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751

글로 읽는 먹방 - 잭 오브리의 커피 초심을 살려,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영국 해군 함장과 그 친구인 군의관의 모험을 그린 소설인 Jack Aubrey & Maturin 시리즈 중 커피와 관련된 부분을 발췌해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일종의 문장으로 보는 먹방이지요. 저도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에 '커피는 hot & strong'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Post Captain 1) 멜베리(Melbury) 장(莊)에서의 아침식사도 쾌활한 편이었으나, 약간 다른 방향으로 그런 편이었다. 칙칙한 마호가니와 터키식 카펫, 웅장한 의자들, 커피와 베이컨, 담배와 땀에 젖은 남자들의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그들은 새벽부터 낚시질을 갔다가 이제 막 아침식사를 절반 정도 끝낸 상태였다. 그들 앞에 대령된 아침식사는 넓고 하얀 식탁보를 가득 매우고 .. 2020. 11. 12.
보로디노 에필로그 (4) - 자기 모순 한편, 프랑스군의 피해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적게는 2만8천부터 많게는 4만까지 피해 추정치는 다양한데, 여기서는 대략 3만5천이라고 보겠습니다. 프랑스군의 전력을 대략 14만이라고 가정한다면, 약 25%의 피해였습니다. 거의 40%의 손실을 낸 러시아군에 비하면 훨씬 적은 편이었지만, 어지간한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나 내던 손실이었습니다. 러시아군의 피해를 4만5천이라고 가정하면 하루 아침에 양측이 무려 9만5천의 피해를 낸 셈이었습니다. 이는 당대 유럽 전사상 단 하루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였고, 이 기록은 제1차 세계대전 1916년 7월 1일 솜므(Somme) 전투 때까지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솜므 전투는 영불 연합군이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벌인 전투입니다. 약 140일간 이어진 전투에서.. 2020. 11. 9.
노동과 육아 - 볼보 광고에 나온 "Hard Times in the Mill" 가사 해설 새로 나온 볼보 자동차의 TV 광고를 봤습니다. 차선 유지나 후방 위험 감지 등을 위한 자동 안전 장치를 강조하는 내용이에요. 재미있었던 부분은 이 광고에 사용된 음악이었습니다. 제목은 "Hard Times in the Mill"이고 작사가는 무명씨입니다. 미국의 공업화 시기에 면직 공장(cotton mill)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 사이에서 불리던 일종의 포크송입니다. 이 노래에는 여러가지 가사 버전이 있고, 또 여러 가수들이 레코드로 취입했는데, 이 광고에 삽입된 것은 그 중 가장 유명한 피트 시거(Pete Seeger)의 1950년대 버전입니다. 피트 시거는 당시 밥 딜런이나 존 바에즈 같은 포크송 가수들이 흔히 그랬듯이 사회성 있는 노래를 많이 불렀고 또 실제로 노동 운동과 인권 운동,.. 2020. 11. 5.
보로디노 에필로그 (3) - 쿠투조프, 러시아를 구원하다 비아젬스키 대공의 기록에 따르면 러시아군 대부분이 전설 속의 영웅 나폴레옹을 상대로 잘 싸웠다고 스스로 우쭐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젊은 장교들과 최전선에 서지 않았던 부대들의 병사들 상당수가 정말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러시아군은 괴멸상태였습니다. 보로디노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대략 3만8천에서 5만8천 정도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래 병력을 12만으로 추정하고 약 4만5천의 병력이 전사나 부상으로 손실되었다고 가정하면 37.5%의 손실을 낸 셈입니다. 보통 당시 전투에서 승자의 손실률이 10%, 패자는 20%였던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참패였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정말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던 예나 전투와 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의 손실률은 각각 14%와 2.. 2020. 11. 2.
전함을 고철로 팔면 얼마가 나올까 ? - 1947년 미해군성 국회 청문회 제1, 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하던 거함거포 시절의 전함들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미해군의 경우 아이오와(Iowa)급 전함 몇 척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만, 정말 그것 뿐이고 대부분의 전함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 전쟁이 끝나면 칼과 창을 녹여 낫과 쟁기를 만든다고, 낡은 전함들도 그렇게 해체하여 고품질의 강철을 얻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처참하게 해체되는 HMS Nelson과 HMS Rodney... 뒤에 있는 다른 1척은 무슨 전함인지 모르겠군요. 원래는 소련과의 분쟁에 대비해서 넬슨급 전함들도 남겨둘 것을 고려했으나 역시 1925년에 진수된 낡은 전함이다보니 속력이 23노트로서 항공모함을 따라다니기엔 너무 느려서 결국 저 신세가.. 2020. 10. 29.
보로디노 에필로그 (2) - 위풍당당 쿠투조프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이 끔찍했던 하루의 의미에 대해 곱씹으며 우울한 밤을 보내는 동안, 러시아군 진영의 분위기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별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며칠 동안 삽질을 하며 구축해놓은 방어선을 버리고 후퇴했고, 수많은 병력을 잃었다는 것을 쿠투조프부터 맨바닥의 농민병까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즉, 모두가 프랑스군이 승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분위기는 '프랑스군이 승리했지만 러시아군이 패배한 것은 아니다'라는 역설적인 것이었습니다. 축구 약소국인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 감정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가 독일이나 브라질과 치열하게 싸운 결과 7대8로 아쉽게 졌다면 분위기가 침통하겠습니까 ? 러시아군의 분위기가 딱 그랬습니다. 전투 직전까지 쿠투조.. 2020. 10. 26.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세난이 발생했다? 3줄 요약 : - 맞습니다.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세난이 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고, 또 그로 인해 고생하시는 세입자가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 임대차 3법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1) 규제 때문에 전세공급이 줄어서 그렇다 --> 그러면 원래의 전세공급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빈집으로 비워뒀다? 자식이나 조카에게 그냥 살라고 줬다? 이건 말이 안되는 설명인 것이, 규제로 인해 제값을 못받게 되니까 아예 더 큰 손해를 보기로 결정할 감정적 집주인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2)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어서 전세공급이 줄어든 것이다 --> 그러면 월세 공급이 확 늘었으니 월세가 싸졌겠네? 월세 물량이 확 늘었다는 정보는 못봤습니다. 무엇보다, 전세를 월세로 돌릴 정도로 여유.. 2020. 10. 22.
