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9 06:30



와이프가 반 년 정도 전부터 어느 유명 교회의 인터넷 설교를 들으며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갈라디아 서를 읽고 있는데, 와이프가 감탄하며 말하기를 기독교 교리의 정수가 모두 이 책에 들어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아직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와이프가 한탄하며 말하기를 '내가 교회를 다닌지 30년이 훨씬 넘었는데, 대체 그 동안 목사님들이 이 갈라디아 서를 인용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없다' 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대해서 제 대꾸는 이랬습니다.

"아마... 많은 신자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 믿으면 복을 받아서 물질이 풍요해지고 몸도 건강해집니다!' 라는 설교라서 그런 것 아닐까 ?" 

그래서 또다시 우리 부부의 영원한 부부 싸움 테마인 종교 논쟁이 잠깐 벌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전에 케이블 TV에서 본 영화 하나가 기억났습니다.  

 


Miracles from Heaven이라는 2016년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이건 실화에 바탕을 둔 기독교 영화인데, 줄거리를 한줄 요약하면 불치병에 걸린 어린 딸이 기적에 의해 치유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 중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이 가족은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어린 딸이 고약한 불치병에 걸려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생이 심했던 엄마가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신자 몇 명이 엄마에게 다가와 말을 겁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요약하면 이런 거였어요.

"너의 딸이 그런 몹쓸 병에 걸린 것은 틀림없이 너의 가족의 믿음이 약했거나 뭔가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그 죄를 고백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

별로 신실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교회 다닌지 20년이 넘는 제게는 기독교인들의 그런 식의 사고 방식이 사실 그렇게 낯설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하는데, 사실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정말 자기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100% 실천하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결국 '니가 뭔가 죄를 지었으니까 이런 불행이 닥치는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평생 잘 먹고 잘 사는 일도 많습니다만, 그건 또 그들이 죽은 뒤에 영원한 지옥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오히려 불쌍한 일이라고들 생각합니다.  물론 거기서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어차피 인생은 찰라의 순간에 불과하고, 죽은 뒤에 맞이할 천국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영원의 삶이니, 지상에서 물질이나 건강의 복을 받아야만 예수님 믿는 보람이 있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제 시덥쟎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 그 대부분이 목사님들에게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제게 큰 상처를 준 목사님 말씀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교회들 중 두 목사님이 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한분은 장로교이고 다른 한분은 감리교셨는데도 동일한 일화를 인용하셨습니다.

"미국에서의 연구 조사 결과인데, 독실한 기독교 가문과 믿음이 없는 가문을 몇 대를 걸쳐 조사해보니 이렇더라.  믿음이 강한 가문에서는 교수가 몇 명, 장군이 몇 명, 목사가 몇 명, 성공한 사업가가 몇 명...  그에 비해 믿음이 없는 가문에서는 도둑이 몇 명, 사기꾼이 몇 명, 창녀가 몇 명..."

뭐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제게 정말 큰 상처와 분노를 준 것은 다음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이 몇 명 나왔다더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정신이나 신체에 장애가 없는 분들께서는 본인이 잘 나서, 본인이 깨끗한 영혼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 덕분에 건강을 누리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제 사지가 멀쩡한 이유는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것 뿐이고, 저도 한끝만 운이 나빴어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뭔가 장애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그런데 장애인이라는 것이 마치 뭔가 죄에 대한 벌인 것처럼 말하는 저런 설교에는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디 가서 기독교인이라고 스스로 말하곤 합니다만, 사실 진짜 믿음이 있는 기독교인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이 인격을 가진 분이고 우리 미천한 인간들과 기도와 그에 대한 응답을 통해 정말로 소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천지 창조와 생명의 탄생이 신의 조화라는 것을 믿습니다만, 신이 과연 인성을 가지고 질투와 사랑을 하시는 분인가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레오너드 코헨의 노래 중에 Nevermind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The high indifference
Some call fate
But we had names
More intimate

어떤이들이 운명이라고 부르는
고귀한 무심함
하지만 우리에겐
더 친밀한 이름들이 있지


왜 신께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얼굴을, 어떤 이에게는 추한 외모를 주셨을까요 ?  글쎄요.  신의 눈에는 얘나 쟤나 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을까요 ?  제가 성경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고 믿음이 없어서 그렇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신을 high indifference라고 생각합니다.  신께서는 이미 이 세상을 (우리의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의도대로 만들어 놓으셨고, 그 속에서 우리가 부질없이 아웅다웅 살아가는 모습을 관조적인 자세로 보고 계시다고요.  신이 이미 이 세상을 의도대로 만들어 놓으셨고 모든 것이 그 틀 안에서 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 과정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고 해서 신께 고쳐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  성경을 보면 실제로 그렇게 진심으로 기도하면 행성의 자전조차도 역행시킬 수 있다고 하니, 기독교인이라면 신께 기도하며 뭔가 물리적인 징표를 바라는 것이 나쁜 일 같지는 않습니다.  

(열왕기 하 20장 8절 ~ 11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안 믿으면 너 이단...  그런데 가만히 저 성경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태양의 운행이나 지구 자전을 변경하신 것이 아니라 그냥 해시계 주변의 햇빛만 굴절시키신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그냥 선지자 이사야가 해시계의 눈금만 조작했을 수도...)

 

 

아, 저 영화 속에서는 저 엄마도 신도들의 그런 말에 큰 상처를 받지만, 결국 하나님의 기적으로 아이의 불치병이 완치됩니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매우 적지요.  그런 기적을 경험하지 못해서 병으로 죽거나 평생 고생하는 사람들은 정말 믿음이 부족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일까요 ?  글쎄요.  

 

어떤 교회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마다 장로들이나 신도들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의 예를 들으시면서 'XXX의 경우를 보라, 예수님을 열심히 믿으니 저렇게 성공하시는 것 아니냐, 여러분도 예수님 믿고 성공하시기 바란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물질적으로 성공하신 분들을 위해 지상에 오시지 않았고, 가난하고 죄많고 병든자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언급이 성직자의 입에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 신도들이 모이고, 그래야 헌금액이 많아지거든요.


저는 성경이 한글자 한글자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금과옥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예수님께서는 신의 공의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당부를 남기셨다는 것만을 믿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면서 그런 개인적인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네요...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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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 2019.05.09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원한 부부싸움의 테마 종교논쟁.. 글 서두부터 극히 공감하면서 글 읽게 되네요ㅋㅋㅋ

  2. 취사병 토마토 2019.05.09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경 몇 구절이었는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예수님이 장애인을 보면서 "이 사람이 아픈 것은 이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이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시려고 아픈 것이다." 라고 선포하시고는 고쳐주는 장면이 있지 않던가요?

  3. 취사병 토마토 2019.05.09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갈라디아서도 좋아하지만,개인적으로는 로마서도 좋아한답니다.

  4. ㅇㅇ 2019.05.09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 달 전부터 목요일에 기다려지는 연재물이 2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월목에 올라오는 나시카님 게시글이고, 다른 하나는 목요일에 연재되는 기독웹툰입니다(홍보는 아니지만 플랫폼이 하나뿐이라서 적시 수준이군요).

    이렇게 가끔 올라오는 신앙 에세이(점잖게 말한거고, 사실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어퍼컷...)를 보면서 저도 착잡해집니다. 틀린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맞는 이야기고, 그것도 사실 광범위하게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물론 한국 교회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반성의 부분이기는 하지만, 저는 나시카님 개인을 볼 때는, 그런 먹사들이나 잘못된 이야기가 아니라 좀더 본질의 것인 성경과 옳은 가르침을 더욱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서 있는 교회와 기독교 교리의 대표격으로 목사들을 많이 끌어오셔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사실 목사 권위 인정도 사람이 만든 규정 속에서의 이야기이지, 성경적으로 보면 권위는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저런 얼굴 굳어지는 발언들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서 무시하는 게 맞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에 "그냥, 예수님께서는 신의 공의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당부를 남기셨다는 것만을 믿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시고, 예전글에도 이런 입장을 여러번 피력하셨는데, 이런건 기독교인 아니어도 그 사람이 엄청 도덕적이라면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구원의 극히 일부일 뿐이고,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극히 일부입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만 봐도 찾을 수 있는 부분이죠. 그런데, 2000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것 뿐인가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사람이 만든 전통, 교회법 같은 걸 다 떠나서, 좀더 열린 마음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교회 공동체 찾아서 빨리 옮겨 가셨으면 더 좋겠구요...저런말 하는 이상한 목사 있는 곳 말구요.

    • keiway 2019.05.09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한국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 댓글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점잖으시네요.
      다들 이정도만 되셔도 좋을텐데 왜 주변 교회에서는 나시카님이 예를 드시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되는지..
      한국 교회는 너무 기득권이라 사회의 다른 오래된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기 성찰과 개혁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 세이예 2019.05.09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교회 소개좀 해주세요..
      교회 몇십년다니고 회장에 머에다
      특새, 성가대, 전도에 기독교동아리활동,
      교인 50명대, 300명대, 몇만명대(고등학교 이전, 대학교때, 취업후다닌 교회에 따른 차이) 다녔습니다.

      비꼬는거 절대 아닙니다. 경기 남부에 제가 들어가고 나가고 모를정도의 교인규모에, 말씀 좋은 교회 추천부탁드립니다.

    • ㅇㅇ 2019.05.09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딴에 두서없이 쓴 글인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시카님이나 밑에 라인하르트님같은 분들만이 아니고 그런 모순적인 일들때문에 교회,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닫아버리시는 분들이 사실 제 주변에도 많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라고 했는데...다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수정)
      세이예 // 제가 어떤 교회를 콕 집어서 소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교회는 신앙생활에 있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공동체'이므로, 들어가고 나와도 모를 정도의 큰 교회라면, 혹은 규모가 작아도 새신자에게 관심이 없어서 모르는 교회라면 진정으로 건강한 교회 공동체로 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 거주지에서 장기간 거주하실 생각이시라면, 가르침이 이단시되는 교단을 제외한 건전한 기성 교단에 속한 교회로, 2~3주 주기로 주변 교회를 찾아가 보십시오. 목사님의 가르침과 교회의 비전이 성경 중심적인지, 애찬 등에서 드러나는 성도들의 나눔이 개방적인지(세이예님께 열려 있는지), 다양한 수준의 평신도를 위한 제자 훈련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확인해 보시고,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교회를 찾으시면 되겠습니다.

      종교 글이라고 해도 이런 주제의 말타래가 길어지니 다소 부담스럽군요 ㅎㅎ

  5. J's_Identity 2019.05.09 1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하시지만 사탄은 하와를 꾀어 먹게합니다
    선 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뜻 중 하나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 마음을 사람이 갖지 않게 하시려는 뜻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모든 기준과 판단을 인간이 하려합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기에 우리가 하는 판단도 온전하지 못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말하는 이시대는 인간들이 내리는 판단이 옳다라는 기준으로 사는 시대이고 수 많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지워졌죠.

    왜 나에게 이런 상황이 왔는지 , 왜 내가 못생겼는지, 왜 내가 이런일을 겪어야만하는지
    이러한 질문은 내 삶이 내 것이고 내가 주인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때 흔히들 갖는 불평입니다.

    하나님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보다 나의 삶에 모든 판단과 기준을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인의 삶은 내가 겪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며 사는 삶입니다.

  6. 탐험개미 2019.05.09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7. reinhardt100 2019.05.09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 이야기입니다만 이 일화 때문에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 아주 질려버렸죠.

    몇년전에 시험 떨어졌는데 알던 개신교 신자가 뭐라 한 줄 아십니까?

    "너가 예수님을 안 믿으니까 시험 떨어진거야"

    이 말 듣는 순간 그냥 눈 뒤집어지더군요. 신자도 아니지만 학구적으로 몇년동안 성경공부 한 거 그날로 때려치워 버리고 가끔씩 지도교수님들이 같이 가자고 해서 다니던 예배도 그날로 끊어 버렸습니다.

    참고로 이거 100% 실화입니다.

  8. 유애경 2019.05.09 2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너무 공감하는 바입니다!
    나시카님이 말씀하신 그런 의문점들이 풀리지 않아 교회를 떠났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신앙생활 열심히 해서 복을 받아 부자가 되어야 하며 그 지름길의 하나가 헌금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께서는 마굿간에서 나시고 병자들과 약자들을 위해 살다 가셨는데 왜 그쪽으로는 비중을 안두는 교회(목사님)들이 많은지...


  9. 나삼 2019.05.11 0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 종교를 짬뽕시킨 사막신을 왜 섬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10. 세이예 2019.05.11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말씀드린 들어가고 나가고를 모를정도란건 담임목사님이 제 이름을 기억할정도로 작은 교회를 의미했습니다.
    부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절 기억하는건 어디든 비슷하지만 담임목사님이 제 이름이나 출석을 아는 정도라면
    나중에 아닌거 같아 교회를 바꿀대에도 너무 부담스러워서요..
    궁금한걸 물어보면 화안내실 그런분이면 괜찮겠지만.. 신앙이 사회생활의 성공을담보하는게 맞는가, 그럼 가난한 분들은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한것인가, 잘버는 사람이라면 반대로 신앙이 좋은것으로 보면 되는가, 일시적인거라면 평생 부자거나 평생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모든걸 구하면 다해주시는 분이라지만 왜 수많은 국민이 피눈물을 흘리며 원하는 통일은 되지 않은체 수많은 분들이 고향도 찾지 못하고 돌아가신것인가, 또 공의의 하나님은 벌을 주시기도하는데.. 그리고 욥처럼 아무잘못없어도 고난을 받고, 심지어는 욥의 아내는 죽기까지 하는데 아무 잘못없어도 고난을 받게한다면 현실세계에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보호와 사랑을 보장하는 것은 아닌 예일 것인데 어떻게 사회의 성공과 신앙을 일치화하는 것인가등등..

    고난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의지라 그렇다면 사회에서 잘되고 안되고도 신앙과는 별도의 문제라고 말하실 수 있는분..
    이면 그리고 이단이 아니라면 가보고 싶습니다. 또 교회를 뒤집어 놓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제가 빠저도 담임목사님이 모를정도면
    합니다..


  11. 0_- 2019.05.11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들 참 질 낮은 고민들 한다 싶네요... 종교를 믿는 시점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건 질 낮은 교우나 종교지도자 등이 아닙니다.
    애초에 종교, 그 중에서도 인격신이 존재하는 종교는 그 자체로서 도무지 자유인이자 이성을 가진 인간이 믿을 게 못된다는 것입니다.

    그 잘나신 신께서 무슨 우연의 일치로 저열하고 필멸인 인간따위나 가질 인격따위를 가졌다고 봅니까? 그게 다 인간머리로 상상해서 만들어 냈을 뿐이란 증거지요.

    지금 살고있는 곳이 일본인데, 한달 쯤 전에 새로운 연호(레이와令和)를 새로 발표하는 것을, 그것도 심지어 TV 중계로 하는 것 보고 "참 쓸데없는 것 가지고 중계나 하고 자빠졌다, 그냥 다들 쓰는 서력 쓸것이지 인간일 뿐인 천황 바뀌었다고 새로운 연호 만들어 쓴다고 무슨 난리치냐." 싶더군요. 님들이 고민하는 게 딱 그짝이네요. 부외자가 보기엔 쓸데없는 고민거리 괜히 늘려놓고 사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드는 그런정도 고민이군요.

  12. 아즈라엘 2019.05.15 2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의 개신교는 샤머니즘이 개신교의 옷을 입은 행태나 다름없죠
    무당은 목사가 되었고 성황당은 교회가 되었고
    목사는 복음주의만 설파하고 교인들은 목사를 숭배하고

  13. Eugen 2019.05.16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 개신교가 왜 이렇냐면 한국의 무속신앙(예를 들어 땅밝기)과 유교의 현세중시 그리고 복을 비는 기복신앙때문에 그렇습니다. 게다가 카톨릭이나 성공회와는 달리 중앙집권적이면서 외국에 본부가 있는 것도 아니라 통제가 안되는 것도 있고요. 저는 다니던 교회를 바꾼 적이 있는데요. 방언이나 신사도 운동때문에(이단시비있음) 무서워서 그만뒀습니다. 미친 놈들이에요. 방언하는 거보면.

    • Eugen 2019.05.16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신교만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일까요? 카톨릭은요? 적어도 카톨릭은 어느정도 수준있는 사람들만 사제가 되기에 막나가진 않습니다. 대한민국에 김대건 신부부터 사제서품받은 숫자가 6000명이 안되는데 200년동안 6000명인 카톨릭에 비해 개신교는 카톨릭이 200년동안 배출한 성직자를 1년에 그 숫자만큼 목사가 나옵니다. 당연히 수준이 낮을 수 밖에 없고요. 그 중에 이상한 놈이 나오기 좋은 환경입니다. 엘리트가 아니라서요.

    • 아즈라엘 2019.05.19 0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상한놈이 나오면 일부 이단이라고 외면하고 덮기 바쁩니다

  14. 2019.05.29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기독교 신자인데 사실은 불가지론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어차피 알 수 없다면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믿으면 되지 않나 싶어요. 마음의 위안도 많이 되고요. 다만 믿음이란게 기본적인 도덕.. 예를 들어 정직 신실 등등의 가치를 지켜야 하겠죠. 논리나 철학적으로 보면 굳이 신을 믿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전지와 전능이 같이할 수 없는 것도 그렇고 신이 선하다는 고정관념도 그렇고 이래저래 문제는 많아요.

2019.05.02 06:30

 

 

최근 야후 파이낸스에 '저는 연봉 12만5천불의 Data Scientist입니다만, 평생 이 일을 하고 싶진 않아요'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I'm A Data Scientist Making $125K – & I Don't Want To Do This For The Rest Of My Career

https://finance.yahoo.com/amphtml/news/im-data-scientist-making-125k-203431776.html

돈 이야기 좋아하는 속물인 제가 이런 제목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읽어보고 한줄 요약하니 이렇습니다.

"직업 이야기는 세계 어디나 다 똑같구나..."

이 기사는 연봉 10만불 이상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물로 연재하고 있는 기사들 중 일부입니다.  참고로 미국에서 이 정도의 수입이 있는 여성은 전체 여성의 5% 정도라고 하네요.  

참고로 이 기사에는 200여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일부는 이 여성을 칭찬하는 내용이고 상당수는 질투하는 내용입니다.  뉴욕에서 12.5만불이면 거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등의 댓글 달리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더군요.  눈에 띄는 댓글은 아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In poverty she is envious. In riches she may be a snob. Money does not change the sickness, only the symptoms” 

- John Steinbeck, The Winter of Our Discontent

"빈곤할 때 그녀는 질투한다.  부유할 때 그녀는 속물이다.  돈이 있다고 병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증상 뿐이다.

- 존 스타인벡, 불만의 겨울

 


직업: 중견 데이터 분석사 
나이: 28
장소: 뉴욕
학위: 수학 학사
초봉: $65,000
현재 연봉: $125,000

Q : 어릴 때의 꿈은 뭐였나요 ?
A : 어릴 때야 뭔들 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  처음에는 피아니스트, 다음에는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어요.  나중에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가 13살 일때는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었지요.  솔직히, 그건 성인이 되고나서도 계속 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에요.

