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폴레옹의 시대390

드레스덴을 향하여 (4) - 나폴레옹의 계산 바로 며칠 전까지 네의 제3군단 수석 참모를 맡고 있던 조미니는 당연히 그랑다르메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때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귀족들과 신사들이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그랑다르메의 병력 배치 현황과 나폴레옹의 작전 방향을 묻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직무유기일일 것입니다. 물론 조미니를 고문실에 가둬놓고 두들겨 패가면서 취조한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이 잡담 형식으로라도 조미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문제는 조미니가 어느 정도까지 대답을 했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좀 엇갈립니다. 조미니 본인은 물론 그에 대해 자신이 그랑다르메의 군사 기밀을 적에게 술술 불었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들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지극히 .. 2024. 1. 1.
드레스덴을 향하여 (3) - 프라하의 좌청룡 우백호 조미니와 한 자리에 함께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날 프라하에 있던 알렉산드르의 사령부에 나타난 거물은 바로 모로(Jean Victor Marie Moreau)였습니다. 모로는 제2차 대불동맹전쟁을 호헨린덴(Hohenlinden) 전투로 한 방에 끝내버린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자 열혈 공화주의자로서, 동시에 나폴레옹이 황위에 오르기 전 그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이었습니다. (전에 읽어보시지 않으셨다면 모로와 호헨린덴 전투에 대해서는 https://nasica-old.tistory.com/6862505 를 참조하세요.) (모로입니다. 언제 그림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프랑스 군복을 입고 있습니다. 머리가 마치 실버 블론드처럼 하얗게 그려졌습니다만, 이는 당시 이미 약간 구시대적 스타일로 취급되던 분을 칠.. 2023. 12. 25.
드레스덴을 향하여 (2) - 거물급 망명자 스트리가우(Striegau)에서 랑제론의 러시아 전위대는 저 멀리서 정말 혼자서 길을 가던 프랑스군 한 명을 발견했습니다. 그렇쟎아도 제발 한 놈만 걸려라면서 애타게 프랑스군을 찾아 헤매던 러시아군은 그 프랑스군을 잡으러 뛰어갔는데, 그 프랑스군도 의외로 반갑게 러시아군에게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군복을 보니 예사 사병이나 장교가 아니라, 장군이었습니다. 장군이 혼자서 이런 중립지대에서 대체 뭘 하고 있나 싶었는데, 그 스스로 밝히는 이름은 조미니(Antoine-Henri Jomini), 상당히 유명한 전략가였습니다. (1811년 당시 조미니의 모습입니다. 1813년 그의 나이는 불과 34세, 정말 한창 나이였습니다.) 아직 중립지대인 이 지역에 원래 존재해서는 안되는 러시아군 부대를 만나 약간 놀랐던 조.. 2023. 12. 18.
드레스덴을 향하여 (1) - 단 한 명의 프랑스군을 찾아서 슐레지엔 방면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블뤼허와 그나이제나우에게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임무를 가로막는 중립지대의 존재였습니다. 슐레지엔 방면군에게 주어진 임무는 간단했습니다. 보헤미아로 쳐들어갈 것이 분명한 그랑다르메의 측면에 붙어 감시하며 괴롭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자면 먼저 적과 접촉을 해야 했는데, 적과 자신의 사이에는 하루 이상의 행군거리인 수십 km의 중립지대가 있다보니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연합군 모두가 전투가 재개되자마자 나폴레옹은 보헤미아, 그러니까 남서쪽으로 쳐들어갈 것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으므로 블뤼허는 더욱 애가 탔습니다. 원래 휴전이 종료되는 8월 10일 새벽부터 양측은 병력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고, 전투는 적.. 2023. 12. 11.
새로운 전쟁의 준비 (8) - 수프와 은화 6월 말, 사실상 평화의 희망이 사실상 날아가버린 상황에서 나폴레옹측과 연합군측은 각자 맹렬한 전쟁 준비에 들어 갔습니다. 전쟁 준비는 공허한 애국심으로 관료들의 책상 위에서 준비되는 것이 아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프랑스는 물론 독일 전체가 공유해야 했습니다. 약 20만의 러시아-프로이센 병력이 주둔하던 슐레지엔도 그 대군을 먹이기 위해 주민들이 큰 고초를 겪고 손해를 보아야 했습니다. 이미 몇 개월 전, 이번에야말로 나폴레옹을 몰락시키겠다면서 프로이센 출정군에게 거창하게 전쟁 준비를 시켜주느라 많은 물자와 돈을 갖다 바쳐야 했던 주민들로서는 이미 맞은 곳을 다시 얻어 맞는 꼴이어습니다. 이때 즈음 프로이센 총리 하르덴베르크는 공황 상태를 겪고 있었습니다.. 2023. 12. 4.
새로운 전쟁의 준비 (7) - 4만의 사나이 여태까지 보신 연합군 사정 중에서 핵심을 고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향해 침공을 개시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연합국 모두의 의견이 일치 2) 3개군을 편성하되, 예상되는 나폴레옹의 침공 방향에 따라 그 중 보헤미아 방면군에 주력을 집중 3) 연합국 누구도 단독으로 평화 협정을 맺지 못하도록 3개 방면군 각각을 여러 국가의 혼성 부대로 편성 4) 군복과 장비에는 부족함이 많았지만 야전군 병력은 51만으로 충분했으며, 군량은 비교적 넉넉한 상황 이와 대비하여, 나폴레옹의 준비 상황은 어땠을까요? 먼저, 나폴레옹이 8월 중순까지 끌어모을 수 있었던 병력은 약 44만이었습니다. 여기에는 37만2천의 보병과 3만의 포병 및 공병, 그리고 그토록 애타게 원했던 기병대가 .. 2023. 11. 27.
