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과 이란이 드론과 미사일을 이용하여 서로의 싸다귀를 날리며 전세계에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란의 공격은 건물만 때려부순데다 엉뚱한 민항기를 격추시키는 비극만 일으켰고, 덕분에 반정부 시위만 더 거세진 것 같습니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해서는 '대내적 선전 효과를 위해 시늉만 낸 것이고 인명 살상을 노린 것은 아니다' '이라크를 통해 미국에게 사전에 대피를 지시했다' 등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보도에는 공습 경보를 받은 미군 병사들은 모두 방공호에 대피하여 인명 피해가 없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https://www.npr.org/2020/01/08/794501068/what-we-know-irans-missile-strike-against-the-u-s-in-iraq

A Defense Department official issued a written statement Wednesday afternoon saying, "U.S. early warning systems detected the incoming ballistic missiles well in advance, providing U.S. and Coalition forces adequate time to take appropriate force protection measures."

미국방부 관리는 수요일 오후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서화된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국의 조기 경보 시스템이 날아오는 탄도 미사일을 미리 탐지하여 미군과 동맹군에게 적절한 병력 보호 조치를 취할 시간을 제공했다."

저는 그 공습 경보 관련 보도를 읽고 상당히 의아했습니다.  아무리 사전에 탐지를 한다고 해도 마하4의 속도로 약 400km를 날아오는데는 5분 정도 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발사 순간 탐지해서, (어디가 목표인지 모르니) 이라크 전역의 모든 미군에게 공습 경보를 날린다고 해도 밤에 자고 있던 병사들이 방공호로 뛰어들어갈 시간이 충분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런 레이더 탐지 외에도 뭔가 사전 정보를 받은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기사가 난 것을 보니 실제로 공격 받은 기지의 미군들은 공격받기 두 시간 전에 경고를 받고 방공호로 대피했다고 합니다.

https://news.v.daum.net/v/20200114064833958

"이란이 첫 미사일을 발사하기 두시간여 전 이라크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에 주둔한 미군들은 콘크리트 벙커로 몸을 피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가지 가설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이란이 탄도 미사일에 액체 연료를 주입하는 등 발사 준비를 하는 것을 위성 등을 이용해 탐지한 뒤 그 사거리 내에 있는 모든 미군 기지에 대피 명령을 내렸다.
2) 이라크든 이란이든 누군가를 통해 미리 언제 어느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니 미리 대피하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둘 다 가능한 이야기이긴 합니다.  다만 1번의 경우, 너무 많은 미군들이 너무 오랫동안 대피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  보통 탄도 미사일의 액체 연료는 매우 독성이 강한 부식성 물질이라서 미사일 연료 탱크 자체를 녹여버리기 때문에 일단 주입을 하면 반드시 몇 시간 안에 발사를 해야 합니다.  다만 미사일에 액체 연료를 주입한 뒤 10분 안에 발사를 할지 6시간 후에 발사를 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란이 발사대 차량을 꺼내어 액체 연료를 주입하는 시늉을 할 때마다 반경 700km 안의 모든 미군들이 방공호로 기어들어가서 몇 시간씩 밖에 나오지 못한다면 그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저는 모릅니다.

 

(이번에 이란이 쏜 미사일은 Qiam 1 같다고 합니다.  그림 출처는 https://www.army-technology.com/features/what-missiles-did-iran-use-to-attack-us-bases/ )

 



이번 일을 보면서 생각난 것이 당장 북한의 장사정포 사정거리 안에 들어있는 서울 시민들의 방공호 문제였습니다.  요즘은 최소한 북한과 당장 전쟁이 날지 모른다는 공포심은 (정치적인 좌우를 떠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무척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겁이 많아서 북한과 전쟁을 벌일 경우 저와 우리 가족이 입을 피해에 대해 생각을 깊이 하는 편이거든요.  실제로 북한과 미국이 북핵 문제로 으르렁 거릴 때 저는 집에 비상 식량도 꽤 사놓았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화해 무드가 시작되면서 그거 다 먹느라고 애 많이 썼지요.  

그런 겁장이인 제가 내린 결론은 서울 시내에 포탄이 떨어지더라도 우린 그냥 우리 아파트에 그대로 눌러앉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집 근처 방공호로 뛰어갈 생각하지 말고 그냥 욕조에 물 받아두고 침대에서 두꺼운 이불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있는 것이 제일 낫겠더라고요.  그렇게 결론을 내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1.  공습 경보가 울리더라도, 방공호까지 뛰어갈 시간이 없습니다.

민방위 훈련할 때 하는 것처럼, 공습 경보가 울리고 사람들이 질서있게 방공호로 대피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과 독일에서 행해지던 절차입니다.  그때는 프로펠러 폭격기들이 바다 건너에서 날아왔으니 충분히 경보를 울리고 대피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는 음속의 2~3배로 포탄이 날아옵니다.  발사 순간 탐지를 하더라도 1~2분 안에 포탄이 터지기 때문에 도저히 경보를 울리고 대피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방공호를 찾아가느라 도로에 나가 있는 동안에 포탄이 떨어지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차라리 그냥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의 벽을 믿고 이불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 더 낫습니다.

2.  방공호에서 오랜 시간을 버틸 수가 없습니다.

체공 시간에 한계가 있는 폭격기와는 달리 포격은 (북한 장사정포들이 파괴되지 않는 한) 저들이 원할 때까지 얼마든지 간헐적으로 계속 쏘아댈 수 있으므로, 언제까지 방공호에 머물러 있으면 되는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방공호에 들어간 시민들을 유인해내려고 한 10분 포격을 하다가 30분 동안 포격을 중단한 뒤, 시민들이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거리로 나올 때 다시 포격을 하면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방공호에 머무를 수도 없습니다.  물과 음식이 문제가 되기 전에, 좁고 불편할 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방공호에서는 3시간 이상 버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마 1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집에 가겠다고 뛰쳐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서 트럼프가 한국 지도를 보고 '서울이 왜 저렇게 휴전선에 가깝냐, 이건 아니다, 한국은 서울의 시민들을 이동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사실 꽤 그럴싸한 이야기입니다.  

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19/dec/09/trump-seoul-evacuation-north-korea-book 

 

When he was shown the bright lights of Seoul just 30 miles south of the demilitarized zone separating the two Koreas, the president asked: “Why is Seoul so close to the North Korean border?”  Trump had been repeatedly told that US freedom of action against North Korea was constrained by the fact that the regime’s artillery could demolish the South Korean capital in retaliation for any attack, inflicting mass casualties on its population of 25 million.  “They have to move,” Trump said, according to Bergen, who adds that his officials were initially unsure if the president was joking. But Trump then repeated the line. “They have to move!”

 

두 한국을 나누는 DMZ 남쪽 바로 30마일 아래에 밝은 서울시의 불빛이 있는 야간 위성 사진을 보고는 대통령은 물었다.  "서울이 북한과의 국경에 왜 저렇게 가깝게 붙어있는가?"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트럼프는 북한이 언제든 보복으로 남한의 수도를 파괴하여 2500만의 인구에 대해 대량 학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북한에 대한 미국의 작전이 크게 제한된다고 언급했다.  버겐(Bergen)에 따르면 트럼프는 "그들은 이사를 가야해" 라고 말했고, 각료들은 대통령이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다시 반복해서 말했다.  "이사를 가야 한다고."

이건 2018년 싱가폴에서의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가 기자 회견을 하면서 했던 말과 일치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제가 생방송으로 보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트럼프가 이런 말을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저걸 북한 애들도 들을 방송에서 말한다는 것은 '사실 서울이 인질로 잡혀 있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과 전쟁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라는 것을 자인한다는 것인데 저래도 되나 싶었거든요.

 

https://www.vox.com/world/2018/6/12/17452624/trump-kim-summit-transcript-press-conference-full-text

 

> Thank you, Mr. President. Could you talk about the military consequences for north 

Korea if they don’t follow through on the commitments? 

> 고맙습니다, 대통령님.  만약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뒤따를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 

> I don’t want to talk about it. That’s a tough thing to talk about. I don’t want to be 

threatening. They understood that. You have seen what was perhaps going to happen. 

You know, Seoul has 28 million people. We think we have big cities. You look at New 

York with 8 million people. We think it is a big city. 
Seoul has 28 million people. Think of that. It is right next to the border. It is right next 

to the DMZ [demilitarized zone]. It’s right there. If this would have happened — I have 

heard 100,000 people. I think you could have lost 20 million people or 30 million people. 

This is really an honor for me to do this. I think potentially you could have lost 30 

million or 40 million people. The city of Seoul. It is right next to the border. 

> 저는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언급하기 굉장히 껄끄러운 일입니다.  저는 협박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들도 그걸 이해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여러분도 보신 바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서울 인구는 2천8백만입니다.  (아마 경기도 인구까지 합해서 말하는 듯: 역주)  큰 도시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8백만 인구의 뉴욕 시를 보십시요.  우리 생각에 그건 큰 도시입니다. 
서울에는 2천8백만의 인구가 있습니다.  그걸 생각해보세요.  바로 국경 옆에 있습니다.  DMZ 바로 옆에 있습니다.  바로 거기 있다고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 제가 듣기로는 10만명 정도가 될 거라고 하더군요.  (사상자를 뜻하는 듯 : 역주)  제 생각으로는 2천만에서 3천만 정도를 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는 것은 제게는 진짜 영광입니다.  3천만에서 4천만의 인구를 잃을 수도 있었어요.  서울시, 그거 바로 국경 옆에 있다고요. 

 


전쟁에서의 용기는 최전선에서의 거리와 정비례한다는 말이 있지요.  북한을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북한과 전쟁이 벌어지면 미군이 알아서 드론과 스마트 폭탄으로 북한군을 전멸시켜 줄 것이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은 아무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확실합니다.  피해가 10만 미만이면 할 만한 전쟁이라고요 ?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은 계백장군처럼 자신과 자신의 가족부터... 아니죠... 아무리 그래도 계백장군처럼 아동 살해하는 가부장적 꼰대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북한을 정말 폭격하려면 먼저 서울 시민부터 다 소개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상관없이 우리나라 망합니다.  서울 아파트값 폭락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은행도 다 망할 것이며 그러면 수출입 대금 지불이 안 되어 기업들도 다 망합니다.  천조국의 오버 테크놀로지로 한 달이면 북한군을 전멸시킬 수 있으니 한달 뒤에 아파트값 원상회복될 것이라고요 ?  글쎄요.  아마 서울 시민 소개 작업 자체가 몇 달 걸릴 것이고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은행들과 기업들은 확실히 망할 것입니다.  동네 편의점과 음식점 등 소상공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북한과의 평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북한과의 통일은 어렵겠지만, 최소한 상호간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것만으로도 양측 모두에게 큰 번영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반드시 따라 올 수 밖에 없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당연히) 저도 답은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세습 독재자를 믿는 것처럼 바보같은 일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전망에 대해 부정적이지는 않습니다.  낯선 사람과 전세 계약 맺을 때처럼 안전 장치도 갖추고 보증보험이 되어 있는 중개인을 세워야겠지요.  어차피 대부분의 전세 계약은 낯선 사람과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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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비니우스 2020.01.16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전쟁에서의 용기는 최전선에서의 거리와 정비례한다는 말이 있지요. 북한을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북한과 전쟁이 벌어지면 미군이 알아서 드론과 스마트 폭탄으로 북한군을 전멸시켜 줄 것이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은 아무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오늘은 이 부분이 인상깊네요.

    저는 서울이 휴전선과 너무 가깝다는 점에서 지난 전쟁이 끝났을때 수도를 부산이나 대전으로 옮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울=수도라는 인식은 아무래도 쉽게 바꾸기 어려운 것이었겠죠.

    • nasica 2020.01.16 1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도를 이전한다고 하면 서울 강남에 아파트 여러채 가진 힘있는 분들이 가만 안 있을 것 같습니다.

