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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왕2

교황과 무역 - 포르투갈의 전운 오스트리아 대사 슈바르첸베르크 대공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폴레옹의 아들에게 바친 '로마 왕'(Roi de Rome)이라는 칭호는 단지 신성로마제국의 정통성을 나폴레옹에게 공치사로서만 넘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이미 로마는 나폴레옹의 손아귀에 넘어온 상태였습니다. 로마 및 그 주변은 원래 세속 군주로서의 로마 교황이 가지는 교황국(the Papal States)에 속하는 영토였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지배자 나폴레옹 눈 앞에는 고양이는 커녕 생쥐만도 못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비오 7세(Pius VII)는 1804년 나폴레옹의 대관식에도 참석하는 등 나폴레옹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다 소용없었습니다. 이미 1809년 5월 17일, 나폴레옹은 빈에서 칙령을 내려 로마 교황의 세속 군주로.. 2018. 1. 7.
브랜드 가치와 실속 - 나폴레옹의 재혼 성공한 남자가 이혼을 하는 이유는 조강지처와의 성격 차이나 식어버린 애정 문제가 아닙니다. 이유는 단 하나, 새 여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조세핀과의 이혼이 공식 발표되기 한 달 전, 러시아 주재 프랑스 대사인 콜랭쿠르는 본국으로부터 지시문을 받습니다. 나폴레옹과 로마노프 가문과의 혼인을 추진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상은 짜르 알렉산드르의 둘째 여동생, 안나(Anna Pavlovna)였습니다. 안나는 당시 14세로서 사실 결혼하기는 너무 이른 나이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생일이 1월이었으므로 불과 몇 달 뒤면 15세가 되었고, 15세면 당시로서는 혼인이 불가능한 나이도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신과 무려 26세 차이가 나는 이 어린 소녀에게 혼인 의사를 밝힌 것이지요. (안나 파블로브나입니다. .. 2017.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