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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공약(空約) - 프로이센 장교들의 이탈 안실리온(Friedrich Ancillon)의 조언은 꽤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국적에 상관없이 귀족이나 신사라면 모두가 프랑스어를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당대의 지식인답게, 야만스러운 러시아보다는 문명국인 프랑스 친화적인 노선을 취하기를 권고하며 러시아 장군들의 무능력 등을 비난하기도 하고, 스페인 민중과는 달리 프로이센 국민들에게는 종교적인 광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스페인식 민중 투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등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그럴싸한 이유도 내놓았습니다. 바로 러시아와 프랑스의 지리적 위치였습니다. 기동력이 좋은 군대를 가진 프랑스는 바로 지척에 있는데 러시아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지요. 또한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전투에서 승리해도 유럽 .. 2022. 3. 28.
우크라이나의 겨울밀 이야기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많은 비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결코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밥상 물가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석유와 천연가스 이야기는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으셨을 것이고, 아마 밀을 비롯한 곡물 이야기도 꽤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미 밀 파종은 이미 작년 10월 전후에 다 끝났습니다. 그때 씨 뿌려서 올해 7~8월에 수확하는 겨울밀이 우크라이나 밀의 95%입니다. 가을에 뿌린 밀은 곧 싹이 텄다가,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적응 기간을 거쳐 눈 밑에서 일종의 동면 상태로 겨울을 나고 봄에 막 생장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겨울을 나는 동안 보통 15%의 싹이 죽어버립니다. 2002~2003년인가... 그때는 유.. 2022. 3. 24.
치욕의 프로이센 -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외줄타기 1812년 말 그랑 다르메의 일원으로 리가(Riga) 방면에서 러시아군과 대치 중이던 요크 대공이 본국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러시아군과 강화 조약을 맺을 때만 해도, 프로이센이 정말 1813년 러시아 편에 붙어 나폴레옹에 대적한다는 것이 확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프로이센 전체는 반(反)프랑스 정서로 들끓고 있었고 나폴레옹에 저항하여 들고 일어날 이유야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분만으로 반(反)나폴레옹 전선에 뛰어들 것이라면 훨씬 이전에 그랬어야 했습니다. (C.S. Forester의 명작 소설인 Hornblower 시리즈 중 'The Commodore' 편에서는 혼블로워가 소함대의 제독으로서 발트 해에서 활약하며 짜르 알렉산드르를 만나기도 하고 리가(Riga)를 포위 공격하는 프랑스군과 .. 2022. 3. 21.
포클랜드 전쟁 잡담 - 영국제 동호회원들간의 전쟁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해군의 주력 대공무기는 Sea Dart 미쓸. 고고도 장거리 미사일이었던 씨다트는 2단 로켓 추진 방식으로서, 먼저 1단 고체 연료 로켓으로 추진되어 초기 속도를 낸 뒤에, 1단 로켓을 분리한뒤 점화되는 2단 로켓은 ramjet 방식으로 추진하여 마하 2.5의 높은 속도를 냄. 최대사거리는 75km 정도였고 이걸 테스트해본 영국 해군은 "이걸 장착한 구축함은 F-4 Phantom 전투기 8대가 초계비행을 하는 것과 동일한 방공 효과를 낸다"며 자화자찬. 그야말로 일기당팔(一騎當八). (Sea Dart 미쓸의 앞부분에 제트기의 공기 흡입구 같은 것이 보이는 이유가 다 있음. 실제로 공기를 빨아들여 연소시키는 램젯 방식임) 그러나 서류상으로는 분명히 우월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영국제 따.. 2022. 3. 17.
1813년, 러시아군을 맞이하는 나폴레옹의 마스터 플랜 병력과 물자, 그리고 돈 문제를 해결한 나폴레옹은 이제 구체적인 작전 방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건 나폴레옹과 같은 군사 천재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빌나와 폴란드를 거쳐 후퇴하면서 이미 모든 전략을 머릿 속에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813년, 폴란드를 거쳐 독일을 침공해올 러시아군을 상대하기 전에, 먼저 과거 나폴레옹이 주로 어떤 전략을 써서 적군을 요리했는지 살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1807년 예나-아우어슈테트, 1809년 아스페른-에슬링 전투를 보면 대충 나폴레옹의 수법을 예측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시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이 3가지 있습니다. 1) 최선의 방어는 공격 모든 경우에 있어 천만뜻밖에도, 나폴레옹은 먼저 전쟁을 시작.. 2022. 3. 14.
포클랜드 전쟁 잡담 - 뒤죽박죽 상륙작전 보통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군이 미군으로부터 위성사진이니 뭐니 해서 아르헨티나 수비군의 온갖 세밀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별로. 영국군은 포클랜드 섬 정확히 어디어디에 활주로가 있고 어디에 경공격기들이 배치되었는지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함. 단지 아르헨군의 무선통신 도청 및 암호 해독은 꽤 잘 되었음. 가령 아르헨티나군의 무전 속에 'Calderon'이라는 항공기지 이름이 나오는데, 이게 포트 스탠리를 말하는 건지 혹은 아르헨티나 본토의 공군기지 이름을 말하는 것인지 전혀 몰랐음. 정보부가 열심히 분석한 끝에 아무래도 칼데론은 여태까지 영국군이 파악하고 있던 것 이외의 추가적인 활주로를 지칭하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에 따라 항공 정찰을 통해 포클랜드 서(West) .. 2022. 3. 10.