    • Spitfire 2020.01.17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nasica/ 아니, 지금 힘 있는 분들이 정권을 잡고 계신거 아닌가요? 검찰도 개혁하시고 수색영장도 거부하시고 선거법도 원하는 대로 바꾸고 부자들한테 과감히 증세도 하시고 천조국 대통령도 만만하게 보는 건 다 힘이 있어서 할 수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분들 다 강남에 아파트 가지고 계시긴 하네요~ 투기도 그분들이 다 하시고...ㅋㅋㅋ

  2. keiway 2020.01.16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수도를 옮긴다는 정치적/경제적 결단을 하기엔 전후 상황이 너무 여유가 없었던 것이 크지만, 여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분단된 채로 영원히 북한을 적대하며 지낼거라는 가정을 하지 않는 한 수도를 이전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죠.
    그리고 고전적인 땅따먹기를 하는 시대가 아닌 현재에 수도가 부산일지라도 전쟁나면 망하는 건 같지 않겠습니까? 전면전 시의 경제적/물질적 피해는 상상도 되지 않는 수준인데요.
    현 시대에서의 수도 이전은 국토 균형발전 관점에서나 고려할 문제이지, 전쟁을 고려한다는 건 무의미한 얘기라고 보입니다. 수도권 지역의 인구가 지금보다 1/2 로 줄어든다면 '일정 희생을 각오하고' 전쟁을 벌일 수 있나요? 트럼프의 헛소리는 군사적 옵션을 고려하기 어렵다는 걸 쉽게 얘기하기 위한 특유의 화법이라고 생각하는게 맞겠죠.

  3. VDV 2020.01.16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6.25 전쟁때 개성이 그토록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이라고 하더라구요.매튜 리지웨이 사령관도 어떻게든 개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으나,김일성의 교활함 때문에 개성을 대한민국이 장악하는건 실패했죠.

    • reinhardt100 2020.01.16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재와 가장 유사한 상황이 고대 삼국시대죠. 한성백제가 4세기 후반 한창 고구려를 밀어붙일 때 수곡성(황해도 신계)까지 북진해서 몽촌토성 등의 수도권 방어선을 기껏 만들었지만 진사왕, 아신왕 때 연전연패해서 개성과 포천, 동두천, 강화도가 넘어가버리는 바람에 수도권이 고구려에 반포위되는 사태가 벌어졌으니까요. 결국 개로왕 때 몽촌토성 함락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니까요.

      저번 전쟁에서 만일 개성 혹은 황해도 연백평야까지만 국군과 유엔군이 확보했다면 휴전선이 좀 더 길어질 수는 있었지만 대신 수도권이 인민군 포병전력의 위협에서 상당히 벗어났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4. 고로 2020.01.16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이쿠야.. 1.사전공지가 없었더라도 평시가 아닌 전시에 준하는 상황에서 미군의 방공망과 잘 훈련된 군인이면 충분히 피해방지가 가능하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2.기습도발이면 제한된 소수의 포격이니 초탄은 그냥 당할수 밖에 없죠. 대신 도발원점 초토화로 대응해야 차탄이 안날라옵니다. 그러나 전면전시에는 최소 24시간 전에 탐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안내에 따라 준비 갖추고 방공호로 가는게 안전합니다. 집 욕조에 숨어있다간 죽어욤..

    • nasica 2020.01.16 1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민간인들은 언제 날아올지 혹은 안 날아올지 모르는 적포탄을 피해서 피난민들이 빽빽히 들어찬 지하철역 안에서 24시간 못 버틸 것 같다는 것이 본문 내용입니다.

  5. 나삼 2020.01.16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호 적대행위를 중단 하려면 북한부터 핵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가요 그리고 상호 적대행위를 중단한다면 북한 체계는 고착화 되고 북한 인민들은 세계 최악의 인권 수준으로부터 언제 쯤 해방될 수 있을가요

    • nasica 2020.01.16 1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차피 지난 75년간 상호 적대 행위를 계속했지만 북한 인민들은 자유와 인권에서 아주 먼 상태에 있습니다. 상호 적대 행위를 중단한다고 북한 인권 상황이 더 악화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6. 루나미아 2020.01.16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미연합군의 포병과 항공전력이면 몇시간도 안 되어서 장사정포 진지들을 다 초토화하지 않을까요? 방공호로 대피하라면 대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nasica 2020.01.16 1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생각해보니 우리측에서 선제공격을 할 경우에는 미리 경보를 내려 우리가 방공호로 대피할 수도 있겠군요. 다만 생각해보니 그럴 경우 북한군도 미리 다 안다는 단점이 있겠군요...

  7. reinhardt100 2020.01.16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 좋아할 사람 별로 없죠. 하지만 '일단 말로 안 되면 갈겨버릴(?) 준비는 해 놓는게 맞다'고 봅니다.

    인민군의 각종 무력투사수단이 우리를 위협하는 한, 안심할 수 없다. 이게 현실이죠.

    오늘 막 보니 미중간 무역 1차 합의를 봤는데 제 예상을 뛰어넘는 미국의 완승이었습니다. 중국은 이제 미국에게 제대로 목줄 잡혔더군요. 중국이 얻어낸 것은 추가관세 유예와 국영기업에 대한 과도한 보조금 지급 묵인 수준? 이 정도뿐인데 2차 합의 들어가면서 미국은 반드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명확히 하라고 압력을 넣을 겁니다. 무슨 결론이 나긴 날 듯합니다. 북한의 몇배나 되는 국력을 보유한 이란조차도 지금 휘청거리는 판인데 인명피해를 무시한다면 중국이 손 뗄 경우, 북한을 그대로 뭉개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그 때는 지금과 같은 상호 적대 행위 중지 이런걸 따질 상황을 아닐 겁니다.

    • 나삼 2020.01.17 0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찰력 깊으신 reinhardt님이 이런 분석을 내려주시니 미래에 대해 안개가 걷힌 느낌입니다. 이상하게 중국 옹호하거나 초강대국 취급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아무리 제가 머리를 굴려보아도 미국에 상대도 안되는 나라를 왜 그렇게 추켜세우거나 두려워 하는지 이해가 안갔습니다. 게다가 중국이라는 울타리가 걷힌 북한은 이제 사면초가에서 뿐만 아니라 초가집 다타고 끝장날 운명이라니..한국의 암적 존재 북한의 멸망.... 한층 미래에 대해 기대해 볼수 있겠군요..

    • 걱정마세요 2020.01.17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민군의 각종 무력투사수단은 미제 놈들을 지옥으로, 남조선 동포들을 천국으로 보내주는 무기랍니다.

  8. 대학원생 2020.01.17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북대치의 상황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라 첨 댓글다네요. 마지막에 세습독재자를 믿는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는 말 인상깊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엔 평화를 찾으려면 적이 우릴 건들지 못하게 하도록 힘의 균형을 추구해야지 상대에게 속아 무장해제했다간 나라망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은것 같은 분들이 좀 계시다는게 걱정입니다. 저는 북한이 핵무장을 한 지금 한미훈련을 중단, 축소하자는 주장에 불안을 느끼거든요.. 러시아만 해도 무시못할 군사력과 전략적 입지가 있으니까 나폴레옹도 함부로 '그 강'을 못 건넌게 아니겠습니까? (최근 연재분에선 기어이 건너셨지만 ㅠ)
    특히 왜 그런진 몰라도 정치권이나 학창시절 선생님들 중엔 북한이라는 상대에 대해 같은 민족으로서 항상 평화통일을 열망하는 상대라는 판타지적인 인식을 갖고 계신 분들이 몇분 계시던데... 그 부분이 상당히 우려스럽더라구요.
    군대갔더니 북한군 지뢰밟고 포탄맞은 분들과 겹치는 세대로서 핵을 스스로 먼저 내려놓겠다는 세습독재자를 도대체 어떻게 믿고 저렇게 간쓸개 다빼주면서 협상을 구걸하는지.. 그건 좀 화나는 부분이구요 ㅎㅎㅎ
    평소 나시카님 필력 존경하는 20대 눈팅러의 사견이었습니다. 항상 나시카님이 쓰신 나폴레옹 일대기 읽으며 많이 생각하고 배우게 됩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오래 연재해주세요~

  9. 샤르빌 2020.01.19 0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쓰셨던 개성공단의 완충효과에 대한 내용이 떠오르네요
    사실 그러한 서울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대전시나 세종시 등을 만든것인데.. 실상은 공무원들 부터가 서로 안내려가겠다고들 난리였죠..

  10. 검은머리 2020.01.20 0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국인이 이리 걱정해주시니 참 감사할따름입니다 평화가 중요하죠


드리사 요새에 도착한 이후 5일 간이나 시간을 허비한 뒤 러시아군이 마침내 비텝스크를 향해 철수를 시작한 것은 7월 16일이었습니다.  5일이면 잘 닦인 포장 도로에서 완전무장한 보병 사단이 160km를, 험한 길이라고 해도 100km는 행군할 수 있는 시간이고, 무리한 강행군이라면 200km를 갈 수 있는 시간입니다.  빌나(Vilna, 현재는 Vilnius)에서 드리사(Drissa, 벨라루스어로 Vierchniadzvinsk)까지의 거리는 불과 240km 정도 밖에 안 되었고, 뒤를 쫓는 것은 전쟁을 총이 아니라 발로 하는 것으로 유명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었습니다.  게다가 나폴레옹이 빌나에 입성한 것은 알렉산드르가 황급히 빌나에서 철수한지 48시간이 지나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불과 2일의 리드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던 러시아군이 무려 5일이나 낭비하다니 이건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제1군은 비텝스크에 거의 도달할 때까지 프랑스군으로부터 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순조롭게 후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

일단 러시아에서의 행군은 도로 사정 때문에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것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러시아군도 프랑스군 못지 않게 강행군에 꽤 익숙한 부대였고 바클레이가 군을 잘 통솔했음에도 불구하고 빌나에서 철수를 시작한 6월 26일 이후 무려 15일이나 걸려서야 드리사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240km라면 당시 프랑스 보병 사단의 평균적인 이동 속도로 12일 걸릴 거리였는데, 러시아의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음을 감안하고 또 많은 야포와 군수품을 함께 가지고 이동한 것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성적이었습니다.  


(현대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나에서 드리사까지의 거리입니다.)



하지만 그 뒤를 쫓는 것은 당대 유럽 최고의 기병이라는 뮈라가 지휘하는 약 4만의 기병 예비군단이었습니다.  대포와 짐마차, 보병 사단들이 뒤섞인 러시아군은 도저히 프랑스군 기병대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뮈라가 직접 선두에 서서 돌격하는 기병대의 공격에 러시아군은 산산조각이 나서 거미새끼들처럼 흩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뮈라의 기병 군단은 바람처럼 달리기는 커녕 러시아군의 후미를 제대로 집적거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결국 현실 세계에 용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와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 덩치의 괴물을 지탱할 수준의 먹이가 없어서였지요.  나폴레옹의 그랑다르메 전체가 네만 강을 건넌 이후, 아니 사실은 네만 강을 건너기 전부터도 식량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것은 말못하는 불쌍한 짐승인 말이었습니다.  네만 강을 넘자마자 불과 1주일 만에 3~4만 마리의 말이 죽어야 했는데, 이는 6월말에 갑자기 쏟아진 하룻밤 폭풍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사료와 물 부족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4만의 기병 군단이라면 말이 하루에 9kg의 사료를, 사람이 하루에 대략 1kg의 식량을 먹어야 하니 하루에 400톤의 보급품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그냥 알아서 먹을 것을 찾아가며 러시아군을 추격해야 했는데, 러시아군이 굳이 초토화 작전을 한답시고 적극적으로 파괴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들이 달려야 하는 길 주변은 이미 러시아군이 샅샅이 뒤져먹고 간 뒤여서 말이 뜯을 풀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뮈라 본인이었습니다.  평범한 근위대 장교 군복 위에 수수한 회색 코트를 즐겨 입었던 나폴레옹과는 달리 뮈라는 절대 제식 군복을 입지 않고 항상 스스로 디자인한 폴란드나 투르크식의 이국적인 복장을 입고 다녔는데, 이번 원정도 예외가 아니어서 마차 하나에 그런 이상한 족보도 없는 옷상자와 함께 각종 남성 화장품 및 향수를 잔뜩 채워서 끌고 올 정도로 허세를 부렸습니다.  그렇게 쓸데없는 것에 허세를 부리던 뮈라는 최고의 기병 사령관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러울 정도로 정작 군마의 보존에 대해서는 관심이 1도 없는 비정한 동물 학대자였습니다.  최고위층의 이런 태도는 중간 지휘관들에게도 분명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반적인 프랑스 기병대 장군들의 태도는 '말이란 승리와 영광을 위해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라는 것이었고, 더더욱 군마를 먹이고 돌보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극한의 상황으로 군마들을 내몰았습니다.



