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30대 후반 어느 미국인의 조언

잡상 2019.05.30 06:30 Posted by nasica


저는 FIRE 운동의 추종자입니다.  FIRE라는 것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한마디로 젊었을 때 열심히 벌고 모아서 생계에 급급한 삶에서 탈출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FIRE를 꿈꾸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주로 reddit을 통해서 가끔 읽습니다.  최근에 꽤 인상적인 글을 하나 찾아서, 아래에 간단히 주요 내용만 옮겨 보았습니다.

https://www.reddit.com/r/financialindependence/comments/bsxrat/am_couple_years_away_from_40_time_for_some/

 

 


제목 : 40세까지 2년 남았스.  뒤돌아보며 정리도 좀 하고 조언도 받고 싶네.

TLDR (Too Long, Didn't Read의 준말.  너무 길어서 못 읽는 분들을 위해):  내 20~30대를 돌아보며 든 생각.  얻은 교훈과 저지른 실수.  나보다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나보다 나이든 양반들에게 조언도 받고 싶어.


투자를 더 일찍 시작했었더라면.  난 2011년 이후에야 크게 투자하기 시작했어.  큰 실수였지.  저축은행에서 0.05% 이자 받으며 그냥 앉아있던 내 돈을 마지막 1달러까지 모조리 투자를 해야 했었어.  0.05%라는 낮은 이자가 놀랍다고 ?  그땐 온라인 저축계좌가 없었고 CD(예금증서) 같은 거 이해하지도 못했어.

. 식생활과 건강.  진짜 중요한거야.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야.  설탕, 탄수화물, 고기 같은 거에 탐닉하지마.  니 몸에 맞는 균형잡힌 식단을 먹으라구.  잠도 충분히 자.  난 보통 5~6시간 자지만, 요즘은 7시간은 자려고 노력 중이야.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 중에 니가 좋아하는 것을 습관적으로 하라구. 

20~30대엔 스킬 극대화, 그러니까 평생 써먹을 재주 배우는 데에 집중해야 해.  나도 밤늦게까지 진짜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어.  일하는 동안에도 내 경력과 스킬에 촛점을 맞춰서 일했어.  정당한 보상은 당장 다음달 월급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서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  대신 여행이라든가 사회 생활이라든가 하는 것이 전혀 없었어.  게다가 가족 관계도 나빠졌지.  그래, 이런 그늘 부분은 진짜 심각했고 난 그런 부분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어.  그런데 내 회사 주변에서 보는 신세대 젊은 애들은 그거 진짜진짜 관리 잘 하더라.  걔들은 여행/가족 등 워라밸 균형 맞추는 걸 기가 막히게 잘 해내는데다, 회사측과 연봉협상하는 것도 무자비할 정도로 멋지게 해내더라구.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난 젊은 세대에게 뭐라고 해줄 조언이 없는 것 같아.  

제대로 된 배우자를 고르는데 있어서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라구.  이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말 같아.  절대 "이보다 더 좋은 상대는 못 찾을 것 같아" 라는 웃기지도 않는 마음가짐은 갖지 말라구.  배우자를 고르는 것은 절대 '정착한다'라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 돼.  물론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  금전관리, 가족, 친절함, 속궁합(sexual chemistry - 이거 보이는 것과는 꽤 다른 거라구) 등에 있어서 가치관이 같아야 한다는 점이 훠얼씬 더 중요해.

저점 매수 타이밍을 맞추고 뜰 주식을 고르는 거... 불가능해.  만약 넌 할 줄 안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정식 계약 맺고 내 돈 가져가서 시장 평균치 이상의 수익만 내게 주고 나머지는 다 너 가져도 돼.   못 하겠다고 ?  그럼 닥쳐 (STFU).  내가 말이 좀 심하다고 ?  내 경험이 그래.  난 무지개를 쫓느라고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어.  난 지금은 그냥 인덱스펀드 같은 거에 투자하고 있어.  여전히 주식질을 하느라고 따로 투자금 계정을 가지고는 있는데, 전체 투자금의 5% 이하로 유지하고 있지.  나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라서, '뭔가 해야 한다'라는 충동을 억누르느라고 애쓰고 있어.

. 퇴직연금 수수료 확인해봐.  연 0.15% 이상 수수료를 떼먹히고 있다면 당장 바꿔.  복리로 계산하면 엄청난 손실이야.

. 행복/목적/의미.  이건 목표지점이 아니야.  어떤 성과를 이루더라도 니가 너 자신과 니 인생에 대해 느끼는 기본적인 기분은 바뀌지 않아.  넌 공허감과 의미 상실, 그리고 디지털 호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나쁜 뉴스로부터 받는 피곤함에 대해 너 스스로 헤치고 나아가 너 자신만의 의미와 행복을 창조해야 해.  이 세상이 개똥같고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건 너 뿐만이 아니야.  이 세상에는 지금도 아무 이유도 없이 온갖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구.  이 우주는 너의 야망과 꿈에 대해서는 쥐뿔도 신경 안써 (doesn't give two leptons about : 역주 : lepton이 뭔가 찾아보니 중성미자네요...  보통은 예전 영국 화폐 중 가장 작은 동전에 비유해서 doesn't give two pence about...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걸 더 과장한 표현입니다.  이 양반 배운 양반인 듯).  너만 신경쓴다구.  이 우주가 너에게 말이 되든 안되든 상관하지 말고, 너만의 의미와 목적을 만들어야 해.  (좋은 출발점은 니가 정말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는 거야.)

. 니가 해야할 유일한 '경쟁'은 너 자신과의 경쟁이야.  니가 도착하는 장소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너에게 주어진 자원과 기회로 니가 얼마나 멀리 가느냐야.  난 주변 사람들이 "쟤 성공했네"라며 나를 부러워할 때 반대로 패배감에 쩔어지낸 적도 있어.  난 내가 세상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어.  사람들은 각자 잠재력의 종류가 다르다고 난 생각해.  니 잠재력이 뭔지는 니가 제일 잘 알겠지.  최소한 인생 몇몇 순간에는 나타날거야.  니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그로부터 기쁨을 느끼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여정을 떠나건 잊어버리라구.  심지어 너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너보다 앞섰는지 뒤처졌는지도 중요한게 아니야.  니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거야.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정해준 인생을 살면 넌 기쁨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니가 니 인생을 살면 어떤 인생이 되었을지도 알 수가 없을테니까 말이야.

. 난 14살 이후로 계속 금전적으로 안정된 삶을 추구했어.  근데 그걸 이루고나서 느낀 감정에 대해 정말 깜짝 놀랐어.  처음엔 황홀감도 느꼈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도 느꼈는데, 그러고나서는 정기적으로 뭔가 안 좋은 느낌이 계속 들더라구.  난 내가 꿈꾸던 비싼 차도 가지고 있고, 멋진 와이프와 대출 안 낀 아름다운 주택과, 경제적 독립, 거기에 안정된 직업 등 모든 걸 다 가졌거든.  근데 느끼는 건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같은 거야.  사정이 좋지 않은 식구나 뭐 그런 사람들 보면 마음이 아파.  가끔은 내가 이런 행운을 누릴 자격이 되나 싶기도 하고.  물론 그런 감정은 일시적인 것이고 난 재빨리 내가 즐기는 것으로 관심을 돌리곤 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상황이 저 너머에 실존한다는 걸 항상 느껴.  모든 걸 가진다는 것이 행복은 아니더라구.  행복은 발전에서 오는 거더라.  행복해지려면 항상 뭔가를 향해서 발전을 해나가야 하더라구.  너 자신이 의미를 두는 무언가에 대해서 너 자신을 계속 발전시켜야 해.  그게 금전적인 것이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지적인 면에서든, 육체적인 것이든 말이야.  우울함에 대해 유일하게 효과가 있는 알약은 발전이야.  난 그걸 너어어무 늦게 깨달은 것 같아.

. 글이 너무 기네, 미안해.  주말 아침에 글을 쓰다보니 재미있더라구.  누군가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해.  내 현황은 이래.  외벌이에, 결혼 했고, 아직 아이는 없지만 1년 안에 하나 낳을 계획이야.

 

이제 드디어, 바로 앞 요새 너머의 하늘이 약간 더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구름 위로 달이 올라온 것일까 ?  그 쪽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하늘은 보라색 벨벳 같았고, 아직 별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전에는 보이지 않던 희미한 빛이 하늘에 있었다.  부시는 몸을 뒤척이며 벨트에 불편하게 끼워져 있는 권총들을 더듬어 보았다.  그것들은 모두 공이치기가 반만 당겨진 안전 위치 (at half cock, PS1 참조) 상태였다.  그는 나중에 공이치기를 완전히 뒤로 당겨놓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  수평선을 보니 보라색 하늘에 무언가 붉그스름한 색이 살짝 비치는 것 같았다.  

"부대에게 명령을 전달하라."  부시가 말했다.  "공격 준비."

그는 명령이 대오를 따라 전달되기를 기다렸지만, 줄의 끝 부분까지 명령이 전달되는데 필요한 시간이 다 흐르기도 전에 도랑 안의 수병들 사이에서는 소음과 북적거림이 생겨났다.  어느 집단에나 있기 마련인 빌어먹을 바보들이, 명령이 전달되자마자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마 그 바보들은 그 명령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최소한 전염성이 있었다.  대오를 따라 누워있던 수병들은 양 날개쪽으로부터 시작해서 부시가 있는 중앙 쪽으로 되돌아오는 이중의 물결과 같은 모습으로 주섬주섬 일어났다.  부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군도를 뽑아들고 손에 균형을 맞추어 본 뒤 손에 꼭 맞는 위치로 칼자루를 움켜쥐고는 왼손으로 권총을 하나 뽑아들고 공이치기를 완전히 뒤로 젖혔다.  오른쪽 너머에서는 갑자기 금속성의 철커덕 소리들이 났다.  해병들이 총검을 끼우고 있는 것이었다.  부시가 보니 이젠 좌우 사람들의 얼굴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전진 !" 그가 이렇게 말하자 수병들의 대오가 도랑으로부터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침착하게, 거기 !"