Q : 대학에서는 뭘 공부하셨나요 ?
A : 수학 전공했어요.  18살이라는 나이는 다음 4년간 뭘 공부할지 정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에요.  저는 자랄 때 수학을 잘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거기에 대해 열정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어요. 

Q : 학자금 융자를 써야 했나요 ?
A : 예, 1만8천불을 융자 받았어요.  저는 반 정도는 장학금과 금전적 지원을 받아서 해결했어요.  제 부모님이 그 대부분을 주신 거지요.  제가 1만8천불만 융자 받은 것은 사실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3년 안에 다 갚았지요.

Q : 대학 졸업 이후 계속 이 회사에서 일하셨나요 ?
A : 아니요.  여기저기 많이 옮겨다녔어요.  항상 기술직이기는 했지만 산업 계통은 많이 바꿨어요.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다니다가 컨설팅 일도 조금 했고요, 이젠 기술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 직장에서 매일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
A : 매일 data를 분석해요.  그러니까 쉽게 데이터를 볼 수 있는 계기판을 만들거나 여러가지 데이터를 요약하는 코드를 짜는 거지요.  여러가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 내의 여러 사람들과 협업을 해요.  뜻하는 바는 측정 단위를 정의하기도 하고, 시간에 따라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시각화를 만들기도 하고 빅데이터에서 뭔가 의미를 뽑아내기도 한다는 이야기지요.  

Q : 연봉 협상을 하세요 ?
A : 그럼요 !  항상 협상을 하지요.  현재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항상 부지런히 시장 조사를 해요.  예전 직장에서는 연봉 협상을 안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를 하고 있어요.  최근 일자리 검색을 하면서 몇가지 제의를 받기도 했는데, 현재 직장에서 협상할 때 그런 일자리 제의가 도움이 되었어요.  협상할 때는 단호하면서도 이해심을 가져야 해요.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면 확고한 물증, 가령 자격증이나 자기만 할 수 있는 기술 등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다른 형태의 보상에 대해서도 오픈 마인드여야 하고요.  제 현직장에서는 취업 보너스를 더 많이 줄 수는 없었지만 우리사주를 좀더 주었지요.

Q : 현재 직업에 대해 열정이 있으신가요 ?  아니라면 왜 그렇지요 ?
A :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고민 중이에요.  저는 지금 하는 일 잘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흥분될 정도는 아니에요.  제게는 까다로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창의적 측면도 있지만, 그런 창의성은 딱 데이터 분석에 사용될 정도에 불과한 정도에요.  저는 직업에서 열정을 찾아야 한다는 개념은 포기했어요.  많은 밀레니얼 세대가 직장에서 가지는 불만이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속한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너는 무엇이든 니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어요.  대학에 갈 때는 나중에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의 직업이 그냥 생활비 내고 전기세 내는 것이라는 거에요.  저는 그 점에 대해서는 현실과 타협했어요.  저는 디자인하고 미술 공예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걸로 직업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건 그냥 취미에 대한 열정 정도지요.  

Q : 할 수만 있다면, 커리어 방향에서 무엇이든 바꿔보시겠습니까 ?
A : 좀 위선적이긴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는 편이에요.  동시에, 지금 하는 일을 평생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장은 모르는 상태로 두는 것이 불편하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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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5.02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 스타인벡의 말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갈구하고 불평하도록 운명지워진 종인가보네요. 대상만 바뀔뿐 그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는....

  2. 이슬람극단주의 2019.05.02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것들을 아프간에 던져 놓아야 하는데 ^^

  3. reinhardt100 2019.05.02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컨설팅 하다보니 매일 느끼는 겁니다만 숫자와 연일 격투(?)를 벌여 결론을 내야 하는 특성상 데이터를 잘 다룰 수 있다는건 정말 부럽더군요. 학부 때 통계 공부 제대로 했어야 했다고 자아비판 하고 있습니다. 저 분 정말 부럽네요.

  4. 유애경 2019.05.03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로 자기 직업에 만족감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아주 일부분 이겠죠!
    말그대로 대다수에겐 본문의 내용과 같이 전기세와 생활비를 내는 수단에 불과한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숫자,분석,통계...에 능한 분들 정말 부럽습니다!

  5. snob 2019.05.03 0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무조건적인 비난을 할때,
    그 주된 근거로 상대적인 결핍, 가난, 환경의 열악등의 존재를 떠드는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

    무조건 멀리 하시길 권고합니다.
    괜한 설득, 논쟁 하려 하지도 마시고 멀리 멀리 떠나가세요.

    • ㅇㅇ 2019.05.05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특정인이 처한 상황과 환경으로 해당인물을 분석해 볼 뿐인데요 뭘 ㅎㅎ

    • 푸른 2019.05.08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떠드는 사람을 아무 근거없이 멀리하라는 사람은 가까이 해야 하나요? 아니면 멀리해야 하나요? ㅋㅋ

  6. J's_Identity 2019.05.06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 보면서 다시 느끼는 건 돈보다 평생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네요!
    자주 소통해요!
    구독 하고 갑니다

  7. Lovely Peter 2019.05.18 1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추천 블로그를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저도 재테크에 관심이 많아서 ㅋㅋ 돈과 관련된 글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ㅋㅋ 좋은 내용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찾아뵐게요 = ) 구독하고 갑니다 = )

2019.04.15 12:45



최근 어떤 모임에서 디도서 2장을 읽었습니다.  기분이 확 상하는 부분이 있더군요.  

(딛 2: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딛 2: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
(딛 2: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건 예수님의 말씀은 아니고 바울이 크레테 섬의 기독교 지도자 티투스(Titus,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순혈주의를 지향했던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로마 제국 내의 비유대인들에 대한 전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이고, 그의 서신이 신약성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기독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베드로 등 예수님의 12사도들은 대부분 어부 등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서 학식이 깊지 않았으나, 바울은 어려서부터 수재 소리를 듣던 바리새인 엘리트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의 서신과 이론이 높게 평가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기독교를 예수님과 바울의 공저 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12사도 안에 들기는 커녕 한번도 예수님 생전 모습을 뵌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위 미켈란젤로 그림에서도 묘사된 그 유명한 다마스쿠스적 개종을 겪었으니 베드로급의 인물이라 할 수 있지요.)

 



바울은 세속 권력에 대해 매우 순응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세상 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는 엘리트답게, 당시 로마제국의 권력에 대항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기독교 사회는 물론 전세계에서 악용이 되풀이되는 아래 로마서 13장의 문구도 남겼습니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롬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마찬가지로, 디도서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말은 그 특정 구절만 딱 떼어 사용되면 악용되기 매우 쉽습니다.  바울이 저런 말을 편지에 쓴 이유는 사실 디도서 2장 5절 뒷부분에도 잘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딛 2:6)"

즉, 당시 막 태동하고 있던 기독교 커뮤니티는 신흥 종교가 대부분 그렇듯이 기존 사회에서 많은 의심과 질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고 가난한 자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논리는 당시 기존 사회 질서에 크게 위협이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장 교회의 안정과 교세의 확장이 최우선이었던 바울로서는 그런 주변의 의심과 질시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비기독교 사회로부터 '기독교인들은 위아래도 없다더라, 기독교인들은 제국의 권력에 도전한다더라, 기독교를 믿으면 여자들이 건방져지고 노예들이 달아난다더라' 라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저런 '당시 사회에 맞는 행동지침'을 내린 것에 불과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  노예제도는 하나님도 인정한 것이니 노예는 절대 해방을 꿈꾸지 말고 무조건 주인에게 복종하라 ?  다 말도 안되는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바울이 21세기 뉴욕에서 기독교의 터전을 닦고 있었다면, 저 구절은 틀림없이 아래와 같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평등함을 믿고 서로 도우며 사랑하고
노동자와 자본가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생을 위해 애쓰며"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힘으로 한글자한글자 그대로 받아적은 성경의 말씀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말이냐?' 라며 반발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선지국을 먹으면 자손까지 멸종시키겠다라던가, 혼외정사를 하면 돌로 쳐죽인다든가 하는 것이 현대 상황에서 맞는 이야기이겠습니까 ?  실제로 모세의 율법에는 이혼이 허락되었지만, 예수님은 '그건 그때 상황에 따른 율법이었고...'라면서 이젠 이혼 안된다 라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카톨릭에서 낙태는 물론 피임도구까지 금지하는 것은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낙태죄에 대해서는 개신교에서도 그 폐지에 대해 반발이 심한 모양이던데, 그렇게 도덕적이신 분들이 성경에는 일언반구도 안 나오는 낙태에 대해서는 강경하시고, 돌로 쳐죽이라고 명백하게 나온 목사님 간통에 대해서는 어흠어흠하며 어물쩍 넘어가시는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씌여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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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4.15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울이 서간에 쓴 "그리스도를 믿는다"의 '믿는다'라는 그리스어 Pistis는 단순히 성경의 글귀나 예수님의 말씀 중 하나 혹은 예수께서 구원자라는 명제를 사실이라고 믿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삶의 방식의 총체적인 변화,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것,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맡기고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있는 것처럼 사는 것, 이 모든 것을 의미했죠. 예수님의 가르침을 하나의 총체적인 삶의 방식에서 단순히 성경에 기록된 글귀 한 줄로 격하시키고 한정시키는 이들을 보면 그들이 스스로 공언하는 것처럼 말씀이신 예수님이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서 강생하셨다고 믿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성경이란 제목의 율법 문자 뭉치 하나를 내려보내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많죠.

  2. keiway 2019.04.15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경의 글자 한 자 한 자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것 처럼 바보스러운 일이 있을까요.
    예수님이 직접 쓰신 글이 아니고, 사람에 의해 구전되었으며, 사람에 의해 번역된 책이 말이죠.
    그런 글의 전체도 아니고 일부만 따서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자들이야 말로 신앙의 적입니다.

  3. 세이예 2019.04.15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멘

  4. reinhardt100 2019.04.15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퇴근하면서 간만에 새로운 글이 올라온걸 확인했습니다. 초과근무 100시간은 기본인 분야에서 지치고 피곤하지만 한 줄기 감로수같은 새 글이 올라온거 보고 피로가 풀리네요.

    낙태죄는 솔직히 합헌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왕 낙태를 합법화할거면 거액의 세금을 물려야한다는게 제 개인의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잠재적 경제성장률 및 병력자원 확보와도 직결되니까요.

    • 최홍락 2019.04.16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잠재경제성장률 및 병력자원확보가 문제는 결국 낙태와
      출산율이 유의미한 영향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한것같은데 전세계 데이타를 비교해봐도 합계출산율과 낙태율과 뚜렷한 차이가 있는것도 아니고 폴란드의 경우 세차례나 낙태 규정을 강화했지만 출산율은 계속 감소했다고 하죠. 뉴질랜드의 경우 낙태허용기준을 엄격히 제한함에도 불구하고
      낙태율은 18.2%를 기록해 그를 허용하는 다른 국가들보다 현저히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낙태 처벌과 낙태율간의 상관관계조차 낮다는 얘기가 되고요.

      낙태에 세금을 물린다면 세금은 여자가 부담해야 할지, 아님 남자를 찾아서 부담해야 할지, 아님 시술한 의사에게 부과해야 할지 문제가 있겠네요. 기존의 낙태죄대로라면 여성과 의사에 세금을 부과해야한다는 얘기인데 이런 세금의 신설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태아의 자기결정권이냐 산모의 자유권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잠재성장률의 문제로 이걸 보는게 맞는건지도 의문이고요. 자본주의의 발전과 잠재성장의 제고가 경제활동을 비롯한 인간 전체의 자유의 신장을 통한 성장에서 기반한 것이어야 하는데 이건 낙태 규제로 이걸 풀어보자는건 공산정권의 루마니아에서 봤던것과 비슷해보여서ᆢ

    • keiway 2019.04.16 1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거액의 세금이라면.. 피임을 잘 못한 죄인가요?
      그러고보니 피임도구에도 거액의 세금을 물려야 할 것 같네요.
      딩크세나 비혼세도 필요할 듯 하고..

      약간 비꼬는 것 처럼 되어서 죄송합니다만, 출산을 국가 자원 확보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고,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애 낳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쪽이 아니라 애 안 낳는 것을 금지하는 쪽으로 가는게 맞는지는 더욱 의문이네요.

    • 이슬람극단주의 2019.04.16 2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ㄴ말씀을 제대로 합시다, 원댓글 작성자의 말씀은 세금을 애 안낳는데 물리자는게 아니라 생긴 애를 떨구는데 물리자는 건데요. 같은게 아니죠

    • 최홍락 2019.04.16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초에 원 댓글에서 병력자원확보를 위해 낙태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건데 그럼 똑같이 병력자원 감소를
      가져올 비혼이나 딩크족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밀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는 말이 그렇거밖에 해석이 안되는지ㅉㅉ 암캐 운운하는 인간들은 국어 해석이 끝물이라는건 뭐 투말 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죠. ^^

    • reinhardt100 2019.04.16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 이거야 별 생각 없이 썼는데 예상 외로 댓글이 달려있어서 놀랐네요.

      최홍락)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이 한 거? 맞습니다. 다만, 제 생각은 지금 워낙 비상상황이니 이런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안전권적 기본권이 자유권적 기본권보다는 우선이니까요. 일단 자유의 신장을 하는거 저도 당연히 동의합니다. 다만, 신장된 자유를 바탕으로 경제활동을 할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건 어떤 논문에서 보고 제가 결론 내린건데 단독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 '이혼을 하지 않고 평생 해로한다'는 전제하 부부가 같이 부를 축적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논문 출처가 기억이 안나서 아쉽습니다.

      Keiway) 출산을 국가 자원 관리 차원에서 봐야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일종의 국민의 의무, 그 중에서도 여성의 의무라고 봐야 합니다. 관습헌법이란거 괜히 만든거 아닙니다. 언제든지 쓰라고 만든 겁니다. 국방의 의무를 엄밀히 말하면 남녀 모두 부담합니다. 다만 비용 문제로 여자는 직접 부담하지 않는거죠. 이런 논리도 도출 가능합니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출산과 양육을 통한 일정 수준 이상의 병력자원을 산출함으로써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 식으로요. 물론 좀 비약적인 논리지만요.

      이슬람극단주의) 네 맞습니다. 애 안 낳는데 세금 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불임부부들에게는 불리한 과세베이스를 형성하는 것이니까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재판 들어가면 당장 위헌결정 맞을 겁니다. 다만 낙태를 꼭 할 필요가 없는데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써 가장 효율적인 것은 조세부과라 생각한 겁니다. 거기에 내국인 노동력 자원 확보 및 병력자원 확보의 수단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 수비니우스 2019.04.16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출산을 국가 자원 관리 차원에서 봐야 하는게 맞다고 본다고 하시니 16년 말에 행자부에서 만든 출산지도가 생각나네요. 낙태에 거액의 세금을 물리는 정책이 만약 시행된다면 헌재에서 위헌 받을것 같습니다.

    • 최홍락 2019.04.17 0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reunhardt100>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이 비상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은 둘째치고,

      안전권적 기본권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해야 하는지 의문인데, 이 경우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긴급한 경우를 상정해야 하는 것 아닌지요? 안전권적 기본권을 그렇게 넓게 해석하실 거면 낙태 문제 해결을 위해 대통령이 계엄이나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해도 된다는 얘기인건지...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별 희한한 근거로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국회를 우회하는 걸 보면 말씀하신 것은 그냥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이 아닌 꼼수 정도로 비춰질 수 밖에 없을텐데요. 관습헌법이라는 개념을 끌어다쓴 것도 그렇고 국민의 의무 중에 출산의 의무를 임의로 만든것도 그렇고ᆢ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할 문제를 꼼수로 돌파하려는게 제대로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나요?

      경제활동을 할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러면 한국은 경제활동 가능한 사람들을 제대로 쓰고 있느냐고 반문할 수 밖에 없네요. 지금 현재까지 한국이 고용률을 70%를 넘어간 적이 있었는지요. 이런 고용률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여성 고용률의 경우는 50%를 넘어간 것이 최근에 와서야 가능해진 상황인데 말이죠. 인구 감소 걱정 이전에 있는 노동력 관리부터 제대로 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문제를 과도하게 생각해서 큰일났다, 뭐라도 해야한다 라고만 생각해서 자칫 엉뚱한 방법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문제 해결에 있어 획기적인 방법, 즉 왕도는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얘기죠.

      이 얘기가 하루 이틀 나왔던 얘기도 아니고, 미국과 유럽이 취해왔던 대안들에 대한 얘기도, 진지한 고민들도 많이 나왔는데 그런 대안들이 충분히 고민된 다음에 비상적인 방법이 나오는 것이지, 현재는 기존의 사례들을 바탕으로 문제에 대한 성숙한 논의조차 이뤄졌는지도 의문입니다.

    • Spitfire 2019.04.18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출산이 병역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인정하지만 낙태의 합법화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헌재결정 직전까지도 낙태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왔고, 사실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햐면 애를 키우냐 지우냐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양육의지이지, 법에 의한 처벌을 걱정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 의견은 낙태 합헌 결정은 오히려 여성의 인권에 크게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입장입니다. 우선 낙태가 합헌이 되면 공식적인 의료서비스를 받게 되고 그렇게되면 낙태여부가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게 됩니다. 보험이라도 적용받는다면 더더욱 그렇게 되겠지요. 사회여론이 바뀌어 낙태여성을 삐딱하게 보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야 상관없겠지만 현재의 민심 하에서는 여전히 몰래몰래 받는 것을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남성들이 성관계로 임신을 시키고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돈주고 낙태시키면 되니까요.. 이문제는 세번째 문제로 연결되는데, 여성들도 굳이 피임문제로 조심조심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남자도 정관수술 따위는 받을 필요가 없어지지요. 의사들의 돈벌이를 위해서라도 그런 분위기가 조장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10대들의 성관계도 이제는 놀라운 일이 되지 않을 거구요. 마지막으로, 낙태 합법화가 여성의 성해방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남자 입장에선 고마울 따름입니다. 남성이 짊어진 책임이라는 큰 굴레를 벗고 진정한 평등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요. 물론 저는 어렵겠지만 젊은 청년들은 그 혜택을 오롯이 누리겠지요.ㅎㅎ

      출산율 확보와 병력자원을 포괄하는 국가인적자원의 확보 문제는 어렵겠지만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저는 출산율 증가와 이민자 수용 두가지 방법이 기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방법으로는 혼외자녀 허용, 다둥이에 파격적 혜택(등록금 면제, 대학특별전형, 음서제도 등), 빈부격차 확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엉뚱하게도 빈부격차가 해결책이 될 수 있는게, 경제사정이 부유한 가정과 빈곤한 가정 양극단에서 많은 자녀를 가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병력자원을 주로 빈곤층에서 보충하고 있구요. 한국사회가 남과 비교하고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예 격차를 더욱 벌려서 그런생각 자체를 못하게 하는 방법을 써보는건 어떨까 합니다.
      그게 어려우면 이민자를 수용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민족이 있지, 인구가 없는데 국가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앞으로 출산율이 제고되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해결책은 이것 뿐이 되겠지요. 그게 싫다면 온갖 기상천외한 정책을 쓰는 수 밖에 없는거구요...