(조아생 뮈라입니다.  안장 밑의 호랑이 가죽이 예사롭지 않지요 ?  동시대 사람이 그의 외관에 대해서 써놓은 것은 읽어볼 만 합니다.  "그는 언제나 화려하고 때론 기괴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폴란드나 무슬림들의 전통 복장에서 따온 것으로서, 화려한 색상의 값비싼 옷감과 털가죽, 자수, 진주, 다이아몬드 등이 결합된 것이었다.  그의 넓은 어깨에는 풍성하고 긴 곱슬머리가 늘어뜨려져 있었고 굵고 검은 구레나룻과 번쩍이는 큰 눈은 보는 사람을 매료시켰다.  그런 외모로 인해 사람들은 그에게서 사기꾼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결론은 사기꾼이네요.)



프랑스군은 누가 봐도 러시아군에 비하면 선진적인 조직이었습니다.  프랑스군에서는 대부분의 장교들이 출신 가문이 아니라 실력과 전공에 의해 승진한 사람들이었고 사병들 상당수가 읽고 쓸 줄 알았으며 체벌도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선진 프랑스군도 러시아군에 비해 안 좋은 점이 있긴 했습니다.  일단 사병들의 군복이 실용적이지 못했습니다.  러시아군은 농노들을 차출하여 만든 군대답게 병사들의 자부심보다는 그저 실용성에 중점을 두어 투박하지만 움직이기 편하고 넉넉한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17~18세기 왕정 시대 군대의 전통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프랑스군은 무엇보다 사기를 중시하여, 움직이는데는 좀 불편하더라도 보기에 멋져보이는 꽉 끼는 바지와 코트를 입혔습니다.  그래서 평소 행군할 때는 프랑스군도 정복은 배낭 속에 둘둘 말아두고 헐렁한 작업복을 입고 행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꽤 불필요해보이는 전통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라 디안느(la Diane)라는 일일 행사가 있었는데, 디안느라는 단어는 달의 여신 다이아나(그리스식으로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어로 '기상나팔'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행사는 특히 기병대에게 상당히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러시아 제1군의 뒤를 쫓는 뮈라의 기병 군단처럼 보병의 지원없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기병 부대는 원래 야습에 특히 취약했습니다.  기병대의 모든 강점은 스피드에서 나왔는데, 밤에 안장을 풀어놓고 야영하는 상황에서 적의 기습이라도 받았다가는 그야말로 박살이 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특히 기병 단독으로 움직일 때는 야영시에 사방 먼 곳까지 초계 임무를 띤 기병 소대들을 배치하여 야간 경계를 세웠습니다.  원래 초계 소대의 임무 본질상, 이렇게 밤새 고생한 초계 대원들이 아침이 되어 본진 병력들이 전투 태세를 완전히 갖추고 난 뒤, 본진에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은 뒤에야 본진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라 디안느'라는 일일 점호가 특히 괴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즉 기상 시간이 되어 전체 기병 연대나 사단 병력이 불편한 잠자리에서 일어나 군장을 챙기고 안장을 얹는 등 출격 준비를 끝낸 뒤에도, 보통 1시간 떄로는 2시간 가까이나 초계 소대들이 다 돌아올 때까지 대오를 갖춘 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서 힘든데 이렇게 무의미하게 1~2시간을 출격 대기 상태로 기다려야 했던 본진 병력만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밤새도록 안장을 벗기지도 못하고 경계 근무를 서야 했던 초계 소대들은 더 힘들었습니다.  


(Chasseurs à Cheval, 즉 엽기병 부대입니다.  엽기병은 기본적으로 경기병으로서 기본 무장은 얇은 군도였고 사실 다른 기병들과 딱히 다른 점은 군복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화려한 펠리즈와 털가죽 모자로 유명했습니다.  펠리즈는 정말 화려함 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허세 뿐인 복장이었지만 저 털가죽 모자는 의외로 방호력이 좋아서 군도의 타격을 견디는데는 흉갑 기병들이 쓰는 강철 투구보다 더 우수했다고 합니다.)



당시 뮈라 휘하에서 러시아 제1군의 뒤를 추격하던 제16 엽기병(Chasseurs à Cheval) 연대의 한 대위가 그때 겪었던 일화에 대해 적은 기록이 있습니다.

"비아스마(Viasma)에서 전투를 치렀던 날 저녁에 난 휘하의 기병 중대 100명과 함께 초계 임무를 띠고 파견되었다.  난 지정된 초계 장소를 고수하라는 명령과 함께 절대 안장을 벗기지 말라는 엄격한 지시도 전달받았는데, 다음날 정오가 되어서야 본진으로의 귀환 명령을 받았다.  내 중대의 말들은 그 전날 오전 6시에 안장을 얹은 이후 한번도 안장을 벗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에겐 아무런 식량과 사료도 주어지지 않았고 근처에 마실 물도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휘하 장교 하나를 장군께 보내 우리 중대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병사들을 위한 빵과, 무엇보다 말들에게 먹일 귀리를 좀 보내주실 것을 요청했다.  그의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내 임무는 너희들을 싸우게 만드는 것이지 너희들을 먹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말들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로 무려 30시간을 버텨야 했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상태로 본진에 돌아왔는데, 그때는 이미 부대 전체가 출발할 시간이었다.  우리 중대에게는 휴식 시간이 딱 1시간 주어졌고, 그 뒤에는 먼저 출발한 본진을 따라잡기 위해 속보로 달려야 했다.  결국 나는 말이 더 이상 걷을 수 없었던 대원 12명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야 했다."

이렇게 학대당하는 불쌍한 짐승들로 과연 러시아군을 얼마나 추격할 수 있었을까요 ?  성경에도 씌여있듯이 모든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위의 증언에서도 나오듯이, 프랑스 기병대는 평상시에는 속보가 아니라 걸어서 러시아군을 추격해야 했습니다.  바로 직전까지 주러시아 프랑스 대사였다가 복귀하여 나폴레옹의 마복시 역할을 하던 콜랭쿠르(Caulaincourt)는 이때 즈음해서 프랑스군 기병대가 러시아군의 후위 부대와 교전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프랑스 기병대원들은 적진에 돌격한 뒤 되돌아올 때, 놀랍게도 말에서 내려 말을 끌고 걸어왔습니다.  말들이 너무 지쳐서, 만약 러시아군이 반격을 해온다면 기병대원들은 자기 다리로 뛰어서 도망치는 것이 더 빨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프랑스 기병대는 엉망진창 상태였지만, 그래도 보급품이 없었기 때문에 짐은 가벼웠고 덕분에 결국 러시아 제1군을 따라잡기는 했습니다.  비텝스크 약 15km 서쪽, 오스트로브노(Ostrovno)에서였습니다. 





Source :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https://en.wikipedia.org/wiki/Chasseurs_%C3%A0_Cheval_de_la_Garde_Imp%C3%A9ri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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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피카피캣 2020.01.13 0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서서히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됐군요. 잘 읽었습니다. ` ^^

  2. reinhardt100 2020.01.13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필 소모가 장난 아니었네요.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군이 2주만에 13만 5천명의 병력 손실이 발생했지만 군마 손실의 비율은 인적 손실보다 더 크다고 들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총 7백만 필의 군용 마필 손실을 기록했는데 이 때는 화차를 이용해서 주 전선 근처까지 마필을 이동시켰는데도 저 정도 손실이 났죠.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군이 겪은 체감 소모도는 독소전쟁 당시 독일군보다 더 심각했을 겁니다.

  3. ㅇㅇ 2020.01.14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거 보면 몽골군은 정말 대단했던거 같네요

    • Franken 2020.01.14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 한반도에서 지중해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을 세운 거 아니겠습니까?

  4. [][] R.F.[][] 2020.01.14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요, 말을 운용함으로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비슷했을텐데 말입니다.

    물론 몽골 말이 다소 작고 볼품없게 생기긴 했지만 지구력이 우수하다고 들었고, 몽골인들은 말을 다루는 법부터 적절히 관리하는 방법까지 아주 능숙했을테니 가능한 일이었겠지만요 ^^
    확실히 보병0%에 기병100%로 구성되어 있으면 당시로선 거의 전군 기계화에 성공했다고 봐야겠지요ㅎㅎ

  5. MADRUSH 2020.01.14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6. 푸른 2020.01.15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겨울이 추웠다라는 간단한 이유말고도 많은 이유들이 있었네요. 이렇게 하나하나 톺아보니 나폴레옹이 질만했네요...

  7. 웃자웃어 2020.01.17 1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질문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영국군이 당시에 실탄 훈련을 한 유일한 군대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른 군대는 연습용 총알을 쓴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습용 총알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 nasica 2020.01.18 2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습용 탄환이라는 것은 못 들어봤고요, 프랑스군의 경우엔 부싯돌과 탄약을 아끼기 위해 부싯돌 대신 나무조각을 dog head에 끼우고 탄환과 화약은 넣는 시늉만 하며 사격 연습을 했답니다.

  8. 이타카 2020.01.19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의 글을 계속 보면서 의아스러웠던게
    그럼 러시아군은 매번 어떻게 러시아에서 나와서 싸울 수 있었던건가요? 나폴레옹이 걸어들어간 길이랑 러시아군이 걸어나온 길은 같을텐데요?

 

(HMS Warspite입니다.  Warspite라는 것은 영어에 없는 단어이고, 영국 해군에서 전함 이름으로 몇 차례에 걸쳐 사용된 일종의 고유명사입니다.  어원은 불분명한데, 녹색 딱따구리를 지칭하는 이름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즉, 적함에 딱따구리처럼 구멍을 뻥뻥 뚫으라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이야기지요.)



위 사진 속의 전함은 20세기들어 가장 유명한 영국 해군 전함 중 하나인 워스파이트(HMS Warspite) 호입니다.  워스파이트 호는 다음 두가지 점에서 20세기 초반 영국 해군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모두 몸으로 겪어낸 역사의 산 증인
2. 정점에 달했다가 몰락하는 영국 해군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성

워스파이트 호는 제1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해전인 유틀란트 해전에 참전하여 독일 대양함대의 집중 포격 대상이 되기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지중해와 태평양 작전에도 모두 참여하여 독일 공군의 유도 폭탄인 FritzX를 3방이나 얻어맞기도 했지만 끝끝내 침몰하지 않은 역전의 용사입니다.  (참고로 훨씬 나중에 건조되고 또 훨씬 더 큰 이탈리아 전함 로마 호는 단 두방의 FritzX에 침몰...) 


(1916년 유틀란트 해전에서 입은 워스파이트 호의 피해 중 일부입니다.  이 전투에서 워스파이트 호는 15발의 명중탄을 얻어맞고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자력으로 영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코드네임 FritzX, 정식 명칭 FX1400,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공군이 보유했던 일종의 스마트 폭탄이지요.)

(이탈리아 전함 로마입니다.  딱 봐도 1913년에 진수된 3만3천톤짜리 워스파이트 호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또 커보입니다.  실제로도 4만6천톤으로 워스파이트보다 훨씬 큰 전함입니다.  워스파이트가 로마보다 우수해서 살아남았다기보다는 사실 운이 더 좋았다고 봐야지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독일군 진지를 향해 맹포격 중인 워스파이트 호입니다.)

