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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1

무기와 장난감 - 나폴레옹과 프랑스 공군 이야기 (마지막편) 기구 중대가 포로 생활에서 풀려난지 1년 후인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 나설 때 그의 함대에는 이 기구 중대가 필요한 장비와 함께 탑승해 있었습니다. 왜 나폴레옹은 주르당이나 오슈 등이 다 꺼렸던 기구 중대를 특별히 싣고 갔던 것일까요 ? 군사 천재인 그는 다른 장군들과는 달리 정보 병기로서의 기구의 특성을 대번에 알아본 것이었을까요 ?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기구 중대를 데려간 것은 이들을 선전용 심리전 도구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끌고 출발한 13척의 전함, 7척의 프리깃함, 그리고 300척 이상의 수송선으로 구성된 대함대에는 수병들 외에도 보병 3만, 기병 2천8백, 야포 60문과 공성포 40문, 그리고 공병 2개 중대가 탑승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무척이나 독특.. 2018. 4. 29.
김정은의 숫자 7 - 영국과 유럽대륙의 표기 차이 어제 김정은의 방명록에서 숫자 7을 쓴 방식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는 7을 쓸 때 가로 획을 긋지 않지만 유럽 대륙에서는 대부분 긋는다고 합니다. 이는 1이라는 숫자 윗머리에 serif를 넣느냐 안 넣느냐의 차이 때문에 1과 헷갈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또 같은 영미권이라도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긋는 쪽이 더 많다고 합니다. 세계화 시대인 요즘은 어느 나라냐의 구분없이 섞어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페친께서는 미해군에서도 7에 가로획을 긋도록 교육받는다고 말씀하시네요. 그래도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저렇게 쓰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지요. 아무튼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더니 저런 글씨체를 배워온 모양입니다. 부디 저것 말고도 전쟁보다는 평화가, 핵폭탄보다는 철도가 더.. 2018. 4. 28.
정말 최저임금 인상이 식당 이모님들에게 해로운가 ? 3줄 요약 :- 만약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정말 서민경제가 망하고 있다면 왜 그걸 지방선거 슬로건으로 안 쓸까요 ?- 자유주의 경제론자들이 아무리 빽빽거려도 실제 피부로 느끼는 서민들에게는 씨알이 먹히지 않는 소리라는 것을 자유한국당도 알기 때문입니다.- 주방 이모들이 사라지는 것이 정말 최저임금 때문 맞나요 ? 2016년에는 '김영란법 때문에 주방 이모들이 사라진다'라고 조선일보가 주장했더군요. 오늘 두가지 뉴스를 봤습니다. 둘 다 보수층이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당 지방선거 슬로건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624439 최저임금 뛰니…‘식당 이모’가 사라졌다 http://.. 2018. 4. 25.
열혈남아의 사랑과 전쟁 - 장 란(Jean Lannes)의 여인들 무협지나 소년 만화를 보면 열혈남아에게는 반드시 꽃미녀가 1명 이상 따라 붙게 되어 있고, 주인공 열혈남아는 아무리 주변의 유혹이 강해도 그 뜨거운 심장을 청순가련한 그녀에게만 바치지요. 실제로도 그럴까요 ? 역사상 실존하는 열혈남아 중 2번째라면 서러워할 프랑스군 원수이자 나폴레옹의 개인적 친구인 장 란(Jean Lannes)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시지요. 1793년 12월 25일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피레네 산맥 인근 빌롱그(Villelongue)를 탈환한 공으로 24세의 젊은 나이에 소령으로 승진한 란은, 군의관으로 명령으로 후방인 항구 도시 페르피냥(Perpignan)으로 휴양을 떠나게 됩니다. 이 곳에서 란은 꽤 번듯한 집을 가지고 있던 메릭(Meric)이라는 은행가의 집에 숙사 배정(billet.. 2018. 4. 25.
참패와 재기 - 나폴레옹과 프랑스 공군 이야기 (제3편) 프랑스 기구 중대의 역사적 시작이 주르당과 함께였던 것처럼, 그 몰락의 시작에도 주르당이 있었습니다. (주르당 원수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주르당 법 덕분인데, 그게 또 몹시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무능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법안이었습니다. 즉, 그가 오스트리아군에게 참패를 겪고 그 책임을 진답시고 군에서 물러난 뒤, 정계에 입문하여 만든 법이 바로 주르당 법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주르당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가 얻은 명성은 프랑스 징병제 법안인 주르당 법(Loi Jourdan de 1798)에 의한 것일 뿐이며, 정작 그가 독일 전선에서 활약할 때 자주 참패를 겪었다고 했지요. 1795년, 프랑스 기구 제1 중대는 주르당이 사령관으로 있던 상브레-뮤즈(Sambre-et-Meuse) 방면군에 배속되었습니.. 2018. 4. 22.
