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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니히스베르크3

전쟁의 끝은 어디인가? - 러시아의 고민과 해결책 코브노의 다리를 건너 네만 강을 건넌 그랑다르메의 장병들은 이제 살았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야말로 최후방을 지키며 직접 러시아군에게 마지막 머스켓 소총을 쏜 뒤 그 소총을 강바닥에 집어던진 뒤 돌아선 네 원수의 행동도, 이제 전쟁은 끝났으며 러시아군의 추격은 여기까지라는 철석같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유있는 발걸음으로 쾨니히스베르크를 향하던 그랑다르메 병사들은 코삭 기병들이 얼어붙은 네만 강을 대규모로 건너 추격해오자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코삭들은 국경에 대한 개념도 없고 존중할 의사도 없었거든요. 그들은 그저 저항할 수 없는 패잔병들을 습격해서 노략질을 하고 포로를 잡을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 정규군이 대거 침공하는 것도 아니었.. 2022. 1. 3.
러시아의 마지막 프랑스인, 네만 강을 건너다 빌나에서 코브노까지는 약 3일 행군거리였습니다. 그 기간 내내 기온은 계속 추워서 영하 30도 이하를 유지했습니다. 만약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졌다면 네만 강이 녹아서 베레지나에서처럼 임시 교량을 놓아야 했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은 코브노에는 네만 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었으므로 굳이 날씨가 추워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당시 3일 동안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미끄러운 눈길을 걸어야 했던 병사들에게 추위는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비오네(Louis Joseph Vionnet, Vicomte de Maringone) 소령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동상으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손이나 손가락에서 뼈가 드러난 병사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훗날 부르봉 왕가로부터 마링고네 자.. 2021. 12. 20.
잃어버린 프로이센의 영토와 클로제 1807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굴복을 받아낸 프리틀란트는 동부 프로이센의 주도인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근처에 있는 지역입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독일어로 '왕의 산'이라는 뜻이고,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습니다. 지금 이 도시는 러시아 발트 함대의 모항인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라는 이름의 러시아 도시가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유서 깊은 독일 도시가 러시아 영토가 되었을까요 ? 예전에 독일 도시였다면 그곳에 살던 독일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또, 지금 독일이 다시 매우 강대국이 되어 있는데, 독일 내에서 이렇게 잃어버린 옛영토를 되찾자는 움직임은 없을까요 ? (쾨니히스베르크의 모습입니다. 아마 19세기 말 정도의 모습인가봐요 ?) 전에도 다룬 바 있습니다만.. 2018.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