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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클라4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6편) - 세상 억울한 사나이 1806년,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지던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III)가 겁도 없이 나폴레옹에게 도전한 제4차 대불동맹전쟁에서 프로이센은 건국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 했습니다. 특히 10월 14일은 아마 프로이센 역사상 최악의 날이었을 것입니다. 프로이센 전체 야전군이라고 할 수 있는 12만 대군이 예나와 아우어슈타트에서 하루 아침에 산산조각 났거든요. 프로이센에게는 특히 아우어슈테트 전투가 뼈 아픈 상처가 되었습니다. 6만의 프로이센 대군이 불과 2만7천 밖에 안 되는 다부(Louis Nicolas Davout) 원수의 프랑스군 제3 군단에게 박살이 났으니까요.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을 박살낸 나폴레옹이 베를린에 입성할 때, 놀랍게도 베를린 시민들은 이.. 2018. 8. 2.
바그람 전투 (제8편) - 아더클라의 혈전 새벽부터 동쪽의 포성을 듣고 혹시 요한 대공의 군대가 쳐들어온 것인가 깜짝 놀라 병력을 이끌고 다부의 전선으로 달려갔던 나폴레옹은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는 동쪽의 소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엔 중앙부에서 들려오는 포성에 이건 또 뭔가 싶어 말을 달렸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대노했습니다. "어제 밤부터 베르나도트 저 허풍선이는 병신짓만 골라 하는구나 !" 다행히 그는 어제 밤 베르나도트 없이 열었던 작전 회의에서 베르나도트를 지원하기 위해 마세나의 병력을 좌익에서 중앙부로 이동시킨 바 있었습니다. 해가 밝아오는 상황에서, 그의 눈에 마세나의 병력이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보였고, 곧 이어 마세나의 눈처럼 하얀 색의 무개마차도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마세나는 베르나도트 못지 않게 돈 욕심.. 2017. 7. 30.
바그람 전투 (제7편) - 베르나도트의 사정 7월 6일 새벽, 카알 대공이 정한 공격 개시 시간을 제대로 지킨 것은 로젠베르크 대공 뿐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카알 대공이 위치한 도이치-바그람 마을 인근에 있던 부대들도 제때에 작전 명령을 받았고, 그에 따라 오스트리아 제1 군단도 벨가르드(Heinrich Joseph Johannes, Graf von Bellegarde) 백작의 지휘 하에 오전 3시부터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공격 목표는 바로 코 앞에 있는 아더클라(Aderklaa) 마을이었습니다. 카알 대공의 이 날 공격의 진짜 펀치는 오스트리아군의 우익, 즉 클레나우와 콜로브라트의 2개 군단이었으나, 벨가르드 백작이 맡은 이 아더클라 공격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 작은 마을이 전체 전선의 중앙부에 해당하는 곳이었으므로, 이 곳을.. 2017. 7. 23.
바그람 전투 (제5편) - 혼돈 속의 새벽 7월 5일 밤 11시 경 첫날 전투가 초라하게 끝난 이후, 병사들은 야영 준비를 했습니다. 때가 7월이라 낮에는 무척 더웠지만 의외로 밤은 무척 추웠고, 오스트리아군도 프랑스군도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우고 몸을 녹였습니다. 보통의 경우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하루 종일 목숨을 걸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운 뒤 야영을 할 때는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아무 것도 못 먹고 잠을 청해야 했으나, 이날은 좀 달랐을 것입니다. 아스페른-에슬링 전투 이후 나폴레옹은 전투 준비에 만전을 기했고, 참모장인 베르티에에게 병사들을 위해 60만병의 와인과 30만회 배급할 분량의 브랜디를 준비하도록 한 바 있을 정도로 보급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덕분에 로바우 섬으로부터 다리를 건너는 병사들의 배낭 속에는 2일치의 식량과 브랜디가 들어.. 2017.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