  5. 유애경 2019.04.16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경 어디쯤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성서에있는 말씀을 한자라도 빼거나 더하면 그것도 아주 큰죄라고 하는 구절이 있죠.
    성경에 있는 말씀은 무조건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교회에서도 가르치고 있고 그렇게 믿었었는데 이번글을 통해서 모순점을 잘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교회를 떠난지 한참 됬는데 나시카님 한테서 오히려 명설교 (?)를 들은 기분입니다!

  6. 이슬람극단주의자 2019.04.16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암탉이 울면 뭐든 망하고 암캐가 들끓으면 그 사업이 끝물이란건 뭐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죠. ^^

  7. 취사병 토마토 2019.04.19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tena02&logNo=221283219115&referrerCode=0&searchKeyword=%EB%82%99%ED%83%9C

    링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낙태법은 남아선호사상이 강할때 많은 여아들이 자꾸 낙태되자 제정한 법이라고 하네요.

  8. 취사병 토마토 2019.04.19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낙태법이란 과거 남아 선호 사상이 만연하던 시기에 비정상적인 낙태를 막기 위하여 제정된 법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1990년대만 해도 여자가 시집 와서 그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죄인이 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고보면 대한민국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바뀐 것도 많다.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지금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종교계에서 자신들의 윤리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엄중히 가로막고 있다. ~

    링크에서 발췌했습니다.남아선호사상 자체가 엉향력을 상실하면서,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여아 낙태 문제가 거의 없어지다시피한 2010넌대 후반에는 확실히 계속 유지될 이유가 딱히 없다고 봅니다.

  9. ㅋㅋ 2019.04.20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교얘기는 뜬금없지만 숭산스님께 어떤 아내분이 물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죠’
    빙긋이 웃고 있는 아내 옆에서 남편이 뒤따라 물었답니다.
    ‘아내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남편의 말을 잘 들어야 하오.’
    남편도 빙긋이 웃으면서 또 물었답니다.
    ‘그럼 스님은 누구 말을 들어야하나요?’
    ‘부처님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이미 사천년전에 돌아가셨지. 그래서 난 자유라네.’
    다같이 웃으면서 대화가 끝났다고 합니다.

    글을 읽고 댓글을 보다보나 이 얘기가 생각이 나네요. 남편은 아내 말을 아내는 남편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10. 아하 2019.04.25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천년 전에 말씀이라고 생각해야죠.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을 버리는 게 좋습니다

  11. 낙타 2019.04.28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년만에 와봤는데 댓글들이 한결같네요 ㅎㅎ

  12. 1212 2019.05.08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황에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상황을 해석해야 겠지요
    글쓴님의 가장 큰 오류라 보입니다.

2019.04.03 23:40

Splendor in the grass  
by William Wordsworth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한때 그토록 찬란했던 광채도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으리
그 어떤 것으로도 돌이킬 수 없으리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래도 슬퍼하지 않으리
차라리 그 자리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
언제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태초의 연민에서,
인간의 고통에서 피어나는 
위로의 사색에서,
죽음 너머를 바라보는 믿음에서,
마음에 달관을 가져오는 세월에서.

 

 

https://youtu.be/YOmqJn2I8Mc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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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05 2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죽는게 사는거보다 나으면 죽는것도 좋죠 ^^

  2. 꼬구마 2019.04.07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싸 2등
    대략 순위권
    가문의 영광

  3. ian 2019.04.07 2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어떻게 제가 3위에? 아마 별다른 설명이 없으셔서 (저를 포함한) 구독자들이 잘 이해를 못하신듯...설명좀 해주세요.

2019.01.21 00:35



고대 그리스의 고전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는 당시 병사들이 어떤 것을 먹고 마셨는지에 대한 묘사가 매우 상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서사시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BC 3~4세기의 페르시아 전쟁이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까마득한 옛날인 BC 11세기 정도의 청동기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즉 도리아인들의 침공 이후 형성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로 양분되는 그리스 시대보다 훨씬 이전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등장 인물들의 갑옷과 투구, 창 등이 모두 청동으로 되어 있지요.  다만 철기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까지는 아니고, 철이 등장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직 철기시대 초창기라서 당시의 철(iron)에는 탄소 함량이 너무 많아 단단하기는 하지만 깨지기 쉬운 무쇠(cast iron)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철은 무기가 아니라 주로 농기구나 도끼, 사슬 등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무기로도 쓰이기는 했는데, 정교한 검이나 창날이 아니라 큼지막한 철퇴 같은 것으로 썼나 봅니다.  가령 파트로클루스의 장례식에서 여흥으로 벌어진 스포츠 경기에서, 아킬레스가 각 경기의 우승자를 위해 내놓은 상품 중에는 다음과 같이 무쇠덩어리가 나옵니다.  


다음으로 아킬레스는 에에티온(Eetion)이 던지던 커다란 쇳덩어리를 상품으로 내걸었다.  아킬레스는 에에티온을 죽인 뒤 그의 다른 소지품들과 함께 그 쇳덩어리를 빼앗아 배에 실어놓았었다.  이제 그는 다음 경기를 발표하며 참가를 유도했다.  "이 경기의 승자는 5년 간 충분히 쓸 만한 양의 무쇠를 갖게 될 것이오.  이 무쇠 덩어리만 있으면 그의 농장이 아주 외딴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쇠를 구하기 위해 쟁기꾼이나 목동을 마을로 보낼 필요가 없을 것이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 나오는 병사들의 식사는 주로 육류입니다.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나 굴을 따는 것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생선 등의 해산물을 전혀 먹지 않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확실히 일리아드 시대의 그리스 사람들은 생선을 즐겨먹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건들의 배경 무대가 모두 바닷가인데도 불구하고, 장군들과 병사들의 식사 장면에 생선이 나오는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거의 언제나 돼지나 소를 잡아 그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직화구이로 구워먹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그들은 넓적다리 뼈를 잘라내어 두 겹의 비계로 감싸고는 그 위에 날고기를 몇조각 얹었다.  크리세스가 그것들을 장작불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포도주를 부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근처에는 손에 끝이 5개의 가지로 갈라진 꼬챙이를 든 젊은이들이 서있었다.  넓적다리 뼈가 다 타자 그들은 먼저 안쪽 고기를 맛보고는 나머지를 작게 잘라 꼬챙이에 꿰어 불에 잘 익힌 후 꼬챙이에서 빼냈다.  일을 마치고 잔치가 준비되자, 그들은 그 고기를 먹었고 모두가 배불리 먹도록 충분한 양을 받았다."






원래 적은 고기를 여럿이 나눠먹기 위해서는 주로 고기를 삶아 그 국물까지 먹어야 합니다.  일리아드 내에서 상품으로 주어지는 것들 중에는 큰 솥도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를 삶아먹는 요리도 분명히 했을 것 같기는 한데, 실제로 이렇게 병사들이 식사할 때 솥을 이용하는 국물 요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오지 않는다고 당시 사람들이 그런 국물 요리를 전혀 먹지 않았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빵이나 죽 등 곡물로 만든 음식에 대해서도 그다지 많은 묘사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장에서 아킬레스에게 살해될 위험에 놓인 트로이 측의 리카온이 아킬레스의 무릎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에서, '내가 포로로 잡힌 뒤 처음 빵을 쪼갠 곳이 바로 당신의 장막 안에서였다' 라고 호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식사를 하는 것을 '빵을 쪼갠다'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당연히 당시 병사들의 주식은 곡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이한 것은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에서 고기를 구운 뒤 그 위에 보릿가루를 뿌려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입맛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지만 별다른 양념이나 향신료가 없던 시절에는 그런 곡식가루도 고기 맛을 내는 조미료 같은 것으로 썼던 모양입니다.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딧세이만을 읽은 분들께서는 고전적인 그리스 시대의 생활상이나 전쟁의 양상에 대해 매우 그릇된 인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앞부분에서도 자세히 언급이 되어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헤로도투스 시대에서조차도, 일리아드를 읽으면서 '우리 조상들은 우리와는 정말 다르게 살았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사실 알고보면 헤로도투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호머에 나오는 아킬레스 등의 인물들의 직계 후손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지요.   아무튼 여기서는 음식 부분에 대해서만 말하도록 하지요.


먼저, 그리스는 먹을 것 부분에 있어서는 그다지 풍요로운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애초부터 지형이 대규모의 밀 농사에 적합하지도 않았고, 바다에서 엄청난 어획량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흔히 그리스는 해안선이 길기 때문에 수산물이 적지는 않았지만, 사실 어획량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바다의 밀"로 알려졌던 중세의 북해산 청어에 비하면 무척 보잘 것 없는 양의 생선만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래서, 그나마 좀 넓은 평야지대이던 펠로폰네소스 반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애초부터 식량을 자급자족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주로 흑해연안의 비옥한 농업지대로부터의 수입 곡물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먹는 것이 신통치 않았는데, 주로 보리로 만든 마자(maza)라는 이름의, 부풀리지 않은 빵같은 것을 먹었습니다. 이는 빵만드는 방법이 아직 그리스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빵을 만들기에 적합한 밀가루가 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밀가루로 만든 이스트로 부풀린 흰빵은 축제 때나 특식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마자는 대개 보리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정확하게 마자는 빵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빵은 가루를 반죽하여 굽는 것인데, 마자는 반대로 보리가루를 불에 볶은 뒤 물로 반죽하여 뭉친 덩어리였거든요.  이건 조금 오래 놓아두면 딱딱하게 굳어 버렸기 때문에, 식사를 할 때는 이걸 포도주나 물 같은 것에 적셔서 거의 죽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우유를 부어 먹는 일종의 시리얼 같은 거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지요 ?   그러나 이 맛없는 보리빵 마자도 그리스인들은 고맙게 먹어야 했습니다.  맛은 없어도 배를 채울 수 있었거든요.  오죽했으면 페르시아 전쟁 때 플라타에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군 진영에서 그들의 산해진미를 보고 이렇게 한탄했겠습니까 ?


'이런 욕심장이들을 봤나 ?  이런 산해진미를 먹는 놈들이 우리의 보리빵을 빼앗겠다고 쳐들어 오다니 !'




(보기만 해도 식욕이 뚝 떨어지는 보리빵 마자(maza)입니다.)




육류는 정말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육류라는 것은 정말 귀한 것으로, 일반 서민부터 부유층까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었고, 축제 때에나 한번 먹어볼까 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전에 인기를 끌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갈리아 인들은 멧돼지 다리를 뜯는 동안 로마인들은 밀가루로 만든 빵과 죽을 선호했다고 씌여있었는데, 정확하게는 로마인들이 고기를 싫어했다기 보다는 없어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대신 생선 종류는 그래도 좀 나은 편으로, 일상적으로 소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맛있는 것, 고기'라고 하면 생선을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 전통은 로마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져서, 로마인들도 육류는 별로 맛보지 못했고, 생선류를 대신 즐겨 먹었습니다. 케사르가 갈리아 원정의 성공을 축하하며 로마 시민들에게 베푼 연회에서 제공된 음식도 주로 빵과 뱀장어 구이였다고 합니다.




(사진 속의 설명대로 입니다.  식사 때마다 소와 양을 호쾌하게 잡아먹던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의 식사 장면과는 달리, 실제 그리스인들에게 고기라는 것은 정말 맛보기 어려운 진미였고, 대개는 물고기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어떤 사회이든 주어진 자연 환경에 적응하며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스의 경우가 딱 그랬습니다.  그리스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좋든 싫든 무역을 해서 부족한 곡물을 해외에서 사들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곡물 값을 치를 만한 것이 뭔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민들이 쫄쫄 굶기에 딱 좋은 지형이었지만 그래도 잘 되는 농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올리브와 포도였습니다.  잘 말리면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한 보리와는 달리 올리브와 포도는 보리보다 맛은 있을지 몰라도 즙이 많고 물러서 장기 보존이 곤란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것들로 배를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그리스인들은 올리브에서 기름을 짜내고 포도즙을 발효시켜 포도주를 만들어 수출 상품으로 가공했습니다.  이런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 항아리를 실은 무역선이 부지런히 흑해 연안 지대와 시케리아(지금의 시칠리아), 이집트 등을 오가며 소중한 곡물을 수입해왔습니다.  특히 이미 꽤 많은 그리스 식민지가 형성되어 있던 흑해 북쪽 해안지대는 (지금도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농토는 유명합니다만) 지중해 세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서, 이곳과 교역하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헬레스폰트 해협(지금의 다다넬스 해협)은 전체 그리스 도시국가들, 특히 아테네의 밥줄을 쥔 지역으로서 이 지역의 패권을 둘러싸고 많은 전쟁이 벌어질 운명이었습니다.  현대의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못지 않은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곳이었지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주요 경제 활동인 올리브 착유와 포도주 만드는 작업입니다.  'How to survive' 시리즈 그림책을 찍은 거에요.)



(오늘날 우크라이나 땅인... 아, 우크라이나 땅이라고 하면 안되겠구나...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도시들입니다.  일찍부터 그리스인들은 먹고 살기 어려운 그리스 본토를 벗어나 지중해 곳곳에 식민도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주변 원주민들을 정복했다든가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대개 주변 원주민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습니다.)




지금처럼 비료나 농기계가 없던 시절, 당연히 곡물 생산량은 적었고 가격은 비쌌습니다.  더군다나 증기기관은 커녕 갈레온선도 없던 시절 먼 흑해에서 실어오는 곡물은 더욱 비쌌습니다.  그로 인해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는 곡물 가격의 안정을 위해 많은 규제를 두었습니다.  아테네와 그 주변 지역에서는 곡물 수출이 절대 금지되었습니다.  또 절대 다량의 곡물이 수입품이니만큼 일부 곡물만 사재기를 하거나 입항을 지연시키기만 해도 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상인들에게는 그게 자유시장경제에 따라 아테네에 부를 가져올 '투자'일 수 있었지만 아테네 민회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곡물은 국가가 사들여 공공 곡물 창고에 보관했으며, 또 한번에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곡물은 '50명이 나를 수 있는 분량'으로 엄격하게 제한되었고, 이를 어기는 사람은 사형에 처했습니다.  또 이렇게 사들인 곡물을 사적으로 거래하는 것도 엄격하게 제한하여, 어느 누구라도 곡물을 매입한 가격보다 1오볼 이상의 차익을 남기고 되팔수 없도록 했습니다.  당시 가난하고 재주없는 사람들이나 하던 3단 노선의 노젓는 사람이 받는 하루 일당이 2오볼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어느 누구도 곡물 거래로 큰 돈을 벌 수 없게 만들겠다는 '곡물 공개념' 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마 이런 규제가 없었다면 아테네의 많은 시민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을 것이고, 아테네는 지중해의 패권은 커녕 생존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주요 교역로입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흑토는 그때도 유명했는지, 흑해 북부 해안에서 나는 곡물이 그리스를 먹여 살렸습니다.)




특이할 만한 점으로, 그리스인들은 포도주에 항상 물을 타서 마셨습니다.  이렇게 포도주에 물을 타마시는 풍습은 특이한 것은 아니고, 중세에도 이렇게 물을 탄 포도주를 많이 마셨습니다.  심지어 나폴레옹도 샹베르텡 와인에 물을 타서 마셨거든요.  물과 포도주의 비율은 사람마다 틀렸지만 그리스 당시엔 대략 50:50의 비율이었습니다.  어떤 프랑스 학자는 그리스의 포도주는 진득진득할 정도로 진했기 때문에 물로 희석시켜 마셨다고 하지만, 그건 프랑스인들의 포도주에 대한 집착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야기같고, 실제로는 아껴 마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손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제공할 때, 포도주에 물을 얼마나 탈 것인가는 손님 취향에 따라 각자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정했습니다.  그때 포도주에 물을 너무 많이 타면, 손님들은 주인이 너무 인색하다고 비웃곤 했습니다.  또 그리스인들이 물로 희석한 포도주를 마시는 이유 중 하나는 취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흔히 술을 취하려고 마신다고 하지만, 원래 술에 취하는 것은 매우 볼썽 사나운 일이고 절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추태입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홍차나 커피, 코카콜라 등 다른 음료가 없었으니 포도주를 자주 마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포도주 원액 100%를 그대로 마시면 취하는 것도 피할 수 없고 또 건강에도 해로왔습니다.  실제로 스파르타의 어떤 왕은 스키티아인들과 교류하다가 포도주를 물로 희석하지 않고 그대로 마시는 풍습을 배워 그렇게 포도주 원액을 그대로 마시곤 했는데, 결국 미쳐버렸다고 합니다. 




(그리스인들의 향연은 저렇게 모두 비스듬히 누워서 노예들이 따라주는 와인을 마시며 주로 수다를 떠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리스식 향연을 συμπόσιον라고 하는데, 이는 '함께 마신다'라는 뜻으로서 현대 영어에서는 심포지움(symposium)이라고 합니다.)





(저 손가락에 걸고 돌리고 있는 듯한 접시는 kylix라고 하는데, 납작하고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포도주를 마신 뒤, 저 손잡이에 손가락을 넣고 빙빙 돌리다가 그 원심력을 이용하여 잔에 약간 남은 포도주 방울을 뿌려 목표물을 맞추는 것이 향연에서의 흔한 게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항아리에 그려진 그리스인들의 향연 모습입니다.  손님들이 손가락에 납작한 술잔 kylix의 손잡이를 걸고 빙빙 돌리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병사들은 무엇을 먹고 마셨을까요 ?  가장 구체적인 묘사는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Anabasis)에 나옵니다. 아나바시스는 1만 명에 달하는 그리스 용병들이 페르시아 키루스 왕자에게 고용되어 키루스의 형이자 페르시아의 왕인 아르타크세륵세스에 대한 반란에 참전했다 쿠낙사(Cunaxa) 전투에서 패배한 뒤 오늘날 이라크 중심부에서 흑해 연안으로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어렵게 어렵게 그리스 접경 지역까지 왔을 때, 당장 먹을 식량이 부족해졌습니다.  여태까지는 어차피 적대 지역이랍시고 약탈로 먹을 것을 구하며 뚫고 왔는데, 이제 페르시아 제국을 빠져 나오니 예전처럼 마구 약탈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용병 중의 한 명이 스스로를 뛰어난 전술가로서 장군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하며, 전체 용병단에 대한 지휘권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병사들은 당장 먹을 것을 마련해준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이 '지휘관 취준생'은 정말 먹을 것을 구해오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식량을 어깨에 짊어진 짐꾼들을 데리고 돌아옵니다.  그때 이 '지휘관 취준생'이 마련해온 식량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무명이 보리가루를, 스무명이 포도주를, 세명이 올리브를, 한명은 마늘, 나머지 한명은 양파를 각기 들 수 있는 만큼씩 들고 왔다'




(흔히 키루스의 1만명이라고 불리던 그리스인 용병단의 진격 및 후퇴로입니다.  이들이 도착한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도시 트라페주스(Trepezus)는 오늘날의 터키 트라브존(Trabzon)으로서,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 가끔 등장하는 터키 축구 클럽 트라브존스(Trabzonspor)의 홈 도시입니다.)




