 많네요.

    • nasica 2019.01.03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나 댓글 다신 분들이나 결국 다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표현이 다를 뿐이지요. 어느 누구도 '지나친 빈부격차가 좋다' '빈부격차가 제법 벌어져야 나라다운 나라지' 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모두가 경제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도 없으리라 믿습니다.

  9. 유애경 2019.01.04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에 말이지' ...스파르타의 포스가 느껴진다고 해야하나,스파르타답다 싶네요!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필립2세는 얼마나 그한마디에 허탈(?)했을까...! 문득,필립2세가 어깨를 휘청하는 개그를 연상했네요(웃음).
    영화는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10. 카리우스 2019.01.04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는 정말 글 쓰신 의도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매반 글에 정치색이 조금씩 있어도 개인의견이니 그러려니하고 넘어갔습니다만 오늘은 좀 과격하신것 같네요 북한 같았던 시기에는 강대국이었는데 돈이 흘러 들어왔더니 망했다 이겁니까?

    • 아니..... 2019.01.04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파르타의 초기형태는 스파르타 시민과 페리오이코이 사이의 빈부격차가 많이 안 났다는거죠. 그게 북한처럼 다 가난해서 그런거구요. 반대로 아테나처럼 모두가 부유해도 빈부격차가 크게 나면 스파르타처럼 강대국이었습니다. 근데 스파르타에 자본이 갑자기 몰리면서 자본 컨트롤을 실패했고 그에 따른 급격한 빈부격차로 망했다는 겁니다. 여기 누구도 북한쪽에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 nasica 2019.01.04 2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리우스님께서 "빈부격차가 큰 것이 국가 안보에 유리합니다"라고 댓글을 쓰신 것이 아니듯이 저도 "공산주의 군국주의가 좋은 것이다"라고 쓴 것이 아닙니다. 바쁘셔서 그러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많은 분들은 글을 찬찬히 읽지 않으시고 띄엄띄엄 힐끗 본 뒤 자신만의 틀로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글의 취지는 "지나친 빈부격차는 국가안보에도 좋지 않다"입니다. 아마 거기에 반대하시는 분은 없으시리라 생각합니다.

  11. 소화 2019.01.04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독 이신 분들이 많으네요...

    글쓰신 의도를 모르고 이렇게 편협하고 좁은 사고를 가진,

    자칭 보수 우익 들이 많을 줄 첨알았습니다...

    스파르타가 이래서 망했다는 글쓴이의 의견만 있습니다.

    어디에도 경제적 평등, 기계적 평등, 공산 주의, 이런 것들이 좋다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갈등이 야기 된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내용이니 줉이자는 것이지.
    기계적 평등을 하자는 내용은 없습니다.

    글내용을 잘 읽어보면, 기계적평등, 강제적평등은 언젠가는 망한다 입니다...
    공산주의 찬양글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유 한국당은 보수 우파가 아니라, 독재 잔당 입니다...

  12. Spitfire 2019.01.04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부격차를 줄이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있다면 정말 그 논리를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문제는 과연 어떻게 빈부격차를 줄일 것인가 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현 정부가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말 왠만한 방법은 다 써본 것 같은데, 오히려 빈부격차가 더 커지는 문제가 생겼지요. 정책을 탓하는게 아니라, 해결방법을 찾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일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저의 생각으로는 빈부격차 문제의 초점을 분배와 최빈층에만 두지 말고, 중산층을 육성하는데 좀 더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최하위와 최상위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최하위의 부는 0에 수렴하는데 최상위의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요..), 그나마 중산층이라도 두터워지면 여러가지 이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세금으로 지원할 빈곤층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니 그들에 대한 복지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납세자의 숫자와 납세규모가 늘어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부자들한테서만 세금을 거둬서 해결한다는 비난도 잠재울 수 있구요. '너네만 세금내는거 아냐~' 이렇게요. 셋째는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할 수 있어 정치적 안정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일단 소득이 있고 납세를 하면 사회에 대한 책임감도 가지게 될 것이고, 무작정 정부를 비난하는 수도 줄어들테지요. 부수효과로 '평생지지자'도 만들 수 있을지두요~

    이렇게 중산층을 늘리는 방법은 경제성장밖에는 없습니다. 일단 먹을 게 많아져야 육성도 되고 나눠먹을 거리도 생기는 거니까요. 성장에 중점을 두면 분배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을 수 있는데, 이건 제도적으로 해결할 방법 밖에 없습니다. 불법 편법을 저지르는 애들은 다시는 사회에 발을 못붙이게 엄벌하고 공정한 경쟁을 하려는 이들이 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를 구축한다면 지금처럼 빈부차이에 대한 불만과 부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좀 누그러들지 않을까 합니다. 분배라는게 일률적으로 동등한 분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능력에 따라 노력한 만큼 합당한 결과물을 받는 것이니, 빈부격차 해소에 대한 논쟁도 좀 수그러 들 수 있을거 같구요.

    성공사례로 미국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미국 인구의 90%는 한국의 중산층보다 절대 잘산다고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빈부격차는 당연히 어마어마 하구요~ 하지만 미국은 자본주의의 제도가 잘 확립되어 있고 중산층이 튼튼하다보니, 우리나라보다는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이나 부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그리 크지는 않지요. 그러니 부자들의 기부나 사회공헌도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많습니다.

    근데 이야기를 하고 보니 현실적으로 과연 우리가 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긴 합니다. 얼마전에 중국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중국인들도 요즘 빈부격차에 분노하고 부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중국인들과 이야기할수록 한국과 중국의 제도나 사람들의 생각이 정말 유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어쩌면 우리가 이 모양인건 그냥 아시아 종특일지도 모르겠습니다..ㅠㅠ

  13. ㅇㅇ 2019.01.04 2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빈부 격차를 어떻게 '자연스러운,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그 사회의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파르타는 너무나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방식으로 빈부격차를 자연스러운 수준 이하로 두려고 하다보니
    사회의 역량을 키울 시기를 놓쳐버렸고 (덤으로 경제, 기술의 발전까지 놓쳐야했고) 그러다보니 약한 외부 충격에도 뻥 터져버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걸 현재 사회에 적용하려고 한다면 지금 상황이 너무 과한 빈부격차를 허락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고
    반대로 지금 너무 강압적으로 억제하려는 움직임이 많은데 역효과를 낸다고 볼 수도 있겠죠

    스파르타는 양쪽의 예시가 다 될 수 있는 사례인거 같습니다

  14. 카를대공 2019.01.07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혹 나시카님께서 올리신 글 읽다 예전 블로그에도 쓰셨던 글인가?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평등하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사람들마다 재주와 능력치가 달라서,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재주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는데......"

    이 문장을 읽으니 확실히 예전 글이라는 기억이 나네요.

    전 나시카님께서 무심한 듯 평범하게(?) 쓰신 문장 중에 오래 기억이 나는게 많습니다.

  15. 소화 2019.01.07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없다면.
    빈부 격차는 인정해야 한다면.
    빈부 격차에 따른 불만을 줄여야죠.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고, 어려운 일입니다.

  16. 동우 2019.01.09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빈부격차 때문에 스파르타가 망한건 부수적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유는 과거에는 영웅놀이하는 친구들만(소수 시민)으로도 충격을 견딜수 있지만, 썩은부분이 펠로포네스 전쟁의 충격으로 무너진거죠 . 겉보기에는 단단한 요새지만 안에서는 이미 금이 다간 성벽인데 총력전의 충격으로 붕괴된거죠. (물론 스파르타도 계급타파 등의 노력만으로 이미 시대착오적인 구조가 바뀌진않죠.)
    결론적으로 이미 스파르타는 체제적인 한계로 망조인데 펠로포네스가 결정타를 가하면서 생겨난 과속화 현상이 빈부격차라 생각합니다.

  17. 동경좀비 2019.01.13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코닉을 보니 8월의 포성의 한 문장이 떠오르네요.
    프랑스군 총사령관 죠프르가 라코닉 한 문장으로 공격을 요청하자, 대영제국대륙원정군 사령관 프렌치는 루크웜(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둘다 귀족적인 성격이라 통역장교없이 글로 작전회의를 했다고 하네요.

  18. 윌라엄 2019.01.17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봤어요. 감사합니다.

  19. 만슈타인 2019.01.31 0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신념은 보수지만 마음에 와 닿는 말이 많네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b

  20. 민주시민 2019.02.13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빈부격차를 확대시키는 소득주도성장은 폐기해야만 하겠죠.. 한국이 북한보다 더 비참한 스파르타가 되고 결국엔 외세의 자금력에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21. shaind 2019.04.17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명높은 스파르타빠 크세노폰이 이미 펠로폰네소스 전쟁 무렵에 "앞으로도 라케다이몬이 패권자 지위를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이제 그들은 신에게도, 리쿠르고스 법에도 복종하지 않으니까"라는 말을 남겼죠.

    아리스토텔레스도 라케다이몬의 몰락은 중장보병 유산시민계급의 급감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의 분석은 리쿠르고스 법이 시민 토지재산의 매매는 금지했지만 상속, 유증, 양도는 막지 못해서 점점 부가 집중됐다고 쓰더군요. 근데 제가 보기에도 그런 문제보다는 펠로폰네소스 맹주 자리에서 부가 흘러들어온 게 더 큰 문제같긴 하네요.

저는 신입사원 기본 교육을 싱가폴에서 싱가폴 강사에게서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협상에 대한 내용도 있었는데, 거기서 당시로서는 굉장히 인상적인 강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여성 강사분이 가르치려던 것은 협상을 위해서는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스토리 라인을 아래와 전개하더라고요.


"내가 학생 시절에 내 여동생과 냉장고에 하나 밖에 안 남아 있던 오렌지를 두고 서로 다툰 적이 있었다.  한참을 싸우고 난 뒤에야 알았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오렌지로 쥬스를 만들어 마시려는 것이었는데 동생은 오렌지 껍질로 마멀레이드를 만드려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서로 싸울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제 기억으로는 저는 그때 이미 마멀레이드가 뭔지는 대충 알고 있었고 (그것도 카투사 복무 중에였던가...?) 먹어본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때 그 강사의 말이 실제로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감탄했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강사의 스토리 라인은 엉터리였습니다.  저 이야기는 물론 강사의 실제 경험담이 아니라 흔히 써먹는 그런 협상 교육의 픽션일 뿐인데다, 마멀레이드에 분명히 오렌지 껍질이 조금 들어가긴 합니다만 주재료는 바로 오렌지 쥬스거든요.  그러니까 언니와 동생은 죽어라고 서로 싸울 운명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이 글은 전에 이케아에서 사온 스웨덴제 마멀레이드 병을 새로 오픈한 기념으로 쓰는 것입니다.  주성분은 보시다시피 오렌지 주스입니다.) 




미국에서는 과육을 통째로 갈아서 만든 것을 잼(jam)이라고 부르고 과즙, 그러니까 쥬스만을 이용해 만든 것을 젤리(jelly)라고 구분해서 부릅니다.  미국 애들이 간단한 점심 식사로 애용하는 PBJ라는 것도 땅콩버터와 젤리(peanut butter & jelly sandwich) 샌드위치이지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는 아닌거지요.  그러나 그렇게 깐깐하게 구분하는 경우는 미국 내에서도 그다지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국 등 미국 외 지역에서는 그냥 다 잼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도 젤리는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뜻인 물컹물컹한 디저트용 과일 젤(gel) 가공식품을 말한다고 합니다.




(PBJ sandwich라는 단어로 이미지 검색을 하다 찾은 사진인데, 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로 점심 때우는 것이 사실 건강에도 그렇게 해롭지는 않고 돈 절약에 매우 좋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물론 정반대로, 잼 바른 빵이야말로 건강에 매우 나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우습게도, 이 젤리(jelly)라는 말 자체는 다른 모든 좋은 것들처럼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프랑스어로 과즙이나 육수 등이 굳은 것을 젤레(gelée, 거의 쥴레 정도로 발음이 됩니다)라고 하는데, 이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거든요.  반면에 잼(jam)이라는 것은 교통 체증이라는 뜻의 traffic jam 처럼 '막힌다'라는 뜻이 원래 뜻이었는데, 나중에 진득진득하게 굳힌 과일 잼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답니다.  잼은 병을 거꾸로 들어도 잘 흘러나오지 않아서 그런 단어로 쓰이게 되었나 봐요.  정작 영국에 과일 잼이라는 신상품을 전달해준 프랑스에서는 젤리든 잼이든 꽁피튀르(confiture)라고 부릅니다.  심지어는 오늘의 주제인 마멀레이드도 프랑스에서는 그냥 꽁피튀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고, 굳이 구별하여 la marmelade d'oranges (마르멀라드 도랑쥐)라고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는 정도랍니다.


마멀레이드는 과일로 만든 잼 중에서도 다소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잼입니다.  싱가폴 강사가 오해할 정도로 (또는 어리숙하게도 제가 속을 정도로) 다른 잼과는 달리 과일 껍질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과나 복숭아 등은 껍질째 먹기도 하지만 오렌지는 껍질이 두꺼운데다 쓰고 텁텁한 맛이 나기 때문에 껍질을 절대 먹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런 몹쓸 껍질을 잼 속에 넣었을까요 ?  




(수동 마멀레이드 기계입니다.  정확하게는 오렌지 껍질을 잘게 써는 도구이지요.) 




이유는 펙틴(pectin) 때문에 그렇답니다.  위에서 잼과 젤리를 구분해서 말씀드렸는데, 잼은 그냥 과일을 통째로 으깨서 설탕을 넣고 끓이면 대충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사과 주스에 설탕을 넣고 끓이면 사과 젤리가 만들어질까요 ?  저는 직접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안 만들어진답니다 !  그냥 엄청나게 진하고 단 가당 사과 주스가 되어버린다네요.  잼처럼 젤라틴 형태로 만들어지려면 펙틴(pectin)이라는 성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주로 과일 껍질 속에 많은 물질입니다.  그러니 우아하고 깔끔하게 과육 찌꺼기는 다 걸러내고 주스만 뽑아서 젤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공으로 만든 펙틴을 따로 집어넣어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오렌지 마멀레이드는 인공 펙틴 따위가 없던 17세기 후반에 이미 존재했던 물건입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  바로 오렌지 껍질 덕분입니다.  누가 맨처음에 오렌지 껍질을 잘게 썰어 넣으면 마멀레이드가 젤라틴처럼 응고된다는 것을 발견했는지는 기록에 없지만, 아무튼 그 이름 모를 천재 덕분에 오늘날의 마멀레이드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마멀레이드에는 다른 잼과는 다른 점이 또 있습니다.  그것도 바로 그 껍질 때문이기는 한데, 바로 약간 쓴 맛이 난다는 것이지요.  예전에 TV에서 외화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 드라마에서 봤던 내용 중에 마멀레이드가 연관된 독살 장면이 있었습니다.  어떤 가정집에서 독극물에 의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사용된 독극물은 원래 약간 쓴 맛이 나는 물질이라서, 피살자가 의심하지 않고 먹게 하기 위해 독극물을 아침식사에 나오는 커피나 홍차, 마멀레이드 등과 같이 약간 쓴 맛이 나는 식품 속에 넣었을 것이라고 추리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그 독극물은 마멀레이드에 들어있었고요.  




(찾아보니 그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물 원작은 A Pocket Full of Rye 라는 작품이었네요.)




마멀레이드가 나오는 그 추리 소설 장면에서 드는 생각 중 첫번째 것은 의외로 많은 기호식품에서 쓴 맛이 난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커피, 차, 마멀레이드는 물론 초콜렛에서도 약간 씁쓸한 맛이 나지요.  보통 사람들이 쓴 맛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의외로 쓴 맛이 우아한 맛을 내는데 꼭 필요한 모양입니다.  물론 그 쓴 맛을 그대로 즐기는 사람보다는 그 쓴 맛을 엄청난 설탕과 우유 등으로 중화시켜서 즐기는 분들이 훨씬 많지요.  


두번째 생각할 부분은 왜 마멀레이드를 비롯한 과일 잼은 꼭 아침식사에만 나오느냐 하는 점입니다.  전에 (그때는 국내의 어떤 고급 콘도에서 진행된 교육이었는데) 회사 교육 때 강사를 하시던 어떤 노년의 컨설턴트분과 점심 식사 테이블에 같이 앉은 적이 있었습니다.  양식으로 제공된 그 점심에서 롤빵과 함께 1회용으로 포장된 딸기잼도 함께 나왔었습니다.  그걸 보고 그 강사분이 '원래 과일 잼은 아침에만 나오는 것이며 점심이나 저녁에는 잼 대신 버터가 나와야 하는데 이 식당 매니저는 양식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혀를 차시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실제로 저도 해외 호텔에서 식사를 할 때 점심이나 저녁 식사에 과일 잼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제 긴 카투사 생활 중에도 없었고요.  점심이나 저녁에 유일하게 나오는 잼은 디저트로 나오는 패스트리에 이미 잔뜩 채워진 잼 정도였지요.  




(전에 파리에 가족 여행 갔을 때 먹었던 호텔 조식... 호텔 부페 식당에서 저렇게 작은 잼 병이 제공되는 것은 조식 뿐이더라고요.)




저는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딱히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 짐작에는 서양인들이 과일을 의외로 많이 먹지 않으며 과일을 먹더라도 주로 아침식사에만 먹더라는 것과 상관있는 것 같습니다.  제 카투사 복무 중에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과일은 아침식사 때만 나왔고 점심 저녁에는 따로 과일이 나오지는 않았거든요.  잼이든 젤리든 원래 시작은 빵에 발라먹기 위한 버터 대용이라기보다는 과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과일 대신 또는 과일과 함께 아침 식사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마멀레이드 등 과일 잼을 아침에만 먹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령 루이 14세 같은 경우 정찬을 들 때 마지막 디저트로 마멀레이드를 먹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빵에 발라 먹는 것이 아니라 은접시에 담아온 것을 푸딩처럼 은스푼으로 떠먹는 형태였지요.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먹던 마멀레이드를 아침식사에 먹기 시작한 것은 스코틀랜드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습관은 곧 영국으로 전파되어, 19세기에는 영국인들도 아침에 마멀레이드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여류 작가인 루이자 알콧(Louisa May Alcott)이 1800년대에 영국을 방문했을 때 기록한 글에서, 마멀레이드와 차가운 햄 한 조각이 영국식 아침식사의 필수품이라고 적었을 정도니까요.


마멀레이드 이야기를 하는데 난데없이 스코틀랜드가 주요 역할을 하는 나라로 나오니까 약간 의아하실 것입니다.  따뜻한 지방에서 열리는 오렌지로 만드는 마멀레이드는 춥고 척박한 스코틀랜드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마멀레이드의 역사에서 실제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원래 마멀레이드는 좀더 뻑뻑하고 시커먼 색깔을 띤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스코틀랜드에 가면서 만들 때 좀 더 물 함량을 늘려 오늘날처럼 빵에 쉽게 발라먹을 수 있는 밝은 오렌지색의 스프레드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에 마멀레이드를 전파한 사람은 16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1세(Mary Stuart, Mary I of Scotland)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메리는 귀국할 때 마멀레이드를 들고 왔다고 전해지는데, 일부 사람들은 마멀레이드라는 이름 자체가 메리 1세 때문에 생겼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메리는 머리가 아플 때마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마멀레이드를 먹었는데, '메리가 아프다'라는 "Mary is sick"이라는 영어 문장이 프랑스어로는 "Marie est malade"라고 되거든요.   그래서 프랑스어를 쓰는 시녀가 뭔가 우아하게 "Marie est malade" (마리 에 말라드)라고 혼잣말을 하며 신기한 과일 잼 단지를 들고가는 것을 본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그 과일 잼을 '마멀레이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지요.




(미모로 유명했다는 메리 1세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여왕은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암살 모의 혐의로 목이 잘렸습니다.)




무척 재미있고 그럴싸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마멀레이드라는 이름은 메리 여왕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포르투갈어 marmelada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서양모과(영어로는 quince)를 포르투갈어로는 marmelo(마르멜루)라고 하는데, 이걸 꿀에 절여서 잼으로 만든 서양모과 잼을 marmelada라고 합니다.  원래 마멀레이드는 꼭 오렌지로 만든 잼만을 뜻하지는 않고 모든 과일 잼을 부르는 이름이었는데, 저로서는 이해가 안 가지만 서양모과 잼은 가장 오래된 잼으로서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거든요.  그리스어로는 서양모과를 melímēlon(꿀 + 사과)으로 불렀는데, 원래 서양모과는 과육이 너무 단단하고 떫은 맛이 나서 그대로는 못 먹고 꿀에 절여서 부드럽게 해서 먹었다고 합니다.  







Source : https://life.spectator.co.uk/2016/10/jam-beautifully-preserved-history/

https://en.wikipedia.org/wiki/Fruit_preserves

https://en.wikipedia.org/wiki/Marmalade

https://www.dailymail.co.uk/femail/food/article-3746934/The-foods-NEVER-eat-breakfast.html

https://en.wikipedia.org/wiki/Orange_(fruit)

http://www.nyu.edu/classes/bkg/forklore/archives/2005/03/marmalade_redux.html

https://www.quora.com/Why-does-all-marmalade-have-orange-peel-in-it-Where-can-I-find-a-marmalade-without-orange-peel

https://en.wikipedia.org/wiki/A_Pocket_Full_of_Rye

https://moneysavingmom.com/2012/04/if-you-want-something-badly-enough-you-can-usually-find-a-wa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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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8.12.31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해외여행은 가본 적이 없어 양식은 아침에만 잼이 나오는 것도 몰랐네요. 이건 북유럽, 남부유럽, 동유럽 가릴 것 없이 똑같은건가요? 지역에 따라 다른건지 좀 궁금하네요.

    올 한 해도 여러 볼거리, 읽을거리 챙겨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nasica 2018.12.31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설마 그런 소소한 관습들이 항상 지켜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가령 이탈리아에서 오후에 카푸치노를 시킨다고 설마 진짜 야만인 취급 당하겠습니까 ? 새해에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 상큼한딸기 2018.12.31 14: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보고갑니당!! 제블로그도 방문해주세요!

  3. 밥동뎅 2018.12.31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볼때마다 탄복합니다.
    새로운 사실 알게 되어 또한 기분이 좋네요.
    어떻게 이런 지식을 찾아서 글도
    재밌게 쓰시는지..실제로 뵙고싶네요.
    나시카님.ㅎㅎ
    새해에도 항상 좋은일만 있으시고
    이런 멋진글 부탁드립니다.
    해피 뉴 이얼~~^^

  4. 유애경 2019.01.01 0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수고하십니다.
    올해도 좋은 한해 되시고 건필하시길...!

  5. reinhardt100 2019.01.01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년에도 하시는 일 다 잘 되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새내기 컨설턴트로써 솔직히 부끄럽네요. 저런 내용은 전혀 몰랐습니다.

    • nasica 2019.01.01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부끄럽다니 희한한 말씀이십니다. 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모르시는 것이 열심히 일하시는데 더 좋습니다.

    • reinhardt100 2019.01.01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년에 첫 프로젝트하면서 이것저것 시뮬레이션 했는데 내일부터 사실상 정말 처음부터 제가 참여하는 프로젝트 시작입니다. 금융 및 증권분석분야에 어떻게 쓰일지 연구하면서 시작해야 하는데 생각 많이 해야 할 듯 싶습니다.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 감사드립니다. 나시카님

  6. KCH1202 2019.01.01 2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7. 오리 2019.01.02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8. TheK의 추천영화 2019.01.02 0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양식과 마멀레이드에 대한 상식을 알게 되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앞으로도 가끔 들려 많은 가르침 받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

이번 글을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성경 이야기입니다.  저는 정식으로 신학을 공부하기는 커녕 성경을 완독해본 적도 없는 동네 아저씨에 불과하니 진지한 신학 강론을 쓸 수는 없고, 그냥 가볍게 읽고 웃을 만한 이야기로 쓴 것입니다.  '잘 모르는 평신도들은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구나'라고 그냥 가볍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개신교 신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나일론 신자입니다.  제 와이프는 이대로 회개하지 않고 죽을 경우 제 가련한 영혼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무척 염려할 정도지요.  제가 제대로 된 신자로 인정을 못 받는 이유는 성서나 교회에 대해 자꾸 이런저런 의심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12사도 중 절대 베드로 같은 사람은 아니고 의심많은 도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저 같은 사이비가 자신을 도마에 비유한다는 것을 안다면 도마가 펄쩍 뛸 것 같기는 합니다.




