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폴레옹의 시대

영국군과 프랑스군, 누가 더 잘 먹었을까 ? - 나폴레옹 시대의 군대밥 이야기

by nasica 2016. 10. 23.
반응형



최근 영국이 노후된 뱅가드급 핵잠수함을 대체할 드레드노트급 핵잠수함의 건조를 발표했습니다.  그 사양을 보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 중 하나가 130명의 승조원에 1명의 의사와 3명의 요리사(chef)가 포함되어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쉐프를 3명이나 태우다니 잠수함 승조원들을 정말 잘 먹이려나 보다 싶지만, 그래봐야 영국인 조리병를 태울테니 드레드노트 승조원들은 암울한 식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폴레옹 시대 때도 영국 요리는 유명했을까요 ?  예, 유명했습니다.  몇가지 관련 부분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군 장교의 모험담을 그린 서양 무협지 Sharpe 시리즈에서 발췌해 보았습니다.






  

-- Sharpe's Enemy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2년, 포르투갈)  -----------------

 

프랑스군 듀브레통 대령 :

"먼저 토끼의 살을 뼈에서 발라내서 올리브유와 식초, 와인에 하루종일 재워놔야 해. 거기에다 마늘, 소금, 후추, 그리고 혹시 구할 수 있다면 노간주 열매를 한줌 집어넣으면 좋지. 피하고 간은 따로 보관했다가, 갈아서 죽처럼 만들어야 한다네." 

듀브레통 대령의 목소리에는 열정이 묻어났다.  

"하루 지난 뒤에, 발라놓은 고기를 버터와 베이컨 기름에 약하게 익혀서 갈색을 만들어놓지. 팬에다가 밀가루를 조금 넣고, 모든 것을 소스에 집어 넣는거야. 거기에 와인을 좀더 붓고, 거기에 따로 갈아두었던 피와 간을 집어넣어.  그리고나서 끓이는거야. 접시에 내놓기 직전에 올리브유를 한스푼 집어넣으면 더 맛이 좋지."

 

영국군 샤프 소령 :

"우리는 그냥 토끼를 잘라서 물에 끓이고 소금 쳐서 먹는데요."


(이 구절이 나무위키인가에 올라온 것을 봤는데, 물론 원작은 콘월 옹이지만 이렇게 짧게 축약해서 요약 번역한 건 저였습니다 ㅋ)

 

---------------------------------------------------------------------------------


이렇게 셀프 디스와 함께 세계적인 비웃음거리가 되는 영국 요리이지만, 최소한 영국군은 육군이든 해군이든 프랑스군보다는 더 잘 먹었습니다.   


다음은 영국 해군의 규정상 식단입니다.  


일 : 비스킷 1 파운드, 돼지고기 1 파운드, 완두콩 0.5 파인트, 맥주 8 파인트

월 : 비스킷 1 파운드, 오트밀 0.5 파인트, 설탕 2 온스, 버터 2 온스, 치즈 4 온스, 맥주 8 파인트

화 : 비스킷 1 파운드, 쇠고기 2 파운드, 맥주 8파인트 (또는 럼 0.5 파인트)

수 : 비스킷 1 파운드, 온두콩 0.5 파인트, 오트밀 0.5 파인트, 설탕 2 온스, 버터 2 온스, 치즈 4 온스, 맥주 8 파인트

목 : 비스킷 1 파운드, 돼지고기 1 파운드, 완두콩 0.5 파인트, 맥주 8 파인트 (또는 럼 0.5 파인트)

금 : 비스킷 1 파운드, 온두콩 0.5 파인트, 오트밀 0.5 파인트, 설탕 2 온스, 버터 2 온스, 치즈 4 온스, 맥주 8 파인트

토 : 비스킷 1 파운드, 쇠고기 2 파운드, 맥주 8 파인트







(Stephen Biesty의 "Cross-sections : Man-of-War" 라는 책에서 나온 그림입니다.  설탕과 버터는 오트밀에 넣어 먹었고, 치즈는 그냥 고기 대신 베어 먹었나 봅니다.)







