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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29 러시아 침공을 위한 병참 준비 - 무엇이 문제였을까 ? (1편) (13)


1810년 마지막 날에 영국 상품의 입항을 허용하고 반대로 프랑스 상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를 부가하는 짜르 알렉산드르의 칙령(ukaz)이 내려지자, 이제 전쟁은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유럽 전체가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폴란드 문제로 1810년 중반부터 아웅다웅하고 있던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는 말로만 툭탁거리지 않았고, 서로 병력을 바르샤바 공국 접경 지역으로 증강 배치하면서 상호간의 긴장감을 키워나갔습니다.  나폴레옹은 1806년 전쟁 때 점령한 뒤 계속 움켜쥐고 있던 슈테틴(Stettin)과 단치히(Danzig) 등 프로이센의 주요 요새들에 병력을 추가 배치하고, 더 나아가 프랑스 내의 병력들도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등 동부 지대로 조금씩 이동시켰습니다.  

 

(오늘날 폴란드 영토가 된 슈테틴, 폴란드어로는 슈체친입니다.  오데르 강에 접하고 있는 도시로서, 베를린으로부터는 140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도시이며 원래 프로이센 영토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게 동부 영토를 빼앗긴 폴란드에게 보상 형식으로 주어졌지요.)

 



1811년에 접어들자 본격적인 전쟁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1811년 4월에는 긴 꼬리가 달린 혜성이 관측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혜성은 큰 전쟁과 기아, 전염병 등 좋지 않은 대사건의 전조로 받아들여졌는데, 모스크바부터 마르세이유까지 유럽 전역에서 이 불길한 혜성을 보면서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알렉산드르 본인도 이 혜성에 대해 '어디까지나 과학에 대한 흥미 때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미국 대사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드르가 혜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이, 나폴레옹은 정말 바빴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기존의 전쟁과는 규모와 성격면에서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만큼 철저한 준비를 위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이 남긴 편지를 보면, 나폴레옹은 연대 번호만 들어도 그 부대의 지휘관이 누구고 어디에 배치되어있으며 편성된 전력이 어떤 수준인지 또 그 과거 전적이 어땠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세세한 점까지 신경을 쓰면서 새로 병력을 뽑고 새 부대를 편성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로 무척 바빴습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공을 위해 준비한 병력은 대략 68만, 그 중에서 실제로 네만(Nieman) 강을 건너 러시아로 동진할 인원은 (학자들에 따라 이견이 분분합니다만) 대략 40만에 달헸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런 준비를 하면서 러시아군을 무찌를 신무기나 새로운 전술 등을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신기할 정도로 새로운 군사 기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가 이번 전쟁 준비에 있어서 가장 관심을 둔 것은 바로 병참이었습니다.  그는 1807년 삭막한 폴란드 땅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면서 동부 유럽은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독일이나 이탈리아와는 확연하게 다른 곳이라서 기존처럼 현지 조달에 의존해서 싸우다가는 굶어죽기 딱 좋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역대급의 보급망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나폴레옹은 1811년부터 1812년까지 폴란드를 가로지르는 비스툴라(Vistula, 폴란드어로는 Wisła 비스와) 강을 따라 대규모의 보급창을 건설했습니다.   비스툴라 강은 바르샤바는 물론 모들린(Modlin)과 토른(Thorn) 등의 주요 요새 및 도시를 거쳐 항구 도시 단치히(Danzig, 현재의 그단스크 Gdansk)에서 발트 해로 흘러가는 폴란드의 대표적 수로였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영토와 직접 맞닿아 있는 라인 강과 이 비스툴라 강 사이에 총 5개의 수송로를 설정하고 프랑스와 독일 지역에서 긁어모은 물자를 실어날랐습니다.  

 

(유럽 대륙의 주요 하천입니다.  템즈 강 같은 것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지만, 비스툴라 강은 당당히 표시될 정도로 꽤 중요한 강입니다.)

 

(브레슬라우, 즉 보르츠와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오데르 강에 접한 도시입니다.)

