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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4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5편) - 애매모호한 관계 1798년은 베르나도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던 해였습니다. 데지레와 결혼하여 나폴레옹의 인척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운도 잘 트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군인에게 관운이 트인다는 것은 전쟁이 났다는 뜻이지요. 그 해 연말 경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과 스위스에서의 시민 혁명이 촉매가 되어 제2차 대불동맹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에 따라 11월, 그는 1개 감시군(l'armée d'observation)의 총사령관이 되어 라인강을 넘어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의 필립스부르크(Philippsburg)로 진격하라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드디어 나폴레옹이나 모로, 오슈처럼 1개 군의 총사령관이 될 수 있던 이 기회는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애초에 아무.. 2018. 7. 30.
쿠데타의 학살 - 빅토르 위고의 'Napoleon Le Petit' 중에서 (마지막편) IV 병사들의 사격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지키던 시민들도 약 15분간 응사하고 있었는데, 양측 모두 사상자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다 갑자기, 마치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먼저 보병대에서, 이어서 기병대에서도 비정상적으로 위협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다. 부대들이 갑자기 뒤돌아 선 것이다. 쿠데타를 기록한 역사편찬가들은 상티에 가(Rue du Sentier) 모퉁이의 열린 창문으로부터 병사들에게 총탄 한 발이 날아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노트르-담-드-르쿠브랭스 가(Rue Notre-Dame-de-Recouvrance)와 푸와소니에르 가(Rue Poissonnière)의 어떤 집 지붕으로부터 발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마자그랑 가(Rue Mazagran)의 모퉁이의 높은.. 2016. 12. 18.
쿠테타를 대하는 파리 시민들의 자세 - 빅토르 위고의 'Napoleon Le Petit' 중에서 (3편) II 아침 이른 시간부터 - 여기서는 미리 획책된 것이 분명한데 - 모든 거리의 모퉁이마다 이상한 플래카드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런 플래카드의 내용을 우리가 옮겨적었으므로, 독자들은 그걸 기억할 것이다. 가끔씩 파리 시내에 혁명의 대포 소리가 울려퍼지고, 정부가 아주 절박한 조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지난 60년 동안에도, 이런 플래카드는 목격된 적이 없었다. 그 내용은 그 종류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모든 집회는 아무 사전 경고 조치 없이 무력으로 해산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문명의 대도시인 파리 시민들은 인간이라면 자신의 범죄를 그런 극단적인 선까지 밀어붙일 것이라고는 쉽사리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경고문은 그저 혐오스럽고 야만적인 협박용이라고 간주되었고, 거의 코미디 수준이라고들.. 2016. 12. 2.
친위 쿠데타를 저지하라 - 빅토르 위고의 'Napoleon Le Petit' 중에서 (1편) 요즘 시국에 편승하여, 빅토르 위고의 'Napoleon Le Petit' 즉 '꼬마 나폴레옹' 중 일부를 발췌 번역해 몇 편에 걸쳐 올립니다. 이 책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건 보쥬 광장 거리에 있는 빅토르 위고 기념관에서 제가 찍은 당시 풍자화 사진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3세를 대통령으로서 지지했으나, 그가 1851년 12월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 영구 집권을 하자 그에 저항하다가 영국령 게른제 섬으로 망명했습니다. 이 신문 풍자 만화에서 빅토르 위고는 12월에 파리 길바닥에 흐른 피를 나폴레옹 3세가 자세히 보고 냄새 맡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저 만화 제목인 Le Nez Dedans 은 Nose in 으로서, '코를 들이대 !' 정도의 뜻입니다.) 1848년 7월 혁명으로 루이 필립의 오.. 2016.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