그는 마지막 말을 거의 소리지르다시피 했다.  조만간 이 대오 중 성급한 놈들은 달리기 시작할 것이지만, 그게 더 늦게 시작될 수록 더 나았다.  그는 수병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제각각 따로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파도를 유지한 채 요새에 도달하기를 원했다.  저 왼쪽에서 혼블로워가 역시 "침착하게"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전진의 소음이 지금쯤은 요새에서도 들렸을 것이고, 경계를 풀고 있는 졸린 스페인 보초병들이라고 해도 알아차릴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곧 보초가 당직 부사관을 부를 것이고, 그 부사관이 달려와 눈으로 본 뒤 약간 머뭇거리다가 경보를 울릴 것이었다.  요새는 이제 막 붉게 물들고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시커먼 사각형의 모습으로 부시의 눈 앞에 우뚝 서있었다.  그는 점점 빨라지는 자신의 걸음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수병들의 대오도 그를 따라 서둘러 따라왔다.  그러더니 누군가가 함성을 질렀고, 곧 다른 성미 급한 놈들이 함성을 따라 질렀다.  전체 대오가 뛰기 시작했고, 부시도 그들을 따라 뛰었다.

마치 마법처럼, 그들은 곧 석회암을 거의 수직으로 잘라 파놓은 6피트(약 1.8m) 깊이의 해자 언저리에 도착했다.  

"가자 !"  부시가 외쳤다.

양손에 군도와 권총을 각각 든 상태였지만, 그는 등을 요새 쪽으로 돌린 채 팔꿈치를 해자 언저리에 걸고 매달린 뒤 해자 바닥으로 뛰어내려 급경사면을 내려갈 수 있었다.  해자 바닥에는 물이 채워져 있지는 않았지만 미끄럽고 울퉁불퉁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반대편 해자 벽면으로 뛰어갔다.  고함을 외쳐대는 수병들도 그 반대 벽면에 달라붙었다.

"날 밀어 올려라 !"

부시는 양 옆의 수병들에게 외쳤다.  그들은 부시의 두 넓적 다리에 각각 어깨를 댄 뒤 거의 던지다시피 그를 올렸다.  그는 요새 벽면과 해자 사이의 좁은 대지에 얼굴을 대고 엎드린 채로 기어올라갔다.  몇 야드(약 0.9m) 옆에서 어떤 수병이 벌써 쇠갈퀴가 달린 밧줄을 요새벽 위로 던지려 하고 있었다.  쇠갈퀴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도로 떨어졌는데, 부시 바로 옆 1야드도 안되는 거리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 수병은 부시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다시 쇠갈퀴를 휙 낚아챈 뒤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요새벽 위로 던졌다.  이번에는 쇠갈퀴가 제대로 걸렸다.  그 수병은 발을 벽에 대고 밧줄을 움켜쥐더니 미친 사람처럼 벽을 기어올랐다.  그 수병이 절반 정도 올라가기도 전에, 다른 수병이 나타나 그 밧줄을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흥분하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다른 수병들도 우르르 몰려들어 다음 순서를 다투었다.  성벽 저쪽 좀 떨어진 곳에서도 쇠갈퀴가 제대로 걸려 또 한무리의 수병들이 소리를 질러대며 밧줄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러더니 머스켓 소총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꽤 많은 수의 총성이 울렸다.  여태까지 맡던 상쾌한 밤 공기와는 날카롭게 대조되는 화약 연기가 부시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왔다.  그의 오른쪽 편에 있는 성벽의 다른쪽 면에서는 해병들이 요새벽에 뚫린 포안(embrasure : 대포를 쏘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요새 안으로 침투하려고 애쓰고 있을 것이었다.  부시는 돌파구가 있을까 하고 그의 왼쪽을 돌아 보았다.  돌아보길 정말 잘 했다 싶었다.  요새 출입을 위해 옹벽 구석에 만들어둔 쪽문(sally point)이 있었던 것이다.  이 쪽문은 무쇠로 테를 두른 넓은 목재 문으로서, 요새 모서리 부분에 돌출되어 만들어진 보루(projecting bastion)로 가려진 부분 안쪽에 가려져 있었다.  수병들 중 멍청이 두 명이 이 쪽문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위쪽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스페인군에게 머스켓 소총을 쏘아대고 있었다.  원래 평균적인 수준의 수병에게는 머스켓 소총을 쥐여줘서는 안 되었다.  부시는 이 소란 속에서도 잘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보루와 거기 옆면에 뚫린 sally point 입니다.)

 

 


"도끼 든 수병은 이쪽으로 !  도끼 !  도끼 !"

해자 속에는 아직 기어올라오지 못한 수병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도끼를 휘두르며 사람들 속을 뚫고 나와 해자 벽면을 기어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시의 공격조에서 분대를 맡고 있고 또 힘이 세기로 유명한 갑판장 조수인 실크가 해자 위의 좁은 공간 저쪽에서 달려오더니 도끼를 아래에서 건네 받았다.  그는 엄청난 힘과 끈기로 온몸을 실어가며 도끼를 힘껏 휘둘러 쪽문을 쪼개기 시작했다.  도끼를 든 수병 하나가 더 도착하더니 팔꿈치로 부시를 밀어내고는 문짝에 도끼질을 시작했지만, 그 친구는 실크만큼 기술이 좋지도 않고 힘이 세지도 않았다.   그들이 힘껏 내리치는 도끼질 소리는 보루 벽과 요새 성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크게 울렸다.  무쇠를 덧댄 문짝이 열리더니 빗장 너머로 강철의 번뜩임이 눈에 들어왔다.  부시는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실크의 도끼가 문짝을 완전히 꿰뚫고 지나갔고, 그는 도끼날을 비틀어 빼냈다.  그러더니 그는 조준을 바꾸어 도끼를 문짝 중간을 향해 수평으로 휘둘렀다.  그는 세 번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가 멈추고는 도끼를 든 다른 수병에게 어디를 내리치라고 지시를 했다.  실크는 다시 도끼질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도끼를 내려놓고 그가 뚫어놓은 문짝의 삐죽삐죽한 구멍에 손을, 문짝에는 발을 대고는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해 문짝의 한쪽 부분 전체를 뜯어내버렸다.  그렇게 뜯겨나간 부분 너머에는 빗장이 보였다.  실크의 도끼가 그 위에 반복해서 내리꽂히더니 결국 빗장을 부러뜨렸다.  실크는 쉰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도끼를 손에 든 채 그 삐죽삐죽한 구멍을 통해 뛰어들어갔다.

"뒤를 따르라, 제군들 !" 부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를 따라 뛰어들어갔다.

들어온 부분은 요새의 탁 트인 마당이었다.  부시는 죽어 넘어진 사람에게 걸려 넘어졌는데,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한무리의 사내들이 보였다.  그들은 잠옷(shirts) 차림이거나 아예 벌거벗고 있은 상태로서, 제멋대로 자란 턱수염을 길게 기른 커피색 얼굴들을 하고 있었고 손에는 해전용 군도(cutlass)와 권총 등을 들고 있었다.  실크가 도끼를 휘두르며 미친 사람처럼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스페인군 하나가 그 도끼에 맞아 쓰러졌다.  그 스페인 병사가 별 소용도 없이 손을 올려 그 도끼를 막다가 잘린 손가락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부시의 눈에 보였다.  부시도 앞으로 달려나가는 동안 권총들이 발사되며 총성이 울렸고 화약 연기가 물결처럼 퍼졌다.  그의 뒤에는 따라오는 수병들이 잔뜩 있었다.  부시의 군도가 스페인군의 칼에 부딪힌 다음 순간 스페인 병사들이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부시는 눈 앞에서 달아나는 벌거벗은 어깨에 칼을 내리 꽂았고 비명과 함께 그 살에 뻘건 상처가 그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가 쫓던 스페인 병사는 망령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부시는 다른 적을 찾아 뛰다가, 군모도 잃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 불똥이 튀는 듯한 눈빛으로 귀신처럼 고함을 질러대는 레드 코트 차람의 해병과 마주쳤다.  부시는 그 해병이 자신을 향해 총검을 찔러대는 바람에 그걸 칼로 젖혀내야 했다.

"침착해라, 이 멍청아 !"  부시가 외쳤다.  그는 이 말을 내뱉고 나서야 자신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병의 그 미친 듯한 눈빛 속에 자신을 알아보는 듯 하는 표정이 서리더니 총검을 들고 다른 쪽으로 총검을 돌리고는 뛰어가버렸다.  저 뒤쪽에는 다른 해병들도 있었다.  성벽의 포안을 통해 요새 안으로 침입해들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모두 싸움의 광기에 취해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이쪽으로도 새롭게 우르르 수병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쇠갈퀴가 달린 밧줄로 성벽을 넘어온 패거리들이 성벽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마당 저쪽을 보니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있었다.  그의 부하들은 그것들을 둘러싸고 우글거리고 있었고 그쪽에서는 총성과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마 그것들은 병영과 창고일 것이고, 수비대원들은 침입자들의 광기를 피해 그쪽으로 달아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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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아마 제 블로그 출입하시는 분들은 저 half-cock이 어떤 뜻인지 다 이해하시겠습니다만 새로 오신 분들도 일부 있을테니 여기서 다시 한번 설명드립니다.

 

Half-cock이라는 상태를 이해하시려면 먼저 당시의 부싯돌 점화 방식(flintlock)의 머스켓 소총이나 권총의 장전 방식을 아셔야 합니다.

1. 왼손으로 머스켓총을 수평으로 잡고, 격철(doghead=cock=hammer)를 한단계 뒤로 당깁니다.  이를 half-cock 위치라고 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방아쇠를 당겨도 격철이 격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점화덮개를 앞으로 밀어서 들어올립니다.  

2. 오른손으로 탄약포를 하나 꺼내 입으로 앞대가리 부분, 즉 머스켓 볼이 든 부분을 입으로 물어 뜯어냅니다.  이때 당연히 총알은 입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총알 뿐만 아니라 화약도 조금 입에 들어갔지요.

3. 입에 납으로 된 머스켓 볼을 문 채로, 손에 든 뜯어진 탄약포를 조금 기울여 점화접시에 약간량의 화약을 부어 넣습니다.  이 동작을 priming, 즉 뇌관 장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점화접시 덮개를 당겨 닫아서, 점화접시를 가립니다.

4. 이제 왼손으로 잡은 머스켓 총을 수직으로 세워 개머리판을 땅에 닿게 세웁니다.

5. 탄약포의 화약을 모두 총구에 들이붓고, 빈 탄약포 껍질도 밀어넣습니다.  이 빈 종이껍질은 화약을 틀어막는 마개(wadding) 역할을 합니다.  이어서 입에 물고 있던 머스켓 볼을 총구에 뱉습니다.