상남자와 그의 여자 - 바그라티온과 예카테리나 * 러시아와 프랑스의 대표 상남자와 그들의 여자 이야기를 각각 1편씩 재업 합니다. (표트르 바그라티온 장군입니다. 약간 매부리 코인데요 ?) 프랑스의 상남자라면 저는 단연 장 란(Jean Lannes)을 뽑습니다만, 러시아에도 상남자로 불릴 만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바로 바그라티온 장군입니다. 동향 사람인 스탈린이 나중에 히틀러에 대한 대반격 작전 이름을 바로 이 장군의 이름으로 붙였었지요. 표트르 바그라티온의 정식 명칭은 Prince Pyotr Ivanovich Bagration, 즉 바그라티온 왕자였습니다. 왕자라니, 바그라티온이 로마노프 왕가의 아들이었나요 ? 아닙니다. 일단 여기서 prince라는 명칭은 왕의 아들이라기 보다는, 공작(duke)보다는 더 높으나 왕(king)보다는 더 낮은 직위를.. 2018. 4. 18.
엇갈린 평가 - 나폴레옹과 프랑스 공군 이야기 (제2편) 주르당의 어설픈 라임으로 조롱 받으며 파리로 돌아온 쿠텔을 맞이한 것은 서슬퍼런 국민공회 공안위원회(le Comite de salut public)였습니다. 그렇다고 공안위원회가 쿠텔을 단두대로 보낸 것은 아니었고, 정반대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공안위원회는 당시 국내외 반혁명세력과의 투쟁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으므로, 과학을 통해 구시대의 적을 무찌른다고 하면 뭐든 해줄 기세였습니다. 샤또 드 뫼동(Chateau de Meudon)에서 몇 차례의 기구 기술에 대한 테스트가 이루어진 뒤, 공안위원회는 아예 세계 최초의 공군 무기창인 항공 개발 센터(le centre de developpement aerostatique)를 창설했습니다. 여기서는 나중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도 참여하고.. 2018. 4. 15.
What is a youth 가사 해석 요즘 젊은 분들도 올리비아 핫세가 나온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이 영화는 올리비아 핫세의 미모 외에도 주제곡인 'What is a youth'가 굉장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 들어봐도 그 멜로디나 가사 모두 전혀 촌티나지 않습니다. 고전이 뭐 별 거 있겠습니까 ? 시대를 가로질러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고전이지요. 이 'What is a youth'는 오리지널 버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불렀고, 다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에 라디오에서인가 어디서인가 여성 버전의 'What is a youth'를 들었는데, 정말 특이하면서도 매혹적인 목소리와 발성이었습니다. 전에 페북에서인가 어떤 분이 '요즘 젊은 가수들은 한국말을 영어처럼 발음하는 경향이.. 2018. 4. 11.
혁명의 날개 - 나폴레옹과 프랑스 공군 이야기 (1편) 탈라베라 전투에서 빅토르의 복장을 터뜨린 주르당 원수에 대해 설명하면서, 주르당 원수의 몇 안되는 빛나는 승리 중 하나인 1794년 플뢰뤼스(Fleurus) 전투에 대해서도 언급했지요. 플뢰뤼스 전투 그 자체는 별 의미도 재미도 없는 전투입니다만, 이 전투는 군사학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세계 최초로 공군이 활약한 전투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왜 다른 나라들보다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공군이 탄생했을까요 ? 그 효과는 어땠을까요 ? 무엇보다, 왜 불세출의 군사 천재 나폴레옹은 이런 과학 병기를 활용하지 않았을까요 ? 계몽사상이 싹튼 나라 프랑스에서는 과학자들도 많았고 일찍부터 이런저런 과학 실험들이 많이 수행되었습니다. 열기구 및 수소 기구도 그런 활동 중 하나였습니다. 혁명 전인 1783.. 2018. 4. 8.
잃어버린 프로이센의 영토와 클로제 1807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굴복을 받아낸 프리틀란트는 동부 프로이센의 주도인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근처에 있는 지역입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독일어로 '왕의 산'이라는 뜻이고,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습니다. 지금 이 도시는 러시아 발트 함대의 모항인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라는 이름의 러시아 도시가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유서 깊은 독일 도시가 러시아 영토가 되었을까요 ? 예전에 독일 도시였다면 그곳에 살던 독일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또, 지금 독일이 다시 매우 강대국이 되어 있는데, 독일 내에서 이렇게 잃어버린 옛영토를 되찾자는 움직임은 없을까요 ? (쾨니히스베르크의 모습입니다. 아마 19세기 말 정도의 모습인가봐요 ?) 전에도 다룬 바 있습니다만.. 2018. 4. 4.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 탈라베라 전투 (제6편) 프랑스군 2개 사단을 위기에서 구출해준 것은 전선 중앙부에서처럼 영국군 자신들의 경험 부족과 무지였습니다. 페인(Fane)과 앤슨(Anson)의 영국군 기병대가 프랑스군을 위협하여 방진을 이루게 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협박만 했으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그렇게 방진을 이룬 프랑스군을 메데진 언덕 위의 영국군 포병대가 계속 갉아먹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고슴도치처럼 총검을 촘촘히 내밀고 방진을 이룬 프랑스군 정면을 향해 영국군 기병대는 겁도 없이 돌격을 감행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돌격은 기병대가 큰 피해를 입고 물러서는 것으로 끝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영국군은 용감했습니다. 하지만 영국군 기병대를 격파한 것은 프랑스군의 총검이 아니었습니다... 2018.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