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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개발 이야기 번외편) - 꿀벌과 순항 미사일 이야기 WW2 당시 양측 폭격기들의 항법 관련 이야기를 보면 해와 별을 보고 길을 찾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 독일 공군이 쓰는 전파 항법 시스템에 재밍을 했더니, 독일 폭격기가 영국 비행장에 착륙한 뒤에 독일이 아닌 것을 알고 당황하더라는 이야기까지 있음. 그런데 꿀벌은 벌집에서 최대 12km까지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 꿀을 따움. 몸집 크기를 비교하면 사람으로 치면 2천km 밖까지 날아가는 셈. 다들 아시다시피 벌에게는 GPS는 커녕 육분의도 나침반도 시계도 없음. (아마 밤에 꽃밭에서 꿀벌 보신 분들이 거의 없을 텐데, 왜 그런지 생각해보신 적 있는지?) Q1. 똑똑하다는 공군 항법사들도 그 정도면 자기 기지를 못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꿀벌은 대체 어떻게 집을 찾아 돌아올까? : 핵심은 태양. 꿀벌은 기.. 2023. 6. 8.
이제는 어디로? - 연합군의 고민 뒤록을 잃은 나폴레옹이 충격과 슬픔으로 잠시 주춤한 사이, 연합군 사령관 비트겐슈타인은 후퇴를 계속 했습니다. 1차 후퇴 집결지였던 라이쉔바흐(Reichenbach)는 방어에 적합한 지형이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거기 멈춰서서 나폴레옹과 다시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비트겐슈타인 본인도 나폴레옹만큼이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편이었습니다. 아무리 단 1문의 대포도 단 1기의 군기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해도, 후퇴하는 연합군의 사기가 좋을 리는 없었습니다. 당시 연합군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바우첸 전투에서 패배가 확정되고 알렉산드르가 후퇴를 명한 뒤, 함께 있던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알렉산드르와 함께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후퇴길에 나섰습니다. 그 두 군주.. 2023. 6. 5.
1918년, 초소형 항공모함과 제펠린 이야기 덴마크 서해안과 독일 북해안이 이루는 만이 그 가운데 있는 작은 섬의 이름을 따서 Heligoland Bight라고 부름. 이 헬리골란트 만은 1914년 벌어진 해전 이후 영국 해군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독일군이 장악한 바다. 바다엔 독일 해군 함정들도 있지만 독일 해군이 기뢰를 잔뜩 깔아 놓았기 때문. 그래도 이 일대에 기지를 둔 독일 해군 잠수함과 제펠린 비행선이 뭘 하고 있는지 정찰은 해야 하는데, 영국 해군 수상함정으로는 접근이 안 되니 항공기로라도 접근을 해야 함. 그러나 당시 항공기들은 그렇게 항속 거리가 길지 않아, 영국에서 이륙해서는 거기까지 왕복이 안 됨. (지도 오른쪽 윗부분에 보이는 섬이 Heligoland이고 그를 둘러싼 막힌 바다가 Bight of Heligoland.).. 2023. 6. 1.
도대체 Bonhomme Richard는 누구인가? 최근에 어떤 책에서 어떤 분이 Charles de Gaulle을 "찰스" 드 골이라고 번역을 해놓아 화제(...라기보다는 조롱의 대상)가 되었습니다. 사실 비영어권 유럽인들의 이름을 번역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미국인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 샤를 드 골을 그냥 찰스 '디'골이라고 읽는데, 그걸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피렌체를 플로렌스로 부르거나, 가또 키요마사를 가등청정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국내 번역 서적이 프랑스나 폴란드 등 비영어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에서 나오는데, 그런 책 속에는 비영어권 사람 이름조차도 그냥 영어화된 철자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가령 프랑수아(Francois)를 아예 .. 2023. 5. 29.