6. 총신 아래에 끼워져 있는 장전봉(ramrod)을 꺼내어, 총구에 끼워진 빈 탄약포 껍질과 머스켓 볼을 총신 저 속 끝의 약실까지 힘차게 밀어넣습니다.  이때 이미 발포한 뒤라면 총강 내부가 타다 남은 탄약포 껍질이나 화약 찌꺼기에 의해 지저분해진 상태이므로, 이렇게 장전봉으로 총알을 밀어넣는 작업은 꽤 힘든 작업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요즘보다 더 총강 내부를 청소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때 빈 탄약포 껍질과 머스켓 볼을 꾹꾹 눌러두지 않으면 화약이 폭발할 때의 가스가 머스켓 볼에 충분히 힘을 실어주지 못합니다.

7. 다시 장전봉을 총신 아래의 홈에 끼워 넣습니다.

8. 머스켓 소총을 다시 들어올리고, 격철을 한단계 더 뒤로 당깁니다.  이것이 full-cock 위치이고, 이제 격발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9. 조준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격철에 끼워진 부싯돌이 점화덮개를 강하게 내리치면서 불꽃이 튀고, 이 불꽃이 점화 접시에 담긴 약간의 화약을 폭발시킵니다.  이 화염이 점화접시 밑부분의 좁은 구멍을 타고 약실에 번져서 약실의 화약을 폭발시키고 총알이 발사됩니다.  이때 점화접시의 불붙은 화약 중 일부는 튀어나와 사수의 뺨에 닿게 되어 따가움과 동시에 시커먼 검댕을 묻히게 되고, 또 총구에서 나오는 화약 연기는 사수의 시야를 거의 완벽하게 가려서 목표물에 명중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예비 신부는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

잡상 2019.05.23 06:30 Posted by nasica


작년부터인가... 페미니스트 운동과 그에 대한 반발로 여성 혐오 경향이 생겨났었지요.  최근 대림동 여경 사건으로 다시 또 그런 문제가 시끄러워졌더군요.   자격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대림동 여경 사건에 대해서는... 술취해서 난동부리는 남성을 혼자서 힘으로 제압하고 수갑까지 혼자 채워야 비로소 경찰 자격이 있다면 우리 동네 파출소의 40~50대 배나온 남성 경찰들도 모조리 옷을 벗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또 키가 평균 이하인 남자들도 모조리 탈락이고요.  경찰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취객에게 쩔쩔 매는 장면은 사실 전에도 꽤 많았는데, 이번만 화제가 되는 것은 대상이 여성 경찰이기 때문이지 않나 싶어서 좀 씁쓸합니다. 

 

 


오늘 끼적거리는 잡상은 대림동 여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최근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그러니까 저는 모르는 어느 결혼을 앞둔 젊은 커플의 작은 갈등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갈등의 전후 관계는 이렇습니다.  아래 액수는 그냥 예시입니다.

1) 남자는 월 300 수입.  여자는 월 200 수입.
2) 전세자금은 남자가 2억 대출을 받아서 마련.
3) 갈등의 원인은 남자의 제시안 : "여자의 월급으로 생활비를 대고, 남자의 월급은 모조리 대출금 상환에 쓰자."

(제 블로그에 출입하시는 분들은 아마 남성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라고 자신하는데) 여러분께서는 저 위 남자분의 제시안에서 특별히 뭔가 이상하거나 잘못된 점이 느껴지십니까 ?  만약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신다면 여러분들도 여자 입장에서 생각하시는 공감 능력이 조금 떨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저 젊은 예비 신랑도 자신의 제안에 무엇이 잘못 되었다는 것인지 전혀 이해를 못 했다고 합니다.  (저는 대번에 이해했습니다.  이거 으쓱으쓱 해야 하나 ?)

저 제시안을 들은 여성분은 대뜸 불공평하다면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여성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은 것이, 전세 계약을 남자 이름으로 해놓았는데 남자의 돈으로는 모두 전세 대출금을 갚는데 사용한다면 남자의 돈은 사실상 저축이 되는 것이고, 여자의 돈은 생활비로 소비되어 사라지는 돈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만에 하나, 2년 뒤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여자는 아무 저축금이 없는 상태가 되지만 남자는 자기 이름으로 된 전세금을 가져올 수 있으니 대출금을 상환하고도 2년간의 자기 월급이 고스란히 자기 이름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예비 신부가 왜 불만이었는지 예비 신랑이 이해하고 나면 아마 기분이 나빴을 것 같습니다.  이제 막 결혼하는 마당인데 여자가 벌써 이혼 준비부터 하고 있다고 하면 신랑으로서야 기분 나쁠 수 있겠지요.  제가 집에 가서 와이프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와이프는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꼭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하는 남녀 관계에 있어 시댁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이혼 위험에 있어서나 분명히 여자가 더 약자의 위치에 있다.  모든 약자들은 있을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미리 대비하려는 경향이 있다.  강자는 당연히 그런 걱정하지 않는다.  이건 여자가 이혼 생각부터 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약자의 입장을 남자가 이해해줘야 하는 문제이다."

저는 제 와이프 의견에 100% 공감합니다.

 

결국 그 예비 부부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냥 남자 제시안대로 따른다고 해도, 여자가 생활비를 댄 증거가 있으니 이혼 소송을 걸면 여자가 낸 생활비 기여분 만큼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이혼 소송보다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합의 이혼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여자에게 불리한 제안 같기는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달리 이혼시 양육비라든가 재산 분할이라든가 하는 점에서 매우 남성 중심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상 여자들은 법적 보호를 받기 매우 어렵지요.

공정한 제안은 어떻게 될까요 ?  일단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매매 거래의 경우엔 남자 지분 78% 여자 지분 22% 등으로도 계약이 가능할 것 같은데, 전세 계약의 경우엔 그런 것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냥 공동 명의의 전세 계약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은데, 그럴 경우 더 많은 소득이 있는 남자 측에서 불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남자 100, 여자 100씩 공동 생활비를 내고, 남자 소득 200과 여자 소득 100을 각각 따로 저축했다가 나중에 결정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  쉽지 않네요.  실제로는 어떻게들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많은 남성분들은 이렇게 분노하실 겁니다.  "애초에 전제가 잘못 되었다, 왜 남자가 전세 자금을 다 마련해야 하느냐 ?  왜 여자는 달랑 혼수 몇 푼 해오면서 남자보고는 몇 억에 달하는 집을 구해오라고 요구하느냐 ?"  이 이야기 속의 커플도 그렇습니다만, 많은 경우 남자의 소득이 더 많고 남자의 나이가 더 많습니다.  아마 여성분들은 그것부터가 뿌리 깊은 남녀차별의 결과이니 그것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실 것 같아요. 

 

제 생각으로도 왜 남자가 가장 부담이 큰 (전세든 매매든) 집 마련을 도맡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  그냥 남녀 형편에 맞게 64%+36% 혹은 46%+54% 등 자기 몫대로 명의를 가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댁과 처가와의 관계, 가사노동과 육아의 부담 분배 등도 공평하게 해야 하겠지요.  물론 이것도 우리나라 전통 사회 관습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저도 아들이자 사위인데, 제가 처가에 가는 것과 제 와이프가 시댁에 가는 것은 심리적 부담 자체가 다를 것이거든요.  저야 처가에 놀러가는 기분으로 가지만 와이프는 시댁에 일하러 가는 기분일 수 있으니까요.  분명히 우리 사회의 부부 관계는 여성에게 불리하긴 합니다.  역시 쉽지 않습니다.

 

아마 그래서 이 모든 불합리와 불공평을 다 덮고 가는 방법은 사랑 밖에 없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전진이 시작되었다.  석회암이 둥글게 돔처럼 덮힌 반도의 꼭대기 위에는 긴 풀이 자라나 있었고, 간간히 나무도 있었다.  오솔길에서 벗어나면 높이 제멋대로 자란 억센 풀숲 때문에 걷는 것이 약간 어려웠지만 전반적으로는 걷기 쉬운 길이었다.  병력들은 촘촘히 뭉친 채로 대오를 유지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이제 수병들의 눈이 완전히 어둠에 익숙해져서 별빛만으로도 길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혼블로워가 보고했던 도랑은 완만한 경사로 얕게 움푹 파인 것에 불과하여 건너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부시는 화이팅을 옆에 낀 채로 해병들의 선두에 서서 걸었다.  그의 주변은 마치 따뜻한 담요같은 암흑으로 감싸여 있었다.  이 행군에는 뭔가 마치 꿈결같은 분위기가 있었는데, 아마도 부시가 지난 24시간 동안 한순간도 잠을 자지 못한데다 그동안 겪은 피로로 멍해졌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요새가 위치한 곳은 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었으므로 당연히 오솔길은 완만하게 오르막길이었다.

"아!" 갑자기 화이팅이 소리를 냈다.

오솔길은 탁 트인 바다 쪽에서 멀어져 만으로 향하는 방향, 즉 오른쪽을 향해 굽어졌고, 그들은 반도의 등뼈에 해당하는 부분을 지나서 이제 만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오른쪽을 보니 만 아래까지가 훤히 보였고, 만 해변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낮게 깔린 구름을 뚫고 수평선 위에 달빛이 약간 비쳤기 떄문이었다.  

"미스터 부시, 부관님 ?"

이건 웰러드의 목소리였는데, 이번에는 좀더 가다듬은 목소리였다.

"여기 있네."

"미스터 혼블로워가 또 저를 보냈습니다, 부관님.  앞에 오솔길을 가로지르는 도랑이 하나 더 있습니다.  게다가 한떼의 가축과 맞닥뜨렸습니다, 부관님.  언덕에서 자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그것들을 꺠워서 지금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고맙네, 잘 알겠네."  부시가 말했다.

부시는 그의 지휘 하에 있는 병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범한 사내들과 평범 이하의 사내들을 아주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이 인간들이 오솔길을 따라가다 가축떼와 마주친다면 이들은 적과 만났다고 오인할 것이 틀림없었다.  설령 총성이 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병력들이 몹시 흥분할 것이고 소음도 요란할 것이었다.

"미스터 혼블로워에게 우린 여기서 15분간 멈춰 있겠다고 전하게."

"예, 부관님."

