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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편자, 그리고 협동조합 - 후툇길의 명암 빈약한 정규 외투는 갑작스러운 추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병사들의 노련함은 온갖 꼼수를 쥐어 짜냈습니다. 많은 병사들의 배낭 속에는 고향의 애인에게 선물하기 위한, 혹은 비싼 값에 팔기 위한 털가죽 등의 여성용 의류가 꽤 많이 들어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애인 생각 돈 생각에 그냥 추위를 견뎌보려했던 병사들도 결국엔 배낭에서 온갖 여성복을 꺼내어 입었습니다. 의외로 풍성한 여성복은 품 안에 공기가 많이 들어있어 추위 단열 효과를 냈습니다. 얇은 바지만으로는 다리의 추위를 막을 수가 없었던 어떤 병사는 양가죽 자켓을 거꾸로 다리에 꿰어 입고 허리춤에서 그 아랫단을 묶는 기발함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병사들은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웃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여성복.. 2021. 7. 19.
항공모함 잡담 (7/15) 20세기 들어서 미해군이 적에게 나포 당한 군함은 딱 2척. 그 중 하나는 1942년 필리핀 코레히돌 요새에서 일본군의 폭탄 공격에 손상을 입고 침몰했던 950톤짜리 소해정 USS Finch (AM-9). 이 배는 분명히 침몰했었는데 얕은 바다에 침몰했던지라 일본군이 건져내어 순찰선으로 사용. 그래서 이게 진짜 나포 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포 당한 군함으로 기록됨. 변명의 여지 없이 진짜 나포된 배는 바로 정보 수집함 USS Pueblo (AGER-2). 1968년 북한 해군에게 나포됨. 83명의 승조원 중 1명은 이 과정 중 사살되고 나머지는 모조리 포로가 됨. 김신조가 박정희 죽인다고 청와대 습격한지 3일 후 벌어진 일. 이 군함은 현재 평양 보통강변에 박물관으로 정박되어 있음. 심지어.. 2021. 7. 15.
11월 6일에 생긴 일 - 동장군의 습격 비아즈마 전투가 있기 5일 전인 10월 30일, 그루시(Grouchy)가 이끄는 군단 소속 포병 장교인 그리와(Lubin Griois) 대령은 병사들이 행군하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흠칫 놀랐습니다. 병사들이 행군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사기 면에서 아직 염려할 것이 없다는 표시이므로 무척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리와 대령이 놀란 이유는 그가 생각해보니 요 며칠 동안 병사들이 전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작은 사건은 2가지를 뜻했습니다. 그만큼 당시 병사들의 사기는 좋지 않았고, 또 적어도 10월 30일에는 그런 병사들도 노래를 부를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폴레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그 다음날인 10월 31.. 2021. 7. 12.
항공모함 잡담 (7/8) 세계 최초의 대잠용 폭뢰 역시 영국이 만듬. 1913년 로열 네이비 어뢰 학교에서 처음 고안을 해낸 뒤, 처음에는 520kg짜리 Mark II 정규 기뢰에 수압식 기폭 장치를 붙여서 폭뢰를 만들어 보았으나 너무 큰 관계로 '이걸 투하한 배까지 날려먹을 판'이라 사이즈를 줄이기로 결정. 그래서 나온 것이 1916년 1월의 Type D 폭뢰 (140kg, 첫번째 사진). 그나마 이것도 빠른 배에서나 투하할 수 있었고 느린 배는 자기가 투하한 폭뢰에 자기가 당할 위험이 있어서 느린 배를 위한 Type D* (54kg)을 따로 만듬. 이 폭뢰에 처음으로 당하는 영광을 누린 잠수함은 1916년 3월 독일 해군 SM U-68. U-boat를 꼬셔내기 위해 상선으로 위장한 무장 상선인 "Q-ship"인 HMS Far.. 2021. 7. 8.