보로디노 에필로그 (1) - 우울한 승자 전투가 끝난 어두운 보로디노 벌판은 그야말로 한 폭의 지옥도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온 들판에 말과 사람의 시체와 부서진 장비들이 가득했는데, 대부분의 사상자는 포격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에 그 시체들의 모습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창자가 빠져나온 채로 비틀거리며 자꾸 일어서려는 말, 두동강이 난 병사들, 머리가 없는 시신들... 아직 숨이 붙어있는 부상자들이 내는 비명 소리와 신음소리는 살아남은 병사들의 신경을 긁었습니다. 먹을 것도 가져오지 못한 군대에게 붕대와 의약품, 들것 등을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심한 부상을 당한 병사들은 대부분 긴 고문에 의한 사형 선고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어떤 부상병들은 자기를 총으로 쏘아 죽여달라고 흐느끼기도 했지만 어떤 이들은 어떻게든 살겠다고 피를.. 2020. 10. 19.
항공모함 킬러의 전설 - HMS Glorious 이야기 느린 호위 항모가 아닌 정규 항모를 전함이 함포로 격침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1) 정규 항모의 함재기의 공격 범위가 전함의 함포 사거리보다 엄청나게 길다 2) 정규 항모는 최소한 전함만큼 빠르거나 보통 더 빠르다 3) 정규 항모는 보통 전함과 순양함들의 호위를 받는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업적을 이룬 전함이 있습니다. 바로 독일의 전함(또는 전투순양함)인 샤른호스트(Scharnhorst)입니다. 1940년 6월 8일 노르웨이 인근에서 샤른호스트는 영국 정규 항모 글로리어스(HMS Glorious)를 격침합니다. 샤른호스트는 위의 3가지 불가항력을 어떻게 다 극복했을까요? 샤른호스트가 잘 했다기보다는 글로리어스의 함장이 바보짓을 너무 많이 저질렀고, 거기에 운.. 2020. 10. 15.
보로디노 전투 (12) - 허무한 결말 나폴레옹이 근위대 투입을 주저하며 머뭇거리던 3시간은 러시아군에게는 정말 소중한 재정비 기회였습니다. 쿠투조프는 여전히 고르키 마을에서 참모들과 노닥거리고 있었지만 바클레이는 러시아 방어선 우익에 포진되어 있던 병력을 대거 중앙과 좌익 쪽으로 옮겨 허물어진 방어선을 재구성했습니다. 특히 러시아군의 맹렬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이 라에프스키 보루 앞에 정렬했으므로 그 쪽으로 강력한 공격이 가해질 것이 뻔했으므로, 라에프스키 보루의 양 옆에도 보병들을 포진시켰고, 보루 뒤 800m 후방에는 보병과 포병으로 제2 방어선도 든든히 구축해놓았습니다. 콜랭쿠르가 목숨을 버려가며 점령한 라에프스키 보루는 그 한 가운데에 있었던 것입니다. (상트 페체르부르그 카잔 성당 인근에 있는 바클레이의 동상입니다. 분명히 그.. 2020. 10. 12.
B-17 폭격수가 주인공인 영화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하) 먼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육군이나 해군이나 사병들은 동일한 급여를 받았습니다. 다만 맡은 보직과 병종, 부양 가족 유무에 따라서 각종 수당에서 큰 차이가 났습니다. (1942년 당시 미군 사병 급여 표입니다.) 그러니까 군에 보병으로 입대하면 나오는 기본이 50불이었습니다. 그런데 HBO의 유명 미니시리즈인 'Band of Brothers'의 첫부분에 나오는, 이제 노인이 된 실제 공수부대원들과의 인터뷰 장면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왜 공수부대에 지원했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그때 모병 부사관이 공수부대원이 되면 50불을 더 받는다고 그러더라고요'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공수부대처럼 위험한 병종의 이등병은 무려 2배의 월급을 받는 것이었지요. 비록 낙하산은 타지 않지만 공수.. 2020. 10. 8.
보로디노 전투 (11) - 기병대 영광의 순간 역사상 기병대가 요새를 점령한 일은 흔치 않습니다. 말이 성벽을 뛰어 넘을 수는 없으니까요. 제 정신을 가진 기병대 지휘관이라면 성벽을 향해 돌격을 감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기병대가 라에프스키 보루를 향해 돌격을 시작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아일라우(Eylau) 전투에서도 그랬고 바그람(Wagram) 전투에서도 그랬습니다만, 위기가 닥치거나 전황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기병대를 냅다 적진에 집어던지곤 했습니다. 이때도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최전선의 원수들이 차례로 전령을 보내 근위대를 투입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거부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그냥 알아서 어떻게든 이기라고 독촉하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나폴레옹은 나름대로 다 계획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기병대.. 2020.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