시간이 허락한다면 지친 수병들에게 휴식하면서 저 뒤쪽 대오가 따라잡을 기회를 주는 것은 어쨌거나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쉬는 동안 수병들에게 가축떼를 만날 가능성에 대해 한명 한명에게 경고를 주는 것도 가능했다.  부시는 원래 멍청한데다 이렇게 지친 사내들에게 그저 대오를 따라 말을 전달하는 것은 충분치 않을 뿐만 아니라 꽤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명령을 내려 대오를 멈추게 했는데, 졸면서 걷던 수병들은 걷다 멈춘 앞사람과 철커덕 소리를 내며 당연하다는 듯 부딪혔고 궁시렁거리며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퍼졌다.  부사관들이 그런 소란을 조용히 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풀밭에 드러누운 수병들에게 경고를 주고 있는 동안 부시관 하나가 또다른 문제거리를 부시에게 보고했다.

"수병 블랙 말입니다, 부관님.  그 녀석 취했습니다."

"취했다고 ?"

"수통에 담아둔 독주를 마신 것이 틀림 없습니다, 부관님.  입에서 술냄새가 나거든요.  그걸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슴다, 부관님." (Dunno 'ow 'e got it, sir.)

휘하에 100하고 80명이나 되는 수병들과 해병들이 있다보니, 그 중에 최소 하나는 취할 만도 했다.  어떻게든 술을 손에 넣고 기회만 되면 취해버리는 재주는 귀나 눈처럼 영국 수병 신체의 일부같은 것이었다.

"지금 어디 있나 ?"

"그 녀석이 소란을 피웠습니다, 부관님.  그래서  귓구녕에다 한방 먹여줬더니 지금은 조용함다, 부관님." (I clipped 'im on the ear'ole an' 'e's quiet now, sir.)

부시의 짐작에, 이 간단한 문장에는 말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더 물어볼 이유도 없었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믿을 만한 수병 하나를 골라서 우리가 출발할 때 블랙과 함께 남겨두고 가게."

"예, 부관님."

결국 상륙조는 술에 취한 블랙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 녀석이 더 이상 말썽 못부리게 돌봐줄 수병 하나까지 추가로 잃은 셈이 되었따.  하지만 여태까지 더 많은 낙오자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꽤 운이 좋은 셈이었다.

대오가 다시 출발하자 저 앞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혼블로워가 확실해 보이는 후리후리하고 마른 체형의 실루엣이 희미한 달빛을 등지고 나타났다.  그는 부시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걸으며 상황을 보고했다.  

"요새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부관님."

"그런가 ?"

"예, 부관님.  여기서 약 1마일 (1.6km) 떨어진 곳에 도랑 같은 것이 또 하나 나옵니다.  요새는 그 너머에 있고요.  달빛을 등지고 보입니다.  도랑에서 0.5 마일, 어쩌면 그보다 더 가깝습니다.  전위대가 오거든 도랑 앞에서 멈추게 하라는 명령과 함께 거기에 웰러드와 새들러를 남겨두고 왔습니다."

"고맙네."

부시는 울퉁불퉁한 땅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피로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먹이 냄새를 맡은 호랑이가 도약을 위해 근육에 힘을 주는 것처럼 다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부시는 전투 체질이었고, 이제 곧 전투가 벌어진다는 생각은 그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앞으로 해뜨기까지 2시간.  시간은 충분했다.

"도랑에서 요새까지 0.5 마일이라고 ?"  그가 물었다.

"아마 그보다 더 가까울 겁니다, 부관님."

"알겠네.  거기 멈춰서 해뜨기를 기다리지."

"예, 부관님.  제 공격조에 합류하러 가도 되겠습니까 ?"

"가도 좋네, 미스터 혼블로워."

부시와 화이팅은 대오 중에서 가장 느리고 서툰 사람들에게 맞춰 행군 속도를 느리고 꼼꼼한 발걸음 속도로 억제하고 있었다.  부시도 이 순간에는 전투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의 보폭을 막 넓히려는 자기 자신을 억제하고 있는 중이었다.  혼블로워는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부시는 그의 걸음걸이가 어색한 것을 보았지만, 이 부하의 넘치는 활력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화이팅과 최종 공격 작전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도랑 입구에는 부사관 하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시는 대오 뒤로 멈출 준비를 하라는 말을 전달시킨 뒤, 조금 있다가 대오를 정지시켰다.  그는 앞으로 나가 정찰을 했다.  옆에 화이팅과 혼블로워를 낀 채로 그는 하늘을 배경으로 요사의 직사각형 실루엣을 관찰했다.  심지어 깃대까지도 어두운 직선 모양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는 그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행군의 마지막 단계에서 병사들을 째려보던 그의 얼굴 표정이 이젠 긴박한 상황에서 실종되었던 사람 좋은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작전을 위한 조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져 명령이 나직한 목소리로 이리저리 전달되었으며, 마지막 주의가 내려졌다.  병력을 도랑 속으로 몰아넣었다가 돌격을 위해 포진시켜야 했으므로, 지금이 여태까지 중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화이팅의 조용한 한마디에 부시는 다소 머뭇거리며 고민을 했다.

"병력들에게 장전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릴까요, 부관님 ?"

"아니,"  마침내 부시가 대답했다.  "냉병기만 쓴다. (Cold steel.)"

 

 

(총알이 없는 빈 총이라고 해도 저렇게 시퍼런 날의 총검을 꽂으면 꽤 훌륭한 무기가 됩니다.  저런 총검은 사실상 베는 목적으로는 못 쓰고 찌르는 용도로만 쓸 수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이 많은 머스켓 소총에 장전을 허락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 부담이 큰 일이었다.  장전봉이 딸그락거리는 소음이 필연적인데다, 어떤 바보가 방아쇠를 당길지 모르는 일이었다.  혼블로워는 좌측으로 갔고, 화이팅은 그의 해병들을 이끌고 우측을 행했으며, 부시가 그의 공격조를 이끌고 중앙에 드러누웠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행군으로 인해 다리가 아팠다.  드러누우니 피로와 수면 부족으로 인해 그의 머리는 헤엄을 치는 듯 잠으로 빠져들 것 같았다.  그는 정신을 다시 차리기 위해 일어나 앉았다.  지친 것 빼고는 기다리는 시간이 그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당직이 따르는 다년간의 바다 생활과, 지겹기 짝이 없는 다년간의 전쟁 기간은 그에게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게 했다.  일부 수병들은 바위투성이 도랑에 누웠다가 실제로 잠이 들어버렸다.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났다가 옆사람이 툭 쳐서 깨웠는지 코 고는 소리가 갑자기 뚝 그치는 것을 부시는 여러차례 들었다.  

 


제가 올해 들어 '사람은 왜 태어났고 인생에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요즘은 뉴스도 거의 보지 않고, 중독된 것처럼 열심히 하던 게임도 끊고, 페북도 거의 하지 않고, 체중도 꽤 줄였습니다.  심지어 이 블로그도 접을까 하다가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그냥 당분간은 번역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요.  사실 인생이란 무엇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은 모든 사람들이 한두번쯤, 어쩌면 평생 고민하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래서 모든 학문의 끝판왕은 철학이고 철학을 하다보면 결국 신학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소리를 와이프가 하던데, 저도 거기에는 꽤 공감하는 편입니다.

성경에서도 삶은 참으로 허망하고 헛된 것이라고 나옵니다.  

(전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렇게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며 출근하던 어느날 아침, 매일 보던 아파트 화단의 흙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또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이었어요. 

"저 흙 한줌 속에도 많은 벌레들과 미생물이 가득할 것이고 그것들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소중한 생명인데, 과연 그 많은 생명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나의 삶이 그것들과 비교할 때 과연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점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

거기에 대해 기독교에서는 분명히 더 나은 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영원불멸의 영혼을 가진 존재임에 비해, 동물들은 (혼만 있고 영이 없다든가 혹은 그 반대든가) 영생도 없을 뿐더러 인간의 다스림을 받는 존재들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기독교인들이 천지창조에 대해서 빅뱅 이론은 비교적 순순히 '하나님의 기적'이라며 받아들이지만, 유독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더라고요.  제 짧은 생각으로는 돌연변이에 의해 새로운 종의 탄생이 가능하도록 DNA를 coding하신 것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진화론이라는 것이 굳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이고 오로지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진화론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런 점에서 불교는 입장이 꽤 다릅니다.  불경을 읽은 것이 아니라서 원전을 인용하기는 그렇습니다만... (저는 이 이야기를 신필 김용 선생의 '사조영웅전'에서 읽었습니다) 아래의 불교 설화가 인간과 동물의 생명에 대한 관점을 잘 보여줍니다.

"어느 왕자가 창가에 앉아 있었다.  느닷없이 비둘기 한마리가 날아와 왕자의 품 안으로 파고 들었고, 그 뒤를 쫓아 매 한마리가 나타났다.  매는 왕자에게 그 비둘기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는데, 왕자는 비둘기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거절했다.  그러자 매는 '그 비둘기를 당장 먹지 못하면 내가 굶어죽는다.   비둘기의 생명만 소중한가 ?  나의 생명도 소중하지 않은가 ?' 라고 말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왕자는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제안했다.  '비둘기의 무게만큼 나의 살점을 떼어줄테니 그것을 먹고 대신 비둘기를 살려달라.'  그래서 정말 저울을 가져놓고 한쪽 접시에는 비둘기를 올려놓고, 다른쪽 접시에는 왕자의 살점을 조금씩 잘라 올려놓기 시작했는데, 팔과 다리, 가슴에서 아무리 살점을 많이 떼어 올려놓아도 저울은 비둘기 쪽으로 기운 채 도통 올라오지 않았다..."

사조영웅전에는 여기까지만 나오고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읽어도, 불교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무게는 동일하다고 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고 인간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개와 몇 분만 눈동자를 마주 보며 앉아있어도 개나 사람이나 똑같이 희노애락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물론 우리는 인간이니까, 인간끼리 서로 좀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허망한 삶에 대해서 고민하던 중, 최근 제가 고등학교 때 정말 좋아했던 Simon & Garfunkel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라는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뭔가 울컥하는 것이 있더라고요.  저는 노래에서 가사를 꽤 중요하게 보는 편인데, 이 노래의 가사는 특히 뭔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낙심한 사람들에게 정말 위안에 되는 노래입니다.  삶이 그렇게 덧없고 헛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 정말 아무 조건없이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살아갈 힘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또 만약 제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도움을 받는 것 못지 않게 정말 큰 삶의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항상 하나님은 왜 자력으로 살 수 있는 식물까지만 만드시지 않고, 꼭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생명을 해쳐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동물도 만드셨을까 하고 궁금해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인간들이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인간을 만드신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 새로운 계명이라고 내려주신 것이, 바로 서로를 사랑하라는 단순한 것이었지요.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실제로 이 노래는 폴 사이먼이 복음성가에서 영감을 받아 작사작곡한 곡이고, 제목도 다른 복음가수의 노래 가사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노래는 전반부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로하는 내용이고, 후반부는 마침내 그 사람의 상황이 잘 풀려 순풍에 돛을 단 듯 좋은 상황이 되는 그런 희망적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노래 들으면서 울컥했던 부분은 (항상 그렇지만) 전체 노래의 80% 정도가 지난 부분에서 나오는 아래 부분이에요.