(그 유명한 카라바죠의 명화 '성 도마의 의심'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이후 처음 나타나셨을 때 현장에 없었던 도마가 그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 옆구리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다'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정말 손가락을 넣어보게 하신 이야기가 요한복음 20장 24절에 나오지요.  저말고도 기독교에 사이비/나일론 신자들이 많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이야기를 두고 '예수님께 부활의 능력은 있지만 상처 치유 능력은 없다, 예수님은 힐러가 아니라 네크로멘서다'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좀비 창시자' 등등 온갖 우스개 소리를 늘어놓곤 합니다.)





(주님,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그냥 한번 웃자고 한 짓입니다.)





(의심많은 도마의 이야기는 중세 유럽에서 또다른 전설을 낳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 때 선교 때문에 인도에 있었던 도마는 그 승천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도마가 의심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성모 마리아께서 도마에게 증거물로 자신의 허리띠를 떨어뜨려 주었다는 것이지요.  이 베키오의 명화 '성모 승천'에서 도마는 파란 옷 입은 사도의 머리 위쪽 언덕에서 달려오고 있는 중입니다.   영원히 조롱받는 의심많은 도마 T T )




어떤 분들은 성서는 사람이 그냥 쓴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사 한글자 한글자 씌여진 것이기 때문에 (심지어 여러가지 번역본에서조차도) 토씨 하나도 실수로 씌여진 것이 없으니 모든 문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점들 때문에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몹시 어려운 방향으로 성서를 받아들이시는 분도 있습니다.  가령 어느 날 제게 문득 엉뚱한 의문이 들더라고요.  


'흔히 성서에서 어린이들은 죽으면 그대로 천국에 간다고 하던데, 몇 살까지를 어린이로 인정해줄까 ?  그게 만약 만 14세라고 하면, 14번째 생일을 하루 남겨두고 죽은 아이는 천국으로, 하루 넘기고 죽은 아이는 지옥으로 가는 것일까 ?'


이 의문을 제 주변의 독실한 신자께 여쭈어봤더니, 천만뜻밖의 대답이 돌아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린이라고 무조건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찾아보면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천국에 간다는 것이지 어린이라고 무조건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다'라고 하시더군요.


마태복음 18:3 KLB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너희가 변화되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거기까지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제가 '아니 그럼 아직 말도 못하는 아기들이 불행히도 병이나 사고로 죽을 경우, 걔들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인가요 ?' 라고 여쭈니 침통한 표정으로 답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기독교인 부모의 제1 의무는 아이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까지 죽지 않도록 잘 돌보는 것이다"  


저는 아무리 성경이라고 해도 그렇게 글자 하나하나를 문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신의 뜻은 미물인 인간의 두뇌로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어눌한 인간의 언어로 신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성서는 은유와 비유가 가득한 책인지라,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려 하는 그 본질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경 말씀에 대한 해석은 종파마다 사람마다 매우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로마 치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써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는 당시의 관습과 상식, 그리고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성경은 원래 고대 히브리어로 적힌 구약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람어를 쓰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그리스어(헬라어)로 적었다가 나중에 라틴어로 번역된 후, 다시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을 거쳐서 우리말로 다시 넘어온 것이다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역사학은 물론 히브리어, 헬라어와 라틴어까지도 익혀야 하고, 전통적으로 유럽 사회에서는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신학을 공부했지요.




(영어-헬라어 대역본인 누가복음 16장입니다.  검색엔진도 구글번역기도 없던 중세 시절에 헬라어 원문으로 성서를 자유자재로 인용하시던 분들이 중세 유럽 정신 세계를 지배했던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복음 16장 1절부터 나오는 이 이야기는 여러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가지 해석이 분분한 구절이라고 하더군요.  



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에게 재산 관리인 하나가 있었다. 주인은 그가 자기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을 듣고

2  그를 불러 물었다. ‘내가 너에 대해서 들은 소문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더 이상 내가 너에게 재산을 맡길 수 없으니 지금까지 네가 맡아 하던 일을 다 정리하라.’

3  그러자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일자리를 빼앗기게 생겼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고 … … .

4  옳지, 알았다! 내가 이렇게 하면 쫓겨나더라도 사람들이 나를 자기들의 집으로 반갑게 맞아 주겠지.’

5  그러고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하나 불러다 놓고 먼저 온 사람에게 ‘당신은 우리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6  그가 ‘감람기름 100말입니다’ 하자 그 재산 관리인은 그에게 ‘어서 앉아 이 증서에 50이라고 쓰시오’ 하였다.

7  또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진 빚은 얼마요?’ 하고 묻자 그는 ‘밀 100섬입니다’ 하였다. 그래서 재산 관리인은 그에게 ‘당신의 이 증서에다 80이라고 쓰시오’ 하였다.

8  주인은 옳지 못한 이 재산 관리인이 일을 지혜롭게 처리한 것을 보고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자신을 위해 세상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러면 그것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집으로 맞아들일 것이다.

10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성실하고 작은 일에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큰 일에도 정직하지 못하다.

11  너희가 세상 재물을 취급하는 데 성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하늘의 참된 재물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성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너희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한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든가 아니면 한편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보통 '부정직한 청지기' 또는 shrewd steward 등으로 불리는 이 재산 관리인 이야기는 정말 이해가 잘 안 가는 구절입니다.  분명히 저 재산 관리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사문서 위조를 저지른 나쁜 사람이자 파렴치 범죄인입니다.  그런데 왜 피해자인 저 주인은 그 관리인을 칭찬한 것일까요 ?  또 왜 예수님께서는 저 이야기를 본받아야 할 좋은 예로 드신 것일까요 ?  이건 마치... 부자들의 재물은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는 빨갱이 선동으로도 들릴 수 있는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  



찾아보니 여러 신학자들이 여러 견해를 내놓았고, 아직 (어쩌면 영원히) 명확한 정답은 없는 모양입니다.


1.  가장 전통적인 설 : 결과가 중요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관리인이 결국 주인의 평판과 명예를 드높였으니 그 점을 칭찬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과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요 우리가 우리 재산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저 우리가 잠깐 가지고 있는 것 뿐이다 뭐 그런 설교가 이어집니다.  제일 무난하면서도 제일 지루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2. 금융공학적인 설 : 관리인이 탕감한 것은 자신의 커미션


이 설에 따르면 관리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인의 채권을 부당한 방법으로 탕감해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성경에도 자주 등장하는 직업인 당시 로마 제국의 세리(세금 징수원)에 대해 아셔야 합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이스라엘 같은 속주의 세금 징수를 현지 민간인들에게 위탁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받아내야 할 세금이 10 데나리온이라면, 임명된 현지 민간 세금 징수원에게 (가령) 7데나리온만 가져오라는 식이었지요.  원래 피점령지 농민들에게서 세금을 받아내는 것이 어렵쟎아요.  그러니 3데나리온은 민간 세금 징수원에게 주는 비용으로 처리하는 셈이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민간 세금 징수원이 원래 세금을 다 받아낼 수록 징수원의 이익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징수원들은 대부분 세금을 난폭한 방법을 써서라도 악착같이 받아냈고 그 때문에라도 동족의 고혈을 짜내 로마제국에 바치는 민족 배신자로 여겨졌습니다.   


이 설에 따르면 주인과 관리인도 이와 비슷한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관리인이 채무자들에게 탕감해준 빚은 주인의 계좌로 들어가야 할 원금이라기보다는 관리인의 몫으로 가는 커미션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관리인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며 주인의 명예를 높였으니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많은 개신교 목사님들 뿐만 아니라 (영문 위키에 따르면) 카톨릭에서도 이 설을 주로 채택한다고 합니다.


매우 마음에 드는 해석이기는 한데, 그렇다면 관리인이 자신의 커미션을 포기하는데 왜 채무자들에게 찾아가 대출문서를 새로 작성하는지가 설명이 안 됩니다.  게다가 왜 밀 100석을 꾼 사람에게는 80석로 줄여주고, 올리브유 100말을 꾼 사람에게는 50말로 줄여주는지도 의아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논의를 하다가 나름대로의 이론을 제시했었습니다.  곡식은 보관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원래 커미션으로 20%만 주지만, 올리브유는 깨지기 쉬운 토기 항아리에 담아야 하는 등 취급이 어렵기 때문에 커미션으로 50%를 준 것이라고요.  현대에서도 원유 같은 액체 상품은 보관료가 비싸거든요.   그러니까 제 말을 듣던 사람이 이견을 내더라고요.  "하지만 곡식은 쥐가 파먹는데요 !"  제 이론은 회사원들 술자리에서 나온 반론조차도 감당을 못하더군요.


3. 해학 풍자설 : 관리자를 비꼬는 유쾌한 설교


이 설은 예수님께서 꼼수를 써서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부정직한 관리자를 냉소적으로 풍자하는 설교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 책에서도 읽기에, 예수님의 설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엄숙-근엄-진지하지 않았고 풍자와 해학이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그 설교를 듣는 유대인들은 자주 폭소를 터뜨리며 웃었다고 합니다.  


4. 편집 실수설 : 성서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뭔가 실수가 있었다 ?


이건 진짜 소수설로서, 제대로 된 연구에서는 이런 주장하는 것은 못 봤고 인터넷 홈피 등에서만 봤습니다.  다만 저도 이 설이 완전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배운 것 없는 서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비유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런 분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혼동을 일으키는 모호한 설교를 하셨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언어인 아람어로 쓰인 것이 아니라 해외 교포 유대인들을 위해 헬라어로 쓰인 책입니다.  그나마 원본은 (어쩌면 당연히) 분실되었고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누가복음은 복사본의 복사본(third-generation copies)에 근거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복사본들 중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네요.  




(3세기 경에 씌여진 파피루스 종이 위의 누가복음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어느 설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맨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은 확실하다고 봅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여러분,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삽시다.  그것이 크리스마스 정신입니다.  나중에 선거 때가 되면 당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서민들을 위한 복지 확대를 추구하는 쪽에 표를 던져 주세요.  적은 돈이라도 기부도 하시고요.  저도 천국에 갈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옥에 갈 때의 자기 변호를 위해서 눈곱만큼 정도의 기부는 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레미제라블 중에서 미리엘 주교의 일화를 인용하면서 끝냅니다.  저는 저 제보랑씨가 마치 저처럼 느껴져요.  



레미제라블 중에서 -----------


주교의 설교 주제는 자선이었다.  그는 부자들이 지옥을 피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지옥의 끔찍함을 생생하게, 그리고 천국의 아름다움을 달콤하게 묘사했다.  청중 중에는 은퇴한 부유한 상인이 있었는데, 이름은 제보랑이라고 했고 고리대금업자처럼 탐욕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나사천과 서지(serge) 천, 모직천 등을 제조하여 50만 프랑(현재 가치로 약 50억원)의 거액을 모았는데, 평생 불쌍한 거지에게 단 한 푼도 동냥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설교 뒤에, 제보랑씨가 일요일마다 성당 입구에서 가난한 여자 거지들에게 1수(sou, 현재 가치로 약 500원)를 나눠주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 1수를 여섯 명의 거지들이 나눠가져야 했다.  하루는 미리엘 주교가 그가 그런 자선을 베푸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여동생에게 말했다. 


"보려무나.  저기 제보랑씨가 천국을 1수 어치 사고 있구나."


--------------------------------


(오해하시는 분은 없겠지만 노파심에서 이야기하자면 미리엘 주교는 분명히 냉소적으로 제보랑씨를 비웃고 있는 겁니다.)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Thomas_the_Apostle

https://en.wikipedia.org/wiki/Girdle_of_Thomas

https://en.wikipedia.org/wiki/Gospel_of_Luke

https://www.bible.com/ko/bible/86/LUK.16.KLB

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html?selectedColls=Expression&category=Report&m201_id=10020367&actionUrl=search/detailView&local_id=10021458&dbGubun=SD&index=&baseUrl=/krmts&reportGubun=RS&metaDataId=&linkingentry=2009-327-A00255&currentGroup=frbr

https://en.wikipedia.org/wiki/Parable_of_the_Unjust_Ste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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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송보송복슬이 2018.12.24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경에서 돈을 내라 할 때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야 한다고 하다가
    성경에서 돈을 나누라 할 때는 은유와 비유이니 그대로 따르지 말고 속 뜻을 봐야한다고
    말하시니. 목사님, 목사님이 섬기시는건 하느님입니까 아니면 돈님입니까?

    • nasica 2018.12.24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때그때 달라요 ㅋ

    • 까까님 2018.12.24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먹어야 싸지요 ^^;;
      주께서 세상에 베푸신 모든 은혜들을 누리기 전에 불경스럽게도 죽지 않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7일이나 쉼 없이 창조하신 은혜들을 헛되이 하고서 어떻게 어린 양들을 이끌겠나이까

  2. 최홍락 2018.12.24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 설을 보충하자면 Side Letter를 따로 작성하는 식으로 해결 가능할수도...

    그러니까 주인이 높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명목상으로는
    빚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감액된 금액만큼 신고를 하고

    관리인은 명목상으로는 주인으로부터 신임을 잃었다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주인의 빚을 줄여주는 대가로 사람들에게 얻는 혜택을 다시 주인과 나눠갖는 식의 계산이라면 가능할수도요. (말하자면 In-house broker같은 경우죠.) 이걸 어드레스 커미션(Address Commission)이라고 부르죠. 이런 형식의 계약을 주인과 관리인 사이에 Side letter로 체결하는거고요.

    상기 Address Commission 거래가 현대에도 간혹 있기는 한데, 보통최종 수금인이 회사가 아닌 경영자 개인으로 되는, 이른바 비자금으로 조성이 되서 문제가 되기도 하죠.

  3. reinhart100 2018.12.24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마 공화정 및 3세기 이전의 제정에서 징세업무를 민간이 완전히 전담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피스쿠스> 관련된 세금, 즉, 황제 (혹은 독재관, 집정관)이 직접 관할하는 재정으로 들어가는 세금에 대해서 함부로 민간 징세업자들이 멋대로 징수할 수는 없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인두세 개념으로써의 속주세 및 매출 및 소비행위에 대하여 징수하는 간접세 계열의 세금 상당수가 라인, 도나우, 동방 지역 군단 유지비 및 사회간접자본시설 신축 및 개축, 유지,보수 비용으로 상당수 들어가다보니 민간 징수업자들의 무제한적 영리 추구에 제동을 거는 장치가 상당했습니다. 당장, 이걸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총독들 상당수가 로마로 귀환하자마자 당장 재판에 걸려나가면서 정치 생명이 끝장나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재판을 통해 명성을 얻은 사람이 공화적 시기만 하더라도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와의 염문으로 유명한 안토니우스의 조부), 키케로, 카이사르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게다가 공화정 말기 및 제정 시기 피스쿠스 계열 조세의 중요한 점이 바로 기축통화였던 아우레우스 금화, 데나리우스 은화의 통화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지금용 재정으로 작용했다는 점입니다. 피스쿠스로 분류되는 재정분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금화 및 은화 증발에 대한 통제가 되지 않으면서 3세기 인플레이션이 미친 듯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원로원 관할 재정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아이라리움 계열 재정'에 관련된 세금을 민간 징세업자들이 무한정으로 영리추구를 할 수 있었냐? 그것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건 말 그대로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동화 발행 및 유통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였으니까요. 공화정 및 3세기 이전의 로마에서 '로마시민권을 가진 주권자들의 대표'라는 원로원이 동전만큼은 발행권을 확보하고 있었으니까요. 금화나 은화야 서민들이 직접 만지기 쉽지 않았지만 놋쇠나 황동으로 만들어지는 동화 가치가 평가절하되어 물가 상승이 발생하면 당장 원로원에 불만이 폭발할테니 원로원도 이 문제만큼은 대단히 민감해 했습니다. 당장 동화 발행 및 가치 유지의 주된 재원이 바로 아이라리움 계열 재정인데 이걸 무한정 거둔다는 발상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건 누가 봐도 명확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성경에 나오는 세리들의 행태가 심각해졌냐? 이건 유대지역 같은 제국 내에서 좀 특이한 지역의 특성도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유대(팔레스티나) 속주, 브리타니아 속주 같은 국방상 이유로 합병한 속주들 상당수는 군대 유지비가 일반적인 속주에 비해 속주 운영에 들어가는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나마 브리타니아나 라인강, 도나우강 연안 속주들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제국 중앙정부가 뭘 쥐어짜려고 해도 없다는 것은 잘 알다보니 부유한 원로원 관할 속주에서 재정을 이전 및 전용시킬 것을 각오하고 영토로 확장한 경우입니다. 예외적인 경우가 금광 및 은광이 터져나온 다키아 속주인데 이 때문에 271년 포기할 때까지 로마는 끝까지 다키아를 사수하려고 했습니다. 속주 유지비가 자체 충당되는 라인 및 도나우강 연안의 전방지역 거의 유일한 속주인데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죠.

    문제는 유대지역이었습니다. 이 동네가 동방지역 속주들 중에서는 상당히 가난했는데도 유지해야 할 군단 병력 수준은 직접적으로 주둔한 2개 군단 및 북방 시리아와 이집트 지역에서의 지원병력까지 적게 잡아도 군단병만 2만이 넘어갔고 보조병까지 계산하면 가볍게 4만은 육박했습니다. 게다가 유대 속주는 이집트 속주와 마찬가지로 '속주 총독'이 주재한 속주가 아니라 '속주 장관'이 주재하는 속주라는 점에서 황제 및 원로원, 속주 총독 모두가 민간 징세업자들의 영리 추구에 제동을 거는데 상당한 사각지대가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흔히 말하는 관리 감독 주체가 애매했다는 겁니다. 이집트 속주야 '황제 개인 소유'라는 점에서 관리 감독 주체는 황제로 명확했고 이집트 속주 자체가 워낙 돈이 많은 동네다 보니 장관이 영리를 추구해도 그 폐해가 크게 터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유대 속주는 도저히 답이 안나올 정도로 심각했다는 겁니다. 당장, 로마에 반란을 터트린 이유가 전부 세금 문제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알 수 있었죠.

    • 최홍락 2018.12.24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대지역은 헤롯 왕조가 따로 지배하던 곳으로 알고 있는데 속주 조세 관리가 어떻게 정리가 된건지ᆢ그리고 시리아 레반트 지역은 거의 최전선 속주인데 유대 지역과는 달리 불만은 없었는지 궁금하네요

    • reinhardt100 2018.12.25 1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리아 등 레반트 지역의 속주는 사막 자체가 방어선으로 어느 정도 기능하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서방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생겼다는 겁니다.

      로마제정기부터 동방과 서방의 인구 역전이 확실히 일어나게 되는데 특히, 동방지역의 토양쇠퇴가 가시화되는 것과 반대로 서방지역의 경제발전 수준은 꽤나 눈부십니다. 이 덕분에 동방지역은 농업쇠퇴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교역에 점차 집중하게 됩니다. 게다가 로마의 속주민에 대한 세율은 경쟁국가였던 파르티아나 아르메니아, 동방 소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점이 있다보니 속주민의 반발도 적었습니다.

      유대 속주의 경우, 헤로데 대왕 사후에 아우구스투스가 3분할을 했다가 북부 일부만 헤롯 2세 등 헤롯 왕가 계열이 다스리고 나머지는 유대 장관 관할지역으로 통합시켰는데 여기서 이미 미스가 터진 겁니다. 차라리 율리우스 카이사르 처럼 완전 정교일치의 신정국가 체제를 그대로 해주든지 했어야 했는데 죽도 밥도 안 된 사후처리 때문에 엉망이 된 겁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상당히 문제 많은 분입니다만 적어도 이 한 마디만은 맞다고 봅니다. '로마제국도 더 이상 유대인들의 신정국가 창설만은 용납할 수 없는 상태까지 몰리게 되었다.'라고 로마인 이야기에 비슷하게 썼는데 저도 동감입니다.

      속주세 같은 경우, 사실상 유대 속주의 경우에는 군사비로 많이 들어갔고 그 다음으로 무엇보다도 상하수도 유지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이미 이 시기부터 유대지역 및 시리아 등 레반트 지역 전체의 지력 쇠퇴가 심각해지면서 버려지는 도시가 속출했는데 이걸 막으려면 관개시설에 목숨 걸어야 했으니까요.

    • 최홍락 2018.12.26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속주세에는 수입의 10퍼센트 수준인 이른바 성전세도 포함된 수치인가요? 아님 별도인가요? 근거 자료는 에드워드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인지ᆢ

    • reinhardt100 2018.12.26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성전세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이 세금은 10% 세율인 속주민에 대한 인두세에 포함되지도 않았고 조세 부과 주체도 속주세가 유대 장관이라면 이 성전세는 예루살렘 성전 및 이를 관리하는
      70인회라서 성격이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성전세가 서기 70년 종결된 1차 유대전쟁 이후에는 예루살렘 성전 대신 로마의 카피톨리누스 언덕의 신전들로 수령 주체가 바뀝니다. 공식적으로는 유대인의 의무면제를 위한 인두세라고 하지만 실은 유대교 종교생활을 영휘하는 대가로 부과하는 종교세였고 이건 성인남성뿐만 아니라 유대교 신도 전부를 대상으로 부과하는 유례가 없는 세금이라는 점에서 이후 '유대인세' 라고 통칭됩니다.

      이거 출처는 로마법 관련 논문들인데 저도 기억이 잘 안 나서요. 학부시절 읽었던 거라 가물가물하세요.

    • Spitfire 2018.12.28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레반트 지역이 언제부터 사막이었는지가 관건일듯 합니다. 현지인들의 인식으로는 최소 6세기까지도 중동 지역은 밀림까지는 아니라도 녹지가 상당한 지역이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현대의 우리가 모르는 다른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 reinhardt100 2018.12.28 1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북아프리카면 맞는데 레반트는 기원전부터 좀 심각했다고 합니다. 관개에 몰빵한 이유가 수자원부족까지 겹쳤다고 하니까요.

      이슬람이 대규모 관개 시설 혁신을 새로운 수자원을 활용했지만 그 정도로는 지력쇠퇴를 막을 수 없었다는 점과 관개를 통한 토양염화가 촉진된다는 점도 고려해봐야 할 듯 합니다.

  4. 유애경 2018.12.25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잘읽고 갑니다.
    교회에서는 대개 신앙심이 부족(?)한 사람에게 '의심많은 도마' 란 표현을 많이 하죠.
    그런데 바꿔 생각하면 도마는 아주 신중한 성격에 현실주의자? 내지 합리주의자? 였을수도...

    그나저나 저도 나시카님과 같은 의문을 가진적이 있는데요. 어린아이들은 몇살때까지가 천국에 들어가는 리미트인지,만약 생일을 한시간이라도 넘기게 되면 지옥에 가야하는건지...거기에 대한 해답은 성경에 안나와 있으니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아기들의 생사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죠?
    예수님를 영접할때까지 죽지 않도록 부모가 잘 돌봐야 한다니요!

  5. Spitfire 2018.12.25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도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가진자일수록 더 베풀라는 뜻이겠지요. 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테구요. 그래서 작은 걸음이나마 실천하려고 매일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무작정 서민복지를 위하는 당은 절대 찍지 않을 겁니다. 서민을 돕는 것과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니까요. 선량한 마음으로 어려운 자를 돕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복지를 늘리는 것은 정치의 문제다보니 우선 예산확보의 타당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 복지예산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일지가 증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정책의 후폭풍이 얼마나 큰지는 베네주엘라라는 나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nasica 2018.12.25 0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즐거운 성탄 되시길 바랍니다. 마음 먹는 것은 매우 쉬운데, 그걸 실행에 옮기는 것이 정말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더라고요. 적어도 제게는 그렇더군요.

  6. 푸른 2018.12.25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리스마스아침부터 이런 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메리 크리스마스보다 Happy holiday라고 하던데, 어찌되었든 좋은 하루되시길!

  7. reinhardt100 2018.12.25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성탄절에서 나시카님께서도 남은 시간 가족과 잘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8. 지나가던 사람 2018.12.26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맹상군과 풍환 이야기와 비슷한 듯도 하네요. 그냥 부자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고 싶어요. ^^

  9. TheK의 추천영화 2018.12.26 1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왓! 정말 핫한 주제로 싸우고 계시네요.
    대단하십니다.
    추천 꾸욱!~ 누르고 도망갑니다.

