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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첸을 향하여 (6) - 나폴레옹보다 뛰어난 포병 불타다 남은 러시아군의 부교를 낚아채간 프랑스군이 그걸 수리하는 모습은 강 건너를 순찰하는 코삭 기병들의 눈에도 잘 보였습니다. 아무리 러시아군이 별 생각이 없다고 해도 당장 그 근처에서 프랑스군이 도강을 시도하리라는 것은 뻔했습니다. 바로 2일 전 비트겐슈타인이 엘베 강변을 지킨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그 작전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논리 중 하나는 '나폴레옹이 마치 A지점에서 강을 건너려는 듯 허장성세를 펼치다 멀리 떨어진 B지점에서 강을 건너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뻔히 보이는 도하 시도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었습니다. 드레스덴 노이슈타트에 남아있던 러시아군 수비대 지휘관인 밀로라도비치는 아침부터 여차하면 위비가우 강변으로 뛰어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프.. 2023. 1. 16.
레이더 개발 이야기 (16) - 마침내, Cavity Magnetron! 여러가지 꼼수로 버텨보긴 했지만, 영국 공군 레이더 개발팀은 결국 당시 진공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제대로 된 공대공 레이더는 불가능하다고 결론. 당시 진공관은 미터 단위의 파장을 가진 장파 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그로 인해 비교적 작아야 하는 항공기 탑재용 레이더에서는 전파에 방향성을 주는 것이 불가능했고, 그 때문에 지표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반사파 등의 온갖 난제를 극복할 방법이 없었음. 하지만 생각해보면 영국 공군의 Chain Home 레이더만 하더라도 (비록 앞면 뒷면 정도의 방향성 밖에 없었으나) 일부 방향성을 주긴 했었음. 이건 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핵심은 야기-우다 안테나(Yagi-Uda Antenna)의 원리. 야기-우다 안테나는 전기 신호를 받아들여 전파를 생성하는 활성.. 2023. 1. 12.
바우첸을 향하여 (5) - 대충대충 러시아군 엘베 강 동쪽의 연합군이 작전 계획에 대해 아웅다웅 하고 있는 동안, 나폴레옹의 군단들은 속속 엘베 강변에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중앙부인 드레스덴에는 외젠 지휘에 막도날의 제11 군단, 마르몽의 제6 군단과 제1 기병군단이, 그 남쪽 프라이베르크(Freiberg)에는 베르트랑의 제4 군단이, 그리고 그 북쪽 마이센에는 로리스통의 제5 군단이 향했습니다. 나폴레옹은 5월 8일 드레스덴 인근에 도착했는데, 처음에는 뭔가 멋진 정치적 의미를 띤 근사한 입성을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부관에게 지시하여, 드레스덴 시청의 책임자를 자신이 있는 인근 마을로 즉각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드레스덴의 다리는 이미 파괴되어 불타고 있었고 시내 분위기도 어수선한 편이어서 그랬는지, 이후 불려온 시청 대표에게는 아주 차.. 2023. 1. 9.
레이더 개발 이야기 (15) - 진공관의 한계와 ChatGPT Cavity magnetron이 없던 시절인 1939년, 이미 영국은 훌륭한 지대공 레이더인 Chain Home 시스템을 운용. 이 체인홈 레이더에서는 20 ~ 55 MHz의 전파를 사용. 이렇게 비교적 낮은 주파수, 즉 긴 파장의 전파를 썼기 때문에 radar beam의 폭은 150도 정도로 넓게 퍼질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바다 위에 나타나는 독일 폭격기를 잡아내는 데는 요긴한 역할을 수행. 이 체인홈에서도 인덕터와 커패시터를 결합한 LC 공명회로를 이용하여 주파수를 만들었을까? 맞음. 1915년 미국 엔지니어 Ralph Hartley가 발명한, 2개의 직렬 인덕터와 1개의 커패시터를 병렬로 연결한 Hartley oscillator를 약간 변형하여 사용함. 아래 그림1이 체인홈의 단순화된 회로. .. 2023. 1. 5.