 

Oh, if you need a friend 
I'm sailing right behind 

 

그러니까,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silver girl이 고난에 처했을 때는 몸을 던져 silver girl을 돕는데, 이 silver girl이 이제 제자리를 잡고 잘 나갈 때에도 굳이 나서지 않고 옆이 아니라 뒤에서 묵묵히 따라가기만 합니다.  혹시 silver girl에게 도움이 필요할 경우가 또 생길 것에 대비해서요.  그야말로 아무 조건이 붙지 않은 도움을 주는 경우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친구가 많다고 자랑하지만, 대부분의 관계는 give & take의 관계에 불과합니다.  정말 아무런 조건 없이 일방적으로 아끼고 돕는 관계는 흔치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보는 관계, 그리고 신이 인간을 보는 관계 정도지요.  그래서 이 노래의 가사가 복음성가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떄 저 노래에서 'Sail on silver girl' 이라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은빛으로 빛나는 여자가 키를 잡고 석양이 지는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고 낭만적으로 들렸거든요.  그런데 뭐든 마약과 연관지어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저 'silver girl'이라는 부분에 대해 헤로인 주사 바늘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론 그렇지 않았고, 당시 폴 사이먼와 막 결혼했던 Peggy Harper가 그때 즈음 머리칼에서 첫번째 흰머리를 발견하고 약간 우울해 했던 것을 위로하기 위해 삽입된 것이라고 합니다.  가장 우스운 부분은 이 노래 전체는 언제나 그렇듯이 폴 사이먼이 작사 작곡을 다 알아서 한 것인데, 이 'Sail on silver girl' 부분만은 아트 가펑클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고, 정작 폴 사이먼은 이 부분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이먼 & 가펑클의 노래들은 모두 폴 사이먼이 작사작곡한 것이지만, 이 노래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가펑클이 솔로로 불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이 노래는 가펑클의 작사작곡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최대 히트곡인 이 노래를 가펑클이 웅장한 피날레와 함께 부르고나면 청중들이 기립 박수를 치며 환호하곤 했는데, 이 노래에서 맡은 파트가 없었기 때문에 (피아노도 다른 사람이 연주함...) 한쪽에 찌그러져 있던 폴 사이먼은 속으로 '이봐들, 그건 내 노래인데 !' 라며 질투를 느끼곤 했다네요.

 

Bridge Over Troubled Water라는 제목은 보통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라고 번역되었는데, 사실 그 번역이 더 좋긴 합니다만 여기서는 그냥 원문에 충실하게 강물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노래 감상은 아래 유튜브에서 하세요.

https://youtu.be/4G-YQA_bsOU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강물 너머 다리가 되어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
When tears are in your eyes, 

I'll dry them all (all)

당신이 지치고 하찮게 느껴질때
눈물이 흘러넘치면 

내가 닦아줄게요

I'm on your side, oh, 

when times get rough
And friends just can't be found

난 당신 편이에요 

거친 시절이 찾아와
친구들이 다 사라졌을 때에도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험한 강물 위 다리처럼
나를 밟고 가면 돼요

When you're down and out
When you're on the street

당신이 낙심하고 좌절할 때
당신이 거리에 내몰렸을 때

When evening falls so hard
I will comfort you (ooo)

저녁이 너무 힘겹게 느껴질 때
내가 당신을 위로해줄게요

I'll take your part, oh, 

when darkness comes
And pain is all around

내가 당신 몫을 맡아줄게요  

어둠이 찾아오고
사방이 고통 뿐이라고 해도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험한 강물 위 다리처럼
나를 밟고 가면 돼요

Sail on silver girl
Sail on by

은빛 그대여 돛을 올려요
거침없이 나아가세요

Your time has come to shine
All your dreams are on their way
See how they shine

이제 당신이 빛날 때가 왔어요
계획대로 나아가는 당신의 모든 꿈들이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 보세요

Oh, if you need a friend
I'm sailing right behind

혹시 당신에게 친구가 필요하다면
내가 당신 바로 뒤에 따라가고 있어요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ease your mi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ease your mind

험한 강물 위 다리처럼
제가 당신에게 위안이 될게요


작사: Paul Simon


제9장

더 시원한 육지에 접근하면서 바닷바람은 멈춰버렸지만, 육지와 바다의 기압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 바로 이 한밤중의 바람 한점 없는 시간대였다.  바다 쪽으로 몇 마일만 가면 영원히 그치지 않는 무역풍이 불겠지만, 이 해변에는 눅눅한 고요함이 압도적이었다.  대서양에서 밀려오는 긴 파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첫번째 여울에 부딪히자마자 잠깐 부서지는 듯 하다가 다시 살아나, 마치 한때 건강하다가 최근 병을 앓아 아직 쇠약한 사람처럼 서쪽의 해변에 규칙적으로 부딪혀 거품으로 터지곤 했다.  사마나 반도의 석회암 절벽이 시작되는 이곳에는, 작은 물길이 절벽에 꽤 넓은 협곡(gully)을 파놓은 으슥한 구석이 넓은 해변 맨 동쪽 끝부분에 있었다.  그리고 바다와 파도, 그리고 해변이 모두 불타오르는 듯 했다.  밤의 암흑 속에서 바닷물 속의 인광이 형형하게 빛났고 파도와 함께 치솟아 해변까지 밀려왔는데, 론치 보트들이 해변으로 저어갈 때 노를 환하게 빛냈다.  보트들은 마치 불 위에 떠있는 듯 했는데, 보트가 지나간 자국마다 불빛이 새롭게 피어났다.  그래서 각 론치 보트들은 뒤에 긴 불의 꼬리를 달고 움직였고 노가 물을 저을 때마다 보트의 양쪽에 생생한 긴 자국이 생겼다. 

(바닷물이 이렇게 빛나는 것은 플랑크톤 등의 해양 미생물 때문입니다.)

 



협곡 입구에의 상륙과 등정은 모두 쉬운 일이었다.  론치 보트들이 해변의 모래에 이물을 파묻자마자 상륙조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액체로 된 화염 같은 바닷물 속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무기와 탄약포 상자들이 젖지 않도록 그것들을 머리 높이 들어올린 채 걸었다.  상륙 대원 중 경험 많은 뱃사람들조차도 인광의 강렬함에 깊은 인상을 받을 정도였으니, 바다에 익숙하지 않았던 수병들은 그 광경에 흥분하여 소곤소곤 잡담 소리를 크게 냈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매서운 명령이 쏘아붙여졌다.  부시는 론치 보트에서 가장 먼저 뛰어내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첨벙첨벙 걸어 상륙한 뒤 대지의 익숙하지 않은 견고함 위에 우뚝 섰다.  그러는 사이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상륙했다.  흠뻑 젖은 그의 바지에서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gully는 원래 도랑이라는 뜻의 단어로서, 빗물이나 시냇물 등의 흐름에 의해 땅이 깎여나간 길고 움푹 들어간 지형을 말합니다.  보통 계곡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작고 좁은 것을 gully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저는 그냥 "꽤 넓은 협곡"이라는 모순적인 표현으로 번역했습니다.) 



다른 론치 보트 방향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나 그의 앞에 섰다.

"제 공격조는 모두 상륙했습니다, 부관님."  그 그림자가 보고했다.

"좋아, 미스터 혼블로워."

"그러면 제가 전위대와 함께 협곡을 올라갈까요, 부관님 ?"

"그래, 미스터 혼블로워.  명령을 수행하게."

부시는 자신의 금욕적인 훈련과 냉정한 성격이 허용하는 최대치로 긴장되면서도 흥분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전투를 개시하고 싶었지만 혼블로워와 상의하여 짠 조심스러운 작전 계획은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공격조가 열을 지어 집합하는 동안 옆에 비켜 서있었고, 혼블로워는 다른 공격조에게 소리를 질러 명령을 내렸다.

"우현 팀 !  나를 바싹 따라오도록.  모두 바로 앞 사람과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너희들의 머스켓 소총에는 탄약이 장전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해라.  적을 만나더라도 방아쇠를 당겨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상황에선 냉병기(cold steel : 화약무기가 아니라 총검이나 군도, 도끼 같은 총성이 나지 않는 무기만 쓰라는 이야기 : 역주)만 써야 한다.  만약 너희 중에 멍청이가 있어서 그 사이에 탄약을 장전해놓았다가 적과 조우시 발포를 한다면 그 녀석은 내일 갑판 중앙통로(gangway)에서 채찍질 48대를 맞을 줄 알아라.  그건 확실히 보장해주마.  울튼 !"

 

(Gangway라는 것은 윗 그림에서 파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해놓은 것으로서, forecastle(선수갑판)과 quarterdeck(선미갑판)을 연결하는 좌우측의 연결 통로입니다.  중앙의 빈공간에는 주갑판(main deck)이 노출되어 있고, 여기서는 대형 보트가 그 노출 공간에 놓여있네요.  이 그림에서 우현의 gangway는 일부러 널빤지를 깔지 않아 그 밑의 구조물을 노출시켜 놓은 상태입니다.)  

 



"예, 부관님 !"

"뒤쪽 열을 이끌도록.  너희들은 나를 따르라.  우측열부터 전진."

혼블로워의 공격조는 열을 지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해병들도 이미 상륙을 시작했는데, 인광을 배경으로 하니 그들의 주홍색 자켓이 시커멓게 보였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줄을 맞춰 서니, 하얀색 십자 밴드(crossbelt)들이 희미하게 2열로 줄지어 선 것이 보였다.  부사관들이 해병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땍땍거리며 명령을 날렸다.  왼손으로는 여전히 군도 자루를 쥔 채, 부시는 오른손을 더듬어 벨트에 찬 권총들과 주머니에 든 탄약포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림자 하나가 그들 앞에 서더니 발뒤꿈치를 절도있게 철컥 붙였다.

"전원 집합 이상무입니다, 부관님.  행군 준비 완료."  화이팅의 목소리였다.

"고맙네.  출발해도 좋네.  미스터 애벗 !"