뭔가 상당히 빈약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  이 '지휘관 취준생'이 가지고 온 식량은 약 8~9천에 달했던 이 용병단 병사들에게는 1일치 식량도 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지휘관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그 양이 아니고, 목록입니다. 이 병사들은 행군 중에 빵을 구울 화덕을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므로, 이 보리가루로 마자(maza)라는 부풀리지 않은 빵을 만들어 먹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양념으로 올리브와 마늘과 양파를 넣었겠지요.  현대적인 식단에서 보자면 채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금방 느낄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 사람들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19세기까지도 채소는 별로 먹지 않았답니다.  채소는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하는 가난한 사람들만 먹었으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채소를 싫어했고 건강에도 나쁘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별로 많이 재배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로 지방과 전분 위주의 식사를 했던 것입니다.  로마군의 식량 목록을 보더라도, 주로 밀과 콩, 포도주, 그리고 양념으로 양파와 식초 이야기만 나오고, 채소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나폴레옹 시대는 물론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그대로 이어져 병사들은 신선한 채소를 거의 보급받지 못했습니다.  신선한 채소는 병사들이 알아서 '구해서' 먹는 것이지 군대에서 보급하는 것이 아니었지요.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는 당시 병사들의 특별한 식단이 나옵니다.  일종의 해군용 전투 식량이지요.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아테네가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에서 이탈하려는 미틸레네(Mytilene) 시를 아테네 함대가 무력으로 점령한 뒤, 그 함대 지휘관은 아테네에 미틸레네 시민들에 대해 어떤 처분을 내릴 것인지 묻기 위해 전령선으로 삼단노선(trireme) 한척을 보냅니다.  이 전문을 받은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 국가답게 민회에서 미틸레네 주민들의 우명을 결정했는데, 비정한 아테네 시민들은 미틸레네의 남자 시민들을 모조리 처형해버리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아버리라는 명령을 가결한 뒤 현장으로 전령선을 돌려 보냅니다.  그러나 바로 직후, 그건 너무 심한 결정이었다는 후회가 뒤늦게나마 몰려온 시민들은, 다시 민회를 열어 앞서 내린 명령을 취소한다는 전령선을 새로 보내기로 합니다.  이 두번째 전령선이 도착이 늦으면 미틸레네 시민들은 모조리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아테네 민회에서는 이 뒤쫓아가는 두번째 전령선에게 특별 보너스까지 걸고 쾌속으로 항해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레스보스 섬에 위치한 미틸레네 시와 아테네와의 거리는 345km로서,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도 최소 48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당시 그리스의 삼단노선은 좁고 가벼운 선체에 노수까지 포함하여 너무 많은 사람이 타는 구조라서 24시간 항해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두어번씩 반드시 근처 해안가에 배를 끌어올려놓고 모닥불을 피워 밥도 지어 먹고 잠도 잤지요.  그래서 항상 해안가에 붙어서 항해했으며 먼 바다로는 어지간해서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텔레네로 향한 두번째 삼단노선은 비상 상황에 따라 식사 시간은 물론 밤에도 배를 해안에 대지 않고 교대로 노를 저었습니다.  또 첫번째 삼단노선의 선원들도 자신들이 들고 가는 잔인한 명령서가 꺼림직하여 별로 열성적인 항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히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기 전에 두번째 삼단노선이 미틸레네에 도착했고, 미틸레네는 몰살의 참극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잠은 그렇다치고, 두번째 삼단노선의 선원들은 어떤 식사를 했을까요 ?  이때 선원들은 배 위에서 보리가루와 올리브유, 포도주를 반죽한 것을 먹으며 노를 저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미숫가루 또는 생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  수천 명의 사람 목숨을 구한 매우 거룩한 식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ource :

Iliad by Homeros (Penguin books)

Anabasis by Xenophon (Penguin books)

How would you survive as an ancient Greek ?

빵의 역사 (하인리히 야콥, 우물이 있는 집)

먹거리의 역사 (마귈론 투생-사마, 까치글방)

https://passtheflamingo.com/2017/05/24/ancient-recipe-maza-ancient-greek-ca-2nd-millennium-bce/

https://en.wikipedia.org/wiki/Olbia_(archaeological_site)

http://gluedideas.com/content-collection/cyclopedia-of-knowledge/Ancient-Corn-Trade.html

https://en.wikipedia.org/wiki/Kylix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full/10.1111/1095-9270.12144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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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안의댕댕이 2019.01.21 0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흑해 연안이 저 시절부터 비옥한 농토로 기능하고 있었다니 놀랍네요. 그런데 저 식민도시들은 정복지라기보다는 토착민족과의 거래중개소 같은 개념인가요?

    • reinhardt100 2019.01.22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식민지역에 따라 비중이 달랐습니다. 흑해 연안의 남부, 시칠리아 같은 지역은 원주민들의 세력이 약했기 때문에 원주민을 예속화시킨 후 자신들이 포리스의 상층부가 되어 모 폴리스 및 다른 폴리스와유대 관계를 가집니다. 반대로 스키타이가 버티고 있는 흑해 연안 북부, 남부 이탈리아, 남프랑스, 피레네 이북의 이베리아, 이집트 같은 지역에서는 함부로 정복질하려다가 도시가 골로 갈 뻔한 적도 있죠. 대표적으로 타란토인데 B.C 5세기 중엽 남부 이탈리아 원주민들과 대규모 전면전을 벌였다가 성인 남성만 1만명 이상이 포로가 된 후 참수되는 사태까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델로스 동맹이 성장할 수 있게 된 배경 중 하나가 모 폴리스와 식민 폴리스간의 종속관계를 끊어주는 역할도 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흑해 연안의 폴리스들이 아테네라는 거대한 군사적 우산을 바탕으로 하는 아테네 경제권에 편입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자립을 하게 되었고 이 덕분에 모폴리스와의 관계도 상당히 대등해지다보니 델로스 동맹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2. 뱀장수 2019.01.21 0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포스팅 감사히 읽었습니다^^

  3. ㅇㅇ 2019.01.21 0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마인들도 누워서 먹었다는데 그리스문화에서 배웠나보군요 저래 마시고 먹다간 사레걸리고 체할것 같은데 말이죠

  4. 다니엘의 생활 2019.01.21 1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롭네요 ㅎㅎ 전문적이고 재미있는 포스팅 감사합니다!

  5. 유애경 2019.01.21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보리빵 마자는 정말 보기만 해도 식욕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네요!

  6. Spitfire 2019.01.21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해에서 수입되는 밀이 그리스의 생명줄이다보니 다르다넬스 해협 입구에서 그리스 선박에 깽판을 치던 트로이가 침공을 받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호메로스가 그냥 사실을 기술하는 역사가였다면 그리스가 굶어죽을까봐 목숨 걸고 트로이로 쳐들어갔다고 했을텐데, 다행이 시인이라서 히어로물의 플롯을 아는지라 원정의 명분을 근사하게 각색을 해서 해서 일리아드가 명작으로 남게 되었지요. ㅎㅎ


    • reinhardt100 2019.01.22 2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트로이 전쟁이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특히, 인구 과잉에 시달리던 미케네 문명권 국가들에게 트로이등의 소아시아로의 세력 확장은 매력적 아니 필수일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7. 까까님 2019.01.21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마 시대에는 이집트가 곡창 역할을 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고대 그리스는 흑해 북안이 곡창이었군요
    지중해 종단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보면 시리아 쪽으로 돌아서 이집트 가는 것 보다 흑해가 더 가까웠던 때문일까요?
    위에 언급하신 구운 고기에 보릿가루를 뿌려 먹었다는 얘기는 요즘도 비슷한 방법으로 먹는 것 같습니다
    삼겹살집 중에 보면 콩가루를 찍어먹게 해주는 집이 있잖습니까?
    잘잘 흐르는 기름에 콩가루 찍어서 침귀름장에 찍어 먹음 캬캬~
    고대 그리스에서는 보릿가루 찍어서 올리브유+소금장에 찍어먹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

    • reinhardt100 2019.01.22 2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집트에도 그리스 폴리스가 있긴 했습니다. 아시리아를 대상으로 독립전쟁을 하던 제26왕조가 그리스인의 도움을 받은 대가로 나일강 삼각주 일부에 조차할 수 있는 토지를 줍니다. 이 때문에 페르시아 전쟁 후반부에 아테네가 대규모 원정군을 이집트에 증파하여 전쟁을 속행하기도 합니다.

      그리스가 이집트에서 밀을 적게 수입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집트의 밀 공급분 상당수는 이미 레반트 지역으로 가는 상황이라 공급받을 물량 자체가 적었다는 것, 흑해뿐만 아니라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라는 또다른 곡물수입지역이 있었다는 것도 있습니다.

  8. 파사데나 2019.01.21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리 말하자면 호메로스도 일리아드의 고기뜯는 장면을 쓰면서 '흐... 나두 먹고싶다... 고기맛이 어땠더라... 마눌님께 반근만 사달라구 할까... 꿀꺽...' 이래가면서 썼을 가능성도 있군요!

  9. 2019.01.21 1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벨닷 2019.01.21 1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면 일리아드 시대랑 그리스의 전성기랑은 700년이나 차이가 나는군요. 그러니 헤로도토스에게도 그 시절은 정말 까마득한 고대 시대란 인식이 있을수밖에 없었겠습니다. 물론 이집트 형님들이 보시기엔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차이겠지만ㅎㅎ

    • franken 2019.01.24 0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재의 한국인 시각에서 본다면 700여년은 조선 전체를 관통하여 고려 후기, 몽고의 지배를 막 받기 시작한 때를 포함하는 기간이니 긴 세월이긴 하죠.

  11. 소화낭자 2019.01.21 2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니까. 지금 우리가 먹는 빵이나 밥은, 그니까 현대 우리의 주식은. 진짜 오랫동안 사람들의 워너비였지. 진짜 주식은 아니었던 거죠....ㅎㅎㅎ

  12. 소프 맥태비쉬 병장 2019.01.22 0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글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글이군요.
    늘 흥미로운 먹방글(^^;;) 잘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되네요.

  13. 갸아아앍 2019.01.23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휘관 취준생이라니 앜ㅋㅋㅋ 이렇게 업뎃되는 맛이 있군요 근데 어디서 식량을 구해온걸까요? 주변에서 약탈한건지? 아니면 평소에 꼬불쳐둔 걸로 사온건지?

  14. 아즈라엘 2019.01.24 0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제가 이 블로그에 오는건 먹방글때문입니다...
    데헷

  15. ㅇㅇ 2019.01.25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찌보면 그리스 사람들이 장수했던 이유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2019.01.10 06:30

Bertrand Cornwell의 Sharpe 시리즈 중, Sharpe's Honour 중 제 1장입니다.  맛보기로 한장만 번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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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바위투성이 골짜기를 휩쓸던 습기찬 어느 봄날, 샤프 소령은 오래된 돌 다리 위에 서서 남쪽의 바위투성이 능선 낮은 쪽으로 향하는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인해 언덕들은 어두워보였다.


그의 뒤쪽으로는, 머스켓 소총의 발화장치를 헝겊으로 가리고, 총구에는 빗물이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코크마개를 막아둔 채로, 5개 중대의 보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샤프가 알기로는, 능선까지의 거리는 500야드였다.  (머스켓 소총의 사정거리는 약 60야드입니다.:역주)  곧 그 능선 위로 적군이 나타날 예정이었고, 그들이 다리를 건너는 것을 막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아주 간단한, 군인의 일거리였다.  이 1813년의 봄은 늦게 찾아왔고, 이 국경의 구릉지대에는 비만 줄곧 내렸으므로, 다리 아래의 강물은 깊고 빨라서, 걸어서 건널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그 임무는 훨씬 더 쉬워진 상태였다.  적군은 샤프가 기다리고 있는 다리를 통과하던가, 아니면 강물을 아예 건널 수 없었다.


"소령님 ?" 경보병 중대의 지휘관인 달렘보드 대위는 샤프 소령의 우중충한 기분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무슨 일인가, 대위 ?"


"참모 장교가 오고 있습니다."


샤프는 나직히 궁시렁거렸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등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다가와 속도를 줄이는 것을 들었다. 다음 순간 말이 그의 앞에 나타나 섰고, 흥분한 기병 중위 하나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샤프 소령님 ?"


단호하고 화가 난 듯한 검은 눈동자가 중위의 금도금이 된 박차와 장화를 거쳐, 진흙이 군데군데 묻었지만 비싸보이는 파란색 울 망토를 지나, 흥분한 참모 장교의 눈과 마주쳤다.  "자네가 내 시야를 가리고 있는데, 중위." 


"죄송합니다, 소령님."


중위는 서둘러 말을 한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험난한 산길을 돌아, 아주 열심히 말을 달려왔고, 그의 승마 솜씨에 스스로 우쭐해있었다. 그의 암말은 안절부절 못하고 움직이면서, 그 중위의 흥분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프레스톤 장군께서 보내신 전갈입니다, 소령님. 적군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나도 능선에 초병을 세워놓았었네." 샤프는 무례한 말투로 말했다. "적병을 30분 전부터 보고 있었어."


"예, 소령님."


샤프는 능선을 쳐다보았다. 중위는 자기가 그저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라이플맨(샤프)이 중위를 다시 쳐다보았다. "자네 프랑스말 할 줄 아나 ?"


리처드 샤프 소령을 처음 만난다는 사실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령님."


"얼마나 잘하지 ?"


기병 중위는 미소를 지었다. "Tres bien, Monsieur, Je parle..  (Very well, Mister, I speak...:역주) "


"내가 언제 빌어먹을 시범을 들려달라고 했나 ? 질문에 대답이나 하게 !"


중위는 이 무자비한 힐책에 겁이 났다. "아주 잘 합니다, 소령님."


샤프는 그를 쳐다보았다. 중위는 그 눈길이 마치 포동포동 살이 찌고 한때 잘나갔던 사형수를 대하는 집행인의 눈길 같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뭔가, 중위 ?"


"트럼퍼-존스입니다, 소령님."

"흰 손수건 있나 ?"


이 대화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군 하고 중위는 생각했다. "예, 소령님."


"좋아." 샤프는 다시 다리 쪽과, 능선을 넘어 길이 뻗어오는 움푹한 안장모양의 고개길 쪽을 쳐다보았다.


일이 아주 꼬일대로 꼬여 버리고 말았어 라고 샤프는 생각하고 있었다. 영국군은 포르투갈 국경의 동쪽으로부터 진격로를 확보해나가고 있었다. 프랑스군의 거점을 몰아내고 프랑스 수비군을 쫓아내면서 다가오는 여름의 작전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치적치적 비가 내리면서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에, 5개대대의 영국군이 토르메스 강가의 프랑스 수비대를 공격했다. 프랑스군 후방 5마일 떨어진 곳에, 프랑스군이 퇴각해올 이 길 도중에, 이 다리가 있었다.  샤프는 대대의 절반 정도되는 병력(5개 중대)과 라이플 중대 하나를 거느리고, 그 퇴각을 막기 위해, 밤을 새워 길을 빙 돌아 행군하여 여기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의 임무는 간단했다. 추격해온 다른 대대가 퇴각하는 프랑스군을 따라잡아 끝장을 볼 수 있도록, 프랑스군의 퇴각을 막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날 오후가 되면서, 샤프의 기분은 매우 저기압이었다.


"소령님 ?" 샤프는 위를 쳐다보았다. 중위는 접은 린넨 손수건을 내밀고 있었다. 트럼퍼-존스는 불안한 듯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손수건이 필요하시다고요, 소령님 ?"


"내가 코를 풀자는 건 줄 아나, 이 바보야 !  항복을 위한 거야 !" 샤프는 으르렁거리고는 두 발자국을 옮겨갔다.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비록 1500명의 프랑스군이 겨우 400명도 안되는 이 작은 부대 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트럼퍼-존스가 리처드 샤프라는 남자에 대해 들은 바로는, 샤프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항복을 하겠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샤프의 명성은 잉글랜드에까지 퍼져 있었고, 극히 최근에야 영국에서 떠나온 트럼퍼-존스가 최전선으로 다가올 수록 그는 그 이름을 점점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샤프는 군인 중의 군인으로서, 그의 칭찬을 듣는 것은 진정한 명예로 간주되었고, 그의 이름은 프로페셔널로서의 뛰어남에 대한 표석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지금 싸우지도 않고 항복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이클 트럼퍼-존스 중위는 그 생각에 어이가 없어, 햇빛과 바람에 검게 그을린 샤프의 얼굴을 몰래 쳐다보았다. 잘 생긴 얼굴이었으나, 샤프의 왼쪽 눈 아래의 긴 흉터(1803년, 인도에서 도드 대령의 칼에 입은 상처입니다.:역주)로 인해, 마치 사람을 비웃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트럼퍼-존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샤프가 웃을 때면 그 흉터로 인한 비웃는 듯한 표정은 사라지곤 했다.  트럼퍼-존스가 가장 놀란 부분은, 샤프는 계급장을 전혀 달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장교의 허리띠나 견장도 없어서, 그가 장교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옆에 차고 있는 낡아빠진 기병용 군도 뿐이었다.  트럼퍼-존스 생각에, 그는 정말 영국군이 빼앗은 첫번째 프랑스의 독수리 군기를 탈취한, 그리고 바다호스 요새의 무너진 틈새로 처음 돌격해 들어간, 그리고 가르시아 에르난데스에서 독일 병사들과 함께 그 유명한 기병 돌격을 감행했던, 바로 그 군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자신만만함은, 그가 군 생활을 졸병 계급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총 한방 쏴보기도 전에 숫적으로 불리하다고 항복하려 한다는 것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지금 뭘 보는 거야, 중위 ?"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령님." 트럼퍼-존스는 샤프가 남쪽 구릉지대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샤프는 그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중위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는 그것이 싫었다. 그는 주목을 받는 것이 싫었고,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싫었다. 요즘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만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이 젊은 기병 중위에게 필요 이상으로 심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중위를 올려다 보았다. "적에게 3문의 대포가 있는 것 같던데, 맞나 ?"


"예, 소령님."


"4파운드 포였지 ?"


"그런 것 같습니다, 소령님."