바우첸을 향하여 (4) - 엘베 강 양쪽의 고민 엘베 강을 건너 한숨 돌린 연합군은 이제 무엇을 해야 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사람은 바로 총사령관 비트겐슈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도 딱히 명확한 계획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궁극적인 목표야 나폴레옹의 패배였지만, 그를 위해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싸우지 않고 이길 방법은 없었으니 당연히 언제 어디서에선가 싸우기는 해야 했는데, 그 언제와 어디서가 문제였습니다. 일단 나폴레옹이 엘베 강을 건너 추격해 올 것이 자명했으니, 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했습니다. 엘베 강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더 유리한 조건에서 싸울 수 있는 후방으로 더 후퇴해야 하는가가 1차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엘베 강을 버리고 후퇴하는 것은 매우 바보 같은 일이었습.. 2023. 1. 2.
레이더 개발 이야기 (14) - 19세기에는 파동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WW2 중 제대로 된 공대공 레이더를 개발하려던 영국 공군의 치열한 노력은 결국 cavity magnetron이라는 소자를 만들어 내면서 결실을 맺음. 이 캐버티 마그네트론 덕분에 연합군은 전쟁 내내 훨씬 우수한 레이더로 독일과 일본을 제압. 캐버티 마그네트론 덕분에 연합군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자신만 야시경을 가진 것과 같은 우월함을 누렸음. 그런데 이 캐버티 마그네트론 없이도 영국은 물론 독일과 일본도 레이더를 만들어 잘 운용했었음. 캐버티 마그네트론 없이 어떻게 수십 MHz에 이르는 주파수를 만들어냈을까? 그 이야기까지 가려면 먼저 18세기 중반 독일 포메른 지방으로 가야함. Ewald Georg von Kleist라는 카톨릭 수사가 있었는데, 전기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가지 실험을 하고.. 2022. 12. 29.
바우첸을 향하여 (3) - 샤른호스트의 빈 자리 5월 6일 아침, 나폴레옹은 스파이들로부터 프로이센군과 러시아군이 각각 따로 엘베 강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우 흡족해 했습니다. 특히 프로이센은 북쪽의 마이센(Meissen)으로 향하고 러시아군은 예상대로 남쪽의 드레스덴으로 향한다는 것을 듣고, 나폴레옹은 자신이 토르가우로 네의 군단을 보낸 것에 프로이센군이 베를린이 위협받고 있다고 겁을 집어먹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기분 좋게 그 날 저녁 뷔르젠(Wurzen)까지 도착했지만, 프로이센군 중 일부 1만2천 정도만 마이센으로 갔을 뿐 나머지는 모두 러시아군을 따라 드레스덴으로 갔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이 소식에 놀란 나폴레옹은 정확한 정보를 얻기를 원했고, 프랑스군의 진격은 또 잠시 멈춰야 했습니다. 혹시나 이것들이 결별하지 않으면 어떡.. 2022. 12. 26.
레이더 개발 이야기 (13) - 야간 전투기의 다양한 꼼수 보웬이 만들던 공대공 레이더 AI (Airborne Interception) Mark II는 여태까지 기술했듯이 많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이젠 정말 곧 전쟁이 터진다고 판단한 영국 국방부는 그 미완성인 AI Mk II를 생산하여 30대의 Bristol Blenheim (사진1)에 장착하라는 주문을 냄. 브리스톨 블렌하임은 원래 민간 여객기로 1935년에 개발된 것이었는데, 바로 작년에 복엽 폭격기인 Handley Page Heyford를 최신예 폭격기랍시고 도입했던 영국 공군은 그 단엽기에 전신을 듀랄루민으로 만든 멋진 고속 쌍발 여객기 블렌하임에 홀딱 넘어가서 2년 만에 폭격기로 개조하여 도입했던 기종. 폭격기로서도 그저 그런 성능이었지만 그래도 쌍발 엔진에 장거리 전투반경을 가지.. 2022. 12. 22.