"부관님 !"

"자넨에겐 따로 받은 명령이 있지.  나는 해병 분견대와 함께 출발하겠네.  우리를 따라오도록."

"예, 부관님."

협곡을 따라 기어오르는 것은 꽤 길고 힘든 길이었다.  바닥을 덮고 있던 것이 곧 모래에서 넓고 평평한 석회암 바위로 바뀌었는데, 이 북쪽 사면에 풍부하게 내리는 열대우 덕분에 이 석회암 바위 틈에서도 억센 수풀이 자라나 있었다.  협곡 바닥의 물길 자체만 평탄한 통로가 될 수 있었다.  모든 물이 석회암 사이로 빠져들어가 지금은 물길이 말라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사실 물길 바닥면도 평탄하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바닥이 울퉁불퉁한데다 가파른 바위면이 솟아있어 부시는 그 위를 기어올라야 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는 땀을 줄줄 흘려야 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기어올랐다.  그의 뒤로 해병들이 서투르게 기어오르며 장화를 부딪히고 무기와 장비를 철컥거렸기 때문에, 1마일(1.6km) 떨어진 곳에서도 이 소음을 다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미끄러져 넘어지며 욕을 했다.

"니 머리통 속 그 혓바닥 조용히 못 시켜 ?"  상병 하나가 땍땍거렸다.

"조용 !"  화이팅이 고개를 돌려 으르렁댔다.

전진 또 전진.  여기저기서 수풀이 하도 높게 자라 희미한 별빛을 가릴 정도였다.  부시는 아주 건장한 사내였지만 바위를 더듬어 기어오르다보니 숨이 가빠올랐다.  기어오르며 보니 여기저기서 반딧불이 보였다.  몇 년만에 보는 반딧불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뒤를 따르는 해병들은 반딧불을 보고는 더 참지 못하고 잡담이 튀어나왔다.  부시는 저런 멍청한 잡담으로 그들 자신의 목숨은 물론 전체 작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리는 저 통제불능 녀석들에게 분통이 터졌다.  

"저 녀석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부관님."  화이팅이 말하고는 뒤따르는 해병들의 대오가 자신을 지나치도록 뒤로 빠졌다.

더 위에서는 나름대로는 소리를 죽인다고 죽였지만 끽끽거리는 목소리 하나가 어둠 속에서 그를 반겼다.

"미스터 부시 맞으신가요 ?"

"맞네."

"저 웰러드입니다, 부관님.  미스터 혼블로워가 저를 길잡이로 내려보냈습니다.  여기 바로 위쪽부터는 초원지대가 펼쳐집니다."  알겠다고 부시가 대답했다.

그는 잠시 서서 자켓 소매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러는 동안 해병들이 그의 뒤에 따라 붙었다.  다시 출발하니 오를 길이 그다지 많이 남지는 않았었다.  웰러드는 한무리의 어둑어둑한 나무들을 지나쳐서 그를 이끌었는데, 걷다보니 부시의 발 밑에 풀밭이 느껴졌다.  계속 오르막길이긴 했지만 아까의 협곡에 비하면 아주 완만한 경사에 불과하여 걷기가 훨씬 편해졌다.  이제 그들의 앞길에는 그리 힘들 것이 없어 보였다.

"아군입니다."  웰러드가 말했다.  "이쪽은 미스터 부시가 계십니다."

"만나서 반갑군요, 부관님."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혼블로워였다.

혼블로워가 어둠 속에서 걸어나와 보고했다.

"제 공격조는 바로 앞 쪽에 정렬해있습니다, 부관님.  새들러와 함께 믿을 만한 친구 두 명을 정찰조로 먼저 보내놓았습니다."

"잘했네."  부시가 그렇게 말했는데, 그건 진심이었다.

해병 부사관이 화이팅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전원 집합 완료했습니다, 대위님.  채프먼 빼고요, 대위님.  그녀석은 지 말에 따르면 발목을 삐었답니다, 대위님.  저 뒤에 남겨두고 왔습니다, 대위님."
("All present, sir, 'cept for Chapman, sir. 'E's sprained 'is ankle, or 'e says 'e 'as, sir. Left 'im be'ind back there, sir.  :  런던 코크니 토박이 발음에서는 H 발음이 없다더니... 역주)

"병사들 쉬라고 하게, 화이팅 대위." 부시가 말했다.

전열함의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것은 열대 지방의 절벽을 기어오르는 행군에 대한 훈련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전날 그렇게 기진맥진하게 고생한 경우라면 더욱 그랬다.  해병들은 드러누웠고, 그 중 일부는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끙끙 앓는 신음소리를 냈는데, 그런 신음소리에 대해 해병 부사관은 매서운 발길질로 못마땅함을 표시했다.

"우린 이쪽 능선에 서있습니다, 부관님."  혼블로워가 말했다.  "저기 저쪽면에서는 만 안쪽을 내려다 보실 수 있습니다."

"요새로부터는 3마일 정도 될까, 어떻게 생각하나 ?"

부시는 질문으로 그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지휘관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혼블로워의 보고 준비가 하도 잘 되어 있어서 부시는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요.  최대로 쳐도 4마일 이내입니다, 부관님.  지금부터 4시간 후면 동이 트고, 달은 30분 후에 뜹니다."

"그렇지."

"짐작하셨겠지만 능선을 따라 난 오솔길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요새가 나올 겁니다."

"그래."

혼블로워는 분명히 부하 노릇을 잘 하는 친구였다.  부시는 이제서야 반도의 능선을 따라 자연적으로 생긴 오솔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사실 그 순간까지 그에겐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었다.

혼블로워가 계속 말했다.  "허락만 해주시면 제 공격조의 지휘를 제임스에게 맡기고 저는 새들러와 웰러드를 데리고 먼저 가서 지형이 어떤지 보고 오겠습니다."

"좋네, 미스터 혼블로워."

하지만 혼블로워가 떠나자마자 부시에겐 모호한 짜증이 느껴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혼블로워는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부시는 그의 권위를 침해하는 그 어떤 것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생각들은 수병들의 제2 공격조가 도착하면서 날아갔다.  이들은 선발대를 따라 잡느라 땀을 흘리며 헐떡거렸다.  그도 방금 전 도착했을 때 얼마나 지쳤는지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에 부시는 그들에게 병력을 합해 출발하기 전에 좀 쉴 시간을 주었다.  어둠 속에서도 한무더기의 벌레들이 병사들의 땀냄새에 이끌려 날아왔고, 부시의 귓가에도 한떼의 벌레들이 웽웽거리며 기회가 날 때마다 그를 물어댔다.  리나운 호의 선원들은 바다에 오래 나가있었으므로 피부도 부드럽고 물기에 딱 좋았다.  부시는 철썩 자기 귓가를 때리며 욕을 했고, 그의 지휘 하에 있는 모든 수병들이 그렇게 했다.  (*PS1 참조)

"미스터 부시, 부관님 ?"

다시 혼블로워였다.

"뭔가 ?"

"분명한 오솔길입니다, 부관님.  바로 앞에서 도랑을 가로지르게 되지만 심각한 장애물은 아닙니다."

"고맙네, 미스터 혼블로워.  전진하겠네.  자네 공격조부터 출발시키게."

"예, 부관님." 

 

 

 

*PS1) 당시 자메이카, 산토 도밍고 등의 카리브 해 지역은 하얀 황금, 즉 설탕이 나는 섬이기도 했지만 황열병 때문에 죽음의 섬이기도 했습니다.  황열병은 원래 서아프리카에서 노예들과 함께 들어온 병인데,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입니다.  아마도 모기의 알이나 애벌레가 노예선에 실린 채 카리브 해에 온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합니다.  황열병은 마을이나 요새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는 특히 저렇게 야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농부들이나 군인들에게 많이 발생했습니다.  모기는 고인 물이 있는 곳에 많이 서식하기 때문에 야외에 주로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카리브 해 지역에서는 요새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을 이끌고 적과 싸우느라 산과 들을 헤매다보면 전사자보다는 병사자가 훨씬 많은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아이티, 즉 생 도밍그(=산토 도밍고)의 노예 반란이 성공한 것도 결국 저 황열병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와이프가 반 년 정도 전부터 어느 유명 교회의 인터넷 설교를 들으며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갈라디아 서를 읽고 있는데, 와이프가 감탄하며 말하기를 기독교 교리의 정수가 모두 이 책에 들어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아직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와이프가 한탄하며 말하기를 '내가 교회를 다닌지 30년이 훨씬 넘었는데, 대체 그 동안 목사님들이 이 갈라디아 서를 인용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없다' 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대해서 제 대꾸는 이랬습니다.

"아마... 많은 신자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 믿으면 복을 받아서 물질이 풍요해지고 몸도 건강해집니다!' 라는 설교라서 그런 것 아닐까 ?" 

그래서 또다시 우리 부부의 영원한 부부 싸움 테마인 종교 논쟁이 잠깐 벌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전에 케이블 TV에서 본 영화 하나가 기억났습니다.  

 


Miracles from Heaven이라는 2016년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이건 실화에 바탕을 둔 기독교 영화인데, 줄거리를 한줄 요약하면 불치병에 걸린 어린 딸이 기적에 의해 치유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 중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이 가족은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어린 딸이 고약한 불치병에 걸려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생이 심했던 엄마가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신자 몇 명이 엄마에게 다가와 말을 겁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요약하면 이런 거였어요.

"너의 딸이 그런 몹쓸 병에 걸린 것은 틀림없이 너의 가족의 믿음이 약했거나 뭔가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그 죄를 고백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

별로 신실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교회 다닌지 20년이 넘는 제게는 기독교인들의 그런 식의 사고 방식이 사실 그렇게 낯설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하는데, 사실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정말 자기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100% 실천하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결국 '니가 뭔가 죄를 지었으니까 이런 불행이 닥치는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평생 잘 먹고 잘 사는 일도 많습니다만, 그건 또 그들이 죽은 뒤에 영원한 지옥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오히려 불쌍한 일이라고들 생각합니다.  물론 거기서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어차피 인생은 찰라의 순간에 불과하고, 죽은 뒤에 맞이할 천국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영원의 삶이니, 지상에서 물질이나 건강의 복을 받아야만 예수님 믿는 보람이 있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제 시덥쟎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 그 대부분이 목사님들에게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제게 큰 상처를 준 목사님 말씀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교회들 중 두 목사님이 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한분은 장로교이고 다른 한분은 감리교셨는데도 동일한 일화를 인용하셨습니다.