 

(1943년 지중해에서 작전 중인 HMS Warspite)

 



워스파이트 호는 얻어맞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고, 노르웨이 연안 해전에서는 독일군 구축함들을 말아드셨고, 지중해에서는 이탈리아 해군 일소에 혁혁한 전과를 세웠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는 그야말로 포신이 닳아 못쓰게 될 때까지 지원 포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고 보통 전함들의 주포는 대략 200발 정도 쏘고 나면 강선이 다 닳기 때문에 정비를 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중해 칼리브리아 해전에서, 이탈리아의 쥴리오 케사레 호를 26,000 야드의 거리(약 24km, 거의 수평선 언저리)에서 명중시킨 것은 움직이는 함정에서 움직이는 함정을 명중시킨 것으로는 역사상 가장 먼 거리의 명중탄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워스파이트 호는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입니다. 한마디로,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만들어진 전함 중 가장 우수한 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덕택에 디스커버리 채널의 Top10 수상 함정에도 올랐습니다.)  배수량이 대략 3만톤인 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의 특징을 한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기존의 아이언 듀크 클래스급 전함보다 더 뛰어난 화력과 스피드에도 불구하고, 기존 장갑 능력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 이유는 2가지입니다.  먼저, 새로 개발된 15인치 주포를 장착하여, 기존의 13.5인치 포보다 포탑 수를 줄이고도 더 우월한 화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게를 줄여서 기존의 18개보다 더 많은, 24개의 보일러를 장착하여 기존 아이언 듀크 클래스의 21노트보다 더 빠른 25노트로 스피드도 늘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보일러 수자를 늘렸다는 것만으로는 이렇게 고속 순양함에 해당하는 속도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중유(Fuel Oil) 보일러였습니다.  당시 전함들의 보일러는 석탄을 연료로 썼습니다.  중유도 사용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석탄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지요.  중유 보일러는 석탄 보일러에 비해 보일러의 무게 및 연료 무게도 더 가벼웠지만 출력은 오히려 훨씬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기존 아이언 듀크급 전함의 총 출력이 29,000 마력인데 비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무려 56,000 마력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언 듀크 급 전함 중 하나인 HMS Emperor of India 입니다.  엠퍼러 오브 인디아 호는 워스파이트 호와 같은 해인 1913년에 진수되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습니다.  겉보기로는 퀸 엘리자베스 급 전함들과 그렇게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그 낡은 석탄+중유 보일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1932년 폐기처분 되었습니다.  자동차든 비행기든 배든, 엔진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이건 HMS Valiant로서, HMS Warspite와 같은 급 전함입니다.  사실 이렇게만 보면 아이언 듀크급과 퀸 엘리자베스급의 차이를 보시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청사진을 보시면 아이언 듀크급과 퀸 엘리자베스급의 차이를 확실히 보실 수 있습니다.)

 

 

(이건 1893년에 진수된 미해군의 두번째 전함 USS Massachusetts (BB-2)의 엔진실입니다.  당시 석탄 보일러를 쓰던 기관실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위 그림에 나온 전함들은 모두 퀸 엘리자베스 급 전함들입니다.  모두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들어졌지만 현대화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퀸 엘리자베스급이 도면에서 그려지고 있던 1912년 당시 영국 해군성의 수장인 윈스턴 처칠 경은 선뜻 중유 보일러를 채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석탄은 많이 났습니다만 석유는 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건 단순한 경제와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문제였습니다.  

아시다시피 19세기 후반부터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많은 가정에서 조명용으로 등유(kerosIne)를 사용했습니다.  이 등유는 처음에는 석유에서 정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풍부하게 채굴되었던 석탄을 정제하여 만든 것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도 석탄을 정제하여 가솔린과 디젤을 뽑아내었지요.  그러다가 1850년대 들어서서 오늘날 루마니아 지역 및 미국 펜실바니아 쪽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 석유를 증류하여 등유 및 중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1860년대에는 세계 석유 생산량의 90%가 카스피 해 연안,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 인근에서 채굴되었습니다.  즉, 당시 유럽 세계에서 석유의 주공급원은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 쪽이었습니다.


(1900년대 초반 바쿠의 유정들...) 

 

석유는 중동에서 나는 거 아니냐고요 ?  맞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성벽을 쌓는데도 천연 타르가 사용될 정도로, 중동에는 석유가 많이 났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산업용으로 사용될 만한 진짜 유전이 터진 것은 20세기 들어서서 입니다.  가령 쿠웨이트에서 유전이 발견된 것은 1938년이었습니다.  중동에서 가장 먼저 산업용 유전이 발견된 곳은 페르시아, 즉 이란이었습니다.  바로 1908년이었지요. 


(이란에서의 석유 시추 성공을 알리는 1908년 6월 3일자 편지) 

 

타이밍이 기가 막혔습니다.  바로 3년 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설계도가 그려질 때, 영국 해군에게 갑자기 페르시아가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되었던 것입니다.  해군성 장관 윈스턴 처칠 경은 의회를 설득하여 영국-페르시아 석유회사(Anglo-Persian Oil Company)의 지분 51%를 사들입니다.  이때부터 페르시아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원래 페르시아 지역은 19세기 초까지도 영국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금쪽같은 인도 식민지를 지키기 위한 전초 기지로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반면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남하하며 페르시아를 계속 건드렸는데, 러시아가 나폴레옹에 굴복하여 프랑스 편에 서느냐 영국과 연합하느냐에 따라 페르시아는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영국에게 있어 페르시아는 인도로 가는 길목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 취역하게 되면서, 페르시아는 영국 해군에게 있어, 더 나아가 대영제국의 안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략 요충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덕분에 1, 2차 세계대전 내내 페르시아는 영국과 소련의 간섭에 시달리며 반점령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체 유전을 가지고 있던 소련보다는 영국의 간섭이 훨씬 심했습니다. 

 

 

(영국이 자국령에서 석유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유를 연료로 하는 전함 채택을 망설인 것은 결코 엄살이 아니었습니다.  위 사진 속 전함은 1915년 진수된 미해군 전함 USS Pennsylvania (BB-38)입니다만, 이 당당한 전함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에는 파견되지 못했습니다.  이 펜실바니아 호도 중유를 연료로 하는 전함이었는데, 당시 유럽에는 중유 공급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펜실바니아 호가 유럽에 다녀온 것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평화 조약을 위해 유럽을 방문할 때 그 호송단의 일원으로서였습니다.)

 

 


신이 페르시아, 즉 이란에게 준 선물인 석유는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는 정작 별 혜택을 주지 못하고, 영국-페르시아(이란) 석유회사를 통해 서방 세계로 빨려나갔습니다.  과거에 처칠이 투자한 영국 자본 때문이었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이란에도 똑똑한 (혹은 멍청한) 정치가가 나타납니다.  바로 무하마드 모사데크(Muhammad Mosaddeq) 였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요.  전 저 책 안 읽었습니다.) 



이 양반은 팔레비 왕조 하에서 민족주의 세력으로 가득찬 의회를 등에 업고 총리가 되었는데, 당연히 대단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이 양반이 정말 똑똑하다고 (혹은 멍청하다고) 했던 것은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을 위해 만들어진 영-이란 석유회사를 1951년 일방적으로 국유화 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비틀거리느라 노쇠함이 역력했던 영국을 물로 봤던 것이었지요.  사실 제대로 봤습니다.  영국은 일단 헤이그의 국제 사법 재판소에 이 사건에 대한 소송을 올렸다가 기각당했습니다.  대단한 떡을 빼앗긴 영국은 그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격노했습니다.  결국 영국 정부가 '천조국' 미국에게 이란을 침공하자고 길길이 뛰었지만, 당시 세계의 제왕이었던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세계 경찰 미국이 그걸 허용할 수는 없다'며 영국을 말렸습니다.  당시 트루먼은 한국 전쟁으로 가뜩이나 골치아팠는데, 소련을 자극할 여력이 없었지요.  더군다나 영국만 좋은 일을 그렇게 해주겠습니까 ?


 

(미국 대통령 트루먼.  이 사람은 자선사업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칠 때는 군대로만 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영국은 미국에게 모사데크가 소련을 끌어들이려 한다고 모함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53년, 이란의 영웅이 된 모사데크는 내친 김에 서방의 푸들이나 다름없던 국왕을 강요하여 나라 밖으로 쫓아내는 사건까지 터집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정말 이란이 소련 쪽으로 넘어갈 것을 두려워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는, CIA 작전명 에이잭스(Ajax)를 승인합니다.  이 CIA 작전에 따라 이란 왕당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무함마드 레자 국왕이 복귀했고, 모사데크는 감옥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CIA가 벌인 공작은 유치하다면 유치하고 무섭다면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바로 알바생 동원 !  국왕 만세를 외치며 폭력 시위를 벌인 알바생들을 거리에 풀어댔던 것입니다.  이렇게 알바생을 동원하여 분위기를 조성한 뒤, 미리 매수해둔 일부 군 병력으로 모사데크를 체포한 것이지요.  당시 길거리 소요에서 희생된 알바생들의 주머니에는 동일한 액수의 지폐가 많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CIA 요원들이 현장에서 알바생들에게 봉투를 나눠줬던 모양이더라구요.

아무튼 이렇게 영-이란 석유회사를 되찾은 영국은 미국에게, 이란 석유의 40%를 떼주는 것으로 댓가를 치뤄줍니다.  결국 모든 것은 돈으로 연결되는 거지요.

(이때 영국-이란 석유회사는 British Petroleum Company로 이름을 바꿉니다.  이름이 낯설다고요 ? BP라고 하면 아마 좀더 익숙하실 겁니다.)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입니다.  결국 호메이니에 의한 이슬람 혁명, 이란 미 대사관의 인질 사태, 이란-이라크 전쟁, 9.11 사태,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요즘 이란과 미국 사이가 다시 좋지 않습니다.  저는 이란에 핵무기가 있냐 없냐보다는, 이란에 석유가 많다는 사실이 더 걱정스럽습니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만들었지만 정작 미국은 크게 신경을 안쓰쟎습니까 ?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전쟁이 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이란과 미국 사이는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사상과 믿음, 더 나쁘게는 돈 때문에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여기까지는 아주 오래 전에 썼던 글인데, 요즘 이란 상황을 틈타 재업했습니다.

 

아래는 최근에 읽은 어떤 정치 평론가의 글인데, 요약하면 이번에 암살된 솔레이마니는 살아있을 때보다 죽은 뒤에 미국에게 더 무시무시한 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암살은 트럼프의 큰 실책이 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https://medium.com/@JohnWight1/the-assassination-of-soleimani-what-would-crassus-say-2b1d5677a6bc?

 

(다른 건 몰라도 남자는 역시 수염...)

 

 

 

위 기사의 주장과 비슷한 내용을 전에 중국 역사책 어디에서인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인지 5호16국 시대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중국이 분열되어 있던 시절 어떤 나라에 있었던 훌륭한 재상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사람 덕분에 나라가 크지는 않아도 그 나라는 꽤 단단하게 잘 지켜졌습니다.  이 재상이 죽은 뒤 시간이 좀 흘러 빈틈이 생기자, 때를 기다리던 이웃 나라가 침공을 해왔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구심점이 없던 이 나라의 조정은 '형세가 위중하니 화평을 청하자'라는 파와 '불리하더라도 끝까지 싸우자'라는 파로 나뉘어 갑론을박만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조정 신하 중 하나가 이렇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재상께서 살아계셨다면 그 분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

 

그 재상의 평상시 사람됨을 잘 알고 있던 조정 신하들은 잠시 생각하다가 곧 모두 이렇게 동의했습니다.

 

"그 분이라면 끝까지 싸우셨을 것이다."