레이더 개발 이야기 (35) - 독일의 태양, 영국을 비추다 WW2 발발전 민간용 항공기의 착륙 유도용으로 Lorenz 시스템을 만들었던 Ernst Kramar는 루프트바페로부터 전파 항법 시스템에 대한 도움 요청을 받자 로렌츠를 더욱 확장 발전시켜 보편적 항공기용 전파 항법 시스템을 만듬. 크라머 박사는 그를 위해 획기적인 기술적 돌파를 마련했는데, 지향성 전파를 좁은 beam으로 쏘는 로렌츠 시스템의 특성과 영국이 만든 Orfordness Beacon의 '회전 신호' 특성을 결합한 것. 그 결과가 바로 Sonne (독일어로로 '태양'). 실은 이 존너라는 것은 WW2 발발 이전에 이미 개발을 해놓은 Elektra의 확장 보완판. 교양인이었던 크라머 박사는 원래 WW2 전에 만든 전파 항법 시스템 이름을 리카르트 스트라우스의 오페라 주인공 이름을 따서 '엘렉트라.. 2023. 5. 25.
바우첸 전투 (7) - 실패의 원인 패배가 확정되고 나서야 짜르 알렉산드르로부터 지휘권을 온전히 넘겨 받은 비운의 총사령관 비트겐슈타인은 투덜거리며 후퇴를 지휘했습니다. 다소 지나치게 꼼꼼한 작전 계획을 짜기로 악명 높았던 그는 이미 후퇴 작전에 대해서도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습니다. 가장 북동쪽에 위치했던 바클레이의 러시아군, 중앙부의 프로이센군, 그리고 남쪽의 러시아군 본대, 이렇게 크게 3개 집단으로 수행된 후퇴 작전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연합군은 꽤 질서정연하게 후퇴에 성공했습니다. 이 성공은 비트겐슈타인의 능력 덕분이라기 보다는 결국 추격자의 입장인 프랑스군의 문제 덕분이었습니다. 첫째 이유는 프랑스군 자체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지형 탓이 좀 있었습니다. 연합군이 바우첸 동쪽에 방어선을 꾸민 이유가 그 쪽 지형이 동쪽으로 갈.. 2023. 5. 22.
레이더 개발 이야기 (34) - Orfordness의 등대 WW2 중 독일의 전파를 이용한 항법 기술은 사악한 영국놈들의 jamming을 당해서 망했을 뿐, 기술 혁신의 산물. 그런데 왜 영국애들은 왜 그런 기술 혁신을 못 이루었을까? 그럴 리가 있나. 당연히 영국애들도 전파를 이용한 항법은 그 전부터 연구했고 실제로 구현도 했음. Loop antenna를 이용한 전파 방향 탐지(radio direction finding, RDF)는 무선통신 초기 때부터 있었던 기술이었고, 따라서 이걸 이용하여 초장거리 등대로 사용하려는 계획은 예전부터 있었음. 그러나 잘 안 되었던 이유는 필요한 고리형 안테나의 크기 때문. 정확한 방향을 잡으려면 고리형 안테나가 커야 했는데, 5미터짜리 대형 loop antenna는 선박에서도 부담스러운 물건이었으므로 항공기에서는 더더욱 불가.. 2023. 5. 18.
바우첸 전투 (6) - 삼면초가 술트와 마르몽, 네의 3면 공격은 당연히 모조리 크렉비츠 언덕에 한꺼번에 집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블뤼허의 프로이센군 전선은 크렉비츠(Kreckwitz)에서 도버쉬츠(Doberschütz)를 거쳐 플리스코비츠(Pließkowitz)까지 길게 펼쳐져 있었는데, 크렉비츠 언덕 쪽에 가장 가까왔던 것은 술트의 제4 군단이었고, 그 중에서도 프란커몬트 (Frederic von Franquemont) 장군의 뷔르템베르크 사단이 그 선봉에 나섰습니다. 결과적으로 독일인들끼리 맞붙은 전투였으니 동족 상잔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남부 독일이자 카톨릭 배경인 뷔르템베르크와 북부 독일의 개신교 배경인 프로이센은 30년 전쟁 동안 온갖 적대감을 불태웠던 사이였으므로 정말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뷔르템베르크는 지.. 2023. 5. 15.
