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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개발 이야기 (37) - 피해갈 수 없는 jamming과의 싸움 1941년 8월, 로열 에어포스는 Gee의 효용성에 확신을 가지고 양산을 결정. 그러나 양산 결정을 한다고 당장 수신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니며, 생산라인 갖추고 충분한 개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다음해인 42년 5월 경에나 가능. 당장 전쟁이 급한 로열 에어포스는 먼저 손으로 한땀한땀 납땜을 해서라도 300개만 먼저 만들어달라고 독려. 그나마 그런 수제 Gee 수신기도 42년 1월에나 만들어짐. 그렇게 만들어진 수제 Gee 수신기를 이용한 첫 공습은 42년 3월 8일 밤에 200대의 폭격기를 동원한 서부 독일의 Essen 공습 작전. 몇몇 폭격기에 Gee 수신기를 장착하여 선두에 서게 한 것. 목표물은 이 도시에 있던 Krupp사의 공장이었으나 정작 이 공장에는 폭탄이 하나도 안 떨어지고 .. 2023. 7. 6.
휴전 (1) - 나폴레옹의 축지법, 그게 될까? 앞서 언급했듯이, 나폴레옹의 추격 작전은 기병대 부족으로 인해 심각한 지연을 겪고 있었습니다. 연합군은 후퇴하면서도 꽤 강력한 후위대를 남겨 두었는데, 주로 강력한 포병대와 기병대 위주로 구성된 연합군 후위대를 기병 없이 상대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연합군 후위대는 주로 나지막한 언덕 위에 포병대를 방열하여 방어진을 구축했는데, 포병대 뿐이라면 추격하는 프랑스군이 별로 개의치 않고 쾌속으로 진격하여 제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이런 포병대 옆에는 꽤 큰 규모의 기병대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원래 보병-포병-기병은 화수목금토 오행과 같은 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병은 밀집 보병대를 상대로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지만, 횡대로 얇고 길게 늘어서서 진격하는 보병대에게는 그다지 위협적인 존.. 2023. 7. 3.
레이더 개발 이야기 (36) - 이제 우리는 독일로 간다 1939년 말까지 로열 에어포스의 폭격기들은 발트 해 연안의 독일 해군 기지 등에 대해 과감한 주간 폭격을 실시하고도 큰 피해가 없었음. 이유는 프랑스도 아직 항복하지 않았고 루프트바페의 전투기는 한정적이었으므로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들에 대한 요격 활동이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1939년 12월 18일, 22대의 Vickers Wellington 폭격기들이 헬리골란트 만의 빌헬름스하벤(Wilhelmshaven) 항구를 공격할 때, 한 떼의 루프트바페 전투기들이 그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정확하게 달려들어 개박살을 내놓음. 결국 22대의 웰링턴 폭격기들 중 10대가 격추되었고 2대는 손상을 입고 바다에 불시착했으며 기지로 돌아온 10대 중 3대는 손상이 너무 커 폐기처분될 정도. 독일 전투기들.. 2023. 6. 29.
소령 나부랭이의 패기 프로이센군이 1813년 바우첸 패배 이후 슈바이트니츠로 향하자고 주장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요새 때문이었습니다. 7년 전쟁 중이던 1761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오스트리아군의 침공에 맞서 가난한 촌마을인 분첼비츠(Bunzelwitz)에 참호로 강화된 진지를 구축하고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유리한 지형과 함께 분첼비츠 바로 남쪽에 위치한 슈바이트비츠 요새의 지원에 의지하여 버틴 것이었는데, 실제로 오스트리아군은 그 진지를 3면에서 포위만 했을 뿐 감히 적극적인 공격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프로이센 측이 러시아에게 슈바이트비츠에서 수데텐 산맥을 등지고 나폴레옹과 대치하자고 주장했던 이유도 바로 그런 역사를 가진 슈바이트비츠의 요새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라면 오스트리아가 준비를 마치.. 2023. 6. 26.
Showing the flag - 항모, 폭격기, 핵잠함 최근 부산항에 들어온 Ohio급 핵잠수함 USS Michigan(SSGN-727, 1민8천톤, 20노트)은 원래 부산에 자주 왔음 (2010, 2015, 2017). 특히 2010년에는 4월에 부산 입항한 이후 불과 2달만인 6월에 부산에 또 왔음. 이 떄는 특수한 상황이었는데, 당시 중국이 동중국 해에서 미사일 시험을 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기 때문.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경고로 무력 시위를 하기로 했고, 그 수단으로 2010년 6월 28일, 3척의 Ohio급 핵잠수함을 중국 근처에서 일제히 부상시켜 중국에게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 이건 잠수함을 현시 효과 (showing the flag) 수단으로 사용한 매우 희귀한 사례. 원래 현시 효과가 좋은 것은 항공모함. 원래 항공.. 2023. 6. 22.
산으로 가려는 프로이센군, 강으로 가려는 러시아군 알렉산드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바클레이의 현 상황 진단과 향후에 대한 계획이 옳으니 바클레이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긴 했지만, 바클레이의 생각대로 모든 것을 진행할 경우 당장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프로이센군은 절대 자국 영토인 슐레지엔을 버리고 러시아군을 따라 오데르 강을 건너 폴란드로 도망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프로이센군이 연합군 전체 전력의 1/3 이하라고 해도, 러시아는 프로이센 없이 나폴레옹과 싸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르는 또 다시 못된 버릇을 바클레이에게도 시전했습니다. 바클레이의 의도는 브레슬라우로 직행하여 거기서 오데르 강을 건넌다는 것이었으나, 알렉산드르는 그의 팔을 비틀어 무조건 일단 슈바이트니츠로 가도록 강요한 것입니다. 바클레이는 비로.. 2023. 6. 19.
