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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투조프의 빅 픽처 - 베레지나(Berezina)를 향하여 네가 크라스니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던 11월 18일, 오르샤로 향하던 나폴레옹은 나름대로 생각도 많고 무척 바빴습니다. 오르샤는 단지 중간 경유지일 뿐, 그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던 안정적인 겨울 숙영지는 벨라루스의 수도인 민스크(Minsk)였습니다. 개전 초기 다부가 전광석화처럼 점령한 민스크는 도시 전체가 비교적 멀쩡했을 뿐만 아니라, 폴란드와 가깝다보니 스몰렌스크나 비텝스크와는 달리 보급품이 비교적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스크로 가기 위해서는 베레지나(Berezina) 강을 건너야 했는데, 베레지나 강을 건널 유일한 다리는 작은 마을인 보리소프(Borisov)에 있는 목제 다리 하나 뿐이었습니다. 보리소프 다리의 중요성을 파악한 나폴레옹은 오르샤를 향해 걷는 고된 길 위에서.. 2021. 8. 30.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은 에비앙 생수를 마셨나? 저는 이번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결국 미군을 몰아내고 카불을 함락시킨 사건을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 탈레반의 보급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몇 명이 폭탄 테러하는 수준을 벗어나 지역을 장악하고 도시를 점령하는 군대 수준이 되면 가장 중요한 것이 병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WW2 이후 미군이 지지는 않았더라도 무척 고전했던 모든 전쟁, 그러니까 한국전이나 베트남전, 그리고 이번 아프간전 모두 미군이 적의 보급망을 끊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 모두 소련과 중국이 꾸준히 무기와 식량 등의 보급품을 계속 전장에 투입했고, 미군은 그런 보급로를 끊으려 막대한 항공 전력을 투입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윌리엄 홀덴과 그레이스 켈리 주연의 1954년 영화 The Bridges at Toko-R.. 2021. 8. 26.
나는 네(Ney), 프랑스의 원수다 ! - 크라스니(Krasny) 전투 (3) 나폴레옹이 다부와 합류하여 크라스니를 떠나던 11월 17일, 네는 받은 명령대로 스몰렌스크의 성채를 폭파하고 스몰렌스크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많은 부상병들을 스몰렌스크의 병원에 버려둔 채 떠나야 했으므로 결코 기분 좋은 출발은 아니었습니다. 네의 제3군단은 고작 6천 수준으로 줄어들어 있었는데, 스몰렌스크를 나서고 보니 그 뒤로는 1만이 훌쩍 넘어보이는 많은 낙오병들과 민간인들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인 11월 8일 오전, 길을 걷다보니 최근에 전투가 벌어졌던 것이 분명한 흔적들이 도로 주변에 널려있었습니다. 오후가 되어 크라스니 근처에 도착하자, 아까의 흔적에서 짐작했듯이 러시아군이 길을 막고 도열해 있었습니다. 밀로라도비치가 이끄는 약 1만6천의 병력이었습니다. 밀로라도비치로서도 이번 싸움에서.. 2021. 8. 23.
항공모함 관련 잡담 (8/19) 아래 두 사진은 같은 배. 원래 미국에서 상선 기반으로 만든 Bogue급 호위항모였으나 영국 해군에 공여되어 호위항모 HMS Searcher (1만4천톤, 18노트)로 활약. 전후 그리스에 팔려 SS Captain Theo로 한때 해운왕국 그리스의 부흥에 기여. HMS Searcher는 1945년 5월 4일 노르웨이의 U-boat 기지를 공습하여 U-boat 지원함 2척과 U-boat 1척을 격침한 3척의 호위항모 중 1척. 이 공습이 영국 해군 항공대 최후의 공습 작전. 왜냐하면 저 공습은 5월 4일 독일해군 항복 이후 벌어진 공습이라서... 영국 조종사 4명 사망, 독일 해군 150명 사상. 1956년 냉전이 한창이던 대서양 공해상. 훈련중인 미해군 제6함대 항모전단을 향해 당시 소련의 최신예 폭격기.. 2021. 8. 19.
네(Ney)를 바친다 - 크라스니(Krasny) 전투 (2) 나폴레옹은 흩어진 쪽이 지며, 지고 있는 측은 기다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정확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크라스니에서 기다리지 않고 밀로라도비치의 러시아군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그는 11월 17일 아침 근위대의 선두에 서서 크라스니 동쪽으로 진격했습니다. 스몰렌스크 대로의 남쪽에 늘어선 밀로라도비치의 러시아군은 나폴레옹이 저렇게 나오자 다소 당황했고, 압도적인 포병 전력으로 근위대를 강타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오랜만에 젊은 시절의 나폴레옹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주변의 병사들이 포탄에 직격되는 바람에 피떡이 되어 뒤로 나가떨어지는 와중에도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침착하게 말을 몰았습니다. 그의 이런 모습은 부하 병사들 뿐만 아니라 적군에게도.. 2021. 8. 16.
문무대왕함 집단 감염 사태를 계기로 본 해상 보급의 짧은 역사 (3) 이렇게 석탄이 아니라 석유를 연료로 하는 Queen Elizabeth급 전함들 덕분에 해상 연료 보급, 그러니까 해상 급유가 한발짝 더 가까와졌습니다.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석탄통이 아니라 액체로 된 석유를 긴 호스를 이용하여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사실 이런 해상 급유는 영국 전함에 중유 보일러가 채택되기 전에 먼저 시도되었습니다. 기존 석탄 전함들도 석탄의 효율적 연소를 위해 석탄에 중유를 끼얹는 것이 표준이었기 때문에, 보통 석탄 3천톤을 싣는 전함은 중유 1천톤도 함께 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1906년 영국 해군은 전함 빅토리어스(HMS Victorious)와 유조선 페트롤레움(Petroleum) 사이에 굵은 강철 케이블을 연결하고 거기에 호스를 매달아 급유를 하는 실험을 해보았.. 2021. 8. 12.