레이더 개발 이야기 (33) - 농락 당한 애꾸눈 신 코벤트리 폭격 이후 익스거레트조차 영국놈들의 전파 방해에 막히게 되자 루프트바페는 준비하고 있던 비장의 마지막 카드를 내밈. 이건 X-Gerät의 뒤를 잇는 Y-Gerät. 영국이 이 입실론거레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역시나 독일의 암호 체계 Enigma를 해독했기 때문. 입실론거레트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자주 나오기 시작하고 영국의 전파 방해에 지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폭격 사례들이 등장하기 시작. 로열 에어포스는 대체 이번에는 어떤 원리를 이용한 전파 항법이길래 재밍을 피할 수 있는 것일까를 고민. 그런데 이니그마를 자세히 분석해보니, 입실론거레트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자주 등장. 그 이름은 보탄(Wotan). 고대 독일 신화에 등장하는 보탄은 스칸디나비아의 오딘에 해당하는 신. 그런데 입.. 2023. 5. 11.
바우첸 전투 (5) - 1806년 아우어슈테트의 여파 오전 10시에 글레이나 언덕에서 나폴레옹의 명령서를 손에 쥔 네에게는 당장 2만3천의 병력이 있었고, 바로 뒤에 약 2만의 추가 병력 4개 사단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네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글레이나에서 프라이티츠까지의 1시간도 안 걸릴 거리를 그냥 걸어서 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에 벌어진 어이 없는 상황 전개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는데, 바우첸 전투가 종료된 이후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베르티에로부터 그 책임을 추궁당한 것은 바로 네의 참모인 조미니였습니다. 조미니는 이 일에 대해 나폴레옹의 명령서가 클릭스(Klix)를 통해 우회하여 오느라 너무 늦게 도착한데다 작전 상황이 너무 순조로와 네가 글레이나를 너무 빨리 점령했다는 앞뒤가 안 맞는 이상한 변명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확실히.. 2023. 5. 8.
레이더 개발 이야기 (32) - The Reich strikes back 전파 항법 시스템인 크니커바인(knickebein)이 영국놈들에 의해 재밍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루프트바페는 전쟁 전부터 준비해오던 비장의 무기 X-Gerät (익스거레트, X-기구, X-apparatus)를 서둘러 실전 배치. 기존 크니커바인에 비해 2배 더 높은 주파수인 60 MHz로 운용되어 훨씬 더 좁고 정밀한 전파 beam을 쏜다는 것도 차이였고, 단지 2개의 빔을 교차시키는 것이 아니라 Weser라는 항법용 전파에 Rhein, Oder, Elbe라는 강 이름을 딴 3개의 평행 전파를 교차시키는 것도 차이였지만, 가장 큰 차이는 저렇게 교차 전파 신호를 받으면 폭탄이 자동으로 투하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 크니커바인이 쉽게 재밍되었던 것은 그 원형인 로렌츠 시스템부터 나타났던 문제. 민간용 .. 2023. 5. 4.
바우첸 전투 (4) - 높은 교회만 보고 간다 바클레이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뮈플링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원래 바클레이 휘하에 있던 병력 1만5천 중에서 1만을 여기저기 쪼개에 지원 병력으로 다 보내버렸기 때문에, 당장 글레이나를 지키기 위한 병력은 5천 정도 밖에 없다는 것이었거든요. 이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2일 전인 19일에 북쪽에서 내려오는 프랑스군과 격돌을 벌이고도 아무 대책없이 병력을 분산시켰다는 소리였으니까요. 이건 아마도 전체 전선에서 맹렬한 전투가 벌어지는데도 바클레이가 맡은 말슈비츠-글레이나 전선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에 방심했던 것이 이유일 수 있습니다. 사실 9만에서 9만5천 정도였던 전체 연합군에서 1만5천이라는 병력은 상당한 규모였으니, 그 병력을 그대로 놀려두기가 아까웠을 것입니다... 2023.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