 

 

 

그 결과, 1812년 1월까지 나폴레옹은 단치히에만 40만 명의 병사들과 5만 마리의 말이 50일 간 먹을 식량과 사료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40만 명 x 50일 = 2000만 명분의 식량을 쌓아놓은 것이지요.  이 외에도 오데르(Oder) 강에 접한 프로이센의 도시 퀴스트린(Küstrin, 폴란드어로는 Kostrzyn 코스트신)과 슈테틴(Stettin, 폴란드어로는 Szczecin 슈체친)에도 별도로 수백만 명분의 식량을 축적했습니다.  역시 오데르 강에 접한 프로이센 도시 브레슬라우(Breslau, 폴란드어로는 Wrocław 브로츠와프)와 비스툴라 강에 면한 프오츠크(Płock) 및 비소그루트(Wyszogród) 등에는 거대한 곡물 창고와 제분소가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생산된 밀가루는 비스툴라 강을 통해 배 편으로 토른에 보내져 하루에 6만개씩의 큼직한 야전용 건빵이 구워졌습니다.   그 외에도 각 부대의 뒤를 따라 가도록 걸어다니는 푸줏간인 가축떼를 5만마리나 모아두었습니다.  

 

(베를린과 슈테틴, 즉 슈체친과의 거리를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원래 슈테틴은 독일 영토일 때 베를린의 외항 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비스툴라 강변을 따라 늘어선 폴란드의 주요 도시들과의 거리를 봐두시기 바랍니다.)

 

 

(나폴레옹의 주요 물자 수송로 역할을 한 비스툴라 강, 즉 비스와 강입니다.  폴란드의 주요 도시들은 이 강을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이렇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잔뜩 쌓아만 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아니었습니다.  이것들을 쾌속으로 진군하는 부대들의 속도에 맞춰 러시아 내륙으로 수송을 해야 했지요.  나폴레옹은 이를 위해 치중대대(train battalion) 20개를 편성했습니다.  여기에는 7,848대의 마차가 배속되어 배고픈 병사들을 먹일 식량을 실어나르도록 했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의 규모인가하면, 스페인 전역을 위해 나폴레옹이 조직한 치중대대의 규모를 보시면 됩니다.  1810년 10월, 나폴레옹은 총 12개 치중대대를 편성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마차의 수가 1,700대 정도였습니다.  그 중에서 스페인 방면군에는 5개 대대를, 포르투갈 방면군에는 2개 대대를, 그리고 프랑스 국내에서 5개 대대가 배치되었습니다.  1810년 당시에는 스페인에 배치된 프랑스군의 수가 20만을 훌쩍 넘었는데, 거기에 고작 5개 대대 약 710대의 마차가 할당된 것입니다.  그런데 40만의 러시아 방면군을 위해 10배가 넘는 수의 마차를 준비한 것을 보면, 확실히 나폴레옹은 여태까지와는 다른 각오를 가지고 수송에도 매우 신경을 쓴 것입니다.  

 

 

(한번도 하일라이트를 받지 못한 부대가 바로 치중대이지요.  하지만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은 보병과 포병, 기병일지 몰라도, 전쟁을 이기는 것은 바로 이 치중대였습니다.)

 