외젠의 기묘한 모험 - 크라스니(Krasny) 전투 (1) 나폴레옹은 스몰렌스크에서 4일간 머물며 뒤에서 따라오는 군단들이 집결하기를 기다린 뒤, 11월 13일 서쪽으로 후퇴를 재개했습니다. 이제는 군단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든 쥐노와 포니아토프스키의 군단들을 먼저 출발시킨 그는 11월 14일 모르티에가 지휘하는 근위대와 함께 자신이 출발했으며, 그 다음날 외젠의 제4군단, 그 다음날은 다부의 제1군단, 마지막날엔 네의 군단이 출발하도록 했습니다. 이 결정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띄엄띄엄 분산하여 출발하는 것은 당연히 큰 취약점이 되었습니다. 11월 3일의 비아즈마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허리를 잘리고 고전했던 것도 길게 늘어진 상태로 행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루 단위로 군단들이 하나씩 출발한 것은 여전히 나폴레.. 2021. 8. 9.
문무대왕함 집단 감염 사태를 계기로 본 해상 보급의 짧은 역사 (2) 1883년 당시 29세이던 로우리(Robert Swinburne Lowry)가 당시 영국 육해군의 씽크 탱크라고 할 수 있는 왕립 육해군 합동 연구소(Royal United Services Institute)에 제출한 논문에서 주장한 바는 꽤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보급 받는 군함과 보급함이 정박 상태가 아니라 약 5노트의 저속으로 항행하면서 두 군함 사이에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방수통에 넣은 석탄을 연속적으로 전달받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로우리는 이 방법을 통해 시간당 20톤의 석탄 보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해군성은 나이 많은 귀족 아재들이 지배하는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집단이라서, 그런 아이디어를 비실용적이라며 퇴짜를 놓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장교들이 보기에 아이디어 자체는 신박.. 2021. 8. 5.
꿈의 도시 스몰렌스크 - 그리고 현실 11월 6일 급습해온 동장군의 위력 앞에서는 나폴레옹도 한낱 뚱뚱한 프랑스 아저씨에 불과했습니다. 여태까지 '러시아의 추위가 무시무시하다더니 프랑스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날씨 아닌가?' 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떠들었던 것도 어쩌면 러시아의 추위에는 정말 답이 없었고 또 정말 두려워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자기 최면을 거는 행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폴레옹의 그런 입방정은 11월 6일 이후 즉각 고쳐졌고, 추위를 견디지 못한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회색 프록코트와 삼각모(tricorn)를 포기하고 두툼한 털로 안을 댄 폴란드식 초록색 외투와 군고구마 장수 같은 방한모를 뒤집어 써야 했습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걸어서 후퇴하는 나폴레옹을 그린 Vasily Vereshchagin라는.. 2021. 8. 2.
문무대왕함 집단 감염 사태를 계기로 본 해상 보급의 짧은 역사 (1)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해군 장교의 모험담을 그린 소설 시리즈물 중 가장 유명한 것 2가지가 C.S. Forester의 Hornblower 시리즈와 Patrick O'Brian의 Aubrey & Maturin 시리즈입니다. 이 소설들은 영미권에서는 거의 신필 김용선생의 영웅문 시리즈에 해당하는 권위를 갖습니다. 이 두 소설 시리즈의 주인공들인 혼블로워와 오브리는 모두 영국 해군 함장인데, 두 사람은 성격은 완전히 반대지만 공통점이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둘 다 홍차가 아니라 커피 애호가라는 점이고, 나머지 하나는 둘 다 함상에서도 목욕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군함에서는 물이 귀했으므로 당연히 두 함장 모두 목욕은 바닷물로 합니다. 아무도 샤워 따위는 하지 않으면서 몇 개월 동안 바다에서 .. 2021. 7. 29.
연애 편지와 엄마 - 포로들의 운명 나폴레옹의 그랑다르메가 이렇게 식량 부족과 추위로 부서져 내리면서 당연히 많은 낙오병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여태까지의 글을 보시면서 낙오병이라는 단어는 많이 보셨지만 탈영병이라는 표현이 별로 많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 채신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랑다르메 중에서도 지배층에 속하는 프랑스군은 그렇다치고, 끌려온 것이나 다름 없는 독일군이나 네덜란드군, 이탈리아군 중에는 쫄쫄 굶다 못해 그냥 탈영해서 스스로 러시아군으로 넘어간 병사들이 많지 않았을까요 ? 적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러시아군이었고, 이렇게 포로가 된 이들의 운명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아직 제네바 조약 같은 포로에 대한 국제 협약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때였습니다만, 대신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귀족 내지는 .. 2021. 7. 26.
항공모함 잡담 (7/22) 1944년 3월 호위항모 USS Charger(CVE-30, 1만1천톤, 17노트)의 연습 착함에서 벌어진 일. 저 F4U Corsair는 그대로 뒤집히며 엔진이 든 코가 부러짐. 조종사 사망. 전체 영상을 보면 1) 조종사가 착함할 때 어정쩡하게 뜬 상태로 착함했고 2) arresting wire가 너무 느슨. 둘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제대로였다면 살 수 있었으나 두 가지 요건이 다 충족되지 않아 tail hook이 걸리고도 저런 참사가 발생. 저 arresting gear의 적정 tension은 항공기 기종마다 다르고 항공기가 소지한 연료 잔량과 무장 잔량 등에 따른 착함 무게에 따라서도 달라져야 함 (사진3). 의외로 세심한 조종이 필요한 부분인데 그것도 무수한 시행 착오를 거쳐 얻을 수 있는 정보.. 2021.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