  10. 성북천 2018.12.26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어떤 부자는 하나님을 가르킨다는 전통적인 해석이 진부하지만 맞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믿고 싶고 금방 오실 것 같았던 예수님은 아직 안 오시니 재물은 못 놓겠고 또 그런 자신에게 캥기니 이런 저런 변명이 해석이란 이름으로 남발되는 듯 합니다
    정작 오시면 어쩌나 걱정과 겁도 나고

  11. shaind 2019.04.17 0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그 교훈이 70인역의 지혜서나 잠언 같은, 내지는 그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방식이 탈무드의 일화중 하나로 소개될 법한 무언가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컨대 요한복음의 유명한 일화처럼) 편집 실수로 다른 그리스-유대계 지혜문학이 섞여들어간 편집실수나 기억의 혼동이라는 견해도 꽤 신빙성이 있다고 느껴지네요.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마리우스는 가난한 청년이지만, 그의 외할아버지는 부자로 나옵니다.  그러나 사실 외할아버지도 대단한 부자는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 "Look down - Paris" 부분에서 마리우스와 앙졸라가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있을 때 외할아버지가 그 광경을 마차 안에서 지켜보면서 통탄하고 있는 모습이 잠깐 나오지요 ?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 외할아버지는 마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 2인승 작은 마차라도 소유하려면 1달 유지비만도 500프랑 정도로서 엄청나게 비쌌거든요.  이 외할아버지가 마차를 탔다면 현재의 택시 같은 삯마차를 탄 것입니다.  과연 이 외할아버지 질노르망(Gillenormand) 씨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을까요 ? 




(이 분이 마리우스의 외할아버지 질노르망 씨입니다.  그는 결코 귀족이 아니라, 그냥 Grand Bourgeois, 즉 앙시앵 레짐 (구 체제)를 지지하는 부유한 시민입니다.  현대어로 하면 보수우익 노친네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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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 두 번째 아내는 그의 재산을 하도 잘 관리해서, 어느 날 그가 홀아비가 되었을 때, 질노르망 씨에게는 꼭 먹고살 만한 재산이 남아 있었는데, 즉 거의 전부를 종신 연금으로 예금함으로써 연수입이 1만 5천 프랑쯤 되었는데, 그 중 3/4은 그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게 되어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유산을 남기려는 배려는 별로 염두에 없었으니까.  더구나 그는 상속 재산에는 뜻 밖의 일이 일어나는 것을, 예컨대 그것이 '국가 재산'이 되는 것을 보았고, 제3 정리 공채의 변화를 목격했으며, 원장은 별로 믿지 않았다.  "캥캉푸아 거리의 은행 밖에 없지 않은가 !" 라고 그는 말했다.  피유 뒤 칼베르 거리의 집은 앞서 말했 듯이 그의 소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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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민음사 번역의 문제가 나옵니다.  아마 저 번역은 구글이 나오기 전인 수십년 전에 해놓은 번역 같아요.  저 제3 정리 공채 (tiers consolidé) 라는 것은 불어를 직역하면 그런 번역이 나오는데, 다른 영문판을 보면 이를 'consolidated three per cents'로 번역했더군요.  즉 원금 상환없이 영구적으로 3%의 이자를 주는 3% 통합 영구 채권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통합 영구채인 'Consol'에 해당하는 채권인데, 아마도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지요 ?  또 원장(grand-livre)이라는 것은 Great Book of the Public Debt 로서, 국채 원장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캥캉푸아 거리 (Rue Quincampois)라는 것은 은행이 아니라, 나폴레옹 이전 시대에 파리 증권 거래소(Bourse)가 있던 거리 이름입니다.  즉, 국채 원장이라고 해봐야 증권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유가 증권에 불과하다, 즉 못 믿을 물건이다 라고 비꼬는 것입니다.




(현대의 캥캉푸와 거리입니다.  현대의 파리 증권 거래소는 이곳이 아니라  Palais Brongniart에 있는데, 이는 나폴레옹이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질노르망 씨가 작은 2인승 마차라도 소유했다면, 1년에 6천 프랑을 그 유지비로 써야 했는데 (세금, 말 사료 값, 마차 수리비, 마부 임금 등등) 그건 자신의 1년 연금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으니까, 당연히 질노르망 씨는 마차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체 500프랑이면 어느 정도의 액수이고, 1만 5천 프랑이면 또 어느 정도의 금액이었을까요 ?  현재 우리나라 원화 가치로 따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저는 확실히 속물이겠지요 ?


일단 당시 프랑 화의 가치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해주는 구절을 레미제라블 속에서 모아보았습니다.  가령 가정에 숙식하는 요리사의 월급은 50 프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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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지기 족속 같은 키다리로 거만한 요리사 하나가, 요리의 명수가 나타났다.  "월급은 얼마를 받고 싶은고 ?" 하고 질노르망 씨는 물었다.  "30프랑입니다."  "이름은 무엇인고 ?"  "올랭피라고 합니다."  "50프랑 주겠다.  그리고 이름은 니콜레트라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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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가 외할아버지 몰래 자기 아버지 퐁메르시 중령의 무덤에 가서 슬퍼하는 장면의 삽화입니다.  마리우스는 결국 생전의 아버지는 한번도 보지 못했는데, 죽은 아버지를 도서관에 가서 신문 및 정부 보고서를 통해 찾아보고, 결국 보나파르트주의자가 되어 버리지요.  할아버지는 왕당파, 손자는 보나파르트주의자 내지는 공화주의자라... 요즘 한국 사회와 많이 비슷합니다.)




아버지 퐁메르시 중령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급작스럽게 보나르파트주의자가 된 마리우스는, 보나파르트나 혁명이라면 질색을 하던 보호자이자 외할아버지인 질노르망 씨와 양립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립니다.  마리우스의 변화에 분노한 외할아버지는 마리우스를 집에서 내쫓는데, 그러면서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외손자에 대한 정이 남아 있어서, 마리우스의 이모이자 자신의 딸인 질노르망 양에게 6개월에 60 피스톨을 보내주라고 하지요.  1 피스톨(pistole)은 10 프랑에 해당하는 옛 스페인 금화입니다.  그러니까 한달에 100 프랑, 1년에 1200 프랑을 보내주는 셈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생활비일까요 ?




(앙졸라도 알고 보면 부르조아 계급 출신입니다.)




마리우스가 집을 나와서 사귀게 되는 ABC의 벗들은 경제적으로 어떤지 살펴보면 그 답을 아실 수 있습니다.  일단 앙졸라(Enjolras)는 그냥 부자집 외아들이라는 것 말고는 자세한 신상에 대해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대충 먹고 살만 한 중산층 집안의 자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먹고 사는 문제로 궁핍한 흔적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 중 바오렐(Bahorel)의 부모는 농부인데, 그래도 꽤 규모가 있는 자작농인 모양입니다.  그 부모는 '법률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바오렐에게 1년에 3천 프랑의 생활비를 보내주었는데, 작가인 빅토르 위고는 이에 대해 '꽤 넉넉한 액수'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마리우스와 앙졸라, 그리고 앙졸라와 마주 보고 있는 그랑테르를 빼면 누가 푀이고 누가 쿠르페이락인지 전혀 못 알아보겠어요.)




다만 ABC의 벗들 중 유일한 노동자 계층인 푀이(Feuilly)가 1프랑의 가치를 말해줍니다.  그는 부채를 만드는 노동자인데, 원래 고아 출신으로서 일을 하면서도 독학을 해서 읽고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역사를 공부한 지식인입니다.  그는 하루에 간신히 3프랑을 벌었습니다.  노동자라고 해도 일요일은 놀았을테니, 기껏해야 한달에 75프랑을 벌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년이면 900프랑입니다.  놀고 먹는 바오렐의 3000프랑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액수이지요.


더 자세히 보시지요.  마리우스가 출판사 일을 하면서 가난하게 살 때, 그의 가계부를 작성해보았습니다.




(마리우스는 결국 집을 나가서 변호사가 되는데, 정작 변호사로서의 수입은 없고 출판사에 글을 써주면서 돈을 법니다.   애초에 친구인 쿠르페이락이 이 출판사 일을 소개해줄 때 '영어하고 독일어를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인데' 라고 하자, 마리우스는 겁도 없이 '배워서 하지 뭐' 하면서 도전해서, 결국 그 일을 따냅니다.)




대충 이러면 푀이의 생활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혼자서는 그럭저럭 먹고 살아도,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지요.  참고로 마리우스가 저녁 식사를 루이 식당이라는 곳에 가서 매일 외식을 했다고 해서 그가 아직도 부자 시절을 못 잊고 된장남 생활을 하고 있다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집은 수도는 커녕 (당시 파리에 그런 거 없었습니다) 난로조차 없는 곳이라서 취사가 아예 불가능했거든요.  마리우스가 그 식당에서 어느 정도의 절약을 했는가 하면 '수프는 먹지 않고, 포도주 대신 항상 물을 마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리우스가 원작에서도 미남으로 나오냐고요 ?  예, 앙졸라 만큼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여자들이 힐끔힐끔 쳐다볼 정도의 아름다운 흑발 청년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는 여자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이유가 자신의 구멍난 셔츠와 팔꿈치가 헤어진 자켓 때문인줄 알고 부끄러워하지요.)




자, 저런 액수가 과연 현재 가치로 어느 정도에 해당할까요 ?  당시 1프랑의 현재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금리며 인플레며 구매력 산업 생산성 등등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냥 금의 가치는 영원하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보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옵니다.  당시 루이 금화 (Louis d'Or)는 20프랑 짜리였는데, 당시 원칙은 그 금화를 녹였을 때 나오는 금의 양이 실제 그 금화 액면가와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는 국가에서 주조한 금화는 그 신뢰성 때문에 더 높은 가치를 인정해주었습니다만, 여기서는 계산상의 편의를 위해 그냥 생략하겠습니다.)




(이것이 20프랑짜리 나폴레옹 금화입니다.)




당시 프랑스 화폐 단위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프랑스 혁명 이전의 프랑스 화폐 단위는 크게 리브르 (livre = 20 sous), 수 (sou = 12 derniers), 데르니에 (dernier)로 나뉘었습니다.   프랑스어로 livre라고 하면 책이라는 뜻도 있지만 원래 영어의 pound에 해당하는 무게 단위입니다.  즉 1파운드 무게의 은에 해당하는 가치를 1 리브르로 정했던 것이지요.  이는 영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영국 파운드화의 기호가 P가 아니라 L 모양인 것입니다.) 




(설마 이 표시가 영국 파운드 스털링 화의 심볼이라는 거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겠지요.)




그러다가 혁명 정부 들어서서 과거의 도량형을 바꾸면서 공식 화폐도 1795년에 프랑(franc = 100 centimes)과 상팀(centime)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이 정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지라, 여전히 리브르나 수 라는 단위도 여전히 혼용되어 쓰였는데, 특히 리브르는 원래 프랑보다는 약간 더 큰 단위였습니다만, 그에 상관없이 1리브르 = 1프랑이라는 약간 부정확한 개념이 그대로 통용되었던 모양입니다.  원본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리브르, 어떤 경우에는 프랑이라는 단위를 썼는데, 제가 산 민음사 레미제라블에서는 그런 구분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원본에서는 리브르라고 쓴 경우에도 그냥 무조건 프랑으로 번역을 해버리는 바람에, 1프랑=20수의 개념이 계속 나옵니다.  실제로도 리브르나 프랑이나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니까, 여기서도 그냥 그렇게 1리브르=1프랑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흔히 나폴레옹을 군사적 천재로만 받아들입니다만, 사실 나폴레옹은 오늘날 프랑스, 더 나아가 유럽 전체의 기틀을 닦은 사람으로서, 오늘날 위인전에 올라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진짜 위인입니다.  아우스터를리츠나 예나, 마렝고 등의 승전보다도 오히려 더 프랑스를 빛낸 나폴레옹의 업적은 바로 나폴레옹 법전의 편찬, 고등학교인 리세(lycee) 제도의 확립, 그리고 프랑스 중앙은행의 설립입니다.  그 중 프랑스 중앙은행은 영국의 영란은행을 본 뜬 것이라서 비록 창의성 면에서는 떨어지므로, 나폴레옹의 2대 업적에서는 빠집니다만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부르봉 왕가가 복위한 이후에도 나폴레옹이 이룩한 이 제도들은 그대로 이어졌던 것을 보더라도, 그의 위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총재 정부 시절 아시냐 지폐의 실패로 인해 하이퍼 인플레를 겪던 프랑스의 재정난은 안정을 되찾았고, 프랑스의 인플레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도 매우 안정적이었습니다.  즉, 1810년 경인 나폴레옹 당시의 물가나 1832년 경인 레미제라블 시대의 물가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지요.




(위 표가 연도별 금 1 온스의 가격입니다.  금 가격이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게 뛰게 된 것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대공황 때부터 좀 이상하더니 1970년 경에 미국이 금태환 제도를 포기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때 이후 금값은 그야말로 폭등을 거듭했는데, 사실 금값이 올랐다가 보다는 화폐가치가 떨어진 것이지요.)




덕분에 당시 나폴레옹 금화로부터 쉽게 당시 1프랑의 가치를 현재 대한민국 원화로 환산이 가능합니다.  40프랑짜리 나폴레옹 금화 1개 속에 들어있는 금의 양은 11.614g, 20프랑짜리 나폴레옹 금화 1개 속에 들어있는 금의 양은 5.801g 이었습니다.  현재 금 1g의 가치를 원화로 대략 56,000원이라고 보면, 레미제라블 시대의 1프랑은 현재 우리 원화로 약 16,000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ABC의 벗들 중 푀이의 한달 월급은 약 120만원이고, 바오렐이 넉넉하게 써대던 1년 생활비는 약 4,800만원이었던 것이지요.  더불어, 질노르망 씨가 외손자 마리우스에게 '최저 생계비'로 주려고 했던 돈은 대략 연간 1,920만원 정도였습니다.  아울러, 졸지에 이름이 니콜레트로 바뀌어야 했던 질노르망 씨 요리사의 월급은 80만원인 것이었지요.  (하긴 니콜레트는 그 외에 숙식 제공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마리우스가 가난하게 살 시절 매일 저녁 루이 식당에서 먹었던 조촐하지만 푸짐했던 저녁 식사의 가격은 1만2천8백원 정도였습니다.  조촐했던 빵과 날계란 점심값은 3200원 꼴이었고요.  그러니까 1년에 식비로 584만원을 쓴 것이고, 그에 비해 1년 피복비는 겉옷 속옷 다 합해서 240만원 정도 되는 셈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사정과 비교했을 때 대략 어떤가요 ? 




(이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앙졸라가 부르는 Red - Black의 가사 중에서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에게 이런 말을 하는 부분이 있지요.  - Who cares about your lonely soul ? )




자, 그럼 여기서 좀더 속물스러운 분들께서 솔깃해하실 이야기를 해보지요.  질노르망 씨는 살고 있는 집을 제외한 남은 재산 전부를 종신 연금으로, 그것도 본인 사망시 3/4이 소멸되는 '일부 상속형' 연금 상품으로 다 가입해 놓았고, 그래서 연간 15,000 프랑의 수입이 있다고 했습니다.  원화로 따지면 연간 2억 4천만원입니다 !  충분히 부자집인 거지요.  그런데 이렇게 풍족한 연금이 나오려면 대체 원금은 얼마였을까요 ?


그에 대한 설명이, 놀랍게도 레미제라블 본문에서 어느 정도 나옵니다 !  바리케이드 사건이 끝나고, 모두가 화해를 한 뒤에, 질노르망 씨에게 코제트가 장발장과 함께 와서 인사를 하지요.  질노르망 씨는 코제트의 아름다움과 천진함에 반해서 참으로 예쁜 아이라고 칭찬을 하다가, 문득 그녀의 손을 잡고 우울해 합니다. 


"참으로 유감이구나 !  내가 그것을 생각하니 !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반 이상은 종신연금이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래도 아직 괜찮겠지만, 내가 죽은 뒤에는, 지금부터 이십 년쯤 후에는, 아 ! 내 가엾은 아이들아, 너희들은 무일푼이 될 것이다 !  당신의 아름다운 흰 손도, 남작 부인, 생활이 궁하여 일을 해야 할 거요."



이때 장발장이 마들렌 시장으로 일하면서 모아두었던 돈 58만4천 프랑을 코제트의 지참금으로 내놓습니다.  현재 가치로 93억4천만원 정도입니다 !!! 




(자기야, 이제 우린 폈어 !  우리 아버지가 나 몰래 감춰두신 재산이 90억이 넘는대 !)




아마도 마리우스는 이 돈으로 자기 외할아버지처럼 종신연금을 넣은 모양이에요.  나중에 장발장이 자신이 사실은 전과자이며, 그래서 떠나겠다고 하자, 마리우스는 못 이기는 척 허락하면서도, 장발장이 준 그 지참금에 대해서도 꺼림직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리우스와 코제트와 한 대화가 코제트의 입을 통해서 나옵니다.  


"코제트, 우리는 3만 리브르의 연금을 가지고 있어.  2만7천은 네가 갖고 있는 것이고, 3천은 할아버지가 주시는 거야.  너는 그 중 3천 리브르만으로 살아갈 용기가 있겠니 ?"


(민음사 레미제라블 제5편 424페이지에는 '너는 이 3만 프랑으로 살아갈 용기가...' 라고 되어 있는데, 이거 오타입니다.  원본을 확인했는데, 3천이 맞습니다.  단위도 리브르이고요.)




(마리우스가 코제트에게 '그 중 3천 리브르만으로 살아갈 용기가 있겠니 ?' 라고 물었을 때 코제트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  "물론.  난 너만 있으면 돼.")




즉 마리우스는 장발장이 준 지참금은 범죄에 연관된 돈이라고 의심하여, 가급적 그 돈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아무튼 여기서 실마리가 나옵니다.  즉, 58만4천 프랑으로 연 2만7천 프랑의 연금이 나오는 것이지요.  원금이 워낙 컸으므로, 아마도 원금은 그대로 보존하는 상품에 가입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연 수익률이 4.62%에 해당하는 연금 상품에 가입한 것입니다.  실제로 1830년대의 프랑스 금리는 대략 4% 정도였으니까, 연금 상품에 가입했다면 저 정도의 금액이 나오는 것이 맞습니다.   


저처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40대 가장의 입장에서는 3만 프랑은 고사하고 1년에 3천 프랑, 그러니까 연간 4800만원의 연금만 있다고 해도 목구멍에서 수건 짜는 소리가 들릴 만큼 부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도 항상 어떻게 돈을 모으고 어떻게 돈을 굴려야 제 가족이 생활비 걱정 안하고 살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고 고민합니다.  물론 그런 고민도 돈이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크게 나누면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느냐 연금을 택하느냐 펀드 같은 것에 투자하느냐 그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질노르망 씨나 마리우스 부부는 종신 연금을 택한 것 같아요. 



 

(근데 자기야... 이거 연 4.6%가 과연 최선일까 ?  인플레 헷지는 어떻게 하려고 ?)




그런데 종신 연금이 답일까요 ?  글쎄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질노르망 씨가 살던 시대에는 금본위제도 덕분에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인플레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매우 안정적이었습니다.  즉, 금리보다 물가인상률이 훨씬 낮았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10년 20년 후에도 동일한 금액의 연금이 나온다고 해도, 걱정할 것이 없지요.  그러나, 지금 받는 100만원의 돈 가치가, 10년 20년 후에는 지금 가치의 절반으로 떨어진다고 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지금 우리나라 금리가 매우 낮은데, 물가는 원유나 곡물 등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해서 계속 오르고 있지요.  실질적인 마이너스 금리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연금은 아무래도 답이 아닌 것 같아요.  연금이 물가 인상율과 맞물려 계속 증액되는 구조라면 모를까...  그런데 그런 상품은 아직 못 본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욕을 먹는 국민연금 빼고는요.




(물론 단기적인 인플레야 꽤 있었습니다만, 레미제라블 시대인 저 1800 ~ 1840 사이에 실제 인플레는 매우 낮았습니다.  그에 비해 금리는 4~5% 수준이었지요.  저 시대에는 정말 종신 연금이라는 것이 안전한 투자 수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마들렌 시장, 그러니까 장발장에게로 관심을 되돌려보시지요.  장발장은 코제트와 함께 파리에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적선을 하며 '착한 삶'을 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수양 딸인 코제트에게 무려 60만 프랑에 가까운, 즉 90억원이 넘는 거액을 증여해주었네요 !!  이건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라는 레미제라블 정신에 좀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 ?  생각해보면 팡틴느의 비참한 최후도 장발장의 탓이 될 수 있습니다.  애초에 팡틴느에게 충분한 급여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팡틴느는 직장을 잃으면서 곧장 나락으로 추락한 것이니까요.  결국 장발장은 우익 보수층이 더 좋아해야 할 인물 아닐까요 ?




(실제로도 팡틴느는 처음에 장발장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 때 그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자기가 이 모양이 된 것이 장발장이 자기를 내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장발장이 그녀를 불미스러운 사생활을 이유로 내보내면서 규정에도 없는 퇴직금 조로 50프랑을 준 것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글쎄요.  우익이건 좌익이건 다 집어치우고, 이런 점을 생각해보시지요.  장발장은 그 유리 공장을 운영하면서, 라피트 은행에 자기 명의로 무려 63만 프랑의 금액을 예금했습니다.  이 돈이 결국 나중에 코제트에게 돌아가게 되지요.  하지만 장발장은 63만 프랑을 예금하면서 동시에, 지역 사회인 몽트뢰유 시의 빈민들을 위해 무려 100만 프랑 이상을 썼습니다.  일단 빈민을 위한 병원을 세우고, 빈민가 소년 소녀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당시 프랑스에는 아예 그 개념 자체가 희미했던 탁아소를 세우고, 무료 약국을 세웠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가난했던 그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큰 선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로 잡는 일 중에는 저렇게 정치 운동을 벌이고 바리케이드를 쌓는 것도 있겠지만, 공장을 세우고 사람을 고용하여 사람들이 누군가의 자선에 의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그런 일자리가 새로운 기술 혁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건 정말 인류 전체에 대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영화에도 잠깐 나옵니다만, 장발장이 죽기 전에 코제트에게 읽어보라고 주는 편지가 나오지요.  영화 속에서는 그 편지가 '증오심으로 살다가 너를 맡게 되면서부터 사랑으로 살게 된 사람의 이야기'라고 나오지요.  뮤지컬의 대사는 '코제트 너를 항상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실제 원작에서는, 그 편지는 코제트에게 주어진 지참금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해명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장발장이 어떤 기술 혁신을 이룩했고, 그로 인한 수익금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그러니까 그 돈은 정직한 것이니 부디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그 돈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지요.  알고보면 장발장은 스티브 잡스였던 셈이지요.  이 정도 되는 인물이 자기 수양 딸에게 60만 프랑을 물려준다고 해서 누가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  어떻게 보면 정말 장발장이야 말로 진정한 보수 진영의 영웅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줘야 서민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가짜 보수들 말고) 이런 진짜 보수 인사들로 가득 차있다면 정말 우리나라는 행복한 나라가 되겠지요.




(장발장은 므슈 포슐르방으로서 코제트에게 베푼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마들렌 시장으로서 몽트뢰유 시의 빈민들을 위해 베풀었습니다.)




팡틴느의 몰락은 장발장이 박봉을 주었기 때문 아니냐고요 ?  애초에 팡틴느가 몰락했던 것은 사실 팡틴느가 고향 마을에 되돌아 왔을때, 시작부터 가구 등을 들이느라 빚을 지고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마들렌 시장, 그러니까 장발장의 공장에 취직했을 때 생각보다 급료가 괜찮았으므로, 팡틴느도 '이젠 살아갈 수 있겠다' 라고 판단하여 마음을 놓고 과감히 빚을 졌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덜컥 뜻하지 않게 직장을 잃게 되었는데, 빚이 있다보니 그 도시를 떠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 손바닥만한 도시에서 탕녀로 소문이 났으니 다른 일거리를 구하지도 못했지요. 




(사실 팡틴느가 몰락한 것은 같이 일하던 동료 여자들의 시기심과 천박한 호기심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요.)




그러니까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웬만하면 직접 들어가서 살 주택을 구입할 자금 외에는 빚은 지지 마세요.  빚은 부모님이 자유인으로 낳아주신 여러분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못된 것입니다.   특히 갚을 수 없는 빚은 정말 그렇습니다.  요즘 자동차 살 때 할부로 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  글쎄요... 예전 노예제 시절 사회에서나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중 진정한 자유인이 몇이나 되겠어요 ?  할부금 남은 자동차를 모는 청년은 노예이고, 그냥 버스를 타고 다니는 청년은 자유인인가요 ?  판단은 여러분 각자가 내리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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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an 2018.12.20 0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올려주시는 글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2. 유애경 2018.12.20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지 우리나라에 장발장 같은 보수인사가 많아졌음 하고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3. 빛둥 2018.12.20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0. 항상 재밌게 보고 있고, 이번 글로 인해 당시의 사회상이 수량적으로 더 잘 이해되었습니다.