샤프는 툴툴거렸다. 그는 능선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 두마디 질문이 중위에게 좀 친근한 느낌을 주기를 바랬지만, 사실 그는 요즘 낯선 사람들에게서는 친근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부터 우울해 있었다. (Sharpe's Enemy 편에서 샤프는 크리스마스날 스페인인 아내인 테레사를 잃습니다. : 역주) 그는 격렬한 죄책감과 무자비한 절망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신의 대문'이라 불리는 산길의 눈속에서 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목에서 흘러내리던 피의 이미지가 그의 마음 속에 떠올랐다. 그는 그 장면을 몰아내기라도 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그녀 몰래 바람을 피웠었고, 그녀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 그런 종말을 맞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어린 딸이 이제 엄마없는 아이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그의 죄책감 때문에 무일푼 상태였다. 아직 두살이 채 안된 그의 딸은 그녀의 스페인 삼촌과 숙모 밑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그가 스페인 정부로부터 훔쳤던 (Sharpe's Gold 편에서 그는 스페인 금화를 빼앗아 오는 임무를 맡았는데, 당연히 그중 일부를 슬쩍합니다.:역주) 그의 저축금 전체를 그의 딸 안토니아에게 보냈었다.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그의 군도와 라이플 소총, 그의 망원경, 그리고 몸에 걸친 낡은 군복 한벌이 전부였다.  그는 값비싼 말을 탄, 금도금이 된 장식 칼집을 차고 새 가죽장화를 신은 이 젊은 중위를 속으로 저주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의 대오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병사들이 남쪽 능선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샤프는 뒤돌아섰다.


"대대~!" 곧 침묵이 뒤따랐다. "대대~! 차렷 !  (Talion ! 'Shun !)"  (Battalion, Attention ! 을 이렇게 발음하는군요.: 역주)


병사들의 장화가 비에 젖은 바위 위에 철썩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그들은 프랑스군의 퇴각로가 될 북쪽길이 놓인 작은 계곡의 입구를 가로막은 채 2줄로 늘어서 있었다.


샤프는 그들의 불안함을 이해했다. 그들은 샤프의 대대에 속한 샤프의 병사들이었다.  또한 그는 이 병사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비록 적군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라고 해도, 그 신뢰에는 변함이 없었다. "헉필드 중사 !"


"소령님 !"


"군기를 올려라 !"


마이클 트럼퍼-존스가 보니, 이런 엄숙한 순간에 어울리지 않게도 병사들은 씨익 웃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군기라는 것은 대대의 정상적인 깃발이 아니라, 껍질을 벗긴 자작나무 줄기에 헝겊조각을 매달아 놓은 것에 불과했다. 깃발은 비에 젖어 축축하게 늘어져 있었으므로, 먼거리에서는 그것이 병사들 자켓에서 뜯어낸 노란색 헝겊으로 장식한 망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다. 막대기의 끝에는 노란 헝겊을 묶어놓아, 멀리서 보았을 때는 잉글랜드의 왕관처럼 보이게 꾸며 놓았다.


샤프는 이 참모장교가 놀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반편(half) 대대는 군기를 소지할 수 없다네, 미스터 트럼퍼-존스."


"예, 그렇지요, 소령님."


"그리고 프랑스군도 그걸 알지."


"그렇습니다, 소령님."


"그러니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


"여기에 정규 1개 대대가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


"그렇지."  샤프가 다시 남쪽을 쳐다보는 동안, 트럼퍼-존스는 왜 항복에 앞서 이런 속임수가 필요한지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트럼퍼-존스는 샤프에게 묻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샤프 소령의 얼굴을 보면 쓸데없는 질문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 리처드 샤프 소령은 남쪽 능선을 쳐다보면서, 여기는 정말 죽을 장소치고는 비참하고, 어울리지도 않고, 또 바보같은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그는 죽고 나면 다시 테레사를 만나서, 항상 그를 반겨주던 그녀의 갸름하고 해맑은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그녀의 얼굴의 자세한 모습은 그의 기억에서 점점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초상화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스페인 친척의 집안에서 자라고 있는 그의 딸은 엄마의 초상화도, 아빠의 초상화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영국군은 언젠가는 스페인 땅을 벗어나 진격해나갈 것이고, 그는 군대와 함께 움직여야 했다. 그러면 그의 딸은 샤프가 어릴 때 고아로 남겨졌듯이, 부모없이 살아가도록 남겨질 것이었다.  불행이 불행을 낳는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안토니아의 삼촌과 숙모는, 샤프 자신보다는 훨씬 좋은 부모가 되어줄 것이라는 위안감을 느꼈다.


계곡 위로 거센 바람이 비를 몰고와서, 시야를 흐리게 하면서 다리의 돌에 부딪히 휘잉 소리를 냈다. 샤프는 말을 탄 참모 장교를 올려다 보았다. "뭐가 보이나, 중위 ?"


"말탄 사람 6명입니다, 소령님."


"적군에게 기병대는 없지 ?"


"우리가 본 바로는 없었습니다, 소령님."


"그럼 저건 적군의 보병 장교들이겠군. 저자식들은 지금 우리를 어떻게 요리할까 작전을 짜고 있을거야."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날씨가 개여서, 햇빛이 따뜻하게 비추어 지난 겨울의 아픈 기억들을 날려버릴 수 있기를 바랬다.


그때 길이 걸쳐있는 능선 위가, 갑자기 프랑스군의 파란색 군복으로 가득 메워졌다. 샤프는 적군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동안, 몇개 중대나 되는지 세어보았다. 6개 중대였다. 그들은 전위대였고, 다리를 향해 돌격하여 점령하되, 대포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기다리라고 명령을 받았을 것이었다.


그날 아침, 샤프는 피터 달렘보드 대위의 말을 빌려서 프랑스군의 퇴각로를 10번도 넘게 돌아보았었다. 그는 프랑스군 지휘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고 적군이 어떻게 나올지 확신이 들때까지 혼자서 자기 자신과 토론을 해보았었다. 이제 적군은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고, 그는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영국군 대부대가 뒤를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감히 길에서 벗어나 구릉지대로 피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면 대포를 버리고 가야했고, 그럴 경우 스페인 빨치산의 밥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훼방꾼들을 재빨리 날려버리려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한 도구는 그들의 대포일 것이었다.


능선 아래 150야드 지점에, 길이 계곡 바닥으로 내려오면서 마지막으로 굽이치는 지점에, 대포가 자리잡기에 딱 좋은 바위로 된 넓은 평지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프랑스군 포병은 샤프가 거느린 2열 횡대의 보병들에게 캐니스터(커다란 산탄총같은 포탄의 일종: 역주)를 퍼부어 피떡을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영국군 대오가 산산조각이 나면, 프랑스 보병들이 총검을 들고 다리를 향해 돌격을 해올 것이었다. 그 바위 평지에서라면 프랑스 포병은 자신들의 보병 머리 너머로 대포를 쏘아댈 수 있었다. 사실 그 바위 평지는 바로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샤프는 그날 아침 작업조를 보내 바위 바닥에서 포병들에게 걸리적거릴 만한 것들을 다 치워놓았었다.


그는 프랑스 포병이 바로 그 위치에 있기를 바랬다. 그는 프랑스군이 대포를 거기에 갖다놓으라고 초대장을 보낸 셈이었다.


그는 3대의 대포가 언덕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보병들이 달라붙어 바퀴에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있었다. 그들은 점점 더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포병들이 다리 건너의 평지까지 내려와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몇안되는 라이플 사수들을 강둑에 배치시켜 놓았었다. 프랑스군은, 녹색 자켓을 입은 그 라이플 사수들을 보았을 것이고, 라이플 강선에 의해 회전하는 탄환의 정확성을 두려워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군이 라이플 소총의 사정거리 밖에 대포를 위치시키기를 바랬다.


프랑스군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프랑스군 포병이 그 바위 평지로 와서 대포를 말에서 떼어내고, 탄약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서 샤프는 속으로 안심했다.


샤프는 뒤돌아섰다. "총구 마개를 뽑아 !" 두줄로 늘어선 붉은자켓의 병사들이 머스켓 소총 총구에서 코르크 마개를 뽀아내고 격발장치를 감쌌던 헝겊을 풀어냈다. "거총 !"


머스켓 소총이 병사들의 어깨로 올라왔다. 프랑스군도 그 움직임을 볼 것이엇다. 프랑스군은 영국군 머스켓 사격의 속도를 두려워했다. 영국군의 잘 훈련된 머스켓 사격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스페인 전장에서 그 위력을 여러번 입증했었다.


샤프는 다시 병사들에게 등을 돌렸다.  "중위 ?"


"소령님 ?"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흠칫 놀라,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좀더 깊은 목소리로 다시 대답했다. "소령님 ?"


"그 손수건을 자네 군도에 묶어라."


"하지만 소령님...."


"명령에 복종하게, 중위." 이 말은 나직이 말해졌으므로 트럼퍼-존스를 제외한 다른 병사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은 무자비하게 오싹한 느낌을 주었다.


"예, 소령님."


프랑스군의 6개 공격중대는 250야드 거리에 있었다. 그들은 총검을 착검한 채, 종대로 이루어 있었고, 포병대가 일을 마치고 나면 진격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샤프는 식량주머니(haversack : haver는 네덜란드어로 귀리라는 뜻입니다. 역주)에서 망원경을 꺼내어 망원경 튜브를 잡아늘이고 대포를 관찰했다. 거대한 산탄총처럼, 깡통 속에 든 자잘한 소총탄을 죽음의 부채살 모양으로 쏘아대도록 만들어진 캐니스터 포탄이 세문의 대포 포구로 운반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가 그가 소령으로 진급한 것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소령으로서, 그는 지휘권을 이양하고,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프랑스 포병들이 대포의 마지막 조준을 마치고 있는 이 순간, 그는 그 날의 진짜 일을 수행하도록 임무를 받은 라이플 중대와 자기가 함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첫번째 캐니스터 포탄이 포구에 밀어넣어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빌 !" 샤프는 큰 소리로 말했다.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자기가 대답을 해야하는 건가 하고 어리둥절해하다가 그냥 잠자코 있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했다.


길의 왼쪽에, 길을 내려다보는 높은 바위 위에서, 하얀 화약연기들이 픽픽 나타났다. 1~2초 뒤에 라이플 소총 특유의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이미 3명의 포병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것은 간단한 매복이었다. 1개 중대의 라이플 소총병들이 대포가 자리를 잡을 지점 근처에 매복하고 있었다. 그 수법은 샤프가 전에 사용했던 것이었고, 또 같은 방법을 썼는데, 언제나 통하는 방법 같았다.


프랑스군은 라이플 소총부대에 도통 익숙해지질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사격의 속도를 더 중요시하여 활강총신을 가진 머스켓 소총만을 사용했고, 장전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라이플 소총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녹색 자켓을 입고, 은폐물을 아주 잘 활용하고, 3백~4백보 거리의 유효사거리를 가진 라이플 소총병에 대해서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전체 포병대의 절반 정도가 쓰러졌고, 바위는 라이플 소총의 화약연기로 자욱해졌다. 하지만 총성은 계속되었고 총알은 이제 대포를 끄는 말들에게 퍼부어지고 있었다. 라이플 소총병들은 자신들의 화약연기에서 벗어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자꾸 위치를 바꿔가면서 말들을 조준하여 쏘았다.  이는 대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포병들을 쓰러뜨려 대포를 발사하지 못하게 막았다.


대포 뒤의 길 위에 있던 적군의 후위부대가 구보로 달려왔다. 그들은 바위 밑에서 진열을 짜고 바위 위로 올라가려 햇지만, 경사는 급했고, 라이플 소총병들은 중무장한 프랑스 보병들보다 훨씬 잽쌌다. 하지만 프랑스 보병들의 공격으로 인해, 최소한 라이플 소총병들이 포병들에 대한 사격을 중단하게 되었고, 이제 살아남은 포병들이 포가 밑에서 다시 포탄 장전을 마무리하기 위해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샤프는 씨익 웃었다.


저 구릉 지대 속 어딘가에 반은 독일인이고 반은 영국인인 윌리엄 프레데릭슨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샤프가 아는 그 어떤 병사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의 부하들이 붙여준 그의 별명은 '달콤한 윌리엄'이었는데, 아마 그건 그의 애꾸눈 안대와 심한 흉터가 진 얼굴이 너무나 무시무시해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달콤한 윌리엄은 살아남은 포병들이 엄폐물로부터 완전히 기어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길의 오른쪽에 숨어있던 라이플 소총병들에게 사격을 개시하도록 했다.


마지막 포병들까지 쓰러졌다. 프레데릭슨의 명령에 따라, 라이플 소총병들은 말을 탄 적의 보병 장교들로 표적을 바꾸었다. 적군은 몇발 되지도 않는, 그러나 정확히 조준된 라이플 총탄에 의해 포병대 전체를 잃고 갑자기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제 샤프가 그의 다른 무기를 뽑아들 차례였다.


"중위 ?"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그의 군도 끝에 묶어놓은 축축한 흰 손수건을 숨기려고 하다가 샤프를 쳐다보았다. "소령님 ?"


"적군에게 가서 내 인사를 전하고, 무기를 내려놓도록 제안해보게."


트럼퍼-존스는 이 키가 크고 검은 얼굴을 한 라이플맨을 쳐다보았다. "저들보고 항복하라고요,  소령님 ?"


샤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우리가 항복하자고 제안을 하는건가 ?  응 ?"


"아닙니다, 소령님." 트럼퍼-존스는 조금 지나치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1500 명의 프랑스군이 불과 400 명의 비에 젖고 고립된 영국군에게 항복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지 황당해했다. "물론 아닙니다, 소령님."


"저들에게 우리가 1개 대대를 예비병력으로 가지고 있다고 해. 그리고 그 뒤에는 6개 대대가 있다고 하고. 또 구릉지대에는 기병대가 있고, 곧 대포가 도착한다고 하게. 아무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라고 ! 하지만 반드시 내 인사를 먼저 전하고, 이미 쓸데없이 많은 병사들이 죽지 않았냐고 말하도록 하게. 그리고 그들의 군기를 폐기할 시간을 주겠다고 말하게."  그는 다리 건너를 쳐다보았다. 프랑스군이 바위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아직도 충분한 숫자의 라이플 총성이 울리고 있었고, 그 뜻은 아직도 이날 오후에 쓸데없이 인명이 살상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어서 가게, 중위 ! 15분 줄 것이고 그때까지 항복하지 않으면 내가 공격하겠다고 하게.  나팔수 ?"


"소령님 ?"


"기상 나팔을 불어라. 중위가 적군에게 도달할 때까지 계속 불어."


"예, 소령님."


나팔 소리로 경고를 받은 프랑스군은 한명의 기병이 그들을 항해 손수건을 묶은 칼을 높이 들고 달려내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예의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군은 바위 사이를 잽싸게 뛰어다니는 라이플 소총병들에게 사격을 하던 것을 중단했다.


전투의 화약 연기는 바람에 흩날리는 비 속에서 흩어져갔다. 트럼퍼-존스는 프랑스 장교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샤프는 뒤로 돌아섰다. "편히 쉬어 !"


5개 중대는 긴장을 풀었다. 샤프는 강둑을 쳐다보았다. "하퍼 상사 !"


"소령님 !"  6피트의 키를 가진 샤프보다도 4인치는 더 큰 커다란 사나이가 강둑에서 올라왔다.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샤프와 함께 이 붉은 코트 연대로 흘러들어오게된, 몇안되는 라이플맨 중의 하나였다. 사우스 에섹스 대대는 붉은 코트를 입고 유효사거리가 짧은 머스켓 소총을 사용했지만, 샤프의 예전 중대의 다른 라이플맨들처럼 그도 아직 녹색 자켓을 입고 라이플 소총을 들고 다녔다. 하퍼는 샤프 옆에 섰다. "저 자식들이 굴복할까요 ?"


"저들에겐 다른 도리가 없어. 자기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거야. 저들이 1시간 안에 우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저들은 끝장이야."


하퍼는 웃었다. 샤프에게 친구가 있다면 바로 이 상사가 그 친구였다. 그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모든 전투를 함께 했었다. 하퍼가 샤프와 나눌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샤프의 죄책감 뿐이었다.


샤프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추위에 손을 비볐다. "차가 마시고 싶군, 패트릭. 차를 끓여도 좋다는 허가를 내리겠네."


하퍼는 미소를 지었다. "예, 소령님." 그는 얼스터(아일랜드의 지방명:역주)의 거센 억양으로 말했다.


샤프가 손으로 감싸고 있던 차가 식기도 전에, 마이클 트럼퍼-존스 중위가 프랑스군 대령과 함께 돌아왔다. 샤프는 이미 엉터리로 만든 가짜 군기를 치우도록 명령해 놓았었다. 그는 절망적인 적군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그는 대령이 항복의 표시로 내미는 군도를 받아들이기를 사양했다. (이는 상대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뜻하는 당시의 예절입니다: 역주) 대포 없이는 다리를 점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프랑스군 대령은 샤프가 내놓은 항복 조건에 동의했다. 대령은, 샤프 소령같은 명성높은 군인에게 항복한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샤프 소령은 감사를 표시하고, 차를 권했다.


 


두시간 후, 프레스턴 장군이 그의 5개 대대와 함께 도착했다. 그는 그의 앞에 머스켓 총성이 들리지 않는 것에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도착해보니 1500 명의 프랑스군이 포로가 되었고, 3문의 대포와 함께 마차 4대 분량의 보급품이 노획되어 있었다. 프랑스군의 머스켓 소총은 길가에 쌓여있었다. 그들이 수비하던 마을에서 약탈했던 약탈품들은 이미 샤프의 부하 병사들의 배낭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병사 전체는 물론, 프레데릭슨 대위의 라이플맨들 모두가 부상조차 당하지 않았다. 프랑스군은 7명이 전사하고 21명이 부상을 입었다.


"축하하네, 샤프 !"


"고맙습니다, 장군님."


장교들이 끊이지 않고 다가와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는 그들을 떨쳐냈다. 그는 대포가 없이는 샤프의 부대를 깨뜨릴 수 없었으므로 프랑스군은 사실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축하가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이런 칭찬이 쑥스러워 샤프는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거센 강물을 건너, 사우스 에섹스의 보급관인, 통통하게 살이 찐 콜립이라는 이름의 장교를 찾았다. 그 보급관은 지난 밤에 샤프의 절반의 대대와 함께 야간 행군을 했었다.


샤프는 바위가 갈라진 틈 사이로 콜립을 몰아 붙였다. 샤프의 얼굴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넨 정말 운이 좋아, 미스터 콜립."


"예, 소령님." 콜립은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그는 불과 2달 전에 사우스 에섹스에 합류했었다.


"왜 자네가 운이 좋은지 말해보게, 미스터 콜립 ?"


콜립은 불안한 듯 침을 삼켰다. "아마 처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령님 ?"


"처벌은 절대 없을걸세, 미스터 콜립."


"없다고요, 소령님 ?"


"왜냐하면 그건 내 잘못이었으니까. 자네가 짐을 다 도맡겠다고 했을 때 난 자네를 믿었네.  내가 틀렸지. 자넨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


"정말 죄송합니다, 소령님."