 

이렇게 결론이 나자 분열되었던 조정이 단합하여 싸움터로 나아갔고, 결국 침략군을 무찔렀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도덕적 약점이 있고 실수도 하며 또 그 능력은 필부의 능력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도덕적 약점이나 실수가 없으며, 또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 죽은 뒤의 능력이 훨씬 더 크기도 합니다.    저도 저 솔레이마니라는 사람은 전혀 모르지만, 이번 일은 트황상이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 

 

위 기사 중 미국-이란 갈등과는 무관하게, 그 중에서 매우 공감이 가는 문구가 하나 있어서 공유합니다.  몰고다니는 자동차나 들고다니는 가방 같은 물질적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가 입증된다고 믿는 분들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의 은행잔고나 저택의 크기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아보다 더 큰 대의에 대한 신실함으로 정해진다.  이 이란인이 가진 것을 살 만한 돈은 트럼프에게는 죽었다 깨도 없다."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HMS_Warspite_(03)
https://www.pinterest.co.kr/pin/22588435618826108/?lp=true
https://en.wikipedia.org/wiki/Iron_Duke-class_battleship
https://en.wikipedia.org/wiki/HMS_Emperor_of_India
https://www.pinterest.pt/pin/2111131064442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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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엽기당주 2020.01.09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야 이슬람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트황상께서 암살로 멋진수염 아저씨를 천당으로 보내버린게 실책이라고 하신 말씀은 깊이 공감합니다. 미국의 능력이라면 아주 여러가지 방법으로 조여줄수도 있을텐데 하필이면...

    죽은자는 죽은 순간부터 그 상태 그대로 고정이 되어버리다보니 영웅 혹은 신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라.. 대량양산된 추종자들의 믿음은 전부다 말살시킬때까지 흔들리지 않을거란건 역사상 수많은 예에서 찾아볼수 있죠. (그리고 전부다 말살시키는건 전부다 실패했고요)

    거참..왜 이런짓을 했는지..

    • 명예 중동인 2020.01.10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미군의 이라크 주둔 이후 꾸준히 이라크 내 미군과 미국민을 공격해왔어요.2012 이라크 내전 발발 뒤에는 미군과 일시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도 했고 좀 더 전인 아프간 전쟁 때는 탈레반에 대항하는 아프간 내 시아파 무슬림들을 후원하기도 했는지라 평가가 나쁘지는 않지만.이란계 민병대의 의도적인 로켓포 공격으로 인한 미국 민간인 사망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죠.

  2. 복실이 2020.01.09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장 잘 보고 있습니다. 나시카님은 혹시 유튜브 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한국에서 다루는 사람이 많지 않은 나폴레옹 시대 이야기와 생활상을 다루시면 나름 인기가 있을거 같은데요. 일단 저는 구독 좋아요 한방씩 날려드릴 의사가 있습니다.

  3. 수비니우스 2020.01.09 0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도덕적 약점이 있고 실수도 하며 또 그 능력은 필부의 능력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도덕적 약점이나 실수가 없으며, 또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 죽은 뒤의 능력이 훨씬 더 크기도 합니다. " 이 문장에 공감 많이 되네요. 박정희와 노무현도 그랬고... 사실 국외와 이란 쪽에 무심한 저로서는 이번 사태로 휘발류값이 또 뛰는것 아닐까 하는 부분만이 신경쓰입니다.

  4. 루나미아 2020.01.09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메이니 이후의 테러지원국 신정국가체제보다는 모사데크에서 이어진 체제가 이란에게도 외국에게도 더 나았겠죠? 보다 자유롭고 세속적일테니까요.
    결과적으로 미국은 악수를 두었네요. 영국 문제인데 꽨히 끼어들었다가.

    • 명예 중동인 2020.01.10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슬람 혁명으로 소비에트 러시아나 나치 독일을 반씩 합친듯한 흉악함을 자랑하는 이슬람 혁명정부가 등장한건 이란 내부 정치사정 문제니 전적으로 미국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저도 참 아쉽습니다.호메이니라는 인물이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모사데크조차 통제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약간 있었다고 보긴 하지만요.

  5. 빈배 2020.01.10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조금 달리 봅니다만... 사람은 신념 때문에 죽을 수도 있지만 사람을 살리는 건 빵 한조각이죠. 트럼프가 속물인 만큼 언제 어디서든 멈출줄 아는 인간입니다. 저러고 멈춘다는 게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가지만 트럼프는 항상 그래왔구요. 지금 장군하나 죽이고 전쟁을 하지않고 제재만 가하는 건 미국으로서는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6. Spitfire 2020.01.12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란혁명수비대가 뭐하는 곳인지 잘 모르고 글을 쓰신거 같네요. 혁명수비대는 나치친위대나 다름없는 독재정권의 앞잡이들입니다. 권력의 핵심이고 사실상 이란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들이죠. 미국이 이란을 제재하는 것에 일말의 동정심도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집단이 그들입니다. 그 리더의 수염이 멋있다던지 죽음으로 국민들을 결집시킨다던지 하는 감성적인 말씀을 하는 것이 나시카님의 입에서 나온다는게 정말 이질적으로 느껴지네요.

    사람의 목숨은 다 귀하고 어찌보면 우리는 그냥 제삼자일 뿐이지만, 죄값을 받을만한 이의 죽음을 영웅시 하는 것은 좀 부적절한거 같습니다. 그를 칭송하는 것은 한국인이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을 우러러보는거나 다름 없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이란에 그렇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게 보복은 커녕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심지어 남의 나라 여객기를 격추시키는 헛발질까지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7. 아즈라엘 2020.01.13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스파이트의 3번 주포탑은 프리츠X맞고 복구불능되서 스크랩될때까지 사용하는 일이 없었다더군요.
    그리고 광신도 국가에서 어설픈 민주화란 도로 신정국가로의 회귀라는 뼈아픈 경험을 70년대 말에 이란에서 이미 경험했는데 오바마가 또 2010년에 다시 뻘짓거리를 해버렸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가 중동 개판...

  8. bluewing 2020.01.14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레이마니를 그렇게 이야기하기엔 이란 혁명 수비대란게 너무 사악한 존재일텐데요...
    미국의 남미 공작질을 이야기하며 비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란 혁명수비대가 중동과 북아프리카, 아프간 등등에서 작업치고 돌아다닌 것은 별로 관심 안두죠.
    중동 지역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패귄다툼 해왔다는 게 단순히 TV 토론회에서 말싸움이나 한게 아닌데.

  9. ㅇㅇ 2020.01.14 2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인간의 이동 정보를 흘린놈은 이란내의 라이벌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
    어차피 독재국가라서 평생 잘먹고 잘 살수있는게 보장되어 있음 괜히 미국을 공격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파괴한다고? 순진한 발상임,
    미국이 제재를 하든 뭘 하든 밑에있는 개돼지들만 고생하지 그러면 반미로 더욱 공고해지는 이란권력자들.
    둘다 윈윈 입니다.



여태까지 보셨다시피, 당시 러시아군에는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의 외국인들, 특히 주로 독일인들이 많이 종군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외국인들이 러시아군에서 일을 하자면 당장 언어 문제가 큰 장벽이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군 내부의 표준어는 프랑스어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독일인 장교들도 프랑스어에 대부분 익숙했거든요.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때 즈음의 일입니디만, 니에쉬비에즈(Nieshviezh) 인근에서 벌어진 프랑스와 러시아 양측 기병대끼리의 소규모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전투의 혼전 중에 러시아군의 무카노프(Mukhanov) 대령이라는 사람이 부하 장교에게 큰 소리로 명령을 외쳤는데, 그 다음 순간 옆에서 달려든 휘하 카자흐 기병의 칼을 맞고 죽었습니다.  이 대령님이 외친 명령어가 프랑스어였기 때문에 카자흐 기병은 먼지 가득한 혼란 속에서 이 대령을 프랑스군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장교들끼리는 프랑스어로 소통이 잘 되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다수인 병사들과 부사관들도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모든 장교들이 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령 프랑스 옆나라인 영국만 하더라도 프랑스어를 잘못하는 장교들이 꽤 많았기 때문에, 스페인에 파병된 영국군 장교들은 급박한 상황에서 프랑스군에게 항복할 때  Je me rends (즈 므 랑, I return myself, 항복한다)이라는 프랑스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냥 Jemmy Round(제미 라운(드))라고 외치라는 반농담 반진담을 주고 받곤 했습니다.

드리사 기지를 검수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클라우제비츠 소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러시아어를 몰랐고 가진 증빙서류라고는 퓰 장군이 서명한 명령서 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프랑스어로 쓰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당장 '수상한 외국 스파이'로 간주되어 드리사 기지의 초병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물론 크고 넓은 드리사 기지에는 당연히 프랑스어가 되는 러시아 장교들이 있었기 때문에 곧 풀려나긴 했지요.  클라우제비츠는 퓰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만, 그런 그가 둘러보아도 드리사 기지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해서는 많은 점이 불투명했습니다.  기지의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자세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지만, 가장 큰 문제는 거기서 농성한다면 러시아 제1군은 프랑스군에게 포위당한 채 아무것도 못해보고 전멸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가 알렉산드르에게 보고한 내용은 전혀 직설적이지 않은, 굉장히 이리저리 둘러댄 변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알렉산드르가 바보는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도 퓰의 친구인 클라우제비츠가 저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엉망진창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알렉산드르가 마침내 드리사 기지에 도착한 것은 7월 8일이었습니다.  퓰은 짜르를 모시고 기지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방어 태세에 대해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으나, 짜르가 그 주장에 대해 동의하느냐는 눈빛으로 주변 장군들을 둘러보면 다들 짜르와 눈을 마주치기를 피했습니다.  이건 짜르 주변이 다 독일인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군이 총 한 방 쏘아보지 못하고 후퇴하는 치욕을 겪은 것이 다 '퓰의 계획대로 드리사로 철수한다'라는 짜르의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드리사에 와서 보니 방어기지라는 것이 사실상 무덤을 파놓은 것이다 ?  이건 짜르의 위신을 크게 해치는 일이었습니다.  독일인들은 퓰의 입장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짜르의 눈치 때문에 아무도 말을 못했는데, 결국 제3 외국인인 사르데냐 왕국 출신의 알렉상드르 미쇼(Alexandre Michaud)라는 대령이 큰 소리로 이 기지에서 농성하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진언을 올렸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때 결국 알렉산드르는 한쪽 구석에서 울었다고 합니다.  

 

 

(1709년 우크라이나 폴타바에서 벌어졌던 러시아와 스웨덴 간의 전투입니다.  이 전투로 북구의 제왕이던 스웨덴을 꺾고 비로소 러시아가 북구의 강자가 됩니다.  스웨덴으로서도 이 전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 맛없는 음식으로 악명 높은 스웨덴의 전통 요리에 유일한 별미인 미트볼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카알 12세가 퇴로를 찾아 일단 오스만 투르크로 피신하여 거기서 몇 년을 보내는데, 그후 귀국하면서 미트볼 요리법이 스웨덴에 전파된 것입니다.)  

 



러시아 제1군 본진은 3일 뒤인 7월 11일에서야 드리사 진입을 완료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대체 왜 우리가 프랑스군 앞에서 꼬리를 말아쥐고 이렇게 2주간이나 도망을 쳐야 했는가 ? 이럴거라면 대체 빌나까지는 왜 갔던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의아함과 분노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힘이 없을 뿐 가오가 없지는 않았던 알렉산드르는 도저히 이들 앞에서 다시 또 후퇴를 해야하는데 이번에는 특별한 목적지도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제1군 병사들에게 포고문을 내려 1709년 표트르 1세가 스웨덴의 카알 12세를 격파한 폴타바(Poltava) 전투 못지 않은 대승리를 여기서 거두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도 알렉산드르는 꽤 이성적인 짜르였습니다.  고된 후퇴에 지쳤던 병사들의 환호소리를 들을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그래도 하룻밤을 자고난 뒤에는 알렉산드르의 머리 속에서 다시 계산이 체면에 대한 미련을 억눌렀습니다.  그는 조용히 드리사 포기를 선언하고, 장군들의 조언에 따라 프랑스군에 대항하기 좀더 적절한 장소였던 비텝스크(Vitebsk)로 후퇴하기로 했습니다.  


(드리사(Drissa, 벨라루스어로는 Vierchniadzvinsk)에서 비텝스크(Vitebsk, 벨라루스어로는 Viciebsk)까지의 거리입니다.)


(드리사와 비텝스크는 모두 서(西) 드비나 강(Western Dvina)의 강변에 있는 마을 및 도시입니다.)


(19세기 초반 비텝스크의 모습을 그린 풍경화입니다.)