"미국에서의 연구 조사 결과인데, 독실한 기독교 가문과 믿음이 없는 가문을 몇 대를 걸쳐 조사해보니 이렇더라.  믿음이 강한 가문에서는 교수가 몇 명, 장군이 몇 명, 목사가 몇 명, 성공한 사업가가 몇 명...  그에 비해 믿음이 없는 가문에서는 도둑이 몇 명, 사기꾼이 몇 명, 창녀가 몇 명..."

뭐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제게 정말 큰 상처와 분노를 준 것은 다음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이 몇 명 나왔다더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정신이나 신체에 장애가 없는 분들께서는 본인이 잘 나서, 본인이 깨끗한 영혼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 덕분에 건강을 누리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제 사지가 멀쩡한 이유는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것 뿐이고, 저도 한끝만 운이 나빴어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뭔가 장애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그런데 장애인이라는 것이 마치 뭔가 죄에 대한 벌인 것처럼 말하는 저런 설교에는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디 가서 기독교인이라고 스스로 말하곤 합니다만, 사실 진짜 믿음이 있는 기독교인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이 인격을 가진 분이고 우리 미천한 인간들과 기도와 그에 대한 응답을 통해 정말로 소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천지 창조와 생명의 탄생이 신의 조화라는 것을 믿습니다만, 신이 과연 인성을 가지고 질투와 사랑을 하시는 분인가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레오너드 코헨의 노래 중에 Nevermind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The high indifference
Some call fate
But we had names
More intimate

어떤이들이 운명이라고 부르는
고귀한 무심함
하지만 우리에겐
더 친밀한 이름들이 있지


왜 신께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얼굴을, 어떤 이에게는 추한 외모를 주셨을까요 ?  글쎄요.  신의 눈에는 얘나 쟤나 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을까요 ?  제가 성경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고 믿음이 없어서 그렇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신을 high indifference라고 생각합니다.  신께서는 이미 이 세상을 (우리의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의도대로 만들어 놓으셨고, 그 속에서 우리가 부질없이 아웅다웅 살아가는 모습을 관조적인 자세로 보고 계시다고요.  신이 이미 이 세상을 의도대로 만들어 놓으셨고 모든 것이 그 틀 안에서 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 과정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고 해서 신께 고쳐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  성경을 보면 실제로 그렇게 진심으로 기도하면 행성의 자전조차도 역행시킬 수 있다고 하니, 기독교인이라면 신께 기도하며 뭔가 물리적인 징표를 바라는 것이 나쁜 일 같지는 않습니다.  

(열왕기 하 20장 8절 ~ 11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안 믿으면 너 이단...  그런데 가만히 저 성경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태양의 운행이나 지구 자전을 변경하신 것이 아니라 그냥 해시계 주변의 햇빛만 굴절시키신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그냥 선지자 이사야가 해시계의 눈금만 조작했을 수도...)

 

 

아, 저 영화 속에서는 저 엄마도 신도들의 그런 말에 큰 상처를 받지만, 결국 하나님의 기적으로 아이의 불치병이 완치됩니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매우 적지요.  그런 기적을 경험하지 못해서 병으로 죽거나 평생 고생하는 사람들은 정말 믿음이 부족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일까요 ?  글쎄요.  

 

어떤 교회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마다 장로들이나 신도들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의 예를 들으시면서 'XXX의 경우를 보라, 예수님을 열심히 믿으니 저렇게 성공하시는 것 아니냐, 여러분도 예수님 믿고 성공하시기 바란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물질적으로 성공하신 분들을 위해 지상에 오시지 않았고, 가난하고 죄많고 병든자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언급이 성직자의 입에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 신도들이 모이고, 그래야 헌금액이 많아지거든요.


저는 성경이 한글자 한글자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금과옥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예수님께서는 신의 공의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당부를 남기셨다는 것만을 믿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면서 그런 개인적인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네요...

 

 



버클랜드는 결정 장애로 괴로와하면서 (in painful indecision) 그의 두 하급 장교를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부시는 그런 그에게 동정심이 느껴졌다.  만약 이 두번째 공격이 처참하게 실패한다면, 특히 전체 상륙조가 고립되어 항복이라도 해야 한다면 버클랜드의 미래는 확실하게 끝장나게 될 것이었다.

"우리가 요새를 점령한다면, 함장님," 혼블로워가 말을 이었다.  "만 안에 있는 사략선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그 만을 정박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그건 사실이지."  버클랜드도 동의했다.  그것이 그가 받은 명령을 아주 깔끔하고도 경제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게 성공한다면 그의 평판은 완전히 회복될 수 있었다.

리나운 호가 파도를 타면서 전함의 목판들이 박자에 맞춰 삐걱거렸다.  무역풍이 선실 안으로 불어들어왔고, 선실 안의 갑갑함을 어느 정도 덜어주었다.  부시의 땀투성이 얼굴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빌어먹을."  버클랜드가 갑자기 신중함을 떨쳐버리고는 결정을 내렸다.  "하자구."

"알겠습니다, 함장님."  혼블로워가 말했다.

부시는 그 결정에 기쁨을 드러내는 말을 뭔가 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혼블로워도 중립적인 목소리를 내야 했다.  버클랜드를 너무 노골적으로 행동 쪽으로 몰아붙이면 역효과를 내어 지금이라도 버클랜드가 결정을 번복하는 결과를 낼 수도 있었다.

비록 이 결정이 내려지긴 했어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결정을 하나 더 내릴 것이 남아 있었다.  

"누가 상륙조를 지휘할 거지 ?" 버클랜드가 물었다.  그건 사실 수사적인 질문이었다.  버클랜드 말고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은 부사와 혼블로워에게 명백했다.  그들은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불쌍한 로버츠가 살아 있었다면 그의 의무였을텐데 말이야."  버클랜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부시 쪽을 돌아보았다.

"미스터 부시, 자네가 지휘를 맡게."

"예, 함장님."

부시는 의자에서 일어나 낮은 갑판 들보에 부딪히지 않도록 고개를 불편하게 숙인 채 섰다.

"자네와 함께 상륙할 사람으로 누구를 데리고 가고 싶은가 ?"

혼블로워는 이 회의 내내 일어나 있었는데, 이제 그는 몸의 중심을 이쪽 발에서 저쪽 발로 왔다갔다 옮겨가며 초조해 하고 있었다.

"제가 더 필요하신지요, 함장님 ?"  혼블로워는 버클랜드에게 말했다.

부시는 그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는 혼블로워 내면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아챌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공손하고 성실한 장교로서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부시는 전함에 남아 있는 부관인 스미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는 당연히 상륙조에 포함될 해병 대위인 화이팅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또 하급 장교로 활용될 수 있는 사관생도들과 보조 항법사들이 있었다.  그는 이제 위험하고 절박한 전투 작전의 책임을 맡아야 했다.  작전에 들어가면 그 성공은 버클랜드의 근무 고과에도 영향을 주겠지만 그 자신의 근무 고과에도 영향을 주는 중대한 일이 될 것이었다.  이런 일, 그러니까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이 떄에 그는 누구를 자신의 옆에 두고 싶었을까 ?  만약 그가 다른 부관을 한 명 더 요청한다면 그는 상륙조의 지휘 서열 2위를 맡게 될 것이며, 현장에서 뭔가 결정을 내릴 때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었다.

"이 자리에 미스터 혼블로워가 더 필요한가, 미스터 부시 ?"  버클랜드가 물었다.

혼블로워는 적극적인 차석 지휘관이 될 재목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가만히 있질 못하는 차석 지휘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었다.  그는 툭하면 - 최소한 머리 속으로는 - 비판적으로 나올 것이었다.  그는 그의 명령 하나하나를 혼블로워가 다 듣고 있는 자리에서 지휘관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시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논쟁은 장점과 단점을 또박또박 짚어가며 명확히 틀을 짜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저 그의 다년간의 경혐에서 비롯된 편견과 본능의 충돌이었고, 그런 것을 부시는 말로 명확히 표현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혼블로워도 스미스도 필요없다고 막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에 혼블로워의 얼굴을 쳐다보게 되었다.  혼블로워는 그냥 무표정인 얼굴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으나, 부시의 동정어린 눈에는 혼블로워가 이 상륙조에 끼고 싶어 얼마나 안달이 났는지가 훤히 보였다.  물론 어떤 장교라도, 자신을 빛나게 할 기회가 되는 이런 작전에 당연히 끼고 싶어할 것이었다.  그러나 혼블로워를 요동치게 만드는 것은 그것보다는 좀 더 긴박한 동기인 것처럼 보였다.  그의 손은 양 옆에 '차렷' 자세로 있었으나, 부시가 보니 그의 긴 손가락은 넓적다리를 초조하게 톡톡 두드리다가 자제하다가 다시 못 견디고 두드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부시가 결정을 내리도록 한 것은 냉정한 판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친절 때문이었다.  어쩌면 애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덧 이 불안하고 다재다능한 젊은이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육체적 용기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저는 미스터 혼블로워를 함께 데려갔으면 합니다, 함장님."  그는 말했다.  이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그의 자유의지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형이라면 뭔가 신나는 일을 할 때 부담이 좀 되더라도, 그저 친절한 마음에서 훨씬 어린 동생을 데리고 가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그가 이 말을 하자 그에 호응하여 혼블로워가 부시에게 눈길을 던졌는데, 그 눈빛을 보니 개인적 감정을 섞어서 결정을 했다는 후회가 싹 사라져버렸다.  혼블로워의 눈빛에는 안심과 함께 고마움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서, 부시는 마치 자기가 굉장히 친절한 아량을 베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렇게 결정함으로써 자기가 더 위대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혼블로워를 사지로 끌고 들어가는 것에 대해 혼블로워가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이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부시에게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알겠네, 미스터 부시." 버클랜드가 말했다.  그에게 흔한 일이었지만, 결정을 하고나서 그는 또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나면 내게는 부관이 한명 밖에 안 남는군."

"카베리가 당직을 맡을 겁니다, 함장님."  부시가 대답했다.  "그리고 당직 사관 역할을 잘 해낼 보조 항법사가 몇 명 있습니다."

부시는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마치 물고기가 미끼를 물 듯 반대에 대해 반박으로 맞서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알겠네." 버클랜드는 거의 한숨을 내쉬다시피하며 다시 말했다.  "그리고 자네는 뭐 때문에 안절부절한 건가, 미스터 혼블로워 ?"