지난 밤에, 샤프와 그의 대위들은 프레데릭슨 대위의 라이플맨들과 함께 먼저 길을 떠났었다. 그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 먼저 떠났었고, 중위들과 함께 콜립이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오도록 했었다. 그가 되돌아 왔을 때, 콜립은 그가 힘들게 건넜던 깊은 계곡 입구에서 있었다. 샤프는 라이플맨들을 이끌고 계곡을 건너, 가파른 강둑을 내려가 허리까지 차오르는 얼음처럼 차가운 강물을 건너, 얼음이 얼 것같은 옷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건너편 강둑을 기어올랐었다.


그가 5개 중대를 데리러 되돌아왔을때, 엄청난 재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급관인 콜립은, 붉은코트의 병사들이 좀더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묘안을 짜냈었다. 머스켓 소총의 어깨끈을 모아 묶어서 밧줄을 만들어, 매우 긴 고리를 만들었다. 이것을 강둑 사이에 걸쳐놓고 거기에 모든 병사들의 무기와 배낭과 수통과 식량주머니를 차례로 매달아서 순환식으로 잡아당겼던 것이다. 마지막 짐을 그런 식으로 건네고 있을 때, 어깨끈의 매듭이 풀리면서 짐이 물 속에 빠졌는데, 그 짐은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탄약 전체였던 것이었다.


프랑스 군이 샤프가 지키는 다리에 도달했을 때, 탄약이 있었던 것은 샤프의 라이플 중대 뿐이었다. 샤프는 사실상 무기가 없었으므로 프랑스군은 그저 한번의 일제 사격으로 다리를 점령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절대, 미스터 콜립, 절대 병사에게서 무기와 탄약을 떼어놓지말게. 약속할 수 있나 ?"


콜립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령님."


"자네가 내게 뭔가 한병 사야 한다고 생각하네, 미스터 콜립."


"예, 소령님, 물론입니다, 소령님."


"그럼 이만, 미스터 콜립."


샤프는 걸어나왔다. 그는 갑자기 웃었는데, 그건 아마 서쪽 하늘의 구름이 갈라지면서 붉은 석양 빛이 그의 승리의 장면을 비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패트릭 하퍼를 찾아나서, 그의 옛 라이플맨 부하들과 서서 차를 함께 마셨다. "오늘 아주 수고 많았어들."


하퍼는 웃었다. "그 자식들에게 우리에게 탄약이 없었다는 거 말했어요 ?"


"항상 상대방에게 자존심만큼은 남겨둬야지, 패트릭." 샤프는 웃었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로 거의 웃는 일이 없었다.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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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28일 입대 2019.01.10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봐도 너무 재미있는 글이에요! 드라마에서 샤프의 그 냉소적인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도 하네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 파파펭귄 2019.01.10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으면서 상황이 이미지로 그려지네요. 심장이 두근두근거렸어요.

  3. ㅇㅇ 2019.01.10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인들의 가장 훌륭한점이라 할 수 있는 침착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네요

  4. 루나 2019.01.1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세네요 ㅋㅋ

  5. MADRUSH 2019.01.13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쓰신 글 늘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샤프 시리즈를 구글 북스에서라도 사볼까 하는데 혹시 샤프 시리즈의 시간 순서를 한번 이야기 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영어이고 군용어도 많아서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워낙 재미있는 글을 읽다보니 시도해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늘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6. 박씨 2019.01.13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 바꾸신 스킨이 깔끔하고 가독성도 좋아서 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

  7. 501st CSG 2019.01.17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입니다
    다시 읽어도 좋네요

2019.01.03 06:30



몇년 전 영화화되어 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던 영화 300의 줄거리는 한마디로 '스파르타 인들의 전설적인 용맹'입니다.  물론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오락용으로 만들어진 영화에 불과하며, 많은 허구와 왜곡이 들어가 있습니다만, 기본적인 줄거리 자체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BC 480년 가을, 바닷가의 협로인 테르모필라에(Thermopylae)에서, 그리스 본토를 침공하기 위해 이 곳을 통과하려는 크세륵세스의 수십만 대군을, 수도 훨씬 적고 가난한 스파르타의 용사들이 상당 기간 저지하다가 결국 옥쇄했던 사건이 이 영화의 배경이지요. 




(테르모필라에를 스파르타가 꽉 틀어막는다고 해도, 바다길이 뚫려 있으니까 페르시아 군은 그리스 본토를 유린할 수 있다고요 ?  사실 그렇긴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원시적인 항해술 수준에서는, 바다로 대규모 원정군을 실어나른다는 것은 백만대군과 싸우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었으니, 테르모필라에를 돌파하는 것이 꼭 필요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려진 스파르타 인들의 교육 방식이나 거친 생활상은 거의 대부분 다 사실입니다.  실은 그것보다 더 험악했습니다.  스파르타는 북한을 낙원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엄격한 군국주의 국가로서, 가난하고, 문화적으로 피폐했으며, 인권이나 개인의 행복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낸지 오래된 도시 국가였지요.  영화 속에서는, 곱추로 태어난 어느 스파르타 인이, 자신을 버린 조국에 배신감을 느끼고 페르시아 군에게 우회로를 알려주는 바람에 스파르타 군이 전멸을 하게 된 것으로 그려졌습니다.  (실은 그 지방 농민이 상금을 노리고 알려주었지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곱추로 태어난 스파르타 인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그런 배신을 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스파르타는 나치 독일 못지 않은 인권 유린 국가로서, 갓 태어난 모든 아기는 국가에서 검사하여, 만약 불구가 있거나 허약해 보일 경우, 산 속 깊은 구덩이에 내다 버려 죽이는 것이 법제화 되어 있었습니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천인공로한 야만 국가였지요.




(배신자라고요 ?  아닙니다.  피해자였을 뿐입니다.)




그리스는 원래 남성 우월주의 마초 국가라서 어차피 여자들에게는 투표권이나 발언권, 재산 소유권 등은 물론 올림픽 관람권조차 모두 거부되었는데, 그나마 스파르타의 여성들에게는 재산권도 있고 또 각종 경기에도 참여할 수 있는 등, 다른 그리스 국가보다는 나은 지위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스파르타에서도, 여성들에게 연애 같은 것은 절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결혼은 약탈혼이라서,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납치한 뒤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고 감금한 뒤, 밤에만 (이제는 와이프가 된) 그 납치 여성을 찾아가는 식의 결혼 생활을 상당 기간 유지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와이프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와이프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스파르타에 있어서 여자란 튼튼한 아기를 낳기 위한 그릇에 불과했거든요.  따라서 훌륭한 다른 남성 시민의 씨를 받기 위해 와이프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주고, 거기서 태어난 아기를 자신의 아기로서 키우는 것이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아기는 일정 나이가 되면 부모의 곁을 떠나 가혹한 공동 생활을 하며 거의 폭행과 학대에 가까운 공동 교육(agoge)을 받았으니, 아기가 꼭 자기 핏줄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레오니다스 왕의 아내, 즉 여왕 고르고(Gorgo)가 원로원을 설득하여 남편에게 증원군을 보내기 위해 부패한 원로원 의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레오니다스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 뻔한 원정 길을 떠날 때, 그 아내인 고르고가 '내가 당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라고 묻자, 레오니다스는 쿨하게 '훌륭한 남자와 결혼하여 튼튼한 아기를 낳으시오'라고 한마디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고 합니다.  최소한 조선 시대처럼 여자들이 정절을 지키거나 청상과부로 늙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지요.




(부도덕한 일이라고요 ?  동성애가 고상한 취미로 인정되던 시절입니다.  뭐 꼭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적인 가치관과는 많이 다르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남녀가 함께 식사를 하며 데이트를 한다는 것은, 젊은 미혼 남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젊은 부부 사이에서 조차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단 남자들은 15명이 한 조를 이루어 모두 공동 식사(syssitia)를 해야 했으니까요.  어느 스파르타의 왕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귀환한 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집에서 와이프와 함께 먹겠다'며 공동 식당에 사람을 보내 자기 몫의 식사를 자기 집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가 '개소리 하지 말라'며 면박을 당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먹는 것도 맛없기로 유명한 '검은 국'에 부풀지 않은 보리 빵을 먹는 정도라서, 한마디로 정말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테르모필라에 전투 1년 뒤인 BC. 479년, 스파르타가 이끈 연합군이 플라타에아 (Plataea)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잔여 병력을 완전 격파합니다.  이때 스파르타의 왕인 파우사니아스 (Pausanias)는 페르시아 진영에서 페르시아 인들이 차려 놓은 산해진미의 식탁을 발견하고는 '이런 욕심쟁이들, 이런 것을 먹으면서도 우리의 보리 빵을 빼앗으려고 쳐들어왔단 말인가' 하고 한마디 할 정도였습니다.




(전형적인 그리스의 만찬 모습입니다.  술잔이 납작한 것이 특징인데, 굳이 스파르타가 아니더라도 그리스 사람들의 식탁은 그다지 풍성한 편이 못 되었습니다.)




스파르타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척 피폐한 나라였습니다.  일단 시민들은 절대 직업을 가져서는 안되었습니다.  즉, 스파르타 시민권을 가진 남자들은 100% 백수였습니다.  이들에게 직업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것은 이들이 항상 신체를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하여, 최강의 병사들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온나라의 살림살이는 투박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가령 스파르타의 어느 왕이 외국을 방문했다가 어느 집에 들어가 대들보를 올려다보고는 '이 나라에는 네모난 모양으로 자라는 나무가 있는가 ?'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스파르타의 집은, 왕궁조차도, 그냥 둥근 통나무를 그대로 대들보로 썼던 것이지요.  또 돈이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리스를 포함한 동부 지중해는 은화를 매개체로 한 상업 활동이 활발했는데, 스파르타는 예외였습니다.  스파르타의 전설적인 입법가인 리쿠르구스 (Lycurgus)의 법에 의해, 스파르타에서는 은화는 못 만들게 했고, 오로지 무쇠 동전을, 그것도 뜨거울 때 식초에 담가 '고철 가격도 안 나가도록 만든' 가치없는 동전만을 쓰도록 했으므로, 상업 활동이 전혀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랬으므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먼 훗날 사람들이 스파르타의 유적을 파본 다면 스파르타가 전체 그리스를 호령하는 강대국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라고 그 시대에 이미 썼을 정도였지요.




(투키디데스의 흉상 보다는 그 어록이 더 마음에 드네요.  "행복의 요건은 자유고, 자유의 요건은 용기이다.")




이렇게 지독하게 살았으니 스파르타가 군사 강국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를 하겠습니다만, 이런 군사 강국이 대체 왜 망했을까요 ?  신무기가 개발되어 용기와 체력으로 승부하던 스파르타 인들의 전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던 것일까요 ? 


한 나라가 쇠락하는데는 사실 한두 가지의 이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교과서에는 '그리스 도시 국가 간의 반목으로 인한 잦은 전쟁과 그에 따른 국력 고갈'을 이야기하지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면 그 전부터도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해왔던 것이 스파르타입니다.  또,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난다고, 스파르타와 전쟁을 하던 다른 도시 국가들, 즉 아테네나 테베, 아르고스 등도 전쟁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스파르타가 결정적인 패배를 맛 본 BC. 371년, 레욱트라 (Leuctra) 전투의 상대는 테베 (Thebes) 군이었는데, 물론 테베 군의 지휘관이 당대의 군사 천재인 에파미논다스(Epaminondas) 이긴 했습니다만, 스파르타 군은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스파르타 군이 그리스 최강을 자랑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항상 이기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스파르타 군의 숫자가 더 많거나 적과 대등할 경우에는 항상 승리했었습니다.  또한, 스파르타의 엄격한 법에 따라, 전투에서 등을 보이고 도주하는 자는 모두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스파르타 군이 보기 흉하게 패퇴하여 방패를 버리고 도주하는 경우는 절대 없었는데, 이 전투에서 스파르타 군은 전사한 자신들의 왕 클레옴브로투스(Cleombrotus)의 시신을 내버려두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치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스파르타는 워낙 시민의 수가 적었으므로, 이들을 다 처형할 경우 국가가 끝장 났으므로 이 도망자 처형에 대한 법률을 시행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레욱트라 전투에서, 테베의 제갈공명 에파미논다스는 당시 그리스 중장 보병 전술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 사선 방식의 전열을 이용하여 더 적은 병력으로도 무적이라는 스파르타 군을 격파해내는 기염을 토합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는 또다른 비밀이 있었지요.) 




영화 300을 찍었던 테르모필라에 전투와 이 레욱트라 전투 사이의 불과 100년 사이에, 스파르타에 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길래 이렇게 되었을까요 ?


일단 학자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파르타의 인구 감소입니다.  가령 BC. 479년, 플라타에아 (Plataea)로 진격했던 스파르타 인들의 수는 약 5천명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사'를 썼던 헤로도투스의 계산에 따르면, 당시 전체 스파르타의 성인 남자 인구는 8천 정도였지요.  그러나 100년 뒤 레욱트라 전투에서의 스파르타 인들의 숫자는 '영웅전'으로 유명한 플루타르코스 (Plutarchos)에 의하면 고작 700명에 불과했습니다.  동시대 역사가인 크세노폰(Xenophon)의 계산에 따르면 약 1천명 수준이었지요.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파르타는 인구 부족으로 망했다'라고 말할 정도였지요.




(제가 중고등학교 때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읽고 흠뻑 빠져서, 소년 보수가 되었더랬지요. 아마 당시에도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저는 아마 일베의 열성회원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스파르타 인구가 그렇게 급격히 줄어든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사이에 전쟁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불과 100년 사이에 인구가 거의 1/8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흑사병이 돌아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스파르타처럼 '건강한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일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적어도 스파르타에서는 사교육비가 많이 들지 않았으니까, 국민들이 아이 낳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었지요.  대체 스파르타에 뭐 운석이 떨어졌거나 조류 독감이라도 번진 것이었을까요 ?


실은 운석이나 조류 독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외부로부터 스파르타에 들어오긴 했습니다.  바로 돈이었습니다.





(특히 페르시아의 다릭 Daric 금화가 그리스 전체를 망하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300만 보면 최후의 승자가 그리스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체적인 그림을 놓고 보면 결국 페르시아가 전체 그리스를 쥐고 놀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마케도니아에게 둘다 망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래 스파르타 인들은 100% 백수에 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사실 이 점은 제가 존경하는 신필 김용 선생의 무협지와도 상통하는 내용입니다.  대체 무림의 고수들은 직업도 없는데 어디서 돈이 나서 먹고 마시고 하는 걸까요 ?  아무리 스파르타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았다고 해도, 매일 먹는 보리 빵이나 검은 국, 영화 300 찍을 때 입었던 빤스 같은 것들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누군가는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활동을 전담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헬로트 (helot)라고 불렀습니다.




(이놈의 세상은 동화나 무협지가 아닌지라, 누군가 영웅 놀이를 하자면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고된 노동을 해서 그들을 먹여살려야 합니다.)




원래 스파르타 인들은 마케도니아 쪽에서 내려온 도리아(Doria) 인이었고, 헬로트들은 라코니아 (Laconia) 지방에 살던 원주민이었습니다.  이 원주민들은 메세니아 (Messenia)라는 국가를 이루어 살고 있었는데, 결국 스파르타 인들에게 패배하고 그들의 노예...라기보다는 농노 같은 예속 신분이 되었습니다.  리쿠르구스의 개혁 때, 이들의 토지는 9천개의 일정한 크기로 분할되어 순수 스파르타 시민들, 즉 Spartiates들에게 주어졌고, 그 토지 (이런 영지를 kleros라고 불렀습니다)에서 헬로트들이 농사를 지어다 바치는 것이 스파르타 인들의 경제적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에는 이렇게 순수 시민권자들, 즉 Spartiates과 그 농노인 헬로트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스파르타 주변에는 100여개 마을이 있었고, 여기에는 자유민들, 즉 Perioekoi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도 순수 스파르타 시민들처럼 도리아 인이었는데, 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엄격한 스파르타 식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경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이 페리오이코이들은 비록 순수 시민권자는 아니더라도, 전장에 나갈 때는 스파르타 군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원래 페르시아 전쟁 때까지만 해도 스파르티아테스들과 페리오이코이는 각각 서로 다른 부대로 편성되어 싸웠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는 이미 하나의 부대 속에 서로 섞여 전우로서 싸웠지요.  전에 언급했던 스파르타 출신 용병 대장 클레아르쿠스(Clearchus)도 사실 스파르티아테스 출신이 아니라 페리오이코이 출신이었습니다. 




(클레아르쿠스에 대해서는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Ananbasis) 에 자세히 나옵니다.  저도 저 펭귄 클래식으로 읽었습니다.)




이들의 경제 생활의 기초 구조는 평등주의였습니다.  원래 스파르타의 성인 시민들을 부를 때 "homoioi"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같은 신분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즉, 모든 성인 스파르타 시민은 경제적으로 평등해야 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크기의 영지를 가지고 있었고,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었고, 또 특별히 부를 모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금씩 빈부의 차이가 있기는 했습니다.  가령 어떤 가난한 집안의 스파르타 소녀가 시집을 갈 때, '지참금으로 무엇을 가져가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제 아버지의 상식'이라는 대답을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스파르타 시민들 사이에서도 빈부의 차이가 있기는 했다는 것입니다.


스파르타 인들은 철학적으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물질적 부에 대해서 초연할 수 있었을까요 ?  글쎄요, 확실한 것은 다른 도시 국가의 화려한 생활로부터 격리되었다는 점이 스파르타 인들의 검소함의 큰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북한 사람들과 스파르타 인들이 닮은 점 중 하나가,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뭔가 임무를 부여받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면, 국경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용맹함과 고결함으로 칭송이 자자했던 스파르타 인들도, 소수 인원끼리 해외로 나오기만 하면 흥청망청 향락에 빠져서 나라 망신을 시키는 경우가 아주 흔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시적, 개인적인 일이라서 스파르타의 근간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조금씩 스파르타 인들을 오염시키던 외국의 돈이 스파르타로 물밀 듯이 몰려들게 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었습니다.




(당연히 이것도 읽었지요.  정말 재미있었는데, 다만 자주 나오는 연설 부분들이 너무 길더군요.  이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대중 선동정치가, 즉 데마고그(demagogue)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상태였고, 투키디데스도 그런 민회에서 투표 결과 추방당한 몸이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으로 씌여져 있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 보수파였던 것은 다 그리스 로마 고전을 탐독한 덕분이었어요.)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시다시피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그리스의 패권을 두고 벌인 전쟁인데, 전쟁의 양상은 다소 바보스럽게 보일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강력한 육군을 가진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동맹군들을 이끌고 아테네로 쳐들어가면, 아테네는 강력한 성벽 뒤에 숨어서 응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워낙 고대라서, 충차나 운제 같은 공성용 병기도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이렇게 농성하는 아테네 군을 공략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스파르타 및 그 동맹군이 이렇게 허송세월하는 동안, 아테네 군은 강력한 해군력을 이용하여, 바다를 통해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해안, 즉 스파르타의 앞마당에 상륙하여 여기저기를 불지르고 파괴했습니다.  스파르타 인들은 몰라도 그 동맹군들은 원래 직업이 대부분 농부였으므로, 농번기가 되면 결국 군대를 철수시켜야 했지요. 