(치즈는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냐고요 ?  같은 책에 나오는 저 그림 속에서, 마치 책장처럼 생긴 틀이 치즈 보관틀입니다.  아무리 치즈가 보존 식품이라고 해도, 몇개월 지나면 곰팡이 나고 상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굳이 영국 해군 뿐 아니라, 프랑스 육군 기록에도 '끔찍한 치즈를 배급받고 아연실색했다'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론 여기서 배급되는 비스킷은 설탕도 버터도 넣지 않은, 뻑뻑하기 이를 데 없고 이가 부러질 정도로 단단한 물건이었습니다.  고기도 소금을 듬뿍 써서 절여 놓은, 질기고 누린 내 나는 것이었고요.  비스킷이나 고기나, 만든지 최소 3개월, 보통 반 년에서 1년 정도 된 것들이었습니다.  비스킷에는 바구미와 그 애벌레가 득실거렸고, 고기는 너무 짰기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민물 통에 반나절 이상 담가 놓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지독하게 짰습니다. 


맥주도 술 치고는 알코올 도수가 약한 편이라서 쉽게 상했습니다.  따라서 대양에 나가면 곧 맥주는 떨어졌고, 그 후에는 맥주 대신 럼주 0.5 파인트가 배급되었습니다.  이 럼주에는 물을 타서 희석해서 주었는데, 그런 규정을 만든 제독의 이름을 따서 그런 희석 럼주를 그록(grog)이라고 불렀습니다.






(수병들이 진한 럼을 그대로 마시고 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럼에 물을 규정대로 타는 것이 중요했고, 따라서 그록을 배합하고 분배하는 것은 장교의 감독하에 엄격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그록 배식은 영국 해군에서 계속 전통으로 이어지다가 1970년에야 폐지되었습니다.  영국 Royal Navy의 Darkest day로 기록된다고 합니다.)

  



이런 식단에 대해 현대인들은 불평할지 몰라도, 당시 해군을 구성했던 서민층들에게는 꽤나 호사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매일 빵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거의 매일 고기 1 파운드와 빵 1 파운드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건 대부분의 현대 한국인들에게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술이라니 !  매일 공짜 술을 저렇게 많이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해군의 이 배급량은 영국 육군의 경우보다 다소 열악한 편이었습니다.  규정에 따르면 영국 육군은 요일에 따른 변화 없이 그냥 매일 같은 식재료를 배급했습니다.


빵 또는 밀가루 1.5 파운드 또는 비스킷 1 파운드

쇠고기 1 파운드 또는 돼지고기 0.5 파운드

완두콩 0.25 파인트

버터 또는 치즈 1 온스

쌀 1 온스

약한 맥주 (small beer) 5 파인트 또는 와인 1 파인트 또는 럼 0.5 파인트


육군이나 해군이나, 이런 식단 규정을 보시면 채소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다는 것을 쉽게 눈치채실 것입니다.  이는 사실 로마 군단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으로서, 당시에는 채소를 먹어야 건강하다는 개념 자체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채소는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나 주로 먹었고, 중산층 이상되는 사람들은 주로 지방과 단백질,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했습니다.  그래도 육군에서는 양념이나 부재료로 이런저런 채소를 얼마든지 구할 방법이 많았으므로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망망대해에 고립된 해군이었지요.  해군에서는 당연히 비타민 부족으로 인한 괴혈병이 창궐했습니다.  괴혈병의 증상은 전신의 무력감, 잇몸이 퉁퉁붓고 이빨이 빠지는 현상, 고약한 입냄새, 그리고 몇년 전에 완치된 상처가 새롭게 덧나는 현상 등이 있는데, 결국은 다 죽었습니다.  이 치료법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신선한 채소를 먹으면 금방 나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비타민 C의 존재를 몰랐고, 또 신선한 채소의 보존 방법을 몰랐으므로 장기간 대양을 항해하는 수병들의 건강은 크게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긴 대양 항해의 경험상, 영국 선장이나 군의관들은 레몬, 라임이나 오렌지 주스를 매일 선원들에게 공급하면 괴혈병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요법은 나폴레옹 전쟁 후기에 들어서야 해군 전체에 시행되었습니다.  그렇게 영국 해군 수병들이 괴혈병으로 픽픽 쓰러지는 사이 독일 선박에서는 독일식 김치인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를 배식하면 괴혈병이 예방된다는 것을 알고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소세지와 독일 김치 사우어크라우트입니다.  사우어크라우트가 제 입맛에는 꽤 잘 맞던데요.  맛있어요.)




