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트 왕세자1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8편) - 왕세자와 백작의 죽음 이야기를 다시 1809년 초 스웨덴으로 돌리겠습니다. 구스타프 4세를 쿠데타로 축출하고 카알 13세를 새 국왕으로 새운 스웨덴은 이미 노쇠한 카알 13세의 뒤를 이을 후계자 문제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카알 13세의 아들들은 모두 유아기에 사망했기 때문에 카알 13세가 서거하고 나면 왕가 후손이 끊어질 판이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유럽 왕가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고, 보통 제일 가까운 외국 왕가나 외국 귀족의 자제를 데려와 왕으로 삼는 일이 많았습니다. 딱히 불화가 일어날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스웨덴은 새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이냐를 놓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대체 그 후보자들이 누구누구였길래 이런 갈등이 생겼을까요 ? 아마 베르나도트를 데려오는 것에 대해 반대가 심해서 갈등이 생겼나.. 2018. 8. 1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