(이 지도가 보여주는 양상이 초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아테네와 그 외항인 피라에우스 항구 사이의 긴 회랑은 긴 장벽으로 완전 요새화되어 있어서, 제해권이 없다면 아테네를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아테네의 곡물 수입로인 헬레스폰트 해협, 즉 현재의 이스탄불이 있는 터키 지방의 확보가 매우 중요했지요.  그래서 전쟁은 그쪽 지방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




이런 식으로 몇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자, 스파르타도 아테네를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결국 해군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산층 집안의 시민들이 각자의 갑옷과 방패 등 무장은 물론, 먹을 것까지 각자 부담했던 육군과는 달리, 해군은 돈이 무진장 많이 들어갔습니다.  아테네는 인근에서 개발된 은광을 이용하여 당시의 주력 군함인 3단 노선(trireme)들을 많이 건조했지만, 일부 부자들이 돈을 내어 개인 부담으로 건조된 군함들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이런 3단 노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많은 노젓는 노수들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노수들은 아테네의 경우 가진 것이 없어서 중장 보병 (hoplites)으로서의 무장을 갖출 수 없는 빈민들이 주로 맡다가, 나중에는 용병으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이들에게는 모두 적게나마 급료가 주어져야 했습니다.  또 거친 바다에 나가면 노나 밧줄 등의 소모품도 무척 많이 필요했습니다.  한마디로, 스파르타의 경제력으로는 도저히 해군 건설이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그리스의 주력 군함이던 3단 노선 trireme의 구조입니다.  선체 크기에 비해 승무원 수가 너무 많았으므로, 밤에 잘 때나 식사할 때는 바닷가에 정박해야 했고, 또 선체가 가벼워야 했으므로 그만큼 선체 강도가 약하여, 먼 바다를 항해할 때는 사용하기가 곤란했습니다.)




결국 스파르타는 동맹국들로부터 강제로 분담금을 거두어 해군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분담금을 거두고 필요한 자재를 구매하고, 노수들을 고용하고 급료를 지불하는 행위는 사실 스파르타 인들에게는 그다지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과정에서 많은 스파르타 인이 부패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특히 펠로폰네소스 전쟁 동안, 스파르타는 그리스 각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을 지휘 감독하기 위해 '장군' 1명씩을 여기저기로 파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현지에서 뇌물을 받아먹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스파르타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었지요.  특히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대전환점이었던,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군을 궤멸시킨 시라쿠사 공방전의 총지휘관이었던 스파르타 인 길리푸스 (Gylippus) 같은 거물급조차도, 동맹국에서 스파르타 본국으로 은화 궤짝을 호송하다가 일부를 착복한 것이 들통나서 외국으로 도주하는 신세가 되고 말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30년 묵은 전쟁을 끝낸 스파르타의 명장이자 정치가인 리산드로스의 두상입니다.)




이런 부패는 그나마 작은 문제에 속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돈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눈을 뜨게 된 스파르타 인들이 부의 축적에 나선 것이 스파르타의 몰락을 부추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록 작은 빈부 차이는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스파르타 인들은 모두 평등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파르타에 돈 바람이 불면서 결국에는 리쿠르구스 시절부터 내려온 영지(kleros)를 팔아치우는 시민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원래 인간은 평등하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사람들마다 재주와 능력치가 달라서,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재주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소수인들에게 스파르타의 전통적인 영지가 집중되는 것은 한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영지를 팔아치운 사람들이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영지를 팔아치운 대부분의 시민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몰락한 시민들은 공동 식사 (syssitia)에 필요한 자기 몫의 비용조차 낼 수가 없었고, 또 자신의 아이를 공동 교육 (agoge) 시키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낼 수 없었습니다.  이는 곧바로 시민권을 가진 순수 스파르타 인, 즉 Spartiates의 지위를 잃는 것을 뜻했습니다.   즉, 스파르타에 전례없던 빈부 격차가 생기면서 스파르타의 전통적 시민 제도가 무너져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군의 기본 구성 요소는 이 중장보병 hoplites였습니다.  이런 중장보병의 무장은 모두 자비로 마련해야 했는데,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었으므로 오직 중산층만이 이런 무장을 감당할 수 있었고, 한 도시 국가의 국력은 도시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이렇게 스스로 중장보병의 무장을 갖출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산층이 몰락하여 빈민이 되었다면, 그만큼 도시가 약해졌다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몰락한 시민들이 어떤 지위를 가졌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도 자유인, 즉 페리오이코이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렇게 경제적으로 쇠락하여 시민권을 잃은 자들은 자신의 조국 스파르타에 대해 무척이나 분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원래 스파르타에는 웅장한 성벽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누군가 도시 방어에 대해 묻자, 스파르타의 전설적인 입법가인 리쿠르구스가 '벽돌로 쌓은 벽보다 사람으로 쌓은 벽이 더 튼튼하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어떤 아테네 인이 스파르타 인을 놀리며 '우리들은 에리다노스 (Eridanos, 아테네 인근의 강) 강가에서 너희들을 여러번 무찔렀다' 라고 말하자, 그 스파르타 인은 묵묵히 이렇게 대꾸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에우로타스 (Eurotas, 스파르타 인근의 강) 강가에서 너희들을 무찌른 적이 한번도 없군.'  


또, 리쿠르구스는 방어 전략을 묻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난하게 살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지 말라."


이는 스파르타의 안보에 있어, 경제적 평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가르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손들이 돈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요.



 


(리쿠르구스의 법제가 꼭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요.  어차피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거치면서 리쿠르구스 체제의 한계가 보였기 때문에 스파르타도 어쩔 수 없이 변화한 것입니다.  사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스파르타의 승리로 돌아간 것은 알고 보면 결국 페르시아가 스파르타를 금전적으로 후원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체제가 우수했기 때문이 아니지요.  그 한계는 결국 나중에 '안탈키다스의 평화'라는,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에게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 도시들을 팔아넘기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BC. 479년, 플라타에아 (Plataea)로 진격했던 Spartiates 5천명이 BC. 371년, 레욱트라 (Leuctra) 전투에서는 불과 7백명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스파르타의 병력은 훨씬 많았습니다.  레욱트라 전투에서, 동맹군을 합하면 스파르타 측은 무려 1만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대항하는 테베 군은 6천~7천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시민 공동체로서의 애국심이 사라진 군대는 백년 전 플라타에아 전투에 참전했던 그 스파르타 군과는 질적으로 너무나 달랐습니다.  이날의 패전 이후, 스파르타는 지속적인 쇠락을 거듭하며 평범한 시골 마을로 변모해버렸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스파르타의 패망은 레욱트라 전투의 결과 때문이 아닙니다.  레욱트라 전투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고, 그 원인은 스파르타에서 심각해진 빈부 격차였던 것입니다.


 


(당시 그리스 군 전법은 매우 단순하여, 중장보병의 밀집 대형, 즉 phalanx들끼리의 충돌에서 어느 쪽이 체력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더 우세한가를 겨루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식 축구의 스크럼 싸움과 비슷했지요.)




세상에 빈부 격차가 없을 수는 없고, 또 적절한 빈부 격차는 경제에 활력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원래 보수 쪽에서 중시하는 대로 경제적 자유를 그대로 풀어놓아 두면, 반드시 빈부 격차는 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사람들의 능력은 평등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약육강식의 경제 활동 속에서도 빈부 격차를 줄이려는 어느 정도의 조치는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PS. 


위에서 언급한 에리다노스 강과 에우로타스 강 이야기처럼, 스파르타 인들은 짧고도 강렬한 경구를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이런 촌철살인의 짧은 경구를 즐겨 사용하는 것을 라코닉 (laconic, 스파르타가 있던 지방의 이름이 라코니아) 하다고 표현하지요.  가령 30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끝장 낸 스파르타의 장군 리산드로스 (Lysandros)가 아테네를 정복한 뒤 본국의 장로들 (Ephor)에게 보낸 편지에는 딱 한줄, '아테네를 정복했음'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로원에서는 '말이 너무 길다, 그냥 "정복"이라고만 썼으면 충분했을 것을' 이라고 한탄했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제 생각에, 이런 라코닉한 표현 중에 최고의 것은 스파르타의 몰락 이후에 나왔습니다.  바로 다음의 경우였지요.




(영화 알렉산더에서 발 킬머가 열연했던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입니다.  실제로도 그는 애꾸눈에 광폭한 사내였다고 하지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가 스파르타에게 항복을 요구하면서 "만약 내가 라코니아에 들어간다면 스파르타를 평지로 갈아 없애 버리겠다" 라고 협박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에 대해 스파르타 인들이 보낸 답장에는 단 한 단어, "αἴκα (If, 만약에 말이지)" 이라는 단어만 씌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읽은 필립 2세는 스파르타 정복을 포기했고,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스파르타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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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돌로레스 2019.01.03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계적 평등이 무너져 망한게 아니라 기계적 평등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걸 보여준 겁니다. 돈과 불평등 때문에 망했다면 돈과 불평등이 먼저 시작된 아테네 등이 훨씬 일찍 폭망했어야죠. 돈과 불평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운영할 수 있는 체제와 문화가 갖춰져 있냐가 핵심입니다. 서구 역사는 그런 점에서 그걸 갖추기위한 역사죠.

    • nasica 2019.01.03 2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말씀하신 바에 동의합니다. 애초에 한계가 있는 체제였고, 그 한계를 벗어나려고 하다가 급격한 적응을 못하고 망한 겁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저는 본문에 다 썼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

      '돈과 불평등 때문에 망했다면 아테네가 먼저 망했어야...' 라는 말씀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만, 당시 아테네의 빈부 격차가 확대되었다는 기록은 못 봤거든요. 원래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의 당시 풍조는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를 팔거나 새로 사들이는 것을 매우 기피했습니다. 땅을 팔면 '조상이 물려준 재산을 지키지 못했다'라며 비난받았고, 땅을 사면 '남의 집안 재산을 헐값에 빼앗는다'라고 비난받았거든요.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 있는 자기 땅을 팔자, 그는 '포세이돈보다 더 위대하다'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는데, 이유는 '바다도 삼키지 못한 땅을 한순간에 날려먹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 ㅇㅇ 2019.01.03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파르타가 망한 이유는 다른게 아니고 군국주의의 끝을 보여줘서인 것같습니다. 일본제국처럼말이죠.

    • 고로 2019.01.03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보다 북한을 더 닮았는뎅.. 아~~ 요즘은 이렇게 말하믄 적폐로 몰려 처단받는당..

    • nasica 2019.01.03 2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고로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스파르타는 독재가 아니라는 점만 빼고는 북한이지요. 군국주의 + 공산주의니까요. 북한도 어설프게 개혁개방했다가 다 망할 것이다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탈북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미 밑바닥은 다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있다고 하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듯 합니다. 북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독재지요.

    • 수비니우스 2019.01.03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북한이 일제를 따라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라는 책인데요 읽어보면 재밌습니다.

  4. 캐리비안베이의해적 2019.01.03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필하세요!

  5. 성북천 2019.01.03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항상 글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플라타에아 전투를 이끈 파우사니아스는

    스파르타의 왕이 아니라 섭정이었던 걸로 아는데

    다시 확인 부탁드립니다

    새해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nasica 2019.01.03 2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 저는 이날 이때까지 파우사니아스가 2명의 스파르타 왕 중 한명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섭정이었군요. 오늘도 댓글에서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 최홍락 2019.01.03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섭정인 파우사니아스의 손자가 스파르타 왕 파우사니아스인지라 그걸 혼동하신듯 합니다.

  6. 조르바 2019.01.03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부격차는 나쁨'

    • raa 2019.01.03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연히 좋은 게 아니죠. 빌게이츠와 워렌버핏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는게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래야 세상이 좋은 쪽으로 간다는 걸 알 정도의 머리는 있으니까 그러는 거죠. 한국에는 그 정도의 머리도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게 어이가 없습니다만.

  7. raa 2019.01.03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마도 똑같은 매커니즘으로 망할 뻔 했죠. 원로원은 그걸 막으려던 그라쿠스 형제를 죽이고 거의 백년은 죽일놈취급했고요. 역사를 아는 사람이면 납득이 잘 가는 글인데 댓글들은 원로원들 수준이 많네요.

    • nasica 2019.01.03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나 댓글 다신 분들이나 결국 다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표현이 다를 뿐이지요. 어느 누구도 '지나친 빈부격차가 좋다' '빈부격차가 제법 벌어져야 나라다운 나라지' 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모두가 경제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도 없으리라 믿습니다.

  8. 유애경 2019.01.04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에 말이지' ...스파르타의 포스가 느껴진다고 해야하나,스파르타답다 싶네요!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필립2세는 얼마나 그한마디에 허탈(?)했을까...! 문득,필립2세가 어깨를 휘청하는 개그를 연상했네요(웃음).
    영화는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9. 카리우스 2019.01.04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는 정말 글 쓰신 의도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매반 글에 정치색이 조금씩 있어도 개인의견이니 그러려니하고 넘어갔습니다만 오늘은 좀 과격하신것 같네요 북한 같았던 시기에는 강대국이었는데 돈이 흘러 들어왔더니 망했다 이겁니까?

    • 아니..... 2019.01.04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파르타의 초기형태는 스파르타 시민과 페리오이코이 사이의 빈부격차가 많이 안 났다는거죠. 그게 북한처럼 다 가난해서 그런거구요. 반대로 아테나처럼 모두가 부유해도 빈부격차가 크게 나면 스파르타처럼 강대국이었습니다. 근데 스파르타에 자본이 갑자기 몰리면서 자본 컨트롤을 실패했고 그에 따른 급격한 빈부격차로 망했다는 겁니다. 여기 누구도 북한쪽에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 nasica 2019.01.04 2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리우스님께서 "빈부격차가 큰 것이 국가 안보에 유리합니다"라고 댓글을 쓰신 것이 아니듯이 저도 "공산주의 군국주의가 좋은 것이다"라고 쓴 것이 아닙니다. 바쁘셔서 그러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많은 분들은 글을 찬찬히 읽지 않으시고 띄엄띄엄 힐끗 본 뒤 자신만의 틀로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글의 취지는 "지나친 빈부격차는 국가안보에도 좋지 않다"입니다. 아마 거기에 반대하시는 분은 없으시리라 생각합니다.

  10. 소화 2019.01.04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독 이신 분들이 많으네요...

    글쓰신 의도를 모르고 이렇게 편협하고 좁은 사고를 가진,

    자칭 보수 우익 들이 많을 줄 첨알았습니다...

    스파르타가 이래서 망했다는 글쓴이의 의견만 있습니다.

    어디에도 경제적 평등, 기계적 평등, 공산 주의, 이런 것들이 좋다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갈등이 야기 된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내용이니 줉이자는 것이지.
    기계적 평등을 하자는 내용은 없습니다.

    글내용을 잘 읽어보면, 기계적평등, 강제적평등은 언젠가는 망한다 입니다...
    공산주의 찬양글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유 한국당은 보수 우파가 아니라, 독재 잔당 입니다...

  11. Spitfire 2019.01.04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부격차를 줄이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있다면 정말 그 논리를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문제는 과연 어떻게 빈부격차를 줄일 것인가 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현 정부가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말 왠만한 방법은 다 써본 것 같은데, 오히려 빈부격차가 더 커지는 문제가 생겼지요. 정책을 탓하는게 아니라, 해결방법을 찾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일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저의 생각으로는 빈부격차 문제의 초점을 분배와 최빈층에만 두지 말고, 중산층을 육성하는데 좀 더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최하위와 최상위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최하위의 부는 0에 수렴하는데 최상위의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요..), 그나마 중산층이라도 두터워지면 여러가지 이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세금으로 지원할 빈곤층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니 그들에 대한 복지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납세자의 숫자와 납세규모가 늘어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부자들한테서만 세금을 거둬서 해결한다는 비난도 잠재울 수 있구요. '너네만 세금내는거 아냐~' 이렇게요. 셋째는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할 수 있어 정치적 안정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일단 소득이 있고 납세를 하면 사회에 대한 책임감도 가지게 될 것이고, 무작정 정부를 비난하는 수도 줄어들테지요. 부수효과로 '평생지지자'도 만들 수 있을지두요~

    이렇게 중산층을 늘리는 방법은 경제성장밖에는 없습니다. 일단 먹을 게 많아져야 육성도 되고 나눠먹을 거리도 생기는 거니까요. 성장에 중점을 두면 분배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을 수 있는데, 이건 제도적으로 해결할 방법 밖에 없습니다. 불법 편법을 저지르는 애들은 다시는 사회에 발을 못붙이게 엄벌하고 공정한 경쟁을 하려는 이들이 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를 구축한다면 지금처럼 빈부차이에 대한 불만과 부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좀 누그러들지 않을까 합니다. 분배라는게 일률적으로 동등한 분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능력에 따라 노력한 만큼 합당한 결과물을 받는 것이니, 빈부격차 해소에 대한 논쟁도 좀 수그러 들 수 있을거 같구요.

    성공사례로 미국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미국 인구의 90%는 한국의 중산층보다 절대 잘산다고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빈부격차는 당연히 어마어마 하구요~ 하지만 미국은 자본주의의 제도가 잘 확립되어 있고 중산층이 튼튼하다보니, 우리나라보다는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이나 부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그리 크지는 않지요. 그러니 부자들의 기부나 사회공헌도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많습니다.

    근데 이야기를 하고 보니 현실적으로 과연 우리가 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긴 합니다. 얼마전에 중국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중국인들도 요즘 빈부격차에 분노하고 부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중국인들과 이야기할수록 한국과 중국의 제도나 사람들의 생각이 정말 유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어쩌면 우리가 이 모양인건 그냥 아시아 종특일지도 모르겠습니다..ㅠㅠ

  12. ㅇㅇ 2019.01.04 2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빈부 격차를 어떻게 '자연스러운,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그 사회의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파르타는 너무나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방식으로 빈부격차를 자연스러운 수준 이하로 두려고 하다보니
    사회의 역량을 키울 시기를 놓쳐버렸고 (덤으로 경제, 기술의 발전까지 놓쳐야했고) 그러다보니 약한 외부 충격에도 뻥 터져버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걸 현재 사회에 적용하려고 한다면 지금 상황이 너무 과한 빈부격차를 허락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고
    반대로 지금 너무 강압적으로 억제하려는 움직임이 많은데 역효과를 낸다고 볼 수도 있겠죠

    스파르타는 양쪽의 예시가 다 될 수 있는 사례인거 같습니다

  13. 알타리무 2019.01.06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보편복지라던지 사회주의적 방법이 빈부격차를 감소시키는것이 아닙니다. 문재인정부들어서 빈부격차는 도리어 확대되었지요. 사회주의체제가 심화되면 시장의 역동성이 사라져 스태크플례이션이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심해지지요.
    다시말하지만 문재인 정부보세요. 강남좌파들은 남들 평생벌돈 한번에 벌고, 수많은 영세자영업자들과 저임금 노동자는 망해서 절대빈민층으로 몰락했지 않습니까?
    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유시장은 빈부격차를 확대시킨다는 믿음을 고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리어 역사는 자유시장이 아닐때 빈부격차가 훨씬 심화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 ㅇㅇ 2019.01.14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항상 댓글을 남기지만, 정말 글을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기계적 분배인 사회주의를 옹호한적 한번없는데 혹시 말을 만들어내시는거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빈부격차와 그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고, 한번도 사회주의를 옹호한적 없는데 말이지요.
      저번도 그렇고 국어 실력이 여러모로 부족하신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정작 미국조차도 뉴딜이 자유주의에서 개입주의로 바꾸어 살아남았는데 오히려 종교적, 맹목적으로 시장자유주의가 최고야를 외치시는것 아니신지요

    • ㅇㅇ 2019.01.14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말씀에 주장만 가득하시고 근거를 제대로 대시는것을 한번 본적없군요.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시면 제 3자의 눈에서 옳든 그르든 근거와 주장을 제시하는사람과 주장만 제시하는 사람중 누가 더 신용성이 가는지 생각해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14. 카를대공 2019.01.07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혹 나시카님께서 올리신 글 읽다 예전 블로그에도 쓰셨던 글인가?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평등하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사람들마다 재주와 능력치가 달라서,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재주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는데......"

