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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

장군님이 모는 택시 탄 썰

by nasica 2017.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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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경험담

주의 : 장세동 찬양글 아님



때가 벌써 5년전, 문재인-박그네 선거가 얼마 안남은 초겨울이었습니다.  회사일로 외근하다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회사일 중에 골치아픈 문제가 있어서 기분은 과히 좋지 않았습니다.


기사 아저씨께서는 60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 건장하고 퉁퉁한 스타일의 산적처럼 생기신 분이었습니다.  겨울인데도 소매를 좀 걷으셨는데, 굵은 팔뚝에 털이 숭숭 난 것이 마치 서양인 팔뚝 같았어요.  


기사 아저씨 중에는 손님과의 대화를 즐기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 분이 바로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출발하고나서 곧 제게 말을 걸기 시작하시더군요.  공손하면서도 아주 쾌활한 말투셨습니다.  


다만 저는 그때 대화할 기분이 아니라서 그저 짧게 '예, 예' 정도로만 대답했는데, 그래도 기사분은 신이 나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막 하셨습니다.  당연히 선거 이야기도 나왔는데, 저는 문재인 지지자라는 말은 안 드렸습니다만, 이 분은 '박근혜가 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으하하' 라는 식으로 떠드셨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다보니 이 분이 직업 군인이셨더라고요.   "군인이 좋은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연금 하나는 빵빵하게 나온다는 건 정말 좋아요" 라고 하시더군요.


전 여전히 뒷좌석에 심드렁하게 늘어져서 '아, 주임원사 정도 하시다 예편하셨나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 분이 장교 출신이시더라구요.  그래서 '아, 중령 정도 하시다가 예편하셨나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군대 시절 이야기를 막 하시는데 도중에 "제가 사단장을 할 때였는데 말입니다..." 라고 하시더군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뒷자석에서 벌떡 자동 기립하며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어익후, 장군님이셨습니까 ?"  그 다음부터는 뒷좌석에서 차렷자세로 들었습니다.


제 태도가 바뀐 것을 느끼셨는지, 이 분이 신이 나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막 늘어놓으시는데, 장세동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자기가 모시던 상관이었다는 거에요.  


자기가 그 양반 밑에 있을 때 자기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었답니다.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화가 나고 해서 '까짓거 옷 벗지 뭐'라는 각오였는데, 장세동(그 분은 물론 이렇게 호칭하지 않았습니다)이 '야 이 개색희야'라며 야구 배트로 자기를 아주 개잡듯이 두들겨 패서 자기가 정말 피투성이가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들겨 팬 뒤에 장세동이 백방으로 노력해서 자기가 도중에 정식 징계를 받지 않고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타 뭐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시다가, 제가 내릴 때 즈음 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단장 하셨던 분이니 최소 투스타 이상으로 예편하셨을 것이고 그러니 연금은 웬만한 월급장이만큼 나올테니까 경제적 필요는 아닐텐데) 자기가 예편하고나서도 '사람은 돈 여부에 상관없이 일을 해야 한다' 라는 신념 하에 택시 운전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자기 개인 택시로 첫 영업을 하기 위해 차를 새벽에 몰고 나오는데, 운이 좋게도 자기가 차를 출근하는 일산 아파트 단지 입구에 웬 코트 차림의 신사가 택시를 기다리고 있더래요.  그래서 '첫 영업부터 재수가 좋구나'라고 생각하며 태웠는데, 태우고보니 바로 자기의 옛 상관인 장세동이더랍니다.   당시 장세동은 방배동인가 암튼 강남 쪽에 살고 있었대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아니 새벽부터 여긴 어쩐일이시냐'라고 물으니 장세동이 이러더랍니다.


'내 새끼가 첫 영업 나가는 날인데 당연히 내가 개시를 끊어줘야 않겠나.'


그래서 새벽부터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그 양반을 기다리고 서있었답니다.



뭐 어쩌면 제가 허풍선이 택시기사 아저씨를 만난 것일 수도 있는데 (가령 처음부터 개인택시 영업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 아저씨의 말투와 태도를 직접 경험한 저는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뭐 장세동이야 재판 당시에도 으리의리로 유명한 사람이라서 좀 남다른 데가 있긴 하겠지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요즘 진행 중인 5.18 진상 파악이 정말 쉽지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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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는 회사 일을 좀 해야 하여, 이런 잡담으로 때웁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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