애초에 별 대단한 요충지도 아니었던 드리사에 방어기지를 구축했던 것은 의외로 단순한 이유에서였습니다.  빌나에서 출발할 때 페체르부르그와 모스크바로 갈라지는 길목인데다 서(西) 드비나 강(Western Dvina, 러시아아로는 드비나 강이고 라트비아어로는 Daugava 강)에 접한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강을 끼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19세기 초의 근대전에서는 강이라는 요소가 뭐 그렇게까지 결정적인 장벽이 되지는 못했고,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한다는 것은 좁고 험한 지형의 포르투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 드넓은 벨라루스(Belarus) 평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새로 후퇴할 목표 지점이 비텝스크로 지정되었는데, 여기는 어떤 이유로 목표 지점이 되었을까요 ?  여기에도 뭐 대단한 군사 철학이 담겨있지는 않았습니다.  애초에 드리사를 방어기지로 선택했던 이유인 서 드비나 강은 원래 동쪽에서 흘러올 때 남쪽으로 크게 휜 만곡부를 그리며 서쪽으로 흘러가는데, 드리사에서 동쪽으로 후퇴하다보면 다시 만나게 되는 서 드비나 강변의 도시가 비텝스크였던 것입니다.  결국 비텝스크에 뭐 꿀단지를 묻어놓은 것도 아니고 '일단 후퇴' 외에는 별다른 묘책이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렇게 비텝스크도 방어상에 별 이점이 없는 곳이었다면 차라리 그냥 드리사에서 결판을 내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  아닙니다.  비텝스크 자체에는 별 의미가 없었지만, 후퇴에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바그라티온의 제2군과 합류하는 것이었습니다.  제1군만으로 나폴레옹의 본진과 붙었다가는 각개격파를 당하기 딱 좋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후퇴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무질서한 패퇴가 아니라 질서있는 후퇴에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느 부대가 어느 루트로 어떤 순서대로 이동할지 계획안을 짜는데만도 시간이 걸렸고, 장기간 농성을 위해 준비했던 군수품도 파괴를 하든 수송을 하든 처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다보니 러시아군이 드리사에서 철수를 시작한 것은 알렉산드르가 후퇴를 결심하고나서도 무려 4일이나 지난 7월 16일이었습니다.  

이 모든 난리는 알고보니 쥐뿔도 없었던 방구석 제갈공명 퓰을 믿었던 알렉산드르 본인의 책임이었습니다.  군에서 가장 나쁜 지휘관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지휘관이 아니라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는 지휘관입니다.  또 가장 나쁜 군 조직은 어리석은 인간을 지휘관으로 앉혀놓은 조직이 아니라, 누가 지휘관인지 불분명한 조직입니다.  당시 러시아군이 딱 이랬습니다.  총사령관도 없고, 제1군 사령관 바클레이는 짜르 알렉산드르와 아무 보직도 없이 짜르를 따라다니는 높으신 분 때문에 사실상 지휘관 노릇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짜르가 바로 옆에 붙어 앉아 감놔라 배놔라 하며 (대문호 톨스토이의 표현대로) '조언이라는 이름의 명령'을 남발하니 모든 지휘 체계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애초에 장병들과 함께 하겠다며 편안한 황궁을 떠나 빌나의 거칠고 불편한 사령부로 찾아온 짜르는 나름대로 선의를 다한 것이었지만, 결국 러시아군을 위기로 몰아넣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가 군 사령부와 함께 하겠다며 페체르부르그를 떠날 때 그가 총애하던 여동생 예카테리나 공주가 그토록 말렸는데, 그 말을 듣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알렉산드르가 사령부를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이 모든 실패의 책임이 알렉산드르에게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건 알렉산드르에게는 정말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는데, 그건 곧 러시아군 전체의 피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알렉산드르의 존재 자체가 재앙이었는데,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면서 알렉산드르가 군 사령부에 계속 뭉개고 앉아있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군이 뒤집어 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누군가가 구국의 용단을 내려 총대를 매고 짜르에게 '꺼져'라고 충언을 올려야 했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용기는 필마단기로 나폴레옹의 그랑다르메에 돌격하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아마 상남자 바그라티온에게도 그런 용기는 없었을 것입니다.


(쉬시코프(Aleksandr Semyonovich Shishkov)입니다.  그는 원래 해군 제독이었는데 알렉산드르의 개혁안에 반대하여 예편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러시아어를 더럽히고 있는 외국어, 특히 프랑스어를 추방하자는 학회 활동을 하는 등 러시아 민족주의 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알렉산드르는 자신이 쫓아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그의 민족주의 운동에 깊은 인상을 받고 다시 그를 국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바 있습니다.)


(발라쇼프(Alexander Balashov)입니다.  이 사람도 원래 군 장성 출신으로, 당시 경찰청장 직위를 가지고 짜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아락체예프(Alexey Andreyevich Arakcheyev)입니다.  그는 1810년에 이미 국방부 장관직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백의종군한 것은 아니었고 국무회의 위원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짜르의 명령을 글자 그대로 충실히 수행하는 충신이었고, 아마 그래서 감히 짜르에게 직언을 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관 중에서도 진정한 용기를 가진 남자들은 있습니다.  당시 국무부 장관이던 쉬시코프(Aleksandr Semyonovich Shishkov)가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주도 하에, 경찰청 장관 발라쇼프(Alexander Balashov)와 전직 국방부 장관 아락체예프(Alexey Andreyevich Arakcheyev or Arakcheev)가 연명으로 알렉산드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는 그 편지를 쓴 이들도 감히 알렉산드르에게 직접 이 편지를 전달하지는 못하고 드리사에서의 짜르 집무실 책상 위 여러 서류들 사이에 올려만 놓았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르는 드리사에서 철수할 때도 대체 그 편지를 읽었는지 어쨌는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이 용감한 삼총사는 애간장이 끓었습니다.  그런데 비텝스크에 거의 다 도달한 곳인 폴로츠크(Polotsk)까지 다 와서는, 갑자기 짜르가 아락체예프에게 툭 한마디 말을 던졌습니다.  "당신들 메모를 읽어 보았소."  아마 아락체예프의 심장이 덜컹 했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르는 나름대로 용기있는 군주였습니다.  그는 그 길로 말을 타고 바클레이의 숙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초라한 저녁을 먹고 있다가 짜르의 급작스러운 방문을 받고 놀란 바클레이와 1시간 정도 회담을 한 뒤,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군을 떠나 모스크바로 갔습니다.

"안녕히 계시오. (이때도 나폴레옹보다 더 유창한 프랑스어 발음으로 Au revoir 라고 했답니다).  내 군대를 장군에게 일임하겠소.  이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군대라는 점을 잊지 말아주시오."

이것이 러시아가 패배에서 승리로 전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즉, 무능한 재벌 2세가 경영에서 손을 떼고 유능한 전문가에게 경영권을 맡기는 순간이었지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1812년 러시아를 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다고 모든 기업이 흥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자비한 경쟁자 나폴레옹이 드리사에서 삽질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던 러시아군을 그대로 내버려둘 턱이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





Source :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er_Shishkov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Aleksandr-Semyonovich-Shishkov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er_Balashov
https://en.wikipedia.org/wiki/Aleksey_Arakchey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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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nhardt100 2020.01.06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리사에서 결전을 치렀으면 백전백패였죠. 35만 프랑스군의 전력이 약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20만 약간 넘는 러시아 제1군만으로 전투를 속행했다면 포병전력 때문에라도 붕괴될 가능성이 높았거든요.

    폴타바 전투, 폴타바는 항상 중요 요충지로 전투가 자주 벌어졌죠. 1399년 보르스쿨라 강 전투(제 1차 폴타바 전투), 1709년 제2차 폴타바 전투 모두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분수령이었는데 재미있게도 모두 동방의 군대가 서방권 군대를 격파했고 향후 역사를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1399년 전투가 매우 중요한 것이 이 당시 리투아니아가 이겼다면 오늘날 비스툴라 강부터 아무르강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차지했을지도 모르죠.
    1709년도 마찬가지인게 이 때 스웨던이 이겼다면 발트해와 북해부터 아무르강까지 스웨덴 제국이 들어섰을지도 모를 정도였죠.

    • 흥부 2020.01.07 0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자꾸 러시아를 동방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유럽인들은 자꾸 그러던데 이제 한국인들도 따라함.
      게다가 프랑스나 스웨덴은 러시아에 비해 서방일지 모르지만 폴란드는 러시아하고 똑같다는(폴란드인들은 러시아인에 비해 자기네가 더 유럽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 reinhardt100 2020.01.07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간단합니다. 서방 카톨릭-프로테스탄트 계열 종파와 다른 동방 정교의 최후 보루가 모스크바 대공국이었고 그 직계가 러시아니까요. 러시아 스스로도 우리는 서방권의 신성로마제국 같은 참칭(?)제국과 다른 제3의 로마로써 진정한 로마제국의 후예는 자기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721년 러시아 제국이 공식적으로 들어설 때 제국 선포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거였죠.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를 추진했다고 하지만 실체는 어느 정도 '러시아판 중체서용, 동도서기, 화혼양재'였습니다.

      이러니 로마 제국의 유럽 본토 상당부분을 가진 서방권 국가들이 러시아를 볼 때 동방권으로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폴란드 같은 경우, 서슬라브족인데도 초창기부터 신성로마제국의 봉신국이었다가 로마교황으로부터 직접 국왕으로 책봉받아 독립한 국가다보니 서방권이라고 스스로 여길 이유가 있었습니다. 중세에는 '서방 로마 총대주교(교황)과 동방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중 누가 교구 관할권을 가지고 있냐?'가 동방과 서방을 구분하는 주된 기준 중 하나였는데 보헤미아, 모라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불가리아 등과 달리 폴란드,헝가리와 러시아는 건국 당시부터 서방 총대주교와 동방 총대주교의 교구관할권에서 단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분명 이유는 있습니다. 반대로 현재 분명 서방권이지만 중세에는 동방권이었던 지역이 남이탈리아와 시칠리아입니다. 이들 교구 관할권이 레오왕조 시절 성상파괴운동 할때 교황이 황제한테 들고 일어나면서 격분한 동방제국이 멋대로 교구관할권을 자기네 총대주교쪽으로 이전시킨 적이 있었거든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중세 당시 가장 특이한 지역이 베네치아입니다. 분명 중세 기준에서 서방권은 확실한데 정치적으로는 특이하게 동방권이었거든요. 누가 봐도 건국 당시부터 봉지권 등을 수여한 주체가 서방 로마 총대주교나 서방제국 황제가 아닌 동방제국 황제였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서방권도 동방권도 베네치아는 자기네 영역이라고 확언할 수 없었습니다. 이 덕분에 중세 이탈리아에서 격심했던 교황파와 황제파 간 다툼에서 자유로웠고 제4차 십자군에서 '동방제국의 3/8의 주권자' 같은 지분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 흥부 2020.01.07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이론적인 거구요...
      예를들어 러시아는 몽골이네 또는 피레네 남쪽은 아프리카네등등.
      한국인은 아마 러시아인 독일인 같이 있으면 구별도 못할텐데 러시아는 동방 또 어디는 어디 그러는거 보면 좀 그렇다구요.
      러시아가 어디를 봐서 동방인지.

  2. 롬. 2020.01.06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막연히 몇 줄로서
    ‘나폴레옹이 겨울에 러시아로 쳐들어갔고, 모스크바를 함락시켰으나 청야전술로 인해 대패하였고 몰락하였다.’ 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막연히 청야전술을 썼다 라고만 알고 있었던 러시아도 사정을 알고보니 위태위태했었군요. 자존심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대단하다 싶습니다. 나폴레옹마저도 자기 실수 부분은 신문기사에서 슬쩍 빼거나 부하에게 슬쩍 떠넘기고 했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3. 롬. 2020.01.06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유명한 클라우제비츠 마저 요새를 둘러보곤 차마 개판이라 말 못 하고 장황한 딴 소리로 둘러댔다니... 현대인의 입장에 비춰 이해해봐도 참 난감한 상황이다 싶군요. 클라우제비츠 눈에 헛점이 안보일리는 없고, 그렇다고 직언 하기엔 관계가 좀 그렇고... 역시 중간 관리자란.. ㅠ 아 역시 역사는 알고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다 싶습니다 ㅎㅎ

  4. 카를대공 2020.01.06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년의 세월을 넘어 알렉산드르2세의 성향은 진모씨 같았다는 진실이 밝혀졌군요ㅎㅎ

  5. 샤르빌 2020.01.07 0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쿠투조프는 언제쯤 재등장 할까요?