    이 문장을 읽으니 확실히 예전 글이라는 기억이 나네요.

    전 나시카님께서 무심한 듯 평범하게(?) 쓰신 문장 중에 오래 기억이 나는게 많습니다.

  15. 소화 2019.01.07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없다면.
    빈부 격차는 인정해야 한다면.
    빈부 격차에 따른 불만을 줄여야죠.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고, 어려운 일입니다.

  16. 동우 2019.01.09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빈부격차 때문에 스파르타가 망한건 부수적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유는 과거에는 영웅놀이하는 친구들만(소수 시민)으로도 충격을 견딜수 있지만, 썩은부분이 펠로포네스 전쟁의 충격으로 무너진거죠 . 겉보기에는 단단한 요새지만 안에서는 이미 금이 다간 성벽인데 총력전의 충격으로 붕괴된거죠. (물론 스파르타도 계급타파 등의 노력만으로 이미 시대착오적인 구조가 바뀌진않죠.)
    결론적으로 이미 스파르타는 체제적인 한계로 망조인데 펠로포네스가 결정타를 가하면서 생겨난 과속화 현상이 빈부격차라 생각합니다.

  17. 동경좀비 2019.01.13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코닉을 보니 8월의 포성의 한 문장이 떠오르네요.
    프랑스군 총사령관 죠프르가 라코닉 한 문장으로 공격을 요청하자, 대영제국대륙원정군 사령관 프렌치는 루크웜(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둘다 귀족적인 성격이라 통역장교없이 글로 작전회의를 했다고 하네요.

  18. 윌라엄 2019.01.17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봤어요. 감사합니다.

  19. 만슈타인 2019.01.31 0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신념은 보수지만 마음에 와 닿는 말이 많네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b

  20. 민주시민 2019.02.13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빈부격차를 확대시키는 소득주도성장은 폐기해야만 하겠죠.. 한국이 북한보다 더 비참한 스파르타가 되고 결국엔 외세의 자금력에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21. shaind 2019.04.17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명높은 스파르타빠 크세노폰이 이미 펠로폰네소스 전쟁 무렵에 "앞으로도 라케다이몬이 패권자 지위를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이제 그들은 신에게도, 리쿠르고스 법에도 복종하지 않으니까"라는 말을 남겼죠.

    아리스토텔레스도 라케다이몬의 몰락은 중장보병 유산시민계급의 급감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의 분석은 리쿠르고스 법이 시민 토지재산의 매매는 금지했지만 상속, 유증, 양도는 막지 못해서 점점 부가 집중됐다고 쓰더군요. 근데 제가 보기에도 그런 문제보다는 펠로폰네소스 맹주 자리에서 부가 흘러들어온 게 더 큰 문제같긴 하네요.

2018.12.31 06:30

저는 신입사원 기본 교육을 싱가폴에서 싱가폴 강사에게서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협상에 대한 내용도 있었는데, 거기서 당시로서는 굉장히 인상적인 강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여성 강사분이 가르치려던 것은 협상을 위해서는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스토리 라인을 아래와 전개하더라고요.


"내가 학생 시절에 내 여동생과 냉장고에 하나 밖에 안 남아 있던 오렌지를 두고 서로 다툰 적이 있었다.  한참을 싸우고 난 뒤에야 알았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오렌지로 쥬스를 만들어 마시려는 것이었는데 동생은 오렌지 껍질로 마멀레이드를 만드려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서로 싸울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제 기억으로는 저는 그때 이미 마멀레이드가 뭔지는 대충 알고 있었고 (그것도 카투사 복무 중에였던가...?) 먹어본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때 그 강사의 말이 실제로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감탄했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강사의 스토리 라인은 엉터리였습니다.  저 이야기는 물론 강사의 실제 경험담이 아니라 흔히 써먹는 그런 협상 교육의 픽션일 뿐인데다, 마멀레이드에 분명히 오렌지 껍질이 조금 들어가긴 합니다만 주재료는 바로 오렌지 쥬스거든요.  그러니까 언니와 동생은 죽어라고 서로 싸울 운명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이 글은 전에 이케아에서 사온 스웨덴제 마멀레이드 병을 새로 오픈한 기념으로 쓰는 것입니다.  주성분은 보시다시피 오렌지 주스입니다.) 




미국에서는 과육을 통째로 갈아서 만든 것을 잼(jam)이라고 부르고 과즙, 그러니까 쥬스만을 이용해 만든 것을 젤리(jelly)라고 구분해서 부릅니다.  미국 애들이 간단한 점심 식사로 애용하는 PBJ라는 것도 땅콩버터와 젤리(peanut butter & jelly sandwich) 샌드위치이지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는 아닌거지요.  그러나 그렇게 깐깐하게 구분하는 경우는 미국 내에서도 그다지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국 등 미국 외 지역에서는 그냥 다 잼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도 젤리는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뜻인 물컹물컹한 디저트용 과일 젤(gel) 가공식품을 말한다고 합니다.




(PBJ sandwich라는 단어로 이미지 검색을 하다 찾은 사진인데, 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로 점심 때우는 것이 사실 건강에도 그렇게 해롭지는 않고 돈 절약에 매우 좋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물론 정반대로, 잼 바른 빵이야말로 건강에 매우 나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우습게도, 이 젤리(jelly)라는 말 자체는 다른 모든 좋은 것들처럼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프랑스어로 과즙이나 육수 등이 굳은 것을 젤레(gelée, 거의 쥴레 정도로 발음이 됩니다)라고 하는데, 이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거든요.  반면에 잼(jam)이라는 것은 교통 체증이라는 뜻의 traffic jam 처럼 '막힌다'라는 뜻이 원래 뜻이었는데, 나중에 진득진득하게 굳힌 과일 잼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답니다.  잼은 병을 거꾸로 들어도 잘 흘러나오지 않아서 그런 단어로 쓰이게 되었나 봐요.  정작 영국에 과일 잼이라는 신상품을 전달해준 프랑스에서는 젤리든 잼이든 꽁피튀르(confiture)라고 부릅니다.  심지어는 오늘의 주제인 마멀레이드도 프랑스에서는 그냥 꽁피튀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고, 굳이 구별하여 la marmelade d'oranges (마르멀라드 도랑쥐)라고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는 정도랍니다.


마멀레이드는 과일로 만든 잼 중에서도 다소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잼입니다.  싱가폴 강사가 오해할 정도로 (또는 어리숙하게도 제가 속을 정도로) 다른 잼과는 달리 과일 껍질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과나 복숭아 등은 껍질째 먹기도 하지만 오렌지는 껍질이 두꺼운데다 쓰고 텁텁한 맛이 나기 때문에 껍질을 절대 먹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런 몹쓸 껍질을 잼 속에 넣었을까요 ?  




(수동 마멀레이드 기계입니다.  정확하게는 오렌지 껍질을 잘게 써는 도구이지요.) 




이유는 펙틴(pectin) 때문에 그렇답니다.  위에서 잼과 젤리를 구분해서 말씀드렸는데, 잼은 그냥 과일을 통째로 으깨서 설탕을 넣고 끓이면 대충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사과 주스에 설탕을 넣고 끓이면 사과 젤리가 만들어질까요 ?  저는 직접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안 만들어진답니다 !  그냥 엄청나게 진하고 단 가당 사과 주스가 되어버린다네요.  잼처럼 젤라틴 형태로 만들어지려면 펙틴(pectin)이라는 성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주로 과일 껍질 속에 많은 물질입니다.  그러니 우아하고 깔끔하게 과육 찌꺼기는 다 걸러내고 주스만 뽑아서 젤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공으로 만든 펙틴을 따로 집어넣어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오렌지 마멀레이드는 인공 펙틴 따위가 없던 17세기 후반에 이미 존재했던 물건입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  바로 오렌지 껍질 덕분입니다.  누가 맨처음에 오렌지 껍질을 잘게 썰어 넣으면 마멀레이드가 젤라틴처럼 응고된다는 것을 발견했는지는 기록에 없지만, 아무튼 그 이름 모를 천재 덕분에 오늘날의 마멀레이드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마멀레이드에는 다른 잼과는 다른 점이 또 있습니다.  그것도 바로 그 껍질 때문이기는 한데, 바로 약간 쓴 맛이 난다는 것이지요.  예전에 TV에서 외화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 드라마에서 봤던 내용 중에 마멀레이드가 연관된 독살 장면이 있었습니다.  어떤 가정집에서 독극물에 의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사용된 독극물은 원래 약간 쓴 맛이 나는 물질이라서, 피살자가 의심하지 않고 먹게 하기 위해 독극물을 아침식사에 나오는 커피나 홍차, 마멀레이드 등과 같이 약간 쓴 맛이 나는 식품 속에 넣었을 것이라고 추리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그 독극물은 마멀레이드에 들어있었고요.  




(찾아보니 그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물 원작은 A Pocket Full of Rye 라는 작품이었네요.)




마멀레이드가 나오는 그 추리 소설 장면에서 드는 생각 중 첫번째 것은 의외로 많은 기호식품에서 쓴 맛이 난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커피, 차, 마멀레이드는 물론 초콜렛에서도 약간 씁쓸한 맛이 나지요.  보통 사람들이 쓴 맛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의외로 쓴 맛이 우아한 맛을 내는데 꼭 필요한 모양입니다.  물론 그 쓴 맛을 그대로 즐기는 사람보다는 그 쓴 맛을 엄청난 설탕과 우유 등으로 중화시켜서 즐기는 분들이 훨씬 많지요.  


두번째 생각할 부분은 왜 마멀레이드를 비롯한 과일 잼은 꼭 아침식사에만 나오느냐 하는 점입니다.  전에 (그때는 국내의 어떤 고급 콘도에서 진행된 교육이었는데) 회사 교육 때 강사를 하시던 어떤 노년의 컨설턴트분과 점심 식사 테이블에 같이 앉은 적이 있었습니다.  양식으로 제공된 그 점심에서 롤빵과 함께 1회용으로 포장된 딸기잼도 함께 나왔었습니다.  그걸 보고 그 강사분이 '원래 과일 잼은 아침에만 나오는 것이며 점심이나 저녁에는 잼 대신 버터가 나와야 하는데 이 식당 매니저는 양식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혀를 차시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실제로 저도 해외 호텔에서 식사를 할 때 점심이나 저녁 식사에 과일 잼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제 긴 카투사 생활 중에도 없었고요.  점심이나 저녁에 유일하게 나오는 잼은 디저트로 나오는 패스트리에 이미 잔뜩 채워진 잼 정도였지요.  




(전에 파리에 가족 여행 갔을 때 먹었던 호텔 조식... 호텔 부페 식당에서 저렇게 작은 잼 병이 제공되는 것은 조식 뿐이더라고요.)




저는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딱히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 짐작에는 서양인들이 과일을 의외로 많이 먹지 않으며 과일을 먹더라도 주로 아침식사에만 먹더라는 것과 상관있는 것 같습니다.  제 카투사 복무 중에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과일은 아침식사 때만 나왔고 점심 저녁에는 따로 과일이 나오지는 않았거든요.  잼이든 젤리든 원래 시작은 빵에 발라먹기 위한 버터 대용이라기보다는 과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과일 대신 또는 과일과 함께 아침 식사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마멀레이드 등 과일 잼을 아침에만 먹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령 루이 14세 같은 경우 정찬을 들 때 마지막 디저트로 마멀레이드를 먹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빵에 발라 먹는 것이 아니라 은접시에 담아온 것을 푸딩처럼 은스푼으로 떠먹는 형태였지요.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먹던 마멀레이드를 아침식사에 먹기 시작한 것은 스코틀랜드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습관은 곧 영국으로 전파되어, 19세기에는 영국인들도 아침에 마멀레이드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여류 작가인 루이자 알콧(Louisa May Alcott)이 1800년대에 영국을 방문했을 때 기록한 글에서, 마멀레이드와 차가운 햄 한 조각이 영국식 아침식사의 필수품이라고 적었을 정도니까요.


마멀레이드 이야기를 하는데 난데없이 스코틀랜드가 주요 역할을 하는 나라로 나오니까 약간 의아하실 것입니다.  따뜻한 지방에서 열리는 오렌지로 만드는 마멀레이드는 춥고 척박한 스코틀랜드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마멀레이드의 역사에서 실제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원래 마멀레이드는 좀더 뻑뻑하고 시커먼 색깔을 띤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스코틀랜드에 가면서 만들 때 좀 더 물 함량을 늘려 오늘날처럼 빵에 쉽게 발라먹을 수 있는 밝은 오렌지색의 스프레드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에 마멀레이드를 전파한 사람은 16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1세(Mary Stuart, Mary I of Scotland)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메리는 귀국할 때 마멀레이드를 들고 왔다고 전해지는데, 일부 사람들은 마멀레이드라는 이름 자체가 메리 1세 때문에 생겼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메리는 머리가 아플 때마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마멀레이드를 먹었는데, '메리가 아프다'라는 "Mary is sick"이라는 영어 문장이 프랑스어로는 "Marie est malade"라고 되거든요.   그래서 프랑스어를 쓰는 시녀가 뭔가 우아하게 "Marie est malade" (마리 에 말라드)라고 혼잣말을 하며 신기한 과일 잼 단지를 들고가는 것을 본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그 과일 잼을 '마멀레이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지요.




(미모로 유명했다는 메리 1세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여왕은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암살 모의 혐의로 목이 잘렸습니다.)




무척 재미있고 그럴싸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마멀레이드라는 이름은 메리 여왕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포르투갈어 marmelada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서양모과(영어로는 quince)를 포르투갈어로는 marmelo(마르멜루)라고 하는데, 이걸 꿀에 절여서 잼으로 만든 서양모과 잼을 marmelada라고 합니다.  원래 마멀레이드는 꼭 오렌지로 만든 잼만을 뜻하지는 않고 모든 과일 잼을 부르는 이름이었는데, 저로서는 이해가 안 가지만 서양모과 잼은 가장 오래된 잼으로서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거든요.  그리스어로는 서양모과를 melímēlon(꿀 + 사과)으로 불렀는데, 원래 서양모과는 과육이 너무 단단하고 떫은 맛이 나서 그대로는 못 먹고 꿀에 절여서 부드럽게 해서 먹었다고 합니다.  







Source : https://life.spectator.co.uk/2016/10/jam-beautifully-preserved-history/

https://en.wikipedia.org/wiki/Fruit_preserves

https://en.wikipedia.org/wiki/Marmalade

https://www.dailymail.co.uk/femail/food/article-3746934/The-foods-NEVER-eat-breakfast.html

https://en.wikipedia.org/wiki/Orange_(fruit)

http://www.nyu.edu/classes/bkg/forklore/archives/2005/03/marmalade_redux.html

https://www.quora.com/Why-does-all-marmalade-have-orange-peel-in-it-Where-can-I-find-a-marmalade-without-orange-peel

https://en.wikipedia.org/wiki/A_Pocket_Full_of_Rye

https://moneysavingmom.com/2012/04/if-you-want-something-badly-enough-you-can-usually-find-a-way.html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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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8.12.31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해외여행은 가본 적이 없어 양식은 아침에만 잼이 나오는 것도 몰랐네요. 이건 북유럽, 남부유럽, 동유럽 가릴 것 없이 똑같은건가요? 지역에 따라 다른건지 좀 궁금하네요.

    올 한 해도 여러 볼거리, 읽을거리 챙겨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nasica 2018.12.31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설마 그런 소소한 관습들이 항상 지켜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가령 이탈리아에서 오후에 카푸치노를 시킨다고 설마 진짜 야만인 취급 당하겠습니까 ? 새해에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 상큼한딸기 2018.12.31 14: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보고갑니당!! 제블로그도 방문해주세요!

  3. d 2018.12.31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 옛날 소설이나 유명인들의 자서전 보면 뭔가 어른들이 애들한테 좋은 걸 먹이고 싶을때
    빵에 젤리를 얹어준다고 하는 게 종종 보였는데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먹는 식빵위에 마이구미나 왕꿈틀이 같은 식감을 가진 젤리를 얹어먹는구나 생각했죠..
    취향한번 기괴하네 이러면서 ㅋㅋ

  4. 밥동뎅 2018.12.31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볼때마다 탄복합니다.
    새로운 사실 알게 되어 또한 기분이 좋네요.
    어떻게 이런 지식을 찾아서 글도
    재밌게 쓰시는지..실제로 뵙고싶네요.
    나시카님.ㅎㅎ
    새해에도 항상 좋은일만 있으시고
    이런 멋진글 부탁드립니다.
    해피 뉴 이얼~~^^

  5. 유애경 2019.01.01 0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수고하십니다.
    올해도 좋은 한해 되시고 건필하시길...!

  6. reinhardt100 2019.01.01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년에도 하시는 일 다 잘 되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새내기 컨설턴트로써 솔직히 부끄럽네요. 저런 내용은 전혀 몰랐습니다.

    • nasica 2019.01.01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부끄럽다니 희한한 말씀이십니다. 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모르시는 것이 열심히 일하시는데 더 좋습니다.

    • reinhardt100 2019.01.01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년에 첫 프로젝트하면서 이것저것 시뮬레이션 했는데 내일부터 사실상 정말 처음부터 제가 참여하는 프로젝트 시작입니다. 금융 및 증권분석분야에 어떻게 쓰일지 연구하면서 시작해야 하는데 생각 많이 해야 할 듯 싶습니다.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 감사드립니다. 나시카님

  7. KCH1202 2019.01.01 2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8. 오리 2019.01.02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9. TheK2017 2019.01.02 0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양식과 마멀레이드에 대한 상식을 알게 되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앞으로도 가끔 들려 많은 가르침 받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