러시아의 트라팔가 - 비아즈마(Vyazma) 전투 쿠투조프가 이런저런 욕을 많이 먹지만 나폴레옹 추격 전위대 지휘관으로 밀로라도비치(Mikhail Miloradovich)를 임명한 것은 무척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밀로라도비치는 나폴레옹보다 2살 어린 세르비아 출신의 귀족으로서, 러시아의 명장 수보로프(Alexander Suvorov) 장군이 수행했던 1799년 스위스 원정에도 참여하는 등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이었고, 무엇보다 용감하기로 소문난 군인이었습니다. 그의 별명이 러시아의 뮈라(Murat)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성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는 운이 무척 좋은 편이라는 점에서도 뮈라를 쏙 빼닮았습니다. 그는 항상 자랑하기를 50번 넘는 전투 속에서 단 한번도 부상은 커녕 생채기도 입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결코 안.. 2021. 7. 5.
밀리터리 잡담 (7/1) WW2 후반부에 나온 F6F Hellcat에 비해 모든 면이 떨어졌던 F4F Wildcat은 의외로 대전 말까지 생산이 계속됨. 왜 저성능 싸구려 함재기를 계속 생산했을까? 바로 상선을 개조해 만든 소형 저속력 항모인 escort carrier 때문. 호위항모는 18노트로 워낙 느려서 충분한 맞바람을 일으킬 수 없었고 또 너무 작아서 착함 속도가 매우 느려야 했는데, 헬캣이나 콜세어 같은 신형 함재기들은 크고 무겁고 빨라서 호위항모에서의 이착함이 어려웠음. 그래서 와일드캣에게도 역할이 주어진 것.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이나 물건은 없음. 제 역할을 찾지 못했을 뿐임. 이들은 북해의 차갑고 거친 바다에서 독일공군 장거리 폭격기를 몰아내고 드넓은 태평양에서는 일본해군기로부터 함대를 지켰음. 레미제라블, 빅토.. 2021. 7. 1.
소통의 비극 - 장갑전함 빅토리아(HMS Victoria) 호의 침몰 아래 사진은 노급 전함 이전 시대의 장갑 전함(pre-dreadnought)인 프랑스 전함 마세나(Massena)입니다. 나폴레옹 휘하 2인자의 이름을 딴 전함 치고는 무게 중심 균형이 안 잡혀 안정성이 떨어졌고 그 때문에 포격 정확도도 문제가 많았던 실패작이라고 평가를 받는 전함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영화에 나오는 전함들은 대부분 이런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하야오 감독의 만화영화들은 대부분 19세기 말 국적 불명 유럽 세계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그 당시의 전함이라면 당연히 대부분 저렇게 생겼습니다. (마세나 호입니다. 저 쇠종처럼 생긴 선체 옆에 숭숭 뚫린 구멍은 별게 아니라 그냥 창문입니다.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 저 시커먼 쇳덩어리는 냄비처럼 뜨거워졌고.. 2021. 6. 28.
항공모함 관련 잡담 (6.24) 표면적으로 보면 일본해군이 미드웨이 육상기지를 한번 더 공격할까 아직 탐지하지도 못한 미항모들을 공격할까 망설이다가 습격을 받는 바람에 망한 것이지만, 좀더 사정을 살펴보면 궁극적으로는 당시 항모들은 (미국이나 일본이나) 함재기들을 착함시킬 때는 아무 것도 이함시킬 수가 없다는 것, 반대로 이함시킬 때는 아무 것도 착함시킬 수가 없다는 것에 원인이 있음. 당시 일본해군은 미드웨이 1차 공격을 갔다가 돌아오는 함재기들을 착함시키느라 예비로 두었던 2차 공격대를 이함시킬 수가 없었음. (그럴 바에야 2차 공격대를 왜 우물쭈물 남겨뒀는가라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음) 암튼 당시 이착함이 동시에 수행될 수 없는 이유는 저 직선 비행갑판 때문. 이함하려는 항공기들은 비행갑판 앞쪽 절반, 캐터펄트를 쓰는 경우는 1/3.. 2021. 6. 24.