    1. 1792년부터 1861년까지 금 가격(태환제도이니까 결국 돈의 가격)은 거의 변하지 않았네요.
    70년 가까이 지나면서 기술이 보급되고, 인구가 늘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생산이 늘었을텐데, 금 생산량은 그만큼 늘지 않았을 겁니다.(그래도 조금씩 올라가는 인플레율을 보니, 식민지의 광산 개척 등으로 금 생산량이 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경우, 생산량이 늘어도 각 개인의 경우 오히려 인구도 늘었기에 (금전적으로는) 조금씩 가난해지고, 물가가 약간씩 싸져서 생산물 기준으로는 생활수준이 비슷했겠습니다.

    2. 그나저나 당시 마차의 1달 유지비가 500프랑, 약 800만원이니, 현대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편하고 싸게 개인교통수단을 이용하는 호사를 누리는지 실감이 납니다.


    3. 현대의 물가가 원유나 곡물 등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계속 오르는 것은 맞는데, 그 정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원유 가격만 봐도 80년대 이미 배럴당 30달러대였는데, 30년 이상 지난 현재 원유 종류에 따라 배럴당 50달러 전후(투자/투기 대상이 되어 급등락이 심하긴 합니다)입니다. 물론 프랑스가 금태환이었던 시대보다는 원자재 물가 상승률이 더 높다는 것은 맞습니다만... 대신 현대 시대는 고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32평 아파트라고 해도, 같은 승용차라고 해도, 예전 것과 현재 공급되는 것의 고급화 수준은 상당히 크게 차이가 나고, 사람들의 눈높이는 최신 것에 맞춰집니다.


    4. 당시 인플레 수준을 보니, 금리 4-5%는 매우 좋은 금리인데, 문제는 이자를 주는 은행이나 각종 투자기관이 저렇게 인플레 이상으로 금리를 장기간 줘야 하는 경우 파산하는 경우가 꽤 있었을 겁니다. 고리대금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닌게, 결국은 채무자가 파산하거나 채권추심을 할 수 없는 곳으로 도망가게 되거든요.


    5. 팡틴느를 불미스러운 사생활을 이유로 퇴사시킨 것 자체가 현대 관점으로는 문제네요. 사생활과 회사생활을 구분해서 보는 생각이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없었기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현대의 프랑스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 eithel 2018.12.21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2. 따지고보면 마차는 기사 딸린 고급차지요. 현대에도 그 정도 들 것 같습니다.

      3. 저 시대에 비하면 물가 상승률이 높은 건 반박할 수 없지요. 일단 금태환 시대와는 다르게 돈에 실체가 없지 않습니까?

      4. 사실 별로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저 시절의 유럽은 여기저기서 은과 금을 긁어모으던 시기기는 합니다만...

  4. 즐거운 우리집 2018.12.20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날씨는 괜찮은데 미세먼지가 안좋다고 하네요.
    마스크 챙기시고 건강도 챙기세요~^^

  5. Spitfire 2018.12.20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인장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부유한 사람들의 책무는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돕는 것이고, 올바른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올바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도 가난한 자들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습니다. 그냥 욕심이 과한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선과 사회공헌을 독려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자들은 엄중하게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떻게든 있는자를 등쳐먹으려는 자들이 득시글거리고, 분식회계 해도 망하지 않는 회사가 있지요.. 사람의 마음을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안되면 제도라도 만들어서 인식개선을 하는 것이 위정자들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위정자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탐욕과 이념에 사로잡혀 삽질만 할 뿐이니,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향은 언제쯤에나 올 수 있을지.. 감도 안잡히네요..ㅜㅜ

  6. mip 2018.12.20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자기야 이제 우린 폈어 ㅋㅋㅋㅋㅋ

  7. 푸른 2018.12.21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중간중간 코제트랑 마리우스 사진의 캡션 덕에 평소보다 재밌는 글이네요. 물론 평소 게시물도 재밌지만요.ㅎㅎㅎ

  8. 펱로스 2018.12.22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빚은 부모님이 자유인으로 낳아주신 여러분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못된 것입니다.'

    이 구절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 최홍락 2018.12.22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팡틴과 같이 사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학자금 대출이나 주택을 구입하기 위한 대출이 아니면 부채를 죄악시하는 건 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미래의 리스크 발생가능성과 상환 계획만 잘 짜여있다면 말입니다.

    • 펱로스 2018.12.27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갚을수 있는 부채는 레버리지

      갚을수 없는 부채는 빚

      ㅎㅎㅎ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용.

  9. gx9000 2018.12.23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타리무님은 제발 블로그 하나 새로 파서 주장하세요 거기서 진정한 보수 우익이랑 같이 어울리시는 건 어떨까요?

    • 아즈라엘 2018.12.29 2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 정신머리가 있으면 안온다고 했을때 발길 끊었겟죠
      저렇게 뻔뻔한 인간은 처음봅니다
      지구상에 비브라늄재고가 없다 했더니 저양반 쌍판때기 바른다고 다 떨어진듯

  10. 파사데나 2018.12.23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어쩐지 질노르망이 분명 마리우스 코제트 결혼식에서 자신이 연금수령자이고 죽고나면 퐁메르시 남작부인의 섬섬옥수가 거칠어진다고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이제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ㅋㅋ)

    그나저나, 질노르망이 고용한 요리의 명수는 뭔 깡으로 일급도 아닌 월급 30프랑을 부른 걸까요... ㅋ 노동자 푀이도 월급 75프랑으로 근근히 살아간다는데 질노르망 네에서 같이 숙식은 해결한다쳐도 요리의 명수로 소개되는 것치곤 좀 박봉 아닌가 싶습니다 ㅋ

    • eithel 2018.12.25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숙식 제공인데다가 원래가 저택 고용인들은 가외수입이 꽤 있습니다. 그런걸 보고 부른거겠지요?

  11. 까까님 2018.12.24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금 많이 내게 하면 부자가 되고싶어하는 사람이 줄어들 거라니... 참신하고도 인간의 본성에 완전히 배치되는 얘기네요
    100원 벌어 99원을 떼가도 전 일단 100원 벌고싶습니다
    그래야 탈세냐 납세냐 선택할 기회라도 주어지니까요
    다른 분들도 당연히 대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말도 안되는 전망보다는 부를 일구는 과정의 난이도와 시간의 투입량이 증가할 것에 대한 우려가 더 크실 거고, 가급적 쉽고 빠르게 벌어서 혼자 누리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말이겠지요
    욕심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도가 지나치면 뭐든 추한 법이에요
    제 아무리 잘난 짭쓰라도 남아공 흑인으로 태어났으면 손바닥만한 기계를 조립해서 세상을 뒤집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겠죠... 그냥 동네에서 물소떼를 제일 잘 모는 똘망한 깜댕이로 살다 갔을지도
    잡스가 공부하고 연구하고 투자를 받아 사업을 일으킬 수 있게 해준 그 모든 사회제도는 잡스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았던 누군가가 낸 세금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회간접자본의 혜택을 논외로 하고 내가 잘나서 혼자 벌었으니 혼자 써야한다는 사고방식은 그냥 철없음을 고백하는 것 밖에 안되지 않을런지...
    감성은 제외하고 계산으로만 따져도 인풋을 했는데 이자가 안붙는다면 그 은행은 강도 아닙니까?
    사회가 많던 적던 넣어준 것은 좀 돌려주면 어떨까싶네요

  12. 까까님 2018.12.24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채가 죄는 아니죠
    다만 그 어떤 면밀한 계획도 성공을 보장한다고는 할 수 없는 게 인간 능력의 한계인지라...
    빚에는 어느 정도의 무모함 내지는 절망감... 좋게 말하면 모험심이 내포되있는 것이겠지요

  13. 몽생 2018.12.24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무님께서 가져오신 글에도 아래처럼 써져 있는데요.
    '7.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 아즈라엘 2018.12.26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삼인지 뭔지 하는 그양반 제가 숙제 해왔냐고 물어보면 맨날 도망가더군요
      스스로 돌아보라고 숙제내줬더니만 ㅋㅋㅋ

  14. 얼씨구 2019.02.07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내용이네요 ㅎㅎ

    개인적으로 너무 재미있게 읽은 막장 드라마(?)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도 돈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 내용을 참고하면서 다시 읽어보면 이해가 더 깊어지겠습니다 ㅋㅋㅋㅋ

    (참고로 작중 유언장을 쓰면서 나온 백작의 재산은 무려 8천만 프랑 이상...쿨럭;;)

공화국의 마리안느와 자유-평등-박애

잡상 2018. 12. 13. 06:30 Posted by nasica

이번에 노란조끼(gilets jaunes)라는 시위대가 파리를 뒤집어 놓으면서 개선문 안에 보관되었던 마리안느(Marianne)라는 여자의 두상도 크게 파괴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의 혀를 차게 했습니다.  특히 저 마리안느라는 여자의 표정이 몹시 화가 난 표정이라서 더욱 눈살이 찌푸려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정작 마리안느 자신은 시위대가 자신의 두상을 과격 시위로 파괴한 것에 대해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리안느 자신이 바로 저항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2013년에 썼던 것인데, 이번 노란조끼 시위대 사건으로 약간 고쳐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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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제가 몇년 전 가을 파리 여행 갔을 때 찍은 노트르담 성당입니다.  그때 오전에는 루브르 박물관을 휘리릭 둘러본 다음이었던지라, 사실 다리가 무척 아픈 편이었고, 점심 때 들렀던 식당도 뭐 그다지 푸짐하거나 맛이 있지는 않아서 더욱 지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요.  저희 가족은 루브르에서 생-제르맹 어쩌고 성당을 거쳐, 노트르담이 있는 시테 섬까지 그냥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소 처량하고 다리도 많이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막 노트르담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날씨가 개면서 파란 하늘과 밝은 햇살이 나오더군요.  게다가 노트르담은 어찌나 멋있던지 !  




(노트르담은 앞쪽도 멋있지만 옆쪽과 뒤쪽은 더 멋있던데요 !)


 


그런데 시테 섬으로 들어가는 퐁뇌프 (Pont Neuf, 새 다리) 교를 건너자 마자 뭔가 커다란 관공서 같은 건물이 나오더군요.  이 건물은 Cour de Cassation, 즉 파기법원으로서, 우리나라로 치면 대법원에 해당하는 기관입니다.  뭐 그리 대단한 예술적 건축물로 보이지는 않아서 그냥 지나쳤는데, 그 앞을 지나다 보니 작은 출입문 위에 새겨진 문구가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바로 Liberté, Egalité, Fraternité 입니다. 




(저처럼 눈이 침침하신 분들을 위해 확대 사진도 하나 추가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만큼 프랑스 정치와 역사에 강렬한 인상을 준 사건이 없을 정도로, 1789년의 혁명은 대단한 의미를 가집니다.  제가 연재하는 나폴레옹 이야기도 그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 본인은 자신의 쿠데타로 인해 혁명은 끝났다라고 선언한 바 있지요.  즉, 나폴레옹의 생각으로는 프랑스 혁명 기간은 1789년 바스티유 요새 습격 사건부터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까지의 10년 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역사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10년이 아니라, 약 100년 간 진행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은 1870년 제3 공화국(La Troisieme Republique, La IIIe Republique)의 성립 때 되어서야 비로소 완성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일어났던 많은 사건들, 즉 나폴레옹의 제1 제국, 부르봉 왕가의 복위, 7월 혁명, 루이 필립 왕정, 2월 혁명에 의한 제2 공화국, 나폴레옹 3세의 제2 제국, 그리고 1870년 보불 전쟁의 뼈아픈 패배는 모두 프랑스 대혁명의 진통이었던 것이지요.




(프랑스 제3 공화국의 업적 중 하나는, 나폴레옹도 이루지 못했던 정교 분리를 1905년에 마침내 이루어냈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카톨릭 신부에게 이별을 고하는 '빨간 고깔모자를 쓴 삼색기의 여인'이 바로 마리안느 Marianne, 즉 프랑스 공화국을 의인화한 캐릭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혁명의 혼란 속에서 19세기를 보낸 덕분에 프랑스가 과거의 영광을 모두 잃고 영국이나 독일에 비해 크게 암울한 20세기를 맞게 되었다고들 합니다.  사실 제 세대는 학교 교과서에서 대략 그렇게 배웠습니다.  실제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19세기 동안 독일이나 영국의 인구가 크게 증가할 때, 유럽의 인구 대국이었던 프랑스의 인구 증가율은 크게 정체된 편이어서, 이 현상 자체가 하나의 연구 과제가 될 정도였는데, 일부에서는 19세기 프랑스의 정치 혼란이 그 원인이라고 탓하기도 합니다.  물론 반대론도 많지요.  하지만 프랑스가 19세기의 혼란기를 겪어나가면서, 국가적으로 얻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저 파리 대법원의 작은 출입문 위의 새겨진 Liberté, Egalité, Fraternité 입니다. 




(이건 정부 소유의 어떤 교회 문위에 새겨진 자유-평등-박애입니다.)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는 다들 익숙하실 텐데, 정작 저 3번째의 Fraternite에 대해서는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드실 것입니다.  이는 영어로도 fraternity이고, 형제 관계, 형제애, 동포애, 남학생클럽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저는 이걸 그냥 '박애'라고 번역합니다.  이 '박애'에 대해서는 생소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 이것이 프랑스 혁명의 원래 모토가 아니라 훗날 정립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 초기부터 리베르테와 에갈리테, 즉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는 워낙 이야기가 많이 되었지만, 세번째 모토는 처음부터 명확히 프라테르니테라고 정의가 되지 않았고 다른 개념이 대신 끼어들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그냥 자유와 평등만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정의도 1789년의 인권 선언 (De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에 다음과 같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맨 처음 이 글을 썼던 것이 2013년이었는데, 지금은 촛불 혁명 거치면서 우리나라도 많이 개선이 되었나요 ?)




"자유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 같은 권리를 누리는 것을 보장하는 한, 모든 남녀가 타고난 권리를 누리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어야 한다." 


"평등이란 법이 모든 사람에 대해, 그것이 보호이건 처벌이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뜻한다.  모든 시민들은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시민들은 그들의 능력에 따라 고위 관직 및 공직, 일자리에 있어 동일한 기회를 가지며, 그들의 덕성과 재능 외에는 어떠한 차별도 받아서는 안된다." 



사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것은 서로 양립하기가 조금 아리송한 개념이기는 합니다.  애초에 인간은 평등하지가 않습니다.  외모이건 신체적 능력이건, 그리고 특히 지적 능력과 사업 수완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납니다.  이런 소양 차이는 필연적으로 성과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으므로, 어떤 사람은 부와 권력을 손에 쥐게 되고, 어떤 사람은 가난과 불명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평등이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자 법 앞의 평등이라는 개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을 주도한 세력은 18세기 말의 계몽 사상에 기반을 둔 유식하고 능력있는 부르조아 계층이었으므로, 이들에게는 귀족이라는 특권 세습 신분의 타파만 중요했습니다.  그런 특권만 제거된다면 부와 실력을 가진 자신들의 세계가 펼쳐질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지요. 




(프랑스 혁명 초기에 나온 자유-평등-박애 문구입니다.  밑에 달린 ou la mort는 "아니면 죽음을" 이라는 다소 과격한 구호입니다.  이 죽음 부분은 너무 과격하다고 하여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자유라는 개념은 무척 난해한 것입니다.  원래 자유로우려면 경제적인 독립성이 먼저 확립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어떤 권력자에게 달려있다면, 자신이 그 권력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  따라서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이 없는 자유는 허울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가령 산업 혁명 당시 맨체스터 공장 지대의 일용 노동자는 명색은 자유인이지만 정작 미국 남부 흑인 노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이 없다면 자유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다보니 부자들로부터 더 높은 세금을 걷는 등 남의 자유를 빼앗는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가령 최저 임금제라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제가 당장 라면이라도 끓여먹기 위해 한달에 50만원이라는 박봉으로라도 좋으니 어떤 공사장 경비원 자리를 구하고 싶은데, 국가가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최저임금 이하의 금액으로 고용 계약을 맺는 것은 불법이라고 이 고용 계약을 취소한다고 하면, 저와 그 고용주가 서로의 사정에 따라 계약을 맺을 자유를 국가가 빼앗는 것이 됩니다.  또,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기업은 두부를 만들어 팔면 안된다 라든가, 대기업의 대형 마트는 일요일에 영업을 하면 안된다 라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로마 방문했을 때 멀리서라도 뵐 기회가 없었던 프란체스코 교황입니다.  당시 현지 가이드 이야기를 들어보니, 로마 현지에서나 전세계에서나, 전임 베네딕트 교황에 비해서 인간미가 넘치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하여, 인기가 폭발적이라고 하더군요.  프란체스코 교황은 최근에 '규제받지 않은 자본은 또 하나의 독재'라는 발언을 하여 특히 미국의 보수파 (자칭 신자유주의파)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급기야 교황이 '나는 마르크스 주의자가 아니다'라는 해명 발언까지 해야 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종북 빨갱이몰이는 공통된 현상인가 봅니다.)




이렇게 자유와 평등은, 경제적 문제에 들어가게 되면 정말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제3의 구호, 박애라는 개념이 들어가게 되면 이야기가 좀더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저 자유와 평등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문제인 것에 비해, 박애라는 개념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본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홀로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고 할 지라도, 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른 '별로 안 뛰어난'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필요합니다.  '내가 혼자 잘나서 이렇게 부를 이루었는데, 왜 내가 무능력한 가난뱅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고율의 세금을 내야 하느냐'라고 묻는 것은 기본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부나 돈이라는 개념은 홀로 있는 무인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직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회에서나 의미를 가지는데, 사람의 사회라는 집단에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박애라는 개념은 같은 피가 흐르는 같은 영장류 동물로서, 당연히 동족에게 가져야 할 최소한의 연민과 사랑이지요.  결국 자유와 평등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묶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박애라고 저는 저 나름대로 정의를 합니다.




(바티칸에 있는 4대 복음서 저자 중 한명인 마태 Matthaeus의 석상입니다.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 어록에 아래와 같은 말이 있지요.  저는 전에 어느 분의 장례 미사에 갔다가, 신부님이 읽어주시는 이 글귀를 듣고... 감동도 좀 먹었지만 사실 좀 무섭기도 했습니다.  저는 정말 지옥에 갈 죄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지요.  세상에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 가족의 행복과 안녕이 더 급하고 더 귀하기 때문에 기부도 많이 안 하는 편이거든요.  아마 그때부터였나... 저는 복지를 위한 중과세에 적극 찬성하는 사람이 되엇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45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이런 자유-평등-박애의 구호는 그냥 막연히 떠드는 구호는 아닙니다.  근 100년 간의 혁명을 거치면서 프랑스 사회가 내린 결론이지요.  이 구호는 1870년 이후 성립된 프랑스 제3 공화국에서 국가 이념으로 내세우면서 확실히 정립이 되었고, 1880년 이후 지어지는 관공서 등의 건물의 박공 등에 이 문구를 새겨 놓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 파리 여행에서 시테 섬의 파기법원 출입문 위에 새겨진 저 문구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국가 이념을 저렇게 정한다고 정말 저렇게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저렿게 이념이라도 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요!)




저는 그때 꽤 지치고 (비까지 와서) 처량한 기분이었으나, 저 문구를 보고 괜히 저혼자 흥분했었어요.  그래서 별로 관심도 없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우리 애에게 저 문구의 의미를 설명해주려고 막 떠들다가 핀잔만 들었지요.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저 구호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는데 무척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유-평등-박애의 상징은 프랑스 곳곳에서 자주 눈에 보입니다.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마리안느(Marianne)라는 여자의 모습과 프랑스 삼색기와 함께, 이 구호는 마치 프랑스와 불가분인 것처럼 지금도 외쳐지고 있지요.  프랑스의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프랑스의 국가 이념이 바로 이 Liberté-Egalité-Fraternité라는 것을 반복해서 배운다고 합니다.  




(프랑스 공화국의 마리안느는 결코 청순가련형의 순종녀가 아닙니다.  자유와 평등을 침탈당할 때는 저렇게 총검을 손에 들고 민중을 이끄는 행동파입니다.)




전에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에서 쓰면서 이렇게 '독재자의 깃발이 올랐다 시민들이여 무기를 들라 !'라는 가사를 국가 의례 때마다 부르는 나라에서는 독재자가 자리잡기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지요.  같은 맥락에서, 부유층의 수퍼카와 호화 요트에 대한 세금은 없애면서 서민들의 연료비에 대한 세금은 높아지는 현실을 접했을 때, 학교에서 에갈리떼(Egalité)와 총검을 든 마리안느에 대해서 배우는 나라의 국민들이라면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를 통해 파리를 뒤집어 놓는 것이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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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로 2018.12.13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보는 폭력을 휘둘러야 진짜 진보라 할수 있죠.. 마리안느님도 폭력을 당하셨지만 진보가 정의고 절대선이니 칭찬만 하실거에염~~~

  2. Spitfire 2018.12.13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유 평등 박애를 균형있게 실천한다면 정말 이상적이겠지요.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자유 평등 박애의 수준이 다르다보니 항상 갈등과 논쟁이 발생하는듯 합니다.

    저도 부자감세는 지지하지 않습니다. 사치품에 대한 세금도 높게 책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종부세 논란이 있는데 솔직히 현재세율이 무리한 수준은 아닙니다. 복지정책도 정말 효과가 나게 실행한다면 세금을 더 낼 의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인세는 인하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일단 기업이 굴러가야 월급도 주고 고용도 되니까요. 특히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고 세계경제도 성장이 둔화되고 있어서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주변의 사장님들이 그냥 회사접고 돈챙겨서 띵까띵까 하고 싶어 하는게 좀 우려가 됩니다.

    • reinhardt100 2018.12.15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자감세 문제라..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부자가 세금을 더 내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버는 돈이 더 크니까요. 그리고 세율이 좀 높을수도 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까지 높아야 하는지? 그거에 대해서는 솔직히 면세구간을 벗어난 최저 수준의 과세베이스를 가진 과세대상자에게 적용되는 세율의 2배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막말로 부유세 75%씩 하는 건 정말 아닌건 아니니까요.

      법인세 솔직히 개인적으로 10% 기본, 부가세 및 잡세 포함해서 최대 12.5% 이상은 부과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현재 25%까지 인상했는데 이거 사실상 사업하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주변 기업하시는 분들 말씀하셨듯이 더러워서 기업 안 한다는 분들 많습니다. 법인세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 Spitfire 2018.12.17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예언이나 다름없는 이야기 하자면, 아이러니하게도 고소득자의 세금을 올리면 빈부격차가 심화 됩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고소득자의 세금을 올리면 서민이나 중산층은 절대 빠른 속도로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재산을 쌓아나가는 속도 자체가 감소하니까요.. 예를 들어, 제가 한해 이재용과 같은 수입을 올린다 하더라도 저는 절대 이재용과 같은 레벨의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후발주자지만 세금을 많이 내야해서 도저히 이재용이 기존에 가진 재산수준을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과세 하에서 중산층은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지요.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중과세는 중산층 이하 ‘떨거지’들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아무도 부자는 못되구요~ㅎㅎ (길게 적었지만 쉽게 말해 ‘사다리 치우기’입니다, 아! 글고보니 현 정부가 야당일때 맨날 1:99 논리를 폈는데, 그걸 실현시키려는게 목적일지두요~)

      이 논리는 제 뇌내망상이 아니라 유럽의 젊은 엘리트들이 하는 푸념입니다. 그들은 유럽에선 절대 잡스, 게이츠, 저커버그 같은 자수성가형 갑부가 나올 수 없는 환경이라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벤처가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기존의 유명기업들과 똑같이 세금, 직원복지, 환경문제 등등을 다 신경쓰면서 그들을 넘어서기가 불가능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부자들의 재산에 세금을 메겨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자본주의 사회 자체를 부정하는 이야기라 굳이 답변할 가치도 없겠지요. 심지어 공산주의 사회인 중국이나 베트남에도 없는 정책이지요.

      하지만 만약 국민들이 그렇게라도 (보이지도 않는 이재용은 모르겠고) 그냥 옆사람한테 시기 질투를 느끼기 싫어서 중과세를 지지한다면, 저는 중과세 정책도 반대하진 않습니다. 대다수가 하향평준화를 원하는데 그거에 반대해서 욕먹는거보단 나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방법을 써서, 노력은 별로 안하고 남의 푼돈 받아서 그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서민들을 양산할 수 있다면, 주인장님이 말하신 ‘사회안정’에 도움이 될테니 저는 저렴한 가격에 재산을 지킬 수 있고 좋습니다~~

      여러 과정을 거치다보면, 결국엔 무한한 중과세를 실현하기엔 오히려 무리가 따른다고 봅니다. 저는 그래서 적정한 세율 문제는 사회구성원들이 경험치를 쌓으면서 절충적인 수준에서 수렴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금은 그냥 과도기 단계로 보구요~

      법인세 인상하고 최저임금 올리면 사장님들 엿맥였다고 며칠 기분 좋을 진 모르겠지만, 결국 몇몇은 직장을 잃고 취직은 안되고 복지에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복지? 사장들이 회사 때려 치우고 job자체가 없어지는데 그 복지를 유지할 세금은 어디서 나올까요? 언제까지 부자들을 울궈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세상은 스타 무한맵이 아닌데 말입니다..