  6. 네시오 2020.01.07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볍게 알고 있던 내용을 이렇게 세세하게 보게되네요. 잘 봤습니다.

  7. 별이네 가족 2020.01.07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 정말 대단한 나라죠 ^^ 잘보고가요!!하트꾹^^★가끔 별이네 가족이야기 방문 부탁드려요!!

  8. 2/28일 입대 2020.01.07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소 느리고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는 하지만, 알렉산드르가 황제로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네요...다만 그게 다 남의 피와 땀이란 건 함정;;

  9. 웃자웃어 2020.01.09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질문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왜 유럽국가들은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국민개병제를 도입하지 못하고,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도입한 건가요?

    • nasica 2020.01.09 2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큰 규모의 군대가 필요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클 것입니다. 군인의 숫자가 많을 수록 비용은 많이 나가는데 세금은 적게 걷게 되니 좋을 턱이 없지요.

    • 알키비아데스 2020.01.10 2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민개병제가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는 닭이냐 달걀이냐 문제입니다. 아테네가 중장보병을 동원하면서 귀족정치가 깨졌죠

  10. 롬. 2020.01.10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좌 격인 nasica님이 계신 이곳에 댓글을 다는게 조심스럽습니다만... 웃자웃어님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늘상 존재하는 상비군은 정말 돈 먹는 하마 입니다.
    국가의 존재에 있어 군대란 필수불가결한 존재입니다만 다만 그 규모와 형태에 있어 역사적으로 다양하지요. 우리 일상생활에 비교하자면 상비군은 화재보험이랄까?
    아예 안들순 없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위협에 대한 대비인데 과연 보험료를 얼마나 낼지 보험금은 얼마나 맞춰둘지는 사람마다 다르지요. 발생할지 안할지 모르는 위협에 대한 대비란 측면에서 보면 가정집의 보험료는 상비군에, 보험금액은 유사시 동원 예비군 수에 비교하면 될겁니다. 보험료에 얼마를 쏟으시나요? 다른데 돈 들어갈 곳은 쌓이고 쌓였는데 말이지요. 국가재정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11. 롬. 2020.01.10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대란 기본적으로 별다른 생산활동 없이 소비만하는 집단입니다. 의외로 상비군이란게 돈이 굉장히 많이 나가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군인들 월급만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인건비에, 사람만 모아 놓은다고 되는게 아니라 훈련하는 훈련비에, (오늘날 21C 군대에서도 합동훈련 한다고 전투기 띄우면 제트유 값이 1대당 시간당 대략 2천만원 이져... 미사일이라도 쏘면 + 알파로 몇천만원... 비싼건 1억이요. 그래서 우리나라 경공격기가 인기 있는... 국가대 국가간 전면전엔 유지비고 뭐고 젤 센 애를 써야 하는데.. 전면전이 드문 요새는 저격수 한명 잡자고 시간당 2천만원 짜리 전투기 띄워서 발당 1억 짜리 미사일 뿌리기가.. 좀.. 훈련소에서도 입으로 빵빵 하다가 사격훈련 때나 쏴 보는거고 입총은 나폴레옹시절에도 썼던 유서깊은 훈련법..당시 영국이나 실탄 쏘며 훈련 했죠..)창, 칼, 화살등 전투용품도 다 소비재인데다 이게 한번 사서 창고에 쳐박아 두고 땡이 아니라 녹이 안슬게 계속 관리를 해야죠. 유지비, 유지인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군마, 말도 군마로 쓰는 혈통 좋고 우람한게 있고 그냥 마차나 끄는 짐말이 있고.. 자동차도 배기량 좋은게 잘 나가듯이 군마가 더 비싸고 관리비도 더 나가죠. 보통 일반적인 말이 현 시세로 2천만원정도 거진 중형차 한대값. 그리고 얘들 근육을 유지하려면 사료도 질좋은 고급으로 먹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뛰어서 근육량도 관리해야하고 오늘날 차계부 쓰는거보다 더 손이 많이 갑니다.

    이렇게 정성들여 돈 들여 관리해도 적이 안 쳐들어오면... 군대는 딱히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소비집단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공장은 돌리면 물품이 나오는데 군대는 유지관리해도 전란이 아닌 평상시엔 딱히 쓸 일이 없지요. 그래서 돈 먹는 하마입니다.

    이러니 상비군을 적게 둘 수 밖에 없는 거죠.

    다만 프랑스는 나폴레옹 때 거진 전유럽에 다굴(?)을 맞았고 상비군만으로 감당이 안되는 상황에서 민족주의의 결합 및 징집병제와 함께 국가총동원전이 되었지요.

    근데 사실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인 바스티유 감옥 습격부터 나폴레옹이 뜨기 전까지 내부 혼란•외세 침입을 기존의 상비군으로 다 막았....
    다 루이 14세 때부터 빚을 내서라도 부지런히 여기저기 때리고 다니며 유지하던 상비군 때문...


모든 사람은 돈과 행복에 대해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습니다.  크게 2가지 학파가 있지요.

"근검절약해야 나중에 잘 살 수 있다"  vs. "행복은 저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행복해야 한다."

근검절약파의 논리에 대해서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약관화합니다만, 굳이 좋은 비유나 사례를 들자면 주말의 비유가 있습니다.  즉, 금요일 오후에 기분이 좋으냐 일요일 오후에 기분이 좋으냐 하는 것이지요.  금요일은 평일이라서 일하는 날이지만, 그래도 오후 3~4시 즈음 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니, 대부분의 분들이 금요일 오전부터 기분이 좋습니다.  주말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에 비해서 일요일은 이미 즐겁게 놀고 있을 시간이지만 오후 3~4시 즈음 되면 기분이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하지요.  월요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똑같이, 근검절약하는 삶은 당장은 힘들더라도 항상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당장 행복하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은 바보짓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게 또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전해 들은 이야기에 불과합니다만, 어떤 60대 정년퇴직자 부부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남편분은 대기업에서 부장 정도로 정년퇴직하셨대요.  당연히 어느 정도 재산도 모아놓으셨고 애들도 다 키워놓으셔서, 이제 여행이나 다니면서 느긋하게 살자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런데 원래 돈이라는 것은 아무리 많아도 (정말 백억대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항상 불안하거든요.  그래서 이 퇴직 부장님도 흔히 하듯이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을 하셨대요.  그것도 젊을(?) 때나 가능한 직업이라면서, 경비원으로 딱 2년만 더 일해서 약간만 더 모으고 그 다음에 세계 여행을 다니겠다고요.  그런데 그렇게 경비원 근무하시다가 (어느 동네나 있기 마련인) 악질적으로 갑질하는 아파트 주민 아주머니에게 시달리시다가 그만 뇌출혈인지 뇌졸증인지를 일으키셔서 쓰러지셨답니다.  결국 세계 여행은 물건너갔고, 퇴직 부장님은 반신불수가 되어 병상에 계시고 그 사모님도 그 병구완으로 고생 중이시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이건 중년들이건 돈을 벌고 쓰고 모으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철학과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가령 매년 유럽으로 1~2주씩 여행을 가던 젊은 친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말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30대에 보는 로마와 40대에 보는 로마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못 보면 살아 생전에 30대의 로마는 절대 못 볼테니 아쉽쟎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젊을 때 저축보다는 소비에 열중하는 것이 좋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모아놓은 돈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고, 소비해서 써버린 돈은 날려버린 기회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지금 매년 써버리는 100만원이 10년 후에는 100*10 = 1천만원이 아니라 2천만원 혹은 1억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20~30대에 돈을 모으기보다 해마다 유럽 도시들을 하나씩 돌아보았다면, 많은 추억과 사진은 남았을지 몰라도 대신 40대에 생겼을 수도 있었던 아파트 1채가 날아가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어 숙어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You cannot eat a cake and have it."

직역하면 케익은 먹으면 없어진다는 뜻인데, 즉 이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질 수는 없으며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밥 딜런(Bob Dylan)의 명곡 One more cup of coffee 가사 중에도, 이런 내용이 나오지요.

Your daddy, he's an outlaw
And a wanderer by trade
He'll teach you how to pick and choose
And how to throw the blade 

너희 아빠는 무법자야
직업으로는 방랑을 하시지
그 분이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은 선택을 하는 법과
칼 던지는 법 정도야

가장 중요한 것은 how to pick and choose, 즉 인생의 여러가지 갈래길에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에 따라 인생은 정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아갑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런 갈래길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당장의 소비로 확실한 행복을 누리느냐 아니면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저축하느냐는 많은 사람들에게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갈래길입니다.  과연 정답이 있을까요 ?

정답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소비는 조금만 하시고 저축을 많이 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즐거운 소비보다는 성실한 저축이 더 행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것은 적당해야 합니다.  무조건 소비를 억제하고 저축만 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근검절약해서 저축을 하는 사람에게 너무 '돈돈돈 거리지 말라'고 핀잔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람나고 돈 났지 돈나고 사람 난 거 아니다, 돈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다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요.  또 돈이야 한번 대박을 터뜨리면 언제든지 많이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업가, 투자가, 심지어 도박꾼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진실된 명언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영국 금융사인 바클레이즈(Barclays)의 위탁을 받아 Centre for Economics and Business Research (CEBR)가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행복은 돈의 액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저축이 늘어나느냐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즉 행복은 소득액이 많으냐 적으냐에는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저축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는 눈에 띄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서베이 결과를 보면 연 소득이 5만불이 넘어서면 그 이상 돈을 많이 벌더라도 행복감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저축액이 늘 수록 행복감에는 큰 영향을 준답니다.  늘어나는 저축액보다 행복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딱 하나, 가족과의 좋은 관계 뿐이라고 하네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입니다.  전에 인용했던 어떤 젊은 부자의 인생 조언에도 나옵니다만, 행복이라는 것은 돈이 많으냐 적으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향상시키고 있다는 성취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하지요.  그게 사업 실적이든 마라톤 기록이든 프랑스어 실력이든지요.  그런데 그 향상 정도가 가장 객관적으로 측정되고 또 가장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저축계좌의 액수입니다.  그러니 저축액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면 그 액수에 상관없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니, 기분이 좋아질 수 밖에 없지요.  

 

 



관심있으신 분들은 아래 원문 기사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rmoney.com/saving-banking/savings-not-income-is-the-key-to-happiness/
소득이 아니라 저축이 행복의 열쇠이다.

https://www.businessinsider.com/saving-money-could-make-you-happier-2013-11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지만, 저축으로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https://www.cnbc.com/2019/10/10/study-millennials-who-buy-less-and-save-more-are-happier.html
밀레니얼 세대 중 더 적게 쓰고 더 많이 저축하는 젊은이들이 더 행복하다 

https://www.businessinsider.com/saving-money-could-make-you-happier-2013-11
저축하는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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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nhardt100 2020.01.02 0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는 말씀이십니다.

    얼마 전 뉴스에도 나왔지만 모딜리아니의 생애주기 가설 같은 것만 봐도 청년기 소비가 얼마나 삽질(?)인지 결론 나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월급의 적어도 50~70%는 저축해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순자산 증식의 기초 군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한국의 상위 1%의 금융순자산이 10억원선을 돌파한게 2016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가상승분이나 각종 변수 고려하면 향후 10년 정도는 10억원 대에서 머물 겁니다. 미국은 2016년 기준으로 약 한화 86억원으로 알고 있는데 미국도 향후 10년 정도는 잘해야 90억원대에 머물겁니다.

    개인적으로 노후에 안심할 수 있는 금융자산 기준이 1억 U.S 달러라고 보는 사람으로써 저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겠죠.

