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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사(Drissa)로 가는 길 - 후퇴하는 러시아군의 사정 일반적으로 후퇴하는 군대는 비록 작전상 후퇴라고 할지라도 사기가 매우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자국 내에서 영토를 내주며 후퇴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1808년 말 자국 영토도 아닌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탈출하기 위해 코루냐 항구로 후퇴하던 존 무어 경(Sir John Moore)의 영국군이 추위와 와인 속에서 그야말로 녹아내리던 것을 상기해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 후퇴할 때는 사기 뿐만 아니라 부상자와 환자, 쌓아놓았던 각종 보급품의 처분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당장 후방 걱정은 하지 않고 날랜 부대들로 쫓아가기만 하면 되는 추격군의 입장과, 부상병과 보급품을 수습해서 움직여야 하는 후퇴군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고, 보통 그런 문제들 때문에 결국은 후퇴하는 군대는 추격하는.. 2019. 12. 30.
나폴레옹은 모에-샹동을 마셨을까 모엣-샹동을 마셨을까 ? 최근에 조선일보에서 조선일보답게 유명 와인 브랜드인 Moët & Chandon 관련된 기사를 냈더군요.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방의 에페르네(Épernay) 현지 취재 기사였는데, 그냥 Moët & Chandon 사의 광고 이하도 이상도 아닌 그런 기사였습니다. https://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9122000173 제가 이 기사를 클릭한 것은 어떤 포털에서 '나폴레옹이 사랑한 술, 승리의 순간마다 삼켰다'라는 제목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나폴레옹이 진짜 좋아해서 항상 챙겼던 와인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샹베르텡(Chambertin) 와인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 와인 이야기인 모양이라고.. 2019. 12. 26.
1812년, 드리사(Drissa)에서의 러시아군 : '전쟁과 평화' 중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는 누구나 인정하는 명작 고전입니다. 여기에는 역사상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며, 많은 역사서에서 잘 다루지 않는 퓰과 그가 기안했던 드리사 방어 진지에 대해서도 꽤 자세히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빌나에서 후퇴한 이후 원래 계획대로 드리사 방어 기지로 후퇴한 러시아군의 내부 상황에 대해서 무척 생생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제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다운받은 영문판 전쟁과 평화를 제 나름대로 번역했습니다. ------------------------------------ 제9권 1812년 제9장 안드레이 대공이 러시아군 총사령부에 도착한 것은 6월 말이었다. 짜르가 함께 하고 있던 제1군은 드리사(Drissa)의 요새화된 병영에 주둔하고 있었다. 제2군은 프랑스의 대군에 .. 2019. 12. 23.
존 바에즈가 전우애를 노래했다 ? - Brothers In Arms 가사 해설 최근에 열심히 보는 웹툰이 있습니다. '호랑이 형님'이라고 네이버에서 토요일에 연재하는 웹툰인데, 우리 전통 설화와 판타지와 조선 초기의 역사를 오밀조밀 짜맞춘 액션+귀요미+무협+의리 계열의 웹툰입니다. 제가 볼 때 정말 대단한 명작입니다.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50305&weekday=sat 나름대로 줄거리가 복잡한 만화라서 여기에서 설명을 하기는 좀 그렇고, 최근 줄거리를 요약하면 곰 일족의 수장이 일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일족의 새끼 중에서 가장 강한 새끼곰을 골라 끔찍한 고통을 겪을 용병으로 요괴들에게 보내는 사연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에 우연히 끼어들게된 그런 용병 출신의 다른 짐승이 그런 현실.. 2019. 12. 19.
제롬 이야기 - 나폴레옹의 일시적 실수 ? 본질적 문제 ! 제롬 보나파르트(Jérôme-Napoléon Bonaparte)는 1784년 생으로서 나폴레옹에게는 15살 어린 정말 아들 같은 막내 동생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1793년 툴롱(Toulon) 포위전을 통해 중위에서 장군까지 일사천리의 승진 가도를 달리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9살이었습니다. 이 툴롱 포위전이 한창일 때만 해도 보나파르트 일가는 고향 코르시카에서 쫓겨나 집도 절도 없이 마르세이유의 월세방을 전전하던 신세였지만 나폴레옹의 출세 덕분에 그 이후로는 생활에 기름칠이 잘 된 편이었습니다. 즉, 제롬은 형의 후광에 힘입어 아주 어릴 때 빼고는 그다지 세상살이가 어려운 줄 모르고 자라났다는 이야기지요. (베스트팔렌 국왕 제롬 보나파르트 전하이십니다. 가만히 보면 이목구비가 확.. 2019. 12. 16.
위기 일발 - 바그라티온의 탈출 바클레이는 엉망진창이었던 러시아군 지휘 체계 안에서 그래도 거의 유일하게 냉정한 두뇌를 유지하고 있던 용의주도한 사람이었습니다. 6월 26일 허둥지둥 빌나 철수를 하는 와중에도 잔뜩 쌓인 군수품에 불을 질렀을 뿐만 아니라 저멀리 떨어져있던 고집불통 제2군 지휘관 바그라티온에게도 전령을 보내어 후퇴하여 자신의 제1군과 합류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잠깐, '부탁'이라고요 ? 군대에서 군사작전을 벌이면서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 어쨌든 바클레이는 그래야 했습니다. 이 어이없는 일은 모두 알렉산드르의 책임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가 바클레이를 총지휘관으로 임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짜르가 바그라티온으로부터 보고를 직접 받고 있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바클레이를 싫어하던 바그라티온은 바클레이를 자신의 상.. 2019. 12. 9.
화장실 이야기 - 고대 그리스에서 나폴레옹까지 서양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를 '꿈의 나라'라고 하며 동경합니다. 서양의 문화적 토대가 처음으로 이루어졌고, 또 민주주의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고대 그리스가 그런 꿈의 나라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는 화장실이 어땠을까 ? 간단히 말하면 이나영이나 한예슬도 화장실에 갈까 정도의 생각이지요. 답부터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도시 중 그래도 가장 화려하고, 또 가장 잘 발굴된 도시인 아테네에도, 공중 화장실은 없었습니다. 또 집집마다 화장실이라고 할 만한 것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테네인들은 어떻게 용변을 보았을까요 ? 뭐, 뻔하지 않습니까 ? 요강을 썼습니다. 영어로는 chamber pot 이라고 하지요. 헬라어로는 .. 2019. 12. 5.
잘못된 시작 - 빌나(Vilna)에서의 프랑스군 네만 강을 건너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나(Vilna, Wilna, Vilnius)에 입성하기까지 총 한 방 쏘지 않았던 프랑스군은 겉으로 보기에는 승승장구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프랑스군이 빌나에 입성할 때, 빌나 주민들의 반응을 봐도 그랬습니다. 당시 빌나는 러시아의 직접 통치 하에 들어간지 약 20년이 채 안 된 상태였었는데, 러시아계 관료들이나 러시아 측에 붙었던 폴란드계 귀족들은 러시아군이 철수할 때 그 뒤를 따라 함께 피난을 가버린 뒤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아있던 폴란드-리투아니아계 주민들은 프랑스군을 해방군으로서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당시 폴란드 창기병 부대를 이끌고 빌나에 거의 처음으로 입성했던 로만 솔틱(Roman Soltyk) 백작의 목격담에 따르면 거리와 광장은 환영 인파로 가득했고 창.. 2019.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