"아무것도 아닙니다, 함장님."

"뭔가 말하고 싶은게 있는 것 같은데.  까놓고 말해보게. (Out with it)"

"중요한 건 아닙니다, 함장님.  기다려도 되는 일입니다.  다만 항로 변경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함장님.  지금 스캇치맨 만으로 항로를 변경하면 시간 낭비를 없앨 수 있습니다."

"그렇겠군."  해군 내의 모든 장교들처럼 버클랜드도 바람과 날씨는 언제든 변덕을 부릴 수 있으며, 따라서 바다에서 뭔가 결정을 내리면 절대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옆구리를 찔러주지 않으면 자꾸 그걸 잊는 것 같았다.  "그래, 알겠네.  그러면 당장 전함을 순풍 방향으로 항로를 변경하는 것이 좋겠군.  지금 항로는 어느 방향이지 ?"

전함의 항로를 변경하는 난리법석이 잦아든 뒤 버클랜드는 일행을 데리고 그의 선실로 돌아가 지친 듯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새삼스럽게 다시 시작된 걱정으로 초조하다는 것을 감추려고 일부러 변덕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당분간은 미스터 혼블로워가 만족스러워하겠군."  그는 말했다.  "이제 자네가 필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게, 미스터 부시."

상륙작전에 대한 토의는 편성할 수병들과 그들에게 지급할 장비들, 다음날 아침 어디서 어떻게 랑데뷰할 것인지 등에 대해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이런 사항들이 정리되는 동안 혼블로워는 나서지 않고 학구적인 태도로 뒤쪽에 잠자코 있었다.

"뭐 제안할 거라도 있나, 미스터 혼블로워 ?" 부시가 결국 물었다.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예의상으로라도 그렇게 질문을 해야 했다.  

"딱 하나 있습니다.  줄을 연결한 보트 갈퀴(boat grapnel)들을 좀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요새 벽을 기어올라야 한다면 그것들이 유용할 것입니다."

 

(해전을 벌일 때 상대편 군함이나 보트에 던져 넣어 잡아당길 때 사용되는 보트 갈퀴입니다.)



"그렇겠군."  부시도 동의했다.  "그것들이 지급되도록 신경써주게."

"예, 부관님."

"전령이 필요한가, 미스터 혼블로워 ?"  버클랜드가 물었다.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함장님." 

"누구 특히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나 ?"

"괜찮으시다면 웰라드가 좋겠습니다, 함장님.  침착하고 생각이 빠른 친구입니다."

"알겠네."  버클랜드는 웰라드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듣고는 혼블로워를 째려보았으나 (웰라드는 소여 함장이 햇치 통로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함장 수행 능력을 상실하게 된 사건과 관련이 되었던 사관생도입니다 : 역주) 당장은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야기 하지 않고 넘어갔다.

"다른 건 없나 ?  없다고 ?  미스터 부시는 ?  모두 된건가 ?"

"예, 함장님." 부시가 말했다.

 

버클랜드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두두 두들겼다.  방금 항로를 변경한 것은 결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그의 결정이 확고히 굳어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명령을 내린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수병들을 잠에서 깨워서 무기를 지급하고 상륙에 대한 지시사항을 전달한다면 더 이상 그 결정을 철회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었다.  다시 시도했다가 혹시 실패라도 한다면 그건 정말 대참사가 되는 셈이었다.  성공을 이끌어내는 것은 그의 권한 밖의 일일지 몰라도, 실패를 회피하는 것은 분명히 그의 권한 내의 일이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를 몰인정하게 쳐다보고 있는 두 부하 장교의 시선과 눈을 마주쳤다.  아니야, 이미 철회하기엔 늦었어.  나중에라도 철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그의 실수였다.  그는 철회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명령을 전달하는 일만 남았군."  그는 말했다.  "그렇게 전달되도록 해주겠나 ?"

"예, 함장님."  부시가 말했다.

 

부시와 혼블로워가 막 선실을 나서려는 찰라에 버클랜드가 오랫동안 묻고 싶었던 질문을 마침내 했다.  이 질문은 혼블로워가 웰라드를 언급하면서 궁금증이 다시 피어난 것이긴 했지만, 이 질문을 하려면 갑자기 대화 주제를 바꿔야 했다.  하지만 뭔가 결정을 내렸다는 성취감으로 뿌듯해하고 있던 버클랜드는 용기를 내어 이 질문을 마침내 꺼냈다.  어쨌거나 이건 기분이 고조되는 순간이었으므로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그나저나, 미스터 혼블로워." 그는 말하자 혼블로워는 문 가에 멈춰섰다.  "대체 함장님은 어쩌다 햇치 통로에서 떨어지게 된 것이지 ?"  

부시는 혼블로워의 얼굴에서 그 열정 넘치는 표정이 싸악 사라지고 무표정의 가면으로 대체되는 것을 보았다.  대답이 나오기까지는 1~2초 정도가 걸렸다.

"아마 균형을 잃으셨던 것 같습니다, 함장님."  혼블로워는 매우 정중하지만 전혀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함이 그날밤 요동이 심했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함장님."    (누군가 함장을 햇치 통로 아래로 떠밀어버린 것 같긴 한데, 사람들은 웰라드 혹은 혼블로워 둘 중 하나가 그랬다고 의심들 하고 있습니다. : 역주)

"그랬던 것 같네." 버클랜드가 대답했는데, 그 목소리에는 실망감과 당혹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혼블로워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그 얼굴에서 얻어낼 정보는 전혀 없었다.  "아, 알겠네. 하던 일 계속 하게."

"예, 함장님."

 

 

 

 

최근 야후 파이낸스에 '저는 연봉 12만5천불의 Data Scientist입니다만, 평생 이 일을 하고 싶진 않아요'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I'm A Data Scientist Making $125K – & I Don't Want To Do This For The Rest Of My Career

https://finance.yahoo.com/amphtml/news/im-data-scientist-making-125k-203431776.html

돈 이야기 좋아하는 속물인 제가 이런 제목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읽어보고 한줄 요약하니 이렇습니다.

"직업 이야기는 세계 어디나 다 똑같구나..."

이 기사는 연봉 10만불 이상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물로 연재하고 있는 기사들 중 일부입니다.  참고로 미국에서 이 정도의 수입이 있는 여성은 전체 여성의 5% 정도라고 하네요.  

참고로 이 기사에는 200여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일부는 이 여성을 칭찬하는 내용이고 상당수는 질투하는 내용입니다.  뉴욕에서 12.5만불이면 거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등의 댓글 달리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더군요.  눈에 띄는 댓글은 아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In poverty she is envious. In riches she may be a snob. Money does not change the sickness, only the symptoms” 

- John Steinbeck, The Winter of Our Discontent

"빈곤할 때 그녀는 질투한다.  부유할 때 그녀는 속물이다.  돈이 있다고 병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증상 뿐이다.

- 존 스타인벡, 불만의 겨울

 


직업: 중견 데이터 분석사 
나이: 28
장소: 뉴욕
학위: 수학 학사
초봉: $65,000
현재 연봉: $125,000

Q : 어릴 때의 꿈은 뭐였나요 ?
A : 어릴 때야 뭔들 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  처음에는 피아니스트, 다음에는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어요.  나중에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가 13살 일때는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었지요.  솔직히, 그건 성인이 되고나서도 계속 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에요.

Q : 대학에서는 뭘 공부하셨나요 ?
A : 수학 전공했어요.  18살이라는 나이는 다음 4년간 뭘 공부할지 정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에요.  저는 자랄 때 수학을 잘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거기에 대해 열정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어요. 

Q : 학자금 융자를 써야 했나요 ?
A : 예, 1만8천불을 융자 받았어요.  저는 반 정도는 장학금과 금전적 지원을 받아서 해결했어요.  제 부모님이 그 대부분을 주신 거지요.  제가 1만8천불만 융자 받은 것은 사실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3년 안에 다 갚았지요.

Q : 대학 졸업 이후 계속 이 회사에서 일하셨나요 ?
A : 아니요.  여기저기 많이 옮겨다녔어요.  항상 기술직이기는 했지만 산업 계통은 많이 바꿨어요.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다니다가 컨설팅 일도 조금 했고요, 이젠 기술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 직장에서 매일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
A : 매일 data를 분석해요.  그러니까 쉽게 데이터를 볼 수 있는 계기판을 만들거나 여러가지 데이터를 요약하는 코드를 짜는 거지요.  여러가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 내의 여러 사람들과 협업을 해요.  뜻하는 바는 측정 단위를 정의하기도 하고, 시간에 따라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시각화를 만들기도 하고 빅데이터에서 뭔가 의미를 뽑아내기도 한다는 이야기지요.  

Q : 연봉 협상을 하세요 ?
A : 그럼요 !  항상 협상을 하지요.  현재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항상 부지런히 시장 조사를 해요.  예전 직장에서는 연봉 협상을 안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를 하고 있어요.  최근 일자리 검색을 하면서 몇가지 제의를 받기도 했는데, 현재 직장에서 협상할 때 그런 일자리 제의가 도움이 되었어요.  협상할 때는 단호하면서도 이해심을 가져야 해요.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면 확고한 물증, 가령 자격증이나 자기만 할 수 있는 기술 등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다른 형태의 보상에 대해서도 오픈 마인드여야 하고요.  제 현직장에서는 취업 보너스를 더 많이 줄 수는 없었지만 우리사주를 좀더 주었지요.

Q : 현재 직업에 대해 열정이 있으신가요 ?  아니라면 왜 그렇지요 ?
A :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고민 중이에요.  저는 지금 하는 일 잘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흥분될 정도는 아니에요.  제게는 까다로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창의적 측면도 있지만, 그런 창의성은 딱 데이터 분석에 사용될 정도에 불과한 정도에요.  저는 직업에서 열정을 찾아야 한다는 개념은 포기했어요.  많은 밀레니얼 세대가 직장에서 가지는 불만이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속한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너는 무엇이든 니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어요.  대학에 갈 때는 나중에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의 직업이 그냥 생활비 내고 전기세 내는 것이라는 거에요.  저는 그 점에 대해서는 현실과 타협했어요.  저는 디자인하고 미술 공예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걸로 직업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건 그냥 취미에 대한 열정 정도지요.  

Q : 할 수만 있다면, 커리어 방향에서 무엇이든 바꿔보시겠습니까 ?
A : 좀 위선적이긴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는 편이에요.  동시에, 지금 하는 일을 평생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장은 모르는 상태로 두는 것이 불편하진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