    • ㅇㅋㅂㄹ 2019.01.14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재산에 대한 과세가 반자본주의적이라는게 어떤 이유에 의한 것인가요?

  3. 뱀장수 2018.12.13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득 하시스트들의 유럽본부인 파리에서 개고생하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마리안느가 아니라 마리안느 할매가 오셔도 무급 스타쥬는 계속 유지되겠죠ㅋ

  4. 유애경 2018.12.13 1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글도 잘 읽었습니다.

    말씀대로 잘난사람은 못난사람이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겠죠. 뛰어나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더 관대해 졌으면 싶습니다.

    • reinhardt100 2018.12.15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대해져야 한다고요? 이게 정언명제도 아니고 그걸 언제까지 참고 받아줘야만 한다는 겁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도 나오면 좀 더 진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같지도 않은 소리 하면서 박박 기어오르려고 하는 인간들이 최근 마치 그게 풀뿌리 민주주의다 라고 착각하고 주장하는데 참는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한테 한 마디 하자면 '민형사상 피소 한 번 당해봐야 정신 차리겠냐?' 입니다. 소송은 언제든지 걸라고 있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법봉 찜질을 한 번 당해봐야 머리가 좀 시원해질 겁니다.

      좀 과격하게 썼습니다만 각자가 공부하면서 내린 결론을 가지고 토론하는거야 얼마든지 좋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점점 그런 모습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공부를 안 하니까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 유애경 2018.12.15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나라 거부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참을성이 폭발할 정도로 관대 했었다는 말씀인지요?
      부자들꺼 다 뺏어서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줘라는 말도 아닌데 왜 그렇게 흥분 하십니까?

    • reinhardt100 2018.12.16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흥분한거 아니에요. 오히려 더욱 냉정해지질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다들 노력해서 결과를 성취할 뿐입니다. 다만 능력의 차이로 그 결과물이 다를 뿐이겠죠. 어느 정도 격차가 벌어지면 또 국가가 복지 등의 형태로 최소한도나마 수정하려고 하는게 현대 수정자본주의 및 복지국가의 기본 노선일 겁니다.

      한국의 거부들이 나름 서구에 비해서는 꽤나 관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좌파들이 이상향이라고 떠받드는 덴마크, 국가의 99%의 부가 사실상 소수 거부에게 예속된 수준입니다. 스웨덴? 발렌베리 단 하나의 가문이 전 국부의 1/3을 가진 판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따위 결과는 나오지도 못합니다. 아무리 잔혹하든 냉혹한 거부들이라도 이런건 상상도 못합니다. 삼성의 경주이씨가문이라도 이렇게는 못하죠.

      한국이 참 좋은 나라인게 어느 누구든지간에 공부만 잘 하면 타국에 비해 꽤나 기회가 보장이 된다는 겁니다. 공부는 가장 확실한 실력본위의 상징입니다.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 덕분에 가치를 인정받는 분야는 절대 아닙니다. 한국만 생각할 수준이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판에 내국시장만 보고 관대해야 한다는 건 사실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자꾸 뛰어난 재주를 가진 우수한 엘리트들을 기죽이면서 이들이 해외로 '탈조센'하도록 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게 제대로 된 정책이라고 해야겠습니까? 우수한 인재를 집중적으로 키우면서 우수한 인재를 더욱 양적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비정해 질 필요도 있습니다.

    • 유애경 2018.12.16 0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그거에요.
      막대한 부를 아주 일부분의 사람들이 독식 하는게 옳겠느냐는 말이지요.
      물론 가만히 앉아서 거부가 된것이 아니란건 압니다.
      거부든 엘리트든 피나게 노력하고 공부한자들에게는 당연히 좋은 결과와 보상이 있어 야죠! 제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노력하신 분들 존경합니다.

      옛말에 '큰부자 하나가 나올려면 삼동네가 망한다 ' 이런말도 있는데 아무래도
      부라는 것이 어떤 형태로는 다른사람의 몫까지 끌어들이게 되는것 같아서, 그런 의미에서 '많은 관대'도 아닌 '조금 더 관대'를 말한 겁니다.

      그런데 탈조센은 어제오늘일이 아닌것 같은데요. 그게 지금 정부에 들어서서 더 심화되고 있다면 문제네요!

  5. 까까님 2018.12.13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소싯적 김청기 같은 분도 알고계시던 '사랑의 힘만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진리를 참 오랫동안... 40년이나 걸려서 어렵게 깨달았네요
    레미제라블 영화에서도 폭력과 사랑이 한 화면에 담기는 바리케이드 신이 참 감동적이었죠
    조금만 사랑을 하면 조금은 욕심이 줄어들고 그렇게 행복해지는 건데...
    물론 우린 그저 짐승입니다... 딴에는 아닌척 하고싶어하는
    불란서 대인배들도 저 문구를 추구할 이상으로 기록한 것이지 현실에 이루어지리라 생각하며 쓰지는 않았겠죠
    짐승이 짐승이 아니고싶어하는 모순을 이렇게 쉽게 얼버무리고 안아줄 수 있는 방법이 있고 동서고금에 많은 사람들이 그걸 다 알고 있었는데도 세상이 유토피아로 다가서는 기미는 안보이네요

  6. 나삼 2018.12.14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간에 촛불이 혁명이란 말에는 동의를 못하겠습니다. 혁명이란게 뭡니까. 구체제를 부수고 세로운 체제로의 이행 아닌가요? 촛불세력이 만든 지금의 정권을 보십시요. 구 정권과 뭐가 다른가요? 제일 비난했던 정경유착도 마찬가지고 김정은한테 잘보인다고 고위제계인사들 북으로 끌고다니질 않나. 삼성이 체육계에 돈을 잠근다고 하니까 정부가 앞장서서 올림픽에 삼성보고 계속 협찬하라고 압력넣지 않았나요 ..공직자 청렴하게 세운대더니 지금 장관들중에 자기들이 들이 댓던 5대 결격사유 없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가진자와 그들이 지칭하던 서민과의 차이를 줄이겠다고 했는데 지금 정권의 통계상으로도 지금 더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이게 촛불세력이 말하는 혁명인지요. riot 인가요.

    • reinhardt100 2018.12.15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떻게 그게 혁명이 되나요? 혁명이란게 사실상 체제를 바꾸는건데 이건 체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냥 집권세력만 자리 바꾼 거 수준입니다.

      이번 정권 끝나면 어떤 평가 나올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딴 거 필요없고 경제분야만 봐도 분석하면 할 수록 답은 나와 있거든요.

  7. 최홍락 2018.12.15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m.blog.daum.net/nasica/6862562

    전에 올리셨던 글이 이거였네요. 무려 5년전 글인데 그때도 그리펜이이라는 작자를 끝까지 봐주시다가 차단하셨는데ᆢ

    비슷한 실험을 반복하셔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그때와 같이 알타리무같은 실패작을 만드셨네요. 다른것도 지적할 부분이 많지만 저런 깽판이 반복되는게 이 블로그의 가장 큰 실패이지요.

    입으로 "우리 사회에 관용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요. 하지만 그 '관용'을 실행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그에 따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그런 비용을 감당하면서 '관용'을 계속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잘라내야 합니다. 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고집도 어지간하십니다.

    http://nasica1.tistory.com/m/47

    여기서 언급한 앙 마르슈가 벌써 작년중순의 일이 됬네요. 정치라는게 아무리 좋은 방향이라도 그것을 행하는것은 또다른 난관을 넘는 것이라는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요.

    Eugen님께서 또 글로 저를 비난하시겠지요. 슬프네요.

    • reinhardt100 2018.12.15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기억으로는 최홍락님께서는 특별히 비판받을 만한 글을 남긴 건 없었는데 무슨 비판을 받으세요?

      요새 프로젝트 때문에 한창 바빠서 오늘에야 확인하네요.

    • 최홍락 2018.12.15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타리무에게는 늘 시비 대상이었고 최근엔 진영논리에 찌들었다라는 비난도 있었지요ㅎhttp://nasica1.tistory.com/m/209

    • reinhardt100 2018.12.15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Eugen 님 논리대로라면 전 파시스트에 열렬한 네오나치이겠는데요? ㅎㅎㅎ 뭐 저야 정치적 스탠스가 농담 아니라 알타리무, 나삼 같은 분들은 그냥 평범하다 싶을 수준일 정도로 강경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막말을 내뱉을 정도의 글을 쓴 기억은 없는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각 개인의 사고는 뭐라 할 게 못 되니 그런가 보다 하는게 나을 듯 합니다.

  8. nasica팬 2018.12.15 2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분명 자유와 평등은 긴장관계가 있지요. 그 긴장관계를 해소하는데 '박애'가 유용하다는 주인장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박애'같이 거창한 구호를 떠나서 보아도 약자에 대한 배려, 특히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은 실용적인 면에서도 필수적이라 봅니다.

    역사를 봐도 어떤 문명이건 국가건 몰락이나 쇠퇴의 내부적인 원인은 거의 예외없이 극단적인 빈부격차, 사회적특권계층의 존재, 신분이동의 경직성 등입니다.

    위에서 예로든 프랑스 혁명도 어쨋건 저쨋건 구체제의 모순이 존재하고, 구체제의 특권층은 정말 1원 한푼 내놓지 않으려고 악을 쓰다가 불벼락을 맞은 셈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박애(사랑? 자비?)에 비롯해서 약자에 대한 배려나 복지를 하겠다는 것도 좋지만 그런 거창한 박애나 사랑이 없는 사람들도(사실 박애 없는 사람이 더 많쟌아요)
    사회유지(개인적인 부나 지위의 유지도 포함해서)라는 실용적인 관점에서도 빈부격차 해소나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 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9. nasica팬 2018.12.17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블로그에서 짬밥좀 있는 분들은 방금 덤 앤 더머
    가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상영됏던 거 아시죠 ㅋㅋㅋ
    늘 빅재미를 주시는...

    • 최홍락 2018.12.17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쉐도우 복싱이라는게 원래 힘빼는 운동인거죠.ㅋ

    • nasica팬 2018.12.17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 혼자서 하는 쉐도우 복싱은 보기에 좀 안쓰러웟는데 짝지어서 쉐도우 복싱하는걸 보니 나름 재미지네요 ㅎㅎㅎ

  10. 푸른 2018.12.17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년 전 글을 이렇게 다시 보니 새삼스럽네요. 이번에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ㅎㅎㅎ

  11. keiway 2018.12.18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정치혐오가 문제라고 하죠. 언제는 없었겠습니까만.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도 보더군요. 양비론과 정쟁으로 몰아가니 누가 발목을 잡든 앞으로 못가는 건 정부 탓이 되는거죠.
    이 정권이 잘 되길 바라고,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박근혜 정권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은,
    온갖 과격한 언어로 치고박고 하는 걸 보다보면 신경쓰고 싶지 않아지는 게 사실입니다. 평소 사는것도 피곤한데 말이죠.

    쓸데 없는 얘기를 길게 했는데,
    누가 어떤 의견을 떠들든 자유롭게 놔두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욕설과 마찬가지로 예의와 논리가 없는 글을 보면 피곤해져서 창을 닫아버리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첨예하더라도 기본적 예의가 있는 댓글 교류를 위해 차단을 조금 더 강력하게 써보시는 건 어떨지 주인장께 권유해봅니다.

    • nasica 2018.12.18 2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냥 수양을 쌓는다고 생각하시고 참고 견뎌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반복적인 악플도 엄연히 인권이 있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keiway 2018.12.19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블로그 주인의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댓글 블라인드 처리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인거죠.

  12. 알키비아데스 2019.02.08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유-평등-박애의 관념적 완성은 3공화국이겠지만 68운동까지 와야 프랑스 사회에서 체화된거 아닐까요
    3공화정 ~ 5공화정 초기까지 드레퓌스 사태 - 베트남,알제리 독립운동 - 드골 독재정 이런걸 보면 딱히 현대적 인권이 완성된거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몇번 언급드렸다시피, 기독교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매주 교회에도 나가지만 그다지 믿음이 깊지 않은 반쪽짜리 신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앙심을 가진 분들을 이해도 하고 또 예수님의 가르침이 옳다고 느끼고 세상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만, 과연 그 신의 이름이 여호와이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인지에 대한 결정적인 확신이 없어요.  그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시작해야 이번에 쓰는 글에 대해 오해가 없겠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성경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물론 정식 신학 공부를 하신 신부님들이나 목사님에 비하면 어림도 없겠습니다만, 믿음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개신교 신자보다는 성경을 더 많이 읽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경을 읽을 때마다 드는 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가령 한가지 예만 들면 이렇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부터의 내용은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형에 처해진 두 강도의 이야기입니다.  둘다 십자가 형에 처해지는 것이 당연한 악당인데, 그 중 하나는 죽어가는 순간에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deathbed conversion'인데, 그래서 불신자들은 '마지막 죽는 순간에만 참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 이전에는 아무리 악당으로 살아도 천국행 티켓 걱정은 없다' 라고 빈정대기도 하지요.  아무튼 성서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같은 장면을 그린 마태복음 27장 38절부터의 부분을 보면 골고다 언덕에 매달리신 예수님 양편에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진 두 강도가 예수님을 함께 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분명히 두 강도가 모두 예수님을 욕합니다.  왜 같은 성서에 서로가 모순되는 사실이 적혀 있을까요 ?  (참고로 이런 점에 대해 여쭈어 보면, 대부분의 열혈 신자들은 '너의 믿음이 약해서 그렇다' 라고 답합니다.  감히 목사님과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일단 무릎 꿇고 기도부터 하자고 하실 것이 겁나서 그랬어요.)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찌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신앙심이 전혀 없을 때 제가 받은 느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초기에 그냥 사실 그대로 쓰였는데, 누가복음은 더 뒤에 쓰여져 이런저런 픽션(?)이 많이 들어간 모양이다' 라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결론을 얻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제 주변의 일부 열혈 개신교 신자분들은 이런 제 나름대로의 해석에 펄쩍 뛰십니다.  성서는 사람이 제 마음대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에 따라 쓰여진 것이므로 어느 글자 하나도 잘못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어느 정도 기독교 신앙을 인정하게 된 지금도, 저는 그런 말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반쪽짜리 신자인가 봐요.  그래도 지금의 저는, 모세가 홍해를 둘로 갈랐다는 것이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또 골고다 언덕의 강도 중 한 명이 예수님을 찬양했건 욕했건 그런 역사적 사실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나라의 어느 독실한 신학생이 유럽 어디론가 신학 유학을 가서 겪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차 목사가 될 독실한 신학생들로 가득찬 그 강의실에서 신학 교수님이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고 실제로 믿는 사람 손들어봐라' 라고 하니 유럽 출신 백인 학생들은 아무도 손을 안드는데, 자기만 손을 들더랍니다.  그러니까 그 신학 교수님이 웃으며 '너는 정말 그게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고, 또 만약에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너의 신앙심이 흔들리느냐?' 라고 묻더랍니다.  저도 뭐라고 말로 설명은 잘 못하겠는데, 그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꼭 이렇게 해야만 신앙심이 생깁니까 ?)




하지만 아직도 깊게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문점이 있습니다.  짧고 굵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진보인데 왜 목사님들은 보수인가 ?"


너무 짧게 써서 질문 자체가 무척 잘못된 점이 많습니다.  가령 진보와 보수의 개념부터 시작해서, 모든 목사님들이 보수 성향을 가진 것이 아니다 등등 문제가 많은 질문이지요.  그러나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을 묻는 것인지 다들 이해하실 질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예수님 말씀인지 마르크스의 말인지 헷갈리는데...    

"각자의 능력에 따라 걷어" 사도행전 11장 29절  

"각자의 필요에 따라 나눈다" 사도행전 4장 35절)




예수님은 부자나 재물을 적대시하지는 않으셨지만, 분명히 부자와 권력자보다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굳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라는 유명한 구절이 아니더라도, 공관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언행을 읽으신 분이라면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가난한 자들과 창녀들, 그리고 현재로 따지면 일본군 헌병 보조에 해당하는 민족적 배신자인 세리들처럼 점잖은 사회에서 멸시받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돕지 않는 것은 주님을 외면하는 행위라는 말씀도 하셨지요.  게다가 기존 기득권층인 유대 제사장의 이익에 어긋나는 언행을 많이 하신 결과, 결국 십자가에 매달리는 끔찍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예수님의 행보를 다분히 진보적이라고, 더 나쁘게 왜곡하면 빨갱이스럽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겪은 바에 따르면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간지가 벌써 만 20년입니다) 적어도 한국 개신교 목사님들은 상당수가 보수 우익이십니다.  제가 직접 보고 들은 몇가지 사례들을 나열하자면... 그건 교회 목사님들의 너무 안 좋은 면을 내비치는 것 같아 관두겠습니다.  


저는 대형 교회 두 곳을 다녀 보았고, 지금은 작은 동네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만, 그런 경향은 대형이나 작은 교회나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대형 교회에서는 좀더 재물 이야기를 많이 하기는 했습니다.  심지어 예배 시작할 때 장로님이 앞에 나와 기도를 올리시면서 "불신자들이 저희를 비웃지 않도록 저희에게 재물을 내려주소서" 라고 큰 소리로 외치시는 경우까지 보았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입니다.)  특히 십일조를 강조하셨는데, 정말 여러번 반복하신 설교 내용이 미국의 록펠러나 포드 같은 재벌들이 십일조를 꾸준히 낸 덕분에 그렇게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여러분 중에서도 그런 큰 부자가 나와서 우리 교회를 크게 흥하게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좋은 축복 내용입니다만, 저는 뭔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한국 전통의 구복 신앙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분이 소싯적 가난할 때부터 십일조를 낸 덕분에 당시 뉴욕타임즈가 "the most cruel, impudent, pitiless, and grasping monopoly that ever fastened upon a country" 이라고 평가한 Standard Oil 사를 창립한 록펠러이십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만 이 분에 대해 듣는다면 세상에 이렇게 착하신 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세상에 행했던 그 모든 악... 에이 아닙니다.)




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었습니다만,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성경 구절은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저는 전에 어느 분의 장례 미사에 갔다가, 신부님이 읽어주시는 이 글귀를 듣고... 감동도 좀 먹었지만 사실 좀 무섭기도 했습니다.  저는 정말 지옥에 갈 죄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지요.  세상에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 가족의 행복과 안녕이 더 급하고 더 귀하기 때문에 기부도 많이 안 하는 편이거든요.  아마 그때부터였나... 저는 복지를 위한 중과세에 적극 찬성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지를 구현하여 세상에 굶주린 사람이 없게 되면, 저의 가련한 영혼의 죄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지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45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우리 모두는 매일매일 굶주리고 병들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자 동네에 살아서 직접 마주칠 일이 없더라도, 수많은 매체를 통해 매일 그런 사연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그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녔던 대형 교회에서는 그런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습니다.  최소한 목사님들이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씀하시는 것을 정말 들은 적이 없어요.  그에 비해 록펠러 이야기는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심지어 '일반 신도 수백명보다, 그렇게 거액의 십일조를 낼 수 있는 신도 한 명을 얻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라는 말씀을 하는 것까지 들었습니다.  (거짓말 같은데, 정말입니다.)  정말 개신교는 자본주의에 맞게 진화한 것 같았습니다.  하긴, 신년맞이 예배에서 목사님이 엄숙하게 '올해의 목표, 1. 교육관 건립  2....' 하는 식으로 그 해의 목표를 정해주시는 교회였으니, 제가 '대체 여기가 교회냐 회사냐 ? 잘하면 올해의 목표 헌금액까지 정해져 나오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리도 아니었지요.  (참고로 그 교회는 결국 교회 본당만큼 커다란 교육관을 세웠습니다.  할렐루야 !)


저는 한국 교회의 이러한 변질이 꼭 한국 개신교에만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교계도 변질되고 부패하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고, 카톨릭도 내부에는 많은 부패와 부조리가 있겠지요.  생각해보면 모든 종교는 시작은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창시되었으나, 종교 권력으로 성장하면서 결국은 부와 권력 편에 서는 것이 역사적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직접 보고 느낀 한국 교회의 모습은 정말 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모든 것이 결국은 돈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교회도 사람들의 모임인지라, 결국 무슨 일이든 벌이려면 예산이 필요하고, 예산에는 당연히 권력이 따라 붙습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카톨릭이 그나마 그런 경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이미 카톨릭은 전세계적으로 탄탄한 조직과 재원이 마련되어 있고 개인적인 가정이 없으므로, 그런 돈 문제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원래 유대교는 아무데서나 하나님께 제사를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루살렘 지성소 바로 밖에 있는 지정 장소에서, 대제사장의 집전 하에서만 제물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교리는 대제사장 계급의 막대한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바쳐지는 제물로 인한 경제적 이익, 특히 성전에 봉헌되기 위해서 반드시 로마 화폐인 데나리온을 성전세 지불용 화폐인 셰켈로 환전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점적 환전 이익이 막대했거든요.  그 부분을 읽으니, 다들 아실만 한 어느 유명 복음 교회에서 발간하는 신문집에서 읽은 문답이 기억났습니다.  




(이것이 성전세 납부용으로 사용된, 예루살렘에서 주조된 화폐 shekel 은화입니다.  이 은화는 반 (half) 셰켈짜리입니다.  당시 성전세는 당시 성인 남자 일인당 반 셰켈로 정해져 있었으므로, 좋든 싫든 일반적인 화폐 데나리온을 반드시 반 셰켈 또는 셰켈로 환전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차익이 대제사장의 손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 문답에서, 어느 신자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은데,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는 대신 직접 그 사람들 또는 단체에 기부를 하면 안될까요 ?' 하고 물으니, 그 교회의 단호한 답변은 이랬습니다.  '안된다.  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돕겠다는 것은 개인의 오만이다.  반드시 교회에 바쳐라.'


성서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지성소에 쳐진 장막이 찢어졌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소통해야 한다는 제약이 사라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를 통하지 않고 빈민을 돕는 것이 '개인의 오만'이니 허락할 수 없다는 모습에서, 저는 예수님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비난하시던 유대교 제사장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혁명을 추구하셨지만, 성전에서 대제사장의 돈벌이판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시고는 희생 제물용으로 판매되던 가축들을 쫓아내고 환전상의 가판대를 힘으로 뒤엎으셨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예수님이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신 것은 권력을 이용하여 성전에서 경제적 독점권을 취하던 이들을 내쫓을 때 뿐이었습니다.)




저는 성서를 글귀 한글자한글자에 교조주의적인 맹신을 가지고 해석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전에 다녔던 대형 교회에서는 어느 복음서의 시작 부분이 '너희가 강녕하기를 바라노라' 라는 당시의 평범한 인사말로 시작하는 것을, '봐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돈 많이 벌고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신다' 라며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해석하시더군요.  특히 말라기에 나오는 십일조를 바치면 그 백배천배의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될 거라는 부분은 글귀 하나하나를 정말 너무나 애용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천국에 가려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부분은 그렇게 글귀만 보고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딱 선을 그으시지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개신교와 카톨릭이 정면 충돌하는 부분이 제사 부분입니다.  개신교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라는 십계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금지하는 것에 비해 카톨릭에서는 제사 행위 자체를 우상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판단하여 허락하지요.  참고로 저는 제사 폐지론자입니다만, 제사가 우상 숭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돌아가신 조부모님이나 부모님 등의 분들에게 초능력이 있어서 간절히 모시면 우리 소원을 들어준다든지, 반대로 제삿상이 부실하면 화를 내고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  교회에서도 우상의 정의를 '주님보다 더 소중히 모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현대의 한국 교회들 중 많은 수가 주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돈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정말로 주님을 따른다면 성경 내내 여러차례 반복되는 아래의 말씀들을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서 58:7

너희는 굶주린 자에게 너희 음식을 나눠 주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사람을 너희 집으로 맞아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 도움이 필요한 너희 친척이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어라.


누가복음 18:22

예수님은 이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직도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너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요한일서 3:17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난한 형제를 보고도 도와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주님의 뜻이 이 사회에서 가장 잘 구현될 수 있는 길은 사회 복지 확대입니다.  결국 사회 복지 확대 재원을 위해서는 부유층에게 어느 정도 증세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것 때문에 부유층에서는 진보적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고 부유층과 밀착한 언론에서는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끌어들여 진보 정권을 공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주님을 따른다는 개신교 목사님들이 극우파스러운 언행을 하시는지 정말 의아합니다.  도대체 (일부) 한국 개신교 목사님들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길래 '남이야 어떻게 되건말건 많은 돈을 모아서 대를 이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주님의 은총을 입증하는 길'이라고 믿게 된 것일까요 ?  개탄스럽습니다.  



