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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크루즈에서의 레이더 이야기 (2) - 일본해군에게 레이더는 필요없다 10월 26일 새벽 3시 10분, 산타 크루즈 제도의 북쪽에서 카탈리나 비행정의 ASV 공대함 레이더에 포착된 것은 역시나 일본해군 항모 기동부대. 그러나 포착하면 뭘하나? 고질적인 무전통신 문제가 재발했는지, 이 보고는 무려 2시간 뒤인 5시 12분에야 엔터프라이즈-호넷의 항모전단에 도착. 게다가 일본 기동부대와의 레이더 접촉을 유지한 채로 그 근처에서 정찰 비행을 계속해야 했을 것 같은 그 카탈리나 비행정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접촉을 유지하지 않고 기지로 되돌아 와버림. 2시간이나 늦은 보고를 받아든 미해군은 지금쯤 일본 기동부대의 위치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므로 공격은 무의미하다고 보고 정찰기만 또 띄움. 만약 이때 무선통신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야간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일본해군은 일방적인 공.. 2024. 4. 18.
드레스덴 전투 (9) - 대포알에는 감정이 없다 바이서리츠강 서쪽에서 프랑스군의 기병대에 오스트리아군이 학살당할 때, 오스트리아군 기병대가 뛰어나오지 못한 것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단, 오스트리아군은 아직 1809년 바그람 전투의 패배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여 기병대 숫자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이 얼마 안되는 오스트리아 기병대의 주축인 리히텐슈타인(Moritz Joseph Johann Baptist von Liechtenstein)의 기병사단과 노스티츠(Johann Nepomuk von Nostitz-Rieneck)의 기병사단은 무슨 사정에서인지 상식적인 기병대의 위치인 좌익이나 우익에 있지 않고, 중앙에 배치된 오스트리아군의 뒤쪽, 그러니까 바이서리츠강의 우안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모리츠 폰 리히텐슈타인의 초상화입니다. 아우스테를리츠 .. 2024. 4. 15.
산타크루즈에서의 레이더 이야기 (1) - Eyeball Mk. I과 ASV Mk. II의 대결 1942년 10월 하순, 여전히 과달카날의 헨더슨 비행장을 둘러싼 전투는 맹렬했음. 다시 한번 미일 양국 해군은 과달카날 일대의 제해권을 놓고 격돌. 이것이 바로 산타크루즈(Santa Cruz) 해전. 일본해군에서는 정규항모 쇼가꾸, 즈이가꾸가 나왔을 뿐만 아니라 경항모 준요와 즈이호도 출동했고, 그 외 전함 4척과 순양함 10척, 기타 구축함 22척도 동반. 이에 맞서는 미해군에서는 정규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이 신형 전함 USS South Dakota (BB-57, 4만5천톤, 27노트) 1척과 순양함 6척, 구축함 4척의 다소 간촐한 항모전단을 내보냄. 이렇게 미해군 함대 전력이 딸렸던 것은 바로 전달 항모 USS Wasp가 일본해군 잠수함의 어뢰에 격침되어 버렸기 때문. (USS South Dak.. 2024. 4. 11.
드레스덴 전투 (8) - 폭우 속의 부싯돌 보헤미아 방면군이 우물쭈물하다 좋은 기회를 다 놓치고 나폴레옹이 몰고온 증원군과 불필요했던 혈투를 벌이던 8월 26일, 드레스덴 남동쪽 엘베강 상류의 피르나에서는 또다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피르나 바로 맞은 편 엘베강 우안에서 대기 중이던 방담은 나폴레옹의 지시에 따라, 드레스덴 방향에서 전투의 포성이 격렬해지자 즉각 강을 건너 피르나 점령에 나섰던 것입니다. 당시 피르나를 지키고 있던 것은 뷔르템베르크 공작 오이겐(Friedrich Eugen Carl Paul Ludwig von Württemberg)이 이끄는 1만2천의 러시아군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방담의 병력은 제1군단 거의 전체로서 약 3만5천의 대군이었습니다.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았고, 오이겐도 무의미한 혈투를 벌이기보다는 일단 후퇴.. 2024. 4. 8.
과달카날에서의 레이더 (9) - 대체 뭔 소리였지? 이 2대의 돈틀리스로부터 정확한 일본 항모의 위치 보고를 받은 엔터프라이즈는 왜 이들을 향해 폭격대를 날리지 않았을까? 요약하면 무선통신 기술의 한계 때문. 전편에서 다른 항공기들도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고 언급했지만, 당일 열대 기후의 불안정한 대기층으로 인한 무선통신 교란이 심했음. 그 때문에 그 돈틀리스들의 소중한 적항모 발견 보고는 엔터프라이즈에서도 들리기는 했으나 정확한 위치와 어느 돈틀리스가 그 보고를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음. 플렛처 제독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방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돈틀리스의 정찰 범위 안쪽 어딘가에 일본 항모가 있다는 사실 뿐. 이 두 돈틀리스들은 무전을 친 이후 곧장 폭탄 투하를 위해 목숨을 건 다이빙을 시작했고, 이후에는 제로센에게 쫓기며 죽느냐 사느냐.. 2024. 4. 4.
드레스덴 전투 (7) - 혈전 이렇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입성했으나, 나폴레옹은 그런 환대에 즐거워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숨돌릴 틈도 없이 전황 파악 및 방어태세 점검과 전투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탁상공론에 시간을 다 보낸 보헤미아 방면군 수뇌부와는 달리, 나폴레옹은 일사천리로 그 모든 것을 해냈습니다. 그는 드레스덴 방어선의 지휘는 계속 생시르가 맡도록 하고, 시 외곽에서 보헤미아 방면군과 전투를 벌일 야전군을 편성했습니다. 그가 끌고온 근위대는 그가 입성한 지 약 1시간 뒤에 줄지어 노이슈타트로 입성했는데, 그는 이들을 총 3개 부대로 편성했습니다. (8월 26일 아침, 소수의 참모들과 함께 드레스덴에 입성하는 나폴레옹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구경하는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습니다만, 사실 이건 약간 부.. 2024.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