이런 식단 규정에서 또 이상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대적인 군대나 학교 식단이라면 미트로프나 비프스튜 등의 음식 이름이 나와야 하는데, 당시 식단에는 식자재 이름만 나와 있고 그런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어 배식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군대에는 취사병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습니다.  군대에서의 모든 식사는 그냥 중대 단위로 알아서들 해먹는 것이 상식이었고, 군 지휘부에서는 오직 식재료와 취사도구의 배급만 책임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독립 전쟁 때나 나폴레옹 전쟁 때나,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군 병력에 대한 식량 보급은 항상 다음과 같이 쇠고기 몇 파운드, 밀가루 몇 파운드 등 재료에 대해서만 기록될 뿐, 점심은 빵과 로스트 비프, 저녁은 파스타와 치킨 등 요리 이름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당번제 식사 준비에 있어서도 영국군은 그 명성이 높았나 봅니다.  맛은 어차피 군대밥이니 그렇다고 쳐도, 조리하는 과정의 효율성은 영국 원정군 총사령관 웰링턴 공작도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웰링턴 공작은 1812년 11월 28일 내린 명령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원정에서 프랑스군과 비교할 때, 우리 군의 조리 방식은 시설면에서나 신속성에 있어서나 개탄스럽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원인은 다른 점들과 동일하다.  군의 질서, 병사들의 행동에 대해 장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 결과 병사들에 대해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

향후 각 중대의 일부 병사들은 땔나무를 준비하고, 일부는 물을 긷고, 일부는 고기, 비스킷 등을 받아와 조리를 하도록 할당될 것이다.  이런 조치가 매일 제대로 준수되면 전처럼 식사 준비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작전의 필요성 때문에 식사할 기회를 빼앗기는 일도 없을 것이다." 





(행군할 시간도 부족한데 병사들이 빠져가지고 저런 목가적인 분위기에서 딩가딩가 밥을 지어 먹다니.... 이것들이 캠핑을 왔나 작전을 왔나 !!  라는 것이 웰링턴 공작의 불만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대별로 식사 준비를 할 때는 장작을 마련해오는 병사, 불피우는 병사, 물 길어오는 병사, 고기를 받아오는 병사, 빵을 받아오는 병사, 그리고 무기와 배낭을 정리하는 병사 등으로 나뉘어 활동을 했습니다.  이는 프랑스군을 따라 한 것이니, 프랑스군도 이와 비슷하게 움직였나 봅니다. 


육군이 이렇게 식사 준비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해군도 mess라고 불리는 식사조를 짜서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보통 8명이 한조를 이루었는데, 이들은 고달프고 위험한 바다 생활에서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도둑질이나 거짓말 등의 죄목으로 식사조에서 쫓겨나는 일도 있었는데, 이는 일요일 함장님에게 판결을 받고 보조 포술장에게 채찍질을 당하는 것보다 대단한 불명예와 왕따를 뜻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어떤 곳에서든 소속감을 느낄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잠깐, 해군에는 분명히 cook, 즉 주방장이 있었는데 이는 어찌된 일일까요 ?  당시 군함에서, cook이라는 직위는 요리를 하는 역할이 아니라, 군함 주방(galley)에서 화재를 내지 않고 제대로 요리를 하는지 관리 감독하고, 또 공용으로 쓰는 솥단지 같은 주방용품을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나무로 된 군함이었으므로, 불 관리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상위 장교 식당, 즉 wardroom을 위해서는 장교들이 돈을 모아 고용한 진짜 민간인 요리사가 있었고, 또 대부분의 함장은 개인 전용의 민간인 요리사를 따로 대동했습니다.   주방장의 직위는 warrant officer, 즉 준위였습니다.   통장이(cooper), 범포장(sailmaker), 목공장(carpenter)와 같은 하급 기술 준위(junior petty officer) 신분이었는데, 다른 기술 준위와는 달리 별로 기술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필요없는 직책이었지요.  대개 cook의 직위는, 실제 요리 솜씨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오래 복무한 나이 많은 모범 수병, 특히 팔다리를 전투 중에 잃은 수병에게 일종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해적 영화를 보면 요리사는 보통 의족을 한 중년 아저씨쟎습니까 ?  다 그런 이유가 있더라구요.  게다가, cook은 꽤 짭짤한 자리였다고 합니다.  수병들이 염장 고기를 삶을 때 물 위에는 당연히 기름이 뜨쟎습니까 ?  그건 관례상 다 cook의 몫으로 돌아갔다고 하네요.  일부 밧줄과 삭구에 바를 것만 빼고요.  수병들은 딱딱하고 맛없는 건빵을 이런 기름에 튀겨 먹기 위해 이런 기름도 슬쩍슬쩍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런 동물성 유지는 긴 항해를 하다보면 몇통씩 생겼는데, 어떤 항구에서건 이런 동물성 유지 한통에 약 2.5파운드 정도를 주고 샀다고 하니까, 큰 돈은 아니어도 꽤 짭짤했겠지요.  (당시 소위 연봉이 약 90파운드였습니다.)  다만 출신이나 하던 일이 그렇다 보니, 주방장은 진짜 장교들이 식사를 하는 상위 장교 식당(wardroom)이나 사관후보생(midshipman)들과 보조 항법사(master's mate), 보조 군의관(surgeon's mate) 등이 식사를 하는 하급 장교 식당(cockpit 또는 gunroom)에는 끼지 못하고, 그냥 일반 수병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신사 계급의 나으리들과 겸상을 할 처지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역시 Stephen Biesty의 "Cross-sections : Man-of-War" 라는 책에서 나온 그림입니다.  아마존에서 중고책으로 파는 것을 샀는데, 저도 잘 몰랐던 부분, 가령 저렇게 배식받은 쇠고기는 식사조 mess별로 금속제 꼬리표를 붙여 삶았다는 것도 상세하게 소개되더군요.  저 해군용 비스킷에 득실거리는 구더기 구경하세요.)




