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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3

드레스덴 전투 (9) - 대포알에는 감정이 없다 바이서리츠강 서쪽에서 프랑스군의 기병대에 오스트리아군이 학살당할 때, 오스트리아군 기병대가 뛰어나오지 못한 것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단, 오스트리아군은 아직 1809년 바그람 전투의 패배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여 기병대 숫자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이 얼마 안되는 오스트리아 기병대의 주축인 리히텐슈타인(Moritz Joseph Johann Baptist von Liechtenstein)의 기병사단과 노스티츠(Johann Nepomuk von Nostitz-Rieneck)의 기병사단은 무슨 사정에서인지 상식적인 기병대의 위치인 좌익이나 우익에 있지 않고, 중앙에 배치된 오스트리아군의 뒤쪽, 그러니까 바이서리츠강의 우안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모리츠 폰 리히텐슈타인의 초상화입니다. 아우스테를리츠 .. 2024. 4. 15.
대포와 낙오병 - 혼란 속의 후퇴 나폴레옹은 후퇴할 때 각 부대가 제형(梯形, echelon, 사다리꼴)으로 행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에셜란 진형은 한자로나 한글로나 사다리꼴 모양이라고 해석이 됩니다만 실은 이건 사다리꼴 모양이 아니라 사선 대형을 말하는 군사용어입니다. 즉 부대들이 횡대나 종대가 아니라 비스듬하게 사선을 이루는 방식입니다. 이런 에셜란은 육군 부대 뿐만 아니라 해군 함대나 공군 편대들도 많이 사용하는 진형입니다. 이렇게 육해공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똑바로 횡대나 종대를 이룰 때에 비해 각 부대/군함/항공기에서 훨씬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똑같은 수의 병력이 이동할 때 훨씬 더 넓은 범위의 구역을 훑으며 지나가게 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이는 적을 수색하며 .. 2021. 6. 21.
나폴레옹 시대의 해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함대라고 하면 16세기 말의 스페인 무적 함대 또는 20세기 초의 러시아 발틱 함대 정도를 들 수 있겠습니다만, 역시 스페인 무적 함대가 더 유명하겠지요. 결론적으로는 이 두 함대 모두 기대와는 달리 풍비박산이 났습니다만, 사실 당시에도 그 '기대'는 현실감이 없는 지배층의 기대였고, 실제 항해를 떠나는 두 함대 실무자들의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준비 상태가 엉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개럿 매팅리의 '아르마다'입니다. 한글판도 있고, 저는 한글판으로 읽었습니다. 매우 재미있습니다. 퓰리처 상도 받은 명작입니다.) 아뭏든, 당시 개박살이 난 스페인 무적 함대의 경과를 그린 개럿 매팅리의 '아르마다'라는 책을 읽어보면, 스페인 함대가 진 이유가 결코 영국군.. 2016.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