캡틴 아메리카와 기획 부동산 - 1813년 나폴레옹의 전비 마련 당시 병사 하나를 입히고 배낭이니 잡낭(giberne) 같은 각종 장구류를 갖추는데 157프랑이 들었고, 머스켓 소총으로 무장시키는데 추가로 100프랑이 들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20만 병력을 갖추는데 약 5천1백만 프랑이 들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포병대와 기병대도 편성해야 하고 급여도 지급해야 했으므로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이 들어갔습니다. 참고로 나폴레옹이 1798년 약 2만5천의 병력을 이끌고 이집트 원정을 떠날 때 추정된 필요 예산이 약 9백만 프랑이었습니다. 이건 약 5천만 프랑으로 추산되는 해군 함대 비용을 제외한 예산이었습니다. 1인당 360프랑이 들어간 셈이지요. 15년 동안에 인플레가 있었을테니 실제로는 인당 400프랑 이상 들었을 것입니다. 또 비슷하게 참조해볼 수 있는 수치는 .. 2022. 3. 7.
잭 오브리가 말하는 엔클로저 운동 - 공유지의 비극 소규모 자영농의 몰락은 미국에서만 일어난 일도 아니고, 또 20세기 들어서서 일어난 일도 아닙니다. 영국에서는 이미 17세기부터 진행되던 일이고, 특히 나폴레옹 전쟁 동안에 급속도로 진행된 일입니다, 소위 말하는 인클로저(inclosure, 당시 스펠링은 enclosure가 아니라 inclosure였고, 지금도 법률 용어로는 inclosure라고 한다는군요) 운동이라는 것이었지요. 아마 고딩 세계사 시간에들 배우셨을텐데, 그것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시험에는 나오지 않지만, Patrick O'Brian의 나폴레옹 전쟁 소설인 'Yellow Admiral'을 통해 공부해보도록 하시지요. Yellow Admiral by Patrick O'Brian (배경 : 1814년 영국) ----------------.. 2022. 3. 3.
파운드와 프랑 - 신용과 귀금속의 경쟁 앞서 보셨다시피, 전쟁에 필요한 3대 자원 중 사람과 장비는 사실 나폴레옹이 뭔가 극적이고 기발한 묘책을 내놓아야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고, 그냥 프랑스의 웅후한 역량을 믿고 활용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폴레옹이 프랑스를 만들었다기 보다는 프랑스가 나폴레옹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3대 자원 중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 바로 돈은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여기엔 분명히 누군가의 결정이 필요했고, 그 결정을 내릴 사람은 나폴레옹 밖에 없었습니다. 기억들 하시겠습니다만, 1798년 프랑스 대혁명이 나고 제1차 대불동맹전쟁이 벌어지면서 프랑스 혁명정부도 당장 돈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정부도 처음에는 합리적이고 나름 기발한 방법으로 돈 문제를 해결했습.. 2022. 2. 28.
포클랜드 전쟁 잡담 - 원탁의 기사들의 모험 포클랜드 전쟁에서 벌어진 첫 상륙전인 San Carlos 전투에 대해 밀덕들은 주로 아르헨티나 공군기들이 얼마나 용감히 싸웠는지, 그리고 영국 구축함과 프리깃함들이 얼마나 곤경을 겪었는지에 대해 집중. 그러나 그 작전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상륙함들. 이 전투에는 당시 로열 네이비가 가진 모든 상륙전 자원이 총동원됨. 즉, Fearless-class의 LPD (Landing Platform Dock) 2척, 그리고 Round Table-class의 LSL (Landing Ship Logistic) 6척이 모조리 참전. 그것도 부족하여 Canberra를 비롯한 민간 여객선 및 화물선 등도 동원됨. 아무래도 LCU 및 LCVP 등의 상륙정을 직접 발진시킬 수 있는 LPD가 2척 밖에 없었던 것이 병력과 물자 .. 2022. 2. 24.
석탄과 머스켓 - 1813년 프랑스의 병기창 지난 편에서, 전시에는 인구의 2.5% 정도를 병력으로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언급했습니다만,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군국주의 국가 프로이센 같은 경우 7년 전쟁 기간 중 인구의 6%에 달하는 병력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외국 용병들이긴 했습니다. 왜 인구 대비 더 많은 병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을까요? 프랑스 대혁명이 벌어지기 3년 전인 1786년, 프랑스의 무장병력은 고작 16만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8년 뒤인 1794년, 제1차 대불동맹전쟁이 벌어지면서 유럽 전체와 싸워야 했던 프랑스 혁명정부는 무려 80만의 병력을 소집하여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프랑스 인구가 대폭 늘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는 그렇게 많은 병력이 필요하지 않았으.. 2022. 2. 21.
포클랜드 전쟁 잡담 - 어? 왜 거기에? 영국 포클랜드 원정군의 주축은 로열네이비였지만 따지고 보면 해군의 임무는 지상군을 안전하게 상륙시켜 제 할 일을 하게 해주는 것. 그리고 섬을 공격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지상군의 상륙. 부동산 투자와 상륙작전은 공통점이 많은데 바로 입지와 타이밍이 절대적이라는 점. 상륙 및 교두보 확보의 임무를 지게 된 것은 로열마린, 그러니까 영국 해병대의 제3 코만도 여단(3 Commando Brigade)의 지휘관 Julian Thompson. 그런데 외지인이 지방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그래서 현지 사정에 밝고 믿을 만한 공인중개사 확보가 필수. 톰슨 중장에게는 천만다행으로, 그에게는 Ewen Southby-Tailyour 소령(아래 사진)이 있었음. 사우스비 소령은 바로 4년 전에 포.. 2022.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