이렇게 배급된 날재료로 병사들은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까요 ?  그야 말로 제각각이었습니다.  병사들에게 좋은 오븐이나 화력 좋은 가스 레인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들은 주로 남비에 끓여 먹는 요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븐 없이 빵을 구워 먹을 수는 없었으므로, 대대에서 일괄적으로 구워서 배급되는 빵이 없다면 이들은 배급된 밀가루를 이용해 밀가루 죽을 쑤어 먹거나 요령껏 마련한 돌판이나 철판에서 얇은 전병을 구워 먹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족적이지만 아마추어적인 배식 제도는 로마 군단 시절부터 무려 제1차 세계대전 초기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근대적인 취사병 제도가 생긴 것은, 엄청난 장거리 곡사포들의 포탄이 끊이지 않고 떨어지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영국군이 맛없는 영국 요리를 먹는다고 해서 프랑스군이 화려한 프랑스 요리를 먹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프랑스군의 식사는 더욱 형편 없었습니다.  흔히 나폴레옹이 '군대는 배 힘으로 행군한다' (An army marches on its stomach)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나폴레옹의 기본 병참 전략은 현지 조달이었으니, 병사들은 대부분의 경우 배가 고플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규정상으로도 병사들에게 배급되는 하루 식량의 품목과 양은 부대가 어느 지역에 배치되느냐에 따라 꽤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루에 다음과 같은 하루 배급을 받도록 되어 있었고,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영국군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빵 1.5 파운드

고기 1.1 파운드

말린 채소 0.25 파운드

브랜디 0.0625 파인트

와인 0.25 파인트

식초 0.05 파인트


건조 채소가 나온다고 해서 '역시 프랑스는 영국과는 달리 영양의 균형을 생각하는 미식가의 나라'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여기서 건조 채소라는 것은 영국군도 자주 배식하던 말린 콩을 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거든요.  1800년의 제2차 이탈리아 침공 때부터 나폴레옹 밑에서 사병으로 복무했던 쿠아녜(Coignet)의 회고록에도 '아마 천지창조 때 함께 창조된 것처럼 오래된 말린 콩'이 배급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와인과는 별도로 나오는 브랜디 0.0625 (1/16) 파인트에 대해서도 감탄할 수도 있습니다.  실은 저것도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다소 덜 로맨틱한 이유에서 배급되었던 것입니다.  전장에서 마시는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냄새도 나고 탁한 것일 때가 많았으므로, 그런 물을 좀더 정화하기 위해 브랜디 또는 식초를 넣어서 마시라고 준 것이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브랜디의 경우는 대부분 병사들이 그냥 마셔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식초는 그렇게 물에 타서 마셨고, 아예 각 중대별 짐수레에는 그런 용도를 위한 큰 식초통이 실려 있었습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병사 1인당 배급량에는 변화가 컸습니다.  가령 1809년 나폴레옹이 비엔나를 점령한 뒤에 비엔나 시민들에게 부과한 프랑스군 1인당 배급량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빵 1.33 파운드 그리고 추가로 수프에 넣을 빵 0.33 파운드