대포와 낙오병 - 혼란 속의 후퇴 나폴레옹은 후퇴할 때 각 부대가 제형(梯形, echelon, 사다리꼴)으로 행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에셜란 진형은 한자로나 한글로나 사다리꼴 모양이라고 해석이 됩니다만 실은 이건 사다리꼴 모양이 아니라 사선 대형을 말하는 군사용어입니다. 즉 부대들이 횡대나 종대가 아니라 비스듬하게 사선을 이루는 방식입니다. 이런 에셜란은 육군 부대 뿐만 아니라 해군 함대나 공군 편대들도 많이 사용하는 진형입니다. 이렇게 육해공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똑바로 횡대나 종대를 이룰 때에 비해 각 부대/군함/항공기에서 훨씬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똑같은 수의 병력이 이동할 때 훨씬 더 넓은 범위의 구역을 훑으며 지나가게 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이는 적을 수색하며 .. 2021. 6. 21.
밀리터리 잡담 Boston 항구에는 유명한 범선 USS Constitution도 있지만 WW2의 Fletcher급 구축함 USS Cassin Young도 있습니다. 여기 가봤는데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주방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저 사진보다 굉장히 좁았고 큰 솥단지 2~3개 외엔 별 주방기구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 당시 취사병의 수기가 적힌 안내판을 읽어봤는데 내용이 대충 이랬습니다. "300여명이 먹을 밥을 짓느라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쉴 틈이 없이 바빴다. 정말 한시도 쉬지 못하고 계속 cooking을 했다. Cooking을 하지 않을 때는 baking을 해야 했다. 하루에도 xxx 파운드의 빵과 xxx개의 쿠키를 구웠다." 최근 군대 식단이 부실하다는 뉴스와 관련되어 꽤 푸짐한 음식이 올라온 3군 중.. 2021. 6. 17.
코삭이 온다 ! 나폴레옹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 보로디노 벌판을 건너고 있을 때 즈음, 쿠투조프도 비로소 나폴레옹이 남쪽 칼루가가 아니라 정반대 방향인 모즈하이스크로 물러갔다는 것을 파악하고 '뒤로 돌아'를 외쳤습니다. 부하들은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면서 불만이 가득했지만 아예 추격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추격을 서둘렀습니다. 실제로 별로 늦지도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의 퇴각로는 모즈하이스크를 거쳐 보로디노를 지나 비아즈마(Viazma)를 거치는 등 전체적으로 보면 직선 거리가 아니라 크게 반원호(arc)를 그리는 코스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쿠투조프의 본대는 메드신을 통해 따라잡으면 일종의 지름길을 거쳐갈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그러나 쿠투조프는 쿠투조프였습니다. 그는 밀로라도비치(Milo.. 2021. 6. 14.
항공모함 관련 이모저모 (2) 1941년 3월 영국 수송로를 위협하러 대서양으로 출격한 독일 전함 Scharnhorst와 Gneisenau를 찾아나선 HMS Ark Royal. 전날 Fulmar 함재기가 그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 뒤라서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낼 거라고 벼르고 있었느나 사출기 고장으로 인해 이함 준비가 안된 Fairey Swordfish 함재기가 그냥 전방으로 내던져짐. 전속력으로 달리던 아크로열은 그대로 바다 위에 떨어진 소드피쉬를 들이받고 올라탐. 그런데 하필 그 소드피쉬가 장착하고 있던 것은 대잠용 폭뢰. 소드피쉬가 꼬로록 하면서 아크로열 밑에서 폭뢰가 폭발하며 함체를 손상시킴. 아크로열은 수리를 위해 지브랄타로 돌아가고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도 무사히 브레스트 항구로 돌아감. 여태까지 함재기 중 가장 무거운 함.. 2021.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