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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트6

바우첸 전투 (1) - 마침내 시작된 전투 당시 대부분의 전투는 새벽 일찍 동이 트기 직전부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5월 20일 아침 해가 꽤 높이 올라와 사방을 비출 때까지도 바우첸 일대는 조용했습니다. 연합군의 전초선을 지키던 보초들은 오늘도 지난 1주일 넘게 그랬던 것처럼 조용한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9시가 좀 넘어서, 바우첸 시내의 교회탑에서 프랑스군 진영을 감시하고 있던 프로이센군은 프랑스군 일부가 북동쪽을 향해 행군을 시작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바우첸을 소개할 때 자주 사용되는 사진의 구도가 딱 이런 구도입니다. 바우첸은 탑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교회 첨탑이 많습니다. 저기 보이는 강이 슈프레(Spree) 강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해 바트겐슈타인이 미리 작전계획을 .. 2023. 4. 10.
술트(Soult) 원수와 요리사 - Sharpe's Havoc 중 한 장면 아래 발췌 번역된 소설은 영국 작가 Bernard Cornwell이 지은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한 어느 밑바닥 출신 장교의 모험담을 그린 역사 소설 Sharpe 시리즈 중 'Sharpe's Havoc' 편입니다. 이 장면 중에서, 웰링턴이 이 제2차 포루투(Porto) 전투를 치르고 난 뒤, 프랑스군 사령부의 오븐에서 발견된 따뜻한 요리를 저녁식사로 먹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합니다. 물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작가의 허구입니다. 이 장면에서 프랑스인과 영국인의 요리, 그리고 요리사에 대한 개념과 대우를 엿볼 수 있습니다. Sharpe's Havoc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7년, 포르투갈) ----------------- ( 포르투갈 포르투 시를 점령하고 있는 프랑스군의.. 2021. 2. 18.
어느 용자의 초상 - 프랑스군의 포르투갈 탈출 1809년 5월 12일 포르투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군이 뒤를 바싹 뒤쫓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군은 허겁지겁 산길로 후퇴해야 했고, 따라서 모든 짐은 물론 대포까지 다 버리고 가야 했습니다. 분노한 포르투갈 민간인들에게 학살당할 것이 뻔한데도 부상병들을 버리고 감은 물론, 군자금까지 병사들에게 마구 나누어줄 상황이었습니다. 때는 이른 5월이라 차가운 비까지 계속 내려 후퇴하는 프랑스 병사들의 사기까지 축 적셔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갈 길 바쁜 프랑스군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나타났습니다. 폰트 노바(Ponte Nova, 새 다리, 스페인어로는 Puento Nuevo)라는 이름의 다리에 도착했을 때, 술트 원수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두개의 긴 대들보만 남기고 그 위를 가로지른 널판지는 다 해.. 2018. 2. 10.
이발사 vs. 원수 - 포르투(Porto) 전투 3편 웰슬리의 영국군이 도우루 강 남안에서 강을 건널 방법을 못 찾고 당황하는 동안, 술트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5월 10일 도우루 강 남쪽에 있는 그리조(Grijó)라는 작은 마을에서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공격하여 수백명의 사상자를 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술트는 비교적 여유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었을까요 ? 그는 나름대로 안전조치를 취해놓고 있었습니다. 포르투가 위치한 도우루 강 하구는 꽤 넓고 깊어서 사람이나 말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여울목이 전혀 없었습니다. 따라서 술트는 도우루 강 인근의 모든 바지선과 보트, 조각배들을 모조리 압류하여 북쪽 강변에 끌어다 놓은 상태였습니다. 영국군에게 날개 혹은 지느러미가 없는 이상, 도우루 강을 건너 올 수는 없다고.. 2018. 2. 4.
신문과 돈 - 포르투(Porto) 전투 2편 1808년 9월, 비메이로(Vimeiro) 전투에서 쥐노가 이끄는 프랑스군을 격파하고도 어이없는 신트라(Sintra) 협상으로 쥐노와 그의 군단을 안전하게 프랑스로 호송해보낸 사건 덕분에 영국으로 소환되었던 영국군 지휘관들 중 하나였던 웰슬리는, 그 협상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지휘권을 부여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웰슬리는 이베리아 반도로 돌아오기 위해 여기저기에 줄을 당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영국은 돈 들어가는 싸움질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과 영국 사이에 바다가 있고 로열 네이비가 그 위에 떠 있는 이상 당장 침공 받을 염려가 없는데, 구태여 위험한 유럽 대륙으로 기어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2018. 1. 27.
니콜라 1세의 헛된 꿈 - 포르투(Porto) 전투 1편 1809년 초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무어 경이 이끌던 영국 원정군을 대서양으로 쫓아낸 것으로 정리가 끝났다고 생각한 유럽의 서쪽 끝 포르투갈에서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장소는 포르투갈 북쪽의 항구 도시 포르투(Porto, 영어로는 Oporto)였습니다. 당시 영국 신사들의 정찬(dinner)에서 빠질 수 없는 마지막 코스였던 포트 와인(port wine)의 이름이 바로 이 도시 이름에서 나온 것일 정도로, 포르투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자 대영국 와인 수출 창구로서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당연히 포르투갈 침공을 노리던 술트의 프랑스 군단의 제1차 목표가 바로 이 도시였습니다. (포르투 항구는 큰 강인 도우루 Douro 강 하구에 위치합니다. 전통적으로 도우루.. 2018.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