    • Franken 2020.01.02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딴족같지만 100만도 아닌 1억 미국달러는 원화로 1100억 넘는 천문학적인 돈인데 기준이 너무 높군요. 웬만한 부자 10명 자산인데...

    • reinhardt100 2020.01.02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괜찮습니다. 사실 상당히 높은거 맞습니다.

      다만, 목표는 일단 크게 잡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점점 불안해지는 국내사정도 있고 해서 그 정도 잡은 것입니다.

    • nasica 2020.01.04 1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라인하르트님의 스케일은 제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ㅋ 1억 달러 !

  2. 그런가요? 2020.01.02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득주도 성장은
    분배받은 돈을 소모함으로써 사회를 돌리는 건데
    이렇게 저축만 권장한다면 사회가 돌아갈 리 없죠

    • nasica 2020.01.04 1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돈없는 서민일 수록 근검절약을, 돈많은 중산층 이상일 수록 소비를 해주어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3. 나삼 2020.01.03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 문재인 정권하에서는 힘든 일이네요..갈수록 세금은 많아지지 부동산 폭등에 막말로 누가 현금을 저축 한답니까

    • nasica 2020.01.04 1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동산 폭등한 것에 비하면 세금은 찔끔 올랐지요. 부동산은 워낙 덩어리가 커서 서민들이 재테크 수단으로 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오를 수록 빈부격차가 벌어집니다. 전세계적으로 저금리에 유동성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 잡을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 저로서는 대출규제와 보유세 인상 외에는 뭐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네요.

  4. 2020.01.04 0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금리 사회에서 저축이라...

    물가상승에 압살당할 뿐입니다.

    적정비율로 투자를 해야죠.

    고금리 시대면 모를까.

    • nasica 2020.01.04 1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저금리인 이유가 (대부분의 분들은 공감 안 하시겠지만) 물가가 안 올라서 저금리라고 합니다. 하긴 10여년 전에 가솔린 가격이 2000원 정도 하던 것이 기억나는데 지금은 1600원 밑이네요.

      저금리라서 넘쳐나는 돈이 부동산으로 몰려서 주로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지요. 저금리 상황에서는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거품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데, 거기서 돈을 버느냐 잃느냐는 둘째치고 일단 거기에 참여를 하려면 종자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축이 중요합니다. 적금 붓듯이 ETF 같은 것을 사는 것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적금이든 예금이든 주식이든 근검절약해서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Franken 2020.01.04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마인드로 주식에 함부로 도전했다 패가망신한 이가 수두룩하며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한 현실을 생각하면 저축이 밑지는 장사가 절대 아니죠.

  5. nasica 2020.01.04 1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최근에 본 명언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수익률 20%는 5년마다 한번 망한다.
    수익률 10%는 10년마다 한번 망한다.
    수익률 5%는 20년마다 한번 망한다.
    수익률 2%는 50년마다 한번 망한다."

    High return, high risk.

    현재 산금채 금리 1.7%. 우습게 여기면 안 됩니다.

  6. 루나미아 2020.01.04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저축을 하려면 목돈을 마련할 유인이 있어야 하는데(40대에 내 집 마련과 같은), 요즘은 집값도 너무 높고 고용안정도 불안해서 미래에 체념하는 경향이 커지는 것 같아요.

  7. 진충보국 2020.01.05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퍼 공감입니다, 요즘 금리도 약하고 해서 기존 달러랑 금통장 자동이체들 외에는 신규 예적금 안하고 들어오는 월급/수당 그냥 통장에 놔두고만 있는데도 기분이 더 좋고 돈도 더 적게 쓰게 되는것 같습니다.ㅎㅎ

  8. 나삼 2020.01.07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 글 속에 사상이 보인다고...서민은 이래야 하고 중산층ㅇ은 이래야 한다 말씀이 보이시는데.....대체 서민 중산층 기준은 뭘까요? 연봉? .자산?.. 제 친구들이 전형적인 강남 좌파들이라 이야기 해보면 느꼇던 감정들이 나시카님에게 느껴집니다. 본인들은 대기업 다니고 해외여행. 겨눌이면 펜션이다 콘도니 놀러다니면서 서민들은 저축 하라고 합니다. 정작 본인들은 머리좋게 제가 알지도 못하는 투자들을 하면서요. 선거때가 되면 자영압자인 제가 싫어하는 정책 쓰는 민주당에 표줍니다. 정작 본인들이야 자기네 집값오르고 대기업 운용자 저같은 자영업 죽이는 정책 상관도 없고 그 쪽이 마냥 도덕적이라 종교처럼 여기고 잇습니다. 재벌 2세보다 전문경영인이라고요?... 실제로 보면 전문경영인은 단기 성과에 메달리다가 쫒겨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공한 기업들 재벌 2ㅡ3세 이룩한 경우 많습니다. 나시카님 말투에서 재벌 2ㅡ3세에 대한 혐오 전문경영인에 대한 선호가 이번 러시아편 글에서 느껴집니다

    • PANDA 2020.01.14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민 중 산층에 대한 구분법이 어딨나요;;

      자기가 서민이라고 생각하면 서민이고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면 중산층인겁니다

      저희집도, 부동산 순자산 40억에

      가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겨울에 콘도니 펜션이니, 해외여행이니 갑니다만

      이마트 한정 세일 품목 뭐 있는지 매일마다 챙겨보면서 닭가슴살 만원어치 4000원 세일할때 줄서서 사가고

      소불고기 사먹은날은 오늘 사치좀 부렸다고 생각하는

      실질적으로 서민이라고 생각하는 집입니다


      제 친구들도 죄다 강남 토박이들인데 말들 들어보면 다들 비슷하게 생활하고 있고, 한정 세일할때 30분 전부터 줄서서 사갈만큼, 돈 있는 강남 사람들 돈 아끼며 삽니다

      과연 이 사람들중에 자기가 서민이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요;;

    • 에타 2020.01.15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은 횡설수설하시는데 그래서 도대체 무슨말을 하고싶은지 모르겠네요. 일단 나시카님 까고 보기? 적어도 본문의 내용과 어느정도 연관이 있어야하는데 그냥 본인 아무말 대잔치 하는듯

  9. 한마디 하고갑니다 2020.01.07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분이 사실 리무진 리버럴이죠. 전형적인 강남좌파. 자기는 20억짜리 아파트살고 유명대기업다니면서 서민들에게 어리석다고 훈수두는 그런 분이죠. 그러니깐 서민들이 어떻게든 아등바등 올라갈려고 몸무리치고 몸비트는걸 어리석다고 비웃는거죠.

    • qh 2020.01.08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민들이 어떻게든 아등바등 올라갈려고 몸무리치고 몸비트는걸 어리석다고 비웃는다"라고 쓰셨는데 아껴서 저축하라는 말이 그렇게 들리시나봐요?

  10. 까까님 2020.01.08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극화와 갈등이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가 댓글에서도 느껴지네요 ^^
    그렇게 비난받을 글은 아닌 것 같지만 초딩이 그린 그림이나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나 극혐 부터 극호 까지 평가가 갈리는 건 당연한 일이니 어느 게시판에나 있는 당연한 현상이려니 싶습니다
    투자의 종자돈이 대출이던 저축이던 일장일단이 있을 수 밖에 없겠죠
    제가 어렸을 때는 은행 예금 이자가 15% 이상 했었고, 대신 담보가 없으면 개인이나 중소기업이나 대출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다고 기억합니다
    지금은 1~2%대 이자율에 대출 안받으면 바보 취급을 받는 세상이죠
    시류가 이렇게 급변했는데 저축하란 말이 꼰대질로 들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자기자본이 없는 회사의 주식을 사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정경제를 자본잠식 상태에서 성과급 잔치하는 회사 처럼 만들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시면 손 들어보세요
    '서민의 발버둥' 말인데요, 간단히 말 해 대출 받아 아파트 사는 걸 말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해서 강남에 '똘똘한 한 채' 장만하고 1억 USD 까지는 아니어도 경제적인 근심걱정 없이 소비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노후를 금전적으로 확보하고싶은 것이구요
    근데 강남좌파를 보면 그 똑같은 일을 먼저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쉽게 줍줍한다고 욕 먹는 '현금부자'가 자신이 지향하는 포인트인데 롤모델로 삼으면 삼았지 비난하는 건 자기 얼굴에 침 뱉기가 아닌지...
    저도 흙수저에서 시작해 40대 후반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보면요... 나시카님 말이 맞다고 느껴집니다
    소비와 균형을 맞춘 저축은 꼭 필요합니다
    제게 자산이란 게 생긴 후에는 예금이자율이 5%를 넘어갔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IMF 직후에 월급쟁이가 되서 20여년 정도 돈을 벌어왔는데 그 중간 쯤에 금융위기가 있었지요
    솔직히 저축의 덕을 본 세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 위치에 오는 데에 제일 크게 기여한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면 역시 저축을 제일 먼저 꼽게 됩니다
    수 많은 선택의 기회... 라기 보다는 파산의 위기가 상시적으로 있는 흙수저 집 장남이었지만 대출 안받고 살아온 것이 가장 큰 성공(?) 요인이었구요, 어떻게 보면 더 큰 성공으로 못가게 된 실패 요인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하이리스크를 감당한 수 없는 형편에 도박에 온가족의 명운을 걸 수는 없었으니 역시 성공요인이겠네요
    나시카님 이번 글에서 가장 눈여겨 본 부분은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아무리 개똥같은 것이라도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걸 만들고 끊임없이 보완해가려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이해해보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되더라구요
    그러다 보면 남에게 훈수 둘 생각도 없어지고 훈수가 아닌데 훈수질로 받아들이는 오해도 적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인생은 몸부림만 치고 살기엔 너무 안타깝도록 소중한 것입니다
    몸부림이 모든 걸 정당화 해주지도 않지요
    신호위반 하고 사거리를 가로지르다 똑같이 신호위반한 오토바이 박아놓고 '먹고 살려다 보니...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왜...' 등등 해대는 택시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종자돈을 저축으로 장만할지 대출로 해결할지 역시 철학이 있고 나서 그 안에서 결정할 문제겠지요
    업무시간에 쫒겨 뻘글만 길게 늘어놓고 사라집니다

    • 까까님 2020.01.08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못짚은 게 아니라 강남좌파를 비난하면서 같은 포지션을 추구하는 이중성을 지적한 건데요
      그렇게 안보였다면 할 수 없구요 ^^

  11. 수비니우스 2020.01.08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 소득이 5만불이 넘어서면 그 이상 돈을 많이 벌더라도 행복감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저축액이 늘 수록 행복감에는 큰 영향"이라는 점은 정말 옳은말 같습니다. 제 연 소득은 5만불이 안되니 제 행복감에 제 저축액은 큰 영향을 주지 못할것 같습니다.

  12. PANDA 2020.01.14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건 서민 우롱하는 말인것 같아 말하기
    뭐합니다만 제 주변서 보이는 현실을 말하자면..


    서민특 :

    요리하기 귀찮다고 배달음식 시켜먹을때 많음

    보너스나,성과급 등 계획 없는 돈 생기면 쉽게 지름

    연봉 3000인 신입사원이 1년만에 k3 뽑고 다님
    그러다가 5,6년도 안돼서 k5으로 차 바뀌어 있음

    일상적인 소비에서 절약을 잘 안함



    (서민이라 생각하는) 중산층 특 :

    배달음식은 돈 낭비라고 생각함, 특별한 상황 아니면 안시킴

    보너스나 성과급 나오면 바로바로 저축함

    신입사원 연봉 4000이더라도 필요가 없으면 차 안삼,
    애초에 사회 초년생이 차 구입하는걸 기회비용 손해라 여김
    (전체 자산대비 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질때까지는 구매 고려 X)
    차 사더라도 경차 사서 굴림.

    일상적인 소비에서 지독하게 절약하고

    써야할 때 (해외여행등) 는 확실하게 씀




    • PANDA 2020.01.14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같은 경우는

      월 세후 219만원 버는 중소 가까운 중견기업 3년차 월급쟁이인데

      월 생활비 50쓰며 살고 있고, 이것도 , 매우 호화롭게 사치부리며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반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