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743

포클랜드 전쟁 잡설 - 한 발의 엑조세를 쏘기 위해... 1970년대에 프랑스 해군이 함재기 구매에 나설 때 원래는 유럽의 다국적 합작품인 SEPECAT Jaguar (사진1)를 함재기 버전으로 바꾼 Jaguar M을 개발했으나, 유럽애들이 하는 것이 다 그렇듯 이 프로그램이 산으로 가자 그냥 다 때려치우고 그냥 남들 다 쓰는데다 가격도 합리적인 미제 함재기 A-7 Corsair 또는 A-4 Skyhawk를 사려고 함. 그러나 끈끈한 '우리가 남이가' 정서를 이용한 프랑스 다소 사가 프랑스 정부를 움직여 Super Étendard를 억지로 구겨 넣음. 쉬페르 에땅다르는 50년대 말에 첫 비행을 한 Dassault Étendard IV (사진2)의 기체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면서 좀더 강력한 엔진과 개선된 날개, 그리고 그 사이에 개발된 첨단 항공전자장비를 통합한.. 2021. 12. 9.
커피 한 잔과 케익 한 조각 - 약속의 도시 빌나 나폴레옹이 마차의 말을 교체한 뒤 떠나버린 다음 날인 12월 7일 오후, 좁은 빌나 성문을 통해 터벅터벅 걸어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 뜯어지고 꾀죄죄한 옷차림에 적어도 몇 주간은 씻지 않은 것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야만인들이 문명인 세계로 온 것처럼 번화한 거리를 두리번거렸습니다. 몇몇 시민들이 이들의 몰골을 보고 놀라서 수군거렸지만 이들은 영업 중인 카페를 발견하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다 카페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 커피와 케익을 주문했습니다. 그 일행 중 하나가 펠레(Jean-Jacques Germain Pelet-Clozeau) 대령이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그 경험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에겐 모든 것이 차분하게 정돈된 도시를 보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사치.. 2021. 12. 6.
포클랜드 전쟁 잡담 (12/2) 사진1은 Mk-82 500파운드 폭탄. 폭탄을 전투기에 장착할 때 잘못하면 터지는 거 아닌가 겁날 수 있으나 항공 폭탄은 지상에서는 절대 터지지 않음. 심지어 오함마로 때려도 터지지 않는다고. 이유는 폭탄 맨 앞 꼭지 부분에 2개의 날이 달린 작은 프로펠러. 이건 폭탄을 떨구는 순간 돌기 시작해서 뇌관을 때리는 격침을 격발 위치로 내려보내는 장치. 즉 저 프로펠러가 먼 높이에서 낙하하면서 충분히 회전하지 않으면 절대 폭발하지 않음. 근데 전투기가 날기 시작하면 당연히 저 프로펠러가 돌지 않나? 안 돔. 이유는 저 폭탄 앞 꼭지 부분에 연결된 와이어 때문. 저 와이어 끝에 프로프렐러가 돌지 못하게 고정시키는 안전핀이 달려있음. 폭탄이 투하되어도 저 철사 와이어는 안전핀을 매단 채로 전투기 파일런(pylon.. 2021. 12. 2.
12월 6일의 비극 - 사람이 이렇게도 죽는다 나폴레옹과 그랑다르메가 베레지나에서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 약 250km, 그러니까 6~7일 정도 행군거리에 있던 빌나는 꽤 평온했습니다. 빌나에 있던 마레와 호겐도르프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병력과 보급품과 말을 보내라는 독촉을 계속 받고 있었지만 그거야 나폴레옹이 떠난 이후 계속 된 것이었고, 그들은 나폴레옹이 적절한 겨울 숙영지를 찾아 약간 후퇴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어느 정도로 나빠졌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기념일인 12월 2일에는 성대한 만찬과 함께 무도회도 열렸습니다. 베레지나에서 간신히 강을 건넌 나폴레옹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의 편지를 들고 온 아브라모비츠(Abramowicz)라는 빌나 거주 폴란드 귀족이 마레를 찾아온 것도.. 2021. 11. 29.
포클랜드 전쟁 잡담 (11/25) 니므롯(Nimrod)은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로서 노아의 손자이자 거대하고 강력한 사냥꾼(사진1). 바벨탑을 짓기 시작한 왕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영국 공군이 1969년 도입한 Hawker Siddeley사의 해상정찰기 이름도 Nimrod. 대개의 해상정찰기들이 그러듯 님로드도 1952년 최초 도입된 de Havilland Comet이라는 여객기(사진2)를 기초로 만듬. 그러나 워낙 오래된 기종이다보니 포클랜드 전쟁 때 아르헨티나 공군의 B-707 해상정찰기를 만난 님로드가 (아무 공대공 무장이 없음에도) 707을 추격하려 했으나 속도가 딸려 추격을 포기할 정도. 그러나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님로드에도 공대공 무장을 달자고 하여 결국 사이드와인더를 장착 (사진3). 이렇게 낡은 기체였지만 WW2 이.. 2021. 11. 25.
떠나는 자와 남는 자 - 빌나 앞에서 나폴레옹이 12월 5일 스모르곤(Smarhonʹ 또는 Smorgon)에 도착하여 어떤 농가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있을 때, 그를 찾아 서쪽에서 온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동프로이센과 리투아니아의 주지사로서 빌나에서 각종 행정 업무를 보고 있던 호겐도르프(Dirk van Hogendorp)였습니다. 호겐도르프는 나폴레옹이 빌나의 마레(Maret)에게 주문했던 사항, 즉 10만 병력이 3달간 먹을 식량과 5만 명을 무장시킬 수 있는 머스켓 소총과 탄약, 군복, 군화, 기타 장비류는 물론, 많지는 않지만 보충용 군마들도 준비되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더 반가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호겐도르프는 독일에서 새로 편성된 2개 사단이 막 빌나에 도착했는데, 이들을 빌나 외곽에 부채 모양으로 전개.. 2021. 11. 22.