고기 1 파운드

쌀 0.125 파운드 (2 온스)

말린 채소 0.25 파운드 (4 온스)


그러나 이는 이제 비엔나 시민들의 비용으로 병사들을 먹이게 되었으므로 여태까지 먹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요구한 것이었고, 이 때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대부분의 경우 훨씬 더 적은 양의 식량만 배급되었습니다.  1811년 6월, 다른 부대들보다 훨씬 배급 사정이 좋았던 근위대의 실제 하루 배급량은 정말 참혹한 수준이었습니다.  


빵 0.8 파운드 그리고 추가로 밀가루 0.25 파운드

고기 0.6 파운드

쌀 0.0625 파운드 (1 온스)


밀가루가 배급되었던 이유는 빵을 구울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고, 그나마 스페인처럼 정말 상황이 안 좋았던 곳에서는 아예 가루를 내지도 못하고 그냥 생밀 낟알이 배급되기도 했습니다.  병사들은 이런 낟알을 수프에 넣어 주린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뻔뻔스러운 나폴레옹은 아예 한술 더 떴습니다.  그는 고대 로마 군단병들처럼 병사들은 현지에서 직접 밀 낟알을 배급받고, 그것을 작은 휴대용 맷돌로 갈아 자신이 먹을 빵을 직접 구워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까지 했지요.  


물론 영국군도 규정된 배식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영국군 사병의 급료는 기본 하루 1실링 즉 12펜스였는데, 저런 배식에 대해 무려 그 절반인 6펜스를 공제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보급 상황이 좋지 않아 규정된 배식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급여에서 배식 공제는 꼬박꼬박 이루어졌습니다.  또 원래 살코기로 공급되어야 하는 염장 고기가 비계나 연골, 힘줄 등 먹기 싫은 부위로 잔뜩 채워져 공급되는 일도 많았고요.  물론 그 와중에 뇌물이 오가고 누군가는 돈을 벌었겠지요.  


그런 부당함은 프랑스군에도 매우 많았습니다.  나폴레옹의 통치도 결국은 독재 권력인지라 그의 묵인 하에 많은 부정이 동반되었고, 그의 군납업자들은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폴레옹의 군대에 보급되는 빵과 비스킷은 병사용 등급으로 구워져 보급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질이 나쁜 귀리 가루를 잔뜩 섞고, 대충 구워 대충 공급을 하다 보니, 맛이 나쁜 것은 둘째 치고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핀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배급되는 빵이 전체적으로 파란 색을 띠기도 했다지요.   위에서 언급한 쿠아녜의 회고록에도 하루 종일 굶은 뒤 겨우 받은 배급 빵이 곰팡이 투성이여서 무척 실망했다는 이갸기가 나옵니다만, 그나마 며칠 뒤에는 아예 빵 배급이 끊겨 버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JE SUIS NÉ À DRUYES LES BELLES FONTAINES EN 1776, LE 16 AOÛT... 

CAPITAINE JEAN-ROCH COIGNET  

나는 1776년 8월 16일 드뤼에-레-벨-퐁텐느에서 태어났다...   대위 장-로끄 쿠아녜

쿠아녜의 회고록이 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병사들이 고생과 부상, 죽음이라는 희생을 치르는 동안 그를 통해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보는 자들이 항상 있습니다.  그런 자들일 수록 자신이나 자신의 아들들은 병역 의무에서 이런저런 수를 써서 빠지거나 아주 편하고 안전한 보직에서 특혜를 보고, 또 그럴 수록 전쟁불사를 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입보수나 방산 비리가 빨리 없어졌으면 합니다.   




출처 : Cross-sections : Man-of-War, Stephen Biesty

http://www.95th-rifles.co.uk/research/rations/

https://collections.nlm.nih.gov/ext/dw/101567907/PDF/101567907.pdf

http://regimentalrogue.tripod.com/blog/index.blog?topic_id=1129008

https://www.scribd.com/document/158382516/Historical-Review-of-the-Load-of-the-Foot-soldier

https://en.wikipedia.org/wiki/Royal_Navy_ranks,_rates,_and_uniforms_of_the_18th_and_19th_centuries

http://navymuseum.co.nz/history-of-the-warrant-officer-rank/

반응형

댓글