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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루2

드레스덴 전투 (5) -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 8월 25일 오후, 알렉산드르와 모로가 즉각 공격을 주장한 것에 대해 슈바르첸베르크는 반대했습니다. 이유는 아직 오스트리아군 상당수가 도착하지 않았고, 드레스덴의 방비 태세도 불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폴레옹의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색이 오스트리아가 주도하는 보헤미아 방면군이 드레스덴을 점령하는데, 오스트리아군은 별로 없고 러시아군과 프로이센군만 승리의 영광을 차지한다면 오스트리아의 체면이 구겨질 것을 걱정했던 것도 분명히 반대 이유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여러 국가들의 연합군이란 그래서 어렵습니다. (독일권의 맹주 자리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프로테스탄트 왕국 프로이센과 가톨릭 제국 오스트리아의 갈등도 첨예했지만, 동방의 제국 러시아와 이름 자체가 동방의 .. 2024. 3. 18.
무지막지한 도배질 - 토헤스 베드하스(Torres Vedras) 방어선 10월 5일, 프랑스군 전위 부대에게 사로잡힌 영국군 포로들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보고가 마세나에게 들어왔습니다. 영국군이 서둘러 '방어선 쪽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태까지 마세나는 웰링턴이 1809년 1월 코루냐로 후퇴하던 무어 장군과 똑같은 신세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최악의 경우라고 해봐야 웰링턴의 영국군을 섬멸하지 못하고 놓치는 정도이고, 리스본 함락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국군 포로 취조 보고서에 따르면 웰링턴의 목적지는 리스본 항구에 정박한 영국 수송선이 아니라 어디엔가 구축해 놓은 방어선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세나는 자신감에 차있었습니다. 부사쿠 능선 같은 천혜의 방어선조차도 (비록 빙 우회하느라 시간은 .. 2018.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