기업도 나이를 먹는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중에서 --------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입니다. 주인공은 이탈리아군에서 구급차 장교로 복무하다가 탈영한 미국인입니다. 그는 애인과 함께 호텔 등에서 숨어지내다 전에 알던 그레피(Greffi) 백작이라는, 나폴레옹 시대의 인물인 메테르니히와 동시대에 살던 94세의 노인과 만나 당구를 치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진짜로, 이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네." "누가 이길까요?" "이탈리아지." "왜요?" "더 젊은 나라니까." (당시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여러 개의 왕국과 공국 등으로 분리되었다가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된지 몇십 년 되지 않은 신생국이었습니다.) "더 젊은 나라가 언제나 전쟁에서 이기나요?" "최소한 .. 2021. 11. 18.
러시아군의 사정 - '똑게' 쿠투조프 나폴레옹은 강추위에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군대를 보며 무척이나 화를 냈습니다. 그는 나름 잘 싸웠던 빅토르에게도 '형편없는 소극적 태도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라며 화를 냈고 자신이 무관심과 혹사로 기병대를 날려먹어 놓고서는 폴란드인들에게 '폴란드에도 코삭 기병이 있던데 왜 그들을 대규모로 미리 준비해놓지 않았는가'라며 화를 냈습니다. 당연히 자신을 배신하고 혼자서 도망친 슈바르첸베르크 대공과 그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군, 그리고 강추위에 대해서도 화를 냈습니다. 보통 남탓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원하는 바는 '그러니까 내 잘못은 아니야'라고 강조하는 것인데, 이 점에 있어서 쿠투조프는 나폴레옹급의 인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부러 저런다는 티가 날 정도로 천천히, 정말 천천히 추격해오느라 나폴레옹의 뒤꿈치.. 2021. 11. 15.
포클랜드 전쟁 항공전 잡설 (11/11)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한 해리어들은 크게 2종류. 선량한 시민들이 보기엔 똑같은 해리어 전투기지만 원래 공군 소속 해리어는 Harrier GR3이고 해군 소속은 Sea Harrier FRS.1. 기능상 가장 큰 차이는 대지상 공격 능력. 해군용 Sea Harrier FRS.1의 임무는 그냥 제공권 장악이라서 대지 공격 능력이 사실 없었음. 그에 비해 공군용 Harrier GR3는 대지 공격용 컴퓨터와 항법 시스템을 갖춰 지상 목표물 공격에 적합. 그러나 막상 항공모함에서 지상 목표물 폭격 준비를 하던 영국 공군 정비사들은 급당황. 지상에서는 해리어에 장착된 관성유도장치(INS)를 세팅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파도에 계속 흔들리는 항공모함 격납고에서는 관성유도장치의 정확한 calibration이 불가능.. 2021. 11. 11.
인간과 짐승 - 빌나로의 후퇴 (하) 극한 상황에서의 동료들 간의 이런 헌신은 꼭 명령과 계급 의식에 의해서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르죈의 경험담입니다만, 길가에서 어떤 부상당한 포병 장교가 뒤쪽에서 자신의 하인이 따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뭔가 임무를 띠고 대열 후미 쪽으로 가던 르죈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시간 정도 후에 그 임무에서 돌아오던 르죈은 똑같은 자리에서 그 포병 장교가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르죈은 여기서 주저앉아 있다가는 결국 얼어죽게 되니 하인은 포기하고 자신과 함께 길을 떠나자고 그 포병 장교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장교는 완강히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군님 말씀대로 전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 하인 조르쥬는 한 유모의 손에서 자란 친구입니다. 조르쥬는.. 2021. 11. 8.
포클랜드 전쟁 잡담 (11/4) 1982년 포클랜드 사태가 터졌을 때 영국 해/공군은 그야말로 망하기 일보 직전 상태. 두 척의 항공모함 HMS Hermes와 HMS Invincilble은 모두 해외에 중고품으로 매각되기 직전. 구축함 등의 수상함들도 (영국제답게) 날림으로 만든 것들이 많아서 거친 남대서양의 겨울 바다를 견딜 수 있을지 의문. 실제로 몇몇 함선에서는 7월 중순 바다가 거칠어지기 이전에 이미 crack이 발생하여 물이 샜다고. 장거리 폭격기인 Vulcan(사진1,2)도 모두 퇴역 준비를 하고 있던 상태. 결정적으로 소련에 대한 폭격 임무는 이미 포기한 상태이다보니 당시 영국 공군 벌컨 조종사들 중 공중급유를 해본 가장 최근 시점이 10년 전. 이들은 부랴부랴 공중급유 연습을 해본 뒤 곧장 대서양 횡단 실전에 투입됨. 가.. 2021. 11. 4.
동장군을 만난 사람들 - 빌나로의 후퇴 (상) 러시아의 동장군은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진격할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했던 최대 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1월 초까지도 나폴레옹이 그런 우려에 대해 '모두가 과장된 헛소문'이라며 비웃을 정도로 러시아의 날씨는 온화했습니다. 실제로 나폴레옹을 패배시킨 것은 러시아의 눈이 아니라 진흙이었습니다. 형편없는 도로 때문에 수송에 애를 먹었고 덕분에 보급이 안 되어 그랑다르메는 패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동장군에게 패배했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살아돌아온 모든 사람들이 러시아의 끔찍한 추위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강추위는 그랑다르메가 베레지나를 건넌 다음에 시작되었습니다. (유명한 미나르(Charles Joseph Min.. 2021.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