새로운 전쟁의 준비 (6) - 빵을 굽는 군대와 굽지 않는 군대 랑제론을 비롯한 슐레지엔 방면군 소속 러시아군 장교들의 감정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금방 러시아군 총사령관 바클레이에게까지 들어갔습니다. 바클레이도 보헤미아 방면군 소속으로서 오스트리아 슈바르첸베르크의 밑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그게 싫어서 휘하 병력이 보헤미아로 들어간 뒤에도 끝까지 현지로 떠나지 않고 최대한 라이헨바흐에서 버티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바클레이는 동병상련의 감정도 있고 해서, 보헤미아로 떠나기 직전 랑제론을 불러 '짜르께서는 랑제론 당신의 능력과 역할을 주목하고 계신다'라는 정도의 격려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뜻밖의 효과를 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랑제론은 바클레이와의 인터뷰 이후 자신이 블뤼허의 부하라기보다는 일종의 감시인으로 슐.. 2023. 11. 20.
새로운 전쟁의 준비 (5) - 러시아군의 상황 지난 편에서 프로이센군의 상황을 대충 보셨습니다만, 러시아군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국가는 덩치가 깡패라고, 러시아는 대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군은 나폴레옹의 침공이 시작된 1812년 8월부터 1813년 8월까지의 1년 동안 대략 65만 명을 징집했습니다. 당시 러시아 인구가 대략 3천만이었으니 전체 인구의 거의 2.2%에 해당하는 엄청난 비율이었습니다. 덕분에 휴전 기간 중 러시아군은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병력 보충과 보급품, 그리고 장비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러시아군이 충분한 병력과 장비를 갖추지 못한 것은 본국 러시아와의 거리 때문이었지 본국의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거든요. 휴전 직전만 하더라도 바클레이는 탄약이 부족.. 2023. 11. 13.
새로운 전쟁의 준비 (4) - 와인 대신 브랜디를 준비한 뜻 전에 언급한 것처럼 슐레지엔 방면군에는 이런 국민방위군이 특히 많이 배정되었습니다. 이렇게 암울한 군대를 이끌고 진격을 해야 하는 블뤼허의 심정은 얼마나 처참했을까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7월 20일 러시아 콘스탄틴 대공과 함께 국민방위군 대대들을 검열한 블뤼허는 그나이제나우에게 편지를 써서 부대들의 준비 상태가 매우 훌륭한 것에 대해 콘스탄틴 대공도 감탄했다며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아마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윗선에 '보여주기'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나 봅니다. 검열받는 부대가 다른 부대들로부터 군복과 무기, 심지어 병사들 자체도 빌려 왔던 모양이라고 짐작만 할 뿐입니다. (군대에서 가장 힘든 것이 훈련보다는 검열이라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림은 1811.. 2023. 11. 6.
새로운 전쟁의 준비 (3) - 국민방위군(Landwehr)의 실상 여기서 잠깐, 국민방위군이란 정규군에 징집될 청년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지만 중산층의 시민들이 자비로 무기와 군복을 마련하여 자발적으로 편성된 부대라고 하지 않았나요? 원래는 그랬습니다만 그건 평화시에 향토 방위 임무나 주어질 때의 이야기였습니다. 애초에 프로이센에 자비로 무기와 군복을 마련할 정도의 중산층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지만, 이제 머나먼 타향으로 떠나 무시무시한 나폴레옹군의 총검 앞에 총알받이로 뛰어들어야 할 판국인데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자원하는 중산층의 중년 남자가 많을 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편성된 국민방위군은 자원병도 아니었고 중산층도 아니었으며, 자비로 마련한 군복과 무기도 없었습니다. 현실의 이들은 그냥 누더기 같은 작업복을 입고 손에는 보병용 창을 든 .. 2023. 10. 30.
새로운 전쟁의 준비 (2) - 프로이센의 고민 원래 7월 20일까지였던 휴전 기간은 양측의 합의 하에 8월 10일로 연장되었고, 그때까지 평화 협정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전투가 재개되려면 6일 간의 유예기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투가 재개되는 것은 8월 17일 새벽 0시부터였습니다. 사실상 건성이었던 평화 협상에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양측은 8월 17일의 전투 재개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양측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프로이센군은 전반적으로 사기가 높은 편이라고 다들 말했습니다. 비록 뤼첸-바우첸에서 2연패를 당했으므로 4월달에 처음 출정할 때처럼 희망만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러시아군이 후퇴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무엇보다 그 무시.. 2023. 10. 23.
새로운 전쟁의 준비 (1) - 불만 가득한 연합군 기본적인 작전안이 합의되자, 러시아군은 약속대로 비트겐슈타인의 군단과 콘스탄틴 대공 휘하의 러시아 근위대와 예비대를 보헤미아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이센군도 클라이스트(Friedrich Graf Kleist von Nollendorf)의 제2 군단과 프로이센 근위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베르나도트가 지휘할 북방군을 편성하기 위해 러시아는 빈칭게로더의 군단을 북으로 보냈습니다. 프로이센군은 이미 북방에 주둔하고 있던 빌로의 제3 군단과 타우엔치엔의 제4 군단의 지휘권을 베르나도트에게 넘기기로 했습니다. (블뤼허도 프로이센 출신이 아니고 그나이제나우도 원래는 작센 출신이었지만, 나폴레옹보다 7살 연상이었던 클라이스트는 베를린 출신 전형적인 프로이센의 융커 귀족이었습니다. 다만 그 역시 명문가 출신은 아니.. 2023.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