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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4

아스페른-에슬링 에필로그 - 더 간절한 쪽이 승리한다 아스페른-에슬링 전투는 프랑스군에게나 오스트리아군에게나 전례없이 길고도 치열한 대규모 전투였습니다. 양측은 거의 48시간 동안 잠도 거의 먹지도 못 자고 죽을 힘을 다해 행군하거나 싸웠지요. 5월 22일 오후 5시 이후 이 대규모 살륙전이 서서히 잦아든 것은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양측의 상황은 이틀 전과 사실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아스페른에서는 마세나의 제4 군단이 힐러와 벨가르드의 2개 군단을 상대로 치열하게 저항하면서도 조금씩 후퇴하며, 결국 이때 즈음엔 아스페른이 오스트리아군의 손아귀로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마세나의 군단은 여전히 맹렬하게 저항할 병력과 사기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힐러와 벨가르드의 군단들은 이제.. 2017. 4. 23.
아스페른-에슬링 11편 - 소문과 눈물 랍의 신참 근위대가 에슬링에서 철수하라는 나폴레옹의 명령을 거부하고 분전하여 에슬링을 탈환한 덕분에, 오후 5시 경부터 전투는 육박전에서 포격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대포에서도 폭발탄을 일부 쓰기는 했으나, 도화선에 의한 폭발탄이라 불발탄도 많았고, 또 흑색화약을 쟁여넣은 당시 폭발탄(shell 또는 bomb)은 요즘 수류탄 정도의 폭발력 밖에 없었으므로 심각한 위협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포탄은 글자 그대로 대포알(roundshot)이었고, 이것들은 속까지 쇳덩어리로 꽉 찬 것이라 병사들이 이런 것에 목숨을 잃으려면 직격을 당해야 했습니다. (당시의 포탄 종류들입니다. Chain-shot이나 bar-shot 등은 주로 해군에서 쓰던 것입니다.) 요즘처럼 고폭약을 잔뜩 탑재하여 .. 2017. 4. 16.
아스페른-에슬링 10편 - 하드캐리 위기에 빠진 프랑스군을 위기에서 건져낸 것은 전혀 의외의 인물로서, 그는 투박한 독일 사투리가 들어간 프랑스어를 쓰는 알사스(Alsace) 출신이었고, 그가 그 위기의 순간에서 프랑스군을 하드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나폴레옹의 명령을 의도적으로 거역한 덕분이었습니다. 장 랍(Jean Rapp)은 알사스 지방 콜마르(Colmar) 시의 시청 수위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카톨릭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소수라고 할 수 있는 독실한 프로테스탄트로서, 그의 아들이 장차 제대로 교육을 받고 목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장 랍은 용기와 열정으로 가득찬 전형적인 군인 체질이었던지라,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17살이 되자 프랑스 기병대에 사병으로 자원 입대해버렸습니다. 그의 군대 생활은 그야말로 피투성이었.. 2017. 4. 9.
아스페른-에슬링 9편 - "질서있는 퇴진" 군인의 목표는 승리와 전진이며, 이는 이룩하기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 바로 패배 수습과 질서있는 후퇴입니다. 나폴레옹도 '모든 문제는 승리하면 다 저절로 해결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만, 패배할 경우 없던 문제까지 수없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5월 22일 11시, 부교가 수리 불가 상태까지 붕괴된 것이 확인되자, 나폴레옹은 공세에 나섰던 병력을 철수시키기로 합니다. 그 명령에 의해 가장 곤란해진 것은 바로 란의 제2 군단이었습니다. 마세나의 제4 군단은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았습니다. 그들은 벌판으로 진격하지 않고 아스페른 마을 안에서 오스트리아군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일단 현 상황을 유지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란의 제2 군단은 중앙 전선을 .. 2017.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