* 예전에 다음 블로그에 썼던 글 약간 고쳐서 다시 올린 것입니다.  매주 목요일엔 주로 과거 글을 옮겨 옵니다.


** 물론 훌륭한 목사님들과 훌륭한 성도님들 많습니다.  개신교 전체를 매도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반쪽짜리이긴 하지만) 저도 개신교 신자입니다.


*** 댓글 중에 '예수님께서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건 진보 성향인가 보수 성향인가' 라고 물으신 분이 있었고, 바로 그 밑에 다른 분이 '그건 예수님 말씀이 아니라 바울의 말씀이다' 라고 댓글을 다셨네요.   찾아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장 


6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여러분은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과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은 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7 여러분은 우리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제멋대로 살지 않았으며

8 아무에게도 공밥을 얻어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밤낮 수고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9 우리가 여러분에게 도움을 받을 권리가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고 몸소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10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 고 가르쳤습니다.

11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게을러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12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명령하며 권합니다. 조용히 일하며 자기 생활비를 벌어서 살도록 하십시오.


이건 당시 텟살로니카 교회에서 공연히 사건만 일으키고 신도들에게 경제적 부담만 줄 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원래 바리새인으로서, 바리새인들은 율법학자로서 살더라도 종교 활동을 본업으로 해서는 안 되고 자기 자신의 노동으로 벌어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율법학자가 되기 전에 텐트 제조 기술을 배웠고 실제로 사역 활동 중에도 노동을 해서 스스로의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사도행전 18:3   바울은 그들의 직업이 자기처럼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으므로 그들과 함께 머물면서 일하였다.


결론적으로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라는 말씀은 노동을 하지 않는 전업 종교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일을 하지 않고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전적으로 사역만 했는데... 제가 알기로는 베드로와 바울의 관계가 썩 매끄러웠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공산주의자들은 저 말씀을 '노동을 하지 않는 자본가들'을 공격하는 용도로 쓰는 모양입니다.  확실히, 자본주의적인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1936 CONSTITUTION OF THE USSR


ARTICLE 12. In the U.S.S.R. work is a duty and a matter of honor for every able-bodied citizen,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 "He who does not work, neither shall he eat."

The principle applied in the U.S.S.R. is that of socialism: "From 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to each according to his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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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레미 2018.12.06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사님들, 특히 미국 개신교 문화가 그대로 넘어온 한국의 개신교 개척교회들은 벤처기업이거든요. 결국 목사들의 사고방식은 기업가들의 사고방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기업가니까 우익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벤처기업이 개신교 교회의 실상이지요.

  3. 유애경 2018.12.06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교회나 가르침(?)은 다 비슷한것 같네요. 록펠러는 십분의 9를 십일조로 바치는 역십일조를 했기 때문에 물질축복을 받아서 거부가 된것이다라는 사례(?)는 신도들에게 헌금을 독려하는 좋은 본보기로서 자주 활용되곤 하죠.
    진실된 주의 종들도 많지만 거듭나야할 목회자들도 엄청 많은것 같습니다.


  4. 프로이덴슈타트 2018.12.06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교개혁의 교부들이 남긴 글을 보면 재미있는 글이 많죠.소소한 일상생활부터 심지어 당시 유럽 안보를 위협하던 오스만 터키 제국에 대한 글까지 다양합니다.종교개혁자들도 사람인지라 제네바 등의 지역에서 강경한 신정정치를 시행하는 등 과오도 많지만 대체로 위인들인 것 같습니다.그분들이 남긴 글을 읽어보시는건 어떨까요? 당시 로마 카톨릭교회도 현대 한국교회 못지않게 변질되어 있었거든요.

  5. 리틀락 2018.12.06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판을 허용하지않는 목사의 절대권력이 타락의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견제와 감시가 없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리없을것 같네요. 카톨릭도 온갖 삽질을 다하고 현재 시스템으로 정착한거 보면 말이죠. 나폴레옹 전쟁도 샤프 시리즈도 재밌지만 이런 진지한 글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올 한해 감사했고 내년에도 좋은글 기대하겠습니다~

  6. ㅇㅇ 2018.12.06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수님은 좌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니들이 가진걸 나누라고 했지,
    남들이 가진것까지 강제로 나누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막말로 전 유대인에게 돈을 거둬서 한달에 1데나리온씩 지급하자거나,
    보편적 무상할례를 주장했다면, 뭐 어쩔수 없는 대한민국 진보구나 했겠지만,

    좌파우파로 딱 나눠질수가 없고, 그럴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개신교는 점점 비즈니스로 변해가고.
    사람들 구복해주고 돈받고 고민들어주고 위로하고 돈받고 찾아가서 기도해주고 돈받고 그걸로 바벨탑을 정성들여서 쌓으면서
    돈이 필요할때마다 성경에서 필요한 구절 때려붙여가며,
    믿음을 인질로 사람들을 현혹시키죠.

    목사들도 먹고 살아야 되는건 맞지만, 일부는 도를 훨~씬 넘었죠,
    그러면 또 어디서 성경구절 들이밀테지, 더러운 놈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지금은 저렇게 방방 날뛰지만
    어차피 그들도 사람이라 죽을테니 지들이라고 뭐 별수 있겠어요..

  7. ㅇㅇ 2018.12.07 0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회 그거 사교클럽 아닙니까?
    사교클럽장들이 어느 성향이든 뭐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8. 아즈라엘 2018.12.07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의 목사라는 사람들을 보면 복음과 돈만 외쳐대는 양복입은 무당의 모습이더군요
    전통의 기복신앙이 무너진 공백을 돈과 권력으로 치고 들어온 개신교를 보면서 종교자체가 꺼려지네요

  9. 지나가다가 2018.12.07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회를 통해서 기부를 하고 사회복지나 자선단체를 통해서 하지 말라고 하는건 개인의 오만을 경계해서가 아니라...

    기독교에서 자선을 베푸는 이유는 그 자선의 궁극적인 목적이 불쌍한 사람들을 배부르게 해주고 옷 입혀주고 잘 살게 해주고....하는데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자선을 통한 사랑의 실현,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베푸는 사랑의 실현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앞에 나아와 영의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지요. 자선단체는 이 세상에서의 괴로움을 덜어 줄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도움받은 사람을 영의 구원으로 이끌게 하지는 못하니까요.

  10. ㅇㅇ 2018.12.07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전하지 못한 교회 공동체가 한국에 많은 것은 사실이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원래가 비판하기 위한 글이니 비판받아야 할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씁쓸하네요.

    (제가 대체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글의 다른 내용보다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이, 주인장께서 반쪽짜리 개신교 신자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수십년 간 교회에 나가셨는데도 여전히 인격적인 주님이 계시다는 확신도 없고, 구원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지신도 없다면, 여전히 교회에 나가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애독자 2018.12.07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쓴이가 강남좌파인 것과 같은 모순이죠

    • 유애경 2018.12.14 0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회에 나간다고 해도 비판할건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시카님은 예수님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교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계시는건데 개인의 신앙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11. 애독자 2018.12.07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타리무님 말씀이 틀린 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주장에 대한 논박보다 인신공격으로 흐르는 지 모르겠군요 저도 주인장이 인터넷에서 얻은 얉팍한 지식으로 본인 정치적 주장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거에 질렸습니다

    • 아즈라엘 2018.12.08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블로그 오래 전부터 보신분들은 썩은무가 어떤 패악질을 저지르고 어떤 난동을 부리는지 잘 아실겁니다. 모르는거 보니 여기 처음 오신듯 하네요

    • 애독자 2018.12.08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닉네임에서 짐작하듯 이 블로그 12년쨉니다 나시카님 디씨에서 광고하실 때부터 봤어요

    • 아즈라엘 2018.12.09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12년째라는 분이 썩은무가 왜 까이는지 모르시다니 놀랍군요
      몆년안된 저도 썩은무가 까이는 이유를 아는데 말입니다

    • 유애경 2018.12.14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독자님께서 12년전부터 나시카님의 애독자 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엄청 애정을 가지고 계시는 군요!
      그래도 이런글에 강남좌빨 이라느니 하는 표현은 좀 아닌것 같아요! 가난한 이웃들을 사랑하고 도우라고 하는 성경말씀을 인용하고 계신데 왜 거기에 불필요한 시비조의 단어로 딴죽을 거시는지...?


  12. 뱀장수 2018.12.07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사람들이야 대한민국 gdp의 10%가 십일조로 나가는게 이상적이라 여기는 인간들이니 신경쓰시지 않는게 좋지 않을까요. 넷상에서 고뇌해 보셔봤자 뻘댓글만 달리는데 알만하지 않습니까

  13. 정암 2018.12.07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참... 사랑을 강조한다는 기독교가 정작 이웃에 대한 사랑에 무심하고 자꾸 상업화되어
    간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글의 본질인데
    본질은 제껴두고 신학이니 반쪽이니 뭐니 하며 교조주의적이고 지엽적인거에 집착들 하시네요..
    진짜 공학,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성경 안에 얼마나 많은 모순이 있다는걸 몰라서 그러시나요?
    종교의 본질이, 특히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인데
    불우이웃 돕자는 말에도 좌파 운운하며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작태란...
    기독교 교리의 기본이 신이 전지전능하다는걸 기본으로 깐다는데 뭐가 전지전능합니까?
    이런 배신자 Nasica님 하나 처단 못하면서... 그럼 또 그러겠죠.. 신은 직접 행하지 않는다고 ㅋㅋ
    아주들 웃기세요

    • 아즈라엘 2018.12.09 2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구상에 비브라늄 재고는 모조리 썩은무 얼굴에 발랐다면서요???
      방어력 최고!!!

  14. 정암 2018.12.07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독자/ 인신공격적인 답글을 먼저 쓴게 누군지 몰라서 그러시는지요
    알타리무 답글 함 보세요
    얼마나 짜증내고 혼내는 투인지..
    공부 좀 하셨다는 분이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하진 못하고 저렇게 감정을 드러내니
    내용은 둘째치고 보는 사람이 다 짜증납니다

  15. 0_- 2018.12.08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한한 군상들 참 많습니다...
    남들보다 1-2시간 덜 자며 블로그 기사 쓰고 애드센스 달며 부자 되는 노오력 하는 사람에게 우르르 붙어서 댓글로 반대나 끄적이며 무슨 자신이 정의인 양 착각하고 앉았네요? 블로거가 십몇년 들여가며 디씨에 블로그 홍보하고, 국내 정식발매 되지 않은 소설들 발췌 번역하며 본인이 일하시며 겪은 이야기, 한국과 외국의 이야기, 전쟁사와 엮어서 이야기 만들고 팬 숫자 늘려서 블로그 뷰 늘리는 동안, 댓글 싸는 군상들은 그 노오력의 반의 반이라도 들였습니까? 그냥 마음에 안 드는 대목 발췌해서 확대재생산 해대고. 본인은 독자 콘텐츠를 도저히 만들 수 없으니 여기서 기생해서 댓글 싸면서 본인 불만 토로하는 것들이 무슨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는 것인양 착각하고, 게다가 우르르 몰려서 자기네들끼리 서로서로 추켜세우며 블로그 주인 못났다 행태 하네요. 그거야말로 자기네들 혐오하는 좌파들 행동 아닙니까? ^^

    군상들, 이제 답은 나왔네요.
    1. 남들 베낀 것 아닌 독자 블로그 콘텐츠를 만든다. (수년 소요 예상)
    2. 디씨에 홍보한다. (수년 소요 예상)
    3. 블로그를 확장해간다 (싸이월드-다음-티스토리, 십수년 소요 예상)

    자영업 죽는다 죽는다 그 난리를 쳐 대면서 그렇게 블로그 자영업해 온 사람 상대로, 좌파 노조 모리배 마냥 몰려서 불만만 써 대지말고 그놈의 '투자'를 해 보던가요? ^^

    • 애독자 2018.12.08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블로그 사업하려고 만든거였습니까?

    • 0_- 2018.12.08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은 농담이란걸 모르나요.
      남의 블로그에 뭐 이리 득달같이 달려드는 심리를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그리 불만이면 포스팅 노력 반의 반도 안되는 댓글로 이러지 말고 본인들도 블로그 글을 쓰던가요. 뭐 댓글 써대는 필력들 보면 글 쓰다가 본인의 지리멸렬한 글에 질릴테니 여기서 댓글달며 자기들 잘난줄 알고 떠들고 있는 거겠죠.

    • 애독자 2018.12.08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머감각이 탁월하시네요

    • 나삼 2018.12.09 0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본인이 일하시며 겪은 이야기, 한국과 외국의 이야기, 전쟁사와 엮어서 이야기 만 있습니까? 역사이야기 외에는 거의 본인이 열광적으로 지지하시는 정파쪽 이론 설파에 상대편 정파 비난글은 안보이시나요/

    • 아즈라엘 2018.12.09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삼씨는 숙제나 하고 와서 떠드세요
      자기 자신을 좀 돌아보라고
      그게 그렇게 어려움?

    • 0_- 2018.12.12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시기 저시기 안보이냐는 인생들은 먼저 제 눈의 들보나 빼시길. 글로 영향력 행사 하고 싶으면 본인들 말마따나 '좌파'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분탕질 불평질이나 하지말고 시간투자 해서 본인 블로그 구축하고 거기서나 영향력이나 행사하시는게 백배는 생산적입니다.

      대다수 댓글 다는 사람들 하는거 보면 블로그에 새 글이 뜰때마다 나타나서 오늘 똥은 참 푸짐하네요 거의 이런 수준인데, 그러면 당신네들은 똥찾아 오는 똥파리 수준밖에 안된다는 소리를 스스로 한다는 거 알고 있나요?

  16. 2018.12.08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7. 그냥저냥22 2019.01.16 0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와 생각이 동일하시네요. 사실 스파르타와 관련된 글을 읽다가 들어와서 이 글도 보게 되었는데요, 앞으로 성경과 관련된 나아가 당시의 상황과 역사에 관련된 글 도 읽게되면 좋겠네요. 여러분들께서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엄청나게 긴 글을 쓰시며 반박하고 조롱하고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시카님에 동의하는 저와 같은 신자도 많을 겁니다. 힘내세요 ^^

  18. 정경 2019.01.19 0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시카님 역사적 지식도 아주 해박하신데, 위에 다른 분 말씀처럼 앞으로 성경의 관점과 역사적 사실의 상황에 대해서도 여러 글들을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매주 교회에 나가는 모태 기독교인으로서, 앞서 댓글 달아주신 몇몇 몰상식한 분들대신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요. 기본적인 문장 구조나 논리도 신경 안 쓰는 주장을 하면서 인신 공격만 하시는 분들은 그냥 무시가 답입니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자기가 어떤 분야에선 해박하다고 생각 (예: 신학) 하지만 대부분 절대적으로 부족한 독서량으로 인해 다른 분야의 상식이나 지식은 많이 부족한 분들이세요. 단편화되고 가공된 정보만 획득하시는 경우가 많고요. 개인적으로 평준화 교육 과정을 지지합니다만, 사실 그런 교육 방식은 구멍이 많을 수밖에 없죠.

  19. Cyan 2019.05.31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학생이신데 아닌척하고 쓰신것 같네요... ㅋㅋ
    저는 장로교(통합)의 신학대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공부 중인 약간 삐딱한...? 신학생입니다.
    저도 나시카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 사회의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라고 이야기하셨죠.
    위에서도 이야기하신 마태복음25장에서 40절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나시카님의 궁금증, 우리나리 기독교가 정치적 보수 성향을 띄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바로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입니다.
    1919년 까지는 한국의 기독교는 정치적으로 진보였습니다. 그리고 항일과 개화, 모두 기독교계가 이끌었죠.
    19년부터 45년도까지 기독교는 농촌 계몽운동, 민족 자본 확충운동들을 하게 되는데, 이때에 기독교인인 지주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또한, 기독교계에서 학교들을 많이 세우고 지식인들을 양성하면서 관리계층과 상류층으로 진출하는 시독교인들이 많아집니다. (민족대표 33인중 절반이상이 기독교인) 그리고 해방 후 이념갈등과 전쟁이 일어납니다.
    한반도 북쪽에서는 김일성이 권력을 갖게 되고, 공산주의 이념 아래에서 친일파 문제와 토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버리죠.이때, 지주이면서 친일을 했던 기독교인들이 쌍으로 타격을 받게 되면서 남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땅, 재산, 고향 그리고 교회를 잃게 되었기 때문에 남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은 악마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죠.
    여기에 육이오 전쟁, 냉전, 이승만의 국시인 반공이 겹치면서 증오가 더욱 깊어집니다.
    또한 박정희까지 반공을 국시로 삼으면서, 북에서 내려온 이들은 이북 출신 자체가 출세의 한계가 됩니다.
    이들에게는 남한이 유일한 영토였고, 북이 통일을 할 경우에 바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친미와 반공을 무조건적으로 외칠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뭐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기독교가 보수적 정치 성향을 자기 정체성으로 형성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 세금을 많이 걷어서 복지를 한다?? 이런 말들은 그들이 증오하는 빨갱이들의 이야기인거죠.

    정치적 성향이랑 돈을 좋아하는건 뭐... 같지는 않습니다만 여튼 한국 기독교가 보수적이게 된 이유는 이정도로 설명이 되리라 봅니다.

    그밖에 글에서 지적된 한국 교회의 또다른 문제들인 성서무오에 기반한 문자주의적 해석...같은 이야기들을 하려면 더 길어질거 같네요 ㅎㅎ 요즘에는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늘어나고 잇어요~
    아직 배울게 많은 학생이라 부족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궁금하신 내용이 있으면 물어봐주세요!!

  20. 멀리서 2019.06.03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럽에서 산지 20년이 되어갑니다. 휴가때 한국에 들어가서 지방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는데, 가는 동네에 방문해볼 교회를 찾다가 우연히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유럽의 주류 개신교 교회(보통 역사적으로 혹은 지금까지 국가 교회인 개신교회를 생각하시면 됩니다)에서 나누어지는 아주 평범한 생각중의 하나가 님의 생각과 같습니다. 문자주의 성경해석을 배척하고, 개교회 중심주의가 아니라 지역 혹은 나라 단위로 서로 연대하여 조직하고 생활하고, 정치, 사회 현안들에 목소리를 내며 약자를 대변하는 모습들... 유럽에서 개신교회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들이, 한국에 가면 '아주 진보적인', '아주 독특한'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참고로, "유럽 교회들 다 망했다"는 이야기가 한국에 떠도는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자주의, 근본주의, 구복신앙, 개교회 중심주의 식의 교회가 유럽에서 잘 안보이니까요.
    외롭다 생각하지 마시길, 힘내시길 바랍니다.

최근 해외 언론에 트럼프의 작년말 법인세 대폭 인하 효과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Trump’s tax-cut party is officially over

https://finance.yahoo.com/news/trumps-tax-cut-party-officially-204513240.html


별로 긴 기사도 아니지만, 요약하면 '기업 세금을 대폭 깎아줬지만 트럼프의 선전과는 달리 그 혜택 대부분은 기업의 금고를 채우기만 할 뿐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극히 작더라' 라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법인세 인하를 비판하는 비슷한 내용의 기사는 매우 많습니다.  (물론 반대로 찬양고무하는 내용도 많습니다.)


'Trump’s Tax Cut Hasn’t Done Anything for Workers'

https://www.bloomberg.com/opinion/articles/2018-07-18/trump-s-tax-cut-hasn-t-done-anything-for-workers


'The Trump Tax Cuts Did One Thing: Give Rich People More Money'

http://nymag.com/intelligencer/2018/09/trumps-tax-cuts-did-one-thing-give-rich-people-more-money.html


'How the Trump Tax Cut Is Helping to Push the Federal Deficit to $1 Trillion'

https://www.nytimes.com/2018/07/25/business/trump-corporate-tax-cut-deficit.html


'No, Trump’s Tax Cut Isn’t Paying for Itself'

https://www.nytimes.com/2018/10/17/business/trump-tax-cuts-revenue.html


'FactCheck: have the Trump tax cuts led to lower unemployment and higher wages?'

http://theconversation.com/factcheck-have-the-trump-tax-cuts-led-to-lower-unemployment-and-higher-wages-101460


목요일엔 과거 다음 블로그 내용을 퍼나르고 있는데, 오늘은 위 기사와 관련된 내용인 "문제는 세금이야 이 멍청아 !"를 퍼왔습니다.  


이 글은 정치글이라기 보다는, 노벨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라는 경제학자의 저서 '미래를 말하다' (원제는 The Conscience of a Liberal, 즉, 어느 진보주의자의 양심)이라는 책을 읽고 난 뒤에 적은 독후감 내지는 요약 정도입니다.  책의 내용이 많다보니 지루하지 않게 요약하기도 쉽지 않네요.   이 자극적인 독후감 제목은 이 책 본문에 나오는 클린턴의 선거 구호인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 !' (It's the economy, stupid ! 에서 따왔습니다.)






지루해하실 분들을 위해 인터넷 상에 글을 올릴 때의 필수 사항인 3줄 요약을 (감히) 저 나름대로 해보자면 이 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미국 역사상 가장 빈부격차가 작고 노동자들에게 풍요로운 시대였던 1930년 대 후반 부터 1970년 대 초까지의 '대압착시대'는 무거운 세금과 큰 정부 정책을 썼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의 산물이다.