나폴레옹이 평소에 등한시하던 식량 문제에도 이렇게 신경을 썼으니 탄약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더욱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졌습니다.  현지 조달을 중시하던 나폴레옹조차도 무기와 탄약은 항상 본국으로부터의 수송에 의존했었거든요.  바르샤바에는 큼직한 무기고가 건설되어 각종 탄약과 무기가 집적되었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주요 식량 집적소인 단치히, 슈테틴, 퀴스트린 등에는 식량 뿐만 아니라 각종 야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제3차 대불동맹전쟁 때 동원된 나폴레옹의 7개 군단이 보유했던 대포의 수는 총 300문을 넘지 않았고,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당일날은 훨씬 더 적은 수의 대포가 동원되었습니다.  러시아 원정 이전까지는 유럽 최대의 전투였다는 바그람 전투에 동원된 프랑스군의 전체 대포 수는 488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이센의 마그데부르크(Madeburg)에 집결시킨 탄약과 포병대의 규모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이 곳의 무기고에는 135톤의 화약과 함꼐 200만발의 머스켓 탄약포가 축적되었을 뿐만 아니라, 야포 462문과 공성용 중포 100문이 집결되어 있었습니다.  슈테틴에는 263문의 야포, 100만발의 머스켓 탄약포, 90톤의 화약을, 퀴스트린에는 108문의 야포와 100만발의 탄약포를, 그리고 글로가우(Glogau)에도 108문의 야포와 100만발의 탄약포, 45톤의 화약을 축적해놓았습니다.  1812년 5월, 러시아를 향해 출발하던 그랑다르메(Grande Armee)는 806문의 야포와 761,801발의 포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야포 1문당 거의 1,000발에 가까운 포탄을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사상 최대이기도 하고 또 유례없이 격렬한 포병전이었던 바그람 전투 40시간 동안 프랑스군 포병대의 488문은 약 10만발을 발사했는데,  이는 1문당 200발 정도를 쏘아댄 것이었습니다.  이런 격렬하고 대규모였던 전투는 나폴레옹 인생 전체에서도 흔치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정말 충분한 양의 탄약을 준비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막대한 준비를 했지만, 아시다시피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결국 병참 문제로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




Source :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http://www.indiana.edu/~psource/PDF/Archive%20Articles/Spring2011/LynchBennettArticle.pdf
https://pdfs.semanticscholar.org/1d6e/96fd09126a40dca06ef01e8c9b13785e8379.pdf
https://warandsecurity.com/2013/02/11/why-napoleons-1812-russian-campaign-failed/
https://en.wikipedia.org/wiki/French_invasion_of_Russia
https://www.stolenhistory.org/threads/1812-french-invasion-of-russia-vs-logistics.1167/
https://www.bbc.co.uk/news/magazine-16929522
Napoleon's Train Troops: 1800-1815. Paul Lindsay Daw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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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웃자웃어 2019.07.29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 육군의 병력대비 전쟁비용이 프랑스군보다 높은 이유가 보급을 직접하거나 현지조달을 해도 현찰로 따박따박 지급해서 라고 알고있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 원정도 병력대비 전쟁비용이 많이 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러시아 원정의 전쟁비용은 얼마이며 이는 비유적으로 어느정도의 규모인가요?

  2. 동겸좀비 2019.07.29 14: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차대전 독일군의 병참한계선도 드리나-드네프르 강까지 였는데, 나폴레옹이라고 무슨 재주가 있었을까요.
    독일은 침공군의 규모가 400만이었으니 나폴레옹의 러시아 방면군 보다 10배나 많았네요.

  3. 터키는 강하다 2019.07.29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굉장한 양의 화약과 포탄을 저장했군요.아무래도 밀이나 감자랑 다르게 포탄과 화약은 러시아 농촌을 약탈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저리 준비한걸까요.

  4. 웃자웃어 2019.07.29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러시아군이 보로디노에서 프랑스군을 고전시킨 이유가 뭘까요?

    • 원인 2019.07.30 2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폴레옹이 몸이 좋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지휘를 하지 못했죠.
      다부가 크게 우회기동하자고 건의했는데, 나폴레옹이 각하시킴.
      프랑스군의 최대 강점이자 약점이 바로 나폴레옹이죠.
      나폴레옹이 몸이 아프면 패하는 경우가 많죠. 보로디노, 워털루 등.

    • reinhardt100 2019.07.30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로디노 전투가 중요한 이유가 소련식 군사학의 특징이라고 해도 좋을 포병전을 쌍방이 한치의 실수 없이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포병전력에서 프랑스군 587문, 러시아군 640문이었는데 쌍방의 공세 상당부분을 포병으로 틀어막아버리면서 격전이 되어 버린 겁니다. 후반부 양군의 포병 화력 밀도에서 프랑스군이 앞서버리면서 전투가 프랑스측으로 전세가 기울어버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여담이지만 이 때 경험부터 러시아 및 소련은 포병사단, 포병군단 개념을 자신들의 군사학에 도입했고 냉전기 서방권이 가장 무서워한 동구권의 재래식 전력인 포병전력이 적극적으로 확충됩니다. 절대 기갑전력이 아닙니다. 서방권이 MLRS니 통합화력이니 하는 거로 막으려던 건 어디서 쏟아질지 모르는 동구권의 압도적인 포병전력에서 쏟아질 '전선 그 자체를 뭉개버릴 수준의 화력'이었습니다. 그걸 막는 유일한 방법은 그 이상의 화력으로 맞불 놓는 것이었으니까요.