바우첸을 향하여 (2) - 민병대의 의미 뤼첸에서 후퇴할 때 드레스덴으로 향한 러시아군과는 달리 프로이센군은 마이센으로 향했으나, 정작 프로이센 국왕은 물론 프로이센군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샤른호스트는 러시아군과 함께 드레스덴으로 향했습니다. 이는 프로이센 수뇌부가 당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뤼첸 전투에서 러시아군이 소극적으로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이 전쟁의 주역은 러시아군이었고 프로이센군은 러시아군을 보조하는 역할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서 베를린을 지킨답시고 러시아군과 갈라선다면 프로이센은 베를린 뿐만 아니라 프로이센 전체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매우 컸습니다. 샤른호스트는 불안해하는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을 다독거리며 엄청난 분량의 서류를 처리하며 프로이센군의 재편성에 돌입했습니다. 뤼첸 전투에서 잃은 병력을 보.. 2022. 12. 19.
미군 탱크병이 먹는 제육덮밥의 정체는? - Minute Rice 이야기 저는 군대 밥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인터넷에서 관련 내용을 종종 찾아봅니다. 오늘 글은 Armour and Company라는 이름의 미국 식품 회사에서 생산한 기갑 부대용 5인 1세트의 C ration 광고 포스터에 나온 메뉴 중 하나에 대한 것입니다. (Armour and Company라고 하니까 기갑 부대 전용의 특별한 전투식량만 생산하는 회사처럼 오해되기 쉽습니다만, 아머 & 컴퍼니는 시카고에 근거를 둔 대형 육류회사 이름입니다. Philip Danforth Armour를 중심으로 한 아머 형제들이 1867년 설립한 회사로서, 남북 전쟁 이후 철도와 전신이 미국 서부 개발을 촉진하면서 성장한 대표적인 회사 중 하나입니다. 위 사진은 1910년에 찍은 시카고의 아머 & 컴퍼니 사의 전경입니다.) (.. 2022. 12. 15.
바우첸을 향하여 (1) - 나폴레옹의 꽃놀이패 아무리 잘 싸운 뒤에 수행된 전략적 후퇴이고 아무리 추격자가 없다고 해도, 후퇴하는 군대의 사기가 드높다면 매우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뤼첸 전투로부터 질서정연하게 후퇴하던 러시아-프로이센 연합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잘 싸운 뒤에 하는 후퇴라서 두 나라 군대는 더욱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잘 싸웠는데 왜 후퇴를 하는 것이냐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보통 누군가 남탓을 하기 마련입니다. 보통은 사회의 소수 약자가 그런 비난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었습니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유태인 탓을 했고 1812년 후퇴하던 러시아군에서는 러시아군 내의 발트 연안 독일계 장교들 탓을 했지요. 이 경우에는 비난 대상을 찾는 것이 아주.. 2022. 12. 12.
레이더 개발 이야기 (12) - 근시도 아니고 원시도 아닌 레이더 레이더의 전파가 40 MHz냐 160 MHz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 근데 이런 단위는 모두 주파수의 단위. 전파의 파동 주파수는 대체 무슨 장치로 만들어냈을까? 압전(Piezoelectricity) 효과는 이미 18세기 후반에 발견되었으나, 이걸 실험으로 입증해보인 것은 바로 퀴리 부인의 남편인 Pierre Curie과 그의 형 Jacques Curie. (윗 사진이 퀴리 형제가 황옥, 수정, 로쉘 소금 결정 등등의 다양한 결정체로 그런 실험을 수행했던 장치) 압전 효과는 한동안 신기한 과학 현상으로만 알려졌으나 이게 실제 활용에 사용된 것은 역시나 전쟁 때문. WW1 동안 잠수함 탐지 방법을 연구하던 프랑스 물리학자 Paul Langevin이 active sonar 개발에 수정의 압전 효과를 이용한 변.. 2022.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