-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정치 성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정치 환경의 변화로 부자들에 대한 세금이 가벼워지면서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 지금도 우파에서는 부유층과 재계의 이익을 정치판에서 대변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싱크탱크들과 언론기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진보진영에서는 이에 대적할 세력이 부족하다.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라는 1985년 영화가 있었습니다.  마이클 J 폭스라는 뜰 뻔 하다가 결국 못 뜬 배우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워낙 유명해서 이 영화 안 보신 젊은 분들도 대략 그 영화의 줄거리는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는 시점은 1955년입니다.  왜 하필 돌아가는 배경이 1955년인가는, 일단 주인공의 부모가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이던 시절로 주인공이 돌아가 자신의 부모와 만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함이지요.  그러나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그 시절이 미국 역사상 가장 근심 걱정없고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황금 시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 아니 소련과의 핵전쟁 공포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뭐 그다지 현실적이지는 않았고, 베트남 전쟁도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히피들도 없었으며, 마약 문제도 아직 없았고 범죄율도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상당히 풍요로왔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타임머신 장치로 저 드로리안 스포츠카가 사용되었습니다만, 원래는 냉장고를 타임머신으로 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냉장고 안에 기어들어갔다가 질식사할까봐 스포츠카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왜 시대에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왔을까요 ?  실은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왔다기보다는, 중산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두터웠다는 정도가 맞는 표현입니다.  원래 미국은 중산층의 비율이 높은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1920년 대까지, 미국은 일부 계층이 석유, 철도, 철강 등의 산업을 독식하면서 빈부의 격차가 심했습니다.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에서 이미 오래 전에 도입한 의료 보험이니 노인 연금이니 하는 기본적인 복지 제도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라 부유층에 대한 세금도 상당히 낮은 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고전적인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정리해줄테니 정부는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가만히 있으라는 주의였지요.   노조요 ?  20세기 초 미국에는 많은 노조들이 있었고, 유럽을 휩쓸던 공산주의의 위협도 있고 해서, 이들을 바라보는 미국 정부의 시선도 무척 곱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노조들은 기업과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미국도 영국도, 이런 노조의 파업이 많았고, 또 군경을 이용해서 잔인하게 탄압했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일시에 바꿔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바로 1930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이었지요.  이런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 민주당의 루스벨트 (Franklin D. Roosevelt)가 대통령이 되어 뉴딜 (New Deal) 정책을 펼칩니다.  한마디로 여태까지 추구해왔던 작은 정부를 포기하고, 국가가 많은 세금을 거두어 많은 재정 지출을 하는 것이 뉴 딜 정책의 핵심이었지요.   루스벨트의 첫 임기 때 소득세 상한선은 63%까지 올라갔고, 두번째 임기 때는 무려 79%까지 올라갔습니다.  1920년 대 소득세 상한선이 24%였고, 유산에 대한 상속세 상한선도 20%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부자들에게는 지옥같은 나날이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에는 한술 더떠서, 냉전 비용 충당을 위해 상한선이 91%(!!) 까지 올라갔습니다.  개인 뿐만이 아니라 기업 이익에 대한 평균 연방세도 1929년에는 14%에 불과하던 것이, 1955년에는 무려 45%까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뉴딜 정책이 부자들에게 가혹한 희생을 강요한 반면, 육체 노동자들에게는 큰 혜택을 베풀었습니다.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1930년대야 모두 힘들었겠으나, 194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에 이르는 30년은 미국 노동자들에게는 황금기였습니다.  흔히 미국이 대공황을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전쟁을 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건물들을 때려부순다고 경제가 부흥할 수 있다면 지금은 왜 그러지 않겠습니까 ?  누군가는 비용을 대야 했는데, 그 비용은 결국 부자들이 세금을 내서 댔던 것이지요.  미국 노동자들이 1940년대부터 황금기를 누린 것은 바로 뉴딜 정책에 의해 많은 일자리가 생긴 것과 동시에, 노동 계층에 우호적이었던 미국 민주당 정권에 힘입어 노조 세력이 커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체 노동자들이 다 노조에 가입된 것도 아니었고 고작 30% 정도의 노동자들만 노조 소속이었으나, 노조가 있는 큰 산업군에서의 임금 협상이 다른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비노조원 노동자들도 임금 인상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1933년에 루스벨트가 시행한 농가 보조금 법안, 즉  the Farm Relief Bill 이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 만화입니다.  도덕적 해이 어쩌고 했던 이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은 꽤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1952년 드디어 민주당으로부터 백악관을 탈환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1954년 자신의 형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어떤 정당이든 사회보장이나 실업보험제도를 폐지하려고 한다거나 노동법과 농업지원 프로그램을 없애려든다면 다시는 그 정당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또한 그런 좌파적인 법안들을 폐지할 수 있다고 믿는 텍사스 석유 재벌 등 몇몇 기업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소수인데다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평가절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 계층의 소득이 크게 향상되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기는 가구의 퍼센티지가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는 부유층의 희생을 수반했습니다.  이 책 본문 중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1950년대 중반이 되면 부유층이 모여 살던 롱아일랜드의 골드코스트의 대저택들이 사라져 버립니다.  대저택들이 헐값에 팔려 헐린 뒤 그 부지에 중산층들이 살만 한 작은 집들을 건설하든가, 살인적인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비영리기관이나 정부에 기증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의 대저택들이 컨트리 클럽이나 요양원, 수련원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나왔던 저택들이 바로 그 롱 아일랜드의 골드코스트 저택들입니다.  구글에 long island gold coast mansions 라고 치면 볼만 한 그림들 많이 나옵니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당시 부자들이 이런 저택을 포기해야만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일반적인 임금이 워낙 많이 올라서, 저런 저택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정원사니 하인이니 하는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어갔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보수화된 공화당이 집권하면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여기에는 1970년대를 강타했던 석유 파동으로 인한 경제 위기와, 당시 크게 치솟은 범죄율, 그리고 베트남전 패배로 인한 동남아의 공산화와 소련의 아프간 침공 등으로 인한 안보 불안감이 크게 작용합니다.  우경화된 공화당 정권은 노조를 적극적으로 탄압했고, 또 이미 빈부 격차가 많이 줄어들어 더 이상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대중들은 노조에 등을 돌렸습니다.  또한 우경화된 공화당이 남부의 뿌리깊은 인종 갈등을 교묘하게 잘 활용한 것도 공화당 집권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1964년 3명의 민권 운동가 살해 사건 실화를 그린 영화 미시시피 버닝입니다.  미국 역사도 조금만 들춰 보면 정말 미국이 선진국 맞나 싶은 그런 이야기가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저자 크루그먼은 책 속에서, '자신도 이 책을 쓰기 전에는 경제의 흐름에 따라 대중이 영향을 받아 정치 판도가 바뀐다고 믿어왔는데,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해보니 정반대더라, 즉, 정치 판도가 바뀌어 세금 제도와 사회 규범 등이 바뀌면 그에 따라 경제의 흐름이 바뀌더라' 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재계는 이 사실을 정확히 깨닫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치판을 이끌기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미국 정치판도 우리나라보다 크게 우월하지는 않아서, 선거자금을 얼마나 동원하느냐가 선거에서의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재계로부터 많은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기부받는 정치인들이 재계의 이익에 반하는 법안을 함부로 낼 수 없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재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입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높은 세율을 낳게 되는데, 사실상 돈은 대부분 재계에 있으므로 결국 그 부담은 재계가 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실제로 표를 가진 국민 대다수는 높은 세율과 그에 따른 많은 사회복지로 인해 혜택을 보게 되므로, 선거철에 그런 법안을 내는 의원이나 대통령을 뽑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재계는 많은 싱크탱크 (think tank)를 운영하면서 '사회복지가 늘어나면 도덕적 해이가 생겨난다'  '최저 임금제는 일자리 수를 줄여 오히려 서민 계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줘야 서민들이 더 잘살게 된다'  '의료보험을 민영화해야 국민들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등등의 해괴하고 입증도 안된 괴담을 마치 역사 속에 엄연히 입증된 사실인 것처럼 늘어놓는다는 것입니다.   언론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 재벌들은 단지 재계로부터의 광고 수익 뿐만 아니라, 부자인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그런 싱크탱크의 미심쩍은 연구 결과를 국민들에게 진실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이지요.




(헤리티지 재단은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파 싱크탱크입니다.)




미국이라고 뭐 하바드 경제학과를 졸업한 학생에게 돈과 명예를 누릴 기회가 무궁무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헤리티지 재단같은 유명한 싱크탱크에서 손을 내밀어 높은 연봉을 제시한다면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또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세력이 어디인지 뻔히 아는 학자들이 자신의 고용주의 이익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다 학자적 양심으로 옳은 소리했다가 파면 당한 학자의 사례도 이 책에서 제시됩니다.   크루그먼은 이런 보수파들의 대국민 홍보 전력이 막강한 것에 비해, 진보파의 전력이 무척 빈곤한 것에 우려를 표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예일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이 노곤한 세상의 돈 논리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거든요.  크루그먼이야 노벨상도 받은 워낙 유명한 학자이고 대학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이 있으니 이런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 대학 교수님들도 이왕이면 이런저런 재계 강연회에 나가서 두둑한 강연료를 받고 또 연구 비용 후원을 받는 것이 싫을 리가 없지요.




(만화는 헤리티지 재단에서 풍겨나오는 악취가 온나라를 더럽히고 있다고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보수파는 필연적으로 재계의 후원을 받기 때문에, 학문의 방향을 보수파 쪽으로 정한다는 것은 부와 명예의 기회가 그만큼 더 많아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그만큼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까 그 안에서의 경쟁도 치열하겠지요.)




그래서 저도 이번 편에서는 어지간한 박사님들을 압도하는 '노벨상에 빛나는' 폴 크루그먼 교수의 저서에 대해 독후감을 쓴 거에요.  물론 노벨상을 받은 사람의 책이라고 해서 다 맞는 말만 쓴 것은 아닙니다.  가령 저 위에 소득세가 79%까지 올라갔다는 부분은 다소 오도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것이, 이는 당시 록펠러를 희생양 삼아 국민들을 달래려는 쇼우맨쉽이 들어간 부분이었습니다.  당시 저 세율에 해당할 정도로 돈이 많았던 사람은 록펠러 단 1명이었거든요.  또 (크루그먼 본인도 본문에 원인 중 다른 것들에 대해서 이미 썼습니다만) 40년대 노동자 계층의 소득 상승의 주요 원인을 오직 노조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쟁 통에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 갔고 또 추가 이민자들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일이 없었으므로 노동력이 크게 부족해진 것도 분명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루스벨트의 정부는 전쟁 당시 국가 경제 활동을 모두 통제했는데, 기업들이 부족한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지 못하도록 정부의 승인없이는 임금 인상도 못하도록 할 정도였거든요.  또 전후 미국의 제조업이 사실상 거의 경쟁 없이 우위를 누릴 수 있었다는 점도 미국 노동자들이 계속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입니다.  (크루그먼은 이에 대해서도 본문에 이미 썼습니다.)




(전쟁통에 일손이 부족해 여성들에게도 일자리가 주어졌고, 결국 이는 여성 해방 운동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 책에는 많은 인용과 사례가 나옵니다만, 저소득층 어르신들이 '누가 뭐래도 빨갱이만 때려잡으면 돼' 라고 앵무새처럼 되뇌이거나, 일베에서 뭔가 정곡을 찌르는 댓글이 달리면 '네다홍'이라며 무조건 전라도를 까고보는 현상에 대해 인용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 노동자들의 황금기였다는 시절을 30년이나 누리고도 아직 미국이 선진국이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국가의료보험 제도가 없다는 것이 무척 의아하실 겁니다.  실은 그에 대한 시도가 1946년에 있었습니다.  트루먼이 단일 지불체계의 국민의료보험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현대의 미국보다, 당시의 미국은 이런 국민의료보험을 도입하기가 훨씬 유리했습니다.  아직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지 않아 국민의료보험과 정면으로 경쟁해야 하는 보험회사들의 세력이 크지 않았고, 또 GDP 대비 의료비 총액도 지금의 16%보다 훨씬 적은 4.1%에 불과했습니다.   국민의료보험이 도입되면 이익에 큰 손해를 보게 될 제약회사들의 로비도 아직 약했고요.  그런데도 실패했습니다.  왜였을까요 ?




(모두가 욕하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 더 좋은 것을 가질 기회가 있었으나, 미국 서민층은 그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습니다.  왜였을까요 ?  증오와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일단 미국의학협회가 무려 500만 달러 (현대 시세로 2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가족주치의들에게 자신들이 맡고 있는 동네 주민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도록 설득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습니다.  당시 동네 주치의들은 그 동네의 신사계급이자 지식인계급으로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으니 그 영향력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의학의 사회주의화'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열심히 광고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흑인들이었습니다.  많은 남부 지방에서, 국민의료보험이 체계화되면 지역 병원에서 흑인 환자도 차별없이 받아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던 것입니다.  당시 백인들이 다니는 병원에는 흑인들이 출입할 수 없었는데, 국가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되면 자신들이 다니는 점잖은 병원에서 결국 흑인 환자들도 받아야 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인종 차별주의 때문에, 대부분이 저소득층이었기 때문에 국민의료보험 제도로 인해 큰 혜택을 보게 될 남부 백인들이 반대표를 대량으로 던진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백인들 용은 좋은 것으로, 흑인들 용은 개판으로 꾸며졌으나, 나중에는 '동일한 수준으로만 맞춰주면 백인용과 흑인용을 구분하는 것은 괜찮은 거 아니냐' 라는 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저는 궁금한 게, 저 시절 가령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미국에 관광 갔다면 백인용으로 가야 했을까 흑인용으로 가야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사정과 다른가요 ?  일베가 보수층을 대변한다면 상당히 거북한 분들이 (좌건 우건) 많겠습니다만, 제가 보니까 일베에서 가장 열심히 두들겨 패는 것이 전라도와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특히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은 무조건 까야 하고 모든 논리와 진실을 다 묻어버리는 것이 정당화되는 요소더군요.  그런 말도 안되는 차별주의 덕분에, 미국의 의료 체계는 '정말 미국이 선진국 맞나 ?'라는 의구심을 들게 할 정도로 엉망이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많이 후퇴한 것 같습니다.   또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보수층이 매우 요긴하게 이용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고요.  이 책에서 인용되는 부분을 보면, 현재 미국에서 '소련을 무너뜨리고 감세로 경제 호황을 이끌어낸'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1명으로 뽑히는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출마할 때 행한 연설 중 하나가 흑인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즉, '만약 시민들이 집을 임대 놓을 때, 그 임대인이 유색인종인지에 따라 임대를 거부할 권리를 당연히 누려야 한다' 라며 노골적인 인종 차별주의를 지지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레이건의 인기가 2013년 당시엔 JFK는 물론 링컨마저 뛰어 넘었다는군요 !!)




이 아래부터는 독후감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견해...라기보다는 넋두리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확고한 중산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댓글 다시는 분들 중 일부는 저를 좌파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 알고 보면 저는 우파입니다.  제가 이 사회에서 나름 풍족하게 먹고살 만 하고, 또 증세하면 아무래도 받는 혜택보다는 세금 부담 증가가 더 클 것 같은 계층인데, 저는 이런 상황을 더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일부분들이 제가 좌파라고 오해하실 정도로 증세와 복지 확대를 외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급진적인 좌파 정치인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여당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대오각성한 숀 펜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골 장터 한 구석 돼지우리 옆에 세워진 연단에서 진심 어린 호소를 통해 redneck, 즉 남부의 저소득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장면은 참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앤소니 홉킨스까지 나오는 초호화 배역에도 불구하고 완전 망했습니다.   제가 봐도 그 징면 이후로는 재미가 없더라구요.)




All the King's Men이라는 숀 펜과 쥬드 로 주연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 배경은 1950년대 미국이고, 숀 펜은 한물 간 사회 운동가로서 여당 측의 협잡에 휘말려 야당의 표 분산을 위해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속물로 나옵니다.  그러다 그가 뭔가 대오각성하여 정말 '저 가진자들에게 한방 먹이자'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혼을 다한 선거 운동을 펼쳐 가난한 농민들의 지지를 받아 결국 정말 루이지애나 주지사에 당선되고 맙니다.  그는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 온갖 도로망 건설이며 학교 건설, 복지 혜택 확대 등을 실시하는데, 이는 세금을 내야 하는 기업체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오는 일이었습니다.  쥬드 로는 신문기자로서 그런 숀 펜을 취재하다 결국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되는 사람 역을 맡았는데, 영화 속에서 원래 루이지애나의 부유층 가문 출신으로 나옵니다.  그런 그가 부유층 인물들과 식사를 하며 나누는 대사 중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즉, 어떤 기업가가 '저런 비용은 결국 누가 내는 것인가 ?  저건 결국 루이지애나를 파멸로 이끌 행동들이야'라고 한탄하자 쥬드 로는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애초에 여러분들이 정말 루이지애나의 서민들을 위해 뭔가 일을 했다면 저런 인물이 주지사로 당선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일부 자칭 보수파 분들은 파이가 커져야 결국 노동자 계층에게 돌아가는 몫도 더 커지므로, 분배의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일단 기업이 잘되도록 부자와 기업에 대한 지원만 열심히 하면 결국 노동자 계층도 잘 살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미국 시민 80%가 소유하는 금융 자산은 전체 금융 자산의 7%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그림인데, 정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두드리지 않으면 열리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노동자 계층이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중산층이 되었다고 보십니까 ?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나라들에서도 많은 노동 운동이 있었고, 그런 노동 운동은 항상 가혹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비스마르크가 자애로운 마음으로 국민연금이나 국민의료보험 등을 만들었나요 ?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주의 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었습니다.  노조가 없는 삼성그룹이 가장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이, 과연 노조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보십니까 ?  삼성이 누구보다도 노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노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조가 있는 다른 기업들보다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예에서 결국 노조의 역할이 없었던 것이라고 보십니까 ?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삼성이 노조를 탄압하는 방법 ?  간단합니다.  다른 회사 노조가 힘겨운 싸움 끝에 받아낸 임금 인상분보다 더 많은 임금을 삼성 노동자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회사에도 노조가 없다면 ?  삼성이 과연 그래도 많은 임금을 줄까요 ?)




앞서 피를 흘린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모두가 1표씩의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구태여 폭력적인 노동 운동이나 혁명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그런 폭력에 적극 반대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비싸게 얻은 투표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별 다른 고민없이 보수층이 주입하는 보이지 않는 위협에 떨거나 부자 감세 신화 같은 것을 믿고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측에 표를 던지는 것도 자유입니다.  하긴 현재 야당이라는 인간들의 무능함, 구태와 부패를 보면 그쪽도 답이 안나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부자 감세 따위의 허무맹랑한 이론에 속지 않는다는 목소리는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자들이 누진세를 내는 것을 영광된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위대한 사회의 필수 요소이고, 더 나아가 강력한 방첩기관보다 더 효율적으로 빨갱이들을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PS.  미국이 대공황에서 성공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뉴딜 정책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덕분이었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 큰 전쟁을 치르면 증세 없이도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그 전쟁 비용을 주머니를 털어 갚았던 것인지 궁금해서 미국의 국채와 소득세 최고 세율의 연도별 그래프를 찾아보았습니다.  아래 첫번째 그래프가 GDP 대비 미국 국채의 변화 추이입니다.  그 아래는 소득세 최고 세율의 변화 그래프입니다.







보시다시피, 전쟁 비용은 (일부 영국과 소련에게서 받아낸 빚을 빼고) 고스란히 국채로 남았습니다.  그 빚은 한마디로 미국 부유층의 주머니를 수십년 동안 무려 70~90%의 중과세로 털어내며 조금씩 갚았던 것이고요.  1980년이 될 때까지도, 미국의 부유층은 무려 70%의 소득세를 부담하고 있었더라고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레이건이 '부자의 세금을 깎아줘야 미국 경제가 살아난다' 라며 대규모 감세를 했고, 미국의 국채는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견들이 많겠습니다만, 이 그래프를 보면 미국이 빚더미에 오른 것은 과다한 의료비와 복지 혜택 때문이 아니라, 부자 감세와 전쟁 때문으로 보입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줘야 기술의 발전이 있고 산업이 발전한다고요 ?  수십년간 자유세계 영공을 지킨 맥도널 더글라스의 F15 전투기는 최고 세율이 90%이던 1960년대에 개발이 시작되어 1972년에 첫 비행을 했고, 역시 수십년간 컴퓨터 세계를 지배한 IBM 메인프레임 S/360은 1964년도에 발표되었습니다.  세금 탓 하지말고 그들을 본받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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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등수놀이 2018.11.29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등. 이미 잘 알고 계실 수도 있겠지만, 동양인은 당연히 흑인과 같은 병실로 가야 합니다. 왜냐면 사진에도 나와 있듯 '블랙'이 아니라 '컬러드'거든요. 유색인종과 백인을 나눈 것이지요.

  2. 고로 2018.11.29 1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낙수효과는 구라라는걸 촛불이 증명했으니 순실전와 흉기차 당장 박살내고 나라를 바로 세웁시다!!

  3. Asen 2018.11.29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되짚어보면 전체 국민을 못살고 절망으로 밀어넣는건 항상 부유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유층 양반들도 다 죽는 식이었죠. 풍선효과입니다. 1푼도 안되는 높으신분들을 죽기직전까지 탄압해야 그나마 전체 국민이 살만해지는거죠. 간단한 진리인데 말이죠

  4. 애독자 2018.11.29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미국의학협회가 무려 500만 달러 (현대 시세로 2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가족주치의들에게 자신들이 맡고 있는 동네 주민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도록 설득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습니다. 당시 동네 주치의들은 그 동네의 신사계급이자 지식인계급으로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으니 그 영향력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의학의 사회주의화'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열심히 광고했습니다.

    => 이 부분 레퍼런스좀 요구합니다

    • nasica 2018.11.29 22: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폴 크루그먼의 저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 만리 2018.11.29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논문도 아니고 개인 블로그 게시글에 자세한 출처를 요구하는건 너무 과한 처사인것 같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얼마전에도 '국내 보수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미국 경제 활황의 비결'이란 글에서 미국 월스트리트를 인용했는데 나시카님이 왜곡해석해서 어떻게 보면 잘못된 선동하는 글을 쓰셨죠.. 아무래도 나시카님 어학능력을 본다면 고의적인것 같더군요.
      뭐 개인의 블로그니 그려려니 하고 있습니다.
      본문 내용도 보니 아직도 최저임금인상을 옹호하고 있는데요..

    • 푸른 2018.11.29 2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가 보면 작성자분께 레퍼런스 맡겨 놓으신줄 아시겠어요. 하하하하핳.


      혹시 맡겨 놓으셨을 수도 있으니까, 오해했다면 죄송하다는 말 덪붙여야겠네요.

    • ㅇㅇ 2018.11.30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푸른 // 어떤 근거에 대해 레퍼런스를 요구하는 것은 예의없는 행동도 아니고, 주제넘은 짓도 아닙니다. 왜 그걸 비꼬고 계시죠? 그 정도의 소통도 할 생각이 없다면 공개적인 블로그를 할 필요도 없고, 하더라도 교이쿠 센세처럼 이견을 가진 사람들 다 추방해버리면 그만입니다.

  5. 지나가던 2018.11.29 2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이 자기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컸으면 이렇게 강제할 필요없이 서로 공존하며 살 수도 있었는데 그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겠죠.

    • 만리 2018.11.30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계청 통계를 보면 저소득층은 일자리를 잃어서 소득이 큰폭으로 감소한 반면에 고소득층은 소득이 많이 늘었더군요.. 이 통계를 보면 나시카님이 왜 문재인을 지지하는지 알수 있지요.
      내가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도 그 통계에 있네요 ㅠㅠ

  6. 나삼 2018.11.30 0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나 부자증세 최저임금인상등 서민 경제를 살리겠
    다는 문정부는 오히려 문재인불황을 불러 들여와 최근 통계청 자료에서 나타나듯이 양극화가 심화되었죠.

    • keiway 2018.11.30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경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는게 서민들을 위해 더 좋은 정책이 될까요?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대안을 제시해야 건전한 비판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대안을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비교 판단을 하죠.

    • 나삼 2018.12.01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때가 지금보다 비교우위에 잇다면 그때로 돌아가는것도 나쁜게 아니죠

    • Dogswellfish 2018.12.03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자유한국당 쪽이 좋은데 그쪽 사람들은 뭔가 유치해 보이던군요..... 이은재 의원이라던지.....

    • 아즈라엘 2018.12.04 0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그러니까 나삼씨 제가 저번에 자기자신이나 돌아보라고 숙제냈죠??
      숙제는 다 해왔나요???
      한동안 조용하더만 그새 다시 돌아와서 유체이탈화법 난무하네요???

  7. ㅇㅇ 2018.11.30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저 임금제는 일자리 수를 줄여 오히려 서민 계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가 해괴하고 입증도 안된 괴담일지는 모르겠으나 '과도한 최저 임금 상승은 서민 계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괴담 소리 들을 주장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최저임금 상승이라는건 결국 기존 최저임금 일자리를 대부분 불법화하거나 없애는 일 아닙니까? 저소득 일자리 수는 줄어들 수 있다는건 너무 당연한 소리에요. 소득주도 성장을 실시한 사람들조차 그걸 부정하진 않았어요. 저소득층 소득이 일자리가 줄어들어 입은 손해보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얻는 이득이 더 클 것이므로 저소득층 소득은 더 오른다. 그리고 저소득층은 고소득층보다 더 저축율이 낮으니까 (즉 돈 번만큼 재깍재깍 쓰니까) 내수 경기가 상승한다! PROFIT! 이게 논리였거든요.

    저도 그게 되나 궁금해서 지켜봤어요. 저말고도 많이 궁금해했겠죠. 과연 저소득층은 득을 볼까 손해를 볼까. 통계청에서 고소득층 소득만 오르고 저소득층 소득은 내려가면서 오히려 격차가 더 커졌다는 통계가 나오고 난리가 난건 그것때문이죠. 소득주도 성장 논리 1단계부터 안 먹힌다는 소리니까. 이게 안 먹히면 사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은 뉴 최저임금 일자리를 지켜낸 소수를 뺀 나머지 저소득층을 걷어차는 정책이죠. 7000원에서 8000원 만드는게 아니라 0원으로 만드는 거니까.

    그리고 최소한 한국 보수는 최저임금 없애지도 않았고 낮추지도 않았어요. 그 재벌 퍼준다는 이명박근혜 시절에도 6-7%씩 계속 최저임금은 올랐거든요? 16%씩 올려버리고 그렇게 오를줄 몰랐다는 지금 정부가 황당한 행동을 하는거죠.

    물론 미국학자가 미국 경제에 관한 책을 읽고 쓰신 독후감이니 한국 상황에 대한 주장은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글이실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좀 실망할거 같습니다. 솔직히 미국에서 한국 정책의 변화를 내 생활에서 직면할 일 없으니 편하게 훈수두고 도덕적인 뿌듯함 챙겨가시는거 같거든요.

    • 아즈라엘 2018.12.01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저임금 인상보다 시급한게 외노자 유입 제한입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없이도 업종별 노동임금이 밸런스가 맞아(?)습니다만 외노자들이 들어오면서 노동시장이 교란되어 최저임금이 사실상 최고임금이 되는 사태를 낳았씁니다.
      임금은 시장원리에 따라 가야되는데 대량의 외노자 유입으로 인해 임금 상승은 정체되고 저소득층이 외노자들과 일자리 경쟁을 하면서 저소득층이 고통을 겪게 되는거죠.
      노동력이 진짜 부족할때 외노자들을 조금씩 받아들여야 하는데 무턱대고 외노자들을 대량으로 들여오다 보니 산업의 구조조정도, 최저임금 조정도, 소득분배도 모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 최홍락 2018.12.01 0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ㅇㅇ/ 전반적인 스탠스에 대해서는 저도 동감입니다. 너무 과도한 인상은 그렇게 좋은 정책은 아니었는데ᆢ

      아즈라엘/ 외노자의 유입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이 제한된다고 하셨는데 외노자의 비율이 일정 정도라면 몰라도 그게 시장을 교란시킬 수준인지 모르겠네요. 전체근로자중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2%대 수준인데 이는 다른 OECD 국가들이 10% 수준임을 감안할때 적은 수준이고요.