  5. 프로이센 2019.07.29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봤습니다. 말이 먹을 건초가 부족했던 걸까요

  6. 동장군 2019.07.30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의 수호신인 그 분을 너무 얕본것 아닐가요.
    주석페스트도 있고

    • 비우 2019.08.29 2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표적으로 잘못알려진 사실 입니다 나폴레옹은 겨울이 되기전에 모스크바를 점령하였고 겨울이 되기전에 떠났습니다 이때까지만 봐도 프랑스군의 비전투 손실은 엄청난 규모 였습니다

  7. 돌격대장 2019.07.30 0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자면
    보급선이 길어짐에 따라 수송에 어려움이생긴것
    아닐까요.러시아군의 청야전술에 현지조달도
    어려워져서 병참이 터졌을거같군요.

  8. 원인 2019.07.30 0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의 원정 실패는 몇가지 원인이 있죠.
    (1) 육로보급 그 자체
    (2) 군마의 마비저 박테리아 감염
    (3) 인간의 티푸스 감염
    (3) 주석으로 된 외투단추가 추위에 파쇄

  9. reinhardt100 2019.07.30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 평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라스푸티차가 끝나는 5월초부터 9월까지 얼마나 진격하냐?' 입니다. 물론 보급이 더 중요하죠.

    역사상 러시아 평원전에서 유일하게 러시아를 장기전으로 이긴 나라는 폴란드 하나입니다. 대동란 시절, 즉 1605년~1618년 전쟁기인데 이 시기 폴란드군을 나폴레옹이 꽤 참고했다는 알 수 있습니다. 폴란드군은 당시 핵심 전력인 윙드후사르는 보로디노 전투와 같은 수준의 중요한 쿠쉰 전투 같은 전투에서 주력으로 활용했고, 스몰렌스크 공성전 같은 경우는 포병전력이 상대적으로 충실했던 서유럽 출신의 용병대를 주로 활용했습니다. 나폴레옹 역시 보로디노 전투에서 최정예인 제국근위대는 일단 한번 더 쓰기 위해(?) 아꼈지만 그 외 주전력은 모조리 쏟아부었죠. 즉, 폴란드군처럼 단 한번의 결전으로 러시아군 주력을 붕괴, 알렉산드르 1세의 항복을 받아낸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보급이 뒷받침되야 이게 가능한데 폴란드군은 가능했지만 프랑스군은 불가능했다는 겁니다. 당시 폴란드 정규군은 모스크바에서 퇴각한 1612년부터 연방 역사상 최대 콘페라데치아(이익을 위한 연맹집단)을 결성해서 세임(연방 의회)와 국왕인 지그문트 3세에게 반란을 일으켰죠. 이 때문에 용병대인 '묵시록의 기사들'인 리소브치치가 국가 방위 및 러시아 침공전을 도맡았죠. 이들은 보급은 '당연히 러시아에서 현지조달한다'였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리소브치치는 소수 기병(6개 부대 약 2만)이었다는 점, 러시아 서부 전역을 보급조달지역으로 보고 무차별적인 약탈로 충분한 보급을 할 수 있었다는 거죠.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모스크바 단 하나만 노린 40만 이상의 공격군이 리소브치치처럼 광역 원정을 할 수 없었고 현지조달이 이미 불가능했다는 겁니다.

    후대 독소전쟁이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참고해 3개 집단군으로 분리, 광역 섬멸전으로 바르바로사 작전을 진행했지만 이 판국에도 후방 정리가 안 되서 개판된 걸 보면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이미 무리수가 여기저기서 보였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