레이더 개발 이야기 번외편) - SLBM과 천문 항법 이야기 1960년대까지만 해도 폭격기는 물론 보잉 747 같은 민항기에서도 조종석 꼭대기에 sextant port(육분의 구멍)이 있어서 그걸로 별을 보고 현재 위치를 계산. 공군 혹은 해군 사관학교를 나왔는데 육분의 사용법을 모르는 것은 동네 창피한 이야기. (1960년대 보잉 747 조종석의 sextant port) (1959년, 영국 폭격기 Victor의 Mk2C sextant 사용 모습) 그러나 1998년부터 미해군 사관학교에서는 더 이상 celestial navigation을 가르치지 않음. 이유는 너무 어려운 과목인데 어차피 위성 항법 시대라는 것. 실제로 non-engineering 과목 중에서 가장 어렵다는 불평불만이 많았음. 대부분의 장교들은 평생 단 한번도 써보지 않을 기술을 익히는데 너무 많.. 2023. 6. 15.
야우어(Jauer)에서의 job interview 연합군의 후퇴 방향을 정할 때 안전하게 전통적 러시아군의 생명선인 칼리쉬로 정하느냐 건곤일척의 비장함을 가지고 오스트리아 국경을 등진 슈바이트니츠로 정하느냐에 있어서, 정답은 없었습니다. 칼리쉬 안이나 슈바이트니츠 안이나 다 장단점이 있었고, 어느 쪽으로 결정을 내리든 엄청난 비난과 반발이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연합군 수뇌부'라는 어정쩡한 집단이 아니라, 결국 총사령관 한 명이었습니다. 그 총사령관은 바로 비트겐슈타인이었습니다. 문제는 처음부터 비트겐슈타인은 결단력과 그에 따르는 카리스마가 결여된 인물인데다, 그런 그를 그 자리에 임명한 알렉산드르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생색은 낼 수 있는 실질적 총사령관 노릇을 자신이 하기 위해 일부러 비트겐슈타인을 .. 2023. 6. 12.
레이더 개발 이야기 번외편) - 꿀벌과 순항 미사일 이야기 WW2 당시 양측 폭격기들의 항법 관련 이야기를 보면 해와 별을 보고 길을 찾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 독일 공군이 쓰는 전파 항법 시스템에 재밍을 했더니, 독일 폭격기가 영국 비행장에 착륙한 뒤에 독일이 아닌 것을 알고 당황하더라는 이야기까지 있음. 그런데 꿀벌은 벌집에서 최대 12km까지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 꿀을 따움. 몸집 크기를 비교하면 사람으로 치면 2천km 밖까지 날아가는 셈. 다들 아시다시피 벌에게는 GPS는 커녕 육분의도 나침반도 시계도 없음. (아마 밤에 꽃밭에서 꿀벌 보신 분들이 거의 없을 텐데, 왜 그런지 생각해보신 적 있는지?) Q1. 똑똑하다는 공군 항법사들도 그 정도면 자기 기지를 못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꿀벌은 대체 어떻게 집을 찾아 돌아올까? : 핵심은 태양. 꿀벌은 기.. 2023. 6. 8.
이제는 어디로? - 연합군의 고민 뒤록을 잃은 나폴레옹이 충격과 슬픔으로 잠시 주춤한 사이, 연합군 사령관 비트겐슈타인은 후퇴를 계속 했습니다. 1차 후퇴 집결지였던 라이쉔바흐(Reichenbach)는 방어에 적합한 지형이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거기 멈춰서서 나폴레옹과 다시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비트겐슈타인 본인도 나폴레옹만큼이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편이었습니다. 아무리 단 1문의 대포도 단 1기의 군기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해도, 후퇴하는 연합군의 사기가 좋을 리는 없었습니다. 당시 연합군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바우첸 전투에서 패배가 확정되고 알렉산드르가 후퇴를 명한 뒤, 함께 있던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알렉산드르와 함께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후퇴길에 나섰습니다. 그 두 군주.. 2023. 6. 5.
1918년, 초소형 항공모함과 제펠린 이야기 덴마크 서해안과 독일 북해안이 이루는 만이 그 가운데 있는 작은 섬의 이름을 따서 Heligoland Bight라고 부름. 이 헬리골란트 만은 1914년 벌어진 해전 이후 영국 해군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독일군이 장악한 바다. 바다엔 독일 해군 함정들도 있지만 독일 해군이 기뢰를 잔뜩 깔아 놓았기 때문. 그래도 이 일대에 기지를 둔 독일 해군 잠수함과 제펠린 비행선이 뭘 하고 있는지 정찰은 해야 하는데, 영국 해군 수상함정으로는 접근이 안 되니 항공기로라도 접근을 해야 함. 그러나 당시 항공기들은 그렇게 항속 거리가 길지 않아, 영국에서 이륙해서는 거기까지 왕복이 안 됨. (지도 오른쪽 윗부분에 보이는 섬이 Heligoland이고 그를 둘러싼 막힌 바다가 Bight of Heligoland.).. 2023. 6. 1.
도대체 Bonhomme Richard는 누구인가? 최근에 어떤 책에서 어떤 분이 Charles de Gaulle을 "찰스" 드 골이라고 번역을 해놓아 화제(...라기보다는 조롱의 대상)가 되었습니다. 사실 비영어권 유럽인들의 이름을 번역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미국인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 샤를 드 골을 그냥 찰스 '디'골이라고 읽는데, 그걸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피렌체를 플로렌스로 부르거나, 가또 키요마사를 가등청정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국내 번역 서적이 프랑스나 폴란드 등 비영어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에서 나오는데, 그런 책 속에는 비영어권 사람 이름조차도 그냥 영어화된 철자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가령 프랑수아(Francois)를 아예 .. 2023.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