      또한 외국인 근로자가 저임금일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월급여 200만원 이상 외국인 노동자 비중이 절반 이상 되고요.(53.7%) 과거 한국의 시장임금 수준을 어디까지로 생각하시는건지는 모르겠는데 이정도면 현 최저임금 및 주52시간 기준으로 볼때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네요. 임금상승이 정체되었다는 말씀도 과거 10년 이상 최저임금 인상률 평균을 볼때 수긍이 가지도 않고요.

      고용통계상에서 나타난 취업자수 증가의 감소 추이를 살펴보면 생산활동가능인구 감소가 현실화되는, 즉 일본과 같은 상황이 이제 가시화가 되고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를 줄인다는건 자충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이죠.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정책을 쉴드치기 위해 애꿎은 외국인 노동자와 중소업체들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과연 얼마나 진보적인 것인지, 얼마나 덜 적폐스러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볼땐 무려 40%나 감춘된 SOC 예산을 비판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나 싶네요.

    • 아즈라엘 2018.12.01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 통계를 보지말고 현장을 보세요
      건설현장에선 외노자들때문에 내국인들이 뒷전으로 밀리고 그외에 기존 저소득층이 종사하던 많은 직종에 외노자들이 몰리면서 내국인 저소득층이 내몰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시급이 어떻든 근무환경이 어떻던 돈만 벌어가면 장땡이기 때문에 근로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안될 뿐더러(근무환경이 헬이라도 어떻게던 노동력이 공급되니 업주입장에선 개선명분이 없죠) 장시간 노동으로 급여를 많이 받아가는거죠.
      임금상승이 정체되었다는 말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해당업종의 노동강도에 걸맞는 실질 급여를 말하는겁니다. 예를 들면 2007년에 노가다 가면 잡부가 7만원이었는데 2018년에는 이제 겨우 10만원 준다더군요. 그리고 생산활동가능인구가 감소되는건 일본이 훨씬 더 심각한데 그쪽은 외노자를 안받아서 사회붕괴가 그나마 좀 덜하더군요. 그만큼 청년들을 끌어내기 위해 고용주들이 각종 메리트를 제공하는데 우리나라는 외노자들이 그 메리트를 제공할 이유를 사라지게 하니까요. 취업자수증가 생산활동가능인구 감소를 보기전에 청년들이 취업포기를 하는 상황부터 타개를 해야 하고 그러고도 부족하면 외노자들을 불러오는게 맞는겁니다. 외노자들 안불러오면 업종별로 알아서 인건비가 시장에 맞게 조정되어서 최저임금을 그렇게 크게 안올려도 됩니다.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업종은 임금이 높고 편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은 임금이 낮아야 하는데 외노자들이 그걸 다 교란해서 최저임금=최고임금이 된 상황이죠
      통계라니께네 저도 언급해보는데 구직단념자수가 100만명에 청년실업이 1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생산활동 가능인구 감소를 받아들여야 할것인가를 고민해봐야겠죠. 저 상황을 타개하지 않으면 구직단념자수는 200만명이 될것이고 청년실업은 20,30%에 육박하게 되고 생산활동가능인구는 더욱 더 감소하게 될겁니다

    • 최홍락 2018.12.02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 통계를 보지말고 현장을 보세요.

      -> 통계는 객관적인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쓰는 것이고, 현장은 보는 사람과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어 통계를 보는겁니다. 데이터를 외면하고 문제를 보겠다는 것은 의사가 정확한 수치도 안보고 진찰하겠다는 거랑 다를 바가 없지요. 그러면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유튜브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똑같이 되버리는겁니다.

      - 외국인 근로자들은 시급이 어떻든 근무환경이 어떻던 돈만 벌어가면 장땡이기 때문에 근로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안될 뿐더러(근무환경이 헬이라도 어떻게던 노동력이 공급되니 업주입장에선 개선명분이 없죠) 장시간 노동으로 급여를 많이 받아가는거죠.

      -> 건설현장만 놓고 보면 근로환경 개선은 많이 나아진 편입니다. 업주 입장에선 개선 명분이 없다고 하는데, 당장 사람 죽는 산재 한번 터지면 공사 자체가 중단되도록 규제가 철저한 바람에 이전에 비해 산재 기준으로는 근로환경이 더 나빠졌다고는 말 못할 것 같습니다. 근로환경이 나빠졌다라는 말씀은 어떤 기준에서 그러한 것인지 알고 싶네요. 장시간 근무를 통해 높은 임금을 받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기존에는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압도적이었다가 2010년대 후반에 와서는 월 급여 200만원 이상의 노동자 비율이 50% 이상까지 상승했는지 설명이 가능한지요?

      - 2007년에 노가다 가면 잡부가 7만원이었는데 2018년에는 이제 겨우 10만원 준다더군요.

      -> 정확히는 2008년 보통인부의 노임 단가는 60,500원이었습니다. 그러던것이 2018년 현재 보통 인부의 노임단가가 118,000원까지 상승했지요. 98년에는 이게 거의 34,000원이었으니까, 외국인 노동자 여부와 상관없이 노임 상승률은 비슷한 수준으로 상승한 듯 하네요.

      그리고 건설업만 가지고 보시는데, 전체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 건설업 종사 비중은 5.3%고 89% 정도가 제조업에 종사하지요.

      - 그리고 생산활동가능인구가 감소되는건 일본이 훨씬 더 심각한데 그쪽은 외노자를 안받아서 사회붕괴가 그나마 좀 덜하더군요.

      ->사회붕괴라는 단어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시나요? 늘 정봉준씨(알타리무 본명)가 베네주엘라 어쩌고 하니까 한국이 벌써 좌파의 농단으로 붕괴가 임박한 사회라고 보시는 것은 아니겠지요?ㅋㅋㅋ

      일본 말씀을 하시는데,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비율은 한국과 대동소이합니다. 일본이 외노자를 안받는다고 말씀하시는데,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비율은 2배 이상 상승했고요.
      아베 정부 이후 2012년 이미 외국인 노동자 체류기간을 2년 연장한데 이어 2015년에는 영주권 취득 기한을 3년으로 줄이는 등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 빗장을 쉴틈없이 열어재끼고 있지요.


      - 외노자들 안불러오면 업종별로 알아서 인건비가 시장에 맞게 조정되어서 최저임금을 그렇게 크게 안올려도 됩니다.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업종은 임금이 높고 편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은 임금이 낮아야 하는데 외노자들이 그걸 다 교란해서 최저임금=최고임금이 된 상황이죠.

      -> 3D 업종과 편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을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가 있나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경리 직원보다 용접공, 미장공 등 3D 업종 종사자의 임금 수준이 더 높은데, 시장 상황이 잘 돌아간 것 아닌지요? 시장에 맞게 조정된 인건비 수준이라는게 어느정도라고 예상하시는지?

      - 통계라니께네 저도 언급해보는데 구직단념자수가 100만명에 청년실업이 1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생산활동 가능인구 감소를 받아들여야 할것인가를 고민해봐야겠죠. 저 상황을 타개하지 않으면 구직단념자수는 200만명이 될것이고 청년실업은 20,30%에 육박하게 되고 생산활동가능인구는 더욱 더 감소하게 될겁니다.

      -> 금년 9월 현재 구직단념자 수는 51만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100만명이라는 근거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15-29세 청년 실업률 10%에 육박하는 것은 맞는데 2017년 12.3%에서 2018년 9.8%로 감소했는데, 이건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 수치조차 OECD 평균이나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면 양호한 수치이고...

      구직단념자수가 많아지면 생산활동가능인구는 더 줄어들 것이다라는 말씀도 많이 황당한데요. 생산활동인구는 15~64세 인구를 말하는겁니다. 구직단념자수와 상관없이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인해 이 인구층이 줄어든다는거고요. 올해로 24만 6천명이 줄어들었어요. 구직단념자수는 전업주부, 학생, 노인, 장애인 등과 함께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는 것이고, 이게 경제활동인구와 합쳐서 생산가능인구가 되는것이고요.

    • 아즈라엘 2018.12.02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현 청년세대가 취업을 포기하면 결혼,출산은 자연적으로 더욱 더 떨어질수 밖에 없습니다. 청년이 구직단념을 하면 그에 따른 후속타가 오는데 그건 고려해보지 않으시는건가요??? 돈이없는데 무슨수로 결혼을 하고 무슨수로 2세를 만듭니까???이게 1세대가 되도록 이어진다면 대 폭망이되는거고 저는 이걸 말하는겁니다.

    • 최홍락 2018.12.03 0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청년세대의 취업포기 증가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한국만 겪는 현상도 아닙니다. 청년세대의 취업포기가 출산율이나 결혼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지만 출산율 저하는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비율이 증가한 것이 원인이고 이는 결혼, 출산 후 경력단절이 가장 큰 원인이지요. 이는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개셕하는 방향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맞고요. 취업포기자의 문제는 노동시장과 구직자의 이해관계의 미스매치 문제가 큰데, 이는독일처럼 직업 교육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던가, 미국처럼 극단적으로 유연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면 해결하기도 어렵고요. 이는 복잡하고 전체적으로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문제이지 외국인 노동자만 없으면이라는 식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거죠.

  8. 희망과행복 2018.12.01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경하는 나시카님 현재 자영업은 붕괴직전입니다. 출산율은 더욱 급감하고 있습니다.
    산업 전분야에서 중국에 추월 당하기 직전입니다. 주변의 자영업 하시는분들의 상황도 한번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현정부의 경제정책은 아마추어수준이며 조만간 더 큰일이 닥칠지도 모릅니다.

  9. 성북천 2018.12.02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항상 좋은 글 감사하게 생각하며 잘 읽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통해 샤프 시리즈와 오브리 머투린 시리즈를 접하고

    실제 사서 몇년 째 읽고 읽는데 오브리 머투린 시리즈는 읽어도

    그 영어 원문을 20%도 이해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20%도 이 블로그를 통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습득했으니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이 재밌는 세계로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제 관련하여서도 좋은 글 잘 읽고 있고 상당부분 공감하고 있습니다.

    큰 방향에 대해서는 생각을 같이 하고 있지만 구체적 정책 부분에 대해서는

    좀 이견이 있는 것 같아 실례지만 글을 남깁니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075017

    저는 기본적으로 위의 사이트의 내용에 대부분 공감하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가격규제를 통한 정부의 시장개입에 대해선 강하게 반대합니다.

    예를 들면 얼마전에 프렌즈 시리즈의 한 주인공을 통해 임대료 규제를 드셨는데요.

    그런 식의 가격 규제는 시장을 왜곡하여 결국엔 공동체 전체의 효용을 저하시키고

    또한 공정성에 있어 큰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프렌드 시리즈의 저 임대료 상한으로 구글에 검색해보니 실제로 저런 사례에 대해서

    현지인들의 불만이 많더군요.

    저런 식의 혜택이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특정 시점에 조모가 그런 식의 혜택을 받았고 탈법적인 방법으로

    대를 이어 받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지요.

    저런 식으로 임대료 상한제로 보호 받는 사람들을 위해

    애초에 부모나 조부모가 뉴욕에 살지 않아서 새로 들어온 자기들이 임대료를 더 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더군요. 실제로 폴 크루그먼을 비롯하여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이 정책에 반대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드라마 상이긴 하지만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저러한 문제들 때문에 더 이상 그 정책을 유지할 수도 없는 것이구요.

    그런데 그런 식의 정책이 지금 이 시점 한국에서도 난발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매출 5억 이상 자영업자에 대한 카드 취급수수료를 인하하였습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no=476236&year=2018

    위 기사의 통계를 보시면 자영업자들의 84%가 매출 5억 이하입니다.

    왜 이런 식의 정책을 마치 저소득 자영업자를 위한 정책인 것처럼 내는 것일까요?

    http://www.hani.co.kr/arti/economy/finance/859281.html

    위의 한겨례신문의 기사에도 보듯이 근본적인 문제는 자영업자들에게

    신용카드 의무수납제를 강요하고 현금 사용자와 신용카드 사용자에게 가격차별을

    할 수 없게 만든 정부의 규제가 문제였는데 말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신용카드 의무

    수납제가 가장 약자에게 불리한 제도라는 것입니다. 신용카드를 발급 받지 못할 정도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은 현금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데 오히려 똑같은 가격을 주고

    물건을 사야 하니 간접적으로 신용카드 결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부담만 하는 것이지요.

    이번 신용카드 취급수수료가 인하되면 신용카드 발급 기준은 더 엄격해 질 것이니 그러한

    사회적 비용 부담이 전가되는 것은 더 커질 것입니다. 경제라는 것은 항상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과 그 비용이 누구에게 얼마만큼 비대칭적으로 전가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946238

    왜 저런 식의 아파트 로또 청약은 계속 하는 것일까요?

    신혼부부 등을 위한 제도라고는 하지만 시장가격에 비해 몇억원씩 할인 분양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제도일까요? 그것도 대출 제한도 하니 거의 자기 돈으로 사라는 것인데

    저 정도의 집을 대출을 많이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계층은 대체 누구일까요?

    왜 이런 식의 정책을 펼치면서 왜 자기들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계층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데 왜 자기들을 지지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자세를 현 집권세력은

    취하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 하겠습니다. 저런 식의 정책이 정작 필요한 계층에게 돌아가지도

    않고 공정성에도 문제가 많기 때문에 그들이 지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책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 하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지지가 떨어지는 것이고

    공정성에 민감한 20대의 지지도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부부문을 통한 소득의 재분배에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https://www.msn.com/ko-kr/money/topstories/%EB%B3%B5%EC%A7%80-%ED%8F%AC%ED%95%A8%ED%95%98%EB%8B%88-%EC%A0%80%EC%86%8C%EB%93%9D%EC%B8%B5-%EB%B9%84%EC%9C%A8-12percent%EB%A1%9C-%EB%9A%9D%E2%80%A6%EA%B0%80%EC%B2%98%EB%B6%84%EC%86%8C%EB%93%9D-%EB%8A%98%EC%96%B4/ar-BBPeNnM

    우리나라 경제의 변화 적응성을 위해서도 사회안전망 제도가 더욱 더 확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영업자 문제가 심각해진 것도 사회안전망 제도가 부실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처럼 40대 중반의 직장인이 회사에서 쫓겨나면 할 수 없이 뻔히 실패율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건

    알면서도 자영업을 해야하고 장사가 안 되도 이거 아니면 기댈 곳이 없으니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직장에서 짤려도 최소한 내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는 눈치 안 보고 학비와 급식비 부담없이

    다닐 수 있고 가족들이 아퍼도 병원에 갈 수 있고 늙어서 비참하게 살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만 시달리지 않아도

    살만한 나라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노력과는 상관 없는 것 같습니다.
    직원이 천명이 넘는 회사에서 제가 잘해도 못해도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가 없어요. 전체적인 경기나 업황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제 노력이 부족해서 발생한 결과는 저로 한정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가족이라고 해서 부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정부가 가격 규제를 통해 시장에 개입하면 의도와는 다른 역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이러한 개입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공무원과 정치인에게 넘기는 결과로 이어지고 시민들을 우민화시켜

    분할 통치하는 봉건적인 통치수단 같아서요.

    결국 그냥 제 이야기만 써버린 꼴이 되어 버렸네요.

    그리고 기본소득과 같은 아이디어는 좌빨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입니다.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6082351551

    저의 경제관과 정부를 바로보는 태도는 이분과 거의 같습니다.

    결국 제 이야기만 해버린 꼴이 되어 버렸네요.

    혹시 실례되거나 기분 나쁜 말을 쓴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10. 카오스 2018.12.02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도 MB 때 봐서 알죠. 법인세 인하가 고용증대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건 안일한 정부 뿐이란 사실. 문재인 정부 처럼 초과 법인세를 일회성 일자리 지원 사업에 투입하는 것도 현명하지는 않아 보이고요. 차라리 걷은 법인세를 국가에서 직접 고용 창출이 가능한 미래 먹거리 산업에 투자로 돌리는 게 현명하지 않을 까란 생각이 들죠.

  11. Eugen 2018.12.03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홍락같은 분이 진영논리에 찌들어있네요. 계속 그리 사세요.

    • Eugen 2018.12.03 2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조선일보를 즐겨읽긴 하지만(국내 정보력 원탑이라,최순실 처음 밝혀낸 신문도 조선일보) 기분이 상하긴 해도 경향을 보기도 합니다. '장도리'라는 만평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다른 생각을 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 Eugen 2018.12.03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진영논리를 혐오하는 이유가 진영논리에 찌들면 사람이 색맹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를수도 있다."라는 걸 인정을 못하기 때문이지요. 전체주의자(공산주의자,파시스트)들과 진영논리에 찌든 사람이 같다고 봅니다.

    • Eugen 2018.12.03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체주의에 대해 말한 김에 더 적어보자면 파시즘도 "모든 사람이 애국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애국해야 된다."라고 기본 전제를 깝니다. 공산주의도 비슷하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인간은 평등한 존재가 아니라 평등해야 하는 존재인데 말이죠.

    • Eugen 2018.12.03 2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람은 같지 않습니다. 키 큰 사람도 있고 작고 왜소한 사람,돈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젊었을 때부터 선천적으로 당뇨에 걸린 사람,축구를 잘하는 사람,공부 잘하는 사람,글을 잘 쓰는 사람등등....이런 사람들의 다양한 조건을 무시하고 "모든 사람은 XX해야한다."라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요?

    • Eugen 2018.12.03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사람들이 우로가면 파시스트가 되고 좌로가면 공산주의자가 되는 겁니다.

    • 최홍락 2018.12.04 0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영논리인지는 모르겠는데 밑도 끝도없이 자기 할말만 하고 시비거는 예의따위는 혐오하긴하죠. 그게 진영논리라고 생각하신다면 공부나 제대로 하고 오시던가요. 무슨 조선일보랑 경향신문 같이 보는걸 가지고 나는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사람치고 진영논리에 빠져있지않은 사람. 저 한명도 못 봤습니다. 다른걸 인정하라 마라하기전에 공부 더 하시고 기본은 지키십시다. 저도 비즈 조선 말고 한괴례도 보겠습니다.ㅋㅋㅋ

      P.s. 문단을 하나로 정리하지 못하는걸 보면 무슨 아이디 바꿔서 쓴것 같기도 하네요.

    • 아즈라엘 2018.12.04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선일보를 언론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네요 하하하
      조선일보가 언론이면 우리민족끼리도 언론임

    • 최홍락 2018.12.04 0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즈라엘/ 어떤걸 언론의 기준으로 삼으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선일보가 정보력에 있어서는 국내 원톱인 언론이지요. 특히 국내 3040 이코노미스트 같은 기획 기사같은건 좋은 기사이기도 하고ᆢ

    • Eugen 2018.12.04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수이긴하지만 진영논리에 빠지진 않았죠. 전 일베에서 일베충들이 말하는? 분탕도 쳐본적이 있습니다. 영웅김대중이란 닉으로 논쟁을 한적이 있는데 1주일 정지먹었죠. 그리고 전 박근혜가 우주의 기운 어쩌고 할때 이상하다고 까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욕도 먹은 적이 있죠.

    • Eugen 2018.12.04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선일보도 까자면 2007년때 장자연 자살사건가지고 까고 박정희를 까자면 한일기본협약을 잘 못 맺어 위안부 할머니에게 제대로 배상을 하지 않은 것도 깝니다.

    • Eugen 2018.12.04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무조건 까기만 하는 것도 아닌데 한겨레가 문화만큼은 볼륨이 크고 질이 좋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 Eugen 2018.12.04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한국의 대통령 중에 박정희보다 정치력이 뛰어난 대통령이 김대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야 업적이 많긴 하지만 계엄령,유신등으로 반대세력의 입을 막아놓고 진행한 반면에 김대중은 그런거 없었죠. 정치와 통치를 분리해서 평가해보자면 정치 1위는 김대중 통치 1위는 박정희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정치 40년 짬밥이 어디가는 건 아니죠.

    • Eugen 2018.12.04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모아서 쓰지 않은 건 생각나는대로 써서 그렇고요. 아이디는 바꿔쓰지 않았습니다. 늘 쓰는게 이거에요. 자주 오지 않아서 눈에 잘 안 띄일 뿐이지.

    • 최홍락 2018.12.04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영논리에 찌들었다고 계속 그렇게 살라고 비아냥 거린거에 대한 답이 그냥 자신도 모두 까기한다는 식의 답변이라면 그냥 성의도 공부할 생각도 없는걸로 생각할게요.

      내가 Eugen님이 조선일보를 보든 한겨례를 보든 마르크스를 믿든 하이에크를 믿든 상관없어요. '최홍락같은 분이 진영논리에 찌들어있네요. 계속 그리 사세요.'로 전쟁 시작한건 Eugen님이 먼저라는것만 알아두세요.

      일베에서 분탕쳐본적 있다는거랑 탈진영논리랑 연결될수 있다는 논리가 더 이상하네요.

    • Eugen 2018.12.04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성향이 박지원에다가 좀 더 보수적인 정도인데, 이러니까 어딜가도 환영받지 못하네요.

    • Eugen 2018.12.04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분탕을 친다는게 일베충의 기준이고요.그래서 괜히 ?을 달았겠습니까.그리고 저는 나름대로 대화할려고 했어요. 그리고 제일 처음에 말한 건 죄송해요. 비슷한 사람을 너무 봐와서 지쳐서 그랬어요.

    • Eugen 2018.12.04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저는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믿지 않습니다. 신뢰할 뿐이지. 증거를 가져오면 신뢰하는 거죠. 세상에 사기꾼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 ㅇㅋㅂㄹ 2019.01.14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즈라엘 일침보소 ㅋㅋ
      동감입니다

  12. Eugen 2018.12.04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이 현재 의료보험제도가 부실한 건 미국인들이 원래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부터 내려온 "자유를 신앙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런것 같아요. 특히 돈에 관해서는요. 그냥 다른 행성이라고 이해하는 게 편할 듯.

  13. Spitfire 2018.12.05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후감 잘 보았습니다만, 몇가지 의문이 드네요. 왜 '기업 세금을 대폭 깎아줬지만 트럼프의 선전과는 달리 그 혜택 대부분은 기업의 금고를 채우기만 할 뿐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극히 작더라'라는 기레기의 선전에 눈길이 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기업과 노동자가 똑같이 혜택을 누려야 할까요? 기업은 돈을 들여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니 당연히 이익도 더 많이 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월급쟁이 해봤지만 월급쟁이는 회사만 안망하면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지요. 심지어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면 보너스도 두둑히 나오구요. 세금을 깎아서 기업과 노동자가 혜택을 보는게 같지 않다는 논리 자체가 어불성설이지요.

    그리고 세금을 과도하게 거둔 미국의 1930~70년대가 황금기였다고 하셨지만, 그 반대의 사례도 있습니다. 더 최근의 일이구요. 프랑스의 올랑드 정권이나 브라질의 룰라/지우마 정권이 경제를 말아먹은 거는 반기업/분배위주의 정책을 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엔 미국의 30~70년대가 황금시대였던건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서가 아닌 다른 요소가 크게 작용한 탓이라고 봅니다만, 저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권위가 없어서 주장에 힘이 안실리네요~ㅎㅎ

    부유층에 세금을 전가 시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나라에서 뭘 좀 해보려 하는데 돈이 나올 구석은 결국 부유층 뿐이지요. 하지만 한국이 미국과 다른 이유는, 미국은 세금을 많이 낸 부유층을 존중하고 대우해주지만 한국은 죄인취급 한다는 것이고, 미국은 세금을 거둬 자국의 안위와 발전에 돈을 쓴 반면, 한국은 북한에 퍼줄 생각부터 한다는게 차이점이지요.

  14. 야거 2018.12.10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 기회되시면 베네수엘라 사례도 분석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 2019.04.09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베네수엘라는 수출의 98%를 석유에 의존하고 식료품, 공산품 거의 수입해서 씀.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좌파, 우파 어느 정권도 석유 팔아먹은 돈으로 농업, 제조업을 육성을 하지 않음.
      베네수엘라 우파정권때는 석유판 돈을 극소수가 가져가서 국민 대부분이 빈곤하게 살았고, 진보정권이 들어서고 석유판돈을 국민에게 분배해서 잠시 빈부차가 줄어들었지만 석유값 폭락으로인한 경제위기가 닥치자 다시 국민